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마디 말은 가볍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핵심을 찔렀다.자신을 깨끗하게 배제했을 뿐만 아니라 큰 문제도 다시 그녀의 손에 돌아가서 김유정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누가 임신하면 지능이 낮아진다고 했는가? 강서연은 임신하고도 머리가 잘 돌아간다.김유정이 고개를 들자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강서연의 눈과 마주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억지로 웃음을 지어냈다.“언니... 지금 농담하는 거죠?”“농담요?”강서연이 싱긋 웃었다.“제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요.”“언니가 마음씨가 착해 이번만은 용서하고 넘어가 준 거예요!”김유정은 급히 앞으로 다가가 다정하게 강서연의 팔짱을 끼고 뒤돌아 그 세 사람을 향해 눈짓을 했다.“이번 일은 그냥 넘어갔으니 당신들을 먼저 자리에 돌아가세요.”“잠깐만요.”강서연은 목소리가 차갑고 미소를 지으며 김유정을 보고는 슬쩍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유정 씨에게 미처 알리지 못한 일이 있는데 오늘 여기서 발표할게요.”김유정은 긴장한 나머지 침을 삼켰다.“무슨 일이에요?”강서연이 정색했다.“어진엔터테인먼트에서 제 직무는 수석비서였는데 지금 여기로 왔으니 그에 상응하는 직무는 비서실장이에요. 대표님께서 제가 임신한 것을 전반적으로 배려해 주기 위해 특별히 3개월의 휴가를 허락해 주었지만 오늘부터 나는 휴가를 취소할 생각입니다!”김유정이 깜짝 놀랐다.“무슨 말이에요?”강서연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제가 지금 비서실장 자격으로 인사팀과 회의를 열어 이분들의 인사이동 문제를 논의하려고 합니다.”“네?”강서연은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여러분들은 모두 우수한 인재들입니다. 의견이 없으시다면 제 사무실에서 여러분을 뵙고 싶습니다!”...이 일은 즉시 김중 그룹 전체에 퍼졌다.강서연은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서로 앞다투어 그녀를 위해 일하려고 했다.요즘 그녀는 매일 직원들이 자진 추천하는 메일을 받는데 모두 그녀의 비서실장 사무실에 가서 일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손미현은 화가 난 상태였는데 김성주의 어리숙한 모습을 보고 더욱 심란해했다.김유정은 말할 것도 없다. 새아빠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없고 김성주가 그녀에게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바보를 아버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괜찮아요!”손미현은 한숨을 쉬며 짜증스럽게 손을 흔들었다.“당신이 하던 일을 하세요. 여기서 빈둥거리지 말고요!”김성주는 머리를 긁적이며 멍하니 뒤돌아 가버렸고 가면서 걱정스럽게 그들을 돌아보았다.“또 최연준 그 녀석이야? 최연준 때문이라면 말해. 내가 누나를 찾아갈게.”“됐어요. 왜 이렇게 쓸데없는 말이 많아요!”손미현이 그를 노려보자 김성주는 입을 삐죽거리며 자기 아내를 억울하게 바라보았다.손미현은 진정하고 다시 생각하니 갑자기 김성주가 방금 한 말이 매우 옳다고 생각했다.‘김자옥을 찾아가면 되잖아!’혼자 여기서 뾰로통하게 있느니 일을 크게 벌이는 편이 낫다.이를 생각한 손미현은 표정 관리를 하고 히죽히죽 다가가 김성주의 팔짱을 끼고 그를 소파에 앉혔다.“여보...”손미현이 다정하게 어깨를 주물러줬다.“유정이도 다 컸는데 지금 제대로 된 직장이 없잖아요. 전에 영화 두 편을 찍었는데도 주목을 못 받았어요...”“영화를 계속 찍고 싶은 거야?”김성주는 목소리가 굵고 컸다.“문제없어. 유정이가 영화를 찍고 싶으면 아빠가 돈을 줄게!”손미현은 얼굴에 희색이 돌더니 이내 입꼬리를 누르며 말했다.“영화를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딸이 회사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중 그룹 소속 엔터테인먼트 규모가 그렇게 큰데 유정이에게 적합한 자리가 있지 않을까요? 여보,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 딸은 어쨌든 김씨 가문 출신이니까 연기대상은 물론 회사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필수예요, 그렇지 않아요? 유정이가 그룹에서 일할 수 있으면 당신에게도 좋은 일이잖아요!”김성주가 잠시 생각에 잠기고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하지만... 전에 누나가 유정이는 회사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말했어!”“
한참 후, 김자옥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강서연을 돌아보고 그녀의 작은 손을 살포시 잡았다.“어딜 봐서 살이 빠진 거야? 나는 지금이 딱 좋은 것 같은데!”손미현은 어안이 벙벙했다.강서연을 바라보는 김자옥의 모습은 다른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바라보는 것처럼 까다롭지 않고 엄마가 자기 친딸을 바라보는 듯했다.“살찔 필요 없어. 배가 너무 크면 애 낳을 때 고생하고 낳고 나서도 회복이 잘 안돼! 우리 서연이가 지금 이대로 유지만 한다면 애 낳고 나서 다시 예전처럼 예뻐질 수 있어!”손미현은 상황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아까 분명히 운동 얘기를 했는데 김자옥...’“형님.”손미현이 웃으며 말했다.“형님 말이 맞아요. 너무 살찌면 낳을 때 고생할 수 있죠. 하하하, 서연이는 당연히 지금도 예쁘죠. 아니면 연준이가 집에만 있겠어요?”“부부 사이가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김자옥이 그녀를 째려보자 손미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꼼짝도 못 했다.“올케가 자꾸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무슨 뜻이야?”김자옥이 냉소했다.“남의 부부 사이가 좋은 것을 부러워하는 거야, 아니면 누구 대신 불만을 말하는 거야?”손미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김자옥은 그녀를 흘겨보며 이미 그녀의 속내를 다 알아버렸다.예전에 최연준과 강서연이 모르는 사이였을 때 영국으로 돌아갈 때마다 김유정은 온갖 수작을 부리며 최연준을 따라다녔다.당시 최씨 가문에는 임나연이 있었기 때문에 김유정은 너무 노골적이지 못했고 김자옥은 아들을 믿어 그냥 못 본 체했을 뿐이다.그런데 지금은 아들이 결혼해서 아이까지 곧 태어날 판인데, 이 모녀가 감히 또 그를 건드리다니! 절대로 참을 수가 없다!김자옥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강서연을 자기 뒤로 숨겼다. 그녀의 웃는 듯 웃지 않는 듯한 얼굴에는 끝없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올케, 오늘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왔는데 나도 확실하게 말할게! 내 아들이 며느리와 사이가 좋아서 나는 당연히 기쁘지. 그런데 우
강서연은 멈추지 않고 이미 밉보인 이상 차라리 끝까지 가려고 해서 김자옥을 보며 말했다.“어머님, 제가 보기에는 여기가 저를 별로 반기지 않는 것 같은데... 여기서 이런 대우를 받느니 차라리 친정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어요!”언제 며느리가 자기의 진수를 받아 진격을 위해 퇴각하는 것까지 알아서 김자옥은 마음속으로 기뻐했다.이왕 이렇게 된 거 그녀도 며느리의 노력을 헛되이 할 수는 없다!고부간에 눈빛을 주고받고 바로 어떻게 다음 장면을 만들어 나갈지 이해가 되었다.하지만 아직 김자옥이 연기에 몰입하기도 전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가 친정으로 돌아간다고 했어?”강서연은 잠시 멈칫했다.주변은 이내 조용해졌고 무언가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연회장을 뒤덮고 있었다.사람들은 자동으로 양옆으로 서서 김씨 가문 영감님에게 길을 터주었다.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회색 체크 슈트에 영국식 작은 실크해트를 입은 그는 비록 고희지년이지만 뼛속까지 스며든 그 오만함과 위풍당당함은 여전히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강서연은 당황한 듯 살짝 고개를 내렸다.손미현이 서둘러 앞으로 가서 맞이했고 어떻게 이 판을 만회할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딱 마침 영감님이 오셨다.“아버님!”손미현이 열성적으로 불렀다.“서연이를 탓하지 마세요! 어린 나이에 철이 없어서 작은 일로 친정집에 가겠다고 난리를 치는데, 저도 이 심정을 이해해요! 오늘은 형님 환영하는 좋은 날인데 절대 화내면 안 돼요!”김자옥은 그녀를 노려보면서 악당이 먼저 고자질을 한다고 생각했다!그녀가 막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영감님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화난 거 같아?”“아버지!”영감님은 강서연에게 다가가 자애롭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리고 내가 언제 우리 서연이를 탓한다고 했어?”강서연은 눈을 들어 외할아버지의 다정한 시선을 마주했다. 영감님은 그녀를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등을 곧추세우고 그녀 앞에 서서 크게 기침을 한 번 하며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마지막에 시선이 손미현에게 멈췄다.“
“네가 내 딸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영감님은 하고 싶은 말을 한 번에 다 하려다가 김자옥에게 가로막혔다.그녀는 손미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남동생이 남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김자옥은 여전히 자기 동생을 많이 걱정한다.“아버지, 그렇게 많은 말을 할 필요는 없어요.”그녀가 가볍게 웃었다.“오늘은 저의 환영식이니 화내시면 안 돼요! 맛있는 거 드시고 편히 쉬세요!”“맞아요, 외할아버지.”강서연도 웃으면서 말했다.“조금 전에 저도 잘못한 게 있어요. 떼쓰고 친정에 가자고 하면 안 되는데... 연준 씨랑 결혼했으니 당연히 남편이 있는 곳이 제 집이에요.”“우리 서연이가 많이 착하구나!”영감님은 환하게 웃었다.“그런데... 그 최씨 영감님이 그러는데, 연준이가 너희 집 데릴사위가 된다고 하는데? 그럼 너와 함께 친정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아?”“외할아버지, 그건...”강서연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줄곧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최연준은 이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외할아버지, 아니에요!”강서연이 최연준의 곁으로 다가가 살며시 자기 남편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그땐 농담이었어요. 저는 제 남편이 데릴사위가 되는 게 아까워요!”강서연은 그를 보며 눈에 별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나는 영원히 연준 씨의 아내예요.”그녀가 또박또박 말했다.최연준은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그녀의 부드러운 작은 손을 잡으며 눈에는 그녀의 모습만 담겨있다.영감님은 개구쟁이처럼 웃기 시작했고 사람들에게 눈치를 던지며 모두 여기서 그들을 방해하지 못하게 했다.김자옥은 최연준을 한쪽으로 끌고 가서 타박하였다.“집에서 서연이를 많이 챙겨 줘, 들었어? 그리고 방금 손미현이 그런 말을 할 때 너는 어디에 있었어?”최연준은 어이가 없었다.엄마와 마누라의 전투력이 그렇게 강한데 그가 나설 필요가 있겠는가?그가 소리를 내더라도 아무도 듣지 않을 것이다!“어머님, 왜 그래요?”
손미현은 발을 동동 구르며 김성주에게 대충 둘러댄 후 딸을 쫓아 달려갔다.김성주만이 그 자리에 굳어 있었고 차가운 달빛이 그의 그림자를 키웠다.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눈과 입도 저절로 떨렸다.그는 마음이 아프고 더 화가 났다.한참 후 핸드폰을 꺼내 몇 사람에게 물어본 후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안녕하세요, 곽... 곽보미 감독님이시죠?”그쪽에서는 몇 초 동안 정적이 흐른 후 물었다.“누구세요...”“나는 김성주라고 하는데, 김자옥의 동생이에요!”곽보미는 머리가 텅 비었다.‘어떻게 된 거지? 엮일 일이 없는데!’“저기, 저기... 영화 만드는 데 돈 필요해요?”곽보미는 무슨 상황인지 파악되지 않아 이 문제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곽 감독님, 저는 돈이 있어요!”김성주가 소리를 질렀다.“저는 돈이 많아요! 아빠와 누나가 정기적으로 저에게 돈을 계좌에 넣어주었어요! 그 돈을 다 가져가서 영화 찍는 데 쓰세요, 다 줄게요!”“아니, 김성주 씨... 천천히 말하세요!”곽보미가 깜짝 놀랐다.“영화에 투자가 필요하긴 한데요...”“내가 투자할게요!”김성주가 목소리를 높였다.“할리우드 대작의 기준에 따라 세 배... 아니, 다섯 배 줄게요!”“김성주 씨, 진정하세요.”이 큰 횡재는 곽보미가 받을 수 없다.갑자기 이러는 것은 틀림없이 문제가 있다. 게다가 김씨 가문에 머리가 그리 좋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이 사람일 것이다!“내 조건은 하나예요!”김성주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김유정에게 어떤 역할도 출연시키지 못하게 해줘요!”곽보미는 잠시 멈칫했다.김성주는 할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는데 지금 그는 마음이 조금 상쾌해졌다.그는 마치 어린애처럼 김유정이 그를 화나게 했으니 반드시 복수해 줘야 하는 생각이었다.김유정의 출연 기회를 막으면 그녀는 틀림없이 속상하고 괴로워할 것인데 이렇게 해서 그들 둘은 비긴 셈 치고 앞으로도 여전히 좋은 부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김성주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득의양양
“어... 저기, 오늘 해가 정말 좋네요!”곽보미는 횡설수설하며 두 마디를 대꾸하더니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최연준은 심각한 얼굴로 강서연에게 핸드폰을 돌려주며 손으로 턱을 만졌다.그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강서연은 그가 화가 난 줄 알고 작은 머리를 그의 가슴에 기대어 좋은 말 몇 마디를 하려는데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곽보미는 갈수록 대담해지는 거 같아!”“네?”“누군가가 곽보미를 잡아줘야 할 것 같아!”최연준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순하디순한 눈빛과 마주쳤다.강서연은 그의 깊은 눈동자의 뜻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간 모습이 여우 같다고만 생각했다.그녀는 최연준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유찬혁이 영국에서도 업무가 있는데 그를 불러서 며칠 동안 머물게 할까?나석진도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연극 학원에 자리를 마련해 줄까?아니면... 아예 두 사람을 같이 데리고 와서 시끌벅적하게 만들까?최연준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작업실 문 앞에서 닷새를 지킨 후, 김유정은 마침내 곽보미를 만났다.곽보미는 그녀의 극도로 열정적인 포옹과 과장된 화장에 깜짝 놀랐고, 그 향수 냄새는 더 자극적이었다.곽보미는 몇 번이나 기침하더니 억지로 웃으며 그녀를 밀어냈다.“곽 감독님!”김유정은 몸을 비틀어 꽈배기로 만들고 억지로 자료를 그녀에게 주었다.“곽 감독님, 이것은 제 이력서입니다. 안에는 제가 출연한 영화 자료가 들어 있습니다!”“네!”곽보미는 억지로 웃음을 짓을 수밖에 없었다.이러한 자료는 이미 그녀의 메일에 대부분을 차지했다.“곽 감독님. 우리 둘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지 않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감독님을 보면 유독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요.”“그래요?”곽보미는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낯익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 저를 TV에서 봐서 그랬을 거예요. 제가 국제영화제에 여러 번 참가했어요.”김유정은 치켜 올라간 입술이 굳어 더 이상 말
“네가 뭔데!”그녀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우리 김씨 가문에서 기르는 개 한 마리일 뿐인데...”“뭐라고 했어요?”곽보미가 나와 그녀를 노려보았다.김유정은 당황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입술을 몇 번 움직이고 한마디도 안 나왔다.‘조금 전에 혼잣말했는데 그걸 또 언제 들었데?’“김유정 씨.”곽보미가 냉소하며 말했다.“원래 이렇게 말이 가볍습니까?”곽보미는 본래 약간의 남자다움이 있어서 웃지 않을 때는 더욱 차갑고 위엄이 있어 보인다.“김유정 씨,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그냥 다 털어놓고 말하는 게 좋겠어요.”곽보미는 손을 들어 옆에 있는 화분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제가 출연하는 것을 막은 줄 알아요?”“무슨 소리예요?”김유정이 잠시 멈칫했다.“사실 이것은 투자 측의 뜻입니다.”곽보미는 일부러 투자 측의 세 글자를 강하게 말했다.“제가 캐스팅하지만 투자 측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지금 제 영화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사람이 있는데 유일한 조건은 김유정 씨가 어떤 배역도 맡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김유정 씨.”곽보미는 그녀와 스쳐 지나갈 때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냉소했다.“도대체 누가 김씨 가문의 개인지 스스로 가늠해 보세요.”“너...”김유정은 하마터면 숨이 넘어갈 뻔했다.곽보미가 몸을 돌려 작업실로 들어가자 복도에서 김유정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말해봐요. 어느 투자 측인데요! 비열하고 파렴치해요!”곽보미는 대답하지 않고 문을 쾅 닫았다.김유정은 온몸을 떨며 주먹을 힘껏 쥐고 손톱까지 살 속으로 들어갔다.투자 측?이 집에는 투자 측이 누가 있겠어! 엔터테인먼트를 관리하는 것은 김자옥이다!그리고 최근 김자옥이 자리를 비운 사이 강서연이 비서실장으로 변신해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을 관리하고 있다...투자 측은 틀림없이 그녀일 거다!김유정은 입술을 세게 깨물며 한 걸음 한 걸음 비틀비틀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바깥 하늘에는 먹구름으로 뒤덮였고 공기
“현진 씨,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소피아는 두려움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렇게 한 건... 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은 모든 걸 여동생에게 넘겼잖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랑 제임스는? 당신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여기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제임스를 어떻게 키우겠어?”“그만해!”배현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소피아는 오직 자신과 제임스의 미래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소피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배현진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대하려 했던 건 소피아를 사랑해서지, 빚진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현진 씨...”소피아는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정말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 주길 바랐고 우리가 순조롭게 결혼하길 원했을 뿐이야. 그래서 내가...”“네가 원하는 건, 배씨 가문을 차지하는 거잖아?”“당신...”“윤아는 내 친동생이야!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내 등 뒤에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배현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소피아는 배현진의 외침에 놀라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소리쳤다.“배현진! 앞으로 네 여동생이랑 살 거야? 아니면 나랑 살 거야?”그 말에 배현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소피아의 뺨을 세게 때리며 속에 쌓여 있던 모든 후회와 분노를 폭발시켰다.소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배현진의 얼굴을 긁으려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이며 뒤엉켰고 배현진의 얼굴에는 소피아에게 긁힌 상처가 선명하게 남았다.그때, 경찰이 방으로 들이닥쳐 두 사람을 강제로 떼어놓았다. 차가운 수갑이 소피아의 손목에 채워졌다.배현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소피아가 경찰에게 끌려 나가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그의 존재는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온몸이 퍼즐 조각처럼 부서져 다시는 하나로
임지강은 대출 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서류에 선명한 배현진의 서명과 붉게 찍힌 도장은 마치 피로 얼룩진 조롱처럼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했다.“제 생각엔,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조 회장이 말했다.“지강아, 빨리 돈을 배 도련님 계좌로 송금하고 그 두 광산을 사들여라. 그리고 배 도련님,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임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너그럽게 대해주고 있는데, 도련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말도 안 되죠. 흥! 약속을 어기는 일은 배씨 가문의 품격에도 맞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배현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후회와 절망이 그의 마음을 홍수처럼 휩쓸고 있었다.“배씨 가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제가 데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배 도련님도 보고 싶었을 겁니다.”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룸의 문이 열리며 배윤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배현진은 배윤아를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놀라움은 곧 걱정과 초조함으로 변했다. 배현진은 재빨리 배윤아에게 다가가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윤아야, 괜찮아?”“나 괜찮아.”배윤아는 눈가가 붉어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고작 사흘뿐이었지만, 그 시간은 마치 몇 세기가 흐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그러나 배윤아의 시선이 소피아를 향하는 순간, 증오가 담긴 눈빛이 소피아를 사로잡았다. 배윤아는 이를 악물며 소피아를 가리켰다.“오빠, 바로 저 여자가 사람을 시켜 날 해친 거야!”“뭐라고?”배현진은 몸을 떨며 경악했다.소피아는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발악하듯 배현진 곁으로 뛰어들며 변명했다.“아니야! 내가 아니야! 윤아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네가 사라진 동안, 난 네 소식을 찾으려고 정말 애를 썼어. 난 정말로...”“거짓말하지 마세요!”배윤아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소피아 씨가 사람을 시켜 날 폭행하고 내 물건을 훔쳐 간 건 분명해요! 그리고 소피아 씨가 가장 원했던 게 배씨
“조 회장님,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요!”소피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우리가 그 광산을 사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아시잖아요. 대박을 기대했는데, 지금 헐값에 팔면 원금도 못 건질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고요. 게다가 그 돈은 전부 은행 대출입니다.”“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조 회장은 다 피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건 아가씨가 주도한 일 아닌가요? 제 기억으로는 배 도련님이 처음엔 그 두 광산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걸로 압니다만.”“조 회장님...”“배 도련님.”조 회장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오히려 추악한 수단으로 올라선 여자의 말을 믿었으니, 그 손해는 당연히 본인이 책임져야죠.”“지금 말 다했어요?”소피아는 벌떡 일어나며 격분해 외쳤다.조 회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짓누르듯 바라보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고 소피아의 기세는 단숨에 꺾였다.“배 도련님, 매입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배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 회장은 부하에게 매입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본 배현진은 그만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임지강과 송윤지였다.배현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다 테이블을 건드렸고 접시와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임지강은 송윤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를 위해 의자를 빼주고 임지강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배 도련님, 아는 분이시죠?”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제가 따로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배 도련님.”임지강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듣기론 도련님이 투자하신 두 광산이 이제 3200억밖에 안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3400억에 사들이겠습니다. 도련님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
화면에 띄워진 데이터는 충격 그 자체였다.두 사람은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친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배현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피아 역시 어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피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우리가 1조를 들여 산 두 광산이라고! 무려 1조라고!”배현진이 소리쳤다.“가격이 분명 오를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3200억으로 폭락한 거냐고!”“나도... 나도 모르겠어...”소피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 광산의 시장 가격을 철저히 조사했었단 말이야. 그 두 광산은 운산시에 있는데, 지금 운산시 광산 가격이 상승세잖아. 분명 손해 볼 투자가 아니었어.”“하지만 지금 상황 좀 봐.”배현진은 입술을 떨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소피아, 그 1조는 전부 은행 대출금이야. 지금 난 은행에 수천억 빚을 졌고 이자도 엄청나다고.”“현진 씨, 진정해.”소피아는 급히 배현진을 달래며 말했다.“이 일은 조 회장이 중간에서 소개한 거래잖아. 조 회장에게 물어보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 내가 직접 물어볼게.”...배현진과 소피아는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호텔 룸에서 조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진은 오늘의 만남을 위해 호텔 매니저에게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도록 특별히 부탁했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의 대표 메뉴들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조 회장이 방에 들어서자, 배현진은 그가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조 회장의 눈빛은 마치 코너에 몰린 쥐를 노리는 고양이 같았고 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쥐가 된 듯한 압박감에 사로잡혔다.“두 분이 너무 과하게 준비하셨네요.”조 회장은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의 술잔을 힐끗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렇게까지 준비하실 필요는 없었어요. 나이
이른 아침, 소피아는 천천히 눈을 뜨며 옆에 누운 남자의 맨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배현진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춤했다.배현진은 그녀의 키스에 미소로 답하며 부드럽게 눈을 떴다.하룻밤의 열정에 지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희미한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제임스는 아직 안 깨어났어?”“이 시간엔 절대 안 일어나요.”소피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 위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그럼... 우리 한 번 더?”“아니.”배현진은 소피아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댄 뒤 가볍게 입맞춤하며 말했다.그는 정말로 피곤했다. 소피아는 도대체 어떻게 매일 밤 이렇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걸까?소피아는 송윤지와 완전히 달랐다. 송윤지는 늘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가 바라볼 때만 순수한 미소를 띠곤 했다.배현진은 문득 송윤지를 떠올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했다.“자기야, 무슨 일이야?”“아, 별거 아니야.”배현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맞다, 나 현진 씨랑 상의할 게 있어.”소피아는 배현진의 얼굴을 자신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제임스도 점점 크고 있어. 가정교사를 불러서 집에서만 공부시키는 건 이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또래 아이들과 학교에서 어울리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 어쨌든 앞으로는 제임스가 배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렇지?”“음...”배현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장래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부모님이 이미 가업을 전부 윤아에게 넘겼잖아.”소피아는 미소를 띠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흡족해했다.배윤아 같은 풋내기는 소피아와 겨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배윤아를 기절시켜 조 회장의 카지노 앞에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조 회장이 배윤아를 데려갔으니, 모두가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범인이 조 회장과 임지강이라고 믿을 것이다.혹시 조 회장이 색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더없이
“어떻게 소피아라는 걸 확신하죠?”배윤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부모님이 회사의 핵심 자료를 제게 모두 맡기셨어요. 그런데 그걸 받은 지 이틀 만에 공격을 당했죠.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요?”임지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그 자료들은 어디 있어요?”“아마 소피아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 자료들은 너무 중요해서 항상 제 곁에 두고 다녔거든요. 하지만 그날 제가 기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 가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만...”“다만 뭐요?”“법인 도장은 가방 안에 없었어요.”배윤아는 미소를 지으며 약간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법인 도장은 본사가 모든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에요. 엄마가 제게 주자마자 저는 바로 군성이에게 맡겼어요. 지금 법인 도장은 최씨 가문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어요.”“그렇다면 소피아가 자료를 손에 넣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겠군요?”배윤아는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똑똑하네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배씨 가문 사람들도 다 무능하진 않나 보네요.”“임 선생님...”배윤아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오빠가 송윤지에게 잘못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임 선생님이 우리 가문에 복수하려고 저를 납치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그런 수준 낮은 사람이 아니니까요.”임지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확실히 똑똑한 사람이네요.”그러나 배윤아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그런데... 정말 우리 오빠에게 복수하고 있는 건가요?”임지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주세요.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실 거예요.”“이미 군성이에게 연락을 했어요.”배윤아가 말했다.“군성이에게 조용히 아빠에게 알려 드리라고 했어요. 엄마는 충격을 받으시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제 상황을 오빠에겐 비밀로 해야 해요. 오빠와 소피아는 제가 조 회장님에게 잡혀 있고 선생님이 일부러 복수를 위해 조 회장님을
“설마...”“소피아!”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이름을 입에 올린 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정말 소피아일 줄이야.”임지강이 담배를 꺼내 들었다. 조 회장이 눈짓을 하자 부하가 공손히 불을 붙였다.방 안은 금세 니코틴 냄새로 가득 찼고 임지강은 잠시 침묵하며 담배 재를 털어냈다.“아마... 조 회장님도 지금 저와 같은 처지겠죠.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했다는 누명을 쓰게 됐으니 말이에요.”“그러게 말이야.”조 회장은 차갑게 웃었다.“겉으로는 온갖 아부를 떨면서도 뒤에서는 이런 음모를 꾸미고 내가 배윤아를 납치했다고 소문까지 퍼뜨리고 있더군.”“회장님과 제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의심의 화살을 제게도 돌리겠죠.”임지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연루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저 때문에 저의 매형까지 연루되면, 배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사이도 틀어질 거고요.”“그 여자는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를 자기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조 회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웃기지 말라 그래.”조 회장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임지강은 조 회장의 꽉 쥐어진 주먹을 발견했다. 그의 손등에는 화가 잔뜩 난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조 회장님.”임지강은 잠시 침묵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운산시 광산의 가격을 조작하도록 제가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두 광산은 이제 그렇게 가치 있는 자산이 아닙니다.”“알고 있어.”조 회장은 임지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이 일은 원래 자네 복수를 위해 시작한 일이야. 자네의 화가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내 수고도 헛된 게 아니야. 하지만 문제는...”조 회장은 손짓으로 방 안을 가리켰다.그때 방 안에서 배윤아가 몸을 뒤척이며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임지강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배윤아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조 회장은 잠시 망
임지강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그를 철저히 파산시키고 싶습니다.”“배씨 가문 전체를 함께 무너뜨리겠다는 뜻인가?”조 회장이 묻자, 임지강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저라면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지금은...”“지금은 마음이 약해졌다는 건가?”조 회장이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내가 알던 임지강은 그런 자비를 베풀 인물이 아닌데?”임지강도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 뒤로 누군가의 맑은 눈빛과 깨끗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이번 일은 송윤지가 부탁해서 오게 된 것이었다.송윤지는 배윤아의 실종 소식을 듣고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비록 배현진과 부부의 연을 맺지 못했지만, 배윤아와는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기에 친구로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임지강 자신도 이곳에 올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송윤지의 부탁 때문이고 또 하나는 배윤아의 납치 사건이 왜 갑자기 자신에게 덮어씌워졌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임지강은 배윤아와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사실상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조 회장님, 전 자비를 베푸는 게 아닙니다.”임지강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단지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이미 많은데 한낱 파리 한 마리와 얽혀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 녀석에게 적당히 벌을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게다가 저는 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배씨 가문을 완전히 망가뜨릴 필요는 없습니다.”“흠...”조 회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1조라... 적지 않은 금액이지. 배현진은 은행에서 전 재산을 담보로 대출받았다고 하더군. 이 일이 발각되면 한동안 꽤 고생하겠지.”“조 회장님, 사실 오늘 제가 온 이유는 다른 목적도 있어서입니다.”임지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약간 굽히며 공손히 말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손짓으로 그를 제지하며 미소를 지었다.조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배현진은 병원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었다.“그럴 리가 없어...”한참 동안 앉아 있던 배현진은 갑자기 고개를 들며 말했다.“연준 아저씨와 서연 이모는 소피아와 함께 지낸 적이 없잖아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소피아는 절대 저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이 녀석아,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고집을 부릴 거야.”최연준이 엄하게 꾸짖었다.배경원은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절망이 서려 있었다.“그만해요, 셋째 형님...”배경원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수정이가 응급실에 있는데, 이 아이와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아버지!”“꺼져버려!”배경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눈빛 너머에는 모든 걸 놓아버린 듯한 깊은 허무가 스며 있었다.배현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섰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돌아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윤아를 반드시 무사히 데려올게요. 엄마도 무사할 거예요. 우리 가족은... 예전처럼 다시 행복해질 거예요.”배경원은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잠시 후, 응급실의 불이 꺼졌다. 배경원은 화살처럼 뛰어가며 아내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의사가 땀으로 흠뻑 젖은 마스크를 벗으며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배 선생님, 사모님께서는 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뭐라고요?”강서연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일단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건, 앞으로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다들 진정하세요.”의사는 부드럽게 설명했다.“사모님의 상태가 많이 복잡합니다. 곧바로 특수 병동으로 옮길 예정이라 당분간 면회는 어려울 겁니다. 이번 주가 아주 중요한 시기이긴 하지만, 제 판단으로는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실 가능성이 큽니다.”세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며 그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