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현은 벌떡 일어나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최... 최연준! 외숙모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네가 감히 내 아들에게 이렇게 말을 해?”김자옥의 매서운 목소리가 연회장을 뒤흔들었다.손미현은 몸을 움츠리고는 또 몰래 김성주를 찔러 소란을 피우게 했다.김성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목청껏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누나, 지금 우리 괴롭히는 거야? 우리... 미현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사람을 보내서 미행하다니! 미현이는 내 아이를 가졌어! 너희들, 내 와이프가 눈에 거슬리면 나도 눈에 거슬리는 거야!”김자옥은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아 몇 번이나 발작하려 했지만 모두 참았다.어린 시절 동생이 몸을 던져 목숨을 걸고 구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마음이 약해지고 천방지축 성질도 못 내고 죄책감에 온몸이 먹먹해진다.최연준은 앞으로 나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뒤로 물러서라고 했다.어머니가 내지 못하는 성질은 그가 대신 내면 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이렇게 답답한 것을 본 적이 없다.더군다나 이는 성질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김성주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그에게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더 깊은 지옥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차라리 지금 손미현 이 암 덩어리를 없애는 게 낫겠다!최연준은 당황하지 않고 사진 한 움큼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외숙모, 미행했다고 했잖아요. 외숙모가 사진을 찍었고 나도 찍었어요. 맞아요, 이 사람들은 제가 보냈다고 인정할게요. 하지만 제 부하들이 뭘 찍었는지 자세히 보시는 게 좋겠어요!”손미현은 어안이 벙벙해서 그 사진들을 뒤적거렸고, 결국 볼수록 온몸이 덜덜 떨렸다.“이건...”“유정이에요.”최연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외숙모는 자기 딸도 못 알아보는 건 아니겠죠?”손미현은 눈을 부릅뜨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사진에는 김유정뿐만 아니라 여진국도 있다!손미현은 심장이 벌렁거리고 온몸의 피가 머리 위까지 거꾸로 쏟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어쩔 줄 몰라 했다.
손미현이 찔려서 한마디도 할 수 없자 김자옥이 냉소했다.“이 일은 서연이가 잘한 거야! 서연이와 연준이가 눈치를 채고 미행하지 않았더라면 유정이는 이 늙은이에게 정말 속았을지도 몰라. 올케, 임신했지만 딸의 훈육을 소홀히 할 수는 없지 않아?”“그만해요!”손미현이 비명을 지르고 인파 속에 숨어 있는 김유정을 한 번에 보았다.김유정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표정은 그녀와 같이 당황했다.두 사람이 시선이 마주쳤을 때 김유정은 엄마의 눈에 깃든 살기를 느껴 몸을 파르르 떨었다.그때 김씨 가문 영감님이 멀리서 걸어왔다.방금 이쪽의 소란을 그는 모두 똑똑히 들었고 사전에 부하가 일의 자초지종을 하나하나 그에게 들려주었다.이 고희지년까지 살아오면서 영감님은 일찍이 희로애락을 감추는 능력을 익혔지만 파란만장한 눈 밑에 폭풍우가 감돌았고 지금의 침묵은 화산이 폭발하기 전의 짧은 평온일 뿐이었다.“손미현, 김유정.”영감님의 중저음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봐!”“아버님...”“할아버지...”“외할아버지,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최연준의 목소리는 아무 온도가 없었다.“여진국에 대해 제가 조사해 봤는데 그냥 평범한 장사꾼일 뿐이에요. 벤처캐피털 일을 하는 사람이고 나이가 좀 많은 것 말고는 별거 없어요.”“정말?”“네, 정말이에요.”손미현과 김유정은 동시에 어안이 벙벙했다.최연준의 그 깊은 눈매는 사람을 오싹하게 한다.그들은 이 부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여진국을 찾아냈는데 왜 영감님 앞에서 그들을 폭로하지 않는가?“올케.”김자옥이 냉소했다.“평범한 장사꾼이 유정이를 꼬실 수 있다고? 조심해, 속임수가 있을 수도 있어. 유정이는 김씨 가문의 자식이 아니지만 그래도 김씨잖아! 만일 정말 망신당할 일을 한다면 김씨 가문의 체면을 깎을 거야!”손미현의 눈빛에는 원한이 가득했고 영감님은 쾅 하고 지팡이를 내리치며 크게 노발대발했다.“너희 모녀 둘 다 얌전히 있지 못해? 내 집에 들어왔
“엄마...”김유정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다.그녀는 그 화끈거리는 반쪽 얼굴을 만지며 당황하고, 분하고, 화가 나고, 찔리고, 모든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엄마라고 부르지 마!”손미현은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네 눈에는 이 엄마가 보여? 내가...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염치없는 놈을 키웠지!”“엄마, 오빠가 하는 헛소리를 듣지 마세요. 저와 진국 아저씨는 단지...”“사진에 똑똑히 찍혔어!”손미현은 분했다.“그 사람이 너의 허리를 만지고 있어! 너는 어떻게 그냥 만지게 놔둘 수가 있어? 정말 나를 화나게 할래?”김유정은 제자리에 굳어서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사실 딸과 애인의 추악한 일에 대해 손미현은 일찍이 알아차렸다.그녀가 김유정을 데리고 여진국을 만난 횟수는 많지 않지만 만날 때마다 여진국의 두 눈은 김유정의 몸을 탐욕스럽게 노려봤다.그녀는 슬프고 화가 났지만 질투가 더 많았다.손미현은 자신의 친딸을 질투했고 더 이상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젊음을 질투했으며 남자를 홀릴 수 있는 그 얼굴을 질투했다.그리고 그녀는 지금 나이가 들어 얼굴도 몸매도 예전 같지 않아 어떻게 발버둥 쳐도 다시 여진국의 총애를 받을 수 없으니 손미현이 할 수 있는 건 그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그녀는 또한 김유정에게 여러 번 경고하여 여진국에게서 멀리 떨어지라고 했지만 그들 둘이 그녀 몰래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강서연과 최연준에게도 들키고 말았다.손미현은 갑자기 깨달았다. 최연준이 방금 영감님 앞에서 여진국의 정체를 폭로하지 않은 것은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김자옥과 최연준은 한 쌍의 살아 있는 염라대왕 같아 다른 사람의 약점을 쥐락펴락하는 데 가장 능숙하다. 그리고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쥐를 산 채로 놀려 죽인다.손미현은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지만 김유정은 차갑게 그녀를 보고 있을 뿐, 부축하러 가지 않았다.손미현은 눈을
이때 몇 명의 보디가드가 손전등을 들고 달려왔다.이들은 모두 최연준이 보낸 것인데 강서연은 그전부터 최연준에게 이 모녀의 일거일동을 주시하라고 귀띔해 줬다.하지만 김유정이 이렇게 잔인하게 자신의 어머니를 연못으로 밀어 넣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빨리! 이쪽이야, 빨리!”보디가드 몇 명은 건장하고 물에 익숙하여 금세 손미현을 건져 올렸다.손미현이 물에 빠져 온 집안을 놀라게 했고 사람들은 급히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응급실 문 앞에서 의사는 마스크를 벗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모님 배 속의 아이는 다행히 무사합니다.”김성주는 서둘러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하하 호호 웃었다.“그런데...”의사가 또 말했다.“혹시 모르니 사모님께서 종합검진을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김자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집사에게 관련 수속을 밟으라고 지시했다.그러나 이때 손미현이 응급실에서 밀려 나왔는데 몇몇 간호사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의사는 눈살을 찌푸렸다.“왜 지금 임산부를 데리고 나오는 거예요?”“저희 때문이 아니라...”간호사 중 한 명이 설명했다.“사모님께서 아무것도 검사하지 않고 에이미 선생님만 찾고 있어요.”“네, 안 해요...”병상에 누워있는 손미현은 기운이 없는 와중에도 고집을 부렸다.“검사 안 할래요. 에이미 불러줘요. 에이미...”강서연과 최연준은 눈빛을 교환하며 그 에이미가 손미현의 최측근이자 그녀의 배 속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유일하게 알고 있음을 직감했다.강서연이 앞으로 나와 조용히 물었다.“에이미 선생님은 여기에 있나요?”의사는 난색을 보였다.“사모님께서 찾는 에이미 선생님은 현재 M국에서 수술 중이어서 올 수가 없어요!”“에이미 선생님은 엄청 훌륭한 의사인가요?”“산부인과 의사인데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아요. 의술이 뛰어나다고 말하기엔 우리 병원에는 훌륭한 의사들이 많습니다!”강서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의사의 말을 다들 들었는지 손미현의 검사를 먼저 시
“도련님.”김성주의 측근 집사가 말했다.“윤찬 도련님은 남양 윤제 그룹의 후계자이고 이 윤제 그룹은 의학과 제약 방면에서 으뜸가는 대가문입니다. 남양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적으로도 전문성이 뛰어납니다.”김성주는 잠시 침묵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아, 알겠어! 우리 집 약상자! 약상자 안에 몇 병의 상용약이 있는데, 모두 윤제 그룹이라고 쓰여 있어!”“바로 그 가문입니다!”김성주는 신이 나서 구세주를 찾았다고 생각하며 강서연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서연아, 네 동생이 정말 미현이를 도와줄 수 있어? 예전에 미현이가 자주 너를 해코지했는데 내가 대신 사과할게.”김성주는 차렷 자세를 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그는 어릴 때 말 등에서 떨어져 머리가 깨지고 신경이 손상되어 말만 하면 눈살을 찌푸렸다.그러나 강서연은 그가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마음이 찡해져 그에게 연민을 느꼈다.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잘못된 것은 그 사람은 애초에 그렇게 사랑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외삼촌, 안심하세요.”강서연이 부드럽게 말했다.“제 동생은 훌륭한 의사여서 잘 검사해 드릴 겁니다.”“헤헤...”김성주는 하하 호호 웃었다.그러나 최연준과 강서연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두 사람은 마음이 조금 슬펐다.하루 바쁘게 보내고 돌아가는 길에는 밤이 서서히 물러가고 하늘에는 한 줄기 금빛 서광이 비쳤다.강서연과 최연준이 뒷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작은 머리가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그는 그녀를 가볍게 껴안았다.“자고 싶으면 잠깐 자. 집에 도착하면 깨울게.”강서연은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별다른 잠기운이 없었고 다만 김성주의 그 바보 같은 모습을 생각하면 조금은 괴로웠다.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연준 씨, 우리가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잠시 침묵을 지키던 최연준이 대답했다.“전혀 잘못되지 않았어. 이 현실을 외삼촌은 언젠가는 마주해야 해.”“하지만 외삼촌이 외숙모한테 그렇게 잘해주고 이 아이를 기대하는 걸 보니.
“맘대로 가세요.”최연준은 멈추지만 않으면 상관이 없었다. 브레이크를 한 번 밟고 차가 멈추면 그의 사랑하는 와이프의 잠을 방해할 것이다.운전자는 기름이 거의 바닥날 때까지 평평한 큰 도로를 따라 계속 달렸고 기름이 완전히 없어서야 주유소를 찾아갔다.차가 막 멈췄을 때 강서연은 역시나 잠에서 깼고 눈을 떠보니 날이 밝아 있었지만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다.“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사모님이 주무시고 있어서 도련님께서 멈추지 말라고 했어요!”기사가 웃으며 말했고 강서연은 어안이 벙벙했다.“제가 몇 시간 잤어요?”“그게... 기름 한 통 시간입니다.”강서연은 놀란 눈으로 옆에 있는 남자를 올려다봤는데 남자가 사랑스럽게 그녀를 보고 있었다.“여보, 잘 잤어?”“네!”강서연은 머리를 비볐고 자연스럽게 잠에서 깰 때까지 정말 상쾌하게 잘 잤다.“여보, 기름값이 비싸!”“그래요.”“그래서...”남자가 진지하게 말했다.“여보가 준 용돈으로는 부족해서 이렇게 많이 넣을 수 없어.”강서연이 생각해도 이 밴은 사양이 높고 쓰는 기름도 좋아서 천만 원짜리 승용차와는 급이 전혀 달랐다.그녀는 바로 핸드폰을 열어 60만 원을 그에게 보냈다.최연준은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여전히 얼굴색을 바꾸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부족해.”“얼마면 되는데요?”최연준은 심각하게 열심히 계산했다.“이 차는 한정판이고 연료탱크도 크고 모든 비용이 많이 들어... 이 상자를 가득 채우면 아무리 해도 100만 원은 들 거야!”강서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기름값 100만 원이라는 것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기사가 기름을 넣고 차에 올라타고 실실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그렇게 많이 안 나옵니다. 방금 기름을 넣었는데 10만 원밖에 안 썼습니다...”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사는 먹을 칠한 최연준의 얼굴을 언뜻 보았다...“사모님,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가 한국어가 서툴러서 방금 뭐라고 하셨는지 못 알아들었습니다!”기사는 가속
결과가 나왔는데 역시나 이 아이는 김성주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최연준은 그 종이를 쥐고 손을 살짝 떨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결과를 눈으로 직접 봤을 때 여전히 화가 났다.어릴 때 할아버지가 예뻐해 주셨지만 최씨 가문 사람들이 권력을 쟁취하려고 피 터지게 싸우는 바람에 그곳은 그에게 별다른 온기를 주지 못했다.오히려 외할아버지 쪽이 그의 차가운 어린 시절에 한 줄기 햇살을 갖게 해 주었다.그는 특히 외삼촌의 사랑을 잊지 못했다. 어릴 적에 그를 목에 메고 말처럼 타게 하고 또 목검으로 같이 놀아줬다.그는 나이가 어리고 손의 힘을 조절하지 못해 자주 외삼촌의 얼굴에 흉이 나게 만들었지만 외삼촌은 한 번도 그를 나무라지 않고 바보같이 웃기만 하였다.영국에서 오성으로 돌아갈 때마다 그는 외삼촌과 헤어지지 않겠다고 울부짖었다...그러나 지금, 그는 곧 자기 손으로 외삼촌의 종기를 제거할 시간이 왔다.최연준은 심호흡을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연준 씨.”강서연이 그의 곁에 기대어 물었다.“다음에는 어떻게 해요?”“우리가 말한 대로 하자.”그는 이렇게 말했다.“이제는 막을 내릴 차례야.”...곽보미의 전화를 받았을 때 김유정은 여진국의 집에 숨어 있었다.그녀는 며칠 동안 외출을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김씨 가문에서도 그녀를 찾는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손미현이 병원에 입원한 것도 그녀가 집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그녀는 집사에게 그녀의 종적을 누설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집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에게 말했다.“아가씨, 집에서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아요.”김유정은 가슴이 철렁했다.알고 보니 그녀는 김씨 가문에서 쓸모없는 투명 인간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녀는 어떠한 존재감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이를 생각하니 마음속의 분함과 억울함이 일거에 치밀어 올랐다.그래서 이 영화는 반드시 찍어야 하고 대박 나야 한다!그녀를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애원하게
별장을 떠난 뒤 서지현은 작은 술집을 찾아 술을 마시려 했지만 술집은 모두 민증을 확인해야 했고 법 규정상 21세 미만은 술을 마실 수 없어 서지현은 몇 군데를 시도해도 안 되자 포기했다.공교롭게도 길에서 옛 이웃, 그 과묵한 아저씨를 만났다. 서지현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아저씨는 표현이 서툴러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막 산 맥주 몇 캔을 건넸다.서지현은 마침 술이 필요해서 거절하지는 않았다.그녀는 맥주를 받아 길가에 혼자 앉아 조용히 마시기 시작했다.이전에 술을 마신 적이 없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첫 모금을 마셨을 때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하지만 술은 확실히 근심을 날려주는 좋은 물건이다. 두 캔을 마시자 그녀의 작은 얼굴은 붉어졌고 걸음걸이는 불안정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여져 있고 밤하늘마저 몽환적으로 보였다.서지현은 웃으며 나석진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났다.“저기요, 외투 사실래요?”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녀는 그에게 옷을 팔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그에게 어떤 환상도 품지 못하게 할 것이다.서지현은 일어나서 호텔로 걸어갔는데 다행히 돌아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비틀거리며 방 입구에 도착한 그녀는 가방에서 카드키를 꺼내 문 위에 올려놓고 몇 번 감지했는데 째깍째깍 소리 외에는 문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서지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카드를 뒤적이다가 방 번호를 다시 보았다.16에 사는지 18에 사는지 헷갈렸다.그녀는 벽에 기대어 비틀거리며 서 있었는데 문이 안에서 열렸다.서지현이 웃으며 고개를 들자 깊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온몸에 주단 잠옷을 걸치고 가슴은 활짝 벌린 채 꾸안꾸의 느낌이었다.서지현은 멍하니 바라보았는데 특히 그 탄탄한 가슴 근육과 매혹적인 긴 다리를 보고는 눈이 움직이질 않았다.“그게...”그녀가 침을 삼켰다. “왜 제 방에 있어요?”나석진이 눈살을 찌푸렸다.‘이 계집애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분명히 내 방인데!’방금 전에 누군가가 카드키를 들고 그의 방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