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황에 아무리 그녀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해도 쉽게 그의 심기를 건드릴 것 같았다.창밖엔 노을이 지고 있었고 붉은 태양이 특히나 더 아름다워 보였다.강주환은 잠에서 깨어난 여자를 빤히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아름답기 그지없었고 하늘에 걸린 노을보다 더 아름다워 그의 시선을 자꾸 빼앗았다.“이렇게 얌전하게 굴면 얼마나 좋아.”그의 큰 손이 그녀의 이마에 닿더니 흐트러진 머리칼을 뒤로 넘겨주었다.“계속 이렇게 얌전하게 내 말만 듣는다면, 나도 앞으로 계속 너만 아껴줄 거야.”윤성아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강주환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일어나.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배고파요?”그녀가 나직하게 물었다. 그리곤 이내 몸을 일으키면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뭐 드시고 싶은 거 있어요? 제가 만들어 줄게요.”강주환이 말했다.“난 아무거나.”그는 비록 편식했지만, 윤성아와 함께 4년간 생활을 한 적이 있었기에 그녀의 솜씨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오늘 이미 그녀를 힘들게 했으니 그냥 대충 그가 좋아할 만한 것을 만들면 되었다.“그래요.”윤성아는 실크로 된 잠옷을 입었고 겉옷을 찾아 잠옷 위에 걸쳤다.주방으로 들어간 윤성아는 냉장고에서 식자재를 꺼냈고 빠르게 네 가지 음식과 국을 만들어냈다.두 사람은 다시 식탁에 앉아 함께 식사하게 되었다. 누구도 말 꺼내는 사람 없이 그저 조용하게 묵묵히 음식을 먹어치웠다.식사를 마친 후, 윤성아는 고개를 들고 맞은 편에 앉은 남자를 보았고 다시 4억에 관해 얘기를 꺼냈다.잘 흘러가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해졌다.강주환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네 생각엔? 네 가치가 얼마인 것 같아? 4억으로 언제까지 내 곁에 머물 수 있을 것 같은데?”윤성아가 답했다.“두 달이요.”그녀의 눈빛엔 아무런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두 달만 지나면, 그땐 대표님이 저를 놓아줬으면 좋겠어요.”강주환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는 조롱의 의미가 담긴 시선으로 그녀
안진강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강주환이? 걔가 너를 도와주고 있었다고?”안효주가 답했다.“네, 저랑 결혼할 사이니까 당연히 도와주고 있었어요. 아버지도 비록 저를 혼내고 계시지만 그래도 저를 아껴주고 사랑하시잖아요. 주환 씨도 비록 말은 그렇게 해도 저를 아껴주고 있어요.”지난번에 본 강주환의 모습과 그가 한 말을 떠올린 안진강은 강주환에게 불쾌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하지만 사망자 가족이 영주시에서 안효주를 고소하자 강주환이 안효주를 도와 이 사건을 묻히게 했다. 강주환이 말을 독하게 해도 그래도 자신의 딸을 사랑하고 아껴주고 있다는 생각에 안진강은 순간 강주환이 그리 눈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다.하지만 이 사건은...안진강이 입을 열었다.“어차피 운성시까지 달려와서 고소를 한 사람이다. 내가 직접 가서 그 딸을 만나보마. 얼마나 탐욕스러운 사람인지 직접 봐야겠다. “아니에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안효주는 바로 그를 막았다.“최근에 그 여자 엄마를 만나게 되었어요. 이 사건은 제가 그 여자 엄마와 다시 얘기하면 될 거예요.”안효주는 자신이 이번에 분명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 네가 저지른 잘못이니 네가 직접 해결하거라. 하지만 주의하거라. 태도는 반드시 진정성이 있고 부드러워야 한다. 네가 사람을 죽였으니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면 상대가 원하는 금액을 드려라.”안효주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날, 안효주는 바로 윤정월을 찾아왔다.안효주가 그녀를 찾아온 이유를 얘기하고 원하는 배상금을 주겠다고 말했다.안효주의 말을 들은 윤정월은 당장이라도 안효주를 찢어 죽여버리고 싶었다. 윤정월은 살기 가득한 눈길로 안효주를 보았다.“얼마든지 배상하겠다고? 얼마면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 너희 가문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네가 내 남편을 죽였다고! 난...”안효주는 윤정월을 찾아가기 전 이미 그녀에 대해 조사를 끝마쳤다.그녀는 거만한 시선으로 윤정월을 보며 말허리를 잘랐다.“아들이 이름이 양신우, 맞죠? 듣기로는 학
그녀는 바로 윤성아의 말을 잘라버리곤 이어서 말했다.“강씨 가문과 안씨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 가문인지 몰라서 그래? 우리 같은 평민이 정말로 그 사람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것 같냐고! 너 전에 영주시에도 고소했는데 묻혔다며. 안 그래? 네가 운성시로 와서 고소한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는데? 상대는 안씨 가문이야! 결국, 같은 결과를 보지 않겠니?”윤성아가 말했다.“같지 않아요! 전에는 증인이 없어서 그런 거지만 이번엔 증인이 있잖아요! 저희가 계속 버티면 어쩌면 이길 수도 있잖아요! 엄마, 전 포기할 수 없어요. 아버지는 억울하게 돌아가셨어요. 전 반드시 안효주를 마땅한 법으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물론 윤정월도 그녀의 같은 생각이었지만 안효주를 감방에 보내기엔 아직 한참이나 부족했다.안씨 가문은 그녀의 친딸을 죽게 했고 남편까지 죽여버린 가문이었다. 그녀가 현재 제일 보고 싶은 건 안씨 가문의 두 자매가 서로 물고 뜯는 모습이었다. 최대한 한쪽이 처참하게 무너져 그녀의 친딸과 남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안 된다! 당장 고소를 취하해!”윤정월의 태도는 완강했다. 그리고 이내 눈물을 흘리며 서글프게 울었다.“나라고 네 아버지 복수를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니? 난 꿈에서도 안씨 가문 사람들을 죽이는 꿈을 꿔! 하지만 우린 그들을 이기지 못해! 그리고 성아야, 그거 아니? 네 동생이 때린 학생 집안이 안씨 가문의 머나먼 친척 집안이야! 네가 계속 고소를 하고 있으면 네 동생이 감방 가게 된다고! 네 아버지는 이미 죽은 사람이야. 그러니 일단 네 동생부터 지켜야 하지 않겠니?! 우린 죽어버린 네 아버지를 위해 살아있는 네 동생을 감방으로 보낼 수 없어...”윤성아는 미간을 찌푸렸다.“이미 대표님한테서 가진 4억으로 신우 일을 해결한 거 아니었어요?”“그래.”윤정월은 더 슬프게 울면서 말했다.“하지만 안씨 가문의 사람들이 돈을 받자마자 마음을 바꾸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 네가 고소 취하 안 해주면 네 동생을 감방에 넣
남자는 바로 화를 냈다.“애초에 네가 네 엄마랑 함께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나?! 내가 네 아버지 사건에 증인 해주면 그 돈을 갚겠다고 말이야! 나도 들었어. 고소가 취하되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약속대로 경찰서에 가서 증언도 했어. 증인으로 법정에 서겠다고도 했고. 너희들이 고소를 진행하든 말든 사실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네 아버지가 빌려 간 돈 1억 6천도 이젠 2억이 되었지! 계약서에 사인도 했으니 반드시 네가 갚아야 해.”그들의 말엔 문제가 없었다.하지만...“전 돈이 없어요!”윤성아는 담담한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게다가 아무리 돈이 있다고 해도 절대 주지 않을 거예요.”양지강은 이런 사람들에게 속아 도박에 손을 대게 되었고 사채업자들은 일부러 그에게 돈을 빌려주어 이자를 뜯어냈다. 그랬기에 그들이 진정한 살인자였다.“이자를 잔뜩 불러서 우리 아버지 손에서 많은 돈을 뜯어냈잖아요! 그리고 당신들이 우리 아버지를 그렇게 감금하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도망칠 일도 없었어요. 빗속에서 뺑소니 당하는 일도 없다고요! 당신들의 행동은 전부 불법이라고요!”사채업자는 어처구니가 없음에 웃음만 내뱉었다. 그리곤 음험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하하, 윤성아 씨. 뭘 그렇게 고집을 부려? 자꾸 그러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그는 손을 저어 사인을 보냈다.“잡아!”윤성아는 그렇게 사채업자들한테 붙잡히게 되었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다시 한번 그녀에게 물었다.“얌전히 돈 갚을래, 아니면 널 팔아줄까? 얼굴 하나 반반하니 분명 값을 높이 쳐 받을 수 있을 거야!”남자는 손으로 윤성아의 턱을 잡고 휙휙 돌려 살펴보았다.남자의 얼굴엔 긴 흉터가 있었고 눈빛도 아주 매서웠다.“합법이든 불법이든 난 상관 안 해. 어차피 우리가 하는 일이 불법이니까!”그들은 윤성아에게 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주었고 얼른 아는 사람에게 연락해 돈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를 오늘 밤에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했다.윤성아는 핸드폰을 들었지만
강주환은 유단자였다.그는 빠르게 몸을 피하면서 동시에 틈 사이로 공격을 해왔고 바로 쇠파이프와 각목을 잡았다. 그리곤 그들 손에서 빼앗아 사채업자들과 함께 싸우기 시작했다.그들은 아주 살벌하게 싸웠다.항상 줄곧 책상 앞에 앉아 두뇌 싸움만 해오던 남자는 흡사 학생이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니, 아무리 학생 시절이었다고 해도 그는 이렇게 격하게 누군가와 싸운 적이 없었다.“움직이지 마!”경찰들이 들이닥쳤을 때 강주환은 이미 네댓 명이나 쓰러뜨린 뒤였다. 지금은 오직 그와 흉터남, 그리고 또 다른 흉터남의 부하 한 명이 서로 대치 중인 상태였다.강주환이 입고 있는 옷은 한눈에 봐도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고 귀티가 흘렀으며 절대 사채업자일 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호진 그룹의 대표님이라는 신분을 밝힌 후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윤성아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빠르게 피 묻은 겉옷을 벗어들고 윤성아 앞에 다가가 몸을 숙였다.“이젠 괜찮아, 집에 가자.”윤성아는 무릎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하늘은 어느새 노을이 졌고 붉은 노을빛이 낡아빠진 창문을 통해 들어와 눈앞에 있는 남자를 비추었다. 노을빛에 비친 남자의 그림자는 더욱 길고 거대했다.그는 검은색 정장 바지에 흰 셔츠만 입고 있었다. 비록 셔츠에 피가 살짝씩 묻어있었지만 따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준수한 얼굴을 보니 그녀는 마음이 놓였다.이마 부분엔 사채업자들한테 맞았는지 부어올라 있었지만, 그의 사람을 홀리는 미모에 전혀 영향 주지 않았다.“이제 괜찮아.”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는 달리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벗은 겉옷을 윤성아의 몸에 걸쳐주며 그녀를 꽈악 껴안았다. 그리곤 그녀를 들어 올려 차에 태웠다...강주환은 윤성아를 데리고 엠파이어 가든으로 돌아왔다.돌아온 뒤에도 그는 여전히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고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그녀를 달랬다.“괜찮아, 이젠 안전해졌어. 괜찮아, 응?”그는 계속 그녀를 달랬다.“내가 있으니까 누구도 널
강주환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길로 말했다.“그러니까 책임져.”윤성아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말까지 더듬으며 말했다.“어, 어떻게 책임을 지는데요?”“그건 네가 더 잘 알잖아.”남자는 윤성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그렇게 윤성아는 다시 강주환의 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결국, 그의 내연녀가 되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강주환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윤성아가 다시 곁으로 돌아왔기에 그는 베린 그룹과 나엽 또한 원래 상태로 돌려주었다.모든 게 그렇게 잘 흘러가는 것 같았다.윤성아는 얌전히 그의 곁에 있었다. 낮에는 집에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고 가끔 마트로 가서 장을 봤다. 그리고 밤이면 강주환과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는 것만 빼면 그녀는 강주환과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강주환도 예전보다 더 그녀를 아껴주고 있었고 매일 밤 몸을 섞고 나면 항상 그녀를 다정하게 끌어안아 마치 부부의 생활을 보내는 듯한 기분이었다.그러나 두 사람의 소식을 들은 안효주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그날, 안효주는 심지어 두 눈으로 직접 강주환이 엠파이어 가든으로 들어가고 밤새 그곳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녀는 메슥거림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생리가 언제부턴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바로 그곳을 떠났다. 너무 일찍 했던 터라 문 연 약국은 없었고 안효주는 대충 아무 약국 앞에서 문 열기만을 기다렸다가 바로 임신테스트기를 구매했다.아침이 밝고 윤성아는 먼저 일어나 강주환에게 아침밥을 만들어 주었다.기분이 좋아 보이는 강주환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저 이제 그만 집에 박혀있고 싶어요. 저도 일하고 싶어요. 다시 베린 그룹으로 돌아가도 될까요?”강주환은 바로 미간을 구겼다.“일하고 싶은 거라면 호진으로 와. 다시 원래 자리를 만들어 주지.”윤성아는 거부했다. 호진 그룹보다 그녀는 베린 그룹의 업무 분위기를 더 좋아했고 직장 동료도 그녀
방 안에 가만히 있던 윤성아는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분명히 들었다. 고은희가 큰 목소리로 강주환을 부르는 것을 말이다. 물론 안효주가 임신했다는 말도 똑똑히 들었다.‘둘이 진짜 살림 차리기로 한 건가?’윤성아는 강주환과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장장 4년을 말이다.그녀는 강주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생각처럼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은 절대 양지에 나갈 수 없는 존재임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반년 전 강주환과 송유미가 약혼했을 때 자신은 이미 떠나야 했다고 윤성아는 생각했다. 가정 있는 남자의 사생활에 끼어든 결과는 파국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파국이란 어떤 것인지 윤성아보다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죽을 뻔한 건 물론이고 아이까지 잃고 말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주환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또다시 한데 얽히고설키고 말았다.그날 밤 강주환은 백마 탄 왕자처럼 나타나서 평소의 냉철함도 잃은 채 오로지 윤성아를 위해 사채업자와 싸워줬다. 그리고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가 좋다고, 그녀 외에는 아무와도 몸을 섞지 않겠다고 말았다.하지만...‘거짓말... 역시 다 거짓말이었어. 하긴 남자가 침대에서 한 말을 믿은 내가 바보지.’만약 강주환이 말한 대로 했다면 안효주가 임신했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것도 그의 아이를 말이다.“하하...”윤성아는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얼굴에는 씁쓸함과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가슴은 커다란 돌에 깔린 것처럼 숨이 올라오지 않아 너무나도 괴로웠다.몸은 얼음물에 빠진 것처럼 추웠다. 구해줄 사람 하나 없는 차가운 얼음물 말이다.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에 윤성아는 몸을 웅크리고 다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런데도 몸은 도무지 따듯해지지 않았다.한동안 몸을 웅크린 채 가만히 있던 윤성아는 평평한 배를 쓰다듬었다. 이미 사라진 작은 생명과 다시는 생명을 품
이튿날.강주환은 안효주와 함께 운성시로 향했다. 이번에는 고은희도 함께 안효주의 친정에 방문했다. 두 집안 사람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은 그날로 사진 찍혀 뉴스로 보도되었다.운성에서 돌아온 다음 강주환은 안효주와 함께 병원에 갔다. 그리고 고은희의 요구하에 그녀는 완전히 강주환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녀의 태교를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고은희가 감시하고 있던 탓에 강주환은 이틀 연속 꼬박꼬박 집에 돌아가서 두 사람과 함께 식사했다. 그러자 그와 같은 방을 쓰고 싶었던 안효주가 잔머리를 굴리면서 말했다.“어머님, 의사가 그러는데 아이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알 건 다 안대요. 그래서 태교는 일찍 시작해야 한댔어요. 태교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남편이라는데, 저랑 주환 씨는...”안효주는 서운한 표정으로 시선을 떨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주환 씨는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저한테 항상 차갑게 굴어서 서운할 정도라니까요.”고은희는 곧바로 안효주의 뜻을 알아차렸다. 집안 출신이 마음에 드는 데다가 일찍이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싹싹하게 굴던 예비 며느리가 기특하게 임신까지 해줬으니, 그녀는 당연히 안효주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효주의 손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당장 주환이한테 말해서 둘이 같은 방을 쓰게 할 테니까!”고은희의 예상과 다르게 강주환은 단호하게 거절해 버렸다. 그리고 논리정연하게 고은희를 설득하기도 했다.“저는 한창 혈기 왕성할 나이인데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임신한 사람이랑 같은 방을 쓰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요?”고은희는 강주환의 말에 바로 설득되었다. 젊은이의 충동 때문에 소중한 손주가 다치는 것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저녁 식사가 끝난 다음 강주환은 외출 준비를 했다. 그러자 고은희가 곧바로 그를 불러 세우면서 말했다.“이 시간에 어디로 가는 거니?”강주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윤성아를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는 한시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