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재는 일찍이 이곳의 웃음소리를 듣고 윤문희의 손을 잡고 이쪽으로 왔다.최재원은 곧 진지한 모습으로 돌아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담소 몇 마디를 건네고 두 사람은 도우미에게서 술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다 마시고 나서 중요한 문제를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윤 회장님은 언제 남양으로 돌아갈 예정인가요?”“지금 연합 병원의 프로젝트는 겨우 3분의 1밖에 진행되지 않았는데, 어쨌든 병원이 완성되면 돌아갈 거예요!”“그렇군요...”최재원이 계산해 봤다.“그럼 제가 연준이에게 미리 준비하라고 할게요! 나중에 연준이 남양에 가면 회장님에게 많은 폐를 끼칠 수도 있어요!”“네? 누가 데리고 간다고 했어요?”윤정재는 잠시 멈칫했다.최재원도 눈을 크게 뜨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강서연은 웃으면서 두 사람 사이로 걸어가 설명했다.“할아버지, 내가 남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은 연준 씨와 한 농담이에요.”“맞아요.”윤문희도 웃으며 말했다.“서연이가 영감님 손주며느리인데 당연히 오성에 남아야죠!”“연준이가 처가살이하겠대요.”“정말요?”윤정재는 바로 눈을 크게 떴다.“아니에요!”윤문희가 그를 때리고 돌아서서 최재원을 바라보았다.“영감님, 우리 남양 쪽은 엄청 전통적이에요. 비록 제가 딸을 옆에 두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아서 앞으로 서연이를 잘 부탁드려요!”“문희야, 집에 데리고 가자!”윤정재가 옆에서 속삭였다.“최 서방도 윤씨로 개명하면 내가 평생 배운 것을 모두 물려줄 수 있어.”“당신 정신 나갔어요! 생각도 하지 마세요!”윤문희가 경고했다.“서연이는 최 서방의 처이니, 최 서방이 어디 있으면 서연이도 같이 있어야 해요!”“하지만...”“한마디만 더 하면 당신 혼자 남양으로 돌아가세요!”윤정재는 볼을 빵빵하게 하고 머리를 숙인 채 말을 하지 않았다.최연준은 이런 광경을 보면서 웃었다. 원래 아내를 무서워하는 것은 최씨 가문 남자들만의 것이 아니었구나!강서연은 그의 품에 기대어 있었고 원무곡이 울려 퍼
성설연의 이름을 듣자마자 최지한은 짜증이 확 밀려왔다.‘정말 귀찮은 여자라니까.’“큰 도련님.”도우미는 전전긍긍하며 최지한의 답을 기다렸다.“성설연 씨를...”그런데 도우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설연이 제멋대로 쳐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최진혁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최진혁은 아들이 성인군자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평소 연예인이나 모델을 자주 만났고 예전에 강유빈을 옆에 두고 노리개처럼 가지고 논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옷을 갈아입는 것보다도 여자를 더 자주 갈아치울 줄은 몰랐다.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최진혁이 노발대발했다.“최지한, 넌 어떻게 된 게 맨날 저런 애들을 데리고 노는 거니?”최지한은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집사에게 손을 흔들어 최진혁을 내보내라고 했다. 최진혁은 나가면서도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난 네 아버지야. 아버지가 한두 마디 하는데 뭐? 그래, 계속 그렇게 놀아. 놀다가 확 죽어버려도 난 모른다. 쓸모없는 놈...”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른 최지한은 테이블 위의 컵을 들어 냅다 벽에 던졌다.유리 조각이 성설연의 얼굴에 튀자 성설연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고는 얼굴을 부여잡고 경악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잠시 후, 최지한은 심호흡한 후 그녀를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요?”성설연은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조금 전 묻고 싶었던 질문이 한 글자도 떠오르지 않았다.“아, 그게 저...”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고 애를 썼다.“그러니까... 요즘 제 영상이 왜 순위에 들지 못했는지 여쭤보려고요.”최지한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도련님.”성설연의 얼굴에 조급한 기색이 역력했다.“최근 제 영상에 달린 좋아요 개수도 별로 없고 조회 수도 얼마 안 돼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당신이 재주가 없어서 그런 게 나와 무슨 상관이에요?”“도련님께서 절 띄워주시겠다고 하셨잖아요...”“그래요, 그렇게 얘기했었죠. 그런데요
성설연은 생각할수록 내키지 않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엉엉 울면서 화풀이하는 것뿐이었다.정신이 사나워진 최지한이 그녀를 내쫓으려던 그때 휴대 전화가 갑자기 진동했다. 누군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는데 사진 속에 어떤 남자의 옆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최지한은 사진 속의 남자가 구현수라는걸 단번에 알아챘다.곧바로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구현수 지금 오성에 있어요.」최지한의 두 눈에 음흉함이 스쳐 지나갔다.‘허, 하긴. 강명원이 망하고 나니까 구현수도 더는 강주에 못 있고 살 길을 찾아 나섰겠지.’구현수에게 있어서 오성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최지한이 오성에 있으니까.최지한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휴대 전화를 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예전에 최연준과 구현수를 바꿔치기하려던 작전을 실행하지 못했었다. 구현수가 또 왔으니 이번이야말로 하늘이 그에게 준 기회나 다름없다.귀한 기회를 한 번 더 놓쳐서는 안 되었다. 반드시 이 절호의 찬스를 이용하여 최연준을 제거하고 구현수를 손안에 넣고 휘어잡아야 했다.그리고 성설연은... 너무 귀찮은 존재이니 차라리 구현수에게 해결하라고 해야겠다.최지한은 머리를 굴리며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음흉한 표정으로 성설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설연 씨, 울지 말아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울어도 소용없어요.”성설연은 그제야 울음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최지한은 또박또박 싸늘하게 말했다.“정말 인기를 얻고 싶다면 나에게만 기대서는 안 돼요.”“네?”“최연준을 꼬셔야 해요.”성설연은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미친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안 돼요, 안 돼요. 셋째 도련님의 마음속에는 사모님밖에 없어요. 얼마나 쉽지 않은 분인지 직접 겪어봐서 알아요.”“허, 그건 그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에요.”최지한이 얼굴을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그의 얼굴에는 핏기라곤 거의 없었고 얇은 어깨가 마치 옷걸이처럼 널찍한 셔츠를 받쳐주고 있었다. 웃을 때면 두 눈에 음험함과 흉악함
어느 날 저녁 늦은 밤, 에덴.밖의 기온이 뚝 떨어져 마당의 잔디에 서리가 살짝 내려앉았다. 하지만 추운 날씨와 달리 안방 이불 안의 온도는 뜨겁기만 했다...뜨거운 시간을 보낸 후 최연준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침대 머리맡에 기댔고 강서연은 그의 품 안에서 곤히 잠들었다.최연준은 품 안의 그녀에게 입맞춤했다. 잠시 후 그녀에게 팔베개해 주고 있던 팔을 꺼내고는 침대 옆 서랍을 살금살금 열어 반짝이는 현금을 한 뭉치 꺼냈다.그는 어두운 불빛을 빌려 한장 한장 셌다. 만 원, 이만 원, 삼만 원...총 여덟 장인 걸 확인한 순간 그의 입가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마치 생전 처음 많은 돈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최연준은 돈을 다 센 후 재빨리 다시 서랍에 넣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이번 달 너무 부지런하지 못했어. 이 정도로는 횟수가 부족해. 같이 밤을 보낸 나날도 꽤 오래됐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니, 더 분발해야겠어.’최연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사실 그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어찌나 재촉하는지 다들 강서연의 배만 신경 쓰고 있었다.윤정재와 윤문희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소원이 바로 오성을 떠나기 전에 강서연이 임신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김자옥도 예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는데 지금은 절친과 친아들 사이에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절친을 선택했고 절친과 함께 손주를 안겨달라고 강요했다.최문혁도 가끔 참견하곤 했다. 가족 단톡방에 귀여운 아이의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그리고 최재원은 증손주를 안겨달라는 소리를 맨날 입에 달고 다녔다. 하여 최연준은 요즘 할아버지가 집에 와서 밥을 먹으라는 소리가 가장 두려웠다....이튿날 몇몇 남자들은 또 술집의 룸에 모였다.배경원과 육경섭, 그리고 방한서는 카드 게임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최연준과 유찬혁은 소파 양 끝에 앉아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카드를 섞던 배경원이 슬쩍 물었다.“저 두 사
“그렇다면 연준 씨 문제예요?”“저리 썩 꺼져요!”“왜 화를 내고 그래요? 기능 장애가 있다고 한 것도 아닌데.”육경섭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내 말은... 혹시 자주 해요?”최연준의 낯빛이 급변하더니 육경섭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의 표정을 본 육경섭은 최연준의 가슴팍을 쿡 찔렀다.“이것 봐요,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있잖아요, 너무 자주 해서도 안 돼요. 며칠 참았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끝장내야만 한 방에 성공할 수 있다니까요.”최연준은 성가신 듯 표정이 굳었다.“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다 어디 가서 들었어요?”육경섭이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과학이에요.”‘과학은 개뿔.’최연준은 속으로 욕했다.‘용돈도 얼마 안 되는데 자주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과학이면 돈을 어떻게 벌어?’그들의 수다는 점점 열기를 더해갔지만 유찬혁은 바 카운터에 홀로 쓸쓸하게 앉아있었다. 마치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야, 유찬혁.”배경원이 술을 들고 다가가 그의 등을 툭 쳤다.“혼자 넋 놓지 말고 저쪽 가서 같이 놀자.”“나...”유찬혁은 뭔가 말하려다가 다시 삼켰다. 최연준의 날카로운 눈빛과 마주한 순간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최연준은 자기 술잔에 술을 따르며 가볍게 말했다.“할 얘기 있으면 해.”유찬혁이 머뭇거리자 그들은 또 성설연 때문에 속상해하는 줄로 생각했다. 하여 유찬혁을 설득할 만한 말을 구상하던 그때 유찬혁이 갑자기 말했다.“연준 형, 보미 진짜 나석진 씨와 데이트했대요?”그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최연준은 유찬혁의 두 눈을 빤히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그러니까 말이야.”배경원이 큰 소리로 말했다.“진실을 알고 싶으면 곽보미에게 직접 물어봐야지.”유찬혁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혁아, 너 오늘 좀 이상하다? 왜 갑자기 곽보미를 신경 쓸까? 난 네가 또 우울해 있으니까 성설연 때문인 줄 알았잖아.”잠시 후 유찬혁이 씁쓸하
“아... 가족?”유찬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예전에 나석진 얘기만 꺼내면 버럭 화를 내던 질투쟁이는 어디 갔지?’다행히 유찬혁은 까발리지 않고 그저 술만 마셨다.그래도 나름대로 경험이 있는 변호사인데 최연준의 두어 마디에 넘어갈 리가 있겠는가?그는 최연준을 향해 씩 웃더니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다.“연준 형, 이젠 나석진 씨와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남양 쪽은 보수적이라서 많은 가문들이 자신의 지위를 굳히려고 사촌들끼리 결혼하게 한대요. 그러니까 남양에서는 사촌 오빠와 사촌 여동생이 결혼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요. 그쪽에서는 합법이에요.”유찬혁은 사촌 오빠와 사촌 여동생, 그리고 합법이란 단어를 특히 더 강조했다.그런데 이 방법이 최연준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최연준은 소파에 털썩 앉더니 한 손은 등받이에 올려놓고 다른 한 손으로 술잔을 흔들며 웃을 듯 말 듯 했다.“그건 내가 진작 알아봤어.”최연준의 여유로운 모습에 유찬혁은 살짝 멈칫했다.“뭐라고요?”“와이프 고향의 풍습을 내가 모를 리가 있겠어?”“연준 형...”최연준이 그윽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고 선이 굵은 얼굴에 조롱 섞인 미소가 지어졌다.“나와 서연이가 결혼하지 않았어도 나석진 씨와 서연이는 불가능해.”평소 어리바리하던 배경원이 웬일로 가장 먼저 알아듣고 풉 하고 입에 있던 술을 뿜었다.‘그래. 연준 형네 장인어른이 정력제까지 준 걸 보면 얘기가 끝났지, 뭐. 다른 사람은 절대 안 돼.’박장대소하는 배경원과 달리 유찬혁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형 그렇게 자신 있어요?”“그럼.”배경원은 웃으며 유찬혁의 어깨를 두드렸다.“자신감이 아주 넘쳐나지.”최연준은 턱을 살짝 치켜들며 의기양양했다.유찬혁은 최연준을 으르는 체하려 했지만 결국 그의 위압감과 지나친 자신감에 두 손 두 발을 들고 말았다.최연준은 언제나 침착하게 행동한다는 걸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그의 실책이었다. 아무래도 최연준에게서 뭔
조금 전 카드 게임을 할 때 배경원을 바보 취급했던 두 사람은 속으로 묵묵히 그에게 사과했다.배경원은 우쭐거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조용, 조용.”유찬혁은 또 술 한 잔을 따라 단숨에 마셨다. 한 잔 더 마시려던 그때 누군가 그의 술잔을 치웠다. 고개를 든 순간 최연준의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과 딱 마주쳤다.“유찬혁.”최연준이 나지막이 말했다.“어떤 일은 우리에게 물어보지 말고... 네 마음이 어떤지 들여다봐야지.”만약 한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는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걸 본다면 그저 불편한 정도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그럼 유찬혁이 진짜로 곽보미를 좋아한단 말인가? 아니면 배경원의 말대로 곽보미가 나쁜 버릇을 들인 건가?최연준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법정에서 의뢰인을 도와 소송할 때는 두뇌 회전도 빠르고 말주변도 아주 좋아서 유찬혁이 패소하는 사건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감정 문제의 당사자가 되고 나니 유찬혁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유찬혁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강서연은 사무실에서 온 오전 바삐 보냈다.요즘 어진 엔터테인먼트의 한 부분도 혼자 담당해야 하고 연합 병원 프로젝트 진행 상황도 계속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최씨 가문의 크고 작은 일들도 전부 그녀가 결정해야 했다.최씨 가문 사람들은 셋째 사모님이 결정권을 가진 것에 점점 익숙해졌다. 게다가 영감님과 셋째 도련님보다도 훨씬 잘하는 것 같다고 칭찬하기도 했다.남자들은 어떤 일을 강경하게 밀어붙여서 해결하지만 강서연은 더욱 다정다감하고 친화적으로 해결하기에 늘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최연희는 소파에 조용히 앉아 바삐 움직이는 새언니를 보며 저도 모르게 존경심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눈앞에 놓인 수학 문제를 한 문제도 풀지 못했다.물을 마시던 강서연은 최연희가 넋을 놓고 있는 걸 보고는 웃으며 다가가 손을 흔들었다.“뭔 생각을 그렇게 해요?”최연희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서연은 그녀 옆에 앉아 한 글자도 적지 않은 깨끗한
곽보미가 배시시 웃으며 걸어왔다.오늘도 그녀는 여전히 올블랙이었는데 가죽조끼와 가죽 바지에 부츠를 매치했다. 거기에 깔끔하고 빼어난 외모가 더해지니 사람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강서연은 그녀의 안색이 왠지 모르게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바로 사랑의 힘이란 건가?곽보미는 서류를 그녀의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한번 보라고 손을 내밀었다.“이건 영화 제작비 투자 예산을 정리한 거예요... 어찌나 복잡한지 난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예리하고 꼼꼼한 사모님이 한번 봐주면 안 될까요?”강서연은 달리 방법이 없다는 듯 마시던 물을 내려놓고 기지개를 켠 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잠시 후 전부 다 확인한 강서연은 빨간 펜으로 몇 곳에 동그라미를 치더니 서류를 다시 곽보미에게 건넸다.“벌써 다 됐어요?”“미리 알아본 적이 있어서 그래도 빨리 훑어볼 수 있었어요.”강서연이 간단명료하게 말했다.“동그라미를 친 부분은 아낄 수 있는 부분이고 불필요한 지출 몇 군데도 대신 지워버렸어요. 이다음에는 재무 담당자를 찾아가서 계산하면 돼요.”“서연 씨 정말 대박이네요?”곽보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여자가 똑똑하면 삼대가 망할 일이 없다고 하던데 최씨 가문에 서연 씨 같은 안주인이 들어왔으니 십몇대는 끄떡없겠어요.”“풉.”최연희가 웃음을 터트렸고 강서연은 입술을 적시며 가볍게 웃었다.“과찬이십니다, 곽 감독님. 아 참, 이 영화는 수상을 목표로 하고 있고 회사에서도 특별히 중시하고 있어요. 곽 감독님께서 수고스럽더라도 배우들을 잘 컨트롤해 줬으면 좋겠어요.”“네,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곽보미가 고개를 끄덕였다.“이 영화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건데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죠. 그리고 배우는...”“왜 그래요?”“아니에요.”곽보미가 씁쓸하게 웃었다.“성설연 씨를 바꿔버렸어요.”강서연이 화들짝 놀랐다. 배우를 바꿨다는 소리를 며칠 전에 얼핏 듣긴 했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기사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사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