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연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그게 같을 리가 있나? 뚱냥이의 털은 부드럽지만 최연준의 머리카락은 그의 성격처럼 까칠한데.강서연은 그의 준수한 얼굴을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웃었다.“여보.”최연준이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강서연은 그가 배고픈 줄 알고 진지하게 대답했다.“경실 아주머니 오늘 휴가 가셔서 집에 밥할 사람이 없어요.”요즘 일이 많아 피곤한 탓인지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씩 웃고는 계속 소파에서 꿈쩍도 하질 않았다.강서연은 책을 3분의 2 정도 읽었고 최연준은 자세를 바꾸어 그녀를 끌어안았다.창밖을 내다보니 오늘 날씨가 온 하루 집에 있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화창했다.그때 최연준의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서연이 웃으며 일어나 밥하려는데 최연준이 그녀를 잡았다.“힘들게 밥하느라 하지 말고 우리 나가서 먹을까?”“네?”강서연이 씁쓸하게 웃었다.“난 더는 명황세가의 밥을 먹고 싶지 않아요...”최연준은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주방장이 이 소리를 들었더라면 아주 치욕적이라고 생각할 거야.”“난 그 뜻이 아니라...”강서연이 다급하게 설명했다.“너무 자주 가서 메뉴판까지 다 외울 지경이에요. 가끔 입맛을 바꿔주는 것도 나쁘지 않죠.”“그래요? 사모님 요구가 아주 높네요? 가끔 입맛도 바꿔줘야 해요?”최연준은 그녀의 턱을 올리고 그윽하게 쳐다보았다.“그럼 나도 바꾸고 싶어?”“가능하다면 바꿔보고 싶어요.”강서연은 웃으며 그를 밀어냈다.“당신...”그 한마디에 삐진 최연준은 그녀를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꽉 껴안았다.“장난 그만 쳐.”최연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적셨다. 배만 고프지 않았더라면 침대에서 그녀를 혼쭐냈을 것이다.“연준 씨, 우리 어디 가서 먹어요?”강서연이 고분고분한 태도로 물었다.“오늘 내가 쏠 테니까 연준 씨가 식당 골라요.”“그럼...”최연준은 휴대 전화를 꺼내 검색했다.“이 집 가보자.”강서연은 고개를 내밀고 확인했다.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핫한
“조금만 더 줘...”“안 돼요!”“여보, 조금만.”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다 큰 남자가 애처럼 유치하게 왜 저래...”“저 여자는 아들을 데리고 나왔나 봐. 하하.”그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강서연은 웃음을 터트렸다. 최연준은 그녀의 눈치를 힐끗 살피더니 마지막 동물 쿠키 한 조각을 내려놓고 단정하게 앉았다.번호가 불리는 속도가 여전히 매우 늦었다. 종업원은 손님들에게 머리띠를 나눠주기 시작했다.앞에서 기다리던 한 커플은 이미 머리띠를 하고 있었는데 안에 전구가 반짝거리는 머리띠였다.해 보고 싶어 안달 나 하는 강서연의 모습에 최연준은 큼지막한 손으로 그녀의 두 눈을 가렸다.“뭐 하는 거예요?”“보지 마.”최연준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달라고도 하지 마.”‘난 저런 거 죽어도 안 해. 너무 창피해!’“두 분, 안녕하세요.”종업원은 두 사람에게도 나눠주었다.“어떤 스타일 좋아해요? 울트라맨과 몬스터 어때요?”강서연은 최연준의 손을 떼어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최연준은 끄떡없었고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우린 필요 없어요.”“주세요!”“안 주셔도 돼요.”종업원은 멋쩍은지 마른기침을 했다.“이건 저희 가게에서 드리는 서비스예요. 점장님께서 손님들이 오래 기다리신다고 지루해할까 봐...”“아무래도 연준 씨의 블랙 카드를 다시 가져와야겠어요.”이 협박은 그 무엇보다도 효과가 짱이었다. 최연준은 결국 하는 수 없이 손을 내려놓았다. 그에게서 벗어난 강서연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종업원이 건네는 울트라맨과 몬스터 머리띠를 받았다.“하려면 혼자 해. 난 싫...”하지만 그가 싫다고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차갑고 도도하기만 하던 최연준이 사람들 속에서 줄을 선 것도 모자라 머리에는 몬스터 머리띠까지 하고 앉아있었다.강서연이 버튼을 누르자 몬스터가 반짝이기 시작했는데 그의 체념한 듯한 표정과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감격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그 모습에 강서연은
최연준은 시무룩한 얼굴로 배경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연준 형.”배경원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움찔했다. 지금 이 순간 최연준은 그를 모른 척하고 싶었다.‘누구세요?’최연준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한마디를 꾹꾹 누르고 마지못해 대답했다.“응.”배경원은 그가 왜 이러는지 알 리가 없었다. 임수정은 종업원에게서 같은 머리띠를 건네받고 배경원에게도 하나 건넸다.잠시 후 드디어 그들 차례가 되었고 네 사람은 한 테이블에 앉았다.“어쩌다가 만났는데.”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오늘 드시고 싶은 거 다 시켜요. 제가 쏠게요!”“그건 안 되죠.”배경원도 따라 웃었다.“형수님의 돈을 써서야 하겠어요? 쏴도 제가 쏴야죠.”그들은 메뉴판을 펼치고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강서연은 임수정이 밖으로 나온 걸 보고 무척이나 기쁜 마음에 그녀의 손을 잡고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요즘 많이 좋아졌죠? 병원은 정기적으로 가요? 정재 아저씨가 언제쯤이면 약을 끊을 수 있는지 알려주던가요?”옅은 미소를 짓는 임수정의 두 눈은 샘물처럼 맑고 반짝였다.“수정 씨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어요.”배경원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요즘 병원에 갈 때도 저와 함께 가요.”“네.”강서연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수정 씨가 많이 좋아진 게 경원 씨의 공이 아주 컸네요?”배경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배시시 웃었다. 최연준의 차가운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쟤는 어릴 적부터 뭘 제대로 한 게 없지만 이 일 하나만은 아주 잘했어.”“형, 그만 좀 디스해요.”배경원은 억울하다는 듯 그를 노려보았다.“제가 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데요. 예전에 형의 감방 동기 역할도 했었잖아요.”감방 동기라는 소리에 강서연은 박장대소했다. 무슨 말인지 알 리가 없었던 임수정은 막연한 얼굴로 배경원을 쳐다보았다.“감방 동기요?”“아주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나중에 천천히 들려줄게요.”임수정
그와 같은 재벌 집 남자라면 밖에 다른 여자가 있고 또 혼외 자식이 있는 것도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그나저나 정재 아저씨에게 진짜 애가 있다면 어떻게 엄마에게 소개해 주지?’강서연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회를 집어 먹었다. 그런데 최연준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그는 임수정을 보며 어두운 목소리로 물었다.“진짜 딸이 있는 게 확실해요?”“확실하진 않아요.”임수정이 어깨를 들먹였다.“아무튼 자기 집 계집애 때문에 저의 병을 치료해 준다고 했어요. 정확히 누구인지는 저도 모르죠.”최연준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강서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얼마 전 강서연과 함께 갤러리에 갔던 때가 떠올랐다. ‘반딧불의 빛’이라는 작품이 가장 눈에 띄는 곳에 걸려있었는데 강서연은 어머니의 작품이라고 그에게 자랑했었다.최연준은 작품의 아래 끝에 문희라고 적혀있는 이름을 발견했다.“장모님 성함이 문자 희자셔?”장모님과 알고 지낸 지 오래됐지만 이름을 안 건 그때 처음이었다.“네.”강서연이 웃으며 대답했다.“윤문희예요.”‘윤문희... 다 성이 윤씨야.’성남에 남양에서 건너온 약이 있었는데 약병에 아주 정교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강서연의 어머니가 강서연에게 준 나무 상자에 그 무늬가 새겨져 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윤정재, 윤문희.게다가 그 약은 윤제 그룹 계열사인 재희 제약에서 제조한 것이다.재는 윤정재의 재이고, 희는 그가 사랑했지만 함께 할 수 없었던 여자라면...최연준은 갑자기 발을 헛디딘 것처럼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머릿속에 온통 이 생각뿐이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젠 단서도 명확해졌고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그는 강서연을 집에 데려다준 후 회사에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김자옥을 찾으러 부리나케 어진 엔터테인먼트로 달려갔다.서류 한 뭉치를 들고 복도를 거닐던 김자옥은 마주 향해 오는 최연준과 하마터면 부딪칠 뻔했다.“최연준, 깜짝 놀랐잖아!”“엄마...”다른 걸 신경 쓸 겨
“아들.”김자옥이 최연준의 옆에 앉았다.“너... 어떻게 알았어?”최연준은 어이가 없었다.“엄마, 아들을 바보로 생각하세요?”김자옥은 아무 말이 없었다.“이런 건 대충 분석만 해봐도 알 수 있잖아요.”최연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단지 그가 너무 늦게 알아차렸을 뿐이다.사실 이 모든 건 그들이 외딴섬에 떨어졌을 때부터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그제야 윤정재가 왜 강서연을 뚫어지게 쳐다보는지, 마치 딸을 걱정하듯 강서연을 걱정하는지 알아챘다.알고 보니 강서연이 윤정재의 친딸이었다!“엄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회장님은 여기까지 왔으면서 왜 서연이에게 사실을 밝히지 않은 건데요?”김자옥은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처리해야 하는 서류를 잠시 옆에 제쳐두고 오늘 당직인 비서에게 그 누구도 사무실에 들이지 말라고 일렀다.그러고는 차 한 잔을 따른 후 일의 자초지종을 최연준에게 들려주었다.“이게 바로 윤정재가 문희를 만나러 가지 못하고 서연이에게 친아빠라고 밝히지 못하는 이유야.”김자옥은 이를 깨물고 말을 이었다.“나쁜 인간 같으니라고. 문희의 인생을 망쳐놓고선 무슨 낯짝으로 문희를 만나?”최연준은 어두운 얼굴로 소파에 기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머릿속으로 요즘 윤정재의 움직임을 돌이켜보았다.윤정재가 오성에 와서 연합 병원 프로젝트까지 맡은 걸 보면 잠시는 남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남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강서연에게 자신이 친아빠라고 밝히려는 모양인데... 하지만 아직 적절한 타이밍이 부족했다.“엄마.”최연준이 냉정하게 분석했다.“이 일 서연이에게 평생 숨길 수는 없어요.”“알아. 나도 그게 제일 걱정이야.”김자옥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가뜩이나 문희 몸도 안 좋은데 윤정재를 만나면 옛날에 속상했던 일이 떠올라 무슨 일이 있을까 봐 걱정이야. 그리고 서연이도... 윤정재가 친아빠인 걸 알게 된다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거야.”“윤 회장님이 두 사람에게 잘못했네요.”
비록 최재원이 지금 겉으로는 강서연을 받아들인 것 같지만 시간을 끌고 있을 뿐이라는 걸 최연준은 잘 알고 있었다.만약 더 좋은 여자가 나타난다면 최재원은 여전히 배경 있고 세력이 있는 집안 중에서 통제하기 좋은 집안의 여자를 골라 손주며느리로 삼을 것이다.하지만 만약 윤제 그룹이라면 최재원도 어느 정도 두려워하게 된다.최연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그는 이미 생각이 섰지만 어머니의 말처럼 강서연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가장 중요했다....늦어서 집에 돌아와 보니 강서연은 이미 침대에 누워있었다. 최연준은 조용히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이불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그의 온기를 느낀 강서연은 본능적으로 그의 품에 안겼다. 최연준은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이마에 다정하게 입맞춤했다.비몽사몽 눈을 뜬 강서연은 그를 보자마자 옅은 미소를 지었다.“왔어요?”“응.”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깨워서 미안해.”“아니에요.”강서연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안 그래도 당신이 오면 같이 자려고 했었어요.”“서연아.”최연준은 잠깐 멈칫하다가 빙빙 돌려 말했다.“나 오늘 경원이네 집에 갔었어.”“그래요?”“어떤 여자애의 돌잔치가 있어서 참석하고 왔어.”강서연은 별로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그녀는 눈을 감고 그의 얘기를 들으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서연아, 그거 알아? 경원이네 집사람들은 다 말을 빨리 배웠는데 그 여자애는 말이 늦더라고. 한살인데 인제야 아빠만 부를 줄 알아.”“음... 너무 늦은 건 아니죠.”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귀인은 입이 무겁다고 나중에 그 애가 엄청난 사람이 되려나 보죠.”“그래. 걔 아빠도 너무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더라고.”“서연아.”그는 입술을 적시고 나지막이 말했다.“여자애가 아빠 품에 안겨있는데 너무 행복해 보였어.”강서연은 두 눈을 뜨고 그를 쳐다보며 다정하게 웃었다.“당신도 어릴 적에... 아빠에게 안긴 적이 있지
강서연의 눈빛이 우울해지더니 표정도 서글퍼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가 한마디 던졌다.“아니요.”가슴이 움찔한 최연준은 그녀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윤제 그룹이라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공주가 이십여 년 동안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 살아왔다. 남에게 업신여김도 당했고 생활도 고달팠으며 이 세상의 어려움을 스스로 감당해야만 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결혼까지 했었다...최연준은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만약 그때 그 마을에서 요양하지 않았더라면, 구현수의 신분으로 살아가지 않았더라면 강서연을 만날 수 있었을까?만약 강서연이 진짜 구현수와 결혼했더라면 그에게 마구 짓밟혀도 참고 견뎠을 것 같다. 그렇게 됐더라면 그녀의 두 눈은 영원히 빛을 잃었을 것이다.그 생각만 하면 최연준은 겁이 덜컥 났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더욱 세게 감쌌다.“연준 씨.”강서연이 부드럽게 말했다.“왜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 건데요?”“아, 아무것도 아니야.”그가 대충 대답했다.“그냥 생각나서 물어본 거야.”“오늘 그 여자애가 귀여워서 부성애라도 생긴 거예요?”최연준은 다정하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강서연은 마치 귀여운 고양이처럼 그의 가슴팍에 살포시 기댔다. 그녀는 어깨가 드러난 얇은 잠옷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두 볼은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처럼 발그스름했다.“모성애는 여자의 본성이잖아.”그가 웃으며 말했다.“사실 남자의 부성애도 본능이야.”강서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그러니까 내 친아빠도 날 사랑한단 말이에요?”최연준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윤정재의 행동을 떠올렸다. 그가 강서연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절대 가짜가 아니었다.강서연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면 쉽게 용서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지만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윤정재가 조금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윤정재가 아무리 나빠도 윤문희에게는 일편단심이었다. 단 이 점만 놓고 봐도 최연준은 그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서연아.”그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
평소 두 사람의 대화 스타일과는 완전히 달랐다.최연준은 절대 그녀와 이런 자질구레한 얘기를 할 사람이 아니다. 오늘 평소와 다른 데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첫 번째 가능성은 그녀가 아이를 낳아주지 않아서 빙빙 돌려서 투정하는 것이고 두 번째 가능성은... 설마 그녀를 버릴 생각이 있다는 건가?강서연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그 생각에 사로잡힌 순간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프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서연아... 여보!”최연준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난 그 뜻이 아니야. 당신이 오해했어.”“손 저리 치워요!”강서연은 소리를 지르며 그의 베개와 이불을 냅다 던지려 했다. 최연준은 재빨리 그녀 앞을 막아서서 육경섭이 가르쳐준 방법을 써먹으려 했다. 그런데 무릎을 꿇기도 전에 강서연은 그를 안방 밖으로 밀어냈다.최연준은 안방 문을 두드렸다. 그제야 뜨거운 가마 속의 개미가 어떤 기분일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다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깨우쳤다.배경원과 밥 한 끼 먹고 나서 최연준도 바보가 되었나? 그러게 왜 윤정재의 편을 들어서는.한참이 지나도 안방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최연준은 게스트룸으로 가지 않고 소파에 쭈그려 누웠다. 소파가 창가 옆에 있어 마침 밖에서 벌벌 떨고 있는 뚱냥이가 보였다.그가 문을 빼꼼 열자 뚱냥이는 뒤뚱뒤뚱 안으로 들어왔다. 최연준이 내쫓지 않는 걸 보고는 이번에는 욕심내고 소파까지 뛰어 올라와 그의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다.“야옹.”최연준은 누워서 뚱냥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뚱냥아, 네 엄마 성질이 너무 사나워.”그가 중얼거렸다.“야옹.”“예전에는 엄청 다정했었는데 왜 점점 사나워지는 걸까?”“야옹.”“여자들은 원래 다 이렇게 억지를 부려?”이번에 뚱냥이는 아무 대답이 없었고 고개를 움츠린 채 어느 한 곳을 쳐다보았다.최연준은 순간 불길한 예감이 밀려와 뚱냥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강서연이 계단에 서서 그를 싸늘하게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