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남의 장편 글은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현의 팬들은 분분히 나서 이정남이 시비를 전도하여 일부로 중점을 혼돈시킨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또 이현의 인기를 이용하여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런 거라며 한마디 덧붙이기까지 했다.다행히도 그 와중에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이성적인 태도로 사진 속 이현의 모습과 현재 이현의 모습을 비교해 보았고, 이현의 이목구비가 확실히 많이 달라졌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눈은 더 커졌고 코는 더 오똑해진 게 점점 소희를 닮아가고 있었다.반대로 소희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 변하지 않았다.그러니 대체 누가 성형했는지에 대해 더는 논쟁할 가치가 없었다.하지만 여전히 포기하려 하지 않는 이현의 팬들은 이정남이 분명 사진에 손댔을 거라고, 이현은 원래부터 예쁘게 생겼다며 억지까지 부렸다.이에 곧 한 네티즌이 당시 이현이 주 감독님 영화에 출연했을 시 찍힌 스틸 컷을 공개하여 이현 팬들의 입장을 반박했고, 팬들은 그제야 할 말이 없어졌다.소희가 성형했다는 게 모함인 것으로 결론이 났으니 다른 일도 참작해야 한다는 게 네티즌들의 태도였다.대체 누가 뒤에서 소희를 모함한 거지?만약 이정남이라는 스태프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설마 주범이 정말로 이현인 건가?하지만 네티즌들은 바로 이현이 주범일 가능성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현은 돈도 많고 지위도 높은 배우로서 소희 같은 일개의 디자이너를 겨눌 가치가 없었으니까.그러나 이현이 기자들의 인터뷰를 받을 때 말끝마다 소희가 자신의 외모를 부러워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희가 이현의 모습대로 성형했을 거라고 착각하게 한 건 사실이었다.그 점만으로도 네티즌들은 이현이 그녀의 팬들이 말하는 것처럼 솔직하지 않다는 건 확실히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많은 네티즌들이 또 이현이 전에 킹의 인기를 이용하기 위해 기자들 앞에서 킹이 직접 자신을 위해 드레스를 디자인했다고 자랑했다가 바로 들킨 일을 들추어내는 바람에 대중들의 공격방향이 다른 곳으로 기울이
특히 인터뷰를 받을 때 기자에게 소희가 자신의 모습을 본떠 성형했다고 암시하는 말과 동영상이 다시 들춰지면서 네티즌들은 분분히 이현이가 여우라며 욕설을 퍼부었다.심지어 이현의 공식 계정으로 가서 질책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분명히 그가 소희 얼굴을 본떠 성형했으면서 왜 사실을 전도하여 소희를 사지로 몰아넣었냐고, 자신이 한 일때문에 저녁에 악몽을 꾸는 게 두렵지 않냐고.많은 댓글 중 이현과 미연의 핸드폰을 해킹한 ‘묵언’의 행위가 틀린 거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사건이 거듭되는 반전을 겪으며 결국 이현만이 당황함에 빠지게 되었다.그는 일이 이렇게 빨리 반전을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다. 미연의 핸드폰을 해킹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두 사람의 통화 내용까지 몰래 녹음한 자가 있었다니.현재 매일 수많은 사람이 이현에게 전화가 오고 주소도 노출되는 바람에 아래층에는 매일 그녀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팬들로 에워싸여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집에만 박혀 있는 채 인터넷에 오르지도 못하고 전화도 받을 담이 없이 극도로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물론 이현에게 있어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며, 그녀를 지옥으로 끌어내릴 최후의 공격은 하루 후에 나타났다.전반 사건에서 제일 볼품없었던 작은 조연, 류 조감독이 갑자기 자신의 공식 계정에 올라 그와 이현의 관계를 폭로했다.그는 자신과 이현이 연인 사이라고, 소희를 모함한 것도 이현이 자신에게 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요 며칠 소희가 인터넷 폭력을 당하고 있는 모습에 양심의 가택을 느끼고 진실을 털어놓기로 결정한 거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하지만 이현의 일부 팬들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류 조감독의 공식 계정에 댓글을 달아 류 조감독이 주제도 모르고 감히 이현을 넘보려 하는 두꺼비라고, 이현의 인기를 이용하기 위해 이제야 나타나 이현한테 돌을 던지는 나쁜 사람이라고 욕설을 난발했다.이현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밟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이에 류 조감독은 자신이
임구택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내가 경고했을 텐데, 소희한테 접근하지 말라고.]"어찌 되었건 내가 구택 씨를 도왔었잖아요! 구택 씨도 나에게 보답하겠다고 했고."이현의 목이 쉰 질책에 임구택이 냉소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래서, 내가 보답하지 않았나? 모든 행사나 작품은 내가 전부 허진더러 가장 좋은 거로 안배해 줘라고 했고, 모든 접대 장소도 내가 사람을 시켜 막아줬어. 그래서 지금의 넌 무명 배우에서 일류 스타로 진급하며 대박 났는데 뭐가 불만인 거지? 네가 나를 속여 네 생일 파티에 참석하게 한 것도 모자라 일부러 소희 앞에서 자랑한 거에 대해서도 난 참았어. 그리고 정중히 경고했지, 소희를 건들지 말라고. 하지만 네가 듣지 않았으니, 날 탓할 수는 없는 거지?]"그렇긴 하지만......"임구택이 소희를 건들지 말라고 경고한 적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후에 그녀가 여민을 이용하여 소희를 모함했을 때 임구택은 분명 그녀가 한 짓이라는 걸 발견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현은 당연히 임구택이 소희에 대한 감정이 식었기에 자신의 행위를 방임하는 줄 알고 심지어 임구택의 마음을 떠보고 얻기 위해 점점 지나치게 소희를 대했던 건데, 임구택이 그녀를 류 조감독에게 선물해 주고서야 그녀는 자신이 줄곧 임구택의 뜻을 잘못 추측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나 알겠다!"이현이 눈물을 흘리며 절망에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임구택, 당신 일부러 그런 거 맞지? 당신은 나를 이용하여 소희의 마음을 떠보려고 고의로 잘못된 신호를 주었어. 내가 소희를 괴롭혀야만 당신이 소희를 접근하고 보호할 수 있으니까. 난 처음부터 당신한테 이용당하고 있었어!"이현은 마침내 모든 걸 알게 되었다.임구택의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희한테 가 있었다.그가 한 모든 짓도 소희를 만회하기 위해서였고.임구택이 나지막하게 웃으며 이현을 비웃었다.[아니, 네가 너무 탐욕스러워 자제할 줄 몰라서 그런 거야. 난 처음부터 분명 너에게 똑
이현의 자살 뉴스로 그녀와 소희 사이의 일은 드디어 서서히 식어가기 시작했고, 소희도 운수로에서 다시 경원주택단지로 돌아가게 되었다.그녀의 집 밖에 쌓여있었던 쓰레기와 화환 등은 이미 깨끗이 정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합 몇 다발이나 놓여있었고, 카드에는 미안함이 담긴 말들이 쓰여 있었다.전에 인터넷에서 그녀를 욕했던 네티즌들이 보내온 것인 듯했다.소희는 기분이 좋아져 백합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그리고 마침 청아의 전화가 걸려왔다.[어서 아래층으로 내려와. 내가 맛있는 음식들을 엄청 많이 만들었거든, 너를 위해 축하파티 열려고!]"곧 내려갈게!"소희는 가방을 내려놓고 백합을 꽃병에 꽂은 후에야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요 며칠간의 일을 거쳐 네티즌들도 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이 본 게 반드시 진실인 거는 아니니 독립적인 사유와 사상을 가져야지 인터넷상의 일부 유언비어에 이성까지 잃어가면서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마구 폭언을 날려서는 안 된다고.그러면서 네티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소희가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게끔 소희에게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았다.미안한 마음 때문이든, 잘못을 뉘우치고 싶은 마음 때문이든, 방해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지지였다.그리고 이틀 후, 소희는 구은서의 전화를 받게 된다.구은서가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어쩐지 나와 손 잡으려 하지 않더라니. 진작에 이현을 상대할 계획이 있었네? 이현을 이렇게 철저하게 끌어내리다니, 역시 대단해.]"네 앞가림이나 잘해. 나쁜 마음은 될수록 적게 가지고, 이현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소희의 경고에 구은서가 냉소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내 지금의 처지가 이현보다 많이 좋은 거 같아? 사랑도 잃고, 명원이도 너 때문에 나와 절교하고, 사업도 곤두박질치고. 소희야, 나한테 아직도 더 잃을 게 남았다고 생각해?]"이현의 병문안을 한 번 가봐. 그럼 네가 지금 이현보다 얼마나 더 행복한지 알게 될 거야."소희는 구은서와 더 이상
이정남이 듣더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제가 한 번 소희에게 물어볼게요.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품지 마시고요. 소희가 얼굴을 알리는 걸 제일 싫어해요. 전에 주 감독님께서도 소희의 외모가 마음에 들어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만 소희가 거절했거든요.""정말이야?"이 감독은 아직도 명성과 이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여인이 있을 거라는 걸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당연하죠!"이정남이 엄청 진지하게 대답했다.하지만 이 감독은 여전히 포기하고 싶지 않은 기세였다."그래도 한번 해 보고 싶어. 내가 당분간 배역을 선정하지 않을 테니 정남 씨가 먼저 소희 씨를 잘 설득해 줘. 정 안 되면 내가 직접 찾아가서 설득할 거야.""소희가 동의하지 않는 일은 하느님이 와도 소용없을 건데."이정남이 웃으며 말했다."알았어요, 제가 일단 한 번 물어보긴 할게요.""부탁해!"이 감독의 성의에 이정남은 너무 오래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아 그날로 소희를 경원 주택단지 맞은편에 있는 바비큐 가게로 불러냈다.소희가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이정남은 특히 소희를 위해 매운 것들만 가득 주문하고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이현에 대해 언급하게 되었다.이정남은 고개를 들어 단숨에 맥주 한 잔을 원샷하고는 이현에 대한 분노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듯 분개해서 입을 열었다."다들 연예계가 복잡한 곳이라고, 아무리 좋은 사람이 발을 들여도 결국엔 껍질까지 발려진다고는 하지만 이현은 겨우 발을 들인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잖아. 2년 만에 저렇게 귀신으로 변하다니!"소희가 가재의 껍질을 천천히 벗기며 입을 열었다."사람이 변하는 과정엔 필연적으로 흔적이 남아있게 되어있어요. 다만 쉽게 발견하지 못했을 뿐.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이현이 변해가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현은 이미 변해있었고, 그게 우리에겐 갑작스럽게 느껴졌을 뿐이겠죠."이정남이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눈살을 찌푸렸다."네 말이 맞
소희가 덤덤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적합한 배우를 추천해 드릴 수는 있지만 저는 아닐 겁니다.""소희 씨, 도대체 뭘 망설이는 거야? 만약 연기가 걱정되는 거라면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쳐 줄 수 있어.""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는 정말 배우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소희가 아무런 여지도 없이 거절했지만 이 감독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소희의 동의를 기다리겠다고 고집했다.그리고 며칠을 기다려도 제작팀 쪽에 촬영을 재개한다는 소식이 없자 승엔 쪽 직원이 이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캐스팅 진도를 물었다.이 감독은 소희에게 여주인공 역을 맡길 생각이라며 아직 설득하고 있으니 며칠 더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그리고 소희의 이름이 언급되자 허진은 바로 임구택에게 전화를 걸었다.임구택이 듣더니 마찬가지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소희에게 여주인공 역을 맡긴다고?"[네. 이 감독님께서 반드시 소희 씨가 그 배역을 맡아야 한다면서 소희 씨가 동의하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키스신이 있어?"[네. 남주와 세 씬 정도 있을 겁니다.]"그럼 이 감독한테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해. 그리고 다른 여배우를 빨리 선정하라고 해."케이슬 전용 룸에 앉아있는 임구택이 단호하게 말하고는 핸드폰을 옆에 있는 탁자 위에 던졌다.그러자 옆에 있던 장시원이 웃으며 물었다."왜, 소희에 관한 일이야?""응, 이적이 이현의 역을 소희에게 맡기고 싶어 해."임구택의 덤덤한 대답에 장시원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큰 소리로 웃었다."너무 억지인 거 아니야? 소희가 배우 출신도 아니잖아.""소희는 얼굴 알리는 거 좋아하지 않아."임구택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아마 이적도 소희한테서 문전박대를 당했을 거야."장시원이 소파에 기대어 담담하게 웃으며 물었다."이현의 일은 모두 해결되었어?""어.""난 네가 분명 이현이 소희를 계속 괴롭히게 놔두지 않을 거라는 거 알고 있었어. 전에 명원이가 하마터면 이성을 잃고 이현을 암살할 뻔
장시원이 듣더니 눈썹을 올린 채 마음속의 추측을 말했다."그래서 일부러 끊임없이 떠보고 집적거렸던 거야? 소희가 사실 아직도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나도 어쩔 수 없었어. 소희가 스스로를 설득시켜야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니까.""그건 많이 어려울 것 같은데?"장시원이 한숨을 쉬며 동정을 표하자 임구택이 자조하듯 웃었다."내가 저지른 죄이니 내가 보완해야지. 누굴 탓하겠어."그런데 이때 장시원이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물었다."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소희가 정말로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쩔 건데? 소희가 심명과 엄청 가깝게 지내고 있던데."임구택이 듣더니 조용히 담배 연기를 뿜었다. 연기에 가린 남자의 눈동자는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그러다 한참 후 임구택이 편집이 띤 어투로 대답했다."이번 생에서 소희는 죽더라도 나와 함께 죽어야 해."......이튿날, 소희는 오후 내내 서재에 앉아 디자인 원고에 전념했다. 그러다 곧 저녁 무렵이 되니 임구택의 전화가 걸려왔다.받고 싶지 않았지만 전화가 끊임없이 울리는 바람에 소희는 어쩔 수 없이 받았다. 그러고는 차가우면서도 소외감이 묻은 어투로 입을 열었다."네, 임구택 씨."[저녁 나와 같이 먹어, 내가 데리러 갈게.]"미안하지만 저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요."[무슨 약속?]"그건 알려드릴 수 없을 것 같네요."소희의 완곡한 거절에 임구택은 조급해하지 않고 나지막하게 웃었다.[총, 돌려받고 싶지 않아?]소희가 듣더니 눈썹을 올렸다. 잃어버린 총이 임구택의 손에 있을 거라는 거 소희도 진작에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전히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그럼 수고스러운 대로 총을 유민이에게 맡겨주세요, 제가 토요일에 가지러 가겠습니다."이에 임구택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유민이에게 네가 매일 총을 몸에 지닌 채 공부를 배워주고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거야? 비록 유민이 빨리 철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주의할 것 주의해야 하는 거 아니야?]소희가 숨을
임구택이 차를 몰면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 감독이 너에게 여주인공 역을 맡기고 싶어 했다며? 내가 이미 거절했어.""어떻게 알았어?"소희가 놀라 무의식적으로 묻는 모습에 임구택이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지금 그 작품의 가장 큰 자본주인데, 당연히 다 알고 있지."‘자본주’라는 세 글자에 소희는 순간 예전에 두 사람이 자주 하던 농담이 생각나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너 얼굴을 알려 남들의 주목을 받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네 의견을 묻지 않고 바로 거절했어. 날 탓하지는 않겠지?""아니."소희가 두 눈을 아래로 드리운 채 대답했다.‘내가 여러 번이나 거절했는데도 소용없었는데, 이번에는 자본주가 직접 거절했으니 이 감독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겠지?’"그럼 어떻게 고마워할 건데?"임구택이 물었다.그러자 소희가 경악하여 고개를 돌렸다. 저녁의 어두운 그림자에 임구택의 이목구비는 더욱 입체적이었고 표정도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정말로 그녀가 고마움을 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그래서 소희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되물었다."뭘 해줬으면 하는데?""오늘 저녁은 네가 사."임구택의 요구가 이렇게 간단할 줄 몰랐던 소희가 쿨하게 대답했다."그래.""나의 모든 요구를 이렇게 통쾌하게 들어줬으면 얼마나 좋아."임구택이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소희를 한번 흘겨보았다. 말투에는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원한이 섞여 있었다.하지만 소희는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임구택은 소희를 데리고 남월정으로 갔다. 문과 벽, 그리고 들어간 후에 펼쳐지는 정원은 전부 이전과 똑같았다. 다만 대나무가 더욱 무성해졌고 계수나무도 조금 더 굵어졌다.임구택이 앞에서 걷고 있었고 소희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그러다 절반쯤 들어갔을 무렵 임구택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가볍게 웃었다."빨리 걸어. 매번 올 때마다 돌계단을 세더니, 아직도 돌멩이가 몇 알인지 다 세지 못했어?"임구택의 말에 소희가 고개를 들었다.
강시언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최근에 내가 너의 양부모와 관련된 단서를 따라갔고, 너를 납치했던 사람을 찾아냈어.”“대략 1년 전에 체포되어 지금 감옥에 있어. 내가 사람을 보내 잘 돌봐주게 했지.”아심은 눈빛이 살짝 차가워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시언은 말을 이었다.“그리고 널 샀던 양부모도 지금 형편이 좋지 않아. 아들은 방탕한 삶을 살고,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여자 친구랑 함께 부모를 착취하고 있지.”“돈을 요구하며 부모를 때리고 욕하는 게 다반사야. 그래서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따로 손을 쓸 필요도 없었어.”아심은 담담히 말했다.“나는 그들에게 이미 마음을 비웠어요. 어차피 친부모도 아니었으니까요. 나를 사들였다가 다시 팔아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죠.”“감정도 없으니 당연히 원망도 없어요.”“원망은 내가 해!”시언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거웠다.“그 사람들이 너를 때리고 욕했던 걸 떠올리면, 지금 받는 벌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아심의 마음은 순간 간질거렸다. 마치 개미가 기어오르는 듯한, 따뜻하면서도 저릿한 감각이 가슴 끝까지 퍼졌다. 그녀는 눈가가 살짝 물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들이 나를 팔았기에 내가 당신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정말로 그들을 원망하지 않아요.”시언은 팔을 들어 아심의 어깨를 감싸며 눈을 마주쳤다. 시언의 깊고 투명한 눈동자는 점점 더 차갑고도 또렷해졌다.“그날 도경수 할아버지가 네 몸에 있는 태어나는 반점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을 때, 내가 대답하지 않았잖아. 네 생각엔 뭐라고 답해야 할까?”시언은 끝음을 살짝 끌며, 자기 목소리에 특유의 저음과 자극적인 울림을 더했다. 빗소리에 묻힌 그의 말은 그녀의 마음을 강렬히 두드렸다.이에 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있는 그대로 대답하세요. 근데, 그럴 용기 있어요?”“내가 무서워서 못 한다고 생각해?”시언은 낮고 짧게 대꾸했다. 그는 긴 손가락으로 아심의 정교한 턱을 잡아들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오븐 속 닭 날개는 이미 다 구워졌고, 끓던 국도 식어버렸다. 밖에서는 다시 비가 내리는지, 부슬부슬한 빗소리가 고요한 분위기를 더욱 차분하게 만들고 있었다.강시언은 몸을 약간 일으켜 그녀의 옷을 입혀주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뒷정리할 테니, 너는 가서 샤워해. 씻고 나오면 바로 식사할 수 있을 거야.”강아심은 나른하게 눈을 가늘게 뜨며 움직이지 않고 대꾸했다.“내가 샤워 끝낼 때쯤 당신이 음식을 다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해요?”“딱 두 가지 요리랑 국 하나야. 충분하겠어?”시언이 묻자, 아심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점심에 외할아버지가 보내주신 음식이 많이 남아서, 그거 데워서 먹으면 돼요. 음식은 낭비하면 안 되니까.”“그래.”시언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아심을 조리대에서 내려주었지만, 아심은 그의 단단한 허리를 감싸 안고 움직이지 않았다.붉게 물든 눈가로,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못 걸을 것 같아요.”이에 시언은 낮게 웃으며 아심을 다시 들어 올려 주방에서 주방의 욕실로 데려갔다....두 사람이 저녁 식사를 마쳤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되었다. 시언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아심은 발코니에 앉아 있었다.얇은 잠옷 차림의 그녀는 헝클어진 긴 머리를 어깨에 흘러내린 채 앉아 있었다. 밖에서 스며드는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아심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흩날렸고, 하얗고 가녀린 어깨가 머리카락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났다.아심은 비를 바라보며 무언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어두운 조명이 그녀의 부드럽고 가냘픈 라인을 더 강조했고, 그녀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고독한 느낌을 주었다.시언은 그녀에게 다가가 같은 자세로 바닥에 앉았다.“야근은 좋은 핑계겠지만, 도도희 아주머니랑 도경수 할아버지가 모를 리 없지. 너, 집에 가기 싫은 거잖아.”아심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시언의 깊고 투명한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이에 아심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그 말이 맞아요.
영상 속의 셰프는 유창하게 자국어를 구사하며 부드럽게 웃었다.[당신은 미스터 강의 여자 친구인가요? 참고로 지금 종료해도 보수는 환불되지 않아요.]아심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알고 있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좋아요. 그러면 이만!]셰프의 말을 끝으로 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을 종료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강시언에게 물었다.“닭 날개를 굽고 싶으신 거예요?”“너 할 줄 알아?”“이미 양념까지 다 해두셨으니, 오븐에 넣고 온도와 시간을 맞추면 끝이예요.”시언은 접시에 담아둔 닭 날개를 그녀에게 건네자, 아심은 돌아서서 접시를 오븐에 넣으며 물었다.“어떻게 갑자기 요리를 배우고 싶으셨던 거예요?”시언은 다른 재료를 고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별거 아니야. 네가 집에 돌아왔을 때 따뜻한 밥상을 느껴보라고.”그 말에 아심은 순간 멈칫하며 오븐을 멍하니 바라봤다. 몇 초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타이머를 설정했다. 아심은 돌아서며 미소를 지었다.“제가 뭐 도와줄까요?”시언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네가 내가 부른 셰프를 쫓아냈잖아. 네가 안 도우면 생닭을 먹겠다는 뜻인가?”아심은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었다. 그녀는 소매를 걷으며 도마 위에 놓인 토마토를 보며 물었다.“이건 뭐 만들려고요?”“약간의 토마토를 곁들인 소고기볶음.”아심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아직 걷는 법도 배우지 않았는데 벌써 달리려는 거예요?”시언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지?”아심은 대답 대신 말했다.“그 요리는 오래 걸려요. 배가 고프니까 그냥 토마토는 생으로 먹어요.”시언은 물었다.“생으로? 그냥 먹으라고?”“상쾌하고 맛있어요.”아심은 토마토를 반으로 자른 뒤 한 조각을 손으로 집어 시언의 입가에 내밀며 말했다.“한번 먹어보고 생토마토 맛이 어떤지 확인해 보세요.”아심은 고개를 살짝 치켜들며, 눈가가 붉어진 채 가늘게 올라간 눈꼬리와 흐르는 듯한 시선으로 무의식적인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겼다.시언은
아심은 연희가 쏟아내는 말들을 들으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기절하지 마, 그러다 네 남편이 걱정하실라.”[아심아, 내가 도경수 할아버지를 몇 년 동안 알아 왔는지 너 알아?]연희는 감탄하며 말했다.[우리가 친구였는데, 이제 넌 도경수 할아버지의 친손녀가 됐잖아!]아심은 연희의 목소리에서 그녀의 놀라움을 느낄 수 있었다.“사실 나도 정말 많이 놀랐어.”[그렇지만 정말 축하할 일이야!]연희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정말 깜짝 놀랄 만 하면서도 기쁜 소식이야!]연희는 평소 양재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재아가 도경수의 손녀가 아니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기뻤다. 그런데, 아심이 도경수의 손녀라는 사실을 들었을 땐 말 그대로 두 배의 기쁨이었다.어젯밤, 연희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노명성을 끌어안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바람에 명성은 그녀가 임신이라도 한 줄 알고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고마워.”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연희야, 나도 네가 내 친구라는 게 너무 행복해.”[이제는 친구뿐만 아니라 가족이기도 하잖아!]연희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이번 주말에 도경수 할아버지를 찾아뵈러 갈게. 축하도 드릴 겸.]“언제든지 환영해.”두 사람은 한참 더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전화를 끊었다....오후에 정아현이 다시 업무 보고를 하러 왔을 때는 이전과 달리 눈에 띄게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내내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결국 입을 열었다.“사장님, 정말 죄송해요. 저, 나쁜 의도는 없었어요. 그저 사장님이 걱정돼서 그랬던 건데, 앞으로는 다시는 미스터 강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을게요!”아심은 담담히 말했다.“그래요. 오늘은 일찍 퇴근해요. 남자 친구 생겼다면서요? 데이트하러 가요.”이에 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감사드려요, 사장님.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게요!”...아심이 퇴근할 때쯤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회사를 나설 땐 직원들마저 모두 퇴근해 그녀 혼자 남아 있었다.점심으로 받은 음
식사 중에 강시언이 물었다.“저녁에 또 약속 있어?”아심은 반쯤 내려간 눈길로 잠시 깜빡이며, 약간 죄책감을 느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요즘 정말 바빠요.”“응.” 시언은 짧게 대답한 뒤 더는 묻지 않았다.식사가 끝나고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나섰지만 각자 차를 타고 반대 방향으로 떠났다. 아심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고, 그녀는 정말 바빴다.정아현이 업무 보고를 하러 들어왔을 때, 아현은 무심코 아심에게 말했다.“내일 토요일인데, 권수영 여사님께서 댁에서 생일 파티를 연대요. 성대한 파티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꽤 많은 사람을 초대한 것 같아요.”“지승현 사장님도 아마 어머니 생일을 위해 집에 남아 있을 거고요. 어쩌면 권 여사님께서 그 자리에서 며느리를 정하려고 할지도 몰라요.”아현은 슬쩍 아심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내일 생일 파티에 누가 참석하는지 제가 알아볼까요?”아심은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약간 피곤한 듯 말했다.“아현 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와 지승현은 이미 끝났어요. 앞으로도 절대 다시 이어질 일은 없으니까, 지씨 집안 일은 신경 쓰지 마요.”“그리고 지승현 앞에서 내 얘기를 일부러 꺼내지도 마세요.”아현은 눈을 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사장님, 그런데 미스터 강이 돌아와서 사장님을 찾으신 건 맞죠?”아심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아현은 머쓱해하며 대답했다.“그날 저녁, 그분이 회사로 오시는 걸 봤거든요.”아심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사장님, 그분과 다시 만나신 건가요?”아현의 질문에 아심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보고서를 읽으며 담담히 말했다.“아니야.”이에 아현은 가볍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안 만나는 게 맞아요. 사장님,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그 사람이 갑자기 돌아와선 찾아오고, 또 떠나서는 연락도 없는 게 말이 돼요?”“사장님을 뭐로 보고 그러는 건지, 정말 어이가 없네요.”아심의 얼굴은 갑자기
“잠이 안 온다면, 다른 걸 해도 괜찮아.”강시언이 말하자, 강아심은 잠시 침묵하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여기 남아 있는 거예요? 대단한 진언님께서 굳이 소파에서 자는 걸 선택하시다니, 대체 왜요?”시언은 차가운 눈을 반쯤 내리며 담담히 대답했다.“비가 와서 못 가.”아심은 문득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시언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넌 뭐라고 생각했는데?”“저는...”아심은 손을 들어 시언의 셔츠 앞자락을 잡으며, 긴 속눈썹을 떨었다. 그의 어깨를 스치며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남으신 이유가, 내일 아침 제가 만든 샌드위치를 드시고 싶어서인 줄 알았어요.”“그 샌드위치, 꽤 맛있더라고.”“그러면 내일도 만들어 드릴게요.”“좋아.”아심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저 이제 피곤해요. 잘게요. 방해하지 마세요.”“자.”시언은 아심을 품 안으로 더 끌어당겼다.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퍼붓고 있었다. 마치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했고, 천둥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방 안에서는 두 사람이 꼭 껴안고 평온한 잠에 들었다.아심은 곧 잠들었지만, 시언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원래 잠들기 전부터 그녀에게 자극받은 상태였고, 지금 아심의 부드럽고 따뜻한 몸이 품 안에 있으니 더더욱 잠이 오지 않았다.얇은 실크 슬립 드레스 하나만 입은 아심은 곡선이 우아하고 매혹적이며, 피부는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그랬기에 시언은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제야 약간의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나 막 잠들려는 순간, 아심이 시언의 품 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그리고 아심의 손이 시언의 풀어진 셔츠 단추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시언은 즉시 정신이 번쩍 들며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강아심!”하지만 아심은 깊이 잠든 상태라 대답이 없었다.시언은 깊은숨을 내쉬며 아심의 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아심은 무의식적으로 몸부
몇 번째인지 모를 천둥소리가 울리고 난 후, 아심은 시언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시언의 눈동자는 어둠보다 더 깊고 짙어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아심의 옆얼굴에 뜨거운 입맞춤을 남겼다.아심은 허리띠를 푸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한 번 깜빡였고, 그러더니 시언의 품에서 일어나 뒤돌아보며 나른하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심은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며 문을 닫고 잠갔다.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린 후, 아심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문에 기대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은 뒤에야 셔츠를 정리하며 욕실로 향했다.거실.시언은 굳게 닫힌 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항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의 얼굴에 희미한 냉소와 무력감이 떠올랐다.시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다. 그가 다시 거실로 돌아오자, 그의 휴대전화가 진동하며 메시지가 도착했다.시언은 화면을 확인한 뒤, 희미한 조명 속에서 그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아심이 또다시 시언에게 계좌이체를 한 것이었다.그러자 시언은 화가 나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메시지를 보내며 물었다.[그게 그렇게 만족스러웠어?]잠시 후, 아심이 답장을 보냈다.[부디 돈을 받아줘요. 거래가 끝났으니, 다음번에도 잘 협력할 수 있겠죠?]아심은 막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밖에서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가를 살짝 올렸다. 그러나 시언은 더 이상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아심은 그가 화가 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문을 열고 직접 확인할 용기는 없었다.비가 점점 더 거세졌다. 아심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한동안 기획서를 읽고, 도도희와 통화를 한 뒤, 피곤함에 이끌려 잠이 들었다.천둥소리는 계속 이어졌지만, 아심은 매우 깊이 잠들었다.한밤중.어느덧 새벽 두 시가 되었다.천둥소리에 잠이 깬 아심은 시간을 확인한 뒤 잠시 고민하다가, 이불을 챙겨 침대에서 내
[그럼 내가 방해하지 않을게. 일이 끝나면 꼭 집에 오렴.]도경수가 따뜻한 목소리로 당부하자 아심은 웃으며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뒤, 아심은 도경수의 번호를 저장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일에 몰두했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도경수가 했던 한 글자가 맴돌았다.집, 아심에게도 이제 집이 생겼다.잠시 후, 도씨 집안에서 보낸 점심이 도착했다. 5단으로 된 보온 도시락에는 네 가지 반찬과 한 가지 국이 담겨 있었다.모두 어제 아심이 식사 중에 유독 많이 먹었던 요리들이었다. 도경수는 아심의 입맛을 기억한 것이다. 아심은 마음속 깊이 따뜻함이 밀려들었고, 가족이라는 존재가 점점 더 가깝게 느껴졌다.오후에는 도도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저녁에 비가 올 테니 우산을 준비하고, 약속이 끝나면 가능한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전화를 끊고 난 뒤, 아심은 휴대전화를 쥐고 갑자기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하루는 빠르게 지나갔다. 저녁 8시쯤, 아심은 자주 가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은 뒤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의 스탠드 조명이 켜져 있었고, 강시언이 소파에 앉아 책을 들고 느긋하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이에 아심은 그에게 다가가 약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남의 집에 들어오실 때는 원래 이렇게 허락도 안 구하시나요?”“남의 집?”시언이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차갑게 내리는 비가 어우러진 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맑은 옥처럼 울렸다. 아심은 시언의 맞은편 테이블 위에 앉았다.따뜻한 조명 아래, 아심의 아름다운 이목구비에는 약간의 나른함과 여유가 섞여 있었다.“저는 이제 당신의 넘버 세븐이 아니예요.”시언은 손을 들어 아심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고 살짝 당기며 자기 무릎 위로 올렸다. 그러고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내 넘버 세븐이 아니더라도, 넌 내 재희야.”이에 아심은 매혹적인 눈빛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왜 재희가 당신의 것이죠?”시언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도도희가 말했다.“집으로 가져올 짐이 있으면 내가 같이 가서 챙길게.”강심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제가 혼자 해도 돼요. 짐이 많지 않거든요.”도경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면 일이 끝나면 꼭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외할아버지가 너랑 상의할 일이 있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그러자 양재아가 말을 받으며 웃었다.“아심이 집에 오면 내 옆방에서 지내면 어때? 우리 같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도도희는 잔잔히 웃으며 거절했다.“괜찮아요. 내가 이미 내 옆방을 정리해 두었어요. 재희와 좀 더 가까이 있고 싶거든요.”그 말에 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그것도 괜찮네요.”아침 식사가 끝난 뒤, 강시언은 아심을 회사까지 데려다주었고, 도경수는 끝까지 마당 문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했다.재아는 도씨 집안의 운전사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도경수가 시언의 차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차가운 기운이 들었다.‘역시 친자식은 다르구나.’ 재아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내가 몇 달 동안 도씨 집안에서 도경수를 모셨는데도, 강아심이 하루 있는 것만 못하네.’“가요, 늦겠어요.”재아는 시선을 거두며 운전사에게 말했다....시언은 앞을 응시한 채 운전하며 물었다.“저녁에 정말 약속이 있는 거야?”아심은 나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고 있었다. 부드러운 햇빛이 그녀의 옆얼굴에 떨어져 따뜻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정말이예요.”그러자 시언은 그녀를 힐끔 보며 말없이 운전했고, 아심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저녁에 제가 운전해서 갈 테니 굳이 데리러 오지 않아도 돼요.”“그래.” 시언은 담담히 대답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심은 가벼운 질문을 하였다.“강재석 할아버지랑 언제 강성으로 돌아가세요?”시언이 물었다.“왜 그러는데?”“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아심은 잠시 멈추었다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강재석 할아버지가 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