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제가 발견한 게 있어요...”소진명이 에메랄드 반지에 대하여 말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최진혁의 전화가 울렸다. 부하가 그에게 전화를 건네줬고 그는 소진명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내자 소진명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최진혁은 느릿느릿 일어나서 전화를 받고 한참 후에야 돌아왔다.돌아온 후 그는 싸늘하게 소진명을 흘끗 보고는 말했다.“당장 나가.”“어르신.” “최연준은 지금 영국 맨체스터에 있대.”최진혁은 완전히 인내심을 잃었다.“내일은 런던에 가고 모레는 파리에 간다고 하는데. 당신은 도대체 어디서 이딴 쓰레기 자료를 찾아온 거야.”그는 구현수에 관한 모든 자료를 허공에 던졌고 자료들은 눈송이처럼 조각조각 흩어졌다.소진명은 화들짝 놀랐고 최진혁은 바로 부하가 그에게 보내준 영상을 보여줬다. 영상 속 사람은 카메라를 등지고 있지만, 옷차림이 매우 심상치 않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화면 속 배경은 바로 맨체스터의 랜드마크인 앨버트 광장이다.“그... 그럴 리가요!”“뭐가 그럴 리가 없어?”최진혁은 그를 힐끗 보았다. “최연준의 뒤통수가 피범벅이 되어도 난 알아볼 수 있어. 그리고 걔는 심심하면 앨버트 광장으로 가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데 그건 어릴 적부터의 습관이야.”소진명은 하고 싶은 말을 삼켰고 얼굴빛은 몹시 보기 흉했다.설마 정말 자신이 헛갈린 건가? 하긴, 이 세상에 닮은 사람은 참으로 많지. 그리고 최연준의 취향에 강서연과 결혼 할리가 없다.그런데 그 반지는 너무도 수상하다...“다른 일 없으면 빨리 강주로 꺼져!”최진혁은 짜증이 났다.“다른 사람 앞에서 내가 당신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는 걸 티 내지 마. 기억해,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야! 요즘 우리 집 늙은이가 날 지켜보고 있어서 짜증나 죽겠어! 문제투성이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라고!”“네.”소진명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최진혁은 차가운 눈빛에 잠깐 사색에 잠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 구현수라는 사람
“몰랐어요?”안이수는 어리둥절하더니 곧이어 심각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서연 씨와 소 대표님에 관한 소문이요. 소 대표님이 마치 뭔가에 홀린 것 같이 계속 서연 씨와 계약을 했고 그 덕분에 서연 씨가 매니저 자리에 앉게 되었다고 그러더라고요.”강서연도 멍해졌다.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런 소문이 도는 걸 언뜻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소진명도 확실히 이상한 게 연속 다섯 개의 주문 건을 성사시켰고 강서연과 협업할 거라고 그녀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였다.이런 눈부신 전적이 있으니 강서연은 승진을 안 할 수가 없다.그러나...“소 대표님과 협업한 프로젝트들은 모두 쌍방에게 유리한 협업이었어요.”그녀는 중얼중얼 거렸다.“그런데 저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왜 굳이 저를 콕 집어서 저와 협업한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야 서연 씨의 능력을 인정하니깐요!”안이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아요. 제가 보기엔 그 소문은 성소원이 퍼트린 것 같아요. 지금 권세를 잃었고 별 능력도 없으니 질투가 나서 그러는 거예요! 서연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들 모두 서연 씨를 지지하고 있으니 서연 씨 능력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요!”강서연은 고마운 마음에 그녀를 향해 웃으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러나 그녀도 잘 알고 있다. 회사에 능력 있는 사람은 아주 많고 소진명은 굳이 그녀에게 맡기지 않아도 된다. 확실히 요즘 소진명이 의도적이든 별 의도가 없든 그녀에게 접근을 시도하는데 그렇다고 남에게 알리지 못할 마음이 있는 것 같진 않다.모든 문제의 핵심은 모두 소진명이 그녀의 에메랄드 반지를 보고 시작됐다.강서연이 소진명과의 대화내용을 샅샅이 훑어보니 매번 그녀에게 문자를 보낼 때 구현수에 대하여 언급을 했다.예를 들어서 소진명은 그녀에게 구현수는 어느 도장에서 수업을 가르치는지, 요즘 본인이 헬스를 하고 싶어서 이 참에 복싱을 배우려 한다는 문자가 있었다.그리고 또 무심한 척 어떻게 구현수와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했
강서연은 휴대폰을 꺼내 최근에 소진명이 그녀에게 보낸 메시지를 구현수에게 보여줬다.“겉으로는 나의 안부를 묻지만, 실은 말끝마다 당신에 대하여 묻고 있어요.”강서연은 아주 똑똑하다.“그리고 매니저로 승진하기 전 소 대표님과 연속 다섯 개의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건 회사에서 너무도 눈에 띄는 성적이잖아요. 그리고 날 도와주는 목적도 단지 하나, 바로 당신의 정보를 얻는 거예요.”구현수는 눈을 가늘게 떴고 마음속으로 이미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그날 파티에서 소진명을 마주치고 바로 의심이 생겼다. 특히 소진명이 강서연의 반지에 관심을 보인다는 말은 더욱이 그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이렇게 보니 소진명은 최진혁의 사람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구현수은 피씩 웃었다.‘둘째 삼촌 마음이 너무 급한 거 아니야? 나를 감시하게끔 사람을 붙인다고 하여도 이렇게 정체가 쉽게 드러나는 사람을 찾을 필요는 없지 않아?’그러나 만약 최진혁이 그가 지금 있는 곳은 맨체스터가 아닌 강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그는 눈앞에 서있는 단순하고 착한 강서연을 바라보았고 그는 그녀가 절대 최진혁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는 그녀를 보호하여야 한다.“소 대표님이 정말 이상한 것 같은데 또 그가 왜 이렇게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왜 당신 소식을 알아내려 하는 거죠?”강서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여보, 혹시 예전에 누군가에게 미움을 샀고 마침 그 사람이 소 대표님과 아는 사이여서......”“아니야.”구현수는 미소를 보였다.“난 이미 예전 생활을 모두 정리했고 그 사람들이랑 다시 엮일 일이 없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알겠어요.”강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당신도 걱정하지 말아요. 소진명에게 당신에 관한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어요.”“뭐?”그는 조금 의외였다.강서연은 웃으면서 말했다.“물을 때마다 그냥 얼버무렸어요. 어느 도장에 있는지 을 때 그냥 다른 헬스장을 추천해 줬고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할 때 이미 지하철에 탔다고 답
구현수는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고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뽀뽀를 하였다.“여보, 복싱과 같은 스포츠에서 선수들이 경기 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는 궁금증으로 가득 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구현수는 음흉한 웃음을 짓더니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두 글자를 내뱉었다.“금욕.”강서연은 멍해졌다.“경기 전에 너무 즐기고 링에 올라서면 손발이 나른해져. 그러면 시합은 무조건 지는 거지. 이게 다 당신 탓이야.”구현수는 그녀를 바라보며 붉게 물든 그녀의 작은 귓불을 살짝 만지작거렸다.“당신을 보면 난 참을 수가 없어. 맨날 같이 있으면... 어떻게 금욕을 할 수 있겠어.”“당신...”강서연은 뾰로통하여 그를 노려보았고 크고 예쁜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본인의 자제력이 약하면서 여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는 건 여전히 똑같다.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고 인정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 동작은 그의 눈에는 유혹으로 보였다. 뜨거운 기운이 갑자기 그의 몸을 타고 올라왔고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구현수의 입꼬리는 올라갔고 그녀를 소파에 홱 눕혔다.“왜 그래요...”강서연은 몸을 움직이며 낮은 목소리로 저항했다.“금욕해야 한다면서요.”“훈련은 내일부터 하는 거니.”그는 재빨리 가운 끈을 풀고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오늘 저녁은... 금욕이 없어!”.......“형, 아까 제가 한 얘기 다 들었어요?”유찬혁은 급한 나머지 땀투성이가 되었다.“빨리 말해봐요.”구현수는 멈칫하였고 그는 그제야 자신이 딴 곳에 정신을 팔렸다는 걸 알았다. 그는 가볍게 기침 두 번을 하고 넓은 리클라이너에서 일어나 천천히 창문가로 걸어갔다.5대 재단의 업무보고는 이미 끝났지만,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이렇게 중요한 자리에서 정신을 딴 곳에 판 건 이번이 처음이다. 머릿속에는 온통 그녀의 실루엣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구현수는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는 낮은 목소
구현수는 뚫어지게 창밖을 바라보았고 먼 곳의 런던 대교는 온통 안갯속에 잠겨 있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짜증이 난 채 미간을 찌푸렸고 관자놀이가 아픈 나머지 퉁퉁 부었다.‘한평생 그녀를 속인다고? 그럴 리가. 언젠가 그녀가 알게 될 것이다.’그러나 최 씨 가문의 통에 따르면 그와 혼인하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세 가문의 여인이어야만 한다. 만약 강서연이 최 씨 가문에 시집을 온다면 그녀가 무슨 일을 당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제일 중요한 건 그가 대신 사용하고 있는 신분은 구현수 것이다...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구현수의 신분증을 꺼냈다. 신분증 위의 그 사람은 그와 매우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는 결국 그가 아니다.“형.”배경원은 비록 똑똑한 편은 아니지만 EQ는 아주 높다. “그 “훈련” 그냥 앞당겨 끝내죠. 영국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도 어차피 자질구레한 것들만 남아 있으니 그건 저희 둘이 마저 처리할게요. 그러니 형은 이만 빨리 돌아가서 형수님을 만나서 어서 그리움의 고통을 덜어내세요.”구현수는 이 말에 표정이 살짝 변했고 몸을 돌렸다. 런던에 온 며칠 동안, 그는 처음으로 이러한 홀가분한 미소를 보인다.유찬혁은 은밀하게 배경원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웃었고 짐 정리하고는 떠날 준비를 하였다. 이때 방한서가 갑자기 들이닥치고 당황한 표정으로 구현수를 바라보았다.“도련님!”“왜 그래?”방한서는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강주에... 강서연 씨한테 문제가 생겼어요!”......강서연은 이미 심문실에서 하룻밤을 꼬박 보냈다.이 작은 방 사방은 온통 희끄무레한 벽에 창문도 없이 음산한 기운만을 풍기고 있다. 천장 네 귀퉁이에 모두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여러 각도에서 그녀를 촬영하고 있고 CCTV 뒤가 바로 감시실이다.유니폼을 입고 있는 관계자들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그녀의 표정과 행동을 관찰할 수 있다.강서연의 작은 얼굴은 창백하고 눈빛은
“헛소리예요!”강서연은 흥분을 하여 온몸을 떨며 책상을 힘껏 두드렸다.“저 그런 적 없어요! 없다고요! 누가 지금 헛소문을 퍼트리고 있는 거예요? 성소원인가요? 그녀더러 직접 제 앞으로 와서 말하라고 하세요!”“조용히 하세요!”심문관이 책상을 힘껏 두드렸고 그의 고함소리가 방 전체를 뒤흔들었다.“여기가 어딘 줄 알고 지금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거예요?”“제가 한 적 없는 일은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강서연은 온몸이 차가워졌고 입술을 꽉 깨물고 애써 자신을 진정시켰다.“그 플랜은 제가 쓴 것이 맞지만 줄곧 컴퓨터 안에 파일 형식으로 저장되어 있었고 종이파일은 서랍에 잠가뒀어요. 그게 왜 경쟁사의 손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내부에 범인이 있다면 분명히 몰래 파일을 훔쳐서... 그러니 회사의 모든 CCTV를 철저히 조사해 주세요. 제 사무실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모두 혐의가 있어요!”“강서연 씨, 영업팀 매니저로써 부하가 당신 사무실로 드나드는 건 아주 정상적인 일 아닌가요? 그리고 CCTV를 조사한다고 하여도 단순히 CCTV 화면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범인으로 몰수가 없어요.”“그렇다면 상대 회사의 일방적인 말만 믿고 제가 회사 기밀을 팔아먹었다고 할 수도 없잖아요!”“당신...”심문관은 눈을 부릅뜨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무선기에게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서연 씨 어머니는 정신적 질환이 있고 남동생은 미성년자네요. 그리고 강서연 씨는 기혼상태인데 남편은 전과 기록이 있는 사람이고 지금 연락이 안 되는 상태예요. 그걸 돌파구로 한번 얘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네.”심문관은 웃으면서 이어폰을 뺐다.“강서연 씨,”그는 천천히 일어났고 마음속으로 계획을 세웠다.“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남편을 위해 생각해 보세요. 남편은 이미 전과가 있는데 설마 당신도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에 오점을 남기고 싶어요? 당신들 부부 앞으로 어떻게 고개를 들고 살아가려고요?”......유찬혁은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가는 길 내내 구현수는 어두운 표정을 짓고 미친 듯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유찬혁은 여러 번 자신이 하마터면 창문을 따라 날아갈 뻔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물리 수업시간에서 구심력 원심력에 대하여 배운 적이 있는데 오늘 정말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날카롭고 다급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차량이 급하게 경찰서 입구에 세워졌다.구현수는 경찰서로 성큼성큼 걸어갔고 걸음걸이는 마치 지옥에서 걸어오는 수라와 같았다. 들어간 후 그는 날카로운 칼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사람들을 둘러보았고 마침내 문 하나가 살짝 열리면서 여경 두 명이 강서연을 데리고 안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보았다.“서연아!”그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강서연은 그의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하룻밤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는 그의 품으로 달려갔고 작은 손으로 그의 옷을 꽉 잡자 안정감을 주는 그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음속 깊이에서 올라오는 서러움이 갑자기 목구멍에 막혔고 그녀는 차마 큰 소리로 울지 못하고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구현수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낮은 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위로의 말을 전했다.품속의 여인은 계속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 주었고 그녀의 빨갛게 부은 눈두덩과 창백한 얼굴을 보니 가슴이 너무도 아파왔다.“무서워하지 마, 내가 있으니깐.”강서연은 이제야 마음이 놓여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유찬혁은 수속을 마치고 걸어와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구현수의 눈빛에 한걸음 물러났다. 유찬혁은 혀를 내두르며 어쩔 수 없이 한쪽에 서서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차마 뭐라 하지도 못하고 결국 옆에서 마른기침을 하였다.강서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구현수의 품에서 떨어지고는 몸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이분은...”“내가 전에 말했던 유 변호사야.”구현수가 먼저 대신 입을 열었다.“감옥에 있는 범인에게 법률 원조를 제공해 주는 전문 변호사야.”유찬혁은 눈을 크게 뜨고
구현수가 큰 소리로 기침을 하자 유찬혁은 바로 입을 다물고 운전에 전념했다.“여보.”강서연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얘기했다.“이 일이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 외에 다른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계속 심문을 해도 인정하지 않으니 심문관이 당신 얘기까지 꺼내면서 당신을 생각해서라도 빨리 죄를 인정하라고 하더라고요.”“그래서 뭐라고 했어?”“그냥 계속 침묵을 유지했어요.”여자의 얼굴은 초췌했지만 눈빛 속 그 강인함은 여전히 또렷하였다.구현수의 가슴이 떨렸고 큰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만지작 거렸고 그녀를 더욱 애석하게 여겼다.다른 여자였다면 심문관이 소리를 질렀을 때 이미 겁에 질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인정했을 것이다.그러나 강서연은 연약한 외모 아래 억척스러운 영혼이 있어 목에 칼을 들이대도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구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유상종이라고 그녀의 그러한 성격은 그와 참 비슷하다. “네, 잘하셨어요.”유찬혁도 그녀를 칭찬해 주었다.“누구의 잘못인지 결론이 나기 전에 당사자는 말을 아낄수록 좋아요. 남은 일들은 변호사가 처리할 테니 그렇게 하면 많은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어요.”강서연은 구현수의 어깨에 기댔다. 차가 약간 흔들렸고 심문실에 하루종일 갇혀 있어 정신을 고도로 집중한 상태였던 그녀가 갑자기 긴장이 풀리니 약간의 졸음이 몰려왔고 곧 잠이 들었다.구현수는 앞에 있는 유찬혁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에게 운전을 평온하게 하라는 사인을 보내고는 여자를 품에 꼭 껴안았다.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강서연은 곤히 잠들어 있었고 구현수는 그녀를 안아 집에 들어선 뒤 침대에 눕히고 조심스럽게 외투를 벗겨주었다.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한 바퀴 둘러보며 문제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천천히 방에서 나왔다.유찬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형, 저 지금 숨도 편히 못 쉬고 있어요. 형 와이프의 꿀잠을 방해할까 봐...”구현수는 바로 서늘하고 엄숙한
임지강은 처음에는 거절하려 했지만, 입이 머리보다 빨랐다. 임지강은 바로 승낙해 버리고 말았다.“가원아,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러 가는 곳이 어디야?”“음...”최가원은 한참 고민하다가 대답했다.“남성이라는 곳이에요. 이름이 뭐더라... 아, 스튜디오였던 것 같아요!”임지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온 뒤, 최가원이 어설프게 짜맞춘 주소를 토대로 검색해 본 끝에 정확한 위치를 찾아냈다. 그곳은 개인 고급 웨딩드레스 브랜드로 디자이너는 오성에서 최고로 손꼽히며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이었다.임지강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냉소적인 생각에 잠겼다. 이런 곳을 배현진이 직접 찾았을 리 없었다. 아마도 배윤아의 뜻에 따라 이곳으로 예약한 게 틀림없었다.생활비조차 반반 나누는 남자가 이런 고급스러운 장소에 돈을 쓸 리는 없어 보였다....주말에 남성에서.배현진과 송윤지는 약속한 시간에 맞춰 웨딩드레스 매장에 도착했다. 최가원은 화려한 드레스를 처음 본 터라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꼭 궁전에서 뛰노는 작은 토끼 같았다.수석 디자이너인 마리가 두 사람을 직접 맞이했다.“두 분, 오래 기다리셨죠?”화려한 꽃무늬 두건을 두르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독특한 스타일의 디자이너가 나타나자, 송윤지는 깜짝 놀라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에헴! 저는 Mary... 아니, 마리입니다!”“제 이름의 ‘리’는 날카롭다는 뜻이지,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에요!”송윤지는 고개를 숙이고 겨우 웃음을 참았다. 배현진이 간단히 인사를 마친 뒤, 송윤지도 한 발짝 나서서 인사를 건넸다.마리는 송윤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이분은 정말 제가 본 신부 중 가장 아름다운 신부예요! 좋아요, 우선 신부 화장을 먼저 시험해 봅시다. 신랑분은 서두르지 마시고 잠시 밖에서 대기해 주세요.”배현진은 이 모든 일이 자기와는 무관하다는 듯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을 본 송윤지는 웨딩드레스를 입으러 올 때만 해도 설렜던 마음이 한순간에
“원래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임우정이 웃으며 강소아를 끌어당겼다.“지강아, 잘 왔어. 오늘 점심은 집에서 먹고 가. 군형이랑 소아한테 기쁜 소식이 있거든!”“뭔데요?”“나, 곧 또 외할머니가 된다니까!”임지강은 순간 멍해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강소아는 얼굴이 붉어져서 최군형의 어깨에 기대어 다정한 모습으로 안겨 있었다.“소아가 또 임신했어요.”최군형은 환한 얼굴로 말했다.“지금 딱 석 달 됐어요. 상태도 안정적이고 특별히 힘든 것도 없어서 모든 게 좋아요!”“아, 축하해.”임지강은 축하의 말을 입에 올리면서도 속으로는 생각했다.정말이지...방금 매형과 누나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나온 것도 모자라, 이번엔 이 두 사람까지. 이 집안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 외로운 싱글을 괴롭히려는 건가?“와! 할아버지다!”땀에 흠뻑 젖은 최가원이 신나게 마당에서 달려 들어왔다.손에는 장난감 총을 들고는 임지강을 향해 두 번 쏘는 척했다.임지강은 맞은 척하며 소파 위로 쓰러졌고 최가원과 장난을 주고받으며 한바탕 웃음소리를 터뜨렸다.“할아버지, 우리 마당에서 놀아요!”가원이는 임지강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손을 잡아끌어 마당으로 데려갔다.임지강은 거실의 온갖 다정함이 가득한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오히려 기뻤다.마당에서 최가원은 깡충깡충 신나게 뛰어다녔다. 하지만 뒤따르던 임지강의 표정에는 어딘가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최가원이 임지강의 손을 잡아당기며 얼굴을 들어 물었다.“할아버지, 왜 저랑 안 놀아줘요?”“가원아, 우리 잠깐 앉아 있을까? 응?”“네!”최가원은 얌전히 임지강의 무릎 위에 앉았다.그리고 작은 손으로 그의 이마를 살짝 쓸어내렸다.임지강은 최가원의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너희 엄마 뱃속에 작은 아기가 있는 거 알고 있어?”“알아요!”“그럼 동생이 남자아이였으면 좋겠어, 아니면 여자아이였으면 좋겠어?”“음... 남자아이가 좋겠어요!”“왜?”“남자아이는 내가 때려도 되잖아
다음 날, 송윤지는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임지강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송윤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임지강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녀를 긴장하게 했다.“송윤지 씨?”임지강은 속에서 밀려오는 기쁨을 간신히 억누르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왜 전화하셨어요?”“저... 언니 일에 대해서 들었어요.”송윤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임 대표님이 도와준 거 알아요. 정말 감사드립니다.”“아, 별거 아니에요.”임지강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조 회장이 예전에 우리 형부랑 좀 인연이 있었거든요. 이번에 형부 대신 옛정을 나눈 셈이죠.”“임 대표님, 제가 식사 대접해도 될까요?”송윤지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지난번처럼요. 집으로 오세요. 제가 요리를 준비할게요.”임지강은 심장이 터질 듯했다.너무 기뻐서 당장이라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달려가 소리치고 싶었다. 송윤지의 초대에 바로 좋다고 대답하고 싶었고 그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그는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고 마음을 진정시켰다.임지강은 감정을 숨기며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괜찮아요.”송윤지는 살짝 실망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말했다.“사실... 우리 언니가 초대하고 싶어 했어요. 임 대표님이 도와준 일에 정말 고마워하고 있어요. 빚 문제뿐만 아니라 이혼까지 도와주셨잖아요...”“정말 괜찮다니까요.”임지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제겐 별거 아닌 일이었어요. 너무 신경 쓰지 마요.”“임 대표님...”“미안하지만, 제가 지금 일이 좀 있어서, 이만 끊을게요.”전화가 끊기며 화면이 꺼지자, 송윤지의 눈빛도 함께 어두워졌다.임지강은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부하가 다가와 흔들어 깨우기 전까지 그는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 듯했다.“이 서류, 서명하실 건가요?”“아...”임지강은 정신을 차리고 서류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서명하려고 펜을 들었다. 그리고 서류의 엉뚱한 곳에 서명할 뻔했다.부하는 임지강
“윤지야.”배현진이 송윤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내 말 이해했어?”송윤지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송윤지는 배현진의 말을 이해했다.결혼 후에도 서로 독립적으로 생활하며, 각자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생활비도 나눠 부담하겠다는 의미였다. 또한, 가정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도와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돕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은 아니다.물론, 배씨 가문은 명문 가문으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이다.반면, 송윤지처럼 소박한 가정에서는 골치 아픈 일이 끊이지 않는다.“현진 씨.”송윤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결혼 전에 계약서도 작성하자는 건 아니겠지?”“어떻게 알았어?”배현진의 눈이 반짝이며 웃음을 지었다.“송윤지, 네가 드디어 내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구나! 정말 너무 기뻐.”“그래... 그렇구나.”송윤지는 멍해졌다. 그저 배현진의 의도를 떠보려고 한 말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긍정적인 대답을 듣게 되었다.“결혼 전 계약서는 반드시 작성해야 해.”배현진은 단호하게 말했다.“요즘 외국에서는 젊은 부부들이 거의 다 이렇게 한다고. 나는 해외에서 오래 살면서 이런 관념에 익숙해서 결혼 전 계약서 작성하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 결혼 전에 모든 걸 명확히 해두면, 나중에 이혼하게 되더라도 불필요한 갈등이나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잖아. 그게 양쪽 모두에게 좋은 일이야.”“너...”송윤지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이혼까지 생각하고 결혼하는 거야?”배현진은 가볍게 웃었다.“그냥 대비하는 거야. 물론 아무도 이혼하려고 결혼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미리 준비해 두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해.”배현진이 덧붙였다.“나는 항상 미리 준비해 두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송윤지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이런 관계를 맺는 방식은 논리적으로는 틀릴 게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독립적이어야 하고 결혼한 후에도 경제적으로 각자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하지만...만약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지 못하고 함께 고난을 이
며칠 동안, 송윤지는 유치원 앞에서 임지강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최가원을 데리러 오는 사람도 최씨 가문의 가정부와 경호원으로 바뀌어 있었다.송윤지는 방과 후 시간이 되면 이유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임지강을 찾곤 했다.스스로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임지강의 모습이 송윤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그날, 아파트로 돌아온 송윤지가 막 문을 열려고 할 때, 맞은편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배현진이 미소를 띤 채 서 있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와 송윤지와 마주 섰다.“나... 주전자가 없어서 그러는데 혹시 차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을까?”송윤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배현진을 안으로 들였다.송윤지는 자연스럽게 실론 홍차를 우려내어 가져왔지만, 배현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왜 그래?”“나는...”배현진은 송윤지를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나는 이런 차를 좋아하지 않아.”송윤지는 놀라서 멈칫했다.사실 송윤지는 배현진이 어떤 차를 좋아하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이 실론 홍차는 며칠 전 임지강이 왔을 때 마셨던 차였다.송윤지는 얼굴이 붉어졌다. 약간 당황한 기색으로 차를 바꿔오려 하자 배현진이 송윤지를 붙잡았다.“송윤지, 우리 진지하게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송윤지는 배현진의 눈을 보며 조용히 맞은편에 앉았다.“지난번엔... 내가 잘못했어.”배현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너와 임지강 씨의 사이를 오해한 것도, 너한테 그렇게 심한 말을 한 것도 다 미안해. 내 약혼자를 믿어야 했었는데...”송윤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네 형부의 60억은...”배현진이 잠시 말을 멈췄다. 송윤지는 약간의 기대와 함께 긴장한 표정으로 배현진을 바라봤다. 마치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초조한 마음이었다.“내 의견은 여전히 같아.”배현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분명했다.“이 빚은 그 사람의 문제야. 그 사람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
정지한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생각했지만, 그런 사람은 기억나지 않았다.“제 사업은 모두 부하들에게 맡기고 있습니다.”정지한은 솔직하게 말했다.“매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빌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죠.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겁니까?”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오강호라는 사람은 놀고먹으며 도박에 빠진 쓰레기 같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분은...”임지강은 잠시 멈춘 뒤 말을 이었다.“그자는 제 아내의 형부입니다.”“아내의 형부라고요?”“그렇습니다.”임지강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오강호이라는 자가 대담하게도 제 아내를 담보로 삼았습니다. 돈을 갚지 못하면 정 회장님의 사람이 와서 제 아내를 데려갈 거라고 말했더군요.”“세상에, 그런 일이 있단 말입니까?”정지한의 표정이 한순간에 심각해졌다.그때, 누군가가 정지한의 귀에 몇 마디 속삭였다.정지한은 문득 깨달은 듯 눈에 서늘한 빛을 띠었다.“며칠 전, 제 부하 둘이 잡아간 게 당신 짓이었군요!”임지강은 여유롭게 대답했다.“그들은 제 아내를 괴롭히러 왔습니다. 경찰에게 넘긴 건 오히려 가벼운 처벌이죠.”“임지강 씨...”정지한은 순간 자신이 경찰과 함께 함정에 빠진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정지한이 눈짓을 보내자, 주위 부하들이 순식간에 총을 꺼내 임지강에게 검은 총구를 겨누었다. 하지만 임지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 차가운 표정으로 그들을 응시했다.그의 눈빛은 압도적인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다.“정 회장님, 오늘은 진심으로 대화하러 온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경찰은 데려오지 않았습니다.”정지한은 눈을 굴리며 부하들에게 총을 내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곧이어, 누군가 오강호가 작성한 고금리 대출 차용증을 가져왔다.차용증에는 분명히 쓰여 있었다.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송윤지를 담보로 넘기고 정지한이 원하는 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차용증은 여기 있습니다. 임 대표님, 혹시 제가 이걸 찢어버리길 원하는 겁니까?”
며칠 후, 부하가 초대장 한 장과 함께 정지한이라는 사람의 자료를 임지강 앞에 가져왔다.“정지한이라는 사람은 줄곧 운산시 암흑가에서 활동한 인물입니다. 오성에서 세력은 크지 않지만,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세력을 넓히려 하고 있습니다.”“그래서.”임지강은 자료를 대충 넘기며 말했다.“결국 성공했어?”“그다지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부하가 웃으며 대답했다.“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오성은 원래부터 대표님 매형의 영역입니다. 경섭 형님은 암흑가에서 손을 뗐지만, 그분의 영향력은 여전히 정지한보다 훨씬 큽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뭔데?”“정지한은 사람을 다루는 데 능숙한 사람입니다. 오성의 소규모 세력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죠. 더구나 경섭 형님은 이미 암흑가 일에 손을 뗐기 때문에, 정지한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규칙에 따라 경섭 형님은 아무리 영향력이 있어도 이런 일에는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지한의 주요 사업은 카지노와 고금리 대출입니다. 운산시와 오성 양쪽 모두 그의 카지노와 대출 사업이 자리 잡고 있죠. 오강호가 바로 정지한이 운영하는 카지노에서 돈을 잃었고 그 60억도 정지한에게 빌린 돈입니다. 다른 소규모 세력들도 이 일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정지한의 일이기 때문에 암흑가의 규칙을 깨뜨릴 수 없거든요.”“음...”임지강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초대장을 흘깃 쳐다보았다.“이번 주말, 정지한이 새로운 카지노를 개업한다고 합니다.”부하가 말했다.“대표님이 경섭 형님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곳에서 만나자고 한 것 같습니다.”임지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말했다.“알았다.”부하가 물러난 뒤, 임지강은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니코틴 냄새가 임지강의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임지강은 예전에 담배와 술을 손에서 놓지 않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송윤지와 헤어진 후 모든 것을 끊어냈다.임지강은 송윤지를 위해 바뀐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송윤지를 위해 나서기로 마음먹었다.주말이
임지강은 송윤지가 환하게 웃으며 배현진을 집 안으로 들이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문이 철컥 닫히는 소리와 함께 임지강의 심장은 얼어붙는 듯했다. 그는 복도를 서성이다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분을 삼키지 못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배현진이 왜 여기 살고 있는 거야?”전화를 받은 부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 몰랐기 때문이다.임지강은 눈을 감고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깊이 숨을 들이쉰 뒤 천천히 내쉬었다.“그러니까 배현진이 어떻게 마린 광장 아파트로 오게 됐는지, 왜 하필 내 집 바로 건너편인지 그 이유를 묻고 있잖아!”“그게...”“당장 조사해!”임지강은 전화를 끊고 화를 억누르지 못한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하가 다급히 조사 결과를 보고해 왔다.“임 대표님, 배 도련님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배씨 가문의 소유가 아닙니다. 벤처 투자로 번 첫 수익으로 구입한 개인 자산으로 확인되었습니다.”“그런데 왜 하필 여기야?”“그게...”부하는 난감해하며 말했다.“아파트가 워낙 인기 있다 보니, 사고 싶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죠.”임지강은 가슴속에서 화가 들끓었다. 송윤지 집 앞까지 천천히 걸어가 그곳에서 한참을 서성였다.이 아파트는 최고급 자재로 지어진 데다 방음까지 완벽해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배현진... 오늘 밤 이곳에 머무를까?사람들은 흔히 떨어져 지낸 사이는 더 애틋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아니야!임지강은 즉시 부정했다.송윤지는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결혼하지 않는 이상 절대 자신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예전에 자신과 함께했던 시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머릿속이 복잡한 상념으로 뒤엉키며 부적절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임지강은 두 주먹을 꽉 쥐었고 팔뚝에는 핏줄이 터질 듯 도드라졌다. 그리고 두 눈은 문에 고정되었다. 이성을 붙들고 있던 끈이 조금이라도 풀리면 당장이라도 문
“뭐라고?”임지강은 고개를 돌려 최가원을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고 품에 살짝 안아 올렸다.“가원아, 집에 데려다줄게.”“그럼, 할아버지는 어디 가려고요?”“나는 놀이공원에 가볼까 해.”최가원은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나도 갈래요!”“미안해, 가원아.”임지강은 최가원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오늘은... 함께 갈 수 없어. 할아버지 혼자 있고 싶어.”최가원은 살짝 입을 내밀었지만, 떼를 쓰거나 울지 않았다. 늘 자신을 아껴주던 할아버지의 얼굴에 무거운 고민이 담겨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그의 마음속 고민이 혹시 송 선생님과 관련된 걸까?작은 공주는 반짝이는 눈으로 잠시 고민하더니, 송 선생님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들려주면 항상 기분 좋은 반응이 돌아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비밀을 하나 알려주면 할아버지 기분이 좋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최가원은 입술을 꾹 누르더니 임지강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할아버지, 제가 송 선생님에 대한 비밀 하나 알려줄게요...”그리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송 선생님이 왕자님이 곧 돌아온다고 했어요!”“뭐라고?”임지강의 얼굴빛이 변했다.“진짜예요!”최가원은 고개를 힘껏 끄덕이며 말했다.“아까 고추장 사러 갔을 때, 송 선생님이 직접 그랬어요. 왕자님이 이번에 돌아오면 결혼 얘기를 하자고 했대요... 할아버지, 결혼하면 아빠랑 엄마처럼 사진도 같이 찍고 같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거죠?”임지강의 손이 힘없이 풀렸다. 최가원이 작은 비명을 지르며 거의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다행히 뒤에 있던 경호원이 재빠르게 최가원을 받아냈다.놀라움에 휩싸인 최가원은 임지강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전보다 더 창백했고 눈동자 깊숙이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몇몇 경호원이 서로 눈치를 살폈다. 아무도 임지강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임지강은 주먹을 더 단단히 쥐었다.“임 선생님, 저희가...”경호원 중 한 사람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임지강은 갑자기 몸을 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