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연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며칠 전 임나연이 최재원을 찾아갔을 때 최재원은 여전히 임나연과 최연준의 결혼을 밀어주겠다고 했었다.임씨 가문 사모님이 임씨 가문과 최씨 가문은 혼약 같은 걸 맺은 적이 없으니 결혼은 젊은 사람들이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고 완곡하게 설명했었지만 임나연은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았다.그녀는 무슨 수를 쓰든 최씨 가문에 시집가고 싶었다. 그래야만 부모님이 그녀를 높이 살 거라고 생각하니까. 최연준이라는 든든한 배후가 생긴다면 최씨 가문에서도 그녀를 업신여기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그녀의 출생의 비밀이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그녀의 출생의 비밀은 영원히 세상밖에 공개돼서는 안 된다.“연준 씨.”임나연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지금은 충동적으로 이런다는 거 알아요. 서연 씨가 좋은 사람인 건 맞지만 연준 씨랑은 어울리지 않아요. 결혼은 집을 짓는 것과 같아요. 기반이 튼튼해야 더 높이 지을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최연준이 아무 말이 없자 임나연은 그에게 살며시 다가갔다.남자의 날카로운 턱선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고 타고난 귀티와 도도함은 여자를 미치게 했다. 이 또한 임나연이 최연준을 가지려는 이유 중 하나였다. 최연준이 허영에 물든 다른 재벌 집 자제들보다는 훨씬 나은 건 사실이었다.“아참.”임나연은 계속하여 뻔뻔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이번 연회에서 연준 씨가 서교 땅 프로젝트의 진짜 대표가 누구인지 발표한다고 밖에서 미친 듯이 떠들어대고 있던데... 우리가 이렇게 오랜 시간 손을 잡으면서 매주 최상 그룹의 보고회에 참석했었지만 진짜 대표인지 뭔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연준 씨가 기자들한테 거짓말한 거 맞죠? 아니면... 진짜 대표가 설마 할아버지인가요?”“쓸데없는 생각 많이도 했네요.”최연준의 말투는 냉랭하기 그지없었다.“진짜 대표를 본 적이 없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에요. 이따가 곧 만날 테니까 조급해하지 말아요.”임나연의 표정이 잠깐 흔
“그런 말씀 마세요, 사모님.”최연준은 연장자에 대한 예의는 그래도 지켰다.“그저께 할아버지께서 아저씨랑 사모님 얘기를 꺼내시면서 연회에서 대신 안부를 물어달라고 하셨어요.”“회장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줘요.”임씨 가문 사모님은 고개를 살짝 들고 말했다.“회장님께서 지금까지 우리 가문을 많이 도와주신 걸 알아요. 우리도 은혜를 잊지 않고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요!”“네.”최연준은 인사치레로 몇 마디 나눈 후 다른 손님을 맞이하러 갔다.임나연은 화가 가라앉지 않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손발도 차가워졌다. 임씨 가문 사모님은 노여움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여긴 나랑 네 아빠만 있으면 돼. 적응하지 못하겠으면 먼저 집에 가 있어.”“엄마!”임나연은 조급해졌다.“회장님께서 저랑 연준 씨의 결혼을 허락하셨는데 엄마는 왜 계속 막으려고 하세요?”“난 체면이 중요해!”임씨 가문 사모님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임나연은 입술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씨 가문 사모님은 그녀의 팔을 덥석 잡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끌고 와 째려보며 말했다.“널 보육원에서 데려오긴 했어도 그래도 임씨 가문에서 이십 년 넘게 살았어. 난 널 친딸처럼 키웠고 심지어 너한테 수정이보다도 더 많이 신경 썼어. 그런데 넌 어떻게 이리 뻔뻔할 수가 있어?”“엄마.”임나연이 울먹였다.“제가 연준 씨랑 결혼하려는 건 우리 가문을 위해서...”“그 입 다물어!”임씨 가문 사모님이 사나운 표정으로 말했다.“진짜 임씨 가문을 위한다면 창피한 짓 좀 그만하고 더는 강서연 씨도 찾아가지 마! 회장님이 널 밀어준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야? 최연준이 저렇게 싫다는데 설마 납치라도 해서 너랑 결혼시키겠어? 임나연, 정신 똑바로 차려! 괜히 말썽 일으키지 마!”임나연은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녀를 쳐다보는 임나연의 눈빛에 원망이 짙어졌다. 임씨 가문 사모님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계속하여 말했다.“앞으로는 수정이 보러 가지 않아도 돼. 나 임
강서연은 연회장 한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었다. 노란 드레스가 어찌나 우아하고 고귀한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사람들의 이목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쏠렸다.사회자도 그녀의 미모에 잠깐 넋을 놓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조수에게서 큐카드를 받았다. 그는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활짝 웃으며 강서연을 소개하기 시작했다.“다들 이미 눈치채셨죠?”사회자의 목소리는 진중하면서도 힘이 넘쳤다.“이분이 바로 서교 땅 프로젝트의 진짜 대표이자 새로 상장한 세 회사의 대표 강서연 씨입니다.”그 순간 연회장의 사람들은 제자리에 얼어붙었고 온 세상이 마치 진공 속에 빠진 듯 조용했다. 몇 초 동안의 침묵이 흐른 후 연회장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강서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임나연에게 시선이 머물렀다.최연준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마주하여 다정하게 웃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그 어떤 빛보다도 반짝이는 것 같았다.“발표할 일이 하나 더 있어요.”그녀를 쳐다보는 최연준의 얼굴에 사랑이 가득했다.“이 섬을 사서 개발한 다음에 강서연의 개인 섬으로 선물할 겁니다.”사람들이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나중에 여러분들이 섬에 놀러 오고 싶으면 섬 주인의 동의를 거쳐야 합니다!”강서연은 그를 보며 쑥스럽게 웃고는 그의 어깨에 살포시 기댔다.최연준에게 다른 마음을 품었던 규수들은 그저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만 보았다. 하지만 임나연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인파 속에 서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강서연은 약이 바싹 오른 임나연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나연 씨.”강서연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오랜만이에요.”임나연의 두 눈에 원망이 가득했다.임씨 가문 사모님은 혹시라도 임나연이 무슨 사고라도 칠까 봐 황급히 나서서 말했다.“오랜만이에요, 서연 씨.”“사모님이시군요.”강서연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사모님은 딸한테 참 자상하신 것 같아요.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시네요. 설마 제가 나연 씨를 인적 드문 곳
강서연이 부드럽게 말했다.“저도 대표는 처음이라서 앞으로 부족한 게 있으면 많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최연준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저쪽에 협력 파트너가 몇 분 더 계셔. 같이 인사드리러 가자!”두 사람이 떠나고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 자리엔 임나연 혼자만 쓸쓸하게 남았다.임씨 가문 사모님은 두어 걸음 갔다가 다시 돌아섰다.“계속 거기 서 있을 거야? 아직도 망신을 덜 당했어?”임나연은 화나고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임씨 가문 사모님을 뒤따라 연회장을 나섰다....“연회의 상황은 대충 이러합니다.”진용수가 윤정재에게 보고했다. 윤정재는 거실의 통유리 앞에 서 있었다. 이곳은 그의 개인 저택이었고 에덴과 아주 가까웠다.“서연 씨는 역시 대단해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임나연을 해결했어요!”진용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윤정재는 뿌듯한 마음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당연히 대단하지, 누구 딸인데!’“그나저나...”그는 멈칫하다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최연준 그 자식이 정말로 서교 땅과 회사를 전부 서연이한테 줬어?”“네.”진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다 알아봤어요. 서교 땅 프로젝트와 최연준이 설립한 세 회사, 그리고 최연준의 명의로 되어 있던 해외 자산과 부동산까지...”“전부 서연이 명의로 됐어?”윤정재의 두 눈이 반짝였다.“네.”윤정재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는 돈이 유일한 판단 기준은 아니지만 중요한 요소이다.최연준이 강서연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절대 그 많은 재산을 그녀 명의로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 명의로 돌렸다는 건 그녀에게 든든한 보장을 주기 위해서였다.윤정재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최연준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뀐 것 같다.“그러니까... 내 딸 지금 돈이 엄청 많다는 거네?”진용수가 히죽 웃었다.“회장님의 관심사는 참...”“참 뭐?”윤정재가 눈썹을 치켜올렸다.“돈은 당연히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서교 땅
집사가 깍듯하게 대답했다.“전부 사모님께서 안배하신 거예요.”임나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집사가 앞을 가로막았다.“지금 사모님께서 안에서 수정 아가씨를 돌보고 계세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나도 안 돼요?”임나연은 침착한 척했다.“평소에는 내가 수정이를 돌봤잖아요!”“이건 사모님의 명령입니다!”집사의 눈빛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그만 돌아가세요, 아가씨.”“당신...”임나연은 씩씩거리며 그냥 돌아섰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기만 했다.임씨 가문 사모님이 임수정을 직접 돌본다면 그녀의 비밀을 무조건 알게 될 텐데... 그때가 되면 모든 게 끝이 난다. 임나연은 반드시 대책을 세워서 이 위기를 넘겨야 했다.임나연은 조급한 마음에 마당을 이리저리 거닐며 안절부절못했다.그런데 하필 그때 휴대 전화가 진동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고개를 숙여 휴대 전화를 확인했다. 문나가 보낸 문자였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만나자고 했다.임나연은 처음에는 무시하고 싶었지만 잠깐 생각해 보니 문나가 그래도 아직은 쓸모가 있는 것 같아 문나가 보낸 장소로 부랴부랴 달려갔다.피부과였는데 많은 톱 연예인들이 이곳에서 보톡스를 맞거나 시술을 받는다고 한다. 이젠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하여 위치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었고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쌌다.임나연이 도착했을 때 문나는 한창 프런트 직원과 된통 싸우고 있었다.“나연 씨, 마침 잘 왔어요.”문나는 그녀를 잡아당겼다.“이 사람들이 날 무시하고 외상을 안 해주지 뭐예요? 나... 나도 예전에는 여기 VIP 고객이었다고요.”“문나 씨.”맨 앞에 선 팀장이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말투로 말했다.“VIP 고객님이시면 저희 규정을 더 잘 아실 텐데요. 여긴 외상이 안 됩니다.”“그러니까 말이에요.”프런트 직원이 눈을 희번덕거렸다.“우리가 모시는 톱 배우와 톱 가수들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두룩해요. 그런데 회원 카드도 만들지 않
사실 따지고 보면 문나의 탓도 아니다...김자옥 이 여우 같은 여자가 바로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따로따로일 줄은 임나연도 생각지 못했다. 이미 마음에 둔 며느릿감이 있다면서 대외적으로 공개해 놓고 그녀를 착각하게 했다.하지만 그녀가 마음에 둔 며느리는 강서연이었다!임나연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문나 씨가 이렇게 된 건 다 강서연 그년 때문이잖아요!”문나는 씩씩거리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맞아요. 다 그년 때문이에요! 하지만 난 지금 그년을 만날 기회도 없어요. 어진 엔터테인먼트 건물도 들어가지 못해요... 어떻게 복수하면 되죠?”임나연은 잠깐 침묵하다가 이내 가볍게 말했다.“강서연을 못 건드린다면 걔 주변 사람을 건드려요. 어차피 걔 속만 뒤집어 놓으면 누굴 건드리든 다 똑같잖아요!”“주변 사람이요?”문나가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나연 씨가 예전에 그년 남동생을 건드렸다면서요? 성적을 위조했다고 퇴학당하게 하려 했지만 결국에는...”“됐어요!”임나연은 그 얘기를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았다.“주변 사람들이라고 했잖아요. 제발 내 생각대로 좀 따라와 주면 안 돼요?”“주변 사람이라...”문나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친구 말이에요! 누가 가장 만만한지 알아보고 괴롭히면 되잖아요. 내가 이것까지 가르쳐야 해요?”문나는 알겠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하나 더.”임나연이 계속하여 말했다.“문나 씨는 팬덤이 컸던 연예인이라서 화제성이 있어야 해요. 이미지를 버리고 스캔들을 터트리는 건 어때요? 이슈만 받으면 욕을 먹는 것도 관심이잖아요.”“네, 네!”문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전에도 그녀는 이미지 관리에 너무 신경 쓴 것은 아니기에 스캔들을 터트리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그리고 자원은... 어진 엔터테인먼트에서 얻을 수 없으면 다른 회사에 가서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하지만... 그건 계약 위반인데요?”문나가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어진 엔터테인먼트에 몰래 다른 회사에 가서 따로
“연준 형.”배경원은 억울하기만 했다.“왜 그래요?”눈치 빠른 유찬혁은 배경원의 입을 틀어막고는 종업원에게 음료수를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최연준은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나서야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유찬혁을 보며 할 얘기가 있으니 휴게실로 가자고 했다.두 사람은 가운을 입고 휴게실로 향했다.“형, 무슨 일이에요?”“그게...”최연준은 잠깐 멈칫하다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뭔가 의심스러운 점이 있어서 그래.”“뭔데요?”“우리가 전에 찾았던 거 말이야... 뭔가 빠뜨리지 않았을까?”유찬혁은 전혀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먼저 이렇게 얘기하길 기다린 듯했다.“형도 그렇게 생각해요?”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저도 진작 의심했었는데 더 많은 증거를 찾은 후에 형한테 얘기하려고 했어요.”“비행기 사고가 나기 전에 최진혁이 엄청난 금액의 보험을 들었는데 보험금 수령인이 윤정재로 되어 있다고 한서한테서 들었어.”“형, 그건 항공법 규정에 부합되지 않아요!”최연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요즘 윤 회장님이랑 함께 살면서 조금 알아가게 되었는데 뭔가 아주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 날 해칠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유찬혁이 피식 웃었다.“제가 알아봤는데 그 사람 지금 그 자리에 앉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더라고요. 하지만 다른 건 그래도 다 떳떳했어요.”“그래서 말인데.”최연준이 눈살을 찌푸렸다.“윤 회장님이 그 돈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는지는 둘째치고 보험금 수령인이 왜 아무 상관 없는 외부인인 걸까? 그때 나랑 한서가 계약서만 들여다보느라 이렇게나 엄청난 단서를 놓쳤어.”“그러니까 말이에요. 나한테 묻지도 않고.”유찬혁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고 최연준이 차갑게 웃었다.“그러니까 누군가가 일부러 이 보험 계약서를 나한테 보여줘서 윤 회장님도 공범이라고 오해하게 만들려는 거겠지.”“맞아요!”유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맨 처음에 최진혁이 형한테 보여준 계약서에는 보험금 수령인이 형네 부
“모든 데이터를 다 복구할 수 있어?”“아마 가능할 거예요. 정비소 직원이 그러는데 너무 심각하게 파손된 게 아니래요. 전기회로를 고치면 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다고 했어요... 형 혹시 그 두 사람이 어떻게 유람선에 탔는지 알아보려고 그러는 거예요?”“아니.”최연준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섬에 있을 때 문자 한 통을 받았어.”“문자요?”“그때 인터넷을 복구해서 너한테 연락하려고 방법을 생각하던 참이었거든.”최연준이 그를 보며 말했다.“너한테 구조 신호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문자를 받았어.”배경원이 눈살을 찌푸렸다.“문자 내용이 뭔데요?”최연준이 살짝 멈칫했다.“살려주세요.”배경원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유람선을 총 여섯 대 샀잖아. 유람선끼리 시스템이 다 이어진 거야? 만약 이어진 거라면 다른 유람선에서도 이 문자를 받았을 텐데.”배경원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처음에는 이어졌었어요. 그런데 음악회 전에 제가 설정을 변경해서 더는 이어지지 않아요. 왜냐하면... 제가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렸는데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기 싫어서 변경했거든요.”배경원이 입술을 적시고 말을 이었다.“그리고 형이 탔던 그 유람선은 원래 형을 위해 준비한 게 아니었어요.”최연준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배경원은 그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그건 저의 개인 유람선이에요. 해상 음악회 그날, 원래는 형한테 다른 유람선을 안배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형이랑 형수님은 가장 좋은 걸 타야 한다는 생각에 제 유람선을 양보했죠. 그리고 마침 제가 기다리던 그 사람도 안 올 수 있어서...”유찬혁도 그때를 떠올렸다.“맞아. 그날 네가 나한테 이 얘기를 할 때 누군가가 뒤에서 지나갔었어. 그 사람이 아마 우리 둘 얘기를 듣고 그 유람선에 미리 잠복해 있었던 게 분명해!”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배경원을 쳐다보았다.“그러니까 그 살려달라는 문자는 우리한테 보낸 게 아니라 너한테 보내는 거였어!”배경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