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과 녹화 현장의 거리가 꽤 멀었다. 강서연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이힐을 밟으며 화장실로 걸어갔다. 그런데 자꾸만 누군가 뒤에서 따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강서연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발걸음을 늦추었다. 그 시각 그녀는 텅 빈 복도에 서 있었는데 불빛도 어두웠고 공기마저 싸늘하게 느껴졌다.그녀가 고개를 홱 돌렸지만 어두운 복도가 쭉 길게 늘어진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강서연은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심호흡했다. 아무래도 그녀가 괜한 생각을 한 게 아닌가 싶다.이곳은 방송국이라 들어오려면 여러 차례 검문을 거쳐야 하기에 나쁜 사람이 들어올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그녀는 잠깐 생각하다가 휴대 전화를 꺼내 최연준에게 문자를 보냈다.「연준 씨, 나 메이크업 수정하러 화장실 가요.」별다른 말 없이 문자 한 줄과 현재 위치를 보내줬다.이건 그녀와 최연준만이 알 수 있는 대화다. 그녀는 최연준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달려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설령 못 오더라도 다른 사람을 보내 그녀를 지켜줄 것이다.강서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그녀가 괜한 의심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미리 대비하지 못해 진짜 사고가 나기보단 나았다.화장실로 들어간 그녀는 화장품 가방에서 파운데이션과 립스틱을 꺼냈다. 수정을 마친 그녀는 거울을 비춰보았다. 원래도 예뻤던 작은 얼굴에 요염한 분위기가 더해졌다.강서연은 거울을 보며 씩 웃었다. 그런데 그때 세면대 옆에서 누군가가 그녀에게 점점 다가갔다. 그녀가 휴지를 뽑고 손을 닦은 다음 나가려는데 누군가 그녀의 팔을 확 잡았다.“으악!”그녀가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든 순간 오승준의 느끼한 얼굴과 딱 마주쳤다.“서연 씨.”오승준은 잇몸까지 드러내고 음흉하게 웃었다.강서연은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지난주 녹화 때부터 계속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쳐다보는 그의 시선에 강서연은 불편하기만 했다.나중에 강서연이 오승준의 뒷조사를 하다가 비열하고 악
강서연이 싸늘하게 웃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까 최연준에게 현 위치를 보낸 게 너무도 다행이었다. 거의 도착할 시간도 다 되었으니 이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을 붙잡아두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허, 오 감독님의 뜻은 잘 알겠어요.”강서연이 냉랭하게 말했다.“하지만 이런 더러운 짓을 하기 전에 잘 생각해야 해요.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다간 나중에 뼈도 못 추리는 수가 있어요.”“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오승준이 간사하게 웃었다.“예쁘장하게 생겨서 입은 거치네? 하하... 자, 이리 와. 뼈를 못 추스르더라도 네 몸에서 죽고 싶어.”“저리 꺼져!”강서연은 오승준을 힘껏 밖으로 밀쳤지만 오승준은 마치 두꺼운 벽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승준은 점점 그녀에게 입술을 갖다 댔다. 강서연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만 맡아도 온몸이 감전된 것처럼 찌릿하고 흥분되었다.“서연 씨가 양아치 같은 놈과 결혼했다는 거 알아.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지? 하지만 괜찮아. 내가 만족시켜 줄게.”“꺼져!”오승준이 그녀에게 키스하려던 그때 강서연은 그의 가장 약한 부위를 걷어찼다.오승준은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몸을 움츠린 채 연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강서연의 힘이 약한 데다가 긴장한 탓에 그리 세게 걷어차진 못했다.정신을 차린 오승준은 흉악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덮치려 했다.강서연은 황급히 몸을 돌려 밖으로 뛰쳐나갔다. 오승준이 그녀를 거의 잡을 무렵 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오승준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최연준은 강서연의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녹화 현장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에게 강서연을 지키라고 분부를 내렸다. 그리고 그는 하던 업무를 모두 내려놓고 녹화 현장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강서연에게 아무 일도 없으면 다행이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일찌감치 그녀와 이런 약속을 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있지 않을 때면 언제든지 지켜줄 수 있도록 그에게 위치를 보내기로 했다.최연준은 눈 깜짝할 사이에 녹화 현장에 도
최연준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경호원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 후 슬그머니 가까이 다가가 구경했다.아니나 다를까 강서연이 진짜로 하이힐을 벗고 오승준의 머리를 내리치고 있었다.가뜩이나 머리카락이 몇 가닥 없는 오승준은 머리를 맞고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렀다.강서연은 그제야 화가 좀 풀렸는지 다시 하이힐을 신고 두 손을 허리에 올린 채 서 있었다. 머리가 헝클어지긴 했지만 마치 여장부처럼 위풍당당했다.오승준은 얼굴이 퉁퉁 부은 채 바닥에 엎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실컷 두들겨 맞았는데도 입은 살아있었다.“이... 이 년들이, 내가 누군지 몰라?”“당신이 누구면 뭐? 누구든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지!”“내 작품이 국제상도 받았어...”“내 남편이 최연준이야!”강서연은 또박또박 한마디 내뱉고는 다시 그를 힘껏 걷어찼다.오승준은 넋이 나간 얼굴로 그녀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밖에 있던 최연준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실룩거렸고 어깨가 쓱 올라갔다.“됐어요, 강 비서님. 녹화가 곧 시작이에요. 저런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이랑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네.”강서연은 고마움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오승준이 그녀에게 몹쓸 짓을 하려 할 때 곽보미도 마침 화장실에 있었다.평소 곽보미와는 일로만 만난 터라 곽보미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능력도 있고 감각도 뛰어난 여자 감독이 이토록 카리스마가 넘칠 줄은 몰랐다.조금 전 오승준이 강서연을 잡으려고 할 때 곽보미가 뒤에서 기습한 바람에 오승준이 바닥에 넘어졌다. 하여 인간쓰레기만도 못한 오승준을 쥐어팰 기회가 생겼다.강서연과 곽보미의 호흡이 어찌나 척척 맞는지 오승준은 반격할 틈조차 없었다.“곽 감독님, 이 사람은 어떡하죠?”강서연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어쨌거나 오승준은 심사위원이었으니 말이다.“신경 쓸 필요 없어요.”곽보미는 개의치 않아 하며 손을 저었다.“주최 측에서 물어보면 못 봤다고 해요. 어차피 한 사람 때문에 녹화를 중단하진 않을 거거든요
“곽 감독님, 녹화 곧 시작해요.”최연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감독님은 지각해서는 안 되죠.”곽보미는 여기서 방해하지 말라고 빙빙 돌려서 얘기하는 최연준의 뜻을 단번에 알아채고 냉큼 자리를 피했다.최연준은 웃으며 강서연의 손을 잡고 녹화 현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경호원은 오승준을 천천히 끌고 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옆으로 지나갈 때 오승준은 퉁퉁 부어오른 두 눈을 힘겹게 떴다. 강서연과 최연준이 깍지를 끼고 알콩달콩 행복해하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그 순간 오승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뼈도 못 추릴 거라는 얘기는 그나마 봐준 것이었다. 최연준의 성격이라면 그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도 남는다....녹화 현장은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최연준은 가운데 자리에 앉지 않았다.“최 대표님, 이쪽으로 앉으세요...”사회자가 최연준을 가운데 자리로 안내했다.“괜찮아요.”최연준이 덤덤하게 말했다.“이 예능의 대본을 봤는데 남녀 주인공을 뽑는 거 맞죠? 남녀 주인공도 중요하지만 감독이 더 중요하죠. 감독님이 가운데 앉아야 무대 위의 배우들을 더 잘 살펴보고 작품에 어울리는 배우가 누구인지 알 수 있죠. 안 그래요? 오 감독님?”최연준은 싸늘하게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하지만 오승준의 얼굴이 퉁퉁 부은 데다가 이까지 빠져 뭐라 중얼거리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사회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최연준이 직접 이렇게까지 얘기한 이상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하여 사회자는 오승준을 가운데 자리로 안내했다.카메라가 마침 오승준의 얼굴 정면에 있었다. 전 세계가 시퍼렇게 멍들고 퉁퉁 부은 그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최연준은 여유롭게 펜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가끔 오승준을 쳐다보았다. 그의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가 지어졌다.‘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 내 손에 죽으려고!’육경섭의 열 가지 고문의 맛을 본 후에는 자신이 대체 누굴 건드렸는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녹화가 절반 정도 진행됐을 무렵 남녀 주인공
무대 위의 두 사회자도 웬만한 돌발 상황은 다 겪어본 베테랑들이었다.비록 지금 이 상황이 예상 밖이긴 했지만 그래도 바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웃으며 최연준이 건네는 편지를 받았다.그건 실명으로 고발한 편지였는데 고발인은 바로 방금 영상 속에 나왔던 몇몇 젊은 감독들이었다.남자 사회자는 차분한 말투로 고발 편지를 읽었다. 녹화 현장 전체가 삽시간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화들짝 놀란 오승준은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시퍼렇게 멍이 든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십여 초 후 침묵이 사라지고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오 감독이 상을 저렇게 받은 거였어?”“허,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아주 딱 맞았네. 오 감독의 실력이 아주 형편없는데 어떻게 저런 좋은 작품을 찍을 수 있었겠어?”“그러니까 말이야. 저런 사람이 어떻게 국제상을 받았나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다 표절한 거였구나!”“저런 사람이 감독이라니, 감독이라는 직업에 먹칠한 거나 다름없어.”“다시는 작품 활동 못 하게 금지령을 내려야 해.”사람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그 시각 오승준은 수천 마리의 벌들이 귀에서 윙윙거리는 것 같았다. 당황한 나머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심장이 터져 나올 듯이 쿵쾅거렸고 호흡마저 가빠졌다.“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그는 여전히 발뺌하고 싶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욕설에 묻히고 말았다. 게다가 아까 호되게 두들겨 맞아 온몸의 뼈가 다 아팠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강서연은 옆에 앉아서 그를 싸늘하게 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젠장. 예전부터 파렴치한 인간인 줄은 알았는데 작품마저 다 표절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정말 비열하기 짝이 없는 놈이야!”곽보미가 책상을 ‘탁’치며 성을 냈다.“저런 놈을 내가 촬영 기술이 좋다고 공개적으로 칭찬까지 했으니, 내가 정말 눈이 멀었네, 멀었어.”오승준은 지금 뭇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에게 비난을 받다 못해 고개도 들 수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
유찬혁이 히죽 웃었다.“연준 형, 장인어른 걱정을 점점 더하는 것 같은데요?”유찬혁을 노려보는 최연준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유찬혁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최연준은 늘 말은 거칠게 해도 마음만은 따뜻했다.인제 보니 최연준과 윤정재가 비슷한 면이 조금 있는 것 같다. 가족은 서로 닮아간다는 게 바로 이런 건가 보다.“아 참, 형, 장인어른만 신경 써서는 안 돼요. 형네 전 장인어른 회사에 일이 터졌어요. 아무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그의 말에 최연준이 눈살을 찌푸렸다.‘뭔 소리야 저게?’유찬혁이 웃으며 말했다.“강명원이 형의 전 장인어른이잖아요.”그가 웃으며 고개를 든 순간 최연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콜록콜록.”유찬혁은 황급히 설명했다.“강명원의 회사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요. 지금 부도 위기에 처한 것 같아요.”“그래?”최연준이 싸늘하게 웃었다.그가 강주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강명원의 회사는 나름 잘 나갔었다.‘그때 그 능구렁이 같은 강명원이 서연에게 주식도 주려고 했었잖아? 왜 고작 2년 사이에 부도 위기에 처한 거야?’“뭔가 다른 원인이 있겠지.”최연준의 눈빛은 마치 모든 걸 꿰뚫어 본 듯 그윽했다.“가장 주요한 원인은 경영할 줄 모르기 때문이죠.”유찬혁이 덤덤하게 말했다.“항상 오만하고 시건방을 떨어서 회사 사람들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적이 많아지면 당연히 무너지게 되죠. 그런데 제가 장부를 봤는데...”최연준의 두 눈이 반짝였다.“뭔가 알아냈어?”“공적인 장부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강명원의 개인 계좌에 매달 엄청난 금액의 돈이 입금되고 있더라고요.”“어디서 입금된 건데?”“남양요.”‘남양?’최연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잠시 후, 그는 반신반의하며 유찬혁에게 물었다.“설마... 윤정재 회장님이 서연이 어머니에게 주는 돈이야?”유찬혁은 순간 멈칫했다. 최연준의 눈치가 이리도 빠를 줄은 생각지 못했다. 다행히 공을
강명원은 지금 급전이 필요했다. 윤문희를 보살핀다는 명분이 있어야만 남양에서 입금할 것이다.강명원은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까지 해온 이 행각이 위험한 건 사실이다.남양의 윤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가? 하나같이 용맹스럽고 사나운 가문이다. 그들은 그깟 돈은 신경 쓰지 않겠지만 자신이 속았다는 건 절대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만약 강명원이 그들을 이십 년 넘게 속였다는 걸 알게 된다면 결과가 어떨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대충 알 수 있었다.강명원은 눈살을 찌푸리고 집안에서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얼마 전에 감옥에 있는 오승준의 면회를 하러 갔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오승준은 마치 미라처럼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고 심지어 걸을 때도 교도관의 부축을 받아야만 걸을 수 있었다.그리고 정신 상태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실성한 것처럼 딴소리했고 앞니도 두 개나 빠져 있었다.그런 그의 모습이 역겨워 강명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 오승준이 갑자기 얼버무리며 말했다.“형님... 서연이 이젠 예전의 서연이가 아니에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에요. 걔 뒤에... 어둠의 세력이 있고... 남양도 있고 최연준도 있어요.”강명원은 넋이 나간 얼굴로 제자리에 굳어버렸다.오승준은 미친 사람처럼 실실 웃었는데 그 웃음이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형님도 너무 잘난 척하지 마십시오. 허허... 형님네 사위 감옥에 다녀온 사람이 아니라 바로 최연준이에요. 최연준이 언젠가는 와서 복수할 테니까 기다려요...”교도관은 오승준을 다시 데려갔다.그 생각을 하던 강명원은 다른 꿍꿍이가 떠올랐다. 그에게 있어서 강서연이 최연준과 함께한 건 오히려 더 잘된 일이었다.‘최연준이 서연이를 엄청 신경 쓰나 본데? 서연이 약점만 내 손에 넣는다면 최연준도 어쩔 수 없이 나설 거야. 최연준의 말 한마디면 강진 그룹은 기사회생할 수 있어.’강명원은 잇몸까지 드러내고 교활하면서도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그나저나 어디 가서 약점을 찾지?’
“널 아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건 딱히 나쁠 거 없어.”그런데 임우정의 이 한마디가 최연준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밖에 서 있던 그는 질투심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강서연이 하도 빛나는 사람이어서 집에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다는 걸 최연준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연적이 여자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최연준은 어두운 얼굴로 아래층으로 성큼성큼 내려가 베란다에서 휴대 전화를 꺼냈다.비록 그도 곽보미의 성적 취향에 문제가 있다는 걸 믿지 않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나중에 진짜로 일이 터졌을 때 해결책이 없으면 더욱 골치가 아플 것이다.방한서의 휴대 전화가 한참 동안 울렸다. 그 시각 그는 한창 배경원과 함께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지난 몇 차례 교훈을 통하여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최연준의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멀리 피하면 피할수록 더 좋다는 걸 깨우치고 나서는 배경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얼마 놀지도 못했는데 최연준의 전화에 소스라치게 놀랐다.“너 어디야?”최연준이 성난 목소리로 소리치자 방한서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도련님이 방해하지 말라면서요...’최연준은 휴대 전화를 들고 씩씩거렸다.‘방한서 이 자식 요즘 왜 이래?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오지 말아야 할 때는 나타나서 방해만 하더니, 필요할 때는 또 코빼기도 안 보이네?’그의 성난 목소리를 들은 배경원은 테이블에 엎드려 배꼽 잡고 웃었다.방한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나름 자연스러운 미소를 쥐어짰지만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도... 도련님, 무슨 일 있어요?”최연준은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응!”“하실 분부가 무엇입니까?”최연준이 싸늘하게 말했다.“곽보미에 대해서 좀 알아봐. 대체 정체가 뭔지 알아야겠어.”방한서는 또 어안이 벙벙했다.‘곽보미 씨가 도련님의 심기를 건드렸나? 그냥 요즘 서연 씨와 가깝게 지낼 뿐이잖아.’방한서는 순간 뚱냥이가 왜 보내졌는지 알게 된 것 같았다.역시 사랑에 빠진 남자는 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