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연은 소리 지르며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최연준에게 제압당했다.“자기야.”남자가 여자의 손목을 잡고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이 카드에 얼마 들어 있어?”강서연은 별 생각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연준 씨가 전에 쓰던 블랙카드예요. 안에 돈이 없지만 한도 제한 없어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의 입술이 먼저 내려왔다.너무 오래 키스를 한 강서연은 숨이 안 쉬어질 지경이다....강서연은 나른하게 최연준에게 기대었고 온몸이 다 흩어지는 듯했다.최연준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지금의 최연준은 조금도 졸리지 않는다.“싫어요!”강서연이 제때 최연준을 제지했다.“나 정말 피곤해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요...”최연준이 못되게 웃었다.“강 대표께서 한도 제한이 없다고 말했는데...”강서연은 이불을 끌어안고 자신을 꼭 감싸 안은 채 커다란 눈망울로 최연준을 경계했다.최연준은 마음이 약해져서 강서연을 다시 자기 품으로 끌어당겼고 그녀의 매끈한 등을 토닥였다.“알겠어, 장난 안 칠게.”최연준은 부드럽게 말했다.“그냥 잠만 자자.”강서연은 웃으며 손으로 그의 목을 감쌌다.“지금은 잠이 덜 오는 것 같아요.”강서연은 최연준을 보며 말했다.“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요?”“그래.”그런데 무슨 얘기를 할까?강서연은 최연준이 평소 금기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둘이 있을 때 일 얘기는 듣고 싶지 않고, 다른 남자의 이름도 듣고 싶지 않고, 전에 알던 여자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어쨌든 수다를 떨다 보면 두 가지 주제를 벗어나지 못한다.결혼이랑 사랑싸움이다.강서연의 얼굴이 갑자기 뜨겁게 달아오르더니 고양이처럼 최연준의 품속으로 다시 움츠러들었다.“왜 그래?”최연준은 잠시 멈칫했다.“어디 불편해?”“아니에요.”강서연은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다.“연준 씨... 오늘밤 우리 별똥별을 놓쳤어요.”“그러네.”최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8
전에 김자옥은 윤정재를 만나면 잘 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그들이 이전에 무슨 악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윤정재는 김자옥을 불쾌하게 한 적이 있다.최연준의 엄마를 건드리는 것은 그를 건드리는 것과 같아, 최연준은 당연히 참을 수 없다!“나는 그분을 잘 몰라.”최연준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서연아, 앞으로 그분이랑 가깝게 지내지 마.”“왜요?”“왜냐하면...”최연준도 생각나는 이유가 없다.“아무튼 그분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니 같이 일할 때도 조심해. 업무 외에는 사적으로 많이 접촉하지 말고.”“하지만...”강서연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날 집에 돌아가 보니 윤문희가 혼자 외롭게 있었고 베란다의 다육식물만 그녀의 친구가 돼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강서연은 마음속으로 안쓰러워했다.그때 문뜩 윤문희에게 남자친구를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다면 덜 외로움을 탈 것이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윤정재만이 조건에 맞는 것 같다.“서연아.”최연준은 강서연이 말을 하려다 마는 모습을 보고 그녀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다른 거 얘기하자.”강서연은 하품을 하며 몸을 뒤척였고 축 늘어진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지금 졸음이 몰려왔다.강서연은 눈을 감고 곧 잠이 들었다. 의식이 흐려지기 전에 최연준이 뭐라고 말한 것 같았고 그녀는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꿈속에서 강서연은 어두컴컴한 숲속으로 들어갔고 사방이 고요하여 물줄기와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렸다.앞으로 갈수록 희미하게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다.강서연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잡았는데 손을 펼쳐보니 뜻밖에도 반딧불이었다! 강서연은 놀라고 기뻐 더 자세히 보았다... 이 반딧불은 신기하게도 두 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두 쌍 날개를 가진 반딧불?’강서연은 꿈속에서 어렴풋이 생각했다.누군가 강서연에게 두 쌍 날개를 가진 반딧불은 남양 사바 지역의 열대우림에 사는데 그곳은 개인 정원이라는 말을 한 것 같다.강서연은 반딧불을 날려 보내고 계속 앞
“시상식?”강서연은 어안이 벙벙하였다.“무슨 시상식인데요?”“처남이 이번 학기에도 장학금을 받았대.”최연준은 윤찬을 언급할 때 친동생을 언급하는 것처럼 자랑스러워했다.“핵심 간행물에 논문이 게재되어 의학계 선배들의 주목을 받아서 이번에 학술 대상을 받았어.”강서연은 최연준의 핸드폰을 가져왔다.전에 안 봐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윤찬 이 자식이 최연준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무슨 일이 있어도 윤찬은 매형만 찾지, 누나는 찾지 않는다.윤찬의 눈에 매형은 슈퍼맨과 같은 존재다!그래서 성적을 거두어도 제일 먼저 매형한테 연락한다.“이 자식!”강서연이 일부러 화를 내는 척했다.“안중에는 누나가 없는가 봐요!”“질투 났어?”최연준이 웃으며 며칠 전의 채팅 기록을 꺼내 강서연에게 보여주었다.「매형, 장학금 받으면 엄마랑 누나 선물 사주고 싶은데 어떤 것을 사줘야 좋아할까요?」문자를 본 강서연은 또 마음이 약해지면서 눈가가 저절로 촉촉해졌다.“처남이 비밀로 해달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이 좋은 소식을 당신에게 알려주었을 거야.”최연준은 강서연의 귀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였다.“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와. 이따가 같이 시상식에 가자.”강서연이 웃으며 승낙했다.오전에 두 사람은 오성대에 도착했다.역사 있는 명문대라 분위기는 다른 대학과는 달랐고 마당에 있는 나무 한 그루마저도 고상한 분위기를 풍겼다.강서연은 오가는 대학생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학생들의 모습에서 생기와 발랄함이 느껴졌고 학술을 배우는 자신감이 넘쳤다.최연준이 음료수를 사러 가고 강서연은 혼자 길가에 서 있었다. 이때 막 농구를 마친 남학생들이 지나갔는데 그새를 참지 못하고 강서연을 몇 번 쳐다봤다.그중 잘생긴 남학생 한 명이 다시 돌아와 강서연에게 번호를 따려고 했다.강서연은 웃으며 손사래를 치며 예의 바르게 거절했다.“누구야?”갑자기 뒤에서 굵고 두꺼운 소리가 들려왔다.강서연이 몸을 돌리자 까맣게 물든 최연준의 얼굴이 보였다.“모르는 사람이에요.”강서연은
“큰소리치고 있네!”갑자기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강서연이 목소리를 따라 찾아보니 그 목소리는 자기 뒤편 남학생한테서 나온 것이다. 건들거리는 남학생 얼굴에는 비웃음과 오만함이 가득했다.“윤찬의 배경이 뭔데?”다른 사람들도 수군거렸다.“이런 큰 상을 받을 수 있다니, 평소 선생님께 아부를 많이 떨었겠지?”“그냥 의학 연구잖아, 안 해본 사람이 있어? 내가 실험실에 있을 때 쟤는 피시방에서 게임만 처놀았을걸!”“맞아,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16살이었대...”“네가 뭘 안다고 그래?”다른 사람이 말했다.“쟤는 좋은 누나를 뒀는데 너는 있니?”“누나? 뭐 하는 사람이야?”“누나가 남자...”몇몇 남학생들이 모여 머리를 숙이고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를 찌르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강서연은 화가 나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 손이 나타나서 그녀의 어깨에 얹었다.“화내지 마.”최연준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화 안 났어요.”강서연은 최연준을 바라보았다.“나는 단지 약간 의문이 들 뿐이에요. 오성대가 그래도 명문대라고 소문났는데 어떻게 이런 자질이 없는 학생이 있어요?”“누가 명문대에 반드시 좋은 학생들만 있어야 한다고 했어?”최연준은 웃으며 다시 그쪽을 보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방한서에게 보냈다.얼마 안 지나서 그들의 자료를 받았다.알고 보니 전부 스타 2세들이었다. 특히 센터의 남학생은 아버지가 영화배우고 국제적인 대상을 휩쓸 정도로 위세와 명망이 대단하다.“저 학생의 이름은 양걸이야.”최연준이 속삭였다.“사실 매년 오성대에서는 소수의 자리를 기부금 입학생을 위해 준비하거든.”기부금 입학생, 돈을 많이 쓰면 학교에서 받아들이는 거다.“어쩔 수 없어.”최연준은 웃으며 말했다.“모든 학교가 그렇듯이 영국과 프랑스에 가도 명문대에는 이런 자리가 다 남아있어. 학교는 수익을 내는 기관이 아니고 매년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학교 이사회만으로는 안 되고 민간의 힘으로도 운영해야 해!”“그래도 찬
강서연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한번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양걸이라는 소년에게 시선이 갔다.양걸은 눈빛이 깊고 콧날이 오뚝하고 약간의 나쁜 남자 분위기를 풍겨 잘생긴 편에 속했다.화면에 나오면 많은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조금 전 그들이 윤찬을 헐뜯었다고 생각하면 강서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어진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은 직업적 도덕성과 예술 수준 두 가지 방면에서 매우 높은 수준을 갖춰야 합니다.”강서연은 냉소했다.“연기를 잘한다는 것 외에도 연예계에서 높은 명망이 있어야 하는데 여러분은 어느 쪽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세요?”몇몇 스타 2세는 동시에 멈칫했다.어린 시절부터 생활 환경이 우월한 이들은 어디 가나 대접을 받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접하기 시작했다.하지만 매번 그들이 역할을 선택하는 것이지, 역할이 그들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그들은 이렇게 대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을 것이다.다행히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학생이 있어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이분은... 오자마자 윤찬 누나한테 관심 있냐고 물었잖아!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거 보면 윤찬 누나 아니야?”“윤찬 누나라면 윤씨 아니야?”“그래서 그 집안이 복잡하다고 했잖아!”양걸이 거리낌 없이 웃었다.“둘이 아빠가 다를걸!”“하하하...”몇 명의 남학생들은 다시 한데 모여 깔깔 웃었다.강서연이 심호흡하고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할 때 양걸이 말했다.“무슨 대단한 회사라고! 우리 아빠는 가라고 해도 안가겠다!”양걸의 말투는 경멸스러웠고 말을 할 때 고개를 들어 강서연을 보며 싸늘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실제로 양걸의 아버지인 양지섭은 어진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으려 했지만 모두 김자옥에게 거절당했다.양지섭의 평판과 인기는 후발 주자 나석진보다도 못했다.그리고 인기와 화제성 면에서는 문나보다도 못하다.그냥 연기를 잘하는 것 말고는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국제상만 몇 개 받아봐서 양지섭에게 돈을 쏟아부을 가치가 없
“정섭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를 알고 있다고 했잖아요. 제가 부탁이 있는데 도와줄 수 있어요?”양걸은 최연준을 곁눈질하고 또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내가 왜 도와줘야 하는 거죠?”“이참에 다들 알고 지내면 좋잖아요.”최연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들 이 바닥에서 먹고 사는데 서로 친하게 지내면 언젠가는 또 만날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양걸은 최연준을 한 번 흘기고 말했다.“한번 말해보세요.”“정섭 엔터테인먼트에서 최근에 대작이 있다고 들었어요. 서예진 감독의 작품인데 제목이 ‘산하혼’ 인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제가...”“출연하고 싶은 거예요?”최연준이 웃으며 말했다.“투자하고 싶어서요.”“걸아, 빨리 너의 그 경섭 형님한테 전화해 봐!”옆에 누군가가 양걸을 부추겼다.“전화 한 통이면 되잖아!”이번에는 양걸이 당황했다.양걸은 최연준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이 사람이 정말 부자인지 사기꾼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말만 하면 영화투자를 한다고 하지?가장 중요한 것은 양걸은 육경섭을 전혀 모른다!양걸은 난처한 안색을 띠며 여러 가지 이유를 찾아 전화 거는 것을 거절했다.최연준은 가볍게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누르고 스피커를 켰다.전화는 빠르게 연결되었고 전화 너머로 육경섭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은 웬일로 나한테 전화했어요?”“최근에 '산하혼' 이라는 대작을 찍는다면서요?”“요즘에 제 일에도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제가 개인적으로 서예진 감독님을 정말 좋아해서요.”최연준이 웃으며 말했다.“저도 그 영화에 투자하고 싶은데... 영화 사업에 대한 작은 포부 같은 거죠.”“얼마나 투자하려고요?”“400억 원요.”몇 명의 스타 2세는 넋을 잃고 최연준을 바라보았다.“맞다. 양지섭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어요?”최연준은 이 말을 할 때 양걸을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양걸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다.“알아요.”육경섭이 대답했다.“왜 묻는 거예요? 어진 엔터테인먼트에 계약하고 싶은
“오성에서 제일 잘나가는 호텔은 명황세가잖아!”강서연이 웃으며 윤찬을 놀렸다.“굳이 네가 쏘겠다고?”“이번에는 달라요!”윤찬이 진지하게 말했다.“매형, 절대로 호텔에 미리 말하지 마세요. 제가 진짜로 제가 번 돈으로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을 뿐이에요.”“그래요, 저도 찬성이에요.”최연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제가 아무 말도 안 할 테니 그냥 호텔에 가는 일반 소비자라고 생각하시면 돼요.”윤찬이 기분 좋게 동의했다.그들은 먼저 집으로 돌아가 윤문희를 모시고 또 김자옥을 초대했다.그래도 최연준은 은밀하게 최상의 룸으로 준비해달라고 요구했고 음식은 원가에서 티 내지 않게 적당하게 할인해 주면 된다고 여러 번 당부했다.호텔의 다른 직원들은 모두 이게 무슨 작전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지배인만 금방 알아차렸다.셋째 도련님의 처남이 흥이 나서 한턱내겠다고 하니, 당연히 그의 소원을 들어줘야지!지배인은 메뉴판을 새로 만들었다. 룸에 있는 음식들은 모두 최고급으로 올라왔고 가격은 로비보다 훨씬 저렴하다.방한서는 웃으며 매니저를 바라보고 눈빛으로 말해줬다.‘당신의 미래는 창창하고 앞길이 구만리일 거야!’룸에서는 시시때때로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룸밖에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복잡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아무도 그 사람을 유의하지 않았다.윤찬이 시상대에 섰을 때처럼 객석에 누군가 몰래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회장님.”진용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돌아갑시다. 이미 여기에 오래 서 있었습니다.”“나...”윤정재가 우물쭈물하다가 마지막에는 어린아이처럼 애원했다.“조금만 더 보고 갈게.”진용수는 윤정재 마음속의 고통과 모순을 이해했다.윤정재가 서 있는 각도에서 바라보면 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만 어렴풋이 보였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윤정재는 룸에 있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강서연도 있고 윤찬도 있고 윤문희도 있고...윤정재까지 더해 네 식구가 화목하게 지내면 얼
너무 급한 나머지 윤정재는 목소리 톤까지 변했다. 강서연은 깜짝 놀라 아이패드를 내려놓고 윤정재를 바라봤다.“내 말은...”윤정재도 무슨 감정인지 표현하기가 어려웠다.최연준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거는 인정한다. 윤정재가 생각하는 완벽한 사윗감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최연준보다 더 좋은 사람을 찾기는 좀 어려울 것이다.그래도 윤정재는 아무리 봐도 최연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게다가 최연준은 김자옥의 아들이다...염라대왕 같은 시어머니를 두면 앞으로 딸이 고생할까 봐 걱정했다!“제 뜻은 아직 젊으시잖아요.”윤정재가 걱정스럽게 쳐다봤다.“젊은 사람들은 변수가 너무 많아서 일찍 시집을 가고 나중에 더 좋은 사람을 만나면 어떡해요?”“그렇지 않아요.”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연준 씨가 저에게 가장 잘 맞는 사람이에요!”“그건 남자를 많이 못 만나봐서 그래요!”윤정재가 이 말을 하자 자신도 깜짝 놀랐다.시간은 마치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윤정재가 윤씨 저택 밖에서 집안의 말다툼 소리를 들었다.윤씨 집안 어르신들이 윤문희를 꾸짖었다.“네가 남자를 많이 못 만나봐서 그래!”윤정재는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이 떨렸다.“아저씨, 왜 그래요?”강서연이 그를 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아무것도 아니에요.”“어디 아프세요?”강서연이 따뜻한 물 한 잔 가져다드렸다.“몸이 편찮으시면 먼저 들어가 쉬세요. 우리 프로젝트는 이미 충분히 정리했어요. 나머지는 밑에 사람들에게 맡기면 돼요.”“제가 다 하고 싶어서 그래요.”윤정재는 힘겹게 웃음을 지었다.그는 이 병원을 완벽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의사로서의 사명감뿐만이 아니라 이 병원을 자기가 끔찍이 아끼는 딸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다.“병원은 다른 것보다 더 세심하게 봐야 해요. 번거로움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요.”강서연은 윤정재의 말을 듣고 가볍게 웃었다.“아저씨는 생활 속에서도 세심한 사람이죠?”윤정재는 한번 생각하고 진지하게 대답했다.“나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정 선생님, 아직도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영미가 대체 얼마나 좋은 조건을 내걸었기에, 백인서를 모함하는 데 가담한 거죠?”정대명은 눈동자를 굴리며 머뭇거렸다. 어디까지 입을 열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당신이 인서의 양아버지라는 말은 사실입니까?”“그...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진실이야!”“그렇다면 딸을 키운 정도 있을 텐데 왜 모함하려 하신 거죠?”정대명의 몸이 떨렸고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정 선생님, 이제 영미조차도 당신을 지켜줄 수 없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신다면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 될 겁니다!”그때, 바깥에서 소연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소아는 정대명을 매섭게 노려본 뒤, 사람을 시켜 문을 잠그도록 지시했다.소연화는 최군형과 최지용을 데리고 들어왔다.“여보!”최군형은 강소아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권온유와 정승우, 두 아이 모두 찾았어!”“정말인가요?”“그래.”최지용도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드디어 인서의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됐어.”“인서는 원래부터 결백했어요!”강소아가 웃으며 말했다.“누가 아이들을 찾았나요?”“아이들이 어찌나 영리하던지, 스스로 빠져나왔더군.”최군형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그날 밤, 우리가 정대명을 찾았을 때, 정대명의 머리가 다쳐 있었던 거 기억하지? 그 틈을 타 도망쳤대. 길에서 착한 운전사분을 만나 도움을 받았고 그 운전사가 집까지 데려다줬어. 차 안에서 정승우가 휴대전화를 빌렸는데 다행히도 권온유가 자기 엄마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어서 덕분에 바로 연락할 수 있었어. 아마 20분 후면, 두 아이 모두 안전하게 권씨 집안에 도착할 거야.”“정말 놀랍군요...”강소아는 감탄이 담긴 눈빛으로 답했다.“이렇게 어린아이들이 그런 상황 속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니. 역시 아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요! 저도 이제부터 가원이에게 제 전화번호를 외우게 해야겠어요!”“그런 말 하지 마!”최군형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영미의 마음속엔 불안이 가득 찼다. 그러다 문득 시장 선거의 마지막 대결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스쳤다.지금이라도 폭탄 같은 뉴스가 터진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쏠릴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그 뉴스가 백인서와 관련된 것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영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기자와의 약속을 잡았다.“조순철 씨의 외손녀가 실종된 사건, 알고 계십니까?”카페의 한구석,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였다. 영미는 얼굴을 거의 가릴 만큼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맞은편에는 기자는 커피잔을 천천히 저으며 영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이건 단순한 어린이 실종 사건이 아닙니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입니다.”“영미 씨.”기자가 녹음기를 켜며 말했다.“아시는 내용을 모두 말씀해 주세요. 자료는 제가 정리해 영미 씨 말씀대로 보도하겠습니다.”“좋아요.”영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알고 있기로, 권씨 가문의 어린 딸을 데려간 사람은 바로 그 공익학교 프로젝트에 있던 한 학생입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백인서의 지시를 받았죠!”녹음기를 쥔 기자의 손이 떨렸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강소아는 방문 앞을 서성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그 방에는 정대명이 갇혀있었는데 강소아가 아무리 질문해도 정대명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육경섭은 딸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고 희철을 시켜 예전 식으로 정대명을 다루려 했지만, 강소아가 막아섰다.현재 육씨 가문은 이미 정식 사업가로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과거의 폭력적인 방식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다.강소아는 육경섭을 설득해 물러서게 한 뒤, 다음 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소연화가 급히 뛰어왔다.“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소연화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화면에는 뉴스가 떠 있었고 제목은 눈에 띌 정도로 충격적이었다.[조씨 공익학교에서 터진 충격적인 추문, 관리직
가끔 차가 지나갔지만, 정승우가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어도 아무도 멈춰 서지 않았다.어둠이 내려앉았고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며칠 동안 육체와 마음이 지친 권온유는 이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정승우는 어쩔 수 없이 온유를 등에 업고 비틀거리며 길을 걸었다.“오빠...”권온유는 울먹이며 말했다.“해가 졌어요. 저... 무서워요.”“괜찮아.”정승우는 뒤돌아 미소를 지었다.“오빠가 집에 데려다줄게.”“오빠, 우리 그냥 돌아가요...”“뭐라고?”권온유의 시선이 정승우의 피로 물든 발에 닿았다.“발이 많이 아프죠?”권온유의 작은 얼굴 위로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오빠, 저 내려주세요. 그냥 돌아가요...”“온유야?”권온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그 집이 낡고 춥긴 해도... 오빠 발에서 피가 나진 않잖아요!”정승우는 멍하니 잠시 굳어 있다가 그 어눌한 말 속에 담긴 다정함을 깨달았다.이 작은 아이는 납치당했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라도 정승우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정승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작은 새들이 집으로 향해 줄지어 날고 있었다.정승우는 온유를 데리고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다짐했다.“바보야.”정승우는 온유를 내려놓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난 하나도 안 아파.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그 사람이... 우리를 때릴까요?”“그럴 거야.”정승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린 시절, 정대명에게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탈출할 때 그의 뒤통수를 내려친 한 방은 그동안의 빚을 모두 갚은 셈이었다.“그런데 오빠, 그 사람은 오빠 아빠잖아요?”권온유는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하지만 오빠가 아프다고 제가 말했을 때 오빠 아빠가 들어왔었잖아요.”정승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정대명이 들어온 것은 아마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으면 함께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없어질까 봐서였었다.정대명은 단지
차 안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영미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 정대명에게 다가갔다. 그의 머리 아래로 어두운 핏자국이 퍼져 있었고 그 흔적은 이미 굳어 있었다. 영미는 정대명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댔다.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영미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른 채 차가운 눈빛으로 정대명을 내려다보다가 거칠게 발길을 휘둘렀다.“일어나요!”강소아와 최군형도 다가와 공장 안을 살폈지만 안은 고요히 비어 있었다.“아이들은요?”“아이고...”정대명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살려줘, 살려줘... 저 괘씸한 녀석이!”“정대명 씨!”영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어쨌든 이번 일은 영미가 자신 있게 권온유의 행방을 안다고 장담한 일이었다.영미는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함께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확신에 차 말했다.그런데 지금... 정대명은 다쳐 쓰러져 있고 두 아이는 사라졌었다.백인서를 함정에 빠뜨리려던 영미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정대명은 도움을 청하려다 영미가 눈짓을 주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영미의 눈길을 따라 보니 최군형과 강소아도 함께 와있었다.정대명은 예전에 영미가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는 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정대명은 머리를 살짝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신이 정대명인가요?”최군형이 다가가 물었다.정대명은 말끝을 흐리며 최군형의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백인서의 양아버지시고?”최군형은 다시 물었다.“당신이 당신 아들과 함께 권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게 맞나요?”“아니야, 나 아니야!”정대명은 크게 당황하며 손을 흔들었다.“이봐, 동생, 난 억울해! 내 아들 녀석이 나를 해치려고 했어! 내 머리를 봐, 그 자식이 벽돌로 내리쳤다니까!”“그만해요!”영미는 정대명의 말이 길어질수록 상황이 불리해질 것을 우려해 정대명을 노려보며 더 이상 말을 못 하게 했다.강소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들의 서툰 수법이 한심하기만
경찰서 밖에서 최지용은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젊은 경찰관이 안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최지용은 급히 다가가며 말했다.“정호야!”정호라는 젊은 경찰관은 최지용을 보자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 녀석!”최지용은 정호에게 다가가 가볍게 주먹을 툭 날리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거야?”정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방금 최씨 집안에서 백인서를 데려간 사람 중에 정호도 있었다. 최지용도 놀라웠지만, 영미 역시 경찰이 직접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떠나기 전, 정호가 살짝 눈짓을 보냈고 최지용은 그의 의도를 알아채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지용이 형.”정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형수님께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분하고 계시니 문제없을 겁니다!”“도대체 누구 지시로 백인서를 여기로 데려온 거지?”“소아 아가씨예요!”정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소아 아가씨가 갑자기 지시한 거라 사전에 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최지용은 살짝 놀랐다. 강소아의 지시라니.“형수님께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 아이가 실종되기 전에 형수님께서 만난 적이 있거든요. 경찰이 형수님을 데려가서 조사하는 건 당연한 절차입니다.”최지용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피식 웃음을 지었다.강소아가 이런 ‘당연한 절차’를 이용해 백인서를 경찰서로 보낸 이유는 경찰서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또 누군가가 음모를 꾸며 백인서에게 덮어씌우려 한다 해도 경찰서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경찰서 안에는 일을 봐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백인서가 여기서 며칠 지내는 동안 힘든 일 없이 외부의 소란도 피할 수 있는 셈이었다.최지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강소아는 정말 자매를 위한 배려가 남달랐다. 이렇게까지 배려심 깊은 방안을 생각해 내다니!“지용이 형.”정호가 계속해서 말했다.“도련님께서
영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소아 언니, 저를 믿지 않으세요?”“난 오직 사실만을 믿어.”“권씨 가문의 딸이 실종된 사건에 백인서 씨의 양아버지와 남동생이 관련되었어요, 그게 바로 사실이에요!”강소아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려 했다.세상에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호텔 뒷뜰에 있는 그 CCTV가 정말 완전히 고장 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육씨 가문과 최씨 가문이 힘을 합쳐 그 고장 난 CCTV 하나도 못 고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최군형은 강소아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안심시키며 슬며시 휴대전화를 건넸다.강소아는 화면을 확인했다. 최군형의 부하가 보낸 메시지였다.“도련님, CCTV 데이터를 복구 중입니다. 곧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강소아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영미가 이렇게까지 백인서를 몰아세우는 걸 보니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꺼림칙한 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어차피 꼬리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었기에 그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바로 그때, 집사가 다소 당황한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 집사의 뒤에는 몇 명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방 안을 둘러보며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기 백인서 씨가 계십니까?”표아정은 등을 꼿꼿이 펴고 대답했다.“경찰관님께서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당신이 백인서 씨인가요?”“저는...”“백인서 씨가 납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신고를 접수했습니다!”“뭐라고요?”백인서는 얼굴이 창백해졌다.“백인서 씨, 조사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권온유가 납치된 지 하루가 지났다.그동안 정대명은 단 한 번 음식을 가져왔는데, 그것도 차갑게 식은 죽 한 그릇과 딱딱한 빵 한 조각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귀하게 자란 권온유에게 이런 음식은 처음이었다. 울고 싶었지만, 감히 울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참으며 빵을 조금씩 뜯어 먹고 있었다.정승우는 그런 온유의 모습을 보고
“아줌마,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그럼, 제가 알아낸 사실을 전부 말씀드릴게요!”영미는 입가에 교만한 미소를 띠며 백인서를 차갑게 한 번 쳐다보았다.“백인서 씨의 친어머니인 백홍은 인신매매범이었다는 사실, 모두 아셨나요? 백인서 씨의 어머니는 백인서를 정대명의 집에 맡겼고... 흥! 정대명의 아내도 백홍이 납치해 왔다는 소문이 있어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잖아요. 제 생각엔... 인신매매범의 딸이라면 그런 일쯤은 익숙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권온유의 실종이 정말로 백인서 씨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나요?”“영미!”강소아가 나서며 분노를 가득 담아 소리쳤다.“허위 사실을 퍼뜨리지 마!”“소유 아가씨, 억울하네요!”영미는 강소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이렇게까지 조사한 건 다 아가씨를 위한 거예요! 딸도 있는 사람이 백인서를 곁에 두고도 마음이 놓이세요?”“그만해!”최지용이 크게 소리쳤다.백인서는 몸을 떨며 믿기지 않는 눈으로 최지용을 쳐다보았다.그러나 최지용의 얼굴에는 의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최지용은 굳건한 눈빛으로 뒤에 있는 백인서를 지키고 있었다.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백인서를 아끼고 있었다.백인서는 코끝이 찡해지며 본능적으로 최지용의 손을 꼭 붙잡았다. 최지용의 따스한 손은 백인서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그 온기가 어둠의 두려움을 잊게 해주었다.최지용은 백인서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였고 다시 영미를 바라볼 때는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영미야.”최지용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두 집안의 관계를 생각해서 그저 넘어가는 거야. 더 이상 선을 넘지 마.”최군형도 나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백인서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모르겠어요? 영미 아가씨, 우리 최씨 가문 사람들을 바보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영미는 순간 긴장했다. 최군형의 말 속엔 어딘가 숨은 뜻이 있는 듯했다.최군형의 깊고 복잡한 눈빛을 파악하기 어려웠다.표아정은 천천히 일어나 어깨에 걸친 숄을
백인서는 복잡한 눈빛으로 최지용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그때 최지용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표아정이었고 다급한 목소리로 서둘러 돌아오라고 재촉했다.최지용은 결국 어머니의 말에 따라 백인서를 데리고 최씨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넓은 거실에는 최군형과 강소아도 나와 있었고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백인서가 들어서자, 표아정이 백인서를 올려다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다.강소아는 백인서와 눈을 마주치며 단호하게 미소 지었다.백인서가 의아해하던 찰나, 영미가 천천히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아줌마, 지용 오빠. 제가 권온유의 행방을 알아냈어요.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뭐라고?”최지용이 놀라서 물었다.“네가 어떻게 아는데?”영미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지용 오빠,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정보가 우리보다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최씨 가문은 만능이 아니에요, 최씨 가문도 모르는 정보가 있다고요.”표아정은 가볍게 기침하며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았다.최군형과 강소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주목하고 있었다.최지용의 이마에는 점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미의 눈에는 한 줄기 교만한 빛이 번졌다.영미는 오는 길에 이미 모든 계획을 짰다. 정대명의 말이 맞았다. 누구를 훔치든 상관없었다. 인신매매범의 딸인 백인서가 아이들을 해치러 다닌다는 누명을 씌우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하면 백인서는 모두의 신뢰를 잃게 될 터였다.영미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강소아가 인신매매범을 곁에 둘 리 없다고 믿었고, 최지용 역시 이 사실을 알면 더는 백인서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영미는 정대명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었다.영미는 권온유를 넘기고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한패가 되어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주장할 계획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백인서는 변명의 여지도 없이 궁지에 몰릴 것이었다!“지용 오빠.”영미는 고개를 돌려 최지용을 바라보며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권온유는 정승
“그... 괜찮아!”정승우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권온유에게 말했다. 정승우는 이곳에서 권온유를 반드시 데리고 나가겠다고 결심했다.그런데 이때, 공장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곧바로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정승우는 재빨리 권온유에게 눈짓했고 권온유도 알아채고는 즉시 땅바닥에 쓰러져 의식이 없는 척했다.정승우는 벽에 기대어 눈을 반쯤 감았다.“이 아이인가요?”영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맞아.”정대명은 영미를 흘깃 노려보며 묵묵히 대답했다.영미는 두 걸음 앞으로 다가서서 희미한 빛 속에 있는 아이를 살펴보더니, 곧 얼굴빛이 확 변했다.“이 아이... 혹시 권씨 집안의 막내딸 아니에요?”정대명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애초에 아이를 훔쳐 올 때 이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리가 없었다.“정대명 씨.”영미가 차갑게 웃으며 돌아보았다.“제가 최씨 가문 집안 아이를 훔쳐 오라고 했지, 권씨 집안 아이를 훔치라고 했나요? 이러고도 저를 속이지 않았다고요?”“그게...”정대명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영미 아가씨, 어차피 목적은 백인서를 곤경에 빠뜨리는 거잖아? 그러니 누구를 훔쳐 오든 상관없지 않아? 아이를 훔치기만 하면 유괴범이 되는 거니까.”이 말은 영미에게만 충격을 준 게 아니었다. 정승우의 귀에도 또렷이 들어왔다.“좋아요.”영미는 깊은숨을 들이마신 뒤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이 아이는 잘 지키고 있어요, 제가 다시 연락할 테니까.”...한편, 권씨 집안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권욱은 조순영을 탓하며 아이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했고, 조순영은 오열하며 남편을 원망했다. 조순영은 권욱이 바깥에서 여자와 부적절하게 얽히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했다.“헛소리하지 마! 사람들이 나한테 어떤 소문을 퍼뜨렸는지 잘 알잖아. 결혼 생활 내내 너한테 부끄러운 일 한 적 없어.”“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정말 떳떳하게 행동했다면 왜 사람들이 당신만 가만두지 않는 건데?”며칠 전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