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희는 장난스럽게 웃기 시작했고 신석훈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두 사람이 동시에 손에 낀 약혼반지를 드러내자 사람들은 모두 가서 구경했다.배경원이 외쳤다.“이야, 둘이 참 오래도 숨겼네요. 언제 약혼했어요?”육경섭은 또 일관된 촌스러운 기질을 발휘했다.“이봐요. 반지가 너무 작은 데요? 이 작은 다이아몬드로 연희 씨를 꼬셔가고 싶다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머리에는 임우정의 주먹이 날아왔다.“말 못 하면 닥치라고!”육경섭의 그 잘생긴 얼굴은 억울해서 구겨졌다.“저는 이 반지가 예쁘다고 생각해요.”임수정이 부드럽게 웃었다.“다이아몬드 크기가 중요한게 아니라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마음에 달렸어요!”“맞아요, 마음이죠!”사람들이 잇달아 축복을 보냈고 강서연은 더욱 기뻐하며 직접 부케를 최연희에게 건넸다.다만 한 사람의 얼굴이 조금 어두웠다.최연준은 둘러싸인 최연희를 가만히 지켜봤다.정말 이상하다. 전에는 신석훈이 눈치가 없어 최연희의 마음을 모를 때 화가 났는데 이제는 두 사람이 정말 잘되니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어릴 때부터 아껴왔던 여동생이 시집을 간다니...남매가 각자 가정을 꾸리면 더 이상 남매가 아니라 친척이 되겠지.이를 생각하니 씁쓸한 감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여보, 왜 그래요?”강서연이 그의 팔짱을 꼈다.최연준은 가볍게 웃었고 눈앞의 사람을 보니 애틋함이 더해졌다.“연희 씨가 곧 시집간다는데 기쁘지 않아요?”“당연히 기쁘지.”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석훈 씨가 나중에 연희를 괴롭힌다면 결코 가볍게 용서하지 않을 거야!”“이 말이 맞아요!”뒤에서 갑자기 윤찬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형부가 우리 누나를 괴롭히면 나도 형부를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왜 그래요?”그 사람들이 또 돌아와서 시끌벅쩍했다.“누가 누굴 괴롭힌다고 했어요?”“맞다.”곽보미가 나와 말했다.“남양 결혼식에 특별한 의식이 있다고 들었어요. 바로 신부가 신랑의 발을 밟아야 한다
“지금...”최연준은 자수로 만든 남양 전통 가운을 입고 있어 전혀 몸을 크게 펴지 못하고 눈만 부릅뜨고 있었다.그는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방한서까지 배신 때릴줄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세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자 최연준은 꼼짝달싹 하지 못했다.“경섭 형님, 머리를 밟아야 할까요?”“그건 안 돼요. 그래도 오늘 신랑감인데 머리를 밟는 것은 불길해요!”“그럼 발을 더 세게 밟읍시다!”“너무 세게 밟으면 서연 씨가 마음 아파할 거예요.”“그러면...”배경원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그의 신발을 벗겼다.“한서 씨, 간지럽히세요!”최연준은 발버둥 치며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당신들, 너무 해요.”...햇빛 아래서 환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궁에서 이렇게 시끌벅적한 것은 오랜만이다.서지현은 잔을 들고 조용히 멀리 떨어져 서 있는데, 그곳의 떠들썩함이 부럽기도 했지만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그녀가 황궁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나석진 체면 때문이었다. 나석진이 송혁준에게 그녀를 데려오겠다고 하자 송혁준은 그녀에게 초대장을 보냈다.하지만...서지현은 비참하게 고개를 숙였다.이 결혼식에 올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부자거나 귀족들이다. 그녀는 그들의 세계에 녹아들지 못하고, 그 사람들의 눈빛에서도 그녀를 경멸하고 깔보는 것을 알 수 있다.하긴 다른 사람들은 모두 특별히 주문 제작한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는데 그녀만 자신이 수놓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아가씨, 우리 남양에서는 남의 결혼식에서 한숨을 쉬는 손님은 내쫓는다고 했어요!”서지현은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부드러운 눈동자와 마주쳤다.“전하!”그녀는 잠시 멈칫하고 부랴부랴 인사를 했다. 왼발 오른발이 잘 못 꼬여 몇 번 왔다 갔다 했는데 고라파덕 같이 웃겼다.송혁준은 웃으며 인사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전하.”서지현의 작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제가... 일부러 한숨 지은 건 아니에요! 서연 언니 결
서지현은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데 마치 화난 것 같았고 두 손으로는 옷의 술을 하염없이 잡아당기고 있다.참석한 연예인들은 모두 어진 엔터테인먼트와 정섭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모두 대스타들이다.이런 자리에는 당연히 여우주연상의 미모를 빼놓을 수 없다.서지현의 시선은 그녀만 주시하고 있었다.주아는 파란색 머메이드 스커트를 입고 다소 중성적인 메이크업을 더해 카리스마가 넘치면서 여왕 포스를 물씬 풍겼다.어쩐지 레드 카펫 킬러라더니 이런 외모 조건을 가져서 어떤 연예인이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 할까.서지현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아저씨는 계속 주아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설마 자기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심지어 둘의 대화 소리까지 똑똑히 들린다.조금 전에 나석진은 주아를 보자마자 먼저 그녀에게 크게 포옹을 했고 주아도 미소를 띠며 심지어 나석진의 볼을 만졌다.“나 배우께서 역시나 잘생겼어요?”“주아 씨도 눈부시게 아름다워요!”“듣기로는 돌아와서 가업을 물려받는 다면서요?”“저희 집에 재산이 어디 있어요!”나석진은 입꼬리를 올렸다.“우리 집에는 군대밖에 없어요!”주아는 나석진의 센스에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하지만 그녀의 웃음소리는 서지현의 귀에 너무 거슬렀다!“그만 잡아당겨요!”송혁준이 빵 터졌다.“지금 옷을 보세요...”서지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망했어! 술이 다 빠졌잖아!’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다급하고 마음이 아팠다.송혁준은 그녀가 좋아하면서도 말하기를 꺼리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애써 웃음을 참으며 위로했다.“괜찮아요, 궁에 수녀가 있으니 피팅룸에 가서 기다리면 바로 준비할게요!”“그런데...”서지현이 좀 난감해했다.“어떻게 전하에게 심부름을 시킬 수 있겠어요...”“미안하다고 생각하면 다음날에 황궁에 와서 장미빙수를 만들어 주세요.”송혁준이 웃었다.“제가 석진이의 이 옹졸한 버릇을 고쳐줘야겠어요. 어떻게 한 그릇의 얼음빙수도 나랑 따지는지!”서지현이 웃음을 터뜨리며 송혁준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누나, 너무 흥분해하지 마. 내가 하나씩 대답해 줄게. 일단 내 병이 이렇게도 빨리 나아질 줄은...”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웃음이 맴돌았다.“생각보다 빨리 좋아졌어요!”“너...”“그리고 계집애가 아니라 서지현이야. 우리는 어려서부터 궁중 예절을 배웠는데, 예절 선생님이 누나에게 사람을 존중하지 말라고 가르쳤어? 품위 있는 군주는 사람을 대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없고 존경과 존엄을 다하지 못하면 어떻게 황위에 앉겠어?”송지아는 이를 악물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셋째, 서지현 씨의 초대장은 내가 준 거야. 오늘 서지현 씨는 내 손님이야.”송혁준은 또박또박 말했다.“오늘 이 자리에서 지현 씨를 건드리면 나랑 싸우자는 거나 다름 없어. 숙부의 마음이 아직 완전히 누나한테 기울어진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야. 앞길을 망치는 거라고, 안 그래?”송지아가 소리쳤다.“송혁준!”송혁준은 더 짙은 웃음을 띠며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은 도발이 아니라 그녀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과 같다.‘언제든지 덤벼. 난 너 안 무서워!’송지아는 심호흡을 했다.그녀는 약간 놀랐다. 이런 송혁준은 낯설게 느껴졌고 등골이 오싹했다.“아, 마지막 말을 깜빡했네!”송혁준이 웃었다.“우리가 했던 거래? 누나, 그건 거래가 아니야.”“뭐라고?”“나는 최연준을 좋아해. 또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지. 이건 숨길 필요가 없어.”송지아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을 수가 없었다.“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지만 가정을 파괴하지는 않았어.”송혁준의 얼굴은 웃음기가 사라지고 진지해졌다.“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을게. 나는 단지 그 취향에 약간의 문제가 있을 뿐, 천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았어. 사람을 해친 적도 없고 더구나 극악무도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니잖아.”그는 사람을 해친 적이 없다. 정반대로 그는 어릴 때부터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남양의 많은 복지원, 자선 재단, 유기 동물 구조소, 모두
“전하...”시종이 아연실색했다.“전하, 충동적으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폐하께서 명령을 내리셨잖습니까, 서쪽 궁전에 있는 이에게는 아무도....”“왜? 이제 내 말이 말 같지 않아?”송지아가 사납게 눈썹을 치켜올렸다.“가라면 가!”시종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서쪽 궁전으로 향했다.송지아는 베란다에 서서 차가운 눈동자로 시끌벅적하게 진행되는 결혼식을 지켜보았다.그녀의 입가에 악마 같은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서지현은 수녀 두 명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탈의실에서 걸어 나왔다.망가졌던 옷은 완벽히 고쳐졌다. 수녀들의 능수능란한 솜씨로 달아놓은 황실 최고의 재료로 만든 술이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서지현은 만족스러운 듯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갔다.가던 중 결혼식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들여다보니 안엔 아무도 없었다.하객들 대부분이 정원으로 나간 것이다. 신랑신부가 이곳에 없으니 줄을 대려고 온 명문가 사람들도 자연히 함께 자리를 뜨게 되었다.풍성하게 차려져 있는 먹음직한 음식을 보니 저도 모르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그녀는 홀쭉한 배를 끌어안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걸렸다.아무도 먹지 않으니 그녀가 들어가 먹으면 된다.아까운 음식을 이대로 낭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얼마 후, 어딘가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유모가 최군형을 안고 걸어오고 있었다. 시종 몇 명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정원은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지만 실내는 상대적으로 시원해 휴식을 취하기에 적합했다.최군형은 잠자리가 불편했는지 돌연 잠에서 깨어나 우유 몇 모금 마시고는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서지현은 옷에 달린 술을 떼어내 아이와 장난을 쳤다.최군형은 곧바로 울음을 뚝 그쳤다. 검은 눈동자를 깜빡거리더니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뻗었다.서지현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받아 안았다.태어난 지 이제
송혁준이 복잡한 얼굴로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미안해요.”“미안하다고요?”최연준이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미안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그저 일의 진상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오늘은 제 결혼식이에요. 아내에게 행복한 기억을 선물해 주고 싶었으나 이런 끔찍한 일이 생겨버렸어요. 제 아들은 하마터면 다칠 뻔했고요.”“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송혁준은 황실의 비밀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저히 판단이 서지 않아 너무나도 괴로웠다.하지만 최연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최연준의 곁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아닐지라도 최선을 다해 그가 행복하기를 빌어주고 싶었다.“전하.”요섭이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전하께선 주사를 맞고 잠드셨습니다. 호위대가 서쪽 궁전으로 다시 모셔갔고요.”“알았어.”송혁준이 힘없이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전하!”요섭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누가 내보냈는지 묻지 않으십니까?”송혁준이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그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안하무인에 막무가내인 누나를 빼고 또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행복만 있어야 할 결혼식에 이런 소란이 일게 만들었으니, 그의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최연준에게 설명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서지현도 다쳤어.”나석진이 그의 앞으로 걸어가 분노한 얼굴로 말했다.“나도 마찬가지야.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고 싶어.”강서연은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멍하니 한 곳만 응시하고 있었지만, 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안정을 찾았는지 울지 않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서지현은 아직 방 안에서 치료받는 중이었다.윤정재가 일그러진 얼굴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전하, 제 직언을 용서하세요... 혹시 조금 전 그 여자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나요?”“시중이 진정제를 놓는 걸 봤어요. 양이 조금 많더라고요. 그분은 이미 약물의 도움 없이는 안 되는 단계인 거예요.”“윤 회장님.
“그때의 저는 아직 어려서 안 된다고 하니 호기심이 발동에 더 가고 싶었어요. 어느 날 담벼락을 넘어 살펴보니 서쪽 궁전은 경호가 삼엄했어요. 창문엔 철창까지 지어져 있었고요... 그곳은 궁전보다는 감옥에 가까웠어요. 으스스하고 한기가 감도는 곳이었죠.”“전 그 뒤에야 그곳에 갇혀있는 사람이 제 고모인 임월 공주라는 걸 알게 됐어요.”사람들은 모두 화들짝 놀랐다.“왜 그곳에 갇힌 거예요?”“그건 저도 몰라요.”송혁준이 고개를 저었다.“듣기론 고모님께서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고모님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시고, 숙부님께선 매년 대량의 약값을 고모님에게 쓰고 계세요. 하지만 이 일은 황실의 비밀이에요. 아무도 바깥으로 발설해서는 안 되죠.”“약값이요?”윤정재가 옅은 웃음을 지었다.“윤씨 집안에 이렇게나 많은 약이 있고, 이렇게나 많은 훌륭한 의사들이 있는데 왜 외부에 그런 돈을 쓴단 말입니까?”그는 송혁준을 보고는 뒤로 흘러나오려는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서 똑똑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황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윤씨 가문에게 약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라는 걸 말이다.황실은 윤씨 가문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계하기도 한다.“윤 회장님.”송혁준이 약간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숙부님께선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회장님에게 고모님을 치료할 방법이 있다면 전 부탁드리고 싶어요.”“고모님에 대한 폐하의 마음은 아직 깊으시거든요.”“비록 전 고모님과 별로 접촉하지 않았지만...”송혁준이 솔직히 말을 이어갔다.“그분은 제 가족이니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월 전하의 병은 치료할 수 있습니다.”윤정재가 은침을 꺼냈다.“마침 깊이 잠들었으니 침으로 혈 자리를 자극할게요. 일단 막힌 혈을 뚫어놓은 뒤 다음 계획을 세워보죠.”“고맙습니다. 윤 회장님.”“별말씀을요. 환자를 치료하는 건 제게 응당한 일입니다.”송혁준은 공손하게 인사한 뒤
강서연은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아름다운 두 눈에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그녀 역시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송혁준이 그들에게 베푸는 친절은 도를 넘어섰다.강서연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최연준은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하지만 그녀는 그를 밀어내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제가 느끼기에... 송혁준은 연준 씨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뭐라고?”최연준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여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송혁준의 행동이 너무 이상해요.”강서연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송혁준이 우리에게 지나치게 잘해준다는 생각 안 들어요? 처음에 연준 씨는 송혁준이 저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잖아요. 하지만 아니에요.”“여보, 제가 보기에... 송혁준이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이에요!”강서연의 억울한 목소리엔 허탈함까지 담겨 있었다.여자의 직감은 틀리지 않는다.그녀는 말을 마친 뒤 최연준을 등지고 돌아섰다. 최군형을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고 심장이 쿵쾅거렸다.최연준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자리에 서 있었다. 가슴 속 어딘가가 꽉 막혀 답답함이 밀려왔다.저게 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그의 마음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미친 듯이 울려 퍼졌다.‘저 여자는 엄마가 된 뒤로 이상해졌어. 종일 흥분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의심을 품고 이상한 말을 내뱉잖아. 이젠... 남자가 그를 좋아한다고?평소 자신이 어땠는지 모른단 말인가? 그런 의심을 하는 게 양심에 찔리지도 않나?상상력이 저 정도로 풍부하면 차라리 드라마 대본이나 쓰지!정말 미쳤어!’하지만 그 목소리가 조용해지자 최연준은 이내 순한 양이 되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껴안았다.“여보...”그가 코끝을 그녀의 머리카락에 파묻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눈에 봐도 그녀를 많이 사랑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이 작은 머리로 매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오늘 힘들었으니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푹 쉬어.”하지만 강서연에
“어떻게 소피아라는 걸 확신하죠?”배윤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부모님이 회사의 핵심 자료를 제게 모두 맡기셨어요. 그런데 그걸 받은 지 이틀 만에 공격을 당했죠.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요?”임지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그 자료들은 어디 있어요?”“아마 소피아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 자료들은 너무 중요해서 항상 제 곁에 두고 다녔거든요. 하지만 그날 제가 기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 가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만...”“다만 뭐요?”“법인 도장은 가방 안에 없었어요.”배윤아는 미소를 지으며 약간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법인 도장은 본사가 모든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에요. 엄마가 제게 주자마자 저는 바로 군성이에게 맡겼어요. 지금 법인 도장은 최씨 가문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어요.”“그렇다면 소피아가 자료를 손에 넣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겠군요?”배윤아는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똑똑하네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배씨 가문 사람들도 다 무능하진 않나 보네요.”“임 선생님...”배윤아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오빠가 송윤지에게 잘못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임 선생님이 우리 가문에 복수하려고 저를 납치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그런 수준 낮은 사람이 아니니까요.”임지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확실히 똑똑한 사람이네요.”그러나 배윤아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그런데... 정말 우리 오빠에게 복수하고 있는 건가요?”임지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주세요.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실 거예요.”“이미 군성이에게 연락을 했어요.”배윤아가 말했다.“군성이에게 조용히 아빠에게 알려 드리라고 했어요. 엄마는 충격을 받으시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제 상황을 오빠에겐 비밀로 해야 해요. 오빠와 소피아는 제가 조 회장님에게 잡혀 있고 선생님이 일부러 복수를 위해 조 회장님을
“설마...”“소피아!”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이름을 입에 올린 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정말 소피아일 줄이야.”임지강이 담배를 꺼내 들었다. 조 회장이 눈짓을 하자 부하가 공손히 불을 붙였다.방 안은 금세 니코틴 냄새로 가득 찼고 임지강은 잠시 침묵하며 담배 재를 털어냈다.“아마... 조 회장님도 지금 저와 같은 처지겠죠.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했다는 누명을 쓰게 됐으니 말이에요.”“그러게 말이야.”조 회장은 차갑게 웃었다.“겉으로는 온갖 아부를 떨면서도 뒤에서는 이런 음모를 꾸미고 내가 배윤아를 납치했다고 소문까지 퍼뜨리고 있더군.”“회장님과 제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의심의 화살을 제게도 돌리겠죠.”임지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연루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저 때문에 저의 매형까지 연루되면, 배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사이도 틀어질 거고요.”“그 여자는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를 자기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조 회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웃기지 말라 그래.”조 회장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임지강은 조 회장의 꽉 쥐어진 주먹을 발견했다. 그의 손등에는 화가 잔뜩 난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조 회장님.”임지강은 잠시 침묵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운산시 광산의 가격을 조작하도록 제가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두 광산은 이제 그렇게 가치 있는 자산이 아닙니다.”“알고 있어.”조 회장은 임지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이 일은 원래 자네 복수를 위해 시작한 일이야. 자네의 화가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내 수고도 헛된 게 아니야. 하지만 문제는...”조 회장은 손짓으로 방 안을 가리켰다.그때 방 안에서 배윤아가 몸을 뒤척이며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임지강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배윤아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조 회장은 잠시 망
임지강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그를 철저히 파산시키고 싶습니다.”“배씨 가문 전체를 함께 무너뜨리겠다는 뜻인가?”조 회장이 묻자, 임지강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저라면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지금은...”“지금은 마음이 약해졌다는 건가?”조 회장이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내가 알던 임지강은 그런 자비를 베풀 인물이 아닌데?”임지강도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 뒤로 누군가의 맑은 눈빛과 깨끗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이번 일은 송윤지가 부탁해서 오게 된 것이었다.송윤지는 배윤아의 실종 소식을 듣고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비록 배현진과 부부의 연을 맺지 못했지만, 배윤아와는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기에 친구로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임지강 자신도 이곳에 올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송윤지의 부탁 때문이고 또 하나는 배윤아의 납치 사건이 왜 갑자기 자신에게 덮어씌워졌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임지강은 배윤아와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사실상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조 회장님, 전 자비를 베푸는 게 아닙니다.”임지강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단지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이미 많은데 한낱 파리 한 마리와 얽혀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 녀석에게 적당히 벌을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게다가 저는 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배씨 가문을 완전히 망가뜨릴 필요는 없습니다.”“흠...”조 회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1조라... 적지 않은 금액이지. 배현진은 은행에서 전 재산을 담보로 대출받았다고 하더군. 이 일이 발각되면 한동안 꽤 고생하겠지.”“조 회장님, 사실 오늘 제가 온 이유는 다른 목적도 있어서입니다.”임지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약간 굽히며 공손히 말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손짓으로 그를 제지하며 미소를 지었다.조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배현진은 병원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었다.“그럴 리가 없어...”한참 동안 앉아 있던 배현진은 갑자기 고개를 들며 말했다.“연준 아저씨와 서연 이모는 소피아와 함께 지낸 적이 없잖아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소피아는 절대 저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이 녀석아,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고집을 부릴 거야.”최연준이 엄하게 꾸짖었다.배경원은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절망이 서려 있었다.“그만해요, 셋째 형님...”배경원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수정이가 응급실에 있는데, 이 아이와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아버지!”“꺼져버려!”배경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눈빛 너머에는 모든 걸 놓아버린 듯한 깊은 허무가 스며 있었다.배현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섰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돌아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윤아를 반드시 무사히 데려올게요. 엄마도 무사할 거예요. 우리 가족은... 예전처럼 다시 행복해질 거예요.”배경원은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잠시 후, 응급실의 불이 꺼졌다. 배경원은 화살처럼 뛰어가며 아내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의사가 땀으로 흠뻑 젖은 마스크를 벗으며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배 선생님, 사모님께서는 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뭐라고요?”강서연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일단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건, 앞으로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다들 진정하세요.”의사는 부드럽게 설명했다.“사모님의 상태가 많이 복잡합니다. 곧바로 특수 병동으로 옮길 예정이라 당분간 면회는 어려울 겁니다. 이번 주가 아주 중요한 시기이긴 하지만, 제 판단으로는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실 가능성이 큽니다.”세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며 그나마
“아내라고?”강서연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현진이와 정식으로 결혼한 적 있니? 다른 사람과 약혼한 상태에서 끼어든 건 너잖아. 명분도 없는 관계에 ‘아내’라는 말을 쓰다니, 웃음거리밖에 안 될 거야.”“최 사모님...”“갑자기 생각난 건데.”강서연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수정 씨가 쓰러졌을 때 네가 침대 옆에 있었던 거 맞지?”“아, 네.”소피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현진 씨를 대신해 효도하러 갔던 거예요. 하지만 어머님 건강이 그렇게 나쁘실 줄은 몰랐습니다.”“수정 씨가 쓰러지기 직전에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말해보렴.”소피아는 순간 멈칫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말할 수 없는 이유라도 있니?”강서연은 한 발짝 다가가며 소피아를 몰아붙였다.“수정 씨는 평소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던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쉽게 쓰러질 리 없지. 분명 큰 충격이 있었을 거야. 쓰러지기 직전 병실에 너 혼자 있었다며?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서연 이모,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배현진은 소피아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기며 소피아에게 나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복도를 따라 빠르게 사라졌다.소피아가 사라지자, 배현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서연 이모, 소피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배현진!”강서연은 배경원이 아들을 두 번이나 때린 이유를 이제야 완벽히 이해한 듯,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너 어떻게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니? 네 엄마는 지금 저 안에 누워 있어.”“정말로 소피아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배현진은 조심스럽게 입술을 핥으며 설명했다.“서연 이모, 사실 소피아도 자책하고 있어요. 그날 소피아도 윤아의 안전을 걱정하다가 엄마 앞에서 그만 실수로 말을 흘리고 만 거예요. 그래서...”“뭐라고?”최연준이 눈을 부릅뜨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배현진, 네 엄마 쓰러졌을 때 넌 방에 없었잖아.”“소피아가 제게 그렇게 말했어요.”“너...”최연준은 순간
병원 응급실 밖.배경원은 의자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충혈된 눈으로 응급실 문을 응시하며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한때 당당했던 그의 어깨는 지금 축 처져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절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배경원은 주먹을 단단히 쥐었지만,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적막이 흐르는 복도는 불길한 정적마저 감돌았다.결국,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이 조용히 뺨을 적셨다.“경원아!”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배경원이 고개를 들자, 최연준과 강서연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한 배경원을 최연준이 재빨리 부축했다.강서연은 응급실 문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는 연희 씨와 신석훈 씨의 제자들이 맡고 있어요. 모두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수정 씨는 평소 건강을 잘 관리하셨으니 금방 회복될 겁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갑자기 병세가 심각해진 거야? 그리고 윤아는...”배경원은 떨리는 손으로 최연준의 팔을 붙잡으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형님, 제발 윤아를 찾아주세요. 딸은 사라지고 아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둘 다 잃으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마세요. 둘 다 무사할 겁니다.”강서연이 단호히 말했다.“윤아는 우리 집안의 며느리예요. 누가 윤아를 해치려 한다면 최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모를 리도 없고요. 그리고...”강서연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가려다 복도 끝에서 배현진이 소피아와 함께 급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삼키고 배현진을 노려보았다.“연준 아저씨, 서연 이모...”배현진은 어딘가 죄책감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배현진은 배경원에게 다가가 팔을 살며시 부축하며 조심스레 말했다.“아버지...”그 순간, 배경원이 배현진의 뺨을 내려쳤다.배경원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배현진을 노려보며
임수정은 갑작스러운 기침을 하며 침대 옆 경보 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소피아에 의해 단호히 막혔다.“사모님, 제 말을 듣는 게 좋으실 겁니다.”소피아는 부드럽지만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제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형편없지도 않고 독을 넣을 만큼 제가 어리석지도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 모든 재료는 사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준비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진심으로 사모님을 돌보고 싶어서예요.”임수정은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임수정의 눈엔 불신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요즘 배경원은 외출이 잦아졌고 이유를 묻자, 회사 일 때문이라며 안심하라는 대답뿐이었다.그럼에도 임수정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임수정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겉으론 소피아의 말을 따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잘 생각하셨어요.”소피아는 임수정에게 쿠션을 건네며 은은하게 웃었다.“우리 결국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사이잖아요. 지금부터 제 존재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흥! 내 아들이 눈이 먼 게 분명해.”임수정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같은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지...”“저를 깔보지 마세요. 저는 이혼하고 아이도 데리고 있지만, 현진 씨를 향한 제 진심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현진 씨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겉으론 순수한 척하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짓은 안 한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임수정은 언성을 높이며 노려보았다.소피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더욱 날카롭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사모님의 그 옛날 며느리가 될 뻔했던 그 사람이에요.”“헛소리하지 마!”임수정은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그 일은 우리 배씨 가문이 송윤지에게 잘못한 일이야. 그 애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사모님,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에요.”소피아는 태연한
“너와 상관없다고?”임우정은 다급하게 외쳤다.“네 형부가 이미 윤아의 통화 기록을 조사했어. 윤아가 실종되기 전에 조 회장이랑 통화했던 게 드러났다고! 지강아, 너와 조 회장이 어떤 관계인지 나한테도 숨길 작정이었어?”임지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그래요. 저와 조 회장이 가까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와 배윤아 사이엔 원한이라곤 없잖아요... 누나, 왜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지강아!”임우정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졌다.“너, 송윤지 일 때문에 배현진을 미워하는 건 알아.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윤아한테까지 증오를 전가하면 안 되잖아!”“누나, 정신 좀 차리세요!”임지강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둠이 깃든 그의 얼굴은 단호함을 더했다.“무슨 근거로 저를 의심하시는 건데요?”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임지강의 강경한 태도에 임우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임우정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렇다면... 배씨 가문을 좀 도와줄 순 없겠니?”임지강은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맑고 투명한 송윤지의 눈빛과 마주쳤다.“배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요양원 병실 문 앞.소피아의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리며 퍼져 나갔다. 소피아의 손엔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사모님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경호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이건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거예요.”소피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에게 일부러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실래요? 아시다시피 사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세 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책임지실 겁니까?”경호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결국 길을 내주었다.“이제야 말이 통하네.”소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송윤지는 겨우 한 모금을 마시고 사레가 들어 술을 뱉을 뻔했다. 마신 술이 얼굴에 스며든 듯 송윤지의 뽀얀 볼은 어느새 매혹적인 와인빛으로 물들었다.임지강은 그런 송윤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입가에 묻은 술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임 대표님...”송윤지는 조심스럽게 임지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하지만 임지강은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아 통유리창 앞까지 데려갔다.송윤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깊고 짙은 밤하늘에 수많은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잘게 부서진 불빛들이 반짝거렸다.불꽃은 색과 모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꿈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에 들어요?”임지강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송윤지의 귀에 스며들었다.“잠깐 눈 좀 감아 봐요.”“네?”임지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별을 따다 줄게요.”마지막 불꽃이 빛의 궤적을 남기며 밤하늘로 사라지고 다시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송윤지는 미소를 지으며 임지강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뜻하면서도 약간 서늘한 남자의 손길이 송윤지의 손을 잡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가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송윤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별’이 있었다.“이건...”그것은 목걸이였다. 펜던트는 별 모양으로 깎아낸 다이아몬드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찬란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제가 해줄게요.”임지강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이건 너무 비싼 거라서 제가...”“받아줘요.”임지강의 눈빛은 따스하고도 단호했다.“그리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송윤지는 고개를 숙였다. 귀 끝까지 붉어진 송윤지의 얼굴은 마치 열이 오른 듯했다.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주었다.“사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윤지 씨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