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래요. 내가 고유정일 리가요.”윤슬이 눈을 흘겼다.내가 고유정일 리가 없잖아. 날 낳을 때 난산으로 힘들었다고 아빠가 말씀까지 해줬는 걸.하지만 윤슬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던 성준영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아니에요. 자세히 보니까 눈이 그쪽 사모와 꽤 닮은 것 같은데.”“그냥 우연이겠죠. 이 세상에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하긴요.”“이 목걸이는 저희 아빠가 고유정한테서 챙긴 거예요. 얼마 전 삼성그룹에서 발표한 공지 봤죠?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여자를 찾는다고.”“네. 봤어요.”“아빠가 남긴 목
추궁이 섞인 부시혁의 말투에 윤슬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그게 부시혁 대표님과 무슨 상관이죠? 부시혁 대표가 제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 마세요.”“그러게. 이건 형이 좀 오지랖이었다.”성준영도 묘한 미소로 윤슬의 편을 들었다.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의 모습에 부시혁은 짜증이 치밀었다.“성준영, 윤슬 남자친구 있는 거 몰라?”“알아.”성준영이 어깨를 으쓱했다.“알면서 어떻게...”“남녀가 따로 만나면 무조건 데이트인가?”어깨를 으쓱하던 성준영이 차가운 눈빛으로 고유나를 바라보았다.“고유나 씨는 그렇게 생각하나봐
사실 육재원을 바라보는 윤슬의 눈빛에서는 우정 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사귀는 사이, 두 사람이 정말 사귀는 게 맞는지는 더 알아봐야 했다.차에 기댄 성준영은 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차키를 돌리며 누군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약 30분 후, 부시혁과 고유나가 커피숍을 나섰다.성준영을 발견한 부시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고유나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준영 씨, 왜 혼자예요? 윤슬 씨는요?”“슬이 씨는 아까 갔어요.”고유나를 훑어보던 성준영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유나 씨, 형이랑 따로
하지만 성준영의 다음 대사에 부풀어오르던 설레임은 가차없이 부숴지고 말았다.“그래서 윤슬 씨한테 대시하려고. 형은 어떻게 생각해?”부시혁은 굳은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성준영을 바라보았다.어떻게 생각하냐고? 당연히 안 되지!하지만 반대할 명분 조차 없다는 게 답답할 따름이었다.“대시하고 싶으면 해. 그걸 왜 나한테 물어?”분명 안 된다고 말하고 싶으면서도 감정을 꾹꾹 누르는 게 훤히 보이는 부시혁의 모습에 성준영의 눈동자가 반짝였다.“그래도 형한테는 말해야지.”“왜?”“어쨌든 형과 결혼했던 사람이잖아. 도의적
윤슬은 항상 부시혁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부시혁은 그것을 알면서도 한 번도 돌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부시혁이 윤슬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상대방이 돌아보지 않는 것이 매우 가슴 아팠다. 부시혁은 고개를 숙이고 답답한 가슴을 툭툭 쳤지만 아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윤슬과 육재원은 주차장에 도착했다. 육재원이 차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슬아, 네가 부시혁 이상하다고 했지? 사과를 굳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할 필요가 있을까?”“그걸 누가 알겠어?” 윤슬이 어깨를 으쓱이며 시큰둥하게 대답
육재원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말했다. “아니야,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됐어, 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지, 나도 알고 싶지 않아.” 윤슬은 육재원을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육재원은 윤슬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속으로 웃었다. 유신우가 있으면 윤슬이 더욱 안전하고 고유나는 큰 코 다칠 테니 유신우 그 미친놈이 돌아와도 좋다.육재원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자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윤슬은 육재원을 힐끗 쳐다봤다. 하지만 육재원이 왜 웃는지 물어보지 않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다음 날 주말.
“아는 사람? 누군데?” 부시혁이 꼬치꼬치 캐물었다. 고유나가 웃으며 말했다. “대학교 동창인데 나를 몰라보더라고, 시혁아 이 얘기는 그만하고 진료 보러 가자.”부시혁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각 다른 한편, 임이한은 고유나와 전화를 끊고 제일 병원 산부인과로 전화를 걸었다. “그때 말했던 여자분 병원에 갔으니 들키지 않게 조심하세요”“네, 알겠습니다 임 선생님.” 전화를 받은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임이한은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산부인과 진료실.윤슬은 육재원과 함께 진료실 앞으로 왔
부시혁은 아무것도 모른 채 고유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유나야 왔어? 인사드려, 이분은 스티븐 선생님이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심리학 교수님이셔.”고유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쭈뼛쭈뼛 다가갔다. 스티븐은 고유나에게 손을 내밀며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말했다. “고유나 씨 안녕하세요? 임 선생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진료를 잘 할 테니 걱정 마세요.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스티븐은 말을 끝내고 고유나를 보고 눈을 깜박였다. 그 순간, 고유나는 모든 것을 눈치챘다. 스티븐도 임이한이 심어 놓은 사람으로 고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