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여자란 말에, 사랑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그녀는 손톱으로 힘껏 손바닥을 꼬집으며 통증으로 정신을 차리려 했다.‘아마 태경에게 있어, 난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자로 보이겠지.’사랑은 깊이 숨을 들이쉬면서 결코 변명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최근에 좀 한가해서 마침 디자인 주문을 받았을 뿐이에요.”사랑은 태경과 어색한 관계로 되고 싶지 않아 먼저 한 걸음 물러났다.태경은 그녀가 이런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유정일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봤어?”사랑은 침묵했다.태경은 그녀의 고개를 치켜들며 매서운 기세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 “알아본 적 없구나.”사랑은 너무 지쳤다. 지금 아무리 설명해도 태경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도 이해가 안 갔다.‘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다니, 정말 심태경 답지가 않아.’그래서 그녀는 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남자의 타고난 소유욕 때문인가? 자신의 아내가 밖에서 얼굴을 내밀고, 다른 남자와 밥 먹고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사랑은 얼굴을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부드러운 불빛이 여자의 지나치게 아름다운 얼굴을 비추자, 촉촉한 입술은 마치 빨간 사과처럼 탐스러웠고, 달콤한 향기를 풍겼다. 태경은 저도 모르게 키스를 하고 싶었다.태경은 앞으로 다가가서 사랑의 얼굴을 들어올렸다.“그 사람 오늘 밤 네 어딜 건드렸지?”사랑은 이 질문에 좀 난처했다. 그녀는 얼굴을 돌려 말을 하지 않았다.태경의 안색은 여전히 담담했고, 목소리도 매우 평온했다. 마치 대수롭지 않은 일을 물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말해.”사랑은 입술을 깨물며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하얗고 가는 엄지손가락으로 장난치듯 사랑의 입술을 어루만졌다.태경의 목소리는 약간 잠겼다.“여기 만졌어?”사랑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었는지, 남자의 엄숙한 안색이 조금 누그러졌다.태
태경은 사랑의 말을 무시하고, 집사에게 차 대시시키라고 지시했다.사랑은 그의 소매를 움켜쥐며 억지로 정신을 차렸다.“정말 병원에 갈 필요가 없어요. 그냥 생리 온 것 같아요.”태경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요 며칠이 아닌 것 같은데.”계약 결혼이었지만, 두 사람은 부부로서 해야 할 일을 빼먹지 않았다.태경은 정상적인 남자였기에, 생리적 욕구가 있었다. 그를 만족하기엔 쉽지 않았는데, 어떨 때는 몇 번이나 사랑의 생리기간과 충돌되었다.사랑은 태경의 기억력이 이렇게 좋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얼굴을 살짝 돌리며 감히 태경의 눈을 보고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요즘 날짜가 그리 정확하지 않거든요.”태경은 응답한 다음, 사랑의 이마를 만졌는데 체온은 정상이었다.사랑은 그에게 안긴 채로 침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고 싶지 않았고, 배의 통증이 점차 사라지자, 사랑도 많이 편안해졌다.태경은 약 상자에서 진통제를 꺼내 건넸다.“약 먹고 자.”사랑은 멍하니 진통제를 받았는데, 알약을 바라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사실 지금의 태경은 확실히 친절하고 다정했다. 평소의 그는 냉정하고, 자제하고 또 까칠했으니까.잠시 후, 남자는 다시 사랑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사랑은 물컵을 받으며 나지막이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함부로 약을 먹지 못했다.‘아이를 가졌으니 조심해야 되는데...’태경은 셔츠의 단추를 풀며 물었다.“왜 안 먹어?”사랑은 아무 핑계를 댔다.“이제 좀 나아졌어요. 의사가 진통제를 먹지 않는 게 좋다고 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의존성이 생기니까요.”태경은 더 이상 자세히 묻지 않고 욕실에 가서 샤워를 했다. 그는 핸드폰을 침대 위에 던졌다.사랑은 욕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손바닥으로 배를 어루만졌다.‘아직 두 달도 채 안 되어서,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모르겠네.’사랑은 주말에 예약한 수술을 생각하니, 가슴이 벌벌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아이를 지우는 것보다 더 좋은
태경은 베란다에 가서 전화를 했다.사랑은 키가 크고 훤칠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생각보다 냉정한 것을 발견했다.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사랑은 그가 전화기 너머의 사람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태경이 전화할 때의 표정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냉엄한 미간이 점차 펴지며, 입술에 담담한 미소가 어려 있었고, 모처럼 부드러움을 드러냈다.말없이 시선을 돌린 사랑은 침대 시트를 힘껏 쥐며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진 것만 같았다.몇 분 후, 태경은 전화를 끊었다. 사랑은 분명히 인내심이 많았지만, 오늘 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녀는 작은 얼굴을 들어 태경을 바라보며 앵두 같은 입술을 오므렸다.“강세영 씨 귀국했어요?”사랑은 이미 남에게서 세영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영은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떠받드는 공주로 살았는데,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세영이 공항에 도착하자, 동창들은 이미 SNS에 사진을 올리며 그녀를 환영했다.태경은 가슴을 드러내는 짙은 색의 가운을 입고 있었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랑의 눈빛에 은근히 숨이 막혔다.“응.”사랑은 침묵했다.‘나도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태경은 화가 나든 안 나든 다를 바 없었고, 영원히 냉담한 표정을 하며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는 불을 끈 다음, 침대 머리맡의 작은 등만 남겼다.사랑은 자신을 이불 속에 숨기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코를 훌쩍거리며 눈물을 삼켰다.침대에 눕자, 태경은 사랑의 허리를 안았고, 뜨겁고 단단한 몸으로 그녀를 품에 안았다. 서로 닿은 몸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친밀했다.남자는 코끝으로 사랑의 어깨를 가볍게 문지르며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태경은 손으로 그녀의 배를 어루만졌고, 뜨거운 온도가 끊임없이 전해왔다.그는 목소리가 잠겼다. “좀 괜찮아졌어?”사랑은 태경이 자신을 부드럽게 대할 때가 가장 미웠다. 마치 그녀를 유혹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심연으로 빠지게 하는 것 같았다.두 사람 사이에 결과가 없단 것을 뻔
사랑은 묵묵히 자신에게 말했다.‘커피 한잔 타는 것뿐이니 별일 없을 거야.’사랑은 아메리카노 두 잔을 탄 다음, 대표님 사무실로 가져갔다.태경은 냉정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셔츠의 소매는 위로 말아 올렸는데, 하얀 손목마저 무척 예뻤다. 그리고 심심했는지, 손가락으로 펜을 돌리고 있었다.사랑은 소파에 앉은 세영을 보았다. 그녀는 오늘 눈에 띄는 빨간색 벨벳 탱크톱 치마를 입고 있었고, 곱슬머리를 더하니 엄청난 매력을 발산했다.세영의 미모는 화려한 아름다움을 선보였고, 이목구비가 정교하면서도 눈매가 요염했다.지금 세영은 나른하게 태경의 사무실 소파에 엎드려 있었고, 다리를 꼬며 그의 책과 서류를 이리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심심해서 그런지 힐끗 쳐다보고는 바로 던져버렸다. “태경아, 네 사무실은 검은색 아니면 하얀색이던데. 엄청 밋밋하고 지루하지 않아?”사랑은 세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당당하게 태경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사랑은 뜻밖에도 좀 부러웠다.태경은 결벽증과 강박증이 있었다.사무실 안의 서류는 덕훈조차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지만, 세영은 오히려 마음대로 던져버릴 수 있었다.또 다른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세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사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썹을 들더니 붉은 입술을 구부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사랑을 훑어보는 세영의 눈빛은 매우 차가웠다. 그녀는 자신의 불만을 숨기며 일부러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태경에게 물었다.“이 사람이 네 비서야?”대답을 듣기도 전에, 세영은 천천히 일어서서 머리를 뒤로 넘기더니 태경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왜 이렇게 예쁜 비서를 쓰는 건데?”세영의 비아냥에 익숙해진 태경은 사랑을 보더니 먼저 나가라고 했다.태경은 자신의 사생활이 들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설령 그 사람이 세영일지라도‘나와 강 비서는 지금 이 상태가 딱 좋아.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동시에 또 각자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있으니까. 강 비서도 계약서 대로 책
사랑은 세영과 화장실에서 치근덕거릴 생각이 없어, 이 말을 하고 바로 돌아섰다. 세영은 그녀를 가로막으며 두 팔을 안고 사랑을 비웃었다.“태경은 널 사랑하니?”사랑은 몸이 굳어졌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태경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침대 위에서도 오직 욕구를 발산하는 것뿐이었다.태경은 예진 그녀들에게 아주 작은 감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또는 성격이 마음에 들어서. 오래 사귀지 않았어도, 태경은 그 여자들을 아낀 적이 있었다.그러나 오직 사랑을 대할 때만 그녀를 계약을 이행하는 동료로 취급했고, 부부로 가장하는 배우로 취급했으며 유독 감정이 없었다.학교 다닐 때, 태경은 세영과 연애하기 전에도 여자친구가 많았다. 모두 엄청 예쁘거나 몸매가 섹시한 미녀들이었다. 그는 얌전하고 줏대가 없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언제나 붉은 장미처럼 열렬하고 화려한 사람들을 좋아했다.사랑은 차갑게 얼굴을 들었다.“날 사랑하든 말든, 전혀 중요하지 않아. 난 상관이 없으니까.”세영은 웃기 시작했다.“그래?”말하면서 세영은 앞으로 걸어갔고, 하이힐을 신고 있어 사랑보다 키가 더 컸다. 그녀는 허리를 살짝 굽히며 웃으며 사랑에게 귓속말을 했다.“고등학교 때, 칠판에 붙인 그 연애편지, 네가 쓴 거지?”사랑은 주먹을 꽉 쥐고서야 진정을 할 수 있었다.이 일은 오래전의 일이라서 그녀는 거의 잊어버렸다.졸업하기 전, 사랑은 용기를 내 고백의 편지를 썼고,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서 태경의 책상에 집어넣었다.그들은 귀족 학교를 다녔기에 교실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나중에 태경은 그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데다, 그의 책상에 연애편지를 넣는 여자도 셀 수 없이 많았다.그러나 누가 사랑이 쓴 편지를 주웠는지, 그녀의 이름을 자른 다음, 칠판에 붙였다.반 친구들은 폭소를 하며 사춘기 소녀가 쓴 고백편지에 손가락질을 했다. 심지어 편지에 담긴 오글거리는 내용을 일부러
눈물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지만, 사랑의 눈물은 태경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사랑은 자신이 이런 일로 상처받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이런 말을 들으니,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아팠다.심하게 아파오는 게 아니라, 마치 바늘이 천천히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아파서 사랑은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사랑은 깊이 숨을 쉬고는,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했다. 그녀는 조용히 사무실 문을 닫고, 비서실로 돌아왔다.그녀는 사인할 서류를 책상 위에 놓은 다음, 새로 입사한 인턴을 불렀다.“대표님에게 서류 좀 보내줘. 내일 쓰실 거야.”인턴은 태경을 유난히 두려워했다. 평소에 회의를 할 때도, 뒤에 숨어있다가 가끔 태경을 훔쳐보곤 했다.동료들의 말을 빌리자면, 태경은 카리스마가 넘쳐서, 화를 내지 않고 웃어도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강 비서님, 저 정말 너무 무서워요.”인턴은 평소에 잡일을 하면서, 입사한 이래 대표님 사무실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사랑이 가장 대단하다고 느꼈다. 못 하는 것이 없고, 또 무엇이든 잘 했다. 회사 일을 잘 처리할 뿐만 아니라, 태경의 사생활까지 해결 하다니.사랑은 어쩔 수 없었다. “진 비서는?”인턴은 무거운 짐을 벗은 듯 얼른 대답했다.“진 비서님은 이 비서님과 같이 나가셨어요. 곧 돌아오실 거예요.”“그럼 진 비서 기다리자.”“네.”...태경과 세영은 점심식사를 하러 나갔고, 오후 두세 시가 되어도 태경은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편한 마음으로 일을 끝낸 후 핸드폰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사랑은 오후에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사무실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컴퓨터로 임신 중 주의해야 할 사항을 검색했다.수많은 주의사항들이 튀어나왔다.사랑은 열심히 핸드폰에 옮겨 적다가 한 순간에 힘이 빠졌다.‘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데, 이렇게까지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사랑의 마음 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다투고 있었다.천사는 쓸모가 있다고 했고, 악마는
사랑은 바로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몰래 태경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태경의 부모님 앞에서 이름을 불러야 하는 것 외에, 사랑은 그를 남편이라고 다정하게 부를 기회가 없었다.설령 밤에 그런 일을 할 때에도, 그저 감정이 북받친 순간, 작은 소리로 태경의 이름을 부르며 살살 하라고 애원을 했을 뿐이었다.사랑은 침대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고생을 겪었다.태경은 힘은 너무 셌고, 소유욕도 너무 강했는데, 심지어 그녀의 감정까지 통제하고 싶었다.사랑도 점차 태경이 말도 하지 못한 채 불쌍하게 그를 바라보는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섬뜩한 괴벽이 있는 사람이야.’사랑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알았어요.”전화를 끊자, 사랑은 일찍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옷장에는 비싼 치마가 많았는데, 분기마다 제철 신상품을 보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회사에서 입을 수 있는 게 없어 사랑도 거의 입은 적이 없었다.그녀는 빨간색 치마 두 벌을 골랐는데, 색깔이 너무 화려한 것 같아 그만두었다.마지막으로 사랑은 벨벳 핑크색 긴 치마에, 진주 끈으로 허리를 매며 무척 부드럽고 아름다웠다.치마는 몸에 잘 맞았지만, 등이 좀 노출되어 있을 뿐이었다.사랑은 이렇게 노출이 심한 치마를 거의 입지 않았는데, 태경은 그녀가 이런 치마를 입고 필요한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골라준 치마는 모두 몸을 꽁꽁 감싼 스타일이었다.튀지도 않고, 예의에 어긋나지도 않았다.사랑은 주의사항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임산부는 화장도 하지 말아야 하고, 하이힐도 신으면 안 됐다.그녀는 거울 속 생얼을 한 자신을 바라보며, 이래도 예쁘다고 느꼈다.저녁 7시 30분, 사랑은 플랫슈즈로 갈아신은 다음, 집안 기사에게 클럽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차에서 내리자, 한바탕 찬바람이 불었다. 사랑은 코트로 자신을 꼭 감싸며 차가운 손을 꺼내 태경에게 전화를 걸었다.남자는 아주 빨리 받았다.“나 도착했어요.”[사람 보낼게.]클럽 안은 무척 시끌벅적
사랑은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룸 안의 빛이 어두워서 다행이지, 다른 사람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 사랑은 저도 모르게 몸을 가볍게 떨었다.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어 보였지만, 엄지손가락은 지푸라기라도 쥐듯이 태경의 손을 힘껏 쥐었다.‘태경은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거야?’사랑은 갑자기 추위를 느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에 그녀는 이까지 떨렸다.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누가 태경의 마음을 맞힐 수 있겠는가? 그의 말은 진심 같기도 또 농담 같기도 했다.태경은 어둡고 그윽한 눈빛을 하며 은근히 웃고 있었다. 그는 사랑이 자신의 손을 꼭 잡도록 내버려두며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계속 내 곁에 있을 거야? 좋아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사랑이 억지로 소리를 냈다.“네.”사랑은 고개를 숙였고, 긴 머리카락은 그녀의 표정을 가렸다.정헌은 조용히 사랑을 바라보았는데, 그녀가 확실히 예쁘게 생겼단 것을 발견했다. 미간에서는 은근히 아름다운 정취가 스며들었다. 봄기운이 물씬 풍겨, 사람을 매료시킬 정도로 매력적이었다.정헌은 사랑의 이런 모습이 좀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도 무정한 남자였다. 심지어 고의로 그녀를 놀리고 싶었다.“다시 고려해 보지 그래?”사랑은 온몸에 추위가 몰려왔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기에 이 순간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정헌은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대신 나설 수 있는데.”그는 줄곧 불 난 집에 부채질 하는 사람이었다. 태경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서, 정헌도 나름 잘 알고 있었다.태경 마음속에 없는 사람이라면, 태경의 앞에서 죽어도 그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이건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사랑은 정신을 차리고 냉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럴 필요 없어요.”정헌은 점잖게 보이고, 말도 잘하며, 부드럽고 매너 있어 보이지만, 사랑은 그와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편견은 어떻게도 숨길 수 없으니까. 사실 정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