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간호사도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사모님, 갓난아이는 다 이래요. 머리 부분이 뾰족한 건 산도에서 나올 때 짓눌려서 그런 거니까 곧 회복될 거예요. 그리고 다른 부분이... 못생겼다고 생각하세요? 전 엄청 예쁜데요? 조산사로 수년간 일했지만 이렇게 예쁜 아이는 정말 드물어요.”강서연과 최연준은 서로 마주 보며 웃다가 다시 고개를 숙여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한 번 더 보니 아까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았다.아이는 두 눈을 꼭 감고 손가락을 빨고 있었는데 통통한 모습이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아주 귀여웠다.“이 아이 양미간이 넓어서 딱 봐도 부귀하고 복이 많은 상이야.”윤정재의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최 서방, 서연아, 아이의 이름은 지었어?”두 사람은 순간 멍해졌다. 이 문제에 대해 정말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서연아.”윤문희가 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이름을 짓는 건 집안 어르신의 의견을 묻는 게 어떨까? 그러니까 내 말은 먼저 최 서방 할아버지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네...”“묻긴 뭘 물어.”김자옥이 손을 내저었다.“아이는 우리 서연이가 힘들게 고생하면서 낳은 건데 엄마가 돼서 아이 이름 하나 짓지 못해?”“자옥아!”윤문희가 눈살을 찌푸렸다.“걱정하지 마. 서연이는 우리 집에서 그런 규정 지키지 않아도 돼.”김자옥이 절친의 팔짱을 끼고 말했다.“이름을 짓는 것뿐만 아니라 윤씨 성을 따른다고 해도 난 불만 없어. 하하... 그렇지, 아들?”최연준은 이 상황에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생각을 그도 동의했다. 강서연이 목숨 걸고 낳은 아이기에 무슨 이름을 짓든 다 괜찮았다.“하지만...”속이 깊은 강서연은 고개를 들고 최연준을 쳐다보았다.“연준 씨, 할아버지께 이름을 부탁해요.”“뭐?”“이 아이는 당신 아들이잖아요. 최씨 가문의 규정에 따라야죠.”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당신 집안에 족보가 있는 거 알아요. 당신 세대는 ‘연’ 자 돌림이고 다음
강서연은 아직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유가 나오질 않아서 너무도 힘들었다.의사는 아이를 강서연에게 안겨주었다. 아이가 젖을 빠는 건 본능이라면서 빨다 보면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여러 번이나 시도해 봤지만 모유는 여전히 나오질 않았다.갓난아이는 힘이 너무 약했다. 모유가 나오질 않자 응애응애 울기 시작했고 강서연은 마음이 조급해졌다.“아니면...”최연준이 입술을 적셨다.“내가 우리 아들 좀 도와줄까?”“뭐라고요?”강서연이 순간 멈칫했다.병실에 그들 세 식구 말고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최연준은 아들을 아기 침대에 눕힌 후 강서연 앞에 앉아 옷을 벗겼다. 그러자 강서연이 소스라치게 놀랐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우리 아들은 힘이 약하지만 난 힘이 세.”“연준 씨...”강서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귀밑까지 빨개졌다. 부끄럽긴 하지만 그 방법이 통할 것도 같았다. 어쨌거나 아이가 계속 울게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여보,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알지?”최연준은 본심에 어긋나는 말을 내뱉었다.“난 그저 우리 아들이 배를 곯을까 봐...”물론 오랫동안 그녀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지 못한 탓에 말할 수 없는 엉큼한 생각을 한 건 사실이다...강서연은 옷을 벗고 고개를 숙였다.“알았으니까 얼른 해요...”최연준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가 강서연에게 다가가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그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곧이어 김자옥이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있었다.이상한 자세의 최연준을 보자마자 김자옥은 순간 멍해졌다.“너 지금 뭐 하는 거야?”쑥스러움에 고개를 돌린 강서연과 달리 최연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우리 아들이 젖을 못 먹어서 내가...”김자옥이 새로 산 에르메스 버킨백이 드디어 유용하게 쓰일 때가 온 것 같다. 그녀는 가방으로 최연준의 등을 힘껏 내리쳤다.“최연준!”김자옥이 그를 무섭게 째려보았다.“유축기가 있다는 것
“여보!”강서연은 국을 마신 후에도 배가 부르지 않아 민망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나 뭐 더 먹고 싶어요.”최연준은 김자옥이 가져온 음식을 차려주었다.“여보, 나 너무 많이 먹죠?”“많이 먹긴.”최연준이 웃으며 말했다.“기내식을 먹겠다는 소리를 안 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강서연도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음식들 모두 김자옥이 산후조리 식단 기준에 맞춰 만든 것이라 간이 되어있지 않아서 매우 담백했다. 배가 아무리 고파도 이 음식들을 보면 별로 당기지 않았다.“왜 그래, 여보?”“이거...”강서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걸 싫어했다. 지금 남편이 옆에서 챙겨주고 있고 또 시어머니가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라 이것저것 요구할 수도 없었다.꼼꼼한 최연준은 문제점을 바로 캐치했다. 음식들을 전부 맛본 후 아무 맛이 없자 다시 고개를 들고 그녀를 보며 웃었다.“먹기 싫어?”강서연이 억지웃음을 지은 후 숟가락을 들고 먹으려 하자 최연준이 말렸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작은 병 하나를 몰래 꺼냈다.그때 강서연의 두 눈이 반짝였다.“소금을 들고 다녀요?”“아무 맛도 안 나는데 어떻게 먹어?”그러고는 음식에 소금을 넣으려 하자 강서연이 다급하게 그의 손을 잡았다.“어머님이 안 된다고 하셨어요.”“또 누가 안 된다고 했어?”“그리고... 엄마 아빠도 안 된다고 하셨어요.”강서연의 목소리가 거의 기어들어 갈 지경이었다.윤정재와 윤문희도 그녀에게 산모는 음식을 담백하게 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만약 염분을 많이 섭취하게 되면 모유의 질이 나빠져 아이에게도 해롭다고 했다.“다들 안 된대요.”강서연이 그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최연준의 깊은 두 눈에 다정함이 스쳤다.“내가 된다고 했어.”“연준 씨...”“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봤는데 살짝 넣는 건 괜찮대.”최연준은 사랑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젓가락으로 소금을 살짝 찍어 음식에 넣었다.아주 미미한 양이라 맛이 별로 달라진 것도 없었지
최연준은 강서연의 귓가에 대고 다정하게 속삭였다.“이건 이미 약속한 거 아니었어? 어느 생이든 영원히 헤어지지 말고 부부로 살자.”그때 아기 침대에 누워있던 최군형이 두 눈을 뜨고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직은 엄마 아빠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 리가 없었던 최군형은 응애응애 울며 관심받길 바랐다.최연준은 황급히 다가가 아이를 달랬다. 이젠 아주 능숙하게 아이를 달래는 아빠가 되었다. 최군형이 조금 전 모유를 먹었으니 배가 고픈 건 아니겠다는 생각에 기저귀를 만져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뭔가 따끈따끈한 게 만져졌다...그러자 최연준이 환하게 웃었다.“아들이 나에게 준 첫 선물이 아주 크네.”강서연도 히죽 웃어 보이고는 베개 옆에 놓인 가방에서 수제 옷을 꺼내 최연준에게 갈아입히라고 했다.“이거 다 지현이가 만든 거예요.”강서연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을 이었다.“어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강서연이 아이를 낳은 후에 나석진을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다 보러 왔었다.“오늘 벌써 닷새째야.”최연준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윌한테서 들었는데 지현이 모든 절차를 다 밟았고 내일이면 국경선으로 압송된대.”“석진 오빠는요?”최연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사실 형님이 지현이와 함께 남양으로 돌아가서 왕실 가족과의 친분을 통하여 신분 하나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그 전제는 형님이 그러길 원해야 한다는 거야.”최연준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여보, 두 사람 걱정하지 마. 이런 일은 인연에 달려있어.”...서지현이 드디어 방을 나섰다. 요 며칠 방에 갇혀 심문을 받거나 각종 서류에 사인하고 지장을 찍은 것밖에 없었다. 지금 그녀 앞에 완전 무장한 경찰이 대여섯 명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이런 장면을 꿈에서도 여러 번 봤었다. 매번 이 꿈을 꿀 때마다 놀라서 깨곤 했지만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했다.윌이 천천히 다가와 서지현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서지
서지현은 다른 몇몇 밀입국자와 함께 선실의 한 작은 방에 갇혔고 밖에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엄청나게 큰 배라 항해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배도 함께 흔들린 바람에 배를 타본 적이 없었던 서지현은 뱃멀미를 심하게 했다.서지현은 창가 옆에 기대앉았다. 창문 문틈 사이로 짠 내가 섞인 바닷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갈색 긴 머리를 헝클어놓았다.그녀가 여러 번이나 헛구역질하자 옆에 있던 밀입국자들은 동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다들 제 코가 석 자라 동정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문을 열더니 그들더러 전부 나오라고 했다.서지현은 불편한 몸을 참아가며 밖으로 비틀비틀 걸어 나갔다. 배는 이미 영국과 멀리 떨어진 공해에 도착했고 앞으로 더 가면 유럽 대륙이었다.밀입국자들 전부 유럽 대륙에서 온 사람들이라 다시 강제 송환하지만 서지현은 달랐다.어릴 적부터 맨체스터에 살았고 송환은 그녀에게 있어서 황당무계한 일일 뿐이었다. 그녀는 어디로 송환되어야 하고 또 어디로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그녀의 머릿속이 하얘졌다.공해에 민간 배들이 여기저기 다녔는데 배의 주인들은 밀입국자를 돌려보내고 뱃값을 받는 장사를 했다.“얼른 가요!”경찰의 냉랭한 목소리에 서지현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조롱 섞인 경찰의 눈빛과 마주했다.“아가씨, 잘 가요. 앞으로 다시는 영국으로 오지 말아요.”“저...”뱃멀미 때문에 서지현의 얼굴에 핏기라곤 없었고 배가 흔들릴 때마다 자꾸 헛구역질이 났다.“얼른 가자.”집시 할머니도 이 배에 타고 있었는데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서지현의 두 눈에 괴로움이 담겨 있었다.“전 어디로 가야 할까요?”“어디서 왔으면 어디로 돌아가야지.”할머니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난 프랑스에서 밀입국했어. 오랫동안 떠나있었으니 이젠 돌아갈 때도 됐지. 써니야, 정말 갈 곳이 없으면 나와 함께 프랑스로 갈래? 어차피 우리 집시들은 정처
“네?”경찰과 서지현은 동시에 어안이 벙벙했다.“아저씨, 안 돼요...”“너 입 다물어!”나석진은 그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서지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억울함이 가슴속에서 솟구쳐 오르더니 코끝이 시큰해졌다.“여기는 공해가 맞죠?”“네...”경찰은 눈살을 찌푸렸다.“공해가 맞습니다.”“여러분은 이 사람을 국경 밖으로 호송하는 거죠?”“맞습니다.”“그러면 영국을 떠나는 한 당신들은 이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간섭 안 하는 거죠?”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어서 경찰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나석진은 앞으로 한발 다가가 서지현의 어깨를 잡았다.서지현의 작은 몸이 그에게 감싸여 있었고 그의 품은 따뜻하고 안전한 느낌이 들어 그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서지현은 제 약혼녀입니다! 저와 같이 떠나야 합니다!”...서지현은 창가에 앉아 있었고 그 아래로는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현기증을 느꼈는데 다른 점은 한 시간 전에 그녀는 배에 앉아 있었고 한 시간 후에 그녀는 헬리콥터 안에 있었다.“피곤하면 잠깐 자고 있어.”옆에 있던 남자가 담요를 던져왔다.“도착하면 부를게.”서지현은 목을 움츠리고 감히 말을 하지 못했고 이 기복이 심한 남자를 몰래 쳐다봤다.방금 전 갑판 위에서 나석진은 헬리콥터를 타고 와서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품에 안고는 그녀가 그의 약혼녀임을 선언하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또 그녀를 데리고 가버렸다...모든 것이 꿈만 같다.행복감이 꿀처럼 달콤하게 그녀의 마음속에 스며드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혼자 몰래 누릴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서지현은 나석진이 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나한테 화난 건가?’그녀는 그날 밤을 다시 떠올리자 작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아저씨...”그녀는 물컵을 움켜쥐고 불안한 듯 손가락으로 잔을 가볍게 두드렸고 목소리는 모기보다 가늘었다.“사실 내가 기회를 찾아 설명하고 싶었어요. 그날 밤 나는... 나는 술을 너무
이번에는 서지현이 어안이 벙벙했다.“무슨... 어떻게 생각하는 거요?”그녀의 마음은 두근거렸고 감히 그의 눈을 보지 못했다.하지만 공간이 제한적이어서 움직일 수 없었고 너무 가까워서 나석진의 코끝이 하마터면 그녀의... 닿을 뻔했다. 그리고 설사 피한다 해도 얼마 피할 수 없었다.남자의 따스한 입김이 그녀의 코끝을 맴돌며 점점 불길로 변해 그녀의 이성을 불태웠다.서지현은 심호흡을 하여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그녀가 어떤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신분도 없는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그의 옆에 서겠는가?“알면서 일부러 묻는 거야?”나석진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그날 밤에 한 말을 정말 다 잊어버렸어? 네가 그날 밤에 한 말이 사실이야?”서지현은 갑자기 목이 메였다.잠시 침묵이 흐르자 그녀는 눈을 들어 나석진을 똑바로 쳐다보았는데 전쟁터에 나간 여전사처럼 이를 악물고 죽을힘을 다해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만약 이 사랑이 그에게 속박이고 근심이라면 그녀는 차라리 이 마음을 평생 숨기고 싶다.“하... 아저씨, 설마 진짜라고 생각했어요?”서지현이 웃었다.“내가 그날 밤에 뭐라고 했어요? 다 잊어버렸어요!”나석진의 깊은 눈동자는 더욱 어두워졌다.“그날 무슨 말을 하더라도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취했잖아요! 하는 말은 다 취중에 하는 말이어서 믿으면 안 돼요!”“아저씨.”서지현은 웃으면서 정중하게 말하는데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찔렀다.“아저씨는 나에게 아저씨일 뿐이에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에요.”나석진의 반짝이던 눈빛이 한순간에 사라졌다.원래 모든 것이 다 자기의 착각이다.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눈을 껌벅이며 잠시 그녀를 빤히 쳐다보더니 재빨리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알겠어.”그는 웃으며 말했는데 몸 옆에 감춰둔 주먹은 힘껏 움켜쥐는 바람에 마디가 하얗게 되었다.“네가 솔직히 말해줬으니 나도 말할게.”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그날 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나를 보상할 생
“공항에 도착하면 오성에서 전용기가 우리를 데리러 올 거야.”그는 계속해서 말했다.“나는 오성에서 업무가 있으니 너는 당분간 나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어. 하지만 오성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훨씬 쉬워져. 그곳에서도 네가 신분이 없긴 하지만 최씨 가문에서 지낼 수 있어...”“서연 언니를 귀찮게 하는 건 아니겠죠?”“정 미안하다고 생각하면 애들이나 좀 봐줘.”서지현은 웃으며 담요를 몸에 덮고 곧 잠이 들었다.나석진은 잠든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손은 저절로 그녀의 밤색 긴 머리를 쓰다듬었다.며칠 동안 샤워를 하지 않아 머리가 엉켰고 얼굴도 어딘가 모르게 먼지를 묻혀 상태가 안 좋았다.갑판에서 서지현을 봤을 때 그녀의 눈에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고 작고 약한 길고양이 같았던 것을 떠올렸다.그러나 이 고양이는 결국 그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강서연은 산후조리를 마치고 최연준과 함께 오성으로 돌아왔다.최군형은 모두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먼저 증조할아버지 최재연으로부터 금괴 다섯 상자를 물려받았다.뒤이어 돌잔치가 있었는데 최씨 가문과 친분을 쌓고 싶은 각 대가족들이 잇달아 진귀한 보물을 보내 서로 돈 자랑을 펼쳤다.그다음에는 최씨 가문의 각 친척들인데 하나둘씩 관상쟁이처럼 갓 만월이 된 아기의 얼굴에서 대부대귀, 홍복제천을 볼 수 있었다.드디어 배경원과 모이는 날이 왔다.강서연과 최연준은 이른 아침 아들을 품에 안고 황급히 최씨 빌라에서 탈출했다.요즈음 그들 두 사람은 너무 접대를 많이 해서 얼굴이 굳어졌고 숨 쉴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다.연회에 사람들이 제법 많이 왔는데 배경원과 육경섭이 먼저 두 개의 큰 돈봉투를 주자 최연준에게 멸시를 당했다.“속물이야.”“둘을 용서해 주세요.”임유정이 웃으며 금귀걸이 금목걸이 금팔찌를 흔들었다.“보세요. 기념일에 저에게 준 것도 이것뿐이에요.”육경섭이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럽게 웃었다.그의 눈에는 금이 가장 값어치가 있고 돈봉투가 가장 눈에 띈다. 금빛 찬란하고 새빨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