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의 친구들과 똑같이 아버지의 사랑을 만끽하며 살 수 있는 권리를 요요에게서 박탈한 것 같아 죄책감뿐인 청아는 소리 없이 요요의 작은 머리통을 어루만지기만 했다.그렇게 한참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상 위에 놓여 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수신번호를 확인한 청아는 순간 저도 모르게 긴장해져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져버렸다.번호를 저장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닳도록 외워둔 번호라 받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휴대폰은 청아가 받을 때까지 계속 진동할 거라는 기세로 조용해질 줄 몰랐다.이에 청아는 숨을 한 번 깊이 들이마시고는 베란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휴대폰 맞은편에서는 거친 숨소리만 조용하게 들려왔다."여보세요?"청아가 다시 소리를 내어 묻자 맞은편의 장시원이 그제야 한번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입을 열었다.[언제 결혼한 거야?]장시원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정서도 알아낼 수 없었다.그리고 청아가 한참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장시원의 말투가 더욱 차가워졌다.[M국에 가자마자 남자친구를 사귄 거야?]청아가 눈을 아래로 드리운 채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천천히 대답했다."네."[출국하자마자 진정한 사랑을 만났어?]장시원의 말투에 묻은 조롱의 뜻은 너무 뻔했다. 청아는 M국에 도착한 후 함께 집을 맡아 살았던 룸메와 룸메 남자친구의 일이 생각나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친구 한 명 없는 타향의 땅에서 서로 의지한 거죠, 뭐."장시원이 듣더니 잠깐 멍해졌다. 그러다 다시 약간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왜 헤어진 건데?]장시원의 물음에 청아는 다시 침묵을 선택했다.이에 장시원의 숨소리가 갑자기 한 번 거칠어지더니 말투가 얼음장마냥 차가워졌다.[그 자식이 너를 버렸어? 두 사람이 낳은 아이조차도 싫다던? 우청아, 넌 어떻게 아직도 그대로인 거야? 목 위에 달린 건 장식품이야?]청아는 여전히 입을 오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러는 청아의 태도에 화가 제대로 치밀어 오른 장시원은 계속 인정사정없이
이튿날,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한 청아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자신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그리고 그 남자를 알아본 청아는 깜짝 놀라 잔뜩 긴장하여 물었다."시원 씨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장시원이 듣더니 고개를 들어 여전히 아무런 정서를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청아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어머님이 이곳에 입원하셨다고 들어서 와 본거야, 뭘 그렇게 긴장해하고 있어?"이에 허홍연도 바삐 입을 열었다."청아야, 시원 군이 좋은 마음으로 날 보러 온 건데, 어떻게 그런 태도로 말할 수 있어?"그러나 청아는 왠지 장시원이 나타난 목적이 그렇게 단순한 거 같지 않아 여전히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저희 어머니 보러 와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그쪽도 많이 바쁜 사람이니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괜찮아."장시원은 여전히 침착하고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너무 덤덤하여 허홍연도 아무런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정도였다.침대 옆 상 위에는 과일바구니와 생화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보아하니 장시원이 가져온 것인 거 같았다.병실은 2인용으로 다른 병상에도 한 소녀가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다. 두 가족은 한 병실에 오래 머물며 평소에 이야기도 자주 나누고 해서 사이가 좋은 축이었다. 그래서 소녀가 내내 호기심에 가득 차 몰래 장시원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장시원과 같은 인물은 어디에 있든 눈이 부시는 존재였으니.청아는 더 이상 장시원을 쫓아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려 허홍연에게 물었다."엄마, 제가 가서 아침을 사 올게요,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난 죽 한 그릇이면 돼.""네."청아가 대답하고는 깔끔하게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허홍연이 바삐 장시원에게 물었다."시원 군은 아침 먹었는가? 먹지 않았으면 청아더러 사 오라고 하면 되는데."허홍연의 말에 청아는 발길을 멈추고 뒤돌아 장시원을 바라보았다.마침 장시원도 고개를 들어 청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청아는 아침밥 사러 갔어요!"하 의사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허홍연의 혈압과 체온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참 후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회복이 빠르네요, 이제 3~5일만 더 있으면 퇴원해도 될 것 같아요."허홍연이 듣더니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고마워요, 하 선생!""천만에요."하 의사가 몸을 일으키고 부드럽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이따 청아 씨에게 밥 다 먹고 난 후 저한테 한 번 들르라고 전해 주세요. 새로 바꾼 약의 복용 방법도 다르거든요.""그래요!"조용하게 옆에 앉아있던 장시원이 음미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는 1호 병상으로 간 하 의사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방금 하 의사의 눈빛에는 분명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경각심이 묻어 있었다.‘저 사람도 청아를 좋아하는 건가?’한 여인을 좋아해야만 그녀 주변의 남성들에게 경각심을 품게 되는 거니까.장시원이 순간 차가운 웃음을 들어냈다.‘이제 막 귀국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남자들의 관심을 사는 실력이 또 늘었네?’하 의사가 다른 환자의 상태도 다 체크한 후 허홍연의 병상을 지나치면서 또 허홍연에게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 문어귀에 도착하자마자 마침 아침밥을 사들고 돌아온 청아와 마주치게 되었다.하 의사의 잘생긴 얼굴에는 즉시 온화한 웃음이 드러났다."얼마나 맛있는 걸 샀기에 이렇게 급하게 달려온 거죠?"청아는 허홍연이 장시원한테 너무 많은 일을 얘기할까 봐 걱정되어 황급히 돌아왔던 것이다."좋은 아침에요, 의사 선생님. 저희 엄마께서 죽을 드시고 싶다 하셔서 죽과 만두를 사 왔거든요. 참, 저희 엄마께서 이전에 엄청 좋아하셨던 떡도 사 왔는데, 드셔도 괜찮을까요?"하 의사가 떡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네, 드셔도 괜찮아요.""와, 다행이네요."청아가 듣더니 양쪽의 보조개까지 드러낸 채 웃으며 대답했다."우청아."그런데 이때, 병실에서 미적지근한 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를 듣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청아가 듣더니 고개를 들어 화가 묻은 어투로 대답했다."그렇게 저를 증오하시는데 저한테서 멀리 떨어지시죠."이에 장시원이 오히려 냉소를 지었다."아니. 한 사람을 증오한다고 해서 반드시 멀어져야 하는 건 아니야. 더욱 가까이로 다가가 그 사람을 나의 손아귀에 넣고 괴롭히면서 발버둥 치는 걸 구경하는 게 더 짜릿하고 재미있거든."청아가 어처구니없어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죠?""앞으로 내 허락 없이는 그 어떤 남자한테도 접근하지 마, 하 의사도 포함해서."장시원의 차갑고 간결한 명령에 청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그리고 그러는 청아의 모습에 장시원이 냉소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그 사람이 널 좋아한다는 걸 내가 모를 거 같았어? 2년 전의 일, 나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그러니 아무 일도 없는 사람마냥 태연자약하게 딴 남자와 연애할 생각은 죽어도 하지 마."장시원이 스스럼없이 안전유지 범위를 쳐들어오는 탓에 청아는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대답했다."괜한 걱정이네요. 전 연애할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저한테 복수하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찾아와도 괜찮아요, 제가 무얼 잘못했는지 일깨워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으니까.""너 예전에도 분명 연애하지 않을 거라고 했으면서 결국 출국하자마자 남자친구를 찾고 아이도 낳았잖아."말하고 있는 장시원의 어투에는 조롱과 노여움이 묻어 있었다."그러니 이번엔 고분고분 내 말을 듣는 게 좋을 거야, 나의 성질이 영원히 그렇게 좋은 건 아니니까."이에 청아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시고는 왠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남자의 포악한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장시원의 조롱은 계속되었다."나에게 빚진 게 있다는 걸 알면 어떻게 보상해야 할지나 잘 생각해 봐. 매번 말로만 하지 말고, 아무런 성의도 느껴지지 않으니까."말을 마친 후 장시원은 얼굴색이 창백해진 청아를 차갑게 한 번 흘겨보고는 몸을 돌려 떠났다.그리고 장시원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서야 청아는
하 의사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청아 씨, 매번 그렇게 서먹서먹한 말투로 말하지 않아도 돼요.""서먹한 게 아니라 존중하는 겁니다, 저희 어머니의 병을 치료해 주신 게 고마워서요."하 의사가 듣더니 눈썹을 찌푸리며 농담했다."존중? 나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청아 씨의 말을 듣고 나니 왠지 담방이라도 손주 돌보러 집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하 의사의 농담에 청아가 눈을 반달 모양으로 뜬 채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뜻이 아니잖아요.""봐요. 웃으니까 얼마나 예뻐요."하 의사가 따듯한 햇빛마냥 눈부신 웃음을 드러내며 청아에게 약 처방 한 장을 건네주었다."오늘부터 이모님의 약을 이것들로 바꿨어요. 어떤 건 하루에 두 번 드셔야 하고, 어떤 건 세 번 드셔야 해요. 다 여기에 상세하게 적어두었으니 이대로 가서 약을 받으면 돼요.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나에게 물어보고요.""네, 고마워요. 그럼 저 이만 약 받으러 가볼게요."청아가 웃으며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 있던 하 의사가 청아를 다시 불렀다."청아 씨.""네?""오늘 이모님 보러 온 그 남자분... 청아 씨 남자친구예요?"청아가 듣더니 동공이 순간 움츠러들었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알겠어요. 가봐요."하 의사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웃음을 드러냈고, 청아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다음날과외를 마치고 차에 올라타서야 소희는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임구택이라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하지만 소희는 뒤에 그대로 앉은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완전히 임구택을 운전기사로 취급하고 있었다.임구택도 굳이 소희에게 조수석으로 옮기라고 강요하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소희는 당연히 임구택이 가는 길이 같아 겸사겸사 경원주택단지까지 바래다주는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 가는 길이 아니었다.그래서 그제야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임구택의 뜬금없는 고백에 순간 심장 박동이 빨라진 소희는 눈시울까지 붉어져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이에 임구택이 다시 소희의 입술에 뽀뽀를 한번 하고는 야유하듯 입을 열었다."진정해. 당신은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고, 심장이 빨리 뛰는 것도 단지 분개해서라고 어서 당신 자신을 설득해.""임구택!"소희가 화난 나머지 얼굴색까지 어두워졌고, 임구택은 그제야 목적을 달성한 사람마냥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소희는 번조한 마음에 다시 고개를 창밖으로 돌려 뒤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어떻게 임구택처럼 이런 뻔뻔스러운 남자가 있을 수 있는 거지?’……조백림이 지은 생태원은 임구택과 장시원을 포함한 몇몇 친구가 같이 주주가 되는 형식으로 투자하여 만든 곳으로 강성 신안구의 부운진에 위치해 있었다. 게다가 주위에 산과 물도 있는 제일 좋은 지리위치에 자리한 그곳은 부지면적이 몇 천평으로 관광지구, 경마장, 골프장, 유원지, 호텔 등이 완벽하게 포함되어 있어 국내 제1의 생태낙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부운진은 강성 시내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있어 중도에 임구택은 소희와 함께 식당을 찾아 밥도 먹었다. 그리고 생태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오후 3시 반이었다.오늘 분명 오픈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자비로 도착한 관광객들이 엄청 많았다.임구택은 VIP 통로로 들어가 호텔 방향으로 곧장 직진했다.그리고 두 사람이 호텔에 들어서니 프런트 직원이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소희를 한 번 훑어보고는 VIP 전용 방카드를 임구택에게 건네주었다.소희가 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방 하나밖에 없어?"이에 임구택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오늘 입주한 손님이 많아 백림이 우리에게 방 하나만 남겼어. 못 믿겠으면 직원한테 물어봐."프런트 직원의 예의 바른 미소에 소희는 순간 자신의 물음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눈치챘다."가자."임구택이 소희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 타러 갔다.호텔은
임구택이 전화를 끊은 후 소희가 그의 어깨를 밀었다. 그러자 임구택이 소희의 팔을 잡아당겨 다시 그녀를 품에 안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옥상에 수영장이 있는데, 저녁에 같이 별 보러 가자."임구택의 경박한 말투에 화가 난 소희는 다리를 번쩍 들어 임구택을 걷어찼다.임구택도 눈치 빨라 즉시 뒤로 물러섰지만 결국 동작이 더 빠른 소희한테 맞았다. 그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이를 악물고 소희를 바라보았다."당신 너무 한 거 아니야? 자칫했다간 당신 남은 생은 후회하면서 보내야 한다고.""나한테 남자라고는 당신밖에 없을 것 같아?"소희가 냉소하며 임구택을 밀치고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1층 로비 다방에는 조백림과 그의 약혼녀 유정, 장시원, 장명원, 오진수,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 등이 모여 앉아있었다.다방에 도착한 소희는 단번에 오진수의 여자친구 곁에 앉은 여인을 알아보았다. 앞서 조백림의 약혼식에도 참석했었던, 장시원을 애모했던 여인이었다.이때, 장시원이 소희와 함께 나타난 임구택을 보고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소원이 이루어졌어?"소희 앞에서 감히 지나친 농담을 할 담이 없었던 임구택이 덤덤하게 대답했다."네 앞가림이나 잘해."소희가 장명원과 인사를 나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미연이는 함께 오지 않은 거예요?""네, 시합 준비하느라 요즘 엄청 바빠요. 얼굴 못 본 지도 꽤 됐어요."투정을 부리는 장명원의 대답에 소희가 웃으며 물었다."약혼 날짜는 정했어요?""마침 소희 씨에게도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이번 달 말이에요, 그때 제가 직접 청첩장을 가져다 줄게요.""그래요."소희와 장명원이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황정아가 다가와 웃으며 입을 열었다."소희 씨, 오랜만이에요. 어쩜 점점 예뻐지고 있어요?"아부가 잔뜩 묻은 황정아의 인사에 소희는 덤덤하게 웃기만 했다.그리고 황정아가 바로 옆에 있던 여인을 소희에게 소개했다."내 친구 우민율이에요."소희의 표정이 더욱 덤덤해졌다."안녕하세요."검은색 탱크톱 드레스 차림
차에 오른 후 소희가 임구택을 향해 말했다."이렇게까지 날 당신 곁에 가둘 필요는 없잖아.""당신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그러니 나로서는 당연히 같이 있을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이용하여 당신을 꼬셔야지."임구택이 소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그렇게 나와 붙어있고 싶지 않으면 날 사랑한다고 해."저녁노을이 임구택의 까만 눈동자에 비치면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소희는 심지어 그의 빛나고 있는 눈동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있었다.한참 후, 소희가 갑자기 웃었다."그 인내심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네?""두고 봐.""그래."......관광버스는 천천히 원시림으로 들어갔다.삼림 속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나무 아래 관목숲은 가지런하게 전지 되어 있어 관광객들은 언제든지 차에서 내려 깨끗한 잔디밭을 밟으며 삼림 속에서 산책할 수 있었다.높게 자란 나무들이 여름의 무더위를 가려버린 덕분에 삼림 속의 공기는 촉촉하고 신선하여 초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봐봐, 꽃사슴들이야!""기린도 있어!""와, 여기 야생마도 있네!"갑자기 뒤쪽에서 여자들의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에 소희도 숲 속을 들여다보았다.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꽃사슴들이 무리를 지어 삼림 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꽃사슴들은 버스와 사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호기심에 발길을 멈추고 그들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숲 속에는 육식 맹수는 없었고 오직 초식 동물들뿐이었다.귓가에는 온통 새들의 울음소리였고, 친근한 동물들까지 주위를 맴돌고 있어 진정으로 원시림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황정아는 기사더러 차를 멈추게 하고 다람쥐 쫓으러 갔다. 그런데 이때 알파카 한 마리가 그녀의 뒤쪽에 나타나 머리를 내밀어 그녀의 손에 있는 간식을 먹으려 했다. 이에 크게 놀란 황정아는 손에 있던 간식들을 버리고 도망을 쳤고, 그 모습에 다들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임구택이 소희에게 물었다."내려서 걸을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