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룸에서 카드 놀이를 하고 있던 조백림은 연속 몇 판을 이겨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반대로 오진수 등은 연이어 우는 소리를 내며 불만을 토했다.그런데 이때 마침 웨이터가 술 가져다주러 들어왔고, 조백림이 웨이터를 향해 분부했다.“90년 산 강제로 두 병 가져다줘요, 내 이름으로 적고.”오진수 등은 그제야 싱글벙글 웃는 얼굴을 드러냈다.“역시 백림이 제일 통이 크다니까.”그렇게 몇 사람이 웃고 떠들며 카드 놀이를 다시 시작하는데, 한 웨이터가 술을 들고 와서는 허리를 반쯤 구부리고 부드럽게 웃으며 조백림을 향해 말했다.“고객님, 고객님이 분부하셨던 90년 산 강제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죠.”이에 조백림이 고개를 돌려 예쁘게 웃고 있는 웨이터를 쳐다보았다.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그리고 조백림의 시선에 이선이 부끄러운 척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애교가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백림 씨 저 기억 안 나세요? 저 이선이잖아요.”조백림은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는 표정을 드러냈다.‘유정의 연적.’사실 이선은 물론이고, 조백림은 유정마저 여러 날 째 보지 못했다.“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조백림이 맑은 눈동자에 웃음을 머금은 채 이선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이선이 일부러 고개를 갸웃거리며 깜찍한 말투로 대답했다.“저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밤 타임만.”“그래? 정말 열심히 사네.”조백림이 덤덤하게 칭찬했다.이에 이선은 순간 얼굴이 빨개져 부끄러워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여자는 의지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잖아요. 특히 저처럼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지 못한 여자는 더더욱 노력해야 하는 거고.”“맞는 말이지.”조백림이 계속해서 오진수 등과 카드 놀이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백림 씨, 술을 지금 따라 드릴가요?”이선이 더욱 빨개진 얼굴로 조심스레 조백림의 의향을 물었고, 조백림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래, 지금 따. 내가 한잔 서비스로 줄게.”“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희 손님의 술을 마실 수 없거든요.
“당연하지. 동료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고용주와의 관계도 잘 처리해야 하는 거잖아. 예를 들어 고용주와 말다툼이 일어났을 시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방법을 강구하여 화해해야 한다 거나? 안 그러면 고용주가 일부러 골탕 먹일 수도 있으니까.”임유민 말 속의 뜻을 눈치챈 소희가 바로 냉소를 드러냈다.“설마 나와 네 둘째 삼촌을 암시하는 건 아니겠지?”“뭐야, 너무 멍청한 건 아니잖아?”“싱겁긴. 내가 정말로 멍청했으면 네 선생님이 되었겠어?”“그래서 말 돌리지 말고, 둘째 삼촌이랑 계속 이렇게 서로 안 보고 지낼 거야?”“지금은 네 둘째 삼촌이 나한테 화를 내고 있는 거야.”“그럼 쌤이 뭘 잘못해서 둘째 삼촌을 화나게 했는지 반성해야지!”임유민의 질책에 소희가 정말로 자신의 잘못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곧 분개한 표정으로 임유민을 노려보며 물었다.“그 사람이 네 둘째 삼촌이긴 하지만, 난 네 선생님이잖아. 너무 네 둘째 삼촌의 편만 드는 거 아니야?”“이번엔 쌤이 먼저 잘못했잖아! 난 공정하게 잘못이 없는 사람을 돕는 거야.”“내 잘못이라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게다가 내가 주동적으로 화해한다고 해도 네 둘째 삼촌이 날 거들떠보지도 않을 걸?”“쳇!”임유민이 죽어도 믿지 않는다는 표정을 드러냈다.“쌤이 한번 주동적으로 화해하자고 해 봐, 둘째 삼촌이 틀림없이 바로 쌤을 용서할 거야.”“시간 됐어, 그 사람 얘기는 그만하고 수업이나 하자.”임유민이 타이를수록 이상하게 더욱 갑갑해진 소희는 손을 흔들며 화제를 끝내려 했고, 이에 임유민이 냉소를 드러내며 소희를 쳐다보았다.“외면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거 아니야.”책을 펼치던 소희의 손은 임유민의 말에 잠깐 멈추었다. 하지만 소희는 결국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강의를 시작했다.그렇게 첫 수업은 무사히 끝났고, 쉬는 시간에 임유민이 가방에서 시험지 몇 장을 꺼냈다.“자.”“뭐야, 월말 평가 성적이 벌써 나왔어?”소희가 시험지를 한 번 훑어보고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네 둘째 삼촌이 바쁠 수도 있어, 그냥 방해하지 말고 수업하러나 가자.”소희가 포기하려 하자 조급해난 임유민은 바삐 앞으로 다가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둘째 삼촌! 둘째 삼촌! 소희 쌤이 볼 일이 있으시대요!”하지만 임유민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이에 임유민이 혹시나 해서 문 손잡이를 돌렸다.끼익-“쌤, 문이 열렸어!”임유민이 말하면서 바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고, 소희가 말리기엔 이미 늦었다.“둘째 삼촌!”“그만 불러, 집에 없을 거야.”소희의 말이 맞았다.방안 전체를 다 돌았지만 임구택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언제 나간 거지?”임유민이 머리를 긁적이며 또 옆방 서재로 갔다. 그러나 역시 아무도 없었다.‘뭐야, 내가 어떻게 소희 쌤을 설득했는데! 둘째 삼촌 너무 해!’벽에 기댄 채 실망한 표정으로 방안을 왔다갔다하는 임유민을 보며 소희는 지금의 자신도 실망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는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어떻게 만들어준 핑계인데, 쓰지도 못하고 낭비하게 생겼네?”소희의 말투는 덤덤했지만 임유민은 이상하게 그 속에서 실망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급히 하인을 찾아와 임구택의 행방을 물었고, 그제서야 임구택은 두 사람이 수업할 때 나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이에 소희가 바로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말했다.“체념됐지? 수업하러 가자.”“그럼 내일에 다시 한번 올라오자. 내가 둘째 삼촌보고 절대 외출하지 말라고 할 게.”“분명 볼 일이 있어 외출한 걸 거야, 그러니까 괜히 그 사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우리 일에 더는 신경 쓰지 마.”“그럼 둘이 빨리 화해나 하든가. 나도 우리 둘째 삼촌이 하루 종일 우울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쳇, 역시 네 둘째 삼촌만 걱정하고 있었어.”“쌤도 당연히 걱정하고 있지.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쌤도 지금 기분이 안 좋잖아.”임유민의 말에 소희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흰색과 회색이 메인 컬러로 인테리어가 된 집은 단조로우면서도 또 의외로 고급져 보였다.소희가 사는 집과 대체로 같은 구조인 집.소희는 현관을 지나 바로 거실로 들어섰다.바닥에는 옅은 회색의 카펫이 깔려 있었고, 그 위를 걷고 있으니 발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거실에 들어선 소희는 한눈에 베란다에 서서 자신을 등진 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게 되었다.검은색 셔츠에 검은색 양복바지 차림을 하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은 남다른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검은색 옷차림을 한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는데.’가뜩이나 평소에도 차갑고 냉담한 기질을 풍기고 있던 사람이 검은색 옷차림을 하고 있으니 왠지 더욱 차가워 보였다.한참 후, 통화가 끝난 남자가 휴대폰을 거두고 천천히 몸을 돌려 소희를 쳐다보았다.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만 남자의 눈동자는 그렇게 그윽하게 소희를 주시하고 있었다.그리고 그러는 남자를 똑같이 주시하고 있던 소희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억울함이 밀려와 순간 눈시울이 빨개졌고, 눈물이 흘러나오기 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이에 임구택이 바로 성큼성큼 쫓아가 뒤에서 소희를 품에 꼭 껴안았다. 그러다 소희가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자 그는 소희와 함께 소파에 쓰러져서는 소희의 턱을 잡고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소희의 두 다리를 짓누른 채 도망갈 여지도 주지 않는 임구택의 키스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고, 그대로 숨마저 빼앗겨 버린 소희는 임구택의 키스에 반응하며 공기를 조금씩 마시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너무 오랜만에 품에 안아보는 소희를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주시하고 있는 임구택의 눈빛은 점점 뜨거워졌고, 결국 소희를 들어 안아 침실로 걸어갔다.커튼이 자동적으로 닫치면서 방안은 순간 어둠 속에 빠졌다.그리고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 두 사람의 거친 숨 소리는 서로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전해져 전율을 일으켰다.……임구택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끝도 없이 소희에게 그를 사랑한
“그래서 당신은?”임구택이 다시 한번 물었다.하지만 한참 기다려도 소희가 대답을 하지 않자 임구택이 순간 또 언짢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그게 그렇게 오래 생각할 일이야?”“아니, 내 답은 당신과 같아.”조느라 제때에 대답하지 못했던 소희는 화가 묻은 임구택의 어투에 그제야 눈을 반쯤 뜨고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임구택이 듣더니 바로 소희의 몸을 뒤집어 자신을 향하게 했다. 그러고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은 채 소희의 두 눈을 주시하며 진지하게 말했다.“당신이 심명에게 진 신세는 내가 대신 갚아 줄게. 하지만 나에게 속해야 하는 건 심명에게 털끝만큼이라도 나눠줘서는 안 돼.”“구택 씨……. 그동안 나랑 헤어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헤어지고 싶었던 적?”소희의 물음을 되뇌는 임구택의 입가에는 한기가 묻어 있었다.“당신 설마 날 포기할 생각이 있었던 거야?”“지금 내가 당신한테 묻고 있잖아.”“아니, 한 번도 없었어.”임구택의 눈빛은 진지하면서도 확고했다.그러면서 그는 소희의 얼굴에 살짝 입을 맞추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사실 당신을 찾아오지 않는 건 당신을 일부러 무시한 것도, 포기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야, 단지 당신이 나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어. 설마 아직도 당신에 대한 나의 진심을 의심하고 있는 거야?”“구택 씨,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상대방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게 되었어?”소희가 임구택의 품에 기대어 소리 없이 한숨을 쉬며 물었고, 임구택이 듣더니 묵묵히 소희를 더 꼭 껴안았다.“우리가 상대방을 너무 아껴서 그렇게 많은 문제들이 생겼던 거야.”임구택이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소희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한번 맞추고는 낮은 소리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앞으로 우리 다시는 헤어지자는 말도 하지 말고, 냉전도 하지 말고, 서로의 마음에 상처 주는 말도 하지 말자.”“응.”“소희야.”부드러운 입맞춤은 다시 뜨거운 키스로 변해가고 있었다.이에 소희가 놀라 숨을 들이마시며 임구택을
“중요한 일.”[그래요. 그럼 내일 꼭 일찍 돌아와야 해요, 소희 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시름이 놓이지 않았는지 임유민이 재차 당부했다.그리고 임유민의 진심이 느껴진 임구택이 덤덤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알았어, 끊을 게.”통화가 끝난 후, 임구택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침실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침대 옆에 앉아 두 팔을 소희의 몸 양쪽에 지탱한 채 맑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소희를 쳐다보며 물었다.“오늘 나한테 사과하려고 내 방에 찾아 갔었어?”“유민이가 한 말도 믿어?”“응, 난 유민이를 믿어.”소희가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던 임구택은 덤덤하게 웃으며 침대에 올라 앉아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자, 말해봐. 어떻게 사과하려고 했어?”“…….”소희가 순간 난감한 표정을 드러내며 이불을 끌어올려 얼굴을 가렸다.“나 더 잘래, 방해하지 마.”그대로 소희를 자게 놔둘 리가 없었던 임구택은 바로 소희의 이불을 잡아당기고, 몸을 숙여 그녀의 귓불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다소 유감스러운 말투로 소희를 향해 말했다.“하루만 더 버틸 걸, 그러면 당신이 나한테 사과하는 걸 볼 수 있었을 텐데.”임구택이 말할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숨결은 소희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찌릿찌릿하게 온몸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이에 소희가 조용히 얼굴을 옆으로 피하고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꿈 꾸지 마.”“나 지금 정말로 꿈 꾸는 것 같아.”임구택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희의 얼굴에 다시 입술을 맞추었다. 그러다 소희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임구택의 입술은 점점 아래로 향했고, 호흡도 다시 거칠어지기 시작했다.곧 벌어질 일을 예상한 소희는 급히 두 손으로 임구택의 어깨를 밀었다.“나 배고파.”“그래, 먼저 밥 먹으러 가자.”확실히 많이 늦은 시간이라 임구택은 욕정이 채 식지 않은 두 눈으로 소희를 뜨겁게 쳐다보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소희가 입고 온 셔츠의 단추는 임구택의 거친 동작 때문에 두개나 떨어져 나가
“서프라이즈 확실해?”“왜, 아니야?”소희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묻자 임구택이 발걸음을 멈추고 소희를 벽에 밀쳤다. 그러고는 미지근한 눈빛으로 소희를 쳐다보며 되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나를 본 순간 흥분되어 펄쩍펄쩍 뛰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어?”“만약 내가 진작에 이 집의 주인이 당신이라는 걸 알아차렸다면, 믿을 거야?”“어떻게 알아차렸는데?”“커피. 첫째, 지니가 마술사도 아니고 어떻게 정말로 커피를 만들어낼 수 있겠어? 그래서 그때 난 이미 집에 사람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지. 그리고 둘째, 커피에 넣은 우유와 설탕은 전부 내 입맛에 따라 추가되었어. 내 입맛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당신 말고 또 누가 있을 것 같아?”임구택이 듣더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이미 나라는 걸 알아맞혔으면서 왜 문을 두드려 확인하지 않았어?”“당신이 아직도 화 나 있을까 봐.”“자기야, 난 영원히 당신한테 화를 내지 않아. 화를 낸다고 해도 나 자신한테 화를 내겠지, 한계를 잃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나 자신한테. 아니면 심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당신한테 접근할 수 있어 화를 낸다거나. 아무튼 당신한테는 절대 화를 내지 않을 거야.”임구택의 눈빛은 대답처럼 다소 진지했고, 그 진지함에 마음속 깊은 곳이 뭉클거린 소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구택 씨, 앞으로 우리 다시는 싸우지 말자.”“싸워도 괜찮아, 오늘처럼 풀어나가면 되니까.”임구택이 나지막하게 웃으며 소희의 눈가에 가볍게 입술을 맞추었다. 그러다 입술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깜짝 놀란 소희는 바로 고개를 숙여 임구택의 품에 안겼다.“어서 밥 먹으러 가자, 나 진짜 너무 배고파.”임구택은 어쩔 수 없이 타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소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뭘 먹고 싶어? 남월정에 갈까?”“좋아!”주인 아줌마가 끓여줬던 밀크 티를 생각하니 소희는 더욱 배가 고파진 느낌이 들어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남월정으로 가는 길에 소희는 청아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싫어, 그냥 각자 살자. 난 지금 이대로가 좋아.”소희가 고개를 저으며 바로 거절했다. 그리고 소희의 확고한 대답에 임구택이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어차피 한 침대에서 잘 건데, 뭐 하러 왔다갔다해?”“누가 당신이랑 한 침대에서 잔대? 나 돌아가서 잘 거야.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난 이만 내 집으로 가야겠다. 잘 자.”소희가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러자 임구택이 소파에 기댄 채 차가운 빛이 도는 눈동자로 소희를 쳐다보며 경고했다.“한 발작만 더 움직여 봐.”“움직이면 뭐 어쩔 건데?”임구택의 경고에 쉽게 쫄 리가 없었던 소희는 교활함이 묻은 눈빛으로 임구택을 향해 말하고는 바로 몸을 돌려 신속하게 문 쪽으로 달려갔다.하지만 현관문은 열리자마자 어느새 쫓아온 임구택에 의해 다시 굳게 닫혀버렸고, 임구택이 바로 소희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임구택의 뜻을 거스른 대가는 무서웠다.그렇게 임구택의 뜨거운 키스 속에서 의식이 점점 혼돈해질 무렵, 소희는 문득 임구택이 일부러 자신한테 복수하고 있는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그동안 한 번도 그를 찾아 해석하려 하지 않아서.……이튿날 아침, 외출하기 전 소희가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임구택을 향해 물었다.“어제 그 약, 더 있어?”임구택이 듣더니 고개를 들어 소희를 쳐다보았다.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까만 눈동자에는 아무런 정서도 담기지 않았다.“한달에 두 번만 먹으면 돼.”이에 소희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문을 열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임씨네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2층에서 헤어지기 전에 임구택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당신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을 게.”“그래, 내가 갈때까지 천천히 기다리고 있어.”“…….”소희의 대답에는 다른 뜻이 담겨 있는 듯했고, 그걸 눈치챈 임구택이 바로 소희의 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그럼 내가 사과할 게, 아무튼 당신 꼭 내 방으로 올라와야 해.”소희는 하인이 보기라도 할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