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유정을 알아보고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별로 반갑지 않아 하는 어투로 물었다."너 왜 여기 있어?"유정이 듣더니 순간 어처구니없다는 듯 냉소했다."너희들도 올 수 있는데, 나라고는 왜 못 오겠어?""당연히 올 수 있지."남자가 뜻 모를 웃음을 드러내자 곁에 있던 여인이 즉시 그의 팔을 꼭 껴안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성준 씨, 이분이 바로 유정 씨야?"성준이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맞아."그러자 여인이 유정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다시 남자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뭐야, 자기 나를 속인 거였어? 자기 분명 유정 씨가 아주 못생기고 꾸밀 줄도 모르는 시골 여인이라고 했잖아! 분명 이렇게 예쁜데도?"성준이 듣더니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예뻐? 왜 나는 여전히 예전과 똑같은 거 같지? 표정도 무뚝뚝한 게 무미건조하기만 하고."두 사람이 서로 맞장구를 치며 자신을 폄하하고 있는 모습에 유정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쓰레기 같은 인간들, 당장 꺼져!"유정이 욕설을 퍼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성준이 잠깐 놀라더니 얼굴색이 바로 어두워졌다."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죽어서도 땅이나 낭비할 쓰레기 인간들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안 그러면 제대로 본때를 보여줄 거니까."예전에는 분명 고분고분 말대꾸 한 번한 적이 없던 유정이 갑자기 자신에게 험한 욕을 퍼붓는 모습에 성준은 놀랍기도 하고 화도 나 유정을 노려보며 말했다."역시 널 차버린 게 잘 된 선택이었네. 유정, 너 딱 기다려!"유정이 듣더니 냉소했다."분명 네가 더러워서 나한테 버림을 받은 거잖아.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당장 꺼져!"화가 제대로 치밀어 오른 성준은 옆에 있는 맥주병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술병을 잡기도 전에 갑자기 손등에서 전해오는 통증 때문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왜 그래?"옆에 있던 여인이 보더니 긴장해서 물었다.이때, 소희가 손에 든 꼬챙이로 숯불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꺼져, 다음
소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계속 말해요."유정이 또 술을 한 모금 크게 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그때 저 진짜 자아까지 잃어가면서 그를 사랑했어요. 심지어 사고 능력까지 상실한 채 의미 없는 헌신에 혼자 감동하면서.""그렇게 1년 동안 사귀다 그는 우연히 대학 때 좋아했던 첫사랑과 만나게 되었어요. 그 여인은 상냥하고 자상하고 애교도 많고 무고한 척도 하면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척만 하는 저와는 완전히 달랐죠.""그렇게 그 여인 집 등불이 고장 나면 그는 한밤중이라도 달려가 고쳐주었고, 아프다고 전화하면 큰비도 무릅쓰고 약 사주러 가고, 그 여인이 직접 국을 끓였다고 바로 마시러 달려가고, 저와의 약속까지 잊어가면서요.""그가 저에 대해 점점 성의와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저도 진작 알아차렸어요. 하지만 저 여전히 포기하고 싶지 않아 매번 그에게 기회를 주고, 그의 변명을 들어주고 그랬어요. 그러다 그 두 사람이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침실에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해 저한테 들켜서야 우리의 감정이 끝나게 되었어요.""분명 그가 바람을 피워 저를 배신한 건데 오히려 그가 목이 터져라 모든 잘못을 저에게로 돌리더군요. 제가 꾸밀 줄 모르고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고, 너무 고루하다면서.""그 순간 저 너무 충격적이었요. 저 사실 여자여자한 슈트나 하이힐 같은 거 전혀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가 좋아하니까 산 것들이었는데. 그리고 저 혼전 동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했을 땐 그렇게 제가 자중할 줄 아는 여자라고 좋아했으면서 순간 저를 고루하고 재미없는 여인이라고 하더군요.""그 당시 저는 그의 배신을 받아들일 수 없어 매일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면서 죽기보다 못한 나날을 보냈거든요,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바로 사귀게 되었지 뭐예요."유정이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또 술을 크게 한 모금 삼켰다."저 정말 하늘 아래 가장 노답인 바보예요."소희가 조용히 다 듣고 나서야 눈살을 찌푸리고 물
소희의 살짝 달라진 표정에 임구택이 고개를 돌려 소희의 시선을 따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몸을 살짝 기울여 소희의 시선을 가리고 진지하게 말했다."걱정 마. 시원이는 저 여인을 좋아하지 않아."우민율은 장시원을 2년 넘게 쫓아다녔다. 만약 장시원이 정말 우민율을 좋아했다면 진작 그녀와 만났겠지.소희가 눈을 아래로 드리운 채 담담하게 말했다."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재밌게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는 거네."임구택이 듣더니 바로 맹세했다."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없다고? 인터넷에 아직도 당신과 이현의 사진이 있는데?"소희가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이에 임구택이 다소 원망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그건 자기가 계속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그런 거잖아."임구택의 칠흑 같은 눈동자에 빠진 순간 이상한 정서가 마음속에서 퍼지는 느낌이 들어 소희는 바로 고개를 돌려 담담하게 말했다."나 당신 때문에 돌아온 거 아니야.""알아, 자기는 날 보고 싶어 한 적이 없었잖아."임구택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소희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한참 침묵을 지키고서야 낮은 소리로 물었다."이현이를 건드린 적이 있어?"임구택이 듣더니 웃음을 드러냈다."드디어 묻는 거야?"소희는 순간 난처하여 고개를 돌려 모닥불을 바라보며 말했다."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말해도 돼.""없어."임구택이 소희의 손을 꼭 잡고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한 번도 없었어.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현과 같이 서 있었던 게 가장 가까운 거리였어."소희가 눈살을 찌푸린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이에 임구택이 그녀를 보며 웃었다."이제 안심됐어?""우리 그때 헤어진 상태였으니 당신이 정말 여자친구를 사귄다고 해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우리 언제 헤어진 적이 있었어? 내 생일날 혼인신고서를 선물로 준 게 난 유부남이니 자중해야 한다고 경고한 거 아니었어?"소희가 듣더니 놀라서 임구택을 쳐다보았다."내가 준 상자 안에 쪽지 한
"너 대신 복수해 준다잖아, 어때?"조백림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물었다.유정이 눈알을 돌리며 조백림의 의도를 생각했다. 하지만 왠지 좋은 일은 아닐 거 같아 바로 거절했다."괜찮아요, 어차피 이젠 남남인데요 뭐.""그래, 이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고마워요.""고맙긴. 부부는 원래 한 몸이니 당신을 돕는 게 나 자신을 돕는 거랑 같은 거잖아."조백림의 진지한 농담에 유정이 화를 내며 그를 노려보았다."부부라니요? 너무 앞서 가는 거 아니에요?""차라리 오늘 밤에 부부가 해야 할 일을 해버리는 게 어때?"조백림이 온화하게 웃으며 물었다. 전혀 농담하는 거 같아 보이지 않았다.이에 유정이 순간 얼굴이 빨개져서는 대답했다."꿈 깨요!"농담 한마디에 얼굴이 빨개진 유정의 모습이 유난히 재미있었지만 조백림은 더 이상 그녀를 놀리지 않았다.유정은 마음속의 초조함을 억누르고 싶어 스스로 술을 따르며 몇 잔이고 원샷했다.그렇게 밤은 점점 깊어지고 파티 현장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밤을 새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하지만 평소에 일찍 잠자리에 드는 소희는 밀려오는 잠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에 임구택이 소희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우리 이만 돌아갈까?"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정이에게 돌아가 쉬겠냐고 물었다.취기가 올라 정신이 더욱 맑아진 유정이 고개를 저었다."저 좀 더 앉아있다가 돌아갈래요, 먼저 가 쉬세요.""알았어."대답하며 임구택을 따라 일어난 소희는 고개를 돌려 장시원 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장시원과 우민율은 언제 사라졌는지 자리가 비어있었다.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뭘 하러 갔는지 알 수 있었다.소희의 얼굴색이 순간 어두워졌다.그리고 눈빛 하나에 소희의 생각을 읽어낸 임구택이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걸어가며 말했다."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해."소희는 청아가 불쌍할 뿐이었다."청아 씨는 시원이와 같이 있을 생각도 없잖아. 그러니 시원이더러 계속 솔로를 유지하라는 건 불공평한
소희의 말투에서 이상함을 느낀 임구택은 눈썹을 올린 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소희가 계속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우리 이제 그만 싸우자. 나에게 시간을 좀 줘, 우리의 관계를 잘 생각해 보게."소희의 진지한 말투에 임구택이 한참 그녀를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뭐가 문젠데? 내가 같이 해결해 줄게."하지만 소희는 두 눈을 아래로 드리우고 임구택의 살짝 열린 셔츠 네크라인을 쳐다볼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이에 임구택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숙여 소희를 품에 안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당신이 지금 나를 못 믿고 있다는 거 알아, 그래서 높은 벽을 세웠다는 것도 알고.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줬어. 내가 인내심을 가지고 당신에게로 접근할 거니까 당신도 천천히 나에게로 와줘. 우리 함께 그 장벽을 뛰어넘자, 응?"소희가 잠시 침묵하더니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안은 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밝은 달빛은 넓은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두 사람의 몸에 은은한 빛을 씌워주었고, 달빛 아래서 두 사람의 그림자는 마치 여태껏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는 것처럼 꼭 붙어 있다.그러다 한참 후, 소희가 임구택을 밀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나 졸려, 가서 잘래."임구택은 소희를 더 이상 잡아두지 않고 그녀를 세워 일으켰다.그런데 소희가 첫걸음을 내디디자마자 임구택이 다시 소희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윽한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왜 갑자기 당신한테 속은 거 같지?""뭐?"소희가 의아하여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이에 임구택이 소희를 품에 안고 점점 어두워지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당신이 만약 계속 답을 찾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잖아. 그러면 나한테는 가장 기본적인 이득조차도 없을 거고.""그럼 당신이 선택해, 나의 육체를 원해 아니면 내 마음을 원해?"임구택이 듣더니 이를 악물었다."역시 일부러 의도한 거였어."소희가
일찍 방으로 돌아온 장시원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데 마침 우민율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시원 도련님, 제 방에 있는 샤워기가 고장 나서 그러는데, 한 번 와서 봐주면 안 될까요?"장시원이 듣더니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담담하게 말했다."정비공을 찾아. 정 안 되면 방을 바꾸든지.""이렇게 이른 아침에 어디 가서 정비공을 찾아요? 게다가 오늘 호텔도 꽉 찼는데 누구와 방을 바꿔요?"우민율의 애교 묻은 어투에 장시원은 여전히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그럼 어쩔 수 없지, 씻지 말고 그냥 자.""저 지금 땀을 엄청 흘려서 안 씻으면 잠이 안 온단 말이에요. 아니면 저 시원 도련님 방에 가서 씻어도 될까요? 씻고 바로 나갈게요."장시원의 태도는 너무 미적지근하여 아무런 정서도 알아낼 수 없었다."그래, 건너와.""네! 저 지금 바로 갈게요, 기다려요!"전화를 끊은 후 휴대폰을 한쪽에 올려놓은 장시원의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고 장시원이 가서 문을 열었다. 우민율은 여전히 전날 저녁의 붉은색 드레스 차림 그대로였다. 그녀는 팔에 목욕 가운을 걸치고 장시원의 몸을 흘겨보며 물었다."도련님 휴식하는데 방해한 건 아니죠?""방해했다고 하면, 갈 거야?"장시원이 농담이 묻은 어투로 묻었다.이에 우민율이 앞으로 다가가 장시원의 몸에 달라붙은 채 매혹적인 눈으로 장시원을 바라보았다."저 이미 왔는데 이대로 돌려보내 게요? 아쉽지 않아요?"장시원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방문을 닫았다."씻어.""금방이면 돼요."우민율이 그에게 윙크 한 번 날리고는 욕실로 들어갔다.곧 물소리가 들려왔고, 반투명 형식으로 만들어진 유리에 비친 여인의 매혹적인 몸매는 남자에게 있어 치명적인 유혹이었다.장시원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창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바깥의 야경을 바라보았다.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의 밤은 강성의 밤과 완전히 달랐다. 소란스러운 경적소리도 없고 오색찬란한 네온사인도 없고, 온통 그윽한
"내가 화를 내기 전에 당장 꺼져."그런데 이때 장시원이 안색이 어두워져서는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난 눈치 없는 여자들이 제일 싫어."우민율은 순간 상처를 받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그러다 단념할 수가 없어 다시 뒤돌아보며 물었다."저 줄곧 도련님을 관찰하고 있었어요. 도련님은 바람기가 있기로 유명한 사람인데 지난 2년 동안 그 누구와도 사귀지 않았었죠. 그게 저 때문이 아닌가요?""그럴 리가."여전히 덤덤하고 차가운 장시원의 목소리에 우민율은 몸을 한 번 세게 떨었다. 그녀가 나타난 후로 장시원은 더 이상 여자 친구를 만나지 않았기에 그녀는 당연히 자신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헛된 망상이었다니."휴식하는데 방해해서 미안해요."우민율은 입술을 깨문 채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그리고 문이 닫힌 후 장시원은 다시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내가 2년 동안이나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고?’그는 2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짧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심지어 괴롭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예전 같았으면 우민율 같은 미인을 절대 거절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그 순간, 그는 자신한테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심리적인 문제인 건가, 아니면 신체적인 문제인 건가?’장시원은 초조하게 담배 연기를 뱉으며 한밤중에 갑자기 찾아와 이상한 말들로 잔잔한 그의 마음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은 우민율을 원망했다.……유정이 다 놀고 호텔로 돌아왔을 땐 이미 새벽이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그러다 조백림과 같이 배치된 스위트룸에 도착하니 조백림이 마침 한 여인과 문밖에서 치근덕거리고 있었다.여인은 술에 취한 듯 온몸이 나른하여 뼈 없는 연체동물마냥 조백림에게 기대어 있었다."조 도련님, 저 심장이 엄청 빨리 뛰고 있어요, 한 번 만져봐요."이에 조백림이 뭐라 말하려고 입을 열다가 마침 유정이를 발견하게 되었다.유정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마냥 곧장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러다 조백림
유정이 듣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제발 참아요. 백림 씨 지금의 상황에서 주동적으로 공격할 수도 있고 또 걱정할 것 없이 얼마든지 물러날 수도 있는데, 얼마나 좋아요?"조백림이 유정에게 술을 따라주었다."비록 내가 한 사람한테만 일편단심인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양다리는 걸치지 않아. 그러니 걱정 마, 너와 약혼을 맺은 동안은 절대 다른 여자와 얽매이지 않을 거니까. 방금은 단지 전 전 전 여자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야."유정이 듣더니 경악하여 조백림을 쳐다보았다.그러자 조백림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눈빛이야?""전 전 전 여자친구가 아직도 백림 씨를 잊지 못한 걸 보면, 백림 씨가 확실히 좋은 사람이긴 했나 보네요."유정이 진심 어린 말투로 대답했다.이에 조백림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가 갑자기 어딘가 이상한 것 같아 유정을 흘겨보았다."나를 풍자하는 거야?""아니요!"유정이 즉시 고개를 저었다."저는 전 남자친구와 안 좋게 헤어져 지금은 원수처럼 지내고 있거든요. 그런데 백림 씨는 여자친구들과 다 좋게 좋게 끝난 거니까 백림 씨의 인성이 괜찮다는 걸 설명해주고 있잖아요."유정이 말하면서 조백림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조백림은 유정의 진실한 마음을 알 수가 없어 웃으며 물었다."너 전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게 그 사람의 첫사랑이 돌아와서였다고 했잖아, 그게 무슨 뜻이었어?""저와 아직 사귀고 있을 때 그 사람이 전에 좋아했던 첫사랑이 돌아왔거든요. 그래서 바로 저를 버리고 첫사랑의 품속으로 돌아갔어요."유정이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담담하게 말했다.조백림이 듣더니 냉소하며 말했다."다시 빼앗아 오면 되잖아, 바보 아니야?""하지만 둘이 이미 잠자리도 가졌는걸요.""그게 뭐가 대수라고? 넌 그 자식이랑 안 잤어?"조백림이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누구에게나 사랑을 추구할 자격이 공평하게 있는 거야."조백림의 말에 유정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조백림의 입에서 사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