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경섭은 핸드폰을 들고 차갑게 말했다.“그 문나라는 사람을 지금 묶어와!”...육경섭의 부하들이 문나를 찾았을 때 한창 예능 녹화를 하고 있었다.카메라 앞에서 온갖 능청스러운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귀를 찌르는 웃음소리를 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심지어 예능 대본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나왔다.몇 명의 감독들은 서로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고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저었다.“일단 여기까지 할게요.”급기야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컷을 외치고 매니저가 달려와서 서둘러 문나에게 메이크업을 수정해 줬다.그러나 립스틱을 바르고 있을 때, 누군가 문나를 힘껏 끌어당겨 갔고 립스틱은 문나의 얼굴에 길게 자국을 냈다.“뭐 하는 거야?”문나는 당황했다.“당신들 누구야? 뭘 하려는 거야!”촬영장도 아수라장이 되었다.검은 옷을 입은 몇몇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문나를 물건처럼 들고 촬영장 밖으로 끌고 갔다.“아, 살려주세요!”문나는 목청을 높였다.“당신들 누가 보냈는데? 대낮에 납치라도 하려는 거야?”“문나 씨.”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경섭 형님께서 모셔 오라고 했습니다!”“누구? 경섭 형님...”문나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감독과 스텝은 육경섭의 이름을 듣고 다들 함구하며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육경섭은 합법적인 사업을 하고 있지만, 어둠의 세력도 만만치 않다.문나가 매니저를 쳐다봤는데 매니저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한참 멍하니 서 있고 난 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앞길을 급히 막아섰다.“당신들... 이럴 권리가 없어요! 문나를 내려놓지 않으면 신고할 거예요!”육경섭 부하들이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바로 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이다. 하나둘씩 음침한 웃음을 드러냈다.“이거 놔!”문나는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나는 어진 엔터테인먼트 사람이야! 내 위에는 김 대표가 있는데 감히 나를 건드린다고?”“정말요?”갑자기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설마 김 대표님께서 당신 같은 사람을 위해 나
문나는 어둡고 추운 방에 버려졌다.그녀는 바닥을 기어가다가 구두 한 짝을 만졌는데 차가운 촉감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갑자기 방에 불이 켜지면서 눈을 따갑게 자극했다.문나는 그제야 주위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육경섭이 정중앙에 앉아 있고 옆에는 모두 몸이 듬직한 부하들이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육경섭은 지옥에서 걸어 나온 저승사자 같아 눈에 서린 살기가 차마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문나는 놀라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문나 씨.”육경섭은 손에 쥔 비수를 가지고 놀면서 입술은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당신은 아마 소식을 못 들은 것 같은데... 저의 아내가 유산했어요!”문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그날 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사실대로 말 안 할 거예요?”“육 대표님, 저는...”문나는 우물쭈물하며 아무 말도 안 나왔다.육경섭은 칼을 희철에게 건네주었고 희철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칼을 들어 문나의 얼굴을 일자로 베었다.“앗!”방 전체가 여자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문나 씨,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육경섭이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어요?”“아무것도... 없어요...”문나의 반쪽 얼굴에는 피가 흥건했고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이랑 저랑 아무 일도 없었어요!”“그러면 왜 저를 모함했어요?”“너무 유명해지고 싶었어요...”육경섭은 냉소했다. 다시 희철에게 눈빛을 보냈고 희철은 신호를 받고 문나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그녀의 다른 쪽 얼굴을 또 한 번 칼로 세게 베었다.“임나연이에요!”문나는 비명을 질렀다.“임나연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어요!”육경섭은 잠시 멈칫하고 희철에게 문나를 놓아 주라고 신호를 보냈다.문나는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몸을 벌벌 떨고 있었고 얼굴은 이미 피투성이로 됐다.“임나연이... 강서연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고 했어요.”문나는 말을 횡설수설하게 했다.“강서연 곁에 있는 사람이 다치면
육경섭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권총을 꺼내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임수정의 병실에서 나온 윤정재는 문 앞에서 지키고 있는 임씨 가문 사모님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윤 회장님.”임씨 가문 사모님은 눈시울을 붉히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저희 수정이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큰 은혜를 평생 마음속에 간직하겠습니다!”윤정재가 손사래를 치다.“아닙니다, 사모님.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해 주고 싶은 마음은 같습니다.”“회장님께서 보기에 수정이를 살릴 수 있습니까?”윤정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예전에 서의로 치료하셨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런 선천적인 병은 치료하기 어렵지만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임씨 가문 사모님의 눈에는 희망이 보였다.“정말입니까?”“네.”윤정재가 고개를 끄덕였다.“한방 요법으로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양의 민간요법을 더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릅니다.”그리고 약 두 병을 꺼냈다.“이건 윤제 의약에서 새로 출시된 약이에요. 먼저 처방대로 매일 복용시켜 주면 제가 사흘 후에 다시 올게요.”임씨 가문 사모님은 약을 받고 다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하지만 명심하세요.”윤정재는 미소를 짓고 말했다.“이것은 약이지 선단이 아니므로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어요.”“알고 있어요.”딸의 병세가 호전하기만 해도 임씨 가문 사모님은 만족할 것이다.“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윤 회장님!”임씨 가문 사모님이 급하게 윤정재를 불렀다.“제 딸의 기억상실증은...”윤정재는 뜸을 들이고 안색에 약간 변화가 있었다.그는 일부러 기억상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조금 전 병실에 있을 때 은침으로 임수정에게 침을 놓아서 신경을 자극하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윤정재가 은침을 귀 뒤 혈 자리에 갖다 대자 계속 조용하던 임수정이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임수정은 그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고 윤정재는 그 눈빛을 의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임정수는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왜 남이야? 그래도 나연이는 우리가 20여 년 동안 키운 딸이잖아!”“그 계집애는 남이라고요!”권민지가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다.“수정이야말로 우리 딸이에요. 그 계집애가 우리 수정이를 해쳤다고요!”“민지야!”임정수가 목소리를 높였다.“증거 없으면 함부로 말하면 안 돼! 나연이가 수정이를 해쳤다는 것은 모두 당신이 혼자서 상상해 낸 거야!”“아니에요!”권민지가 임정수를 노려보았다.“임나연이 그날 나랑 같이 주치의를 찾아간다고 말했어요. 걔는 내가 떠난 틈을 타서 수정이를 해치려고 했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공교롭게도 내가 잠시 병실에 없는 틈을 타서 수정이가 납치됐겠어요?”임정수는 그녀를 향해 한숨을 쉬고 몇 마디를 내뱉었다.“당신 정말 제정신이 아니야! 나는 이미 결정했어.”임정수가 냉담하게 말했다.“수정이는 몸도 안 좋고 기억상실증까지 걸려 시집보내거나 가업을 물려받는 것은 불가능해... 그러니 나연이에게 이 중책을 맡길 거야!”권민지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어딘가에 머리를 세게 박은 것 같았다.그녀는 멍하니 임정수를 바라봤고 자기 귀를 믿을 수 없었다.“당신... 뭐라고 했어요?”권민지가 재차 물었다.“임우 그룹을 그 계집애한테 넘겨준다고요?”“맞아!”임정수는 권민지를 한번 흘겨보고 두 손을 등 뒤에 두었다.권민지는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을 떨었다.“임정수, 당신 잊지 마세요!”권민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임우 그룹은 당신 혼자 것이 아니에요. 당시 내 혼수와 친정의 세력이 없었다면 임씨 가문은 오성 4대 가문의 일원이 될 수 없었을 거예요!”“그래, 전부 다 권씨 가문 덕분이다. 됐어?”임정수는 인내심이 바닥났다.“권민지, 당신은 몇 년 동안 나에게 그 말 외에 다른 하고 싶은 말은 없어? 당신은 선천적으로 부족한 딸을 낳고도 대단하다고 생각해?”“당신...”권민지는 임정수가 어느 날 감히 자기한테 이렇게 말할 줄은 생각도 못
임나연은 무의식적으로 임정수를 한 번 보고 그제야 권민지를 돌아보고 작은 소리로 불렀다.“엄마.”그러나 이 엄마 소리는 평소처럼 공손하게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임나연의 얼굴에는 약간의 비아냥거림을 띠고 있었다.권민지는 마음이 조금 조여 왔다.“아빠 얼굴이 어떻게 된 거예요?”임나연이 소리쳤다.임정수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지만 임나연은 유난을 떨어 약상자를 가지러 갈 뻔했다.권민지는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히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이 두 사람은 마치 친 부녀 같았다.‘친 부녀?’권민지는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머릿속에 번뜩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엄마, 아빠를 때리면 어떡해요?”임나연이 권민지를 지적했다.“말로 하면 되는 걸 왜 사람을 때려요!”“언제부터 네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는 거야?”“그...”임나연이 권민지를 째려보았다. 잠시 후 입가에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엄마, 아빠가 나한테 회사를 물려주려고 하니까 화가 나서 때린 거예요?”권민지의 안색은 차가웠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임나연이 웃었다.“저는 다 알고 있어요! 엄마는 제가 좋은 것을 보지 못하잖아요. 제가 엄마 친딸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을 원치 않잖아요. 그런데 결국엔 제가 다 가졌어요.”“나연아!”임정수가 낮은 소리로 외쳤다.그러나 그는 임나연을 막을 수가 없었다.지금의 임나연은 정신을 잃은 짐승이 되어 버렸다.임나연은 몸을 돌려 서재로 가서 서랍에서 유전자 감정 보고서 한 장을 꺼내어 나와 권민지 앞에 내팽개쳤다!위에 적혀있는 숫자는 날카로운 칼처럼 권민지의 가슴에 꽂혔다.“이게...”권민지는 숨을 크게 헐떡였다. 심장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고 온몸이 굳어버렸다.“지금 본 것이 진실이에요.”임나연은 팔을 감싸 안고 말했다.“저는 아빠의 친딸이에요!”권민지는 분노에 차 임정수를 바라보았는데 임정수는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당신이 설명해 봐요!”“이게...”임정수는 입술을 깨물고 설명
강서연은 요 며칠 동안 줄곧 임우정과 함께 있었다.임우정은 원기를 손상해서 침대에서 휴식만 취해야 했다. 평소에는 잠만 자고 깨어 있을 때는 머리맡에 기대어 눈을 떠서 창밖을 바라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창백한 모습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강서연은 방금 끓인 닭국을 임우정에게 가져다주었다.“언니...”말을 하자마자 강서연도 울컥했다.“좀 드세요. 제가 탕에 대추를 넣어서 맛도 좋고 몸보신도 할 수 있어요.”임우정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강서연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멀쩡한 아이가 이 세상을 한 번 보지도 못하고 떠나다니...남자애라고 들었는데, 육경섭은 또 남자애를 좋아했다.그리고 강서연도 일찍이 임우정과 약속을 해서 이후에도 사돈을 맺는다고 했다.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이때 핸드폰이 울렸는데 최연준이 걸려 온 전화다.강서연은 급히 병실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서연아.”남자 특유의 목소리는 항상 강서연을 안심시켰다.“그쪽은 지금 어때?”“언니는 여전히...”최연준은 잠깐 말을 멈추고 다시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이런 일은 누구라도 견딜 수 없을 것이야. 의사도 감정의 기복이 있는 것은 정상이라고 말했으니 우정 씨가 문제없도록 잘 보살피면 돼.”“네.”강서연은 대답했다.이렇게 되면 강서연은 언제 집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서연아.”최연준이 부드럽게 말했다.“나 보고 싶었어?”강서연이 가볍게 웃더니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당연하죠.”사실 강서연도 집에 가서 최연준의 품에 숨어서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껴안고 싶었다.“우정 씨에게 전해줘.”최연준이 덤덤하게 말했다.“경섭 씨는 미안한 짓을 하지 않았어. 지금 문나를 잡았고 이미 다 자백했어. 전부 임나연이 사주한 것이래.”“진짜요?”강서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경섭 씨가 총을 들고 임나연을 찾아가 복수하려고 했지만 다행히 내가 막았어.”강서연은 잠시 침묵했다.최연준
“사모님,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강서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금은 가만히 있으면 돼요.”권민지의 안색이 초조했다.“임우 그룹의 절반은 내 것이에요... 엄밀히 말하면 3분의 2는 다 내 거예요! 임정수는 나와 결혼하기 전에 아무것도 없었어요! 나의 혼수로 임씨 가문의 빈자리를 채운 거예요! 그런데도 임정수는 나를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혼외자식을 내 눈앞에서 20년이나 키웠어요! 나를 바보처럼 갖고 놀았단 말이에요!”권민지는 말할수록 감정이 더 격해져 주먹을 쥐고 침대를 세게 내리쳤다.이 일을 생각만 해도 권민지는 메스껍고 후회스러웠다.권민지는 내연녀의 딸을 키우고 자기 친딸을 오랫동안 소홀했다.자기는 엄마 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사모님, 이러지 마세요.”강서연이 급하게 말렸다.“안심하세요. 임나연은 절대로 임우 그룹을 가질 수 없어요. 임우 그룹은 임정수의 것이 아니라 다른 주주들도 있어요.”“사모님께서 지금 해야 할 일은 잘 먹고 잘 자고 건강을 유지하는 거예요.”최연준이 그녀를 보고 말했다.“몸이 건강해야 그 사람들과 싸울 수 있어요.”권민지는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고 눈시울을 붉혔다.권민지는 최연준과 강서연이 옛날 일을 잊고 자신과 임수정을 도와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좋은 쪽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임나연은 오랫동안 날뛰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사모님.”최연준이 이렇게 말했다.“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은 사모님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온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사모님의 도움이 필요로 할 때 최선을 다해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도련님, 서연 씨...“권민지의 목소리가 떨렸다.“이렇게 말하지 마세요. 두 분이야말로 저의 은인이에요! 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말만 하세요!”...모든 일이 일단락되어 요 며칠은 조용했다.금요일은 강서연의 휴가 날이어서 오전 10시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밥을 대충 먹고는 마당에 나가 햇볕을 쬐었다.
“당신...”강서연은 화가 나면서도 웃겼다.“하여튼 누군가가 나를 평생 먹여 살린다고 말했어!”최연준은 당당하게 말했다.강서연은 그를 한번 때리고 어떻게 이렇게 뻔뻔스러울 수가 있는지 생각했다.하지만 그가 이렇지 않으면 그것은 최연준이 아니다.남자는 웃으며 강서연을 간지럽혔다. 두 사람은 그네 위에서 장난을 쳤는데 웃음소리가 오동잎이 가득한 작은 마당에서 울려 퍼졌다. 뚱냥이조차 고양이 밥을 먹지 않고 부러워하며 그들을 바라봤다.강서연은 피부가 하얘서 웃으면 얼굴이 발그레해진다.그녀는 최연준에게 눌려 있었다. 커다란 눈동자는 별처럼 반짝였고 최연준의 마음을 건드렸다.최연준은 지금 덥다는 생각밖에 없다.그는 여자의 가느다란 허리를 움켜잡았다.강서연은 강렬한 남자의 기운이 그녀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안 돼요...”강서연은 작은 손으로 최연준의 가슴을 밀쳤다.“지금 마당에 있어요!”최연준은 입꼬리를 씰룩했다.“마당인 거 알고 있어... 내가 뭘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강서연의 얼굴은 더 빨개졌다.최연준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나는 키스만 할 거야... 다른 건 밤에 해!”최연준의 입술이 점점 가까워지자 강서연은 두 눈을 감고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최연준이 막 입을 맞추려던 찰나 갑자기 멈칫하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봤다.방한서가 없다!최연준은 안심하고 계속해서 입을 맞추려고 했다.“똑똑!”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도련님, 도련님!”하마터면 뽀뽀할 뻔했던 최연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얼굴빛은 강서연의 인상 속 그 얼굴보다 더 어두웠다.방한서는 밖에서 끊임없이 문을 두드렸고 뚱냥이의 흥도 같이 깨뜨렸다.뚱냥이는 문 쪽을 한 번 보고, 다시 최연준을 보더니 자기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강서연은 얼굴이 빨개지며 최연준을 밀어내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최연준은 몇 초 동안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빠르게 문 쪽으로 걸어가더니 문을 활짝 열었다.“무슨 일
가끔 차가 지나갔지만, 정승우가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어도 아무도 멈춰 서지 않았다.어둠이 내려앉았고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며칠 동안 육체와 마음이 지친 권온유는 이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정승우는 어쩔 수 없이 온유를 등에 업고 비틀거리며 길을 걸었다.“오빠...”권온유는 울먹이며 말했다.“해가 졌어요. 저... 무서워요.”“괜찮아.”정승우는 뒤돌아 미소를 지었다.“오빠가 집에 데려다줄게.”“오빠, 우리 그냥 돌아가요...”“뭐라고?”권온유의 시선이 정승우의 피로 물든 발에 닿았다.“발이 많이 아프죠?”권온유의 작은 얼굴 위로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오빠, 저 내려주세요. 그냥 돌아가요...”“온유야?”권온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그 집이 낡고 춥긴 해도... 오빠 발에서 피가 나진 않잖아요!”정승우는 멍하니 잠시 굳어 있다가 그 어눌한 말 속에 담긴 다정함을 깨달았다.이 작은 아이는 납치당했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라도 정승우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정승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작은 새들이 집으로 향해 줄지어 날고 있었다.정승우는 온유를 데리고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다짐했다.“바보야.”정승우는 온유를 내려놓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난 하나도 안 아파.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그 사람이... 우리를 때릴까요?”“그럴 거야.”정승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린 시절, 정대명에게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탈출할 때 그의 뒤통수를 내려친 한 방은 그동안의 빚을 모두 갚은 셈이었다.“그런데 오빠, 그 사람은 오빠 아빠잖아요?”권온유는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하지만 오빠가 아프다고 제가 말했을 때 오빠 아빠가 들어왔었잖아요.”정승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정대명이 들어온 것은 아마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으면 함께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없어질까 봐서였었다.정대명은 단지
차 안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영미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 정대명에게 다가갔다. 그의 머리 아래로 어두운 핏자국이 퍼져 있었고 그 흔적은 이미 굳어 있었다. 영미는 정대명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댔다.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영미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른 채 차가운 눈빛으로 정대명을 내려다보다가 거칠게 발길을 휘둘렀다.“일어나요!”강소아와 최군형도 다가와 공장 안을 살폈지만 안은 고요히 비어 있었다.“아이들은요?”“아이고...”정대명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살려줘, 살려줘... 저 괘씸한 녀석이!”“정대명 씨!”영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어쨌든 이번 일은 영미가 자신 있게 권온유의 행방을 안다고 장담한 일이었다.영미는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함께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확신에 차 말했다.그런데 지금... 정대명은 다쳐 쓰러져 있고 두 아이는 사라졌었다.백인서를 함정에 빠뜨리려던 영미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정대명은 도움을 청하려다 영미가 눈짓을 주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영미의 눈길을 따라 보니 최군형과 강소아도 함께 와있었다.정대명은 예전에 영미가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는 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정대명은 머리를 살짝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신이 정대명인가요?”최군형이 다가가 물었다.정대명은 말끝을 흐리며 최군형의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백인서의 양아버지시고?”최군형은 다시 물었다.“당신이 당신 아들과 함께 권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게 맞나요?”“아니야, 나 아니야!”정대명은 크게 당황하며 손을 흔들었다.“이봐, 동생, 난 억울해! 내 아들 녀석이 나를 해치려고 했어! 내 머리를 봐, 그 자식이 벽돌로 내리쳤다니까!”“그만해요!”영미는 정대명의 말이 길어질수록 상황이 불리해질 것을 우려해 정대명을 노려보며 더 이상 말을 못 하게 했다.강소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들의 서툰 수법이 한심하기만
경찰서 밖에서 최지용은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젊은 경찰관이 안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최지용은 급히 다가가며 말했다.“정호야!”정호라는 젊은 경찰관은 최지용을 보자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 녀석!”최지용은 정호에게 다가가 가볍게 주먹을 툭 날리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거야?”정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방금 최씨 집안에서 백인서를 데려간 사람 중에 정호도 있었다. 최지용도 놀라웠지만, 영미 역시 경찰이 직접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떠나기 전, 정호가 살짝 눈짓을 보냈고 최지용은 그의 의도를 알아채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지용이 형.”정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형수님께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분하고 계시니 문제없을 겁니다!”“도대체 누구 지시로 백인서를 여기로 데려온 거지?”“소아 아가씨예요!”정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소아 아가씨가 갑자기 지시한 거라 사전에 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최지용은 살짝 놀랐다. 강소아의 지시라니.“형수님께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 아이가 실종되기 전에 형수님께서 만난 적이 있거든요. 경찰이 형수님을 데려가서 조사하는 건 당연한 절차입니다.”최지용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피식 웃음을 지었다.강소아가 이런 ‘당연한 절차’를 이용해 백인서를 경찰서로 보낸 이유는 경찰서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또 누군가가 음모를 꾸며 백인서에게 덮어씌우려 한다 해도 경찰서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경찰서 안에는 일을 봐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백인서가 여기서 며칠 지내는 동안 힘든 일 없이 외부의 소란도 피할 수 있는 셈이었다.최지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강소아는 정말 자매를 위한 배려가 남달랐다. 이렇게까지 배려심 깊은 방안을 생각해 내다니!“지용이 형.”정호가 계속해서 말했다.“도련님께서
영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소아 언니, 저를 믿지 않으세요?”“난 오직 사실만을 믿어.”“권씨 가문의 딸이 실종된 사건에 백인서 씨의 양아버지와 남동생이 관련되었어요, 그게 바로 사실이에요!”강소아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려 했다.세상에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호텔 뒷뜰에 있는 그 CCTV가 정말 완전히 고장 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육씨 가문과 최씨 가문이 힘을 합쳐 그 고장 난 CCTV 하나도 못 고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최군형은 강소아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안심시키며 슬며시 휴대전화를 건넸다.강소아는 화면을 확인했다. 최군형의 부하가 보낸 메시지였다.“도련님, CCTV 데이터를 복구 중입니다. 곧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강소아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영미가 이렇게까지 백인서를 몰아세우는 걸 보니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꺼림칙한 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어차피 꼬리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었기에 그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바로 그때, 집사가 다소 당황한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 집사의 뒤에는 몇 명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방 안을 둘러보며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기 백인서 씨가 계십니까?”표아정은 등을 꼿꼿이 펴고 대답했다.“경찰관님께서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당신이 백인서 씨인가요?”“저는...”“백인서 씨가 납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신고를 접수했습니다!”“뭐라고요?”백인서는 얼굴이 창백해졌다.“백인서 씨, 조사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권온유가 납치된 지 하루가 지났다.그동안 정대명은 단 한 번 음식을 가져왔는데, 그것도 차갑게 식은 죽 한 그릇과 딱딱한 빵 한 조각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귀하게 자란 권온유에게 이런 음식은 처음이었다. 울고 싶었지만, 감히 울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참으며 빵을 조금씩 뜯어 먹고 있었다.정승우는 그런 온유의 모습을 보고
“아줌마,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그럼, 제가 알아낸 사실을 전부 말씀드릴게요!”영미는 입가에 교만한 미소를 띠며 백인서를 차갑게 한 번 쳐다보았다.“백인서 씨의 친어머니인 백홍은 인신매매범이었다는 사실, 모두 아셨나요? 백인서 씨의 어머니는 백인서를 정대명의 집에 맡겼고... 흥! 정대명의 아내도 백홍이 납치해 왔다는 소문이 있어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잖아요. 제 생각엔... 인신매매범의 딸이라면 그런 일쯤은 익숙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권온유의 실종이 정말로 백인서 씨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나요?”“영미!”강소아가 나서며 분노를 가득 담아 소리쳤다.“허위 사실을 퍼뜨리지 마!”“소유 아가씨, 억울하네요!”영미는 강소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이렇게까지 조사한 건 다 아가씨를 위한 거예요! 딸도 있는 사람이 백인서를 곁에 두고도 마음이 놓이세요?”“그만해!”최지용이 크게 소리쳤다.백인서는 몸을 떨며 믿기지 않는 눈으로 최지용을 쳐다보았다.그러나 최지용의 얼굴에는 의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최지용은 굳건한 눈빛으로 뒤에 있는 백인서를 지키고 있었다.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백인서를 아끼고 있었다.백인서는 코끝이 찡해지며 본능적으로 최지용의 손을 꼭 붙잡았다. 최지용의 따스한 손은 백인서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그 온기가 어둠의 두려움을 잊게 해주었다.최지용은 백인서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였고 다시 영미를 바라볼 때는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영미야.”최지용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두 집안의 관계를 생각해서 그저 넘어가는 거야. 더 이상 선을 넘지 마.”최군형도 나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백인서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모르겠어요? 영미 아가씨, 우리 최씨 가문 사람들을 바보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영미는 순간 긴장했다. 최군형의 말 속엔 어딘가 숨은 뜻이 있는 듯했다.최군형의 깊고 복잡한 눈빛을 파악하기 어려웠다.표아정은 천천히 일어나 어깨에 걸친 숄을
백인서는 복잡한 눈빛으로 최지용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그때 최지용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표아정이었고 다급한 목소리로 서둘러 돌아오라고 재촉했다.최지용은 결국 어머니의 말에 따라 백인서를 데리고 최씨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넓은 거실에는 최군형과 강소아도 나와 있었고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백인서가 들어서자, 표아정이 백인서를 올려다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다.강소아는 백인서와 눈을 마주치며 단호하게 미소 지었다.백인서가 의아해하던 찰나, 영미가 천천히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아줌마, 지용 오빠. 제가 권온유의 행방을 알아냈어요.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뭐라고?”최지용이 놀라서 물었다.“네가 어떻게 아는데?”영미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지용 오빠,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정보가 우리보다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최씨 가문은 만능이 아니에요, 최씨 가문도 모르는 정보가 있다고요.”표아정은 가볍게 기침하며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았다.최군형과 강소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주목하고 있었다.최지용의 이마에는 점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미의 눈에는 한 줄기 교만한 빛이 번졌다.영미는 오는 길에 이미 모든 계획을 짰다. 정대명의 말이 맞았다. 누구를 훔치든 상관없었다. 인신매매범의 딸인 백인서가 아이들을 해치러 다닌다는 누명을 씌우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하면 백인서는 모두의 신뢰를 잃게 될 터였다.영미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강소아가 인신매매범을 곁에 둘 리 없다고 믿었고, 최지용 역시 이 사실을 알면 더는 백인서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영미는 정대명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었다.영미는 권온유를 넘기고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한패가 되어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주장할 계획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백인서는 변명의 여지도 없이 궁지에 몰릴 것이었다!“지용 오빠.”영미는 고개를 돌려 최지용을 바라보며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권온유는 정승
“그... 괜찮아!”정승우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권온유에게 말했다. 정승우는 이곳에서 권온유를 반드시 데리고 나가겠다고 결심했다.그런데 이때, 공장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곧바로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정승우는 재빨리 권온유에게 눈짓했고 권온유도 알아채고는 즉시 땅바닥에 쓰러져 의식이 없는 척했다.정승우는 벽에 기대어 눈을 반쯤 감았다.“이 아이인가요?”영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맞아.”정대명은 영미를 흘깃 노려보며 묵묵히 대답했다.영미는 두 걸음 앞으로 다가서서 희미한 빛 속에 있는 아이를 살펴보더니, 곧 얼굴빛이 확 변했다.“이 아이... 혹시 권씨 집안의 막내딸 아니에요?”정대명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애초에 아이를 훔쳐 올 때 이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리가 없었다.“정대명 씨.”영미가 차갑게 웃으며 돌아보았다.“제가 최씨 가문 집안 아이를 훔쳐 오라고 했지, 권씨 집안 아이를 훔치라고 했나요? 이러고도 저를 속이지 않았다고요?”“그게...”정대명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영미 아가씨, 어차피 목적은 백인서를 곤경에 빠뜨리는 거잖아? 그러니 누구를 훔쳐 오든 상관없지 않아? 아이를 훔치기만 하면 유괴범이 되는 거니까.”이 말은 영미에게만 충격을 준 게 아니었다. 정승우의 귀에도 또렷이 들어왔다.“좋아요.”영미는 깊은숨을 들이마신 뒤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이 아이는 잘 지키고 있어요, 제가 다시 연락할 테니까.”...한편, 권씨 집안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권욱은 조순영을 탓하며 아이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했고, 조순영은 오열하며 남편을 원망했다. 조순영은 권욱이 바깥에서 여자와 부적절하게 얽히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했다.“헛소리하지 마! 사람들이 나한테 어떤 소문을 퍼뜨렸는지 잘 알잖아. 결혼 생활 내내 너한테 부끄러운 일 한 적 없어.”“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정말 떳떳하게 행동했다면 왜 사람들이 당신만 가만두지 않는 건데?”며칠 전까지만
권온유의 질문에 정승우는 당황했다.권온유는 커다란 눈망울로 정승우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던 슈퍼맨 같은 오빠가, 이제는 먹을 것 하나 구하지 못하는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정승우는 어색하게 입가를 씰룩이며 권온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갔다.“너, 정말 배고파?”“네!”권온유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듯 작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원래는 엄마랑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했어요. 엄마가 특별히 고등어조림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하셨거든요... 엉엉... 엉엉...”“울지 마, 울지 마! 그냥 생선 하나 가지고...”“나 배고파!”정승우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아이와 대화하는 건 그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겨우 권온유를 달래고 나서 정승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팔을 걷어붙이며 권온유에게 내밀었다.“너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고프면, 여기 한번 물어볼래?”권온유는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정승우를 바라보았다.“우리 집은 가난해서 늘 먹을 게 부족했거든. 그래서 어릴 때 너무 배가 고프면 이렇게 배고픔을 달랠 만한 걸 물곤 했어.”권온유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배고픔을 달랠 만한 것'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정승우는 웃으며 계속 설명했다.“예를 들어 쌀통 같은 거야. 한때 쌀이 들어 있던 쌀통은 비어 있어도 쌀 냄새가 남아 있거든. 그래서 쌀통 가장자리를 살짝 물면서 하얀 쌀밥을 먹는 상상하는 거야. 그러면 배가 덜 고파져.”“그리고 이웃집에서 밥하는 냄새를 맡으며 그 밥을 먹는 상상을 하는 거야. 그러면 그렇게 배고프지 않더라고.”권온유는 정승우의 이야기에 넋을 잃고 입을 벌린 채 있었다. 정승우는 웃음을 터뜨렸다.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한때 정대명이 도박과 술에 빠져 정승우를 굶겼던 시절은 그야말로 비참한 순간들이었다.잠시 후, 권온유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고 정승우는 속으로 ‘큰일이다'라고 생
영미는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최지용을 지켜보았다.최지용은 다소 초조한 기색으로 구석에 앉아 휴대전화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 전화를 걸기도 했다.영미는 바로 뒤를 따라갔고 최지용의 낮고 다급한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찾았습니까?”“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세요... 만약 납치범의 목적이 돈이었다면 분명 전화를 걸어올 겁니다!”영미의 가슴이 철렁하며 내려앉았다.납치범이라니? 대체 뭘 찾는다는 거지?백인서와 통화한 걸까?그때, 최군성이 큰 소리로 외쳤다.“지용이 형, 여기서 뭐 해요?”영미는 얼른 몸을 숨겼고 최군성은 최지용에게 다가가 최지용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우리 형이 찾고 있었는데 여기서 뭐 하고 있었던 거예요? 어서 와서 먹고 즐기자고요!”최지용은 최군성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며 영미와 눈이 마주쳤다. 둘은 동시에 잠시 멈칫했다.영미는 급히 시선을 피하며 억지 미소로 인사했다.“지용 오빠...”“어, 영미?”최군성도 배윤아처럼 물었다.“여기 웬일이야? 형님이 널 초대한 것 같지 않은데?”“그게...”영미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최군성은 영미의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최지용을 끌고 가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최지용은 점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영미가 도대체 여기 왜 있는 거지?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사람이, 왜 하필 오늘 온유가 사라진 날에 나타난 걸까?그때, 최군형과 강소아가 가원이를 품에 안고 나타났다.강소아는 아이를 보행기에 앉혔고 아이는 보행기 가장자리를 잡고 작은 발을 내디뎠다. 이 모습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다.영미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자리를 떠 교외의 버려진 공장으로 향했다.그 시각, 정대명은 영미의 지시에 따라 승합차를 몰고 공장에 도착해 있었고 영미가 도착했을 때 그는 공장 문 앞에서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영미는 핸드백을 휘둘러 정대명에게 던졌다.“정대명 씨, 감히 날 속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