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는 아침밥 사러 갔어요!"하 의사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허홍연의 혈압과 체온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참 후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회복이 빠르네요, 이제 3~5일만 더 있으면 퇴원해도 될 것 같아요."허홍연이 듣더니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고마워요, 하 선생!""천만에요."하 의사가 몸을 일으키고 부드럽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이따 청아 씨에게 밥 다 먹고 난 후 저한테 한 번 들르라고 전해 주세요. 새로 바꾼 약의 복용 방법도 다르거든요.""그래요!"조용하게 옆에 앉아있던 장시원이 음미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는 1호 병상으로 간 하 의사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방금 하 의사의 눈빛에는 분명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경각심이 묻어 있었다.‘저 사람도 청아를 좋아하는 건가?’한 여인을 좋아해야만 그녀 주변의 남성들에게 경각심을 품게 되는 거니까.장시원이 순간 차가운 웃음을 들어냈다.‘이제 막 귀국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남자들의 관심을 사는 실력이 또 늘었네?’하 의사가 다른 환자의 상태도 다 체크한 후 허홍연의 병상을 지나치면서 또 허홍연에게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 문어귀에 도착하자마자 마침 아침밥을 사들고 돌아온 청아와 마주치게 되었다.하 의사의 잘생긴 얼굴에는 즉시 온화한 웃음이 드러났다."얼마나 맛있는 걸 샀기에 이렇게 급하게 달려온 거죠?"청아는 허홍연이 장시원한테 너무 많은 일을 얘기할까 봐 걱정되어 황급히 돌아왔던 것이다."좋은 아침에요, 의사 선생님. 저희 엄마께서 죽을 드시고 싶다 하셔서 죽과 만두를 사 왔거든요. 참, 저희 엄마께서 이전에 엄청 좋아하셨던 떡도 사 왔는데, 드셔도 괜찮을까요?"하 의사가 떡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네, 드셔도 괜찮아요.""와, 다행이네요."청아가 듣더니 양쪽의 보조개까지 드러낸 채 웃으며 대답했다."우청아."그런데 이때, 병실에서 미적지근한 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를 듣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청아가 듣더니 고개를 들어 화가 묻은 어투로 대답했다."그렇게 저를 증오하시는데 저한테서 멀리 떨어지시죠."이에 장시원이 오히려 냉소를 지었다."아니. 한 사람을 증오한다고 해서 반드시 멀어져야 하는 건 아니야. 더욱 가까이로 다가가 그 사람을 나의 손아귀에 넣고 괴롭히면서 발버둥 치는 걸 구경하는 게 더 짜릿하고 재미있거든."청아가 어처구니없어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죠?""앞으로 내 허락 없이는 그 어떤 남자한테도 접근하지 마, 하 의사도 포함해서."장시원의 차갑고 간결한 명령에 청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그리고 그러는 청아의 모습에 장시원이 냉소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그 사람이 널 좋아한다는 걸 내가 모를 거 같았어? 2년 전의 일, 나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그러니 아무 일도 없는 사람마냥 태연자약하게 딴 남자와 연애할 생각은 죽어도 하지 마."장시원이 스스럼없이 안전유지 범위를 쳐들어오는 탓에 청아는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대답했다."괜한 걱정이네요. 전 연애할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저한테 복수하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찾아와도 괜찮아요, 제가 무얼 잘못했는지 일깨워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으니까.""너 예전에도 분명 연애하지 않을 거라고 했으면서 결국 출국하자마자 남자친구를 찾고 아이도 낳았잖아."말하고 있는 장시원의 어투에는 조롱과 노여움이 묻어 있었다."그러니 이번엔 고분고분 내 말을 듣는 게 좋을 거야, 나의 성질이 영원히 그렇게 좋은 건 아니니까."이에 청아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시고는 왠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남자의 포악한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장시원의 조롱은 계속되었다."나에게 빚진 게 있다는 걸 알면 어떻게 보상해야 할지나 잘 생각해 봐. 매번 말로만 하지 말고, 아무런 성의도 느껴지지 않으니까."말을 마친 후 장시원은 얼굴색이 창백해진 청아를 차갑게 한 번 흘겨보고는 몸을 돌려 떠났다.그리고 장시원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서야 청아는
하 의사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청아 씨, 매번 그렇게 서먹서먹한 말투로 말하지 않아도 돼요.""서먹한 게 아니라 존중하는 겁니다, 저희 어머니의 병을 치료해 주신 게 고마워서요."하 의사가 듣더니 눈썹을 찌푸리며 농담했다."존중? 나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청아 씨의 말을 듣고 나니 왠지 담방이라도 손주 돌보러 집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하 의사의 농담에 청아가 눈을 반달 모양으로 뜬 채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뜻이 아니잖아요.""봐요. 웃으니까 얼마나 예뻐요."하 의사가 따듯한 햇빛마냥 눈부신 웃음을 드러내며 청아에게 약 처방 한 장을 건네주었다."오늘부터 이모님의 약을 이것들로 바꿨어요. 어떤 건 하루에 두 번 드셔야 하고, 어떤 건 세 번 드셔야 해요. 다 여기에 상세하게 적어두었으니 이대로 가서 약을 받으면 돼요.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나에게 물어보고요.""네, 고마워요. 그럼 저 이만 약 받으러 가볼게요."청아가 웃으며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 있던 하 의사가 청아를 다시 불렀다."청아 씨.""네?""오늘 이모님 보러 온 그 남자분... 청아 씨 남자친구예요?"청아가 듣더니 동공이 순간 움츠러들었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알겠어요. 가봐요."하 의사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웃음을 드러냈고, 청아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다음날과외를 마치고 차에 올라타서야 소희는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임구택이라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하지만 소희는 뒤에 그대로 앉은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완전히 임구택을 운전기사로 취급하고 있었다.임구택도 굳이 소희에게 조수석으로 옮기라고 강요하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소희는 당연히 임구택이 가는 길이 같아 겸사겸사 경원주택단지까지 바래다주는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 가는 길이 아니었다.그래서 그제야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임구택의 뜬금없는 고백에 순간 심장 박동이 빨라진 소희는 눈시울까지 붉어져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이에 임구택이 다시 소희의 입술에 뽀뽀를 한번 하고는 야유하듯 입을 열었다."진정해. 당신은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고, 심장이 빨리 뛰는 것도 단지 분개해서라고 어서 당신 자신을 설득해.""임구택!"소희가 화난 나머지 얼굴색까지 어두워졌고, 임구택은 그제야 목적을 달성한 사람마냥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소희는 번조한 마음에 다시 고개를 창밖으로 돌려 뒤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어떻게 임구택처럼 이런 뻔뻔스러운 남자가 있을 수 있는 거지?’……조백림이 지은 생태원은 임구택과 장시원을 포함한 몇몇 친구가 같이 주주가 되는 형식으로 투자하여 만든 곳으로 강성 신안구의 부운진에 위치해 있었다. 게다가 주위에 산과 물도 있는 제일 좋은 지리위치에 자리한 그곳은 부지면적이 몇 천평으로 관광지구, 경마장, 골프장, 유원지, 호텔 등이 완벽하게 포함되어 있어 국내 제1의 생태낙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부운진은 강성 시내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있어 중도에 임구택은 소희와 함께 식당을 찾아 밥도 먹었다. 그리고 생태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오후 3시 반이었다.오늘 분명 오픈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자비로 도착한 관광객들이 엄청 많았다.임구택은 VIP 통로로 들어가 호텔 방향으로 곧장 직진했다.그리고 두 사람이 호텔에 들어서니 프런트 직원이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소희를 한 번 훑어보고는 VIP 전용 방카드를 임구택에게 건네주었다.소희가 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방 하나밖에 없어?"이에 임구택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오늘 입주한 손님이 많아 백림이 우리에게 방 하나만 남겼어. 못 믿겠으면 직원한테 물어봐."프런트 직원의 예의 바른 미소에 소희는 순간 자신의 물음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눈치챘다."가자."임구택이 소희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 타러 갔다.호텔은
임구택이 전화를 끊은 후 소희가 그의 어깨를 밀었다. 그러자 임구택이 소희의 팔을 잡아당겨 다시 그녀를 품에 안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옥상에 수영장이 있는데, 저녁에 같이 별 보러 가자."임구택의 경박한 말투에 화가 난 소희는 다리를 번쩍 들어 임구택을 걷어찼다.임구택도 눈치 빨라 즉시 뒤로 물러섰지만 결국 동작이 더 빠른 소희한테 맞았다. 그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이를 악물고 소희를 바라보았다."당신 너무 한 거 아니야? 자칫했다간 당신 남은 생은 후회하면서 보내야 한다고.""나한테 남자라고는 당신밖에 없을 것 같아?"소희가 냉소하며 임구택을 밀치고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1층 로비 다방에는 조백림과 그의 약혼녀 유정, 장시원, 장명원, 오진수,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 등이 모여 앉아있었다.다방에 도착한 소희는 단번에 오진수의 여자친구 곁에 앉은 여인을 알아보았다. 앞서 조백림의 약혼식에도 참석했었던, 장시원을 애모했던 여인이었다.이때, 장시원이 소희와 함께 나타난 임구택을 보고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소원이 이루어졌어?"소희 앞에서 감히 지나친 농담을 할 담이 없었던 임구택이 덤덤하게 대답했다."네 앞가림이나 잘해."소희가 장명원과 인사를 나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미연이는 함께 오지 않은 거예요?""네, 시합 준비하느라 요즘 엄청 바빠요. 얼굴 못 본 지도 꽤 됐어요."투정을 부리는 장명원의 대답에 소희가 웃으며 물었다."약혼 날짜는 정했어요?""마침 소희 씨에게도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이번 달 말이에요, 그때 제가 직접 청첩장을 가져다 줄게요.""그래요."소희와 장명원이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황정아가 다가와 웃으며 입을 열었다."소희 씨, 오랜만이에요. 어쩜 점점 예뻐지고 있어요?"아부가 잔뜩 묻은 황정아의 인사에 소희는 덤덤하게 웃기만 했다.그리고 황정아가 바로 옆에 있던 여인을 소희에게 소개했다."내 친구 우민율이에요."소희의 표정이 더욱 덤덤해졌다."안녕하세요."검은색 탱크톱 드레스 차림
차에 오른 후 소희가 임구택을 향해 말했다."이렇게까지 날 당신 곁에 가둘 필요는 없잖아.""당신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그러니 나로서는 당연히 같이 있을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이용하여 당신을 꼬셔야지."임구택이 소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그렇게 나와 붙어있고 싶지 않으면 날 사랑한다고 해."저녁노을이 임구택의 까만 눈동자에 비치면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소희는 심지어 그의 빛나고 있는 눈동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있었다.한참 후, 소희가 갑자기 웃었다."그 인내심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네?""두고 봐.""그래."......관광버스는 천천히 원시림으로 들어갔다.삼림 속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나무 아래 관목숲은 가지런하게 전지 되어 있어 관광객들은 언제든지 차에서 내려 깨끗한 잔디밭을 밟으며 삼림 속에서 산책할 수 있었다.높게 자란 나무들이 여름의 무더위를 가려버린 덕분에 삼림 속의 공기는 촉촉하고 신선하여 초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봐봐, 꽃사슴들이야!""기린도 있어!""와, 여기 야생마도 있네!"갑자기 뒤쪽에서 여자들의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에 소희도 숲 속을 들여다보았다.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꽃사슴들이 무리를 지어 삼림 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꽃사슴들은 버스와 사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호기심에 발길을 멈추고 그들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숲 속에는 육식 맹수는 없었고 오직 초식 동물들뿐이었다.귓가에는 온통 새들의 울음소리였고, 친근한 동물들까지 주위를 맴돌고 있어 진정으로 원시림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황정아는 기사더러 차를 멈추게 하고 다람쥐 쫓으러 갔다. 그런데 이때 알파카 한 마리가 그녀의 뒤쪽에 나타나 머리를 내밀어 그녀의 손에 있는 간식을 먹으려 했다. 이에 크게 놀란 황정아는 손에 있던 간식들을 버리고 도망을 쳤고, 그 모습에 다들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임구택이 소희에게 물었다."내려서 걸을래?"소
차에서 내린 후 유정이 소희한테로 다가가 웃으며 제의했다."저쪽에 뷔페 코너도 있던데, 우리 바비큐 먹으러 가요!""그래요."소희가 듣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임구택도 그제야 소희의 손을 놓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가서 재밌게 놀아, 이따가 찾으러 갈게."소희는 눈을 아래로 드리운 채 임구택을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유정과 함께 떠났다."잘 되고 있는 거 같은데?"내내 멀리에서 지켜보고 있던 장시원이 소희가 떠난 후에야 천천히 걸어와 입을 열었다.이에 임구택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내뱉은 후 덤덤하게 웃으며 되물었다."왜 우청아를 데려오지 않았어?"청아의 이름이 언급되자 장시원은 순간 얼굴색이 어두워져 임구택을 흘겨보았다."우리끼리 이렇게 서로 상처를 주기 있기 없기야?""네가 먼저 시작했잖아."장시원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난 우청아와 잘 될 생각이 없어. 케이스가 다르니까 비교하지 마라.""잘 될 생각이 없는 양반이 병원에는 왜 간 거야?"임구택이 듣더니 믿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물었다.어제 그가 장시원에게 연락했을 때 장시원은 마침 병원에서 나오는 길이라고 했었고, 임구택은 순간 장시원이 청아 어머니의 병문안을 갔을 거라는 걸 눈치채게 되었다."그냥, 내키지 않아서. 사고를 치고는 도망쳤다가 2년 후에 다시 나타나 아무 일 없는 사람마냥 아주 잘 지내고 있잖아.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어?""내가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우청아한테 잘해.""우청아가 소희의 친구라, 소희가 너한테 화풀이라도 할까 봐?"임구택의 진심 어린 충고에 장시원은 오히려 콧방귀를 뀌었다.이에 임구택이 눈썹을 한 번 올리더니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내뱉으며 말을 이어갔다."마음대로 생각해. 아무튼 내 말을 기억해 두는 게 너에게도 좋다는 것만 기억해 둬."장시원이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웃을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이때 조백림이 달려와 두 사람을 불렀다."구택이 형, 시
남자도 유정을 알아보고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별로 반갑지 않아 하는 어투로 물었다."너 왜 여기 있어?"유정이 듣더니 순간 어처구니없다는 듯 냉소했다."너희들도 올 수 있는데, 나라고는 왜 못 오겠어?""당연히 올 수 있지."남자가 뜻 모를 웃음을 드러내자 곁에 있던 여인이 즉시 그의 팔을 꼭 껴안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성준 씨, 이분이 바로 유정 씨야?"성준이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맞아."그러자 여인이 유정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다시 남자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뭐야, 자기 나를 속인 거였어? 자기 분명 유정 씨가 아주 못생기고 꾸밀 줄도 모르는 시골 여인이라고 했잖아! 분명 이렇게 예쁜데도?"성준이 듣더니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예뻐? 왜 나는 여전히 예전과 똑같은 거 같지? 표정도 무뚝뚝한 게 무미건조하기만 하고."두 사람이 서로 맞장구를 치며 자신을 폄하하고 있는 모습에 유정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쓰레기 같은 인간들, 당장 꺼져!"유정이 욕설을 퍼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성준이 잠깐 놀라더니 얼굴색이 바로 어두워졌다."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죽어서도 땅이나 낭비할 쓰레기 인간들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안 그러면 제대로 본때를 보여줄 거니까."예전에는 분명 고분고분 말대꾸 한 번한 적이 없던 유정이 갑자기 자신에게 험한 욕을 퍼붓는 모습에 성준은 놀랍기도 하고 화도 나 유정을 노려보며 말했다."역시 널 차버린 게 잘 된 선택이었네. 유정, 너 딱 기다려!"유정이 듣더니 냉소했다."분명 네가 더러워서 나한테 버림을 받은 거잖아.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당장 꺼져!"화가 제대로 치밀어 오른 성준은 옆에 있는 맥주병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술병을 잡기도 전에 갑자기 손등에서 전해오는 통증 때문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왜 그래?"옆에 있던 여인이 보더니 긴장해서 물었다.이때, 소희가 손에 든 꼬챙이로 숯불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꺼져, 다음
도우미가 식사를 준비하던 중 도경수에게 다가와 말했다.“어르신, 양재아 아가씨가 방금 전화해서, 오늘 점심은 집에서 먹지 않겠다고 하셨어요.”재아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으며, 회사에서 야근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도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네.”그 순간, 이반스가 옆문으로 들어와 밝은 목소리로 강시언과 강아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연한 파란색 폴로 셔츠를 입고 있었고, 갈색 머리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 모습이었다.아심이 물었다.“이반스 씨, 강성에서 생활은 어떠세요? 잘 적응하고 계시죠?”이반스는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음식도 잘 맞고, 생활도 편해요. 그리고 도경수 선생님께서 소장하고 계신 골동품과 서화들은 정말 감탄스러웠어요.”“제가 C국에 대해 얼마나 얕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깨달았을 정도죠.”도경수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하하,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기회 되면 강씨 저택에 가봐. 거긴 정말 더 대단해. 그 집에 가야 진짜 놀랄 거야.”이반스는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정말요?”모두가 웃음을 터뜨렸고, 강재석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언제든 우리 집에 놀러 오게나.”“꼭 한번 방문할게요.”다들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으며, 분위기는 편안하고 유쾌했다.식사 중에 도도희가 아심에게 물었다.“오후에 일정 있니?”“아니요, 오늘은 쉬는 날이예요.”도도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오늘은 집에서 자고 가.”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앞으로는 계속 집에서 지낼게요.”도도희와 도경수는 놀라움과 기쁨으로 눈빛이 반짝였고, 도경수는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그래야지! 우리 가족인데 당연히 함께 살아야지.”시언은 아심을 바라보며 눈빛이 더 깊어졌다. 그녀가 자기 말을 듣고 순순히 집으로 돌아온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그러나 시언은 어딘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이 집에 머물기로 결심했을까?시언은 입가
강재석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우리 둘이 서로를 안 지가 몇 년인데. 서로 성격도 잘 알고 있으니 진짜로 화낼 일은 없어.”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사실, 이 몇 년 사이에 도경수의 성격이 아주 좋아졌어. 예전처럼 고집만 부리는 건 아니야. 특히 과거에 너랑 재희의 아버지를 갈라놓은 일을 후회하고 있어.”도도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도 요 며칠 보니 확실히 예전과 많이 달라지셨어요.”강재석은 깊은 뜻을 담아 말했다.“너희 부녀가 너무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지. 사람 인생에서 20년이 몇 번이나 있겠어. 지금은 시간을 많이 함께 보내야 해.”그 말에 도도희는 감동하며 말했다.“그럴게요. 아저씨, 그동안 우리 아버지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강재석은 따뜻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가 몇십 년 된 친구 사이인데, 고맙다는 말은 너무 멀게 들려.”도도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면 우리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강재석은 약간 화난 듯이 말했다.“그 양반, 아심이 시언을 좋아하는 거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는 거야. 내가 그 속을 모를 줄 알아?”도도희는 웃음을 터뜨릴 뻔하며 고개를 돌렸다.한편.도경수는 아심과 시언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활짝 웃으며 환영했다. 그는 연신 그녀를 걱정하며 물었다.“길 더웠지? 괜찮아?”“왜 그렇게 자주 야근해? 아직 젊으니까 건강도 챙겨야지!”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할아버지. 건강 잘 챙길게요.”그녀가 처음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자, 도경수는 순간 멈칫하며 표정이 굳었다. 이내 눈물이 차오르며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 그래!”20년 전, 어린 아심이 도경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할아버지라고 부르던 장면이 떠올랐다.그는 이 장면을 그리워하며 꿈속에서 수없이 그려왔다. 그리고 양재아가 할아버지라고 부를 때는 단지 친근한 느낌이었을 뿐이었다.하지만 아심이 그렇게
두 사람이 집을 나설 때는 이미 거의 점심시간이었다. 길을 지나던 중, 아심은 꽃집을 발견하고 시언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도도희에게 줄 꽃다발을 샀다.차로 돌아온 아심은 시언에게 물었다.“외할아버지는 어떤 걸 좋아하세요? 뭐 하나 선물 드리고 싶은데요.”시언은 태연히 대답했다.“이번에는 괜찮아. 다음에 하면 돼.”아심은 그의 말을 듣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 안은 꽃향기로 가득 찼고, 그 은은한 향기가 그녀의 마음을 더 차분하게 만들었다.집으로 간다는 사실에 이제는 약간의 기대가 생겼다. 적어도 처음 방문했을 때처럼 알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은 아니었다.도씨 저택.도경수는 아침부터 마음이 초조해진 듯 거실을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계속 마당 쪽을 내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이를 본 강재석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많이 왔다 갔다 하지 마. 그러다 어지러워 쓰러지겠어. 앉아서 좀 쉬어. 도도희가 그러지 않았나? 아심이가 조금 있다가 점심 먹으러 온다고.”도경수는 마지못해 의자에 앉았지만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네 생각엔 아심이가 정말 오긴 할까?”강재석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그 말을 그제부터 벌써 몇 번이나 물었는지 알아?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히겠어. 아심이는 바빠. 걔에게도 시간을 좀 줘.”도경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내게 서운한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강재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무슨 일로?”“내가 예전에 오해했던 일, 그리고 네 앞에서 아심에 대해 별로 좋은 말을 하지 않았던 것들 말이야.”그러나 강재석은 단호히 말했다.“아심이는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니까, 괜한 걱정 하지 마.”도경수는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그래도 아직 우리랑 조금 거리감이 있는 것 같아.”강재석은 그를 달래며 말했다.“아심이는 아직 익숙하지 않을 뿐이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가까워질 거고. 아심은 착한 아이라고 믿어.”
이에 강시언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깜빡했어.”강아심은 시언의 품에서 몸을 돌리며 눈가를 살짝 치켜올렸다. 그녀의 요염한 미소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그렇다면 앞으로는 매번 내가 이체할게요.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거든요.”시언은 반쯤 감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자기기만이 그렇게 재밌어?”아심은 시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꾸했다.“재밌죠! 그런데 당신이 그걸 들춰내면 안 재밌어지잖아요!”그 말을 마치고,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시언은 아심의 손목을 잡아 침대에 눌러두며,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요금을 받는 상황이라면, 내가 강아심 씨가 기꺼이 낼 수 있도록 만들어 드려야겠네.”아심은 고개를 들고 시언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리고 그가 방심한 틈을 타 몸을 뒤집어 위치를 바꾸었다.아심의 아름다운 얼굴은 매혹적이면서도 공격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시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힘을 주어 시언의 입술에 깊은 키스를 남겼다.시언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누가 아심이 스폰서인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갑자기 침대 옆 탁자에 놓인 휴대전화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아심은 무시하고 싶었지만, 벨 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아심은 남자를 달래듯 가볍게 입술에 키스한 뒤, 몸을 기울여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누가 주말 아침부터 전화를 걸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화면을 봤을 때, 그녀의 눈이 약간 커지고 긴장으로 휴대전화를 놓칠 뻔했다.발신자는 도도희, 아심의 엄마였다. 울리는 벨 소리는 그녀를 재촉하는 듯했고, 아심은 숨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으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엄마!”마치 어린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들킨 듯한 느낌이었다.도도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주말이라 늦잠 잤니? 아침은 먹었어?]“아니요, 좀 있다가 먹으려고요.”아심은 얌전하게 대답했다.[오늘도 혹시 야근하는 건 아니지?]도도희의 웃음 속에는 약간의 장난기가 묻어 있
강시언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최근에 내가 너의 양부모와 관련된 단서를 따라갔고, 너를 납치했던 사람을 찾아냈어.”“대략 1년 전에 체포되어 지금 감옥에 있어. 내가 사람을 보내 잘 돌봐주게 했지.”아심은 눈빛이 살짝 차가워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시언은 말을 이었다.“그리고 널 샀던 양부모도 지금 형편이 좋지 않아. 아들은 방탕한 삶을 살고,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여자 친구랑 함께 부모를 착취하고 있지.”“돈을 요구하며 부모를 때리고 욕하는 게 다반사야. 그래서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따로 손을 쓸 필요도 없었어.”아심은 담담히 말했다.“나는 그들에게 이미 마음을 비웠어요. 어차피 친부모도 아니었으니까요. 나를 사들였다가 다시 팔아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죠.”“감정도 없으니 당연히 원망도 없어요.”“원망은 내가 해!”시언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거웠다.“그 사람들이 너를 때리고 욕했던 걸 떠올리면, 지금 받는 벌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아심의 마음은 순간 간질거렸다. 마치 개미가 기어오르는 듯한, 따뜻하면서도 저릿한 감각이 가슴 끝까지 퍼졌다. 그녀는 눈가가 살짝 물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들이 나를 팔았기에 내가 당신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정말로 그들을 원망하지 않아요.”시언은 팔을 들어 아심의 어깨를 감싸며 눈을 마주쳤다. 시언의 깊고 투명한 눈동자는 점점 더 차갑고도 또렷해졌다.“그날 도경수 할아버지가 네 몸에 있는 태어나는 반점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을 때, 내가 대답하지 않았잖아. 네 생각엔 뭐라고 답해야 할까?”시언은 끝음을 살짝 끌며, 자기 목소리에 특유의 저음과 자극적인 울림을 더했다. 빗소리에 묻힌 그의 말은 그녀의 마음을 강렬히 두드렸다.이에 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있는 그대로 대답하세요. 근데, 그럴 용기 있어요?”“내가 무서워서 못 한다고 생각해?”시언은 낮고 짧게 대꾸했다. 그는 긴 손가락으로 아심의 정교한 턱을 잡아들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오븐 속 닭 날개는 이미 다 구워졌고, 끓던 국도 식어버렸다. 밖에서는 다시 비가 내리는지, 부슬부슬한 빗소리가 고요한 분위기를 더욱 차분하게 만들고 있었다.강시언은 몸을 약간 일으켜 그녀의 옷을 입혀주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뒷정리할 테니, 너는 가서 샤워해. 씻고 나오면 바로 식사할 수 있을 거야.”강아심은 나른하게 눈을 가늘게 뜨며 움직이지 않고 대꾸했다.“내가 샤워 끝낼 때쯤 당신이 음식을 다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해요?”“딱 두 가지 요리랑 국 하나야. 충분하겠어?”시언이 묻자, 아심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점심에 외할아버지가 보내주신 음식이 많이 남아서, 그거 데워서 먹으면 돼요. 음식은 낭비하면 안 되니까.”“그래.”시언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아심을 조리대에서 내려주었지만, 아심은 그의 단단한 허리를 감싸 안고 움직이지 않았다.붉게 물든 눈가로,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못 걸을 것 같아요.”이에 시언은 낮게 웃으며 아심을 다시 들어 올려 주방에서 주방의 욕실로 데려갔다....두 사람이 저녁 식사를 마쳤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되었다. 시언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아심은 발코니에 앉아 있었다.얇은 잠옷 차림의 그녀는 헝클어진 긴 머리를 어깨에 흘러내린 채 앉아 있었다. 밖에서 스며드는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아심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흩날렸고, 하얗고 가녀린 어깨가 머리카락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났다.아심은 비를 바라보며 무언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어두운 조명이 그녀의 부드럽고 가냘픈 라인을 더 강조했고, 그녀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고독한 느낌을 주었다.시언은 그녀에게 다가가 같은 자세로 바닥에 앉았다.“야근은 좋은 핑계겠지만, 도도희 아주머니랑 도경수 할아버지가 모를 리 없지. 너, 집에 가기 싫은 거잖아.”아심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시언의 깊고 투명한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이에 아심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그 말이 맞아요.
영상 속의 셰프는 유창하게 자국어를 구사하며 부드럽게 웃었다.[당신은 미스터 강의 여자 친구인가요? 참고로 지금 종료해도 보수는 환불되지 않아요.]아심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알고 있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좋아요. 그러면 이만!]셰프의 말을 끝으로 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을 종료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강시언에게 물었다.“닭 날개를 굽고 싶으신 거예요?”“너 할 줄 알아?”“이미 양념까지 다 해두셨으니, 오븐에 넣고 온도와 시간을 맞추면 끝이예요.”시언은 접시에 담아둔 닭 날개를 그녀에게 건네자, 아심은 돌아서서 접시를 오븐에 넣으며 물었다.“어떻게 갑자기 요리를 배우고 싶으셨던 거예요?”시언은 다른 재료를 고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별거 아니야. 네가 집에 돌아왔을 때 따뜻한 밥상을 느껴보라고.”그 말에 아심은 순간 멈칫하며 오븐을 멍하니 바라봤다. 몇 초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타이머를 설정했다. 아심은 돌아서며 미소를 지었다.“제가 뭐 도와줄까요?”시언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네가 내가 부른 셰프를 쫓아냈잖아. 네가 안 도우면 생닭을 먹겠다는 뜻인가?”아심은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었다. 그녀는 소매를 걷으며 도마 위에 놓인 토마토를 보며 물었다.“이건 뭐 만들려고요?”“약간의 토마토를 곁들인 소고기볶음.”아심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아직 걷는 법도 배우지 않았는데 벌써 달리려는 거예요?”시언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지?”아심은 대답 대신 말했다.“그 요리는 오래 걸려요. 배가 고프니까 그냥 토마토는 생으로 먹어요.”시언은 물었다.“생으로? 그냥 먹으라고?”“상쾌하고 맛있어요.”아심은 토마토를 반으로 자른 뒤 한 조각을 손으로 집어 시언의 입가에 내밀며 말했다.“한번 먹어보고 생토마토 맛이 어떤지 확인해 보세요.”아심은 고개를 살짝 치켜들며, 눈가가 붉어진 채 가늘게 올라간 눈꼬리와 흐르는 듯한 시선으로 무의식적인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겼다.시언은
아심은 연희가 쏟아내는 말들을 들으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기절하지 마, 그러다 네 남편이 걱정하실라.”[아심아, 내가 도경수 할아버지를 몇 년 동안 알아 왔는지 너 알아?]연희는 감탄하며 말했다.[우리가 친구였는데, 이제 넌 도경수 할아버지의 친손녀가 됐잖아!]아심은 연희의 목소리에서 그녀의 놀라움을 느낄 수 있었다.“사실 나도 정말 많이 놀랐어.”[그렇지만 정말 축하할 일이야!]연희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정말 깜짝 놀랄 만 하면서도 기쁜 소식이야!]연희는 평소 양재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재아가 도경수의 손녀가 아니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기뻤다. 그런데, 아심이 도경수의 손녀라는 사실을 들었을 땐 말 그대로 두 배의 기쁨이었다.어젯밤, 연희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노명성을 끌어안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바람에 명성은 그녀가 임신이라도 한 줄 알고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고마워.”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연희야, 나도 네가 내 친구라는 게 너무 행복해.”[이제는 친구뿐만 아니라 가족이기도 하잖아!]연희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이번 주말에 도경수 할아버지를 찾아뵈러 갈게. 축하도 드릴 겸.]“언제든지 환영해.”두 사람은 한참 더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전화를 끊었다....오후에 정아현이 다시 업무 보고를 하러 왔을 때는 이전과 달리 눈에 띄게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내내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결국 입을 열었다.“사장님, 정말 죄송해요. 저, 나쁜 의도는 없었어요. 그저 사장님이 걱정돼서 그랬던 건데, 앞으로는 다시는 미스터 강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을게요!”아심은 담담히 말했다.“그래요. 오늘은 일찍 퇴근해요. 남자 친구 생겼다면서요? 데이트하러 가요.”이에 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감사드려요, 사장님.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게요!”...아심이 퇴근할 때쯤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회사를 나설 땐 직원들마저 모두 퇴근해 그녀 혼자 남아 있었다.점심으로 받은 음
식사 중에 강시언이 물었다.“저녁에 또 약속 있어?”아심은 반쯤 내려간 눈길로 잠시 깜빡이며, 약간 죄책감을 느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요즘 정말 바빠요.”“응.” 시언은 짧게 대답한 뒤 더는 묻지 않았다.식사가 끝나고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나섰지만 각자 차를 타고 반대 방향으로 떠났다. 아심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고, 그녀는 정말 바빴다.정아현이 업무 보고를 하러 들어왔을 때, 아현은 무심코 아심에게 말했다.“내일 토요일인데, 권수영 여사님께서 댁에서 생일 파티를 연대요. 성대한 파티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꽤 많은 사람을 초대한 것 같아요.”“지승현 사장님도 아마 어머니 생일을 위해 집에 남아 있을 거고요. 어쩌면 권 여사님께서 그 자리에서 며느리를 정하려고 할지도 몰라요.”아현은 슬쩍 아심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내일 생일 파티에 누가 참석하는지 제가 알아볼까요?”아심은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약간 피곤한 듯 말했다.“아현 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와 지승현은 이미 끝났어요. 앞으로도 절대 다시 이어질 일은 없으니까, 지씨 집안 일은 신경 쓰지 마요.”“그리고 지승현 앞에서 내 얘기를 일부러 꺼내지도 마세요.”아현은 눈을 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사장님, 그런데 미스터 강이 돌아와서 사장님을 찾으신 건 맞죠?”아심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아현은 머쓱해하며 대답했다.“그날 저녁, 그분이 회사로 오시는 걸 봤거든요.”아심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사장님, 그분과 다시 만나신 건가요?”아현의 질문에 아심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보고서를 읽으며 담담히 말했다.“아니야.”이에 아현은 가볍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안 만나는 게 맞아요. 사장님,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그 사람이 갑자기 돌아와선 찾아오고, 또 떠나서는 연락도 없는 게 말이 돼요?”“사장님을 뭐로 보고 그러는 건지, 정말 어이가 없네요.”아심의 얼굴은 갑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