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순간 목이 메어왔다.그리고 그러는 소희의 표정을 보며 심명이 낮은 소리로 소희를 향해 말했다.“그럼 한 가지만 약속해줘.”“뭘? 말해 봐.”“조금 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절대 한마디도 하지 마.”심명이 농담 섞인 눈빛으로 소희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이에 소희가 눈썹을 올린 채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뒤쪽에서 먼저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만 하지 그래?”너무나도 귀에 익은 소리라 소희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소리 없이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나서 고개를 돌렸다.임구택이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서서 얼음장 마냥 차가워진 눈빛으로 소희를 노려보고 있었다.“디자인 원고를 그려야 한다며? 왜 여기에 있는 건데?”소희가 막 대답하려고 입을 여는데 옆에 있던 심명이 갑자기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소희의 귀가에 대고 말했다.“방금 약속한 일, 잊지 마.”이에 소희가 심명을 한번 흘겨보고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심명, 장난 그만 쳐.”소희의 두 눈에는 이미 경고의 빛이 섞여 있었지만 심명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소희의 허리를 감쌌다. 그러고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임구택을 바라보았다.“여기서 다 만나네요, 임 대표님.”임구택은 심명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전히 소희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눈동자 깊은 곳에는 노여움과 슬픔이 묻어 있었다.“오후에는 나와 키스하고, 저녁에는 또 다른 남자의 품에 앉아 있고. 소희, 너 정말 너무 대단하네. 난 단지 네가 나를 다시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한 줄 알았는데, 나와 심명 사이에서 적합한 사람을 고르고 있는 거였네? 그래서, 결정은 났어?”“당연히 나를 선택했죠. 방금 소희가 나와 참회하고 있었는 걸요, 임 대표님과 너무 가까이 가지 말았어야 했다면서. 심지어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어요. 그리고 난 이미 소희를 용서했고.”심명의 해맑게 웃으며 임구택 앞에서 약 올리고 있는 모습에 소희가 바로 고개를 돌려 심명을 노려보았다.너무 지나치지 말라고 경고하고
소희와 함께 차에 올라탄 후 심명은 바로 차에 시동을 걸지 않고 고개를 돌려 소희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화 났어?”“아니, 네가 즐겁게 놀았으면 됐어.”“나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야? 나 때문에 임구택을 화나게 해도 개의치 않아하는 걸 보니 네 마음 속에서 내가 임구택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네?”심명이 해맑게 웃으며 소희를 향해 물었고, 그러는 심명을 바라보며 소희가 덤덤하게 되물었다.“그만하면 안 될까?”심명이 두 손으로 소희의 어깨를 잡고 자신을 향해 돌렸다. 그러고는 소희와 두 눈을 마주진 후 작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화내지 마, 자기야. 이번이 마지막이야. 앞으로 난 아마 두 번 다시 이렇게 통쾌하게 임구택의 심기를 건드리지 못할 거야.”“너무 유치한 거 아니야?”“임구택이 우리 아빠에게 무엇을 약속했는지, 아빠가 임구택과 공모하여 나를 오주까지 보내 버렸어. 내가 이런 억울함까지 당했는데 임구택을 그냥 곱게 놔둘 리가 없잖아. 사소한 원한도 반드시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은 너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돼.”소희가 듣더니 어처구니없어 한숨을 쉬었다.“그래서 네가 이번에 돌아온 게 바로 구택 씨를 화나게 하기 위해서야?”“그럴 리가. 진짜 네가 보고싶어서 돌아온 거야. 임구택을 화나게 하는 건 겸사 겸사인 거고.”그러다 심명이 갑자기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하고 무거워진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그 녀석이 너를 그렇게 고생시켰는데, 이대로 너를 다시 그 녀석에게 돌려주자니 너무 달갑지 않았어.”“심명…….”소희는 순간 멍해졌다.‘심명이 모든 걸 눈치채고 있었어!’“네가 언젠가는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갈 거라는 걸 나도 진작 알고 있었어. 그래도 너무 빨리는 돌아가지 마. 그 녀석이 쉽게 너를 얻었다가 또 예전처럼 너를 아끼지 않고 함부로 상처를 줄까 봐 걱정이 돼.”쓸쓸함과 슬픔이 섞여 있는 심명의 두 눈을 바라보며 소희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뻐근하여 무슨 말을 해야
“걱정 마, 요요가 자주 네 얘기를 해.”심명이 듣더니 순간 기분이 좋아져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너보다는 양심이 있네.”“…….”“자, 언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한 번만 안아줘.”심명이 소희를 향해 두 팔을 뻗었다.그리고 웃음을 머금고 있는 심명의 두 눈을 바라보며 소희도 천천히 손을 내밀어 심명을 안았다.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검은색 차 안에서, 차가운 눈빛으로 꼭 껴안은 채 떨어질 줄 모르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임구택은 심장이 마치 날카로운 칼에 베이고 있는 것 마냥 아파나 숨도 잘 쉬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내가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이 장면을 봐야 하는 거지?’‘난 대체 어느 정도까지 더 비굴해져야 하는 거지?’‘이러고도 만회할 기회가 있는 건가?’‘난 분명 모든 존엄과 자부심을 내려놓고 또 모든 포악한 기운을 거둔 채 심명이 내 머리위에 올라타 시비 거는 걸 허용했고, 소희의 마음이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라고 해도 다 받아들였는데.’‘그런데 왜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소희를 잡지 못한 거지?’눈앞의 장면에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던 임구택은 심지어 자신이 퍼부었던 모든 것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었다.그러면서 그는 또 계속 안고 있는 두 사람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았다.한 사람의 마음이 도대체 어디까지 아플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한참 후, 심명이 드디어 소희를 놓아주었다.“올라가 봐. 오늘은 푹 쉬고,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응. 조심해서 가, 오주에서 몸 잘 챙기고.”“알았어.”심명이 매혹전인 웃음을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고, 차에서 내린 소희는 다시 한번 심명을 향해 손을 흔들고 나서야 천천히 주택단지로 들어갔다.그렇게 소희의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심명은 다시 고개를 돌려 백미러를 통해 뒤쪽에 세워져 있는 차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한번 드러내고 차에 시동을 걸어 경원을 떠났다.집으로 돌아온 소희는 바로 씻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이상하게 전혀 잠이
월요일소희는 시간에 맞춰 출근했고, 분장실에서 구은서를 만나게 되었다. 구은서는 사람이 적은 기회를 찾아 낮은 소리로 소희를 향해 말했다.“추소용은 이미 네가 시킨 대로 찾아왔어, 지금 제작팀에서 잡일을 도우고 있고. 하지만 내가 충고하는데, 네 동생이 도박에 손을 댄 것 같아. 전에 내가 엄청 많은 돈을 줬는데, 다 써버렸대. 너 틀림없이 추소용을 이곳으로 들여온 거에 후회할 거야.”“알았어, 충고는 고마워.”구은서의 충고에 소희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하러 갔다.그러다 정오가 다 되어 소희가 볼 일이 있어 촬영장을 찾았는데 마침 그립팀의 팀장이 큰소리로 누군가를 욕하고 있는 걸 듣게 되었다.“다들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네가 감히 구석에 처박혀 잠이나 자고 있어? 쫓겨나고 싶어?”추소용이 난처한 표정을 드러내며 구실을 찾았다.“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잤더니 졸려서요.”“졸리면 집에 돌아가 자! 여기는 제작팀이지 호텔이 아니야! 다시 한번 농땡이를 피웠다간 그 즉시로 이곳에서 나가!”“네.”추소용은 어렵게 구한 일자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감히 반박하지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너 같은 놈은 내가 수도 없이 많이 봤어. 게으르고, 교활하고, 살아지는 대로 하루하루를 살고. 기생충이랑 뭐가 다를 게 있어!”날이 무더워 화가 많이 싸였는지, 아니면 추소용에 대해 불만이 많았는지 팀장의 욕은 끝날 줄 몰랐고, 별의별 욕을 다 듣고 있는 추소용은 낯이 뜨거워져 당장이라도 쥐 굴을 찾아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다 열심히 일하겠다고 맹세하려고 고개를 드는데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서있는 소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눈빛이 순간 밝아져서는 소희를 향해 소리쳤다.“누나, 누나!”“네 누나도 여기에 있어?”팀장은 추소용의 누나가 당연히 어느 엑스트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눈썹을 올린 채 덤덤하게 고개를 돌렸고, 추소용이 가리킨 사람이 의외로 소희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놀라서 멍해졌다.제작팀에서 소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소
추소용은 임씨 저택에도 간 적이 있지만, 임씨 저택 경호원에게 놀라 두 번 다시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소희는 냉소하며 말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추소용은 따라오며 말했다.“누나, 왜 어정에 살지 않아? 임씨 집안에서 나가라고 해? 그러면 보상금이라도 뜯어냈어야지. 이렇게 차일 수는 없잖아. 그렇게 돈이 많은 집안이면 수십억, 수백원은 달라 했어야 해!”소희는 눈빛이 차가웠다.“입 닥쳐, 그렇지 않으면 쫓아낼 거야.”소혁은 어깨를 움츠리고 더는 임씨 집안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멋쩍게 추궁했다.“그러면 지금 어디에 살아? 저랑 같이 거기서 사는 게 어때. 우리 남매사이가 각별해질 수도 있잖아.”“안돼!” 소희가 거절했다.소혁은 좋은 말로 포장하면서 말했다. 소희의 강경한 태도에 소혁은 조건을 바꾸었다.“누나 집에 살 수 없다면 그럼 돈 좀 줘. 진짜 한 푼도 없어. 요 이틀 동안 길에서 노숙해서 밥도 잘 먹지 못 했어!”“내가 말했잖아, 우리는 그 어떠한 관계도 아니라고!”소희는 무심하게 그를 바라보았다.“누나, 너무 무정하게 굴지 마.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핏줄이라고는 우리 둘 뿐이잖아. 누나가 저를 상관하지 않으면 누가 저를 보살펴 줘요!”소혁은 히죽거리며 소희에게 완전히 의존했다.소희는 소혁을 보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내가 너를 보살펴 줄 사람을 찾아줄게!”“누구?”소혁이 바로 물었다.소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갔고 소혁도 따라 들어와 좌우를 살펴보았다.“누나, 대단한데. 독방도 있네.”소혁은 소희를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하긴 제작진이면 돈을 많이 벌겠지?”총총히 들어와서 소혁이 자기 집처럼 의자에 털썩 앉는 것을 보고 미나는 눈살을 찌푸렸다.“당신은 어느 부서 사람입니까? 여기 앉아서 뭐 해요?”소혁은 미나를 힐끗 쳐다보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우리 누나 부하인가?”미나는 멍해졌다.“누나?”소혁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그래요, 소희가 바
추소용은 궁금해했다.“무슨 연극?”“일단 꼭꼭 숨어, 다른 사람이 너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재미난 구경을 놓칠 거야!”소희는 또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소혁은 가는 눈이 반짝였다.“누나, 날 놀리는 거야?”소희가 말했다.“연극을 보고 나면 돈이 생길 거야!”소혁은 기뻤다.“정말로?”“그럼!”“그럼 됐어!”소혁은 몸을 서재 뒤로 피하고자 벽에 바짝 붙였다.“이렇게 하면 보이지 않겠지?”“응, 거기 있어, 절대 움직이지 마, 소리 내지 마!”“그래!” 소혁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돈만 주면 뭐든 돼!”소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연과 미나가 이미 걸어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소연은 방에 들어가 담소하며 소희를 바라보았다.“날 찾았어?”소희는 미나에게 먼저 나가라고 하며 문도 닫으라고 했다.“언니, 내가 구은서 아가씨의 옷 리스트를 달라고 한 것은 언니가 요즘 너무 피곤해 보인다고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였어. 그래서 이 감독님께 말씀드렸어. 보상이 필요 없다고 하자 이 감독이 매우 기뻐하더라고!”소연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지만, 득의양양한 눈빛은 감추지 못했다.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구은서의 패션은 앞으로 당신이 관여하도록 하세요. 하지만 저도 조건이 있어요.”소연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조건인데요?”“저는 오랫동안 부모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 며칠 집에 한 번 갔다 오려고 해요. 그때 소연씨가 제 말 좀 잘해주세요.”소희가 담담하게 말했다.책꽂이 뒤에 숨어있던 소혁은 이를 듣고 다소 궁금해했다. 그와 소희의 부모는 이미 죽었는데 어디에서 또 부모가 튀어나왔는가? 설마 소희를 입양한 양부모인가?그는 눈알을 굴리며 계속 들었다.소연의 눈빛은 경계심을 숨기고 있었다. 소연은 웃으며 말했다.“문제없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지 않는 것이 좋겠어. 어제 저택 모임에 갔는데 할아버지께서 아직도 언니가 인터넷 폭력을 당한 일을 기억하고 있더라
소씨 집안의 모든 것은 소연 혼자의 것이다!“소연, 너무 욕심내지 마. 어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해.”소희는 안색이 창백해졌다.“무슨 빚?” 소연이 물었다.소희는 책꽂이의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소혁, 나와도 돼!”책꽂이 뒤에 숨어있는 소혁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전에 소희는 줄곧 그들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면서 남매가 아니라고 했다. 소혁은 모두 소희가 자신을 간섭하기 귀찮아서 이런 말로 벗어나려 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소희가 친누나가 아니라니, 눈앞의 이 소연이가 친누나라고!’그리고 두 사람이 방금 한 대화를 들으니, 그의 친누나는 부잣집에 입양되었고, 지금은 귀한 아가씨이다!소혁은 격동되었다.그는 부자가 될 거야!소연은 책꽂이 뒤에서 나오는 소혁을 경악스럽게 바라보았다.“누구세요?”소혁도 소연을 쳐다보았다. 소연은 확실히 소혁의 친어머니를 닮았다. 소혁은 사실 부모님의 생김새가 가물가물했다. 그러나 소혁은 세 식구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꽤 닮아있었다.‘맞아, 세 식구밖에 없었다. 소혁이 두 살 때 그의 부모님이 그를 데리고 몰래 마을의 사진관에 가서 찍은 사진. 소희를 전혀 부르지 않았다.’나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소희랑 복지관으로 보내졌을 때 누군가 이 사진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따라서 이 사진을 어려서부터 몸에 지니고 다녔다.그래서 눈앞의 이 여자가 친누나가 확실하다!“누나, 나 소혁이야, 누나 친동생!” 소혁은 흥분해서 말했다.“무슨 친동생?” 소연은 충격을 넘어 당황스러웠다.“나는 너를 몰라!”“당신은 저를 모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태어나자마자 다른 사람으로 입양되었으니까요. 원래대로라면 추씨여야 합니다.”소혁은 흥분했다.“누나, 마침내 만났네요. 부모님도 만약 하늘에서 보신다면 반드시 기뻐하실 것입니다!”소연은 소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성이 구 씨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소씨 집안이 소희를 되찾았을 때 소연의 핏줄에 대해서도 조사
소연은 황급히 도망쳤다. 소혁을 멀리 피하고 싶었다. 소혁이 자신에게 매달릴까 봐 두려웠을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소연에게 소씨 집안이 아닌 가난한 집안의 딸이라고 일깨워줄 가봐 두려웠다.소연은 돌아가서 일도 하지 못하고 마민영에게 전화를 걸어 일이 있어 휴가를 내야 한다고 하면서 바삐 차를 몰고 도망쳤다.소혁은 줄곧 그녀의 차를 쫓아 멀리 달렸고 진귀한 포르쉐를 보면서 놀라움과 탐욕의 빛을 드러냈다. 소혁의 눈에는 소연은 확실히 부자였다.소연은 소혁을 따돌린 후 화가 난 상태로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소희, 너무 독하게 구는 거 아니야?”“독하다고?” 소희는 냉소했다.“소혁은 아무런 이유 없이 나온 사람이 아니야. 20년 동안 소씨 집안에서 좋은 나날들을 보낸다고 정말 자신의 출신을 잊었어?”“나에게 이런 말을 하지 마. 나는 어릴 때부터 소씨 집안에서 자랐고, 추씨 집안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소희가 말했다.“네가 관계가 없다고 해도 소용없어. 왜냐하면 너는 영원히 바꿀 수 없기 때문이야. 너와 소혁은 같은 핏줄이야. 추씨 집안의 빚, 이제 갚을 때가 되었어!”소연은 이를 갈았다.“소희, 소혁이 네가 일부러 데리고 온 사람이지? 나를 소씨 집안에서 쫒아내려고. 소씨 집안의 재산과 회사를 원해? 어림도 없지. 진원은 이미 약속했어. 소씨 집안의 돈과 부동산은 모두 내 것이라고. 한 푼도 너에게 주지 않을 것이야!”“원래 나도 원하지 않았어!”“싫은데 왜 날 그렇게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야?”소희는 말투가 냉담하다.“소연아, 탓하려면 너 자신을 탓해! 너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잖아. 내가 먼저 건드린 게 아니야. 오히려 네가 자꾸만 분란을 일으키지. 그러니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소연은 화가 났다.“왜냐하면 너의 존재는 나에게 있어서 위협이야. 내가 어디에 가든지 네가 나타나기만 하면 나는 편안하게 지낼 수 없어!”“그건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해서 그런 거야!”“소희, 너 가만 안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