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연은 목소리를 높였다.“이건 최씨, 임씨 두 가문이 암묵적으로 약속한 거예요!”강서연은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나연 씨, 저는 견식이 좁아서 이런 ‘암묵적’ 인 것에 대해 잘 모릅니다. 만약 양가 집안 어른들께서 이미 인정했고 연준 씨도 반대하지 않는다면 왜 발표를 안 하는 거예요? 그 뜻은 양쪽 가문에서 아직 이 혼인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지 않을까요. 또는.”강서연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연준 씨가 전혀 인정하지 않거나!”“당신...”임나연은 얼굴이 일그러졌다.강서연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면서 손에 낀 에메랄드빛 반지를 자랑했는데 반지의 반사광이 임나연의 눈을 찔렀다. 이것으로 그녀가 최연준 마음속에 범상치 않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임나연은 너무 화가 나서 이가 근질근질했지만, 얼굴에 표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배씨 저택에서 강서연과 소란을 피우면 임씨 가문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갈 것이다.지금 최연준도 와있는데 절대로 자기를 나쁜 여자라고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임나연은 질투심을 억누르고, 강서연을 보며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서연 씨는 정말 말재주가 좋으시네요. 연준 씨가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떤 일은 단지 연준 씨가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어요.”임나연은 피식 웃었다. “연준 씨 뒤에는 최씨 가문이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의 혼인마저도 최씨 가문의 이익과 얽혀 있어요.”강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에메랄드빛 반지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연준 씨랑 반지를 교환하였다고 해서 최씨 가문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는 착각하지 마세요. 서연 씨, 최씨 가문은 그리 쉽게 들어갈 수 없어요...”임나연은 그녀에게 다가가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보기에 당신이 연준 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 같은데 저는 상관없어요. 어차피 연준 씨를 묶어 둘 수 있으니, 밖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찾는 것보다는 낫겠죠.”강서연은 차갑게 그녀를
강서연과 임나연은 마주 서 있었다.그녀는 임나연의 올라간 입꼬리를 보고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서연 씨, 제 말을... 못 알아듣겠어요?”임나연은 냉소했다.“저는 당신이 연준 씨와 함께 있는 것을 막지 않을 것이에요. 나중에 내가 연준 씨와 결혼하더라도 이런 것 때문에 질투하지 않을 것이에요. 사실 우리 같은 가문은 이런 일들이 많거든요. 저도 천천히 적응할 거니까 서연 씨도 익숙해질 거라고 믿어요!”강서연은 입술을 깨물고 말하지 않았다.임나연은 ‘외실’ 이라는 두 글자만 입에 올리지 않았을 뿐이다.임나연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분수도 모르는 주제에 반지를 교환했다는 사실로 나를 모욕하다니, 이번에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그래, 나연이의 말이 맞아.”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임나연은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어머님!”막 달려가려고 하는데 김자옥은 옆으로 피했고 손을 들어 그녀의 포옹을 거절했다.임나연은 이미 팔을 벌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허공에 어색하게 굳어 있었다.김자옥은 강서연을 향해 걸어가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 모습을 본 임나연은 순간 얼굴빛이 변했다.“나연이 말이 맞아.”김자옥은 웃으며 말했다.“우리 같은 가문에서는 남자가 외실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정상적인 일이지. 한 명으로는 부족해 첩을 많이 둬서 쾌락을 누리는 사람도 다수야!”“어머님?”임나연은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하지만 나연아, 너무 걱정하지 마.”김자옥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연준이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임나연은 자기편을 들어주는 줄 알고 수줍게 웃었다.그런데 바로 김자옥이 강서연을 바라보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 눈빛은 자기한테 향한 적이 없는 자애롭고 부드러운 눈빛이었다.“연준이는 서연이 하나면 충분해!”“네?”임나연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강서연도 귓가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네 탓이 아니면 누구 탓인데?”김자옥은 이 말을 할 때 마음이 조금 찔렸다. 그녀가 먼저 사람을 잘못 알아본 것이고, 그 최지한과 어울려 다니던 강유빈을 강서연으로 착각한 것이다...하지만 억지로 주장하는 것은 김자옥의 일관된 스타일이다.그녀는 목청을 가다듬고 최연준을 힐끗 보더니 뻔뻔스럽게 말했다.“서연이가 이렇게 훌륭한데, 너는 일찍 나에게 데리고 오지도 않냐? 너는 고의로 우리 고부가 상봉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거지!”최연준은 말문이 막혀버렸다.‘나의 혼인은 최씨 가문뿐만 아니라 김씨 가문과도 엮여있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신지? 강씨가 이 집에 들어오면 자기랑 강씨 둘 중의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신지?’“엄마.”최연준은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우기지 마세요. 처음에는 엄마가 아니었으면...”“처음부터 내가 마음에 드는 며느리가 있다고 말했는데, 네가 죽어도 원하지 않다고 한 거야! 게다가 주식을 철수한다고 나를 협박하지 않나!”최연준은 충격을 받았다.‘이렇게 죄를 뒤집어쓸 수 있다고?’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강서연을 바라보았다.“난 그런 적 없어...”“으흠!”김자옥은 몸을 바로 세우고 강서연에게 다가가 웃으며 바라봤다.“서연아 괜찮아. 이 자식이 맘에 안 들면 아줌마랑 같이 영국 가자! 우리 김중 재단에는 젊은 청년도 많고 금발 유럽 미남들도 수두룩이야. 그때 가서...”“엄마!”최연준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낮은 소리로 외쳤다.‘정말 내 친엄마다. 나를 엿먹이다니!’강서연은 활짝 웃으며 최연준한테 다가가 그의 팔을 살며시 잡았다.“아줌마의 호의는 고마워요. 하지만 저는 이 사람 하나면 충분해요!”최연준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코끝을 비벼댔다. 그는 온 세상을 얻은 듯 만족하게 웃었다....배씨 가문은 너무 격식을 차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찬은 뷔페로 하여 하객들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배씨 가주와 사모님께서 팔짱을 끼고 하객들 사이에서 술잔을 들어
김자옥은 거절하지 않았다.“그래. 말해봐!”강서연은 최연준을 보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제 월급 카드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뭐라고?”“제가 신문사에서 일하는 동안 월급 카드를 손에 쥐어본 적도 없어요!”김자옥은 이마를 찌푸리고 물었다.“어느 신문사에서 일하는 거야! 너무하다! 임금까지 체불하다니?”“신문사가 그런 것이 아니라.”강서연은 눈을 부릅뜨고 있는 최연준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연준 씨가 가져갔어요!”김자옥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동안 종종 최연준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그녀는 자기 아들이 진짜 사나이라고 생각했다.‘이건... 언제 또 여자의 월급 카드를 뺏는 버릇이 생긴 거야?’“최연준!”김자옥은 소리 질렀다.파티에 참석한 많은 사람이 잇달아 얼굴을 돌려 이쪽을 보았다.셋째 도련님은 너무 쪽팔려서 황급히 눈짓으로 어머니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지만, 김자옥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때렸다.“이 나쁜 자식! 우리 서연이 월급 카드를 뺏어가? 서연이가 매달 힘들게 번 돈이 다 네 주머니로 들어갔다고?”“아니에요, 엄마!”최연준은 이렇게 답답한 적이 없었다.“우리 그때 약속했었어요. 서연이가 나를 평생 먹여 살린다고...”“어이구. 잘하는 짓이다. 네 와이프 카드를 긁으면 마음에 죄책감이 들지 않니?”최연준은 눈을 찌푸리며 자기 엄마를 바라봤다.그녀는 이것이 두 사람 사이의 장난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엄마의 협박 때문에 최연준은 느릿느릿 월급 카드를 꺼냈다. 그는 항상 카드를 셔츠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위치는 가슴 가까이에 있는 자리였다.강서연은 웃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장난기랑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최연준도 웃으며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꼴랑 카드 한 장?”김자옥이 그를 노려보았다.“또 왜요?”“카드를 다 꺼내서 서연이한테 줘!”“...”“앞으로 서연이의 허락 없이 함부로 돈을 쓰면 안 돼, 알겠니?”최연준은 강주에 있을 때, 육
“이 프로젝트는 오성대 디자인과 사람이 필요해요. 게다가 임건은 학교 이사장이에요.”최연준은 차갑게 웃었다. “이 프로젝트의 가치가 어마어마해서 임씨 집안도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예요.”“임나연은 당신이랑 접촉할 기회를 절대로 안 놓치겠죠? 이렇게 되면 업무를 구실로 매일 최상 그룹에 연준 씨를 찾아갈 거예요!”최연준은 그를 한 번 흘겨보며 입을 다물라고 경고했다.육경섭은 더 큰 소리로 웃었다.웃고 나서는 다시 정중하게 최연준의 어깨를 토닥였다. “비록 저는 엔터테인먼트 대표여서 이 오성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연준 씨가 말만 하면 저는 전력을 다해 당신을 도와줄게요!”“감사해요.”최연준도 그의 손목을 토닥였다.“그런데 경섭 씨, 저도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거를 모르죠?”“네?”“한번 맞춰 보세요. 이 땅도 그렇고 동명 주식과 레이안 두 곳의 사장이 누구일 거 같아요?”육경섭은 잠시 멈칫했다.하지만 머리가 좋은 그는 곧 답을 찾았다.최연준이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한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내뱉게 하는 사람은 강서연 빼고 누가 있겠는가!“당신...”최연준은 미소로 묵인했다.육경섭도 같이 웃어줬다.“그럼, 서연 씨가 모두의 사장님이에요?”“맞아요.”최연준은 대답하면서 강서연을 떠올렸는데 자동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서연이는 아직 모르고 있어요. 본인 스스로 사업을 하고 싶어해서 아직 공개를 안 했어요.”“임나연이 나중에 사장이 누군지를 볼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요!”육경섭은 몰래 웃었다.최연준은 인상을 찌푸렸다.“그 여자를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마세요!”육경섭은 히히덕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그는 원래 임우정에게 임산부용 스킨케어 제품을 사 주려고 했지만 두 남자는 전혀 쇼핑에 대해 경험이 없어 엉뚱하게 립스틱 코너로 갔다.최연준은 앞에서 립스틱을 바르는 사람들을 봤다.그는 이 많은 립스틱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다 똑같은 빨간색이 아닌가?’하지만 다른 사람이 바르는 것
최상 그룹, 꼭대기 층.이번 회의는 최재원도 참석했기 때문에 유난히 엄숙하고 경건해 보였다.최재원은 의자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오늘은 검은 비단으로 된 한복을 입었고 은발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나이가 들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초롱초롱했고 온몸에는 카리스마가 풍겼다.그는 최연준을 보며 물었다.“김중 재단 쪽과 인수인계 절차는 다 끝났어?”“네. 다 됐어요.”최연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김 대표께서 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최대 주주예요.”“그래.”최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이 회사가 김 대표 손에서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비록 예전에 김씨 가문과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최재원은 오랫동안 장사를 해 왔기 때문에 이 정도의 겉치레는 할 수 있었다.그리고 최씨 가문은 김중 재단과의 이익이 서로 얽혀있기도 하고 또 최연준은 김자옥의 아들이니 쉽게 김씨 가문과 결별할 리는 없다.기왕 이렇게 된 김에 차라리 잘 협력해서 앞으로 또 적당한 기회를 찾아보는 게 좋다.최재원은 눈을 찌푸리며 최연준을 관찰했다. 최연준은 자기의 후계자로서 그는 맘에 들어 한다. 다른 건 다 괜찮지만 유독 강서연이... 골칫거리였다!회의 내내 최재원은 귀담아듣지 않았고 회의가 끝날 때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나가게 하고 최진혁과 최연준, 그리고 박경수와 다른 두 측근만 남겨두었다.최진혁은 최연준을 한 번 보고는 냉소했다.최연준은 그가 또 할아버지 앞에서 무슨 이간질을 했는지 알고 있다.지난번 배씨 가문의 파티에서 김자옥이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임나연은 그녀 앞에서 좋은 인상은커녕 ‘외실’ 이라는 것 때문에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는 격이 돼버렸다. 그녀는 돌아간 후 당연히 한바탕 울고불고 난리가 났고 지금은 오성 대가문 사이에서도 웃음거리가 되었다.이것은 바로 최진혁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그는 전부터 임씨 가문과 친분이 있었고 최재원 역시 최씨, 임씨 가문의 통혼을 지지했다. 뒤에서 조금이라도 불을 지르면
“강서연을 데리고 너의 어머니를 만나봤어?”최재원이 물었다.“만나봤어요. 어머니가 서연이를 너무 좋아해요.”최연준이 대답했다.“흠!”최진혁이 좋은 뜻을 품지 않고 웃었다.“연준아. 그 아가씨 대단한 분이네! 무슨 방법을 썼기에 김 대표처럼 까다로운 사람도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일까?”최연준은 얼굴이 어두워졌다.‘작은삼촌이 일부러 이렇게 말하면 할아버지께서는 서연이가 수단이 있는 사람이라고 오해할 수 있잖아요.’이미 강서연의 출신에 불만이 많았던 최재원이 수단이 있다는 딱지까지 붙이면 영감님의 인정을 받기는 더욱 어려워진다.최연준은 심호흡하고 설명했다.“서연이가 어머니랑 잘 지내는 건 사실이에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작은삼촌보다 훨씬 나아요!”“너 지금 뭐라고 했어?”최진혁은 인상을 구겼다.“네가 말하면 말했지, 어째서 나랑 엮이게 만들어!”“저는 그냥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최연준은 느긋하게 펜을 돌리면서 말했다.“작은삼촌도 우리 어머니랑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 아직도 어떤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저의 어머니는 좀 까다롭게 굴지만 사람 보는 눈은 있어요. 작은삼촌은 여기서 이간질하기보다 서연이한테 잘 배워서 어머니랑 어떻게 잘 지낼 수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게 앞으로 발전하는 데도 유리하지 않겠어요?”최연준의 말은 칼같이 가슴을 찔렀다.“너, 이 버릇없는 자식!”최진혁은 테이블을 세게 치고 너무 급해서 속마음에 있던 욕까지 내뱉었다.“어른한테 지금 이게 할 소리야?”최재원은 그를 한 번 훑어봤다.최진혁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매우 불만이었다.“내가 왜 네 엄마랑 친하게 지내야 하지? 내가 엮이는 일도 없는데!”“그래요? 그러면 삼촌 장부의 이백억 원은 어떻게 채운 거죠? 김중 재단의 돈을 건들지 않았다고 맹세할 수 있어요?”“최연준! 네가 감히 내 장부를 뒤져?”“후계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사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최상 그룹에서 당신은 저의 작
최진혁은 도무지 믿을 수 없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계열사를 회수하든 파직시키든 너한테는 아무런 소용이 없구나!”최재원이 그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앞으로는 회사에 나올 필요 없어! 지금 네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애들한테 넘겨. 그리고 연준아, 이 일은 네가 알아서 잘 안배해. 인계받은 사람은 반드시 품행이 단정해야 해. 다시는 착오가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야!”“네, 알겠습니다.”최연준이 가볍게 웃어 보였다. 이미 마음속에 그만의 계획이 다 있었다. 가족 중에 같은 또래가 많았는데 몇몇 사촌 형과 사촌 누나들이 행실이 점잖고 듬직하여 믿고 맡길만했다.“그리고 서교 땅은...”최재원이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연준이 네가 알아서 책임져. 그 어떤 실수도 있어선 안 돼.”“네.”최연준의 얼굴에 덤덤한 미소가 지어졌다. 지난번에는 단 두어 마디 말로 이사회에서 최진혁을 파면했고 이번에도 단 몇 마디 말로 최진혁을 프로젝트에서 내쫓았다.최진혁이라는 걸림돌이 하나 제거되긴 했지만, 아직 임씨 가문이 남아있었다.“할아버지.”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이 더는 참여하지 않는다면 임씨 가문은...”“임씨 가문은 우리한테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파트너야.”최재원의 시선이 최연준에게 향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최재원이 그를 그윽하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내가 너한테 나연이랑 결혼하라고 몰아붙이진 않았잖아. 그렇다고 해서 너도 강서연 하나만 원해서는 안 되지!”“할아버지...”“됐어. 나 피곤해.”최재원이 손을 내젓더니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이 일은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 아무튼 일할 땐 나연이랑 호흡 잘 맞춰.”문 앞으로 다가간 최재원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강서연 그 여자가 너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몰라.”...주말, 강서연과 최연준은 두 어머니를 모시고 바람 쐬러 나갔다.마침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하늘이 짙푸른 색을 띠었고 커다란 솜사탕 같은 구름이 둥실둥실 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