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직 안 갔어요?”주아는 예쁜 보라색 모피 망토를 걸치고 안에는 은색 슬립 드레스가 반짝반짝 빛나며 그녀를 돋보이게 했다.유찬혁은 잔을 들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고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주아는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다가 갑자기 시원한 웃음소리를 냈다.유찬혁은 어안이 벙벙했다.“주아 씨, 왜 그래요?”“아무것도 아니에요...”주아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말했다.“갑자기 곽 감독이 왜 당신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느낌 있게 잘 생겨서 정말 귀여운 것 같아요!”유찬혁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사실 주아가 말하는 것도 꽤 일리가 있다. 최연준보다는 그가 한 수 아래지만 최연준과는 다른 부류에 속한다.최연준은 사람들을 호소할 수 있는 그런 강한 포스와 항상 차가운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다.반면 유찬혁은 친화력이 좋아 최연준의 각진 모습보다는 선이 부드럽고 또 유명한 변호사로서 나름대로 박학다식한 기질을 지니고 있어 온몸에 신사적인 우아함을 풍기고 있다.이런 남자를 만나면 어느 여자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가!주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곽 감독만 아니었으면 나는 진작에 당신을 꼬셨을 텐데... 내 손바닥 안에서 도망 못 가게 할 수 있어요! 변호사님은 정말 내 이상형에 딱 맞는 남자예요!”“그건...”유찬혁이 어색해하며 웃었다.‘잠깐! 방금 뭐라고 했지? 곽보미를 봐서?’유찬혁은 갑자기 심장이 요동쳤고 한 박자를 놓친 것 같아 숨이 미세하게 멎기까지 했다.“유 변호사님, 정말 느끼는 게 없어요?”주아는 외계인을 보는 것처럼 그를 바라보았다.“곽 감독이 당신에 대한 마음은 정말 하늘과 땅도 다 알고 있어요! 전에는... 성설연 그 계집애만 계속 감싸고 있었잖아요. 정말...”주아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유찬혁이 잘생긴 얼굴을 가진 게 다행이지 안 그러면 진짜 그를 두드려 팰 수도 있다.유찬혁은 마음이 복잡했고 한동안 이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지금... 보미
곽보미는 자신이 취한 나머지 환각이라도 본 줄 알았다.‘이건 그냥 아름다운 꿈이겠지? 깨고 나면 또 처량한 현실을 마주해야겠는데 그럴 바엔 이 꿈을 빨리 깨는 게 나아.’곽보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전해져오는 고통에 정신이 조금 드는 것 같았다. 그녀는 유찬혁을 힘껏 밀어버리고 똑바로 서 있으려 애를 썼다.“괜찮아, 정말. 다른 바쁜 일이 있는 거 알아. 나 혼자서도 갈 수 있어...”“갈 수 있긴 뭘 갈 수 있다고 그래? 왜 거절하는 건데?”유찬혁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그도 술을 조금 마신 바람에 어떤 말은 술기운을 빌려서 한 말이었다.“보미야, 미안해.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았어. 나...”“그 손 놓으시죠?”문 쪽에서 누군가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유찬혁과 곽보미는 동시에 멈칫했다. 어두운 불빛 사이로 기다란 윤곽이 나타났다.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곧이어 어떤 힘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 바람에 곽보미는 그 사람의 곁으로 잡아당겨졌다.“유 변호사님, 지금 그런 소리를 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석진 씨.”곽보미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그를 불렀다.유찬혁은 뭐라 얘기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주먹만 불끈 쥐었다.“오늘 보미 씨와 약속했어요. 회식이 끝난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요.”나석진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그러니 변호사님은 걱정하지 말고 그만 돌아가세요. 제가 보미 씨를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줄게요.”나석진은 곽보미에게 눈짓을 보낸 후 손목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하지만 곽보미의 마음속에 옅은 슬픔이 밀려왔다. 마치 파도가 모래사장을 치듯 가슴이 조금씩 아팠다.그녀는 자신의 강한 의지력으로 이 꿈에서 깰 줄 알았지만 결국에는 외부의 힘을 빌렸다.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간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유찬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시간이 지금 이 순간에 영원히 멈춰있으면 얼마나 좋을까?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쳐다보는 나석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고 말
최연준과 강서연이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유찬혁과 나석진이 로비의 의자에 앉아있었다.두 사람의 표정이 잔뜩 굳어있었고 가운데 낀 곽보미가 난감한 기색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 강서연을 발견한 순간 마치 구세주라도 본 것처럼 후다닥 달려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최연준은 어리둥절해하며 유찬혁을 째려보았다.“변호사가 쌈박질을 해?”유찬혁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개를 돌렸다. 술기운이 올라오니 창피한 짓도 서슴없이 했다.평소 경찰서에 와서 사람을 데려가는 건 늘 그의 일이었는데 오늘은 최연준이 다른 변호사와 함께 그를 데리러 왔다.최씨 가문 변호사 군단의 일 처리 효율이 아주 높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절차를 끝내버렸다.몇몇 변호사들은 유찬혁을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그러고는 최연준과 인사를 나눈 후에 경찰서를 나섰다.강서연도 이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곽보미를 위로하고는 재빨리 나석진에게 다가가 얼굴을 살펴보았다.“다행히 괜찮네요.”강서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얼굴을 다치진 않아서 스케줄은 문제없겠어요.”“뭐?”나석진이 미간을 찌푸렸다.“서연아, 이 오빠가 다른 데 다쳤는지는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얼굴만 걱정하는 거야?”“당연하죠.”강서연이 피식 웃었다.“오빠 얼굴이 비싼 얼굴이잖아요. 회사에서 비즈니스 행사를 얼마나 많이 잡았는데 참석하지 않으면 위약금이 엄청나단 말이에요. 그리고 유 변호사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아요. 절대 오빠가 다칠 정도로 때릴 분이 아니에요.”“허!”나석진은 유찬혁을 힐끗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최연준은 원칙을 따져야 하는 이 중요한 상황에서 당연히 친구의 편을 들 리가 없었다. 다짜고짜 유찬혁의 머리를 때리며 째려보았다.강서연이 임신한 바람에 가뜩이나 우울한데 유찬혁이 때마침 사고까지 쳤다.“얼른 가자. 계속 창피하게 여기에 있을 거야?”최연준이 째려보자 유찬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서연 씨의
그때 곽보미가 나서서 호통쳤다.“두 사람 약 잘못 먹었어요?”나석진과 유찬혁은 일제히 그녀를 쳐다보며 뭐라 얘기하려다가 다시 눈짓을 주고받고는 꾹 참았다. 이런 상황에 누가 먼저 입을 열었다간 괜히 불똥이 더 튈 게 뻔했다.“됐어요. 여기서 그만 싸워요.”곽보미는 두 사람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면서 손을 흔들었다.“얼른 가요, 얼른.”“알았어요.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요.”나석진이 한발 먼저 그녀 옆에 섰다. 그 모습에 유찬혁은 잠깐 멈칫했다.‘난 왜 하필 이럴 때 반응이 이렇게 늦은 거야?’“보미야, 내가 데려다줄게.”유찬혁이 웃으며 말했다.“경찰서에서 밤새 고생하느라 아침도 못 먹었잖아. 일단 아침부터 먹으러 가자... 학교 앞에 있던 그 죽집 어때? 네가 예전에 좋아했잖아.”나석진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유치하긴. 지금 두 사람의 추억으로 날 이기겠다, 이거지?’“변호사님은 아무래도 먼저 사무실로 가서 에이스 변호사의 이미지부터 회복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어쨌거나 변호사 바닥이 그리 큰 것도 아니고 어젯밤의 위대한 공적이 한순간에 쫙 퍼져나가면 어떡해요?”“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요.”유찬혁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변호사 업계는 연예계와 달라서 이깟 작은 일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아요. 허, 다들 바쁘고 또 머리를 써야 돈을 벌거든요. 누구처럼 얼굴만 믿는 게 아니라.”“네, 그렇군요.”나석진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바쁘신 분이니 보미 씨는 제가 데려다줄게요. 보미 씨와 먼저 호텔에 가서 뭐 좀 먹으면서... 대본에 관한 것도 상의 좀 하고요.”“아 참!”곽보미도 그제야 문득 떠올랐다.“보충해야 할 신이 있다고 얘기했었죠? 하지만 어떤 앵글로 할지, 어떻게 편집할지는 아직 생각하지 못했어요...”“그럼 천천히 생각해요.”나석진이 우쭐거리며 웃었다.“어차피 오늘 스케줄도 없어서 종일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석진 씨, 아무리 그래도...”유찬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석진은 곽보미의
가슴이 움찔한 최연준은 바로 최연희를 뒤따라갔다.강서연은 임신한 터라 빨리 뛸 수 없어 뒤에서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병원 건물 앞에 멈춰 선 최연준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이 건물에는 정신과밖에 없었다. 그리고 심리 상담실이 있었는데 평소 오성의 유명한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마음속의 답답한 말들을 꺼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한다.강서연은 깊은 수심에 잠겼다. 최연희가 정신과 의사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게 진학 시험 때문이 아니라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메시지 때문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진학 시험은 줄곧 신석훈이 책임져왔다. 평소 최연희도 수험생 스트레스는 별로 받지 않아 성적도 늘 상위권을 유지하였기에 공부 때문은 아닐 것이다.그렇다면... 그 메시지밖에 없다.강서연은 바로 최연준에게 눈빛을 보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빛 속에서 뭔가를 알아낸 듯했다.“여보.”강서연이 그를 덥석 잡았다.“지금 쳐들어가면 안 돼요.”최연준이 발걸음을 멈췄다.‘그래. 흥분한 바람에 머리도 잘 안 돌아가네.’지금 이때 안으로 쳐들어간다면 최연희는 더욱 꼭꼭 숨길 것이고 그에게 한마디도 솔직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지난번 최연희는 신석훈네 병원의 정신과를 다녔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생겼는데도 가장 먼저 신석훈을 찾지 않았다는 건 뭔가 숨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연준 씨.”강서연의 목소리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한마디 한마디 귀에 또박또박 박혔다.“아가씨 문제는 분명 인지석과 관련 있어요. 문제의 해결은 반드시 저지른 장본인이 해야 해요. 인지석만 찾아낸다면 모든 걸 순조롭게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최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인지석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몇 달 동안 감감무소식이었고 찾으러 보낸 사람들도 그에 관한 어떤 소식도 알아내지 못했다. 유일한 단서라고는 인지석이 변장술에 능하다는 것이다. 밖에서 다니면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강서연이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경수 아저씨에게 조금 더 신경 써달라고
분위기가 갑자기 무르익었고 주변의 공기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주아의 귀여운 얼굴이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 색다르게 보였다.유찬혁의 얼굴은 이미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주아가 가까이 다가가면 자꾸 옆으로 피한 바람에 몸이 기울다 못해 더는 피할 곳이 없었다.“주... 주아 씨.”유찬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제발 진정 좀 하면 안 돼요? 진정해요...”주아는 그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고 시무룩한 얼굴로 술을 마시며 툴툴거렸다.“정말 재미없네요.”유찬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뭘 그렇게 긴장해요? 내가 뭐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요?”주아가 피식 웃었다.오늘 그녀는 몸에 붙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어두운 레드 톤에 수놓아진 큼지막한 금색 꽃이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옷깃에 풀어놓은 단추 사이로 하얗고 기다란 목이 드러났고 가끔 쇄골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고혹적이었다.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유찬혁의 모습만 보면 주아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방금 그건 다른 새 작품의 한 신인데 어때요? 오케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그게...”유찬혁은 말을 잇지 못했다.“거짓말 아니에요. 이것 봐요, 아직 촬영 때 입던 옷도 갈아입지 않았잖아요. 이따가 다른 신도 촬영하러 가야 해요.”“그래요.”유찬혁이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되길 바랄게요.”주아가 사랑스럽게 눈웃음을 지었다.사실 그녀도 유찬혁의 마음속에 아직 곽보미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단지 성설연에게 속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뿐이다.평소 예리하던 변호사도 사랑 앞에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감정은 절대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되고 일단 건드리게 되면 푹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주아는 어깨를 들먹였다. 유찬혁에게 호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사랑보다는 일이 더 좋았다. 그리고 그녀가 남자를 고르는 기준은 돈이 많고 얼굴도 잘생긴 건 물론이고 무엇보다 마음에 담아둔 사람이 없어
“나...”유찬혁은 입술을 적시며 멋쩍게 웃었다.“여긴 술집이야. 너 같은 학생들이 올 수 있는 데가 아니라고. 아까 널 본 것 같아서 따라온 거야... 너에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 오빠는 아마 오성 전체를 다 뒤집을걸?”“나 이젠 성인이야...”최연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학업 스트레스도 많은데 나도 스트레스 좀 풀면 안 돼? 누가 학생은 술집에 가면 안 된다고 했어?”“알았어, 알았어.”유찬혁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그럼 너무 늦게까지 놀진 말고 집에 일찍 들어가.”“알았어. 안 그래도 지금 가려던 참이었어.”최연희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는 골목 건너편의 큰길로 폴짝폴짝 뛰어갔다.유찬혁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말투가 평소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애써 밝은 척하는 모습이긴 했지만... 아무튼 뭔가 달랐다.그는 자신이 괜한 생각을 했길 바라며 아무래도 신석훈에게 얘기하는 게 낫겠다고 여겼다. 다들 신석훈이 최연희의 남자친구가 되길 바라니까.하여 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대리운전을 부른 후 신석훈에게 문자를 보냈다.그 시각 술집과 멀지 않은 어느 한 거리에서 최연희는 책가방을 꽉 껴안은 채 눈앞의 사람을 보며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네... 네가 하라는 거 모두 다 했어. 그러니까 이젠 그 물건 돌려줘.”“다 했다고?”남자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붉은 석양이 남자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고 병적에 가까울 정도로 몸이 말라 있었다. 하지만 모자 밑에 드러난 눈빛에는 음험함과 잔인함이 섞여 있었다.최연희가 당황해하며 대답했다.“다... 다 했어. 정말이야. 네가 하라는 거 다...”그런데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의 책가방을 확 빼앗아 갔다. 화들짝 놀란 최연희가 소리를 지르며 다시 빼앗으려 했지만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책가방 안의 물건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난잡한 책 사이에 약이 담긴 작고 투명한 약봉지가 있었다.“허, 여기에
인지석은 최연희의 예민한 신경을 계속 자극했다. 그 바람에 최연희는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지석아, 내가 이렇게 빌게...”최연희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쳐다보았다.“제발 나 좀 놔줘. 이런 일 나 진짜 못해... 술집 사람들과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왜 마약으로 그 사람들을 해쳐야 하는 건데? 이 일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을 테니까 나 좀 놔줘, 응? 제발... 돈 줄게. 오성을 떠나서 편하게 살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줄 테니까 다른 데 가서 잘 살아...”최연희는 너무 세게 운 나머지 숨이 가빠왔고 말도 횡설수설했다.큰 길이긴 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간혹 사람들이 지나갈 때 최연희가 도움을 청하려 하면 인지석은 그녀를 꽉 끌어안고 모자를 들면서 행인들에게 미소로 사과하곤 했다.최연희가 더욱 세게 발버둥 칠수록 인지석은 그녀를 더욱 쉽게 해결했다.“연희야, 그만하고 인제 집에 가자.”그의 목소리가 어찌나 다정한지 행인들도 부러워하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최연희는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살려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대체 언제까지 소란을 피울 셈이야? 그 가방을 내가 사주겠다고 했잖아.”“이거 놔!”행인들의 눈에는 그저 사랑싸움하는 커플이었다. 커플의 싸움에 끼어들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절망에 빠진 최연희는 목 놓아 울부짖었고 인지석을 벗어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를 내려다보던 인지석은 병적인 쾌감이 밀려왔다.“그 약을 술집에 갖다 놓기 싫으면 다른 일을 해, 그럼.”최연희가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올려다보자 인지석이 싸늘하게 웃었다.“나와 함께 강서연과 최연준을 망가뜨리자.”...윤정재와 윤문희는 강서연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남양에서 바로 달려왔다. 아침에 출발하여 해 질 녘에 에덴에 도착했다.문을 열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온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본 순간 최연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뚱냥이도 함께 데리고 왔다...야옹!뚱냥이는 저번보다 살이 더 찐 것 같았다. 눈을 가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