“당연하지. 동료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고용주와의 관계도 잘 처리해야 하는 거잖아. 예를 들어 고용주와 말다툼이 일어났을 시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방법을 강구하여 화해해야 한다 거나? 안 그러면 고용주가 일부러 골탕 먹일 수도 있으니까.”임유민 말 속의 뜻을 눈치챈 소희가 바로 냉소를 드러냈다.“설마 나와 네 둘째 삼촌을 암시하는 건 아니겠지?”“뭐야, 너무 멍청한 건 아니잖아?”“싱겁긴. 내가 정말로 멍청했으면 네 선생님이 되었겠어?”“그래서 말 돌리지 말고, 둘째 삼촌이랑 계속 이렇게 서로 안 보고 지낼 거야?”“지금은 네 둘째 삼촌이 나한테 화를 내고 있는 거야.”“그럼 쌤이 뭘 잘못해서 둘째 삼촌을 화나게 했는지 반성해야지!”임유민의 질책에 소희가 정말로 자신의 잘못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곧 분개한 표정으로 임유민을 노려보며 물었다.“그 사람이 네 둘째 삼촌이긴 하지만, 난 네 선생님이잖아. 너무 네 둘째 삼촌의 편만 드는 거 아니야?”“이번엔 쌤이 먼저 잘못했잖아! 난 공정하게 잘못이 없는 사람을 돕는 거야.”“내 잘못이라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게다가 내가 주동적으로 화해한다고 해도 네 둘째 삼촌이 날 거들떠보지도 않을 걸?”“쳇!”임유민이 죽어도 믿지 않는다는 표정을 드러냈다.“쌤이 한번 주동적으로 화해하자고 해 봐, 둘째 삼촌이 틀림없이 바로 쌤을 용서할 거야.”“시간 됐어, 그 사람 얘기는 그만하고 수업이나 하자.”임유민이 타이를수록 이상하게 더욱 갑갑해진 소희는 손을 흔들며 화제를 끝내려 했고, 이에 임유민이 냉소를 드러내며 소희를 쳐다보았다.“외면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거 아니야.”책을 펼치던 소희의 손은 임유민의 말에 잠깐 멈추었다. 하지만 소희는 결국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강의를 시작했다.그렇게 첫 수업은 무사히 끝났고, 쉬는 시간에 임유민이 가방에서 시험지 몇 장을 꺼냈다.“자.”“뭐야, 월말 평가 성적이 벌써 나왔어?”소희가 시험지를 한 번 훑어보고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네 둘째 삼촌이 바쁠 수도 있어, 그냥 방해하지 말고 수업하러나 가자.”소희가 포기하려 하자 조급해난 임유민은 바삐 앞으로 다가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둘째 삼촌! 둘째 삼촌! 소희 쌤이 볼 일이 있으시대요!”하지만 임유민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이에 임유민이 혹시나 해서 문 손잡이를 돌렸다.끼익-“쌤, 문이 열렸어!”임유민이 말하면서 바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고, 소희가 말리기엔 이미 늦었다.“둘째 삼촌!”“그만 불러, 집에 없을 거야.”소희의 말이 맞았다.방안 전체를 다 돌았지만 임구택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언제 나간 거지?”임유민이 머리를 긁적이며 또 옆방 서재로 갔다. 그러나 역시 아무도 없었다.‘뭐야, 내가 어떻게 소희 쌤을 설득했는데! 둘째 삼촌 너무 해!’벽에 기댄 채 실망한 표정으로 방안을 왔다갔다하는 임유민을 보며 소희는 지금의 자신도 실망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는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어떻게 만들어준 핑계인데, 쓰지도 못하고 낭비하게 생겼네?”소희의 말투는 덤덤했지만 임유민은 이상하게 그 속에서 실망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급히 하인을 찾아와 임구택의 행방을 물었고, 그제서야 임구택은 두 사람이 수업할 때 나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이에 소희가 바로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말했다.“체념됐지? 수업하러 가자.”“그럼 내일에 다시 한번 올라오자. 내가 둘째 삼촌보고 절대 외출하지 말라고 할 게.”“분명 볼 일이 있어 외출한 걸 거야, 그러니까 괜히 그 사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우리 일에 더는 신경 쓰지 마.”“그럼 둘이 빨리 화해나 하든가. 나도 우리 둘째 삼촌이 하루 종일 우울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쳇, 역시 네 둘째 삼촌만 걱정하고 있었어.”“쌤도 당연히 걱정하고 있지.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쌤도 지금 기분이 안 좋잖아.”임유민의 말에 소희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흰색과 회색이 메인 컬러로 인테리어가 된 집은 단조로우면서도 또 의외로 고급져 보였다.소희가 사는 집과 대체로 같은 구조인 집.소희는 현관을 지나 바로 거실로 들어섰다.바닥에는 옅은 회색의 카펫이 깔려 있었고, 그 위를 걷고 있으니 발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거실에 들어선 소희는 한눈에 베란다에 서서 자신을 등진 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게 되었다.검은색 셔츠에 검은색 양복바지 차림을 하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은 남다른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검은색 옷차림을 한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는데.’가뜩이나 평소에도 차갑고 냉담한 기질을 풍기고 있던 사람이 검은색 옷차림을 하고 있으니 왠지 더욱 차가워 보였다.한참 후, 통화가 끝난 남자가 휴대폰을 거두고 천천히 몸을 돌려 소희를 쳐다보았다.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만 남자의 눈동자는 그렇게 그윽하게 소희를 주시하고 있었다.그리고 그러는 남자를 똑같이 주시하고 있던 소희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억울함이 밀려와 순간 눈시울이 빨개졌고, 눈물이 흘러나오기 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이에 임구택이 바로 성큼성큼 쫓아가 뒤에서 소희를 품에 꼭 껴안았다. 그러다 소희가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자 그는 소희와 함께 소파에 쓰러져서는 소희의 턱을 잡고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소희의 두 다리를 짓누른 채 도망갈 여지도 주지 않는 임구택의 키스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고, 그대로 숨마저 빼앗겨 버린 소희는 임구택의 키스에 반응하며 공기를 조금씩 마시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너무 오랜만에 품에 안아보는 소희를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주시하고 있는 임구택의 눈빛은 점점 뜨거워졌고, 결국 소희를 들어 안아 침실로 걸어갔다.커튼이 자동적으로 닫치면서 방안은 순간 어둠 속에 빠졌다.그리고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 두 사람의 거친 숨 소리는 서로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전해져 전율을 일으켰다.……임구택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끝도 없이 소희에게 그를 사랑한
“그래서 당신은?”임구택이 다시 한번 물었다.하지만 한참 기다려도 소희가 대답을 하지 않자 임구택이 순간 또 언짢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그게 그렇게 오래 생각할 일이야?”“아니, 내 답은 당신과 같아.”조느라 제때에 대답하지 못했던 소희는 화가 묻은 임구택의 어투에 그제야 눈을 반쯤 뜨고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임구택이 듣더니 바로 소희의 몸을 뒤집어 자신을 향하게 했다. 그러고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은 채 소희의 두 눈을 주시하며 진지하게 말했다.“당신이 심명에게 진 신세는 내가 대신 갚아 줄게. 하지만 나에게 속해야 하는 건 심명에게 털끝만큼이라도 나눠줘서는 안 돼.”“구택 씨……. 그동안 나랑 헤어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헤어지고 싶었던 적?”소희의 물음을 되뇌는 임구택의 입가에는 한기가 묻어 있었다.“당신 설마 날 포기할 생각이 있었던 거야?”“지금 내가 당신한테 묻고 있잖아.”“아니, 한 번도 없었어.”임구택의 눈빛은 진지하면서도 확고했다.그러면서 그는 소희의 얼굴에 살짝 입을 맞추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사실 당신을 찾아오지 않는 건 당신을 일부러 무시한 것도, 포기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야, 단지 당신이 나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어. 설마 아직도 당신에 대한 나의 진심을 의심하고 있는 거야?”“구택 씨,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상대방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게 되었어?”소희가 임구택의 품에 기대어 소리 없이 한숨을 쉬며 물었고, 임구택이 듣더니 묵묵히 소희를 더 꼭 껴안았다.“우리가 상대방을 너무 아껴서 그렇게 많은 문제들이 생겼던 거야.”임구택이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소희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한번 맞추고는 낮은 소리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앞으로 우리 다시는 헤어지자는 말도 하지 말고, 냉전도 하지 말고, 서로의 마음에 상처 주는 말도 하지 말자.”“응.”“소희야.”부드러운 입맞춤은 다시 뜨거운 키스로 변해가고 있었다.이에 소희가 놀라 숨을 들이마시며 임구택을
“중요한 일.”[그래요. 그럼 내일 꼭 일찍 돌아와야 해요, 소희 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시름이 놓이지 않았는지 임유민이 재차 당부했다.그리고 임유민의 진심이 느껴진 임구택이 덤덤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알았어, 끊을 게.”통화가 끝난 후, 임구택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침실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침대 옆에 앉아 두 팔을 소희의 몸 양쪽에 지탱한 채 맑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소희를 쳐다보며 물었다.“오늘 나한테 사과하려고 내 방에 찾아 갔었어?”“유민이가 한 말도 믿어?”“응, 난 유민이를 믿어.”소희가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던 임구택은 덤덤하게 웃으며 침대에 올라 앉아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자, 말해봐. 어떻게 사과하려고 했어?”“…….”소희가 순간 난감한 표정을 드러내며 이불을 끌어올려 얼굴을 가렸다.“나 더 잘래, 방해하지 마.”그대로 소희를 자게 놔둘 리가 없었던 임구택은 바로 소희의 이불을 잡아당기고, 몸을 숙여 그녀의 귓불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다소 유감스러운 말투로 소희를 향해 말했다.“하루만 더 버틸 걸, 그러면 당신이 나한테 사과하는 걸 볼 수 있었을 텐데.”임구택이 말할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숨결은 소희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찌릿찌릿하게 온몸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이에 소희가 조용히 얼굴을 옆으로 피하고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꿈 꾸지 마.”“나 지금 정말로 꿈 꾸는 것 같아.”임구택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희의 얼굴에 다시 입술을 맞추었다. 그러다 소희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임구택의 입술은 점점 아래로 향했고, 호흡도 다시 거칠어지기 시작했다.곧 벌어질 일을 예상한 소희는 급히 두 손으로 임구택의 어깨를 밀었다.“나 배고파.”“그래, 먼저 밥 먹으러 가자.”확실히 많이 늦은 시간이라 임구택은 욕정이 채 식지 않은 두 눈으로 소희를 뜨겁게 쳐다보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소희가 입고 온 셔츠의 단추는 임구택의 거친 동작 때문에 두개나 떨어져 나가
“서프라이즈 확실해?”“왜, 아니야?”소희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묻자 임구택이 발걸음을 멈추고 소희를 벽에 밀쳤다. 그러고는 미지근한 눈빛으로 소희를 쳐다보며 되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나를 본 순간 흥분되어 펄쩍펄쩍 뛰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어?”“만약 내가 진작에 이 집의 주인이 당신이라는 걸 알아차렸다면, 믿을 거야?”“어떻게 알아차렸는데?”“커피. 첫째, 지니가 마술사도 아니고 어떻게 정말로 커피를 만들어낼 수 있겠어? 그래서 그때 난 이미 집에 사람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지. 그리고 둘째, 커피에 넣은 우유와 설탕은 전부 내 입맛에 따라 추가되었어. 내 입맛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당신 말고 또 누가 있을 것 같아?”임구택이 듣더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이미 나라는 걸 알아맞혔으면서 왜 문을 두드려 확인하지 않았어?”“당신이 아직도 화 나 있을까 봐.”“자기야, 난 영원히 당신한테 화를 내지 않아. 화를 낸다고 해도 나 자신한테 화를 내겠지, 한계를 잃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나 자신한테. 아니면 심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당신한테 접근할 수 있어 화를 낸다거나. 아무튼 당신한테는 절대 화를 내지 않을 거야.”임구택의 눈빛은 대답처럼 다소 진지했고, 그 진지함에 마음속 깊은 곳이 뭉클거린 소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구택 씨, 앞으로 우리 다시는 싸우지 말자.”“싸워도 괜찮아, 오늘처럼 풀어나가면 되니까.”임구택이 나지막하게 웃으며 소희의 눈가에 가볍게 입술을 맞추었다. 그러다 입술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깜짝 놀란 소희는 바로 고개를 숙여 임구택의 품에 안겼다.“어서 밥 먹으러 가자, 나 진짜 너무 배고파.”임구택은 어쩔 수 없이 타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소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뭘 먹고 싶어? 남월정에 갈까?”“좋아!”주인 아줌마가 끓여줬던 밀크 티를 생각하니 소희는 더욱 배가 고파진 느낌이 들어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남월정으로 가는 길에 소희는 청아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싫어, 그냥 각자 살자. 난 지금 이대로가 좋아.”소희가 고개를 저으며 바로 거절했다. 그리고 소희의 확고한 대답에 임구택이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어차피 한 침대에서 잘 건데, 뭐 하러 왔다갔다해?”“누가 당신이랑 한 침대에서 잔대? 나 돌아가서 잘 거야.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난 이만 내 집으로 가야겠다. 잘 자.”소희가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러자 임구택이 소파에 기댄 채 차가운 빛이 도는 눈동자로 소희를 쳐다보며 경고했다.“한 발작만 더 움직여 봐.”“움직이면 뭐 어쩔 건데?”임구택의 경고에 쉽게 쫄 리가 없었던 소희는 교활함이 묻은 눈빛으로 임구택을 향해 말하고는 바로 몸을 돌려 신속하게 문 쪽으로 달려갔다.하지만 현관문은 열리자마자 어느새 쫓아온 임구택에 의해 다시 굳게 닫혀버렸고, 임구택이 바로 소희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임구택의 뜻을 거스른 대가는 무서웠다.그렇게 임구택의 뜨거운 키스 속에서 의식이 점점 혼돈해질 무렵, 소희는 문득 임구택이 일부러 자신한테 복수하고 있는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그동안 한 번도 그를 찾아 해석하려 하지 않아서.……이튿날 아침, 외출하기 전 소희가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임구택을 향해 물었다.“어제 그 약, 더 있어?”임구택이 듣더니 고개를 들어 소희를 쳐다보았다.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까만 눈동자에는 아무런 정서도 담기지 않았다.“한달에 두 번만 먹으면 돼.”이에 소희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문을 열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임씨네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2층에서 헤어지기 전에 임구택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당신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을 게.”“그래, 내가 갈때까지 천천히 기다리고 있어.”“…….”소희의 대답에는 다른 뜻이 담겨 있는 듯했고, 그걸 눈치챈 임구택이 바로 소희의 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그럼 내가 사과할 게, 아무튼 당신 꼭 내 방으로 올라와야 해.”소희는 하인이 보기라도 할까 봐
하지만 소희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네 둘째 삼촌보고 시험지를 찍어 네 부모님에게 보내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뭘 더 어떻게 잘 말해야 하는 건데? 설마 네 둘째 삼촌이 이렇게 쉬운 일도 거절하겠어?”‘뭐야,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어제와 달라진 소희의 태도에 임유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둘째 삼촌이 지금 쌤한테 화 나 있다는 걸 쌤이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다 둘째 삼촌이 만약 쌤을 무시하면 어쩌려고?”“무시하면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지.”“쌤, 우리 둘째 삼촌이 겉은 차가워 보여도 사실 마음은 또 엄청 약해. 쌤이 듣기 좋은 말로 잘 달래기만 하면 틀림없이 쌤을 용서해 줄 거라고.”“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용서를 구해야 하는 거야?”“둘째 삼촌의 도도함은 타고났으니까! 우리 할아버지랑 말다툼이 났어도 먼저 사과해본 적이 없어!”임유민의 대답에 소희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그래?”“그래! 그러니까 쌤이 먼저 져줘.”임유민이 간절한 표정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임유민의 모습에 소희는 차마 그를 놀릴 수가 없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노력해볼 게.”“역시 쌤은 우리 둘째 삼촌보다 아량이 훨씬 더 넓다니까. 쌤 같은 쌤을 만난 게 나의 영광이야!”임유민의 아부에 소희가 웃으며 말했다.“그럼 갔다 올 게.”“응, 힘내!”임유민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진지한 표정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에 소희는 웃음이 담방이라도 새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바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그러다 3층에 도착한 후, 입꼬리가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간 소희는 임구택의 방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그런데 의외로 문은 바로 열렸고, 임구택이 그윽하게 소희를 쳐다보며 미소를 드러냈다.“선생님이셨네요, 무슨 일이시죠?”“유민이의 성적에 대해 드릴 얘기가 있어서요.”소희가 진지한 표정으로 용건을 제기했고, 임구택이 순순히 방문을 열었다.“들어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