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보미는 피식 웃으며 다시 남자처럼 털털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여성스러운 체크 원피스를 입었다.“너와 나 사이에 무슨 못 할 말이 있다고 그래?”곽보미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이렇게 난감해하는 모습은 정말 드문데 말이야.”유찬혁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한참 후에 나지막이 말했다.“보미야, 넌 줄곧 날 친구로 생각한 거 맞지?”곽보미는 잠깐 멈칫하다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우린... 형제 같은 친구야?”“허허...”곽보미는 어색하게 웃다가 결국 인정했다.“그럼, 당연하지. 줄곧 형제 같은 친구였어.”“그럼 친구로서 너에게 부탁 하나 하자.”곽보미는 그를 쳐다보며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기울여 들었다.“말해 봐.”“지금 새 영화 준비 중이지?”“응.”“혹시...”유찬혁이 입술을 적시며 망설였다.“네 영화에서 작은 배역이라도 좋으니까 성설연에게 연기할 기회를 줄 수 있을까?”곽보미의 얼굴에 나타났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가 다시 천천히 놓았다. 그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까지 그녀는 유찬혁에게 거절이란 걸 한 적이 없었다.곽보미는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지만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평소와 같은 웃음을 지었다.“보미야.”유찬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힘들면 부탁 들어주지 않아도 돼. 내가 다른 방법 생각해 볼게.”“나...”“괜찮아.”유찬혁도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무리한 부탁이라는 거 알아. 사실 아까 얘기하기 전부터 그리 기대하지도 않았어. 그리고 이런 거액을 투자한 영화에서 어떤 배우를 쓰든 너 혼자 결정할 수 없고 투자자의 의견도 물어봐야 한다는 것도 알아.”곽보미는 뭐라 얘기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막힌 것처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널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유찬혁이 나지막이 말했다.“다른 방법 더 생각해 볼게. 그나저나 여기서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그러고는 그
최연준은 강서연의 손을 잡고 안심시킨 후 침착하게 길거리로 나섰다.구급차는 그들과 두 길목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최연준과 강서연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보니 커피숍 주변에 이미 많은 사람이 몰려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진지한 얼굴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들것 주변에서 당황해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자옥이었다.“엄마?”최연준이 그녀를 불렀다. 고개를 든 김자옥은 인파 속에서 두 사람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강서연은 조급한 마음에 다짜고짜 물었다.“아주머니, 혹시 우리 엄마가...”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문희가 커피숍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왔다.강서연은 재빨리 다가가 그녀의 팔을 잡고 꼼꼼하게 살폈다. 다행히 아직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걸 보니 예전의 병이 재발한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안색이 백지장처럼 새하얬다.“엄마, 왜 그래요?”강서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날... 놀라게 하지 말아요.”“난 괜찮아.”윤문희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멀지 않은 곳의 김자옥을 보면서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김자옥은 그녀의 뜻을 바로 알아챘다. 윤문희는 아직 강서연에게 자신의 출신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김자옥은 강서연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이며 웃었다.“서연아, 우리 둘 다 아무 일 없어... 저 사람은 윤 회장님이야.”“네?”강서연의 두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다.“그냥... 우연히 만났어.”김자옥은 머리를 굴려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나와 네 엄마가 여기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윤 회장님을 우연히 만났어. 그런데 윤 회장님의 심장병이 발병한 거야.”윤문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야말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아저씨에게 심장병이 있었어요? 왜 저는 몰랐죠?”“나이가 들면 다 그래. 큰 문제 아니야.”김자옥은 재빨리 두 사람을 돌려보냈다.“됐어, 그만들 돌아가. 서연아, 나와 네 엄마는 윤 회장님을 병원에 데려갈 테니까 이따가 먹을 것 좀 가져다줘.”...병원 안, 윤문희는 어두
“아, 아무것도 아니야.”윤문희가 침착한 말투로 말했다.“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어. 사람은 나이가 들면 진짜 건강 관리 잘해야 해.”“엄마...”강서연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말할까 말까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물어보기로 했다.“혹시 아저씨랑 이미 만났어요?”윤문희는 잠깐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응.”“이런 우연이!”강서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보며 웃었다.“제가 엄마에게 소개하려고 했던 분이 바로 이 아저씨예요. 아저씨도 샴고양이를 키워요. 지난번에 뚱냥이도 데리고 두 사람을 만나게 하려 했었어요.”김자옥이 마른기침을 했고 윤문희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최연준은 강서연의 작은 손을 꼭 잡았다. 눈치 빠른 강서연은 그들의 안색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어디가 이상한지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었다.세심하고 꼼꼼한 김자옥은 강서연이 머리가 똑똑하여 집으로 돌아가 조금만 생각하면 뭔가 알아차리리라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윤문희가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게 된다.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지금 화제를 돌려야 했다. 김자옥은 웃으며 강서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서연아, 며칠 전에 네 엄마가 혼자 집에서 넘어졌잖아. 너와 찬이도 평소 집에 없어서 혼자 외로울까 봐...”“그러니까 아주머니도 엄마와 아저씨가 어울린다는 말씀이죠?”강서연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응?”김자옥이 두 눈을 깜빡였다.‘난 집에서도 누군가 문희를 챙길 수 있게 도우미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는데.’하지만 강서연의 순진하고 기대 가득한 웃음에 김자옥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병실에 누워있던 윤정재가 드디어 깨어났다. 깨어나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나름 준수했던 얼굴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었고 두 눈도 실눈이 되고 말았다. 너무 부은 탓에 말을 하려고 애를 써도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고 한마디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강서연은 그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그의 모습이 웃기면
잠시 후, 박경수가 손에 노트북을 들고 왔다.강서연이 식사를 마친 후 박경수는 도우미에게 그녀 앞에 놓인 식기를 전부 치우라고 한 다음 그 자리에 노트북을 내려놓았다.최연준도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다가가 보았다. 노트북 화면에 숫자가 빼곡하게 적힌 표가 나타났다.“그건 장부야. 회사 건 아니고 최상 빌라 거야.”최재원의 말투는 매우 담담했다.“서연아, 이상한 부분이 있는지 꼼꼼하게 봐줘.”“할아버지, 이건...”최연준이 뭐라 하려던 그때 강서연이 몰래 그의 손등을 꽉 눌렀다. 강서연은 최연준에게 눈치를 주며 고개를 내저었다.최재원은 지금 그녀를 시험하고 있었다.지난번 서교 땅 프로젝트의 불법 매매가 최진혁과 연관이 있다는 걸 강서연이 알아낸 후로 최재원은 그녀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하여 요즘 최재원은 최연준과 강서연을 집으로 자주 불렀고 가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리고 머리가 영리한 그녀는 최재원의 질문에 항상 완벽하게 답했다.지난번에 국제 정치 형세에 관한 생각을 물었었는데 이번에는... 경제 장부?강서연은 심호흡 한번 하고 노트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장부가 복잡하고 숫자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어 눈만 피곤한 게 아니라 머리도 지끈거릴 정도였다. 반드시 좋은 기억력을 지녀야만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하여 최재원이 말한 ‘문제’를 찾아낼 수 있다.강서연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점차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30분이 지나갔고 최상 빌라의 장부에 대한 윤곽도 대충 잡혔다.그녀는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부적절한 곳을 과감하게 집어냈다.최재원은 강서연이 찾아낸 부분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이 돈은 애들 생활비야.”“알아요. 그래서 소부분만 삭제했어요. 기본적인 의식주는 보장해야 하니까요.”그러자 최재원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이게 소부분이라고? 네가 삭제한 것들이 적은 액수는 아닌데?”“액수가 적었다면 골라내지도 않았죠.”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 전 최씨 가문의 자제들
“그리고...”강서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보안 비용과 개인 경호 비용은 중복된 거니까 삭제해야 해요.”“뭐?”최재원이 화들짝 놀랐다.“할아버지.”강서연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설명했다.“이 빌라에는 이미 가장 선진적인 보안 시스템이 있고 가장 뛰어난 경호원들이 각 별장에 분포되어 있어요. 그런데 굳이 개인 경호원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요? 개인 경호원이라면 스스로 알아서 돈을 내서 구해야지, 가문에서 대준다는 게 말이 돼요?”최연준은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고 몰래 속으로 아내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강서연이 집어낸 이 문제는 최진혁과 최지한을 가리켰다.최씨 가문의 자제 중에 최재원의 중시를 받는 최연준 말고도 몇몇 사촌 형제들이 있었는데 다들 본부에서 힘을 보태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촌 누나와 사촌 여동생들도 여자지만 남자에게 전혀 뒤지지 않았고 각자의 계열사를 잘 경영해 나가고 있었다.오직 최지한만이 집에 일전 한 푼 보태준 적이 없으면서도 돈을 물처럼 쓰듯 했다. 그 바람에 박경수는 장부상의 수입과 지출을 맞추려고 자주 애를 먹곤 했다.게다가 개인 경호원도 최진혁과 최지한만 있었다.최연준도 예전에 이 문제 때문에 최재원과 한바탕 싸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최재원은 각자의 세력을 평등화하기 위하여 최진혁의 일부 행동을 보고도 못 본 척했다.이젠 최씨 가문도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할 듯싶다. 계속 이대로 나갔다간 임씨 가문처럼 겉보기는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진 꼴이 될 게 뻔했다.“그럼 이 몇 가지는?”최재원은 웃으며 일부러 물었다.“아낄 필요 없겠어?”최재원이 가리킨 건 집사와 도우미의 복지 혜택이었다. 중복된 부분이 있긴 했지만 강서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재원의 두 눈에 빛이 스쳐 지나갔다.“이유가 뭐지?”“최씨 가문의 복지 혜택이 아주 좋아요. 이건 집사와 도우미들이 떠나지 않고 오랜 시간 일할 수 있는 전제죠.”강서연이 나지막이 말했다.“한 가문이 오랫동안 흥성하려면 결국에는 믿을 만한
강서연은 살짝 멈칫했다. 귀여운 두 볼이 발그스름해졌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설레고 흥분됐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최재원은 자신의 감정을 밖에 드러내지 않는 강서연의 성격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아무 말 없으면 동의한 걸로 알게.”최재원이 웃으며 말했다.“아무튼 나중에 연준이와 결혼하면 우리 집안의 안주인이 될 것이고 가업도 두 사람에게 다 맡길 생각이야. 하하... 반평생 쉬지도 못하고 바쁘게 살아온 나도 드디어 여유를 좀 누릴 수 있겠구나.”“할아버지...”최연준은 놀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고 기쁨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어?”최재원이 아래위로 훑어보자 최연준이 피식 웃었다.“계속 반대하시더니 왜 갑자기... 안 그래도 제가 서연이에게 프러포즈한 사실을 요 며칠 할아버지께 말씀드릴 참이었는데...”“너 이 녀석.”최연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최재원이 두 눈을 부릅떴다.“내가 언제 계속 반대했어?”최연준은 순간 멍해졌다.“경수야, 내가 반대한 적이 있었어?”“당연히 없죠.”박경수는 바로 최재원의 편을 들었다.“셋째 도련님께서 잘못 기억하신 거 아니에요? 영감님께서는 줄곧 서연 씨를 마음에 들어 하셨고 예전부터 손주며느리로 들일 생각이셨어요.”“내가 사람 보는 눈이 어때?”“영감님의 사람 보는 눈이 언제 틀린 적이 있었던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서연 씨는... 아니, 셋째 사모님은 앞으로 최씨 가문을 잘 관리할 거니까 영감님은 복이나 누릴 준비하세요.”최연준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때 찬 바람이 휙 불면서 그의 머리가 살짝 헝클어졌다.본가의 위치가 빌라에서 가장 좋은 곳인데 창문을 안 닫은 건가? 아니면 문을 안 닫은 건가?“서연아.”최재원은 최연준을 혼낸 후 바로 다시 다정하게 웃었고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할아버지는 다 먹었으니까 너희들은 천천히 먹어. 하하... 오늘 특별히 새로 온 이탈리아 요리사에게 부탁한 거
“네.”최연준이 고개를 끄덕였고 최재원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생각에 잠긴 듯했다.“서연이는 다 좋은데 출신이 조금...”‘출신?’최연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비록 윤정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요즘 대체 무슨 영문인지 최연준을 볼 때마다 원수 보듯 했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강서연의 친아버지였다. 최연준이 참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아내를 사랑하면 처가 말뚝에다 대고 절까지 한다고 했다.최연준은 정신을 가다듬고 최재원에게 강서연의 출신에 대해 얘기하려 했다. 그런데 그가 아직 말을 꺼내기도 전에 최재원이 갑자기 확고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연준아, 아무래도 서연이의 양부모가 될만한 괜찮은 집안을 알아봐야겠어.”“네?”최연준이 화들짝 놀랐다.“4대 가문끼리 대대로 사돈을 맺어왔어.”최재원의 눈빛이 복잡했다.“이건 우리 조상님들이 남긴 규정인데 내 세대에서 깨지면 안 돼. 그런데 난 서연이가 참 마음에 들거든. 그러니까 서연이에게 양부모를 찾아주는 것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어.”“할아버지...”“배경이 있는 가족을 찾아주면 서연이도 기댈 수 있는 곳이 생기고 남들도 더는 서연이의 출신이 좋지 않다고 수군거리지 않을 거야. 어때?”최재원이 눈썹을 치켜올렸는데 그 표정은 마치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나 똑똑하지?’최연준은 어이가 없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할아버지. 서연이는...”“왜 필요 없어?”최재원이 그를 째려보았다.“넌 네 와이프가 걱정되지 않겠지만 난 내 손녀가 걱정된다고.”“손... 녀요?”“그래!”최재원이 당당하게 말했다.“서연이는 나와 마음이 잘 맞아. 너희들 같이 집안을 망치는 자식들보다 훨씬 나아.”최연준은 막연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어떻게 이런 충격적인 말씀을 할 수가 있죠? 집안을 망치는 자식은 최지한뿐인데.’최재원은 고개를 내저으며 옥패를 다시 넣더니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아무튼 이미 다 찾아놓았어.”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요즘 내 병
최연준이 에덴으로 돌아왔을 때 강서연은 박경실에게서 주방에서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박경실이 가스 불을 낮추었고 솥 안의 국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온 집안에 맛있는 냄새와 따뜻함이 가득했다.“마지막에 이걸 넣으면 돼요.”박경실이 차근차근 가르쳐주었고 강서연도 열심히 배웠다.“이러면 돼요?”“네.”“그렇군요.”강서연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이걸 넣으니까 향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이런 국은 사모님과 도련님 모두 드셔도 좋아요. 이젠 겨울이라 날씨도 차갑고 건조하잖아요. 영양 보충하셔야죠.”“네.”강서연은 웃으며 대답한 후 솥뚜껑을 닫고 불을 꺼버렸다. 그러자 박경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안... 드세요?”“연준 씨가 돌아오면 같이 먹으려고요.”“도련님 오늘 본가로 가시지 않았어요? 바로 돌아올 것 같진 않은데 먼저 드세요. 도련님 건 따로 남겨드리면 되죠.”“안 돼요. 혼자 먹으면 맛없어요.”강서연이 히죽 웃었다.“와서 같이 먹어야 맛있어요.”그녀의 달콤한 목소리에 주방 밖에 있던 최연준은 마음이 설렜고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예전에 강주에 있을 때도 강서연은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최연준이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함께 먹곤 했다. 그때 그녀는 최연준이 제대로 먹지 못할까 봐,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여 밖에서 놀림이라도 당할까 봐 가장 걱정했었다. 하여 그에게 최대한 좋은 삶을 주기 위하여 미친 듯이 돈을 벌었다.3개월의 인센티브를 모아서 최연준에게 수백만 원짜리 양복을 사주었고 전 재산을 털어 자동차까지 사주었다.가장 어려웠을 때도 최연준이 60만 원짜리 벨트를 사겠다고 하자 강서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돈을 줬었다.그리고 강서연이 첫 월급을 탔을 때 두 사람은 제인 호텔에 갔었다. 강서연은 돈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랍스터 리소토를 사주면서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가 먹여 살리면 되죠.”최연준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복잡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오성에 온 후 사람들은 최연준이 강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