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준은 그를 한 번 째려보고 냉랭하게 말했다.“말 못 하면 입을 다물어 주세요!”육경섭은 박장대소했다.왠지 모르게 최연준과 나석진이 대립 관계 같아보이는데... 사실 이렇게 말할 수도 없다. 최연준은 그냥 강서연에게 접근하는 모든 남자를 다 싫어할 뿐이다.“됐어요!”육경섭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서연 씨가 인터뷰만 한 번 했을 뿐이잖아요. 업무적으로 만난 사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신경 안 써요.”그는 인정하지 않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신경 안 쓴다고요?”육경섭은 그를 비웃었다.“이렇게 합시다. 저를 도와서 나석진을 초대해 주세요. 그럼, 제가 나석진이 행사에서 망신당하게 만들어 줄게요!”그제야 최연준의 안색이 조금이나마 좋아졌다. 두 남자는 서로를 마주 보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제가 이런 쪼잔한 놈으로 보이세요?”이 말을 남기고 최연준은 돌아서서 핸드폰을 꺼내 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방법을 생각해서 나석진을 육 대표 행사에 초대시켜. 잘 설명해 드리고!”육경섭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어쨌든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사람이니 남들 앞에서 망신당하지 않도록 하세요.”최연준은 덤덤하게 말했다.“이 기회에 나석진과 잘 이야기해 보고 되도록 계약하세요.”“계약하고 나서 나중에 천천히 괴롭히려고요?”최연준은 그를 힐끗 봤다.“저는 나석진과 아무 원한도 없는데 왜 사람을 괴롭히겠어요? 그냥 경섭 씨 생각해서 하는 소리예요. 나중에 나석진이 열심히 목숨 걸고 돈을 벌면 회사도 같이 발전할 수 있잖아요!”육경섭은 그 말에 어이없이 웃었다.‘목숨 걸고 돈을 벌라고? 그럼 인터뷰할 시간이 있겠어? 스케줄이 꽉 찼으니, 강서연도 나석진을 만나지 못할걸.’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셋째 도련님이 한 수 위지!...정섭 엔터테인먼트의 행사는 성대했다. 그날, 반 이상의 연예계가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상업계 정치계의 유명 인사도 많이 참석했다.그리고 나석진의 출석만으로도 분위기가 더 뜨거워졌다.
강서연은 편한 소파를 찾아 기대어 쉬려고 했는데 멀지 않은 옆 테이블에 한 사람이 앉아서 카드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봤다.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그 사람을 봤는데...‘나석진? 나석진 씨가 왜 여기 있지?’그녀가 어리둥절해하는 틈을 타서 나석진도 그녀를 발견했다. 그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그녀 옆에 앉았다.“안녕하세요.”강서연은 서둘러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나석진 몸에는 좋은 향기가 감돌았고 그의 뚜렷한 이목구비와 어우러져 더욱더 분위를 돋보이게 한다.“안녕하세요.”그는 웃으면서 인사했다.“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 오늘도 인터뷰하러 오셨나요?”“네.”강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대화가 끊겼고 나석진은 계속해서 카드에 집중해 테이블에서 놀기 시작했다.강서연은 그 카드 뒷면의 무늬를 보고 멈칫했다.“석진 씨도... 이거 할 줄 아세요?”나석진이 그녀를 봤다.“서연 씨도 할 수 있어요?”“이 카드는 트럼프 카드라고 하죠?”“저는 할 줄 몰라요. 하지만 저희 어머니가 할 수 있어요!”나석진은 안색이 변하더니 잠시 멈췄다.“어머니가 이런 카드를 정말 잘하세요. 누구도 어머니 상대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과 같이 노는 것은 봤는데...”“트럼프 카드는 여러 사람이 할 수도 있고 혼자 할 수도 있어요.”나석진이 흥분했다.“서연 씨 어머니께서 이런 카드를 할 줄 아시다니, 어디 사람인지 여쭤봐도 돼요?”강서연은 답을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 고향이 어디인지 물어본 적이 없다.나석진은 그녀의 침묵을 다른 뜻으로 오해했다. 그는 급히 사과했다.“미안해요. 일부러 서연 씨 프라이버시를 캐물을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궁금해서...트럼프 카드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이런 카드는 남양 쪽에서 온 것이고, 저는 성남 사람이에요. 성남이 남양과 거리가 가깝고 문화도 남양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저는 어릴 때부터 놀았어요.”강서연은 말은 듣고 히죽 웃었다.“석진 씨가 저보다 똑똑하
최연준은 여러 배우가 지켜보는 속에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그 몇 명의 배우들은 원래 여기서 잠깐 쉬고 있을 뿐이었는데, 나석진이 여자랑 같이 카드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최연준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문 앞에서 속삭거렸다. 그가 나타나자, 이곳은 강한 저기압에 휩싸인 듯 사람들은 답답함에 숨을 쉴 수 없었다.최연준의 곁에는 찬 공기가 맴돌았다.“서연아, 이 카드 아니야.”그는 낮은 목소리를 내고 강서연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손에 있는 다른 카드를 뽑아내면서 말했다.“이걸 내놔야 해!”강서연은 그가 온 것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최연준은 그녀의 머리를 주물렀다.다른 사람들은 이 다정한 장면을 보고 이들의 관계를 짐작하기 시작했다.나석진은 표정이 안 좋았고 문 앞에 있던 배우들도 서로를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육경섭이 달려와 이 상황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셋째 도련님 오셨어요.”그는 최연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도련님께서 시끌벅적한 자리를 싫어한다면 룸을 따로 준비하겠습니다. 나 배우님, 제가 배우님을 애타게 찾았어요. 밖에 자리를 오래 비우면 안 좋아요. 저랑 구체적인 계약에 관해 얘기해야죠.”말이 끝나자마자 육경섭은 최연준을 밖으로 끌고 나가고 싶었다.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절대로 이 질투심 많은 사람을 나석진이랑 같은 공간에 있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그런데 그가 행동하기도 전에 일이 터졌다.“나 배우가 카드도 잘 치고 선생님 노릇도 잘하는 것 같은데... 저 역시 이 카드를 할 줄 알거든요. 저와 한 판 하실래요?”이건 거절할 수 없는 말투다.“이봐, 최연준 씨!”육경섭은 눈을 찌푸리며 필사적으로 눈치를 줬다.오늘은 정섭 엔터테인먼트의 좋은 날인데, 이 질투쟁이가 망치려고 하는가...“나는 단지 나 배우와 한번 겨루고 싶을 뿐인데, 육 대표가 왜 긴장해요?”최연준은 그를 곁눈질했다.“...”육경섭은 넥타이를 잡아당겼고 이 어처구니가
하지만 나석진이 위험한 수를 쓸 줄은 몰랐다.“나 배우님.”최연준은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지금 아주 위험한 행동이니 신중하길 바랍니다.”“괜찮아요.”나석진은 웃으며 대답했다.“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으면 위험을 무릅써야죠. 배역을 따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요.”“맞는 말이긴 한데 모든 사람이 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나석진은 자신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연준이 내민 카드를 보고 어리둥절했다...곧이어 두 장, 한 장.최연준의 패는 다 나갔고 점수에서도 완승했다.나석진은 좌절했다.“나 배우는 재주가 많으시네요.”최연준은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단지 재주를 잘못된 곳에 쓰이면 시한폭탄이 되는데,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면 너무 아쉽잖아요!”“무슨 뜻이에요?”나석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최연준은 테이블 위의 모든 카드를 그의 앞으로 밀었다. 트럼프 카드는 거대한 부채처럼 쫙 퍼졌다.최연준의 강렬한 카리스마 때문에 모두 그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그는 강서연을 껴안고 비꼬는 듯한 눈빛으로 나석진을 바라봤다.“가면 안 되는 위험한 수는 가지 말고,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은 건드리지 마세요. 당신이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고요.”나석진은 눈빛이 어두워지며 말을 하고 싶었는데 최연준은 기회를 주지 않고 강서연을 데리고 떠나버렸다.육경섭도 같이 따라갔고 직원한테 이곳을 정리하라고 시켰다.한참이 지나서야 몇몇 배우들이 입을 열었다.“셋째 도련님의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야... 나 방금 움직이지도 못했어!”“맞아, 그런데 그 기자 정체가 뭐야?”“셋째 도련님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도련님 여자겠지.”“그럼, 조금 전에 자기 여자한테 손대지 말라고 나 배우한테 경고한 거야?”나석진은 한숨을 내쉬고 최연준과 강서연이 떠나는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을 제자리에서 굳어 있었다....최연준은 호텔을 빠져나서는 순간부터 말이 없었다.그는 계속 그
“하고 싶은 거 없어?”그는 따뜻한 입술을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유혹하듯 말했다.강서연은 심장이 터져 나올 것처럼 쿵쾅거렸고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쑥스럽게 그에게 기댔다.“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이렇게 당신을 안고 있는 거예요.”최연준은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입이 귀에 걸렸다. 강서연이 쑥스러움을 많이 타기에 이런 일은 천천히 해야 했다. 하여 그는 단계적으로 하나씩 가르쳤다.“안은 후에는 뭘 하고 싶어?”“네?”강서연의 커다란 눈망울에 막연함이 담겨있었다.“예전에 어떻게 했었든지 생각해 봐.”그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우리 집에서... 어디서 날 안았지?”강서연은 그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일부러 말했다.“아, 예전에는 베란다에서 자주 안았었죠. 당신을 안은 채로 함께 별을 감상했잖아요.”최연준은 말문이 막혀버렸다.“아참, 연준 씨.”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나 지금 별 보고 싶은데 같이 볼래요?”최연준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그래. 보자.”그의 목소리에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다. 강서연은 몰래 교활한 웃음을 지었다.그런데 오늘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다. 안개가 자욱했고 추우면서도 습했다. 아무래도 별을 구경하는 건 그른 것 같다.강서연이 실망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억지로 웃었다.“지난번 당신이 오성에 있고 내가 강주에 있을 때 나한테 영상을 보냈었잖아요. 그때 보니까 여기 밤하늘이 아주 예쁘더라고요.”“걱정하지 마.”그의 눈빛이 다정하기 그지없었다.“오늘 밤하늘은 아주 예쁠 거야.”“하지만...”“나 따라와.”최연준이 강서연의 손을 잡았다.“꼭 별을 보게 해줄게.”그는 화들짝 놀란 강서연을 차에 태우고는 바닷가 길을 따라 동쪽으로 달리다가 최씨 가문의 개인 해역에 도착했다.그와 함께 차에서 내린 강서연은 푹신푹신한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짠 냄새가 섞인 바닷바람이 코끝을 스쳤고 가끔 갈매기 소리도 들리곤 했
강서연은 그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최연준이 그녀의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뒤집더니 뭔가 쥐여주는 것 같았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손에 목걸이 하나가 있었다.별과 달 모양으로 조각한 귀한 카슈미르 사파이어가 달린 백금 목걸이였다.“서연아.”그의 중저음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너한테 주려고 별과 달을 땄어. 나랑 결혼해 줄래? 우리 평생 헤어지지 말자, 응?”입술을 앙다문 강서연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최연준은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돼.”그가 다정하게 말했다.“시간 줄 테니까 천천히 생각해. 난 항상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강서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가슴팍에 기대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연준 씨.”“응?”“사실 지금 바로 대답할 수 있어요...”최연준은 순간 움찔한 마음을 진정하며 그녀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시간이 필요하긴 해요. 혼수를 준비해야 하니까.”그녀는 고개를 들고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이 세상을 더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해요. 당신한테 시집갈 때 당신이랑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니까... 당신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요. 절대 움직여선 안 돼요, 알겠죠? 언젠가는 내가 다가갈 거예요.”“응, 알았어!”그는 그녀의 눈을 보며 진지하게 대답했다.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드론이 알록달록한 빛을 내며 모래사장을 밝게 비추었다.전방에 안개가 자욱해도 그는 별과 달을 그녀에게 따주었다. 그녀는 자신만 바라봐 주는 이런 남자가 곁에 있어 너무도 행복했다....김자옥이 오성에 도착하자마자 박경수는 그녀를 여주 별장에 데려다주었다.이번에 돌아와 보니 왠지 만감이 교차했다. 그녀는 최상 빌라에 들어오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여주 별장이 본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제 최문혁과 은미연을 마주칠지 모르니 말이다. 서로 마주쳐봤자 어색할 게 뻔하니,
박경수는 말을 하든, 일을 처리하든 도가 지나치지 않고 적당했다. 그는 김자옥에게 최지한과 최진혁의 근황을 숨김없이 적당하게 얘기했다.김자옥은 자기 아들이 최씨 가문에서의 상황을 고려하여 먼저 여주 별장에 머물지 않고 최지한에게 가보려고 했다.“집사님.”그녀가 가볍게 웃었다.“오랜만에 온 거라 지한이 선물 좀 사 왔거든요. 미안하지만 해원 별장으로 안내해주시겠어요?”...그 시각 해원 별장, 최지한은 아버지가 면직당한 일 때문에, 소파에 앉아 최연준을 마구 욕하고 있었다.강유빈은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우며 몰래 거울을 비춰보았다. 몸에 가득 생긴 상처를 보니 두려우면서도 화가 났다. 그녀는 자신이 최지한에게 그저 한낱 노리개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최지한을 감히 건드릴 수가 없었다.첫째는 최씨 가문의 세력이 어마어마했고 둘째는 아직 최씨 가문에 당당하게 시집가려는 꿈이 있기 때문이었다. 최지한이 좋은 남편은 아니더라도 최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명분만 있으면 되었다. 하여 그녀는 그의 옆에 고분고분 무릎 꿇고 앉아 그의 다리를 마사지해 주었다.“도련님.”그녀는 일부러 말끝을 길게 늘어뜨렸다. 그러자 최지한이 짜증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처음에는 대충 새 여자라 만나다가 나중에 나름 고분고분 말을 들어 곁에 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계속 물고 늘어질 줄은 생각지 못했다.알아서 눈앞에서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과한 요구까지 하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그녀와 잠자리를 하고 난 후에는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언제 저랑 결혼할 건가요?”그 질문에 최지한은 마음이 움찔했었다.최지한이 주먹을 불끈 쥐고 소파를 내리쳤다. 가뜩이나 삐쩍 마른 얼굴이 더욱 창백하고 차가워 보였다. 강유빈은 그의 성격을 가늠할 수 없어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드리운 사악함은 정확히 보였다.“도... 도련님.”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최지한은 그녀를 차갑게 째려보다가 갑자기 그녀를 발로 확 걷
“그건...”최지한도 망설이기 시작했다. 최연준의 명성이 망가져서 할아버지가 화를 낸다면 무조건 옆 사람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때 가서 그의 짓인 걸 조사해 낸다면 큰일이다.“도련님.”강유빈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회장님이 최상 그룹을 쥐고 흔들 수는 있어도 여론까지 통제할 수 있겠어요?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뭐라 떠들어대든 회장님도 어찌할 방법이 없잖아요. 그리고 서연이의 성격을 제가 잘 알아요. 걔는 자기 명예를 무엇보다 중히 여겨요.”강유빈이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걔를 그렇게 몰아가면 절대 버티지 못할 거예요.”“그래.”최지한이 잠깐 생각하다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어쩌면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어!”거짓말 하나를 천 번 말하면 사실이 돼버린다. 강서연과 최연준이 네티즌들에게 일일이 설명한다는 건 불가능하기에 이 방법으로 최연준을 무너뜨릴 순 없어도 어느 정도 괴롭힐 수는 있을 것이다.“의외네?”그는 강유빈의 턱을 꽉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볼을 툭툭 쳤다.“네 이 머릿속에 그래도 나름 쓸모있는 게 들어있긴 있었구나!”하도 꽉 잡고 있어서 고통이 밀려왔지만, 강유빈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하하... 과찬이십니다, 도련님.”“이 돈 먼저 써.”최연준이 그녀에게 카드 한 장을 던져주었다.“모자라면 또 얘기하고.”“고맙습니다, 도련님.”“그리고 이거.”그는 또 목걸이 하나를 꺼내더니 실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네가 잘만 한다면 이 목걸이가 반지로 바뀔 수도 있어.”생각지도 못한 말에 강유빈은 흥분한 나머지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아무튼 우리 둘의 목표는 같아.”최지한이 씩 웃었다.“최연준 그 자식, 절대 편하게 지내게 해선 안 돼!”“네, 도련님!”“그럼 잘 계획해 봐. 내가 만만치 않다는 걸 제대로 보여줘야지.”그때 거실 밖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김자옥이 하이힐을 신은 채 바닥을 또각또각 밟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경호원들은 그녀를 막지 못하고 안으로 쳐들어오는 걸 빤히 볼 수밖
배현진은 마치 자신의 영혼이 몸을 떠나 허공을 떠도는 듯한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다.그는 허공에 떠 있는 듯 응급실의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사들이 급히 자신을 응급처치하는 모습과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로 누워 있는 자기 육체를 바라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에서 해방된 듯한 감각이 그를 감쌌다.의식은 또렷했지만, 살아남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없었다.그날, 배현진은 오강호와 싸웠다.송윤희와 이혼 후 더 나락으로 떨어진 오강호는 그날 술집에서 술에 취해 있던 배현진과 우연히 마주쳤다.말다툼은 곧 몸싸움으로 번졌고 오강호는 배현진이 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자, 송윤지를 언급하며 조롱을 쏟아냈다.배현진은 격분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먼저 손을 댄 쪽이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건장한 오강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배현진은 오강호에게 몇 대 얻어맞고는 응급실로 실려 가고 말았다.지금도 배현진의 귀에는 오강호의 말이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더니 별수 없군. 여자를 제대로 붙잡지도 못하고 결국 임지강에게 뺏겼다지? 하하하...”“배 도련님, 혹시 속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임지강이 송윤지에게 접근한 건 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을 거야!”“너 같은 쓰레기가 무슨 남자야. 약혼녀도 남에게 빼앗기고 말이야.”배현진의 가슴 한구석이 세게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강한 힘이 그의 영혼을 다시 육체로 끌어당겼다.옆에서 심전도가 삐 울리더니 직선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의사들은 제세동기를 정리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환자가 심장박동을 회복했습니다. 약물을 투여하세요.”배현진의 꼭 감겼던 두 눈이 살짝 떨렸다.그를 때린 사람이 임지강과 송윤지의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걸까?혹시, 그 둘 사이에 정말로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그는 알아내야 했다.죽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자신이 겪은 모든 수모를 반드시 임지강에게 똑같이 되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임지강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제가 누나랑 형부께 누를 끼쳤네요.”“그렇게 생각하지 마.”임우정은 부드럽게 말했다.“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은 결국 운명 같은 거야. 따지고 보면 이 일의 원인은 나야. 내가 처음에 송윤지를 현진이에게 소개하지 말아야 했어.”“저 때문에 누나가 곤란해진 거예요.”임지강은 진지하게 말했다.“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제가 조금 비겁한 방법을 썼어요.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배씨 가문을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배현진이 은행에 진 빚은...”임지강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임우정이 임지강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경원이와 수정이는 모두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빚진 돈은 은행에 분할해서 납부할 거야.”“그럼 이자는 받지 않을게요.”임우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안도와 약간의 무력감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배현진에 대해서는.”임지강은 계속해서 말했다.“저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윤지를 괴롭힐 때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예상했어야죠. 지금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거나, 심지어 정말로 정신이 나갔다 해도 그건 자업자득이에요.”“됐어, 봐줄 줄도 알아야지. 너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잖아...”임지강은 고개를 들어 임우정을 바라봤고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친 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이게 무슨 냄새예요?”갑자기 집 안에서 송윤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지강은 놀라며 황급히 돌아섰다.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송윤지가 급히 주방으로 달려 들어왔다.임지강도 곧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아이고, 이거 다 태웠네요!”송윤지는 놀라 외치며 불을 껐다. 그런 다음 행주로 냄비 뚜껑을 열었다.“이건 뭐예요?”“제가 만든 당근 소고기 스튜예요...”임지강은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송윤지에서 한번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이 모양이었다.“물 안 넣었어요?”송윤지는 코를 찡그리며 물었다.“당근
임지강은 송윤지의 세계에 다시 한번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임지강은 이제 송윤지의 아파트에서 종종 머물렀다. 겉으로는 송윤지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라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송윤지는 몇 번 거절하려 했지만, 임지강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그냥 놔두기로 했다.임지강은 비록 소파에서 자야 했지만, 그것조차도 행복했다.임지강은 언젠가는 송윤지의 곁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임지강은 대부분의 시간을 송윤지와 함께 보내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는 세 끼를 직접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송윤지가 과거에 자신을 위해 했던 일들이 얼마나 힘들고 정성이 담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과거 송윤지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가끔 송윤지는 집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임지강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꿈이 자꾸 송윤지를 괴롭혔지만, 송윤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조강이 곁에 있으면 훨씬 마음이 놓인다는 것을.임지강은 배현진과는 완전히 달랐다.배현진은 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앞으로’ 같은 말로 막연한 미래를 약속하곤 했다.반면, 임지강은 ‘내가 있잖아’, ‘나한테 맡겨’, ‘두려워하지 마’ 같은 말로 송윤지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임지강의 말 속에는 사랑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송윤지를 얼마나 아끼는지 충분히 느껴졌다.그날은 송윤지가 쉬는 날이었다. 임지강은 주방에서 당근과 소고기를 넣은 스튜를 끓이고 있었다.이 요리는 임지강이 새로 배운 것이었다. 임지강은 요리의 모든 과정을 조심스럽게 진행했고 조미료를 넣는 것도 마치 화학 실험을 하듯 정밀하게 측정했다.잠시 후, 요리의 향기가 퍼져 나갔고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냄비 뚜껑을 덮고 불을 약하게 조절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그가 문을 열자, 임우정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임우정은 복잡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누나?”
배현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임지강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소중히 여겨야 할 때 외면했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임지강은 손가락으로 배현진의 코앞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다시 내 여자를 건드리면, 소피아와 함께 감옥에서 만나게 될 거야.”임지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고 방을 나갔다.방 안에는 이제 배현진과 배윤아 두 남매만 남아 있었다.배현진은 멍하니 바닥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후회와 절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배현진의 모습을 보며 배윤아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오빠...”배윤아는 조심스럽게 배현진을 부축하며 말했다.“사실, 오빠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진작에 알아봐야 했어. 소피아가 없었다면,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배현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벽에 기대어 머리를 부딪치며 자신을책망했다.“오빠.”배윤아는 애써 배현진의 마음을 다독이며 말했다.“내 생각엔 임지강 씨는 오빠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진심으로 오빠를 망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닐 거야. 이미 송윤지의 복수를 한 거나 다름없으니, 더는 오빠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게다가 다행히도 오빠가 진 빚은 임지강 씨의 은행에서 대출받은 거니까, 그에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부탁하면 좀 봐주지 않을까?”“봐준다고?”백약곡의 쓴웃음은 공허하고 힘이 없었다.“지금 나는 아무것도 없어. 완전히 끝났어...”“오빠에겐 아직 나랑 부모님이 있잖아!”배윤아는 울먹이며 말했다.“우리는 여전히 가족이야! 오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해. 오빠가 진 빚은 부모님이 분명 해결하려고 하실 거야.”“내가 은행에 진 빚은 수천억이라고.”배현진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게다가 이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한 사람은 임지강이야. 그 사람은 절대 날 그냥 놔두지 않을 거야.”“오빠...”배윤아가 더 말을 이어가려 했
“현진 씨,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소피아는 두려움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렇게 한 건... 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은 모든 걸 여동생에게 넘겼잖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랑 제임스는? 당신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여기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제임스를 어떻게 키우겠어?”“그만해!”배현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소피아는 오직 자신과 제임스의 미래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소피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배현진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대하려 했던 건 소피아를 사랑해서지, 빚진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현진 씨...”소피아는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정말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 주길 바랐고 우리가 순조롭게 결혼하길 원했을 뿐이야. 그래서 내가...”“네가 원하는 건, 배씨 가문을 차지하는 거잖아?”“당신...”“윤아는 내 친동생이야!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내 등 뒤에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배현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소피아는 배현진의 외침에 놀라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소리쳤다.“배현진! 앞으로 네 여동생이랑 살 거야? 아니면 나랑 살 거야?”그 말에 배현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소피아의 뺨을 세게 때리며 속에 쌓여 있던 모든 후회와 분노를 폭발시켰다.소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배현진의 얼굴을 긁으려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이며 뒤엉켰고 배현진의 얼굴에는 소피아에게 긁힌 상처가 선명하게 남았다.그때, 경찰이 방으로 들이닥쳐 두 사람을 강제로 떼어놓았다. 차가운 수갑이 소피아의 손목에 채워졌다.배현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소피아가 경찰에게 끌려 나가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그의 존재는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온몸이 퍼즐 조각처럼 부서져 다시는 하나로
임지강은 대출 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서류에 선명한 배현진의 서명과 붉게 찍힌 도장은 마치 피로 얼룩진 조롱처럼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했다.“제 생각엔,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조 회장이 말했다.“지강아, 빨리 돈을 배 도련님 계좌로 송금하고 그 두 광산을 사들여라. 그리고 배 도련님,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임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너그럽게 대해주고 있는데, 도련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말도 안 되죠. 흥! 약속을 어기는 일은 배씨 가문의 품격에도 맞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배현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후회와 절망이 그의 마음을 홍수처럼 휩쓸고 있었다.“배씨 가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제가 데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배 도련님도 보고 싶었을 겁니다.”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룸의 문이 열리며 배윤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배현진은 배윤아를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놀라움은 곧 걱정과 초조함으로 변했다. 배현진은 재빨리 배윤아에게 다가가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윤아야, 괜찮아?”“나 괜찮아.”배윤아는 눈가가 붉어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고작 사흘뿐이었지만, 그 시간은 마치 몇 세기가 흐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그러나 배윤아의 시선이 소피아를 향하는 순간, 증오가 담긴 눈빛이 소피아를 사로잡았다. 배윤아는 이를 악물며 소피아를 가리켰다.“오빠, 바로 저 여자가 사람을 시켜 날 해친 거야!”“뭐라고?”배현진은 몸을 떨며 경악했다.소피아는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발악하듯 배현진 곁으로 뛰어들며 변명했다.“아니야! 내가 아니야! 윤아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네가 사라진 동안, 난 네 소식을 찾으려고 정말 애를 썼어. 난 정말로...”“거짓말하지 마세요!”배윤아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소피아 씨가 사람을 시켜 날 폭행하고 내 물건을 훔쳐 간 건 분명해요! 그리고 소피아 씨가 가장 원했던 게 배씨
“조 회장님,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요!”소피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우리가 그 광산을 사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아시잖아요. 대박을 기대했는데, 지금 헐값에 팔면 원금도 못 건질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고요. 게다가 그 돈은 전부 은행 대출입니다.”“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조 회장은 다 피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건 아가씨가 주도한 일 아닌가요? 제 기억으로는 배 도련님이 처음엔 그 두 광산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걸로 압니다만.”“조 회장님...”“배 도련님.”조 회장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오히려 추악한 수단으로 올라선 여자의 말을 믿었으니, 그 손해는 당연히 본인이 책임져야죠.”“지금 말 다했어요?”소피아는 벌떡 일어나며 격분해 외쳤다.조 회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짓누르듯 바라보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고 소피아의 기세는 단숨에 꺾였다.“배 도련님, 매입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배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 회장은 부하에게 매입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본 배현진은 그만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임지강과 송윤지였다.배현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다 테이블을 건드렸고 접시와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임지강은 송윤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를 위해 의자를 빼주고 임지강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배 도련님, 아는 분이시죠?”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제가 따로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배 도련님.”임지강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듣기론 도련님이 투자하신 두 광산이 이제 3200억밖에 안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3400억에 사들이겠습니다. 도련님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
화면에 띄워진 데이터는 충격 그 자체였다.두 사람은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친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배현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피아 역시 어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피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우리가 1조를 들여 산 두 광산이라고! 무려 1조라고!”배현진이 소리쳤다.“가격이 분명 오를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3200억으로 폭락한 거냐고!”“나도... 나도 모르겠어...”소피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 광산의 시장 가격을 철저히 조사했었단 말이야. 그 두 광산은 운산시에 있는데, 지금 운산시 광산 가격이 상승세잖아. 분명 손해 볼 투자가 아니었어.”“하지만 지금 상황 좀 봐.”배현진은 입술을 떨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소피아, 그 1조는 전부 은행 대출금이야. 지금 난 은행에 수천억 빚을 졌고 이자도 엄청나다고.”“현진 씨, 진정해.”소피아는 급히 배현진을 달래며 말했다.“이 일은 조 회장이 중간에서 소개한 거래잖아. 조 회장에게 물어보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 내가 직접 물어볼게.”...배현진과 소피아는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호텔 룸에서 조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진은 오늘의 만남을 위해 호텔 매니저에게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도록 특별히 부탁했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의 대표 메뉴들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조 회장이 방에 들어서자, 배현진은 그가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조 회장의 눈빛은 마치 코너에 몰린 쥐를 노리는 고양이 같았고 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쥐가 된 듯한 압박감에 사로잡혔다.“두 분이 너무 과하게 준비하셨네요.”조 회장은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의 술잔을 힐끗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렇게까지 준비하실 필요는 없었어요. 나이
이른 아침, 소피아는 천천히 눈을 뜨며 옆에 누운 남자의 맨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배현진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춤했다.배현진은 그녀의 키스에 미소로 답하며 부드럽게 눈을 떴다.하룻밤의 열정에 지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희미한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제임스는 아직 안 깨어났어?”“이 시간엔 절대 안 일어나요.”소피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 위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그럼... 우리 한 번 더?”“아니.”배현진은 소피아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댄 뒤 가볍게 입맞춤하며 말했다.그는 정말로 피곤했다. 소피아는 도대체 어떻게 매일 밤 이렇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걸까?소피아는 송윤지와 완전히 달랐다. 송윤지는 늘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가 바라볼 때만 순수한 미소를 띠곤 했다.배현진은 문득 송윤지를 떠올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했다.“자기야, 무슨 일이야?”“아, 별거 아니야.”배현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맞다, 나 현진 씨랑 상의할 게 있어.”소피아는 배현진의 얼굴을 자신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제임스도 점점 크고 있어. 가정교사를 불러서 집에서만 공부시키는 건 이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또래 아이들과 학교에서 어울리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 어쨌든 앞으로는 제임스가 배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렇지?”“음...”배현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장래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부모님이 이미 가업을 전부 윤아에게 넘겼잖아.”소피아는 미소를 띠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흡족해했다.배윤아 같은 풋내기는 소피아와 겨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배윤아를 기절시켜 조 회장의 카지노 앞에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조 회장이 배윤아를 데려갔으니, 모두가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범인이 조 회장과 임지강이라고 믿을 것이다.혹시 조 회장이 색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더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