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을 깨어 있는 상태로 고통스럽게 보내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벌이다.윤정재는 손을 닦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마지막으로 그를 한 번 보더니 조용히 물러났다....이른 아침 햇살이 빌라 사당의 창살을 뚫고 들어와 최씨 가문 선조들의 위패와 벽에 걸린 초상화를 비추었다.문밖에서 도우미들이 적지 않게 모였는데 모두 걱정하며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 개의 그림자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고 밖에서 한바탕 웅성거리며 우르르 뛰어 들어갔다.“어르신께서 쓰러지셨습니다!”“어서 집사님께 연락하세요!”곧바로 박경수가 사람을 데리고 와서 처리했고 다시 심각한 얼굴로 일의 내막을 모두 최재원에게 알려 주었다.최진혁은 사당에서 1박 1일을 꿇어앉아 있었는데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아 아침에 끝내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최재원은 미간을 찌푸리고 드래곤 지팡이로 가볍게 땅을 치면서 깊은 눈동자에는 한 줄기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한참 침묵이 흐른 후 그는 몸을 일으켜 최진혁의 처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최진혁은 닭죽을 먹고 있었는데 영감님이 왔다는 말을 듣고 급히 도우미들에게 물건을 모두 치우게 한 뒤 이불을 위로 끌어올리고는 허약하게 침대 머리맡에 기댔다.“몸은 좀 괜찮아졌어?”“아버지께서 오셨군요...”최진혁이 능청스럽게 일어나려고 하다가 일어나자마자 심하게 기침을 했다.최재원은 안색이 차가웠다.“너도 이제 젊지 않은데 어찌 음산한 사당에서 밤새 무릎을 꿇었어?”“아버지... 거기서 선조들에게 사죄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불안해서요...”최진혁은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지한이가 이번에 강명원과 결탁했다는 것을 들었는데, 나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요!”“그래?”최재원은 냉소했다.“아들이 나쁜 일을 했는데 아버지로서 모른다고? 너희 부자 관계가 언제 그렇게 안 좋아졌다고.”“그게...”“관계가 안 좋아졌으면 너도 쓸데없이 지한이를 위해 용서를 빌 필요는 없어!”“...”최재원은 그를
최재원은 발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내가 최지한이 우리 가문을 파멸시키는 걸 보고만 있을 것 같아?”최진혁은 잠시 멈칫했다.“도둑질에 비하면 관계를 끊는 것이 더 고상해 보여.”최재원은 이 말을 남기고 최진혁을 버리고 떠났다.최진혁은 미처 반응을 하지 못하고 머리가 텅 빈 채 영감님이 걸어 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일파만파의 한파를 겪은 후 오성에는 모처럼의 좋은 날씨가 왔다.미세먼지가 사라지고 하늘은 다시 푸른색으로 물들었고 눈발이 도시에 아름다운 은빛을 선사했으며 공기에는 싱그러운 냄새가 감돌았다.강서연은 마당의 눈을 모두 쓸어 모아 귀여운 눈사람을 만들었다.눈사람이 완성된 순간 최연준은 그녀를 뒤에서 감싸 안고 그녀의 꽁꽁 얼어붙은 작은 손을 손바닥에 감싸 따뜻하게 해줬다.“어때요? 예쁘지 않아요?”강서연은 몹시 뿌듯했다.“예뻐.”최연준이 부드럽게 웃었다.지금이 딱 좋은 것 같다. 풍파가 다 지나가고 햇살이 가득한 마당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며 놀고 있는데 세월이 고즈넉한 것 같다.“뚱냥이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강서연이 감탄했다.“뚱냥이는 이 눈사람을 좋아할 거예요. 털이 워낙 예뻐 눈 위에 걷는 모습도 참 보기 좋을 텐데.”최연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둘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뚱냥이가 그립다고?’뚱냥이를 윤문희한테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좀 더 멀리...예를 들어 방한서에게 주면 이 두 녀석이 서로 견제하여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최연준은 자기 생각에 빠져 입을 벌리고 웃기 시작했다.“여보, 무슨 생각을 해요?”그가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자 강서연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최연준은 정신을 차리고 둘러댔다.“나... 나도 뚱냥이 생각하고 있었어.”“정말요?”강서연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그럼 우리가 데리고 올까요?”최연준은 단칼에 거절했다.“안 돼!”강서연이 놀란 표정을 짓자 그는 머리를 쥐어짜며
“네.”강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엄마한테 들었는데 초대한 사람이 꽤 많은 것 같아요.”“맞아. 가문 전체 외에도 3대 가문 중에 우리와 친분이 있는 사람을 초대했어. 찬혁이와 석훈 씨도 아주 중요한 손님이어서 참석할 거야.” 최연준은 고개를 숙여 코끝으로 그녀의 코끝을 살짝 문질렀다.“이번에 윤 회장님과 사모님을 축하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야.”...주말의 최상 빌라는 하객들로 가득 채워서 유난히 떠들썩했다.최재원은 진부한 성격이지만 이번에 젊은 층의 입맛에 맞게 연회를 새롭게 장만했다.유찬혁이 이번에 큰 공을 세워 최씨 가문의 귀빈인 데다가 오성에서 이름난 변호사이자 아직 솔로여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멀리서 온 최연준의 사촌 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그를 에워싸서 유찬혁은 음식을 먹을 기회조차 없었다.신석훈은 줄곧 최연희와 함께 있었지만 공주님은 계속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같이 있다고는 하지만 실은 먹으면서 그녀의 수학을 가르쳐주고 있었는데 케이크 한 조각을 어떻게 나누는지까지도 그는 문제를 낼 수 있다.배경원이 임수정을 데리고 들어올 때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일찍이 두 집안이 혼인하였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배경원 부모도 오픈마인드여서 둘의 좋은 소식도 곧 들릴 것으로 보인다. 두 가문의 세력이 강한 데다가 배경원과 임수정도 서로 사랑해서 아무리 보아도 좋은 인연이다.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김자옥과 은미연이 함께 참석했다는 것이다.최문혁은 전처와 현처 사이에 껴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김자옥과 은미연은 그 모습을 보고는 동시에 그를 흘겨보고 최문혁을 사이에 두고 서로 웃으며 말을 걸었다.“미연 씨!”“자옥 언니! 언니 오늘 정말 예쁘세요!”“어휴, 당신은 오늘 10살 젊어 보여.”“맞아요. 제가 최근에 방송을 봤는데 전문가가 장수 비결에 대해 연구하더라고요...”“그래서?”“미모를 유지하고 장수하고 싶다면 남자를 멀리해야 한대요!”두 사람이 함께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최
최연준은 이미 마음속으로 윤정재를 수백 번 욕했다.그러나 감히 욕을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한 번 고민하고 다시 강서연을 보며 속삭였다. “정말이야?”“네.”강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엄마는 어려서부터 남양에서 자랐기 때문에 지금 다시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데 무슨 문제 있어요?”“글쎄... 맞는 말이야.”최연준은 그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남양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이어서 나와 찬이는 윤씨 가문의 사람이니까 당연히 친부모 밑으로 입적해야죠, 그렇죠?”최연준은 입술을 핥으며 계속해서 맞장구를 쳤다.“그... 그래.”강서연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작은 손으로 그의 슈트를 어루만졌다.“그럼 나는 부모님과 함께 돌아가고 당신은 여기서 혼자 잘 지내고 있어요...”“뭐라고?”말소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최연준의 옥타브 높은 목소리에 끊겼다.강서연이 무고한 얼굴로 말했다.“당신은 내가 가는 게 싫어요?”“당연하지!”“그럼... 나랑 같이 갈래요?”최연준이 잠시 멈칫하자 강서연의 장난기 가득한 사슴 눈망울과 마주쳤다.“여보. 전에 당신이 내가 시집간 게 아니라 당신이 나한테 ‘시집온 거’ 라고 했잖아요? 처가살이한다고 했잖아요!”최연준은 어리둥절해서 이전에 자신에게 이렇게 큰 구덩이를 파 놓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아들, 네가 전에 이런 말을 했어?”김자옥이 듣고 고개를 돌려 그에게 묻자 최연준이 마른기침을 두 번 했다.그가 기침하는 것은 엄마더러 떠벌리지 말라는 뜻이었지만 김자옥의 목청은 확성기처럼 높았다.“서연아, 연준이가 정말 너한테 이런 말을 했어? 하하하... 좋은 일이잖아! 예전에 너희 엄마랑 약속했는데, 나중에 내 아들도 문희 아들이라고! 이게 정말 현실로 될 줄은 몰랐어!”말하면서 그녀는 최연준을 한 번 툭 치고 환하게 웃었다.최연준은 마치 외계인을 보는 듯 자기 엄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김자옥이 목청을 높이자 주변 사람들은 최연준이 한때 아내의 환심을 사기 위해 처가살이하겠다는 말
최씨 가문 남자들은 다 좋은데 유독 한 가지, 마누라만 보면 기가 죽는다는 공통점이 있다.조상의 조정 중신, 장원, 장군... 모두 밖에서는 살벌하고 과단성이 있고 매정하였으나 집에 돌아오면 부인에게 충성하고 총애한다고 들었다.육경섭은 의심병이 최씨 가문의 유전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사실 ‘마누라 바라기’ 가 최씨 가문의 모든 남자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여보.”강서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님께서 동의했어요!”최연준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엄마는 동의했지만 할아버지도 있잖아. 할아버지는...”“연준아.”최재원은 안색이 약간 심각한 표정으로 사람들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강서연은 민망한 듯 최연준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고개를 저었다.원래 농담으로 한 얘기인데 만약 정말로 영감님을 불쾌하게 한다면 그녀는 죄를 짓는 것이다.“할아버지, 오해하지 마세요!”강서연이 웃으면서 해명했다.“저와 연준 씨는 그냥 하는 말이에요...”“이렇게 큰일을 어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어?”최재원이 목소리를 높였다.강서연은 마음이 긴장해서 작은 손은 불안한 듯 치맛자락을 잡아당겼다.최재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깊은 눈빛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정말 그렇게 말했어?”“네.”최연준은 암암리에 강서연의 손을 잡고 태연하게 말했다.“그때 할아버지께서 저와 서연이의 혼인을 반대해서 속상하지 않게 하려고 말했어요. 저도 서연이가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럴 생각이 있었어요.”“여보...”강서연은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부르고 필사적으로 눈치를 줘서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했다.가까스로 할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그녀는 이 사소한 일로 영감님의 마음속에 있는 좋은 인상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최재원은 무표정한 얼굴이어서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고 음악도 자연스럽게 멈췄다.모두 그를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며 또 무슨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침묵이 흐르다가 최재원이 갑자기 말했다.“그래, 말했으니까 그렇게 해야지!
윤정재는 일찍이 이곳의 웃음소리를 듣고 윤문희의 손을 잡고 이쪽으로 왔다.최재원은 곧 진지한 모습으로 돌아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담소 몇 마디를 건네고 두 사람은 도우미에게서 술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다 마시고 나서 중요한 문제를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윤 회장님은 언제 남양으로 돌아갈 예정인가요?”“지금 연합 병원의 프로젝트는 겨우 3분의 1밖에 진행되지 않았는데, 어쨌든 병원이 완성되면 돌아갈 거예요!”“그렇군요...”최재원이 계산해 봤다.“그럼 제가 연준이에게 미리 준비하라고 할게요! 나중에 연준이 남양에 가면 회장님에게 많은 폐를 끼칠 수도 있어요!”“네? 누가 데리고 간다고 했어요?”윤정재는 잠시 멈칫했다.최재원도 눈을 크게 뜨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강서연은 웃으면서 두 사람 사이로 걸어가 설명했다.“할아버지, 내가 남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은 연준 씨와 한 농담이에요.”“맞아요.”윤문희도 웃으며 말했다.“서연이가 영감님 손주며느리인데 당연히 오성에 남아야죠!”“연준이가 처가살이하겠대요.”“정말요?”윤정재는 바로 눈을 크게 떴다.“아니에요!”윤문희가 그를 때리고 돌아서서 최재원을 바라보았다.“영감님, 우리 남양 쪽은 엄청 전통적이에요. 비록 제가 딸을 옆에 두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아서 앞으로 서연이를 잘 부탁드려요!”“문희야, 집에 데리고 가자!”윤정재가 옆에서 속삭였다.“최 서방도 윤씨로 개명하면 내가 평생 배운 것을 모두 물려줄 수 있어.”“당신 정신 나갔어요! 생각도 하지 마세요!”윤문희가 경고했다.“서연이는 최 서방의 처이니, 최 서방이 어디 있으면 서연이도 같이 있어야 해요!”“하지만...”“한마디만 더 하면 당신 혼자 남양으로 돌아가세요!”윤정재는 볼을 빵빵하게 하고 머리를 숙인 채 말을 하지 않았다.최연준은 이런 광경을 보면서 웃었다. 원래 아내를 무서워하는 것은 최씨 가문 남자들만의 것이 아니었구나!강서연은 그의 품에 기대어 있었고 원무곡이 울려 퍼
성설연의 이름을 듣자마자 최지한은 짜증이 확 밀려왔다.‘정말 귀찮은 여자라니까.’“큰 도련님.”도우미는 전전긍긍하며 최지한의 답을 기다렸다.“성설연 씨를...”그런데 도우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설연이 제멋대로 쳐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최진혁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최진혁은 아들이 성인군자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평소 연예인이나 모델을 자주 만났고 예전에 강유빈을 옆에 두고 노리개처럼 가지고 논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옷을 갈아입는 것보다도 여자를 더 자주 갈아치울 줄은 몰랐다.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최진혁이 노발대발했다.“최지한, 넌 어떻게 된 게 맨날 저런 애들을 데리고 노는 거니?”최지한은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집사에게 손을 흔들어 최진혁을 내보내라고 했다. 최진혁은 나가면서도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난 네 아버지야. 아버지가 한두 마디 하는데 뭐? 그래, 계속 그렇게 놀아. 놀다가 확 죽어버려도 난 모른다. 쓸모없는 놈...”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른 최지한은 테이블 위의 컵을 들어 냅다 벽에 던졌다.유리 조각이 성설연의 얼굴에 튀자 성설연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고는 얼굴을 부여잡고 경악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잠시 후, 최지한은 심호흡한 후 그녀를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요?”성설연은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조금 전 묻고 싶었던 질문이 한 글자도 떠오르지 않았다.“아, 그게 저...”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고 애를 썼다.“그러니까... 요즘 제 영상이 왜 순위에 들지 못했는지 여쭤보려고요.”최지한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도련님.”성설연의 얼굴에 조급한 기색이 역력했다.“최근 제 영상에 달린 좋아요 개수도 별로 없고 조회 수도 얼마 안 돼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당신이 재주가 없어서 그런 게 나와 무슨 상관이에요?”“도련님께서 절 띄워주시겠다고 하셨잖아요...”“그래요, 그렇게 얘기했었죠. 그런데요
성설연은 생각할수록 내키지 않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엉엉 울면서 화풀이하는 것뿐이었다.정신이 사나워진 최지한이 그녀를 내쫓으려던 그때 휴대 전화가 갑자기 진동했다. 누군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는데 사진 속에 어떤 남자의 옆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최지한은 사진 속의 남자가 구현수라는걸 단번에 알아챘다.곧바로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구현수 지금 오성에 있어요.」최지한의 두 눈에 음흉함이 스쳐 지나갔다.‘허, 하긴. 강명원이 망하고 나니까 구현수도 더는 강주에 못 있고 살 길을 찾아 나섰겠지.’구현수에게 있어서 오성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최지한이 오성에 있으니까.최지한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휴대 전화를 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예전에 최연준과 구현수를 바꿔치기하려던 작전을 실행하지 못했었다. 구현수가 또 왔으니 이번이야말로 하늘이 그에게 준 기회나 다름없다.귀한 기회를 한 번 더 놓쳐서는 안 되었다. 반드시 이 절호의 찬스를 이용하여 최연준을 제거하고 구현수를 손안에 넣고 휘어잡아야 했다.그리고 성설연은... 너무 귀찮은 존재이니 차라리 구현수에게 해결하라고 해야겠다.최지한은 머리를 굴리며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음흉한 표정으로 성설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설연 씨, 울지 말아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울어도 소용없어요.”성설연은 그제야 울음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최지한은 또박또박 싸늘하게 말했다.“정말 인기를 얻고 싶다면 나에게만 기대서는 안 돼요.”“네?”“최연준을 꼬셔야 해요.”성설연은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미친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안 돼요, 안 돼요. 셋째 도련님의 마음속에는 사모님밖에 없어요. 얼마나 쉽지 않은 분인지 직접 겪어봐서 알아요.”“허, 그건 그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에요.”최지한이 얼굴을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그의 얼굴에는 핏기라곤 거의 없었고 얇은 어깨가 마치 옷걸이처럼 널찍한 셔츠를 받쳐주고 있었다. 웃을 때면 두 눈에 음험함과 흉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