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심호흡 한번하고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셋째 도련님께서 저를 믿어주세요, 제가 반드시 잘 처리해 드리겠습니다!”“그래요. 저는 이사장님이 똑똑한 분이라도 믿겠습니다. 그럼...”최연준은 다시 의자에 앉아 눈을 부릅뜨고 한 마디 한 마디씩 말했다.“지금 처리해 주세요.”“네? 지금요!”“네.”최연준은 거절할 수 없는 말투로 말했다.“지금 제가 보는 앞에서 전화 걸고 사람을 시켜서 처리하세요. 오늘 처리하지 못하면 이사장님은 여기서 하룻밤 지내셔야 될 거 같아요.”......윤찬은 다시 오성대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하였다.강서연은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나석진과의 인터뷰를 잡지 못해 기가 빠진 채 최연준 앞에 나타났다.최연준은 주눅이 든 그녀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갔다.그는 미리 이곳을 전채 대관했고 모든 시설이 그녀 혼자만을 위해 열려있어 둘만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었다. 최연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회전목마에 올라탔다. 강서연은 회전목마의 율동과 몽환적인 음악과 함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남자는 그녀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서로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어 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이 잘 안 풀리는 거야?”“네.”강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최연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 봐.”강서연은 목마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깜빡이며 멀리 있는 대관람차를 바라봤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 쓴웃음을 지었다.“제가 밤을 새워 인터뷰 내용도 짰고, 나석진 씨가 촬영하는 세트장에 가서도 사흘 밤을 꼬박 기다렸는데... 심지어 선배에게 소개해달라고 부탁까지 하고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지만...”“나석진이 아직도 널 안 만나겠대?”솔직히 말해서 최연준은 마음속으로 약간 기뻐하고 있었다.다만 강서연의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나석진에 대한 인상이 더 나빠졌다. “안 만나줘요.”강서연은 좌절했다.“어제 제가 그 집 앞에서 지키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사생팬들한테 얻어맞을 뻔했어요!”“뭐라고?”최연준은
강서연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그러나 별다른 말을 하기도 전에 그 비서가 순간 얼굴이 변하는 것을 봤다.“아이고, 변 기자님!”비서가 카운터에서 급히 뛰어나와 맞이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그 기자한테 알랑방귀를 뀌어댔다. “어쩐 일로 기자님께서 귀한 발걸음을 들이셨습니까? 하하하...”날카로운 웃음소리는 강서연의 심기를 건드렸다.비서가 뛰어가 맞이하는 것을 보고 강서연은 그 기자를 힐끗 봤다. 그 기자는 업계에서 꽤 유명한 선배인지라 많은 스타들과도 친분이 있다.“안으로 들어오세요!”비서는 강서연의 옆을 지날 때 고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깨로 세게 그녀를 밀쳤다.“변 기자님만 기다렸어요. 바로 전에까지만 해도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는 기자가 계속 와서 소란을 피웠어요! 다행히 오늘 우리 석진 님께서 시간이 있어 기자님과의 인터뷰만 기다리고 있어요. 기자님께서 워낙 기사를 잘 쓰셔서 계속 실시간 검색 차트에 올라가죠? 하하하...”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밖에 서 있던 강서연의 손은 이미 주먹이 되어 있었다.최연준은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우리도 가자.”강서연은 그를 따라 나갔다.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아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밀크티 가게 앞에 도착하자 최연준이 그녀에게 물었다.“얼그레이 바닐라랑 민트초코, 어느 거 마실래?”“네?”강서연이 고개를 들자, 그의 사랑이 담긴 눈빛과 마주쳤다.옛날 생각이 난다. 같이 강주에 있을 때였는데 신혼 첫날 그녀가 밀크티를 살 때도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그녀는 웃으면서 메뉴판의 딸기 쥬얼리 밀크티를 가리키며 얼음 많이 추가해달라고 강조했다.지금의 그녀는 마음속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차가운 것 한 잔이 절실히 필요했다!최연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태연하게 밀크티를 사러 갔다. 하지만 사 온 뒤에야 강서연은 이 밀크티가 따뜻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이거...”“찬 거 마시면 안 돼.”최연준이 그녀를 봤다.강서연은 속으로 ‘아직 날짜가 안 됐는데
“그렇군요.”강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최연준은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의 작은 손을 자기 손바닥에 꽉 쥐었다.“잠시 후 이 사람이 당신 데리고 들어갈 거야. 밤을 새워 만든 인터뷰가 헛되지 않게 해줄게.”“네?”강서연은 눈을 크게 떴다.눈앞에 있는 이 중년 아저씨는 순박하고 선량해 보여 전혀 연예계에 발을 들인 사람 같지 않았다.“걱정하지 마.”최연준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하 매니저는 경험이 많아.”밀크티를 다 마시고 강서연은 다시 나석진의 작업실 앞에 왔다.그녀는 심호흡하고 천천히 걸어 들어가 비서랑 눈이 마주쳤다.“진짜.”비서가 간식을 먹으면서 비웃었다.“왜 껌딱지처럼 떨어질 줄 모르세요. 석진 님의 스케줄은 다 차서 시간이 없다니깐요. 빨리 나가세요.”“방금 어떤 기자분이 들어가는 걸 제가 봤어요.”강서연은 비굴하지 않았다.“게다가 저는 그냥 시간만 예약하고 싶은 거예요.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석진 님께서 저에게 인터뷰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어요...”“당신이 변 기자와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비서는 눈을 부릅뜨고 조롱하듯이 바라봤다.‘당연히 비교가 안 되겠지. 그 사람은 유명 기자인데.’강서연은 입술을 깨물었다.“잠깐만요, 나 배우는 자기 작업실에 이렇게 사람을 차별하는 비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요?”“만일 나 배우께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나 배우의 인품도 좋지 않다는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럼, 이 인터뷰는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나 배우께서 모른다면 참 불쌍하네요.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열심히 달려왔는데 비서 하나 잘못 둔 탓에 자기 이름에 먹칠하겠어요!”“너...”비서가 화를 내려고 하자 멀리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 매니저님!”그 사람은 강서연 옆에 있던 중년 아저씨를 향해 달려갔다. 아저씨도 다정하게 웃었지만, 그 사람의 포옹을 거절하고 악수만 했다. 강서연은 이 상황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방금 달려 온 사람은 신분이 좀 있는 것으로
박철의 얼굴빛은 어둡게 변했고 땀방울이 이마에서 뿜어져 나왔다.비서는 옆에서 벌벌 떨고 있었는데 박철이 그녀를 향해 소리 질렀다.“너 당장 여기로 안 튀어와!”그녀는 두 다리에 힘이 풀려 테이블을 잡고 서 있기도 힘든데 그들 앞에까지 걸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박 매니저님...”비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강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조금 전에 곤란하게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단한 분인 줄은 생각지 못했다.하 매니저도 그녀 앞에서 깍듯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니!“너 방금 무슨 헛소리를 한 거야?”박철은 그녀에게 호통을 쳤다.“저... 아니에요...”“내 앞에서 감히 거짓말을 지껄여?”박철은 그녀를 째려봤다. “나석진이 무명 시절부터 오늘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더라도 나석진은 종래로 거들먹거린 적이 없고 사람을 깔본 적이 없어! 그런데 이런 분 곁에 너 같은 사람이 있다니! 너무 위험한 일이지...”“그렇죠.”하 매니저가 웃었다.“우리 서연 님을 만나서 다행이지, 다른 기자였으면 어떻게 과장해서 기사를 썼을지 모르겠어요.”박철은 더 많은 식은땀을 흘렸다.나석진과 함께 오랜 시간을 같이 연예계를 보낸 사람으로서 언론의 위력을 잘 알고 있다.이 기자들은 한 사람을 천국에 올려놓을 수도 있고 반대로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서연 님, 정말 죄송합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비하하던 비서가 순식간에 공손해졌다. 그녀는 강서연 앞으로 한걸음에 달려가 연신 사과했다.“제가 눈이 멀었어요. 저에게 한 번만 다시 기회를 주세요.”“제가 기회를 드린다고 해도 아마 석진 님은 용서 안 해줄 거예요.”강서연도 방법이 없다.“죄송하지만 저는 착한 사람이 아니고 마음씨도 콩알만 해요. 저는 그냥 제 일을 잘하고 싶을 뿐인데 당신이 먼저 저한테 시비를 걸어서 제 마음도 불편하네요. 어떻게 처리 할지...”강서연은 돌아서 박철을 봤다.“그쪽 작업실 내부 일이니 저는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그녀가 아직 마음껏 흥분하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익숙한 품에 안겼다.강서연은 정신을 차리자, 그의 깊은 눈동자와 마주쳐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 기사를 내보내면 분명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갈 수 있다고 확신했고 그러면 승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셋째 도련님은 참으로 그녀의 귀인이구나!그녀는 환하게 웃었고 까치발을 들어 그의 목을 껴안고 얼굴에 뽀뽀했다!최연준은 원래 그녀의 ‘죄’ 를 물으러 온 것이다.그런데 갑작스러운 열정에 어쩔 줄 몰라 하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그래?”“왜요?”강서연은 눈을 크게 떴다.“뽀뽀하면 안 돼요?”최연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뭐가 그렇게 심각해요?”그녀는 작은 손으로 그의 얼굴을 만지면서 좌우로 훑어봤다.“일부러 여기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회사에 가서 잔업 해야 하는데... 바로 기사를 써서 매니저에게 컨펌받고 발표할 거예요. 제가 원고료를 받게 되면 꼭 보답할게요.”그녀는 얼굴이 붉어졌고 목소리도 점점 낮아졌다.“원하는 대로 보답해 줄게요.”그녀의 수줍은 모습이 매우 유혹적이었다. 최연준은 그녀에게 매혹되어 자신이 여기에 와서 그녀를 막으려는 목적을 잊을 뻔했다.그는 두 번 기침하더니 정신을 차렸다. 웃음을 거두고 다시 엄숙한 말투로 물었다.“고맙다는 인사는 나중에 하고... 물어볼 게 있어.”“물어볼 거요?”“나석진이 당신이랑 나랑 무슨 사이냐고 물었다며?”강서연은 인터뷰 과정을 다시 돌이켜봤다.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기자가 취재 대상과 미리 잡담을 나누는 것이 보통인데, 아마 그녀가 나석진과 잡담을 나누던 중에 이 질문을 하게 된 것 같다.“어떻게 대답했는데?”최연준이 물어봤다.강서연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신...”최연준은 마음이 쓰렸다.그의 요구는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지 그녀의 곁에서 명분이 있기를 바랄 뿐이지 않은가
‘진짜, 왜 또 이러는 거야.’강서연은 어두워진 그의 얼굴을 보고 은근슬쩍 디스를 했다.‘예전에는 성격이 좋았는데. 요즘 따라 점점 더 변덕스러워진 것 같기도 하고.’강서연은 마치 뼈가 없는 듯 작은 몸을 전부 그에게 기대었다. 그녀의 달콤한 향기가 그의 콧속으로 파고들었다.최연준은 의지가 점점 떨어지고 화냈던 성질도 없어졌다.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석진이 우리의 관계에 관해 물어본 건 사실이에요. 그건 하 매니저가 저를 데리고 들어간 거를 봐서 물어본 거겠죠. 하 매니저가 연준 씨 사람이기도 하고 시작하기 전에 최상에서 영화를 투자한다는 얘기도 주고받았어요.”“응.” 최연준은 답답하게 소리만 냈다.이것은 최연준이 이렇게 말하라고 시킨 것이다.일단 이렇게 말하면 강서연의 신분을 끌어올릴 수 있고, 작업실 사람들도 그녀를 우습게 보지 않을 것이다.두 번째 이유는 그와 강서연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도 있었다.나석진은 당연히 숨어있는 뜻을 알아챘을 것이고 그중의 이해관계를 생각했기 때문에 인터뷰 도중에 그녀한테 물어본 것이다.‘그런데 이 여자는 어떻게 대답했지?’“저한테 물어봤을 때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강서연은 미안한 듯 그를 향해 웃었고 곧이어 변명했다.“인정하지 않았지만 부정하지도 않았어요!”“응.”최연준은 생각이 있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고?”“네!”강서연은 머리를 끄덕였다. “생각의 공간을 남겨줬어요.”“당신...”최연준은 인내를 끌어올리며 어금니를 눌러 튀어나오려는 분노를 내리눌렀다.‘지금 이렇게 변명하다니! 공간을 남겨둬 상상하라고?’강서연은 지금 상황이 자기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은 것을 보고 그의 팔짱을 끼고 앙탈을 부렸다. 그의 옆에 기대여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잘못을 인정했다.“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약간의 허영심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게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연준 씨 덕분에 인터뷰하였다고 생각하는 게 싫어요.”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약간 겁먹은
“당신...”‘정말 가지가지 하구나.’강서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이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니 어쩔 수 없다.그런데 이 남자는 정말 투시력이 있지 않은 이상 어떻게 매번 그녀의 월급 날짜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을까?그녀는 대범한 듯 웃으며 월급 카드를 꺼냈다. 그 안에 돈이 들어간 지 얼마 안 됐는데 곧...“그렇지. 이래야지.”최연준은 손을 뻗어 카드를 가져가려고 했다.강서연은 갑자기 손끝에 힘을 주더니 그 얇은 월급 카드를 악착같이 쥐고 놓지 않았다.최연준은 이 모습이 너무 웃겨 웃음을 터뜨리기 전에 재빠른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월급 카드를 빼앗아 왔다.“빨리 가져와!”그는 승리자처럼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나를 먹여 살린다고 했잖아!”“연준 씨,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강서연은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저보다 훨씬 부자시잖아요. 그러면서 저보고 먹여 살려주라니...”“씁...”최연준은 갑자기 위를 움츠리고 몸을 구부리더니 표정이 고통스러워 보였다.강서연은 너무 놀라서 급히 그에게 물었다.“왜 그래요?”“내가 위 안 좋다고 말 안 했었나?”“아니요...”“지금 조금 아파.”그가 고통스러워하자 강서연도 함께 아파했다.“많이 아파요?”그녀는 그를 부추겼다.“제가 방 비서님을 불러올게요, 병원 가세요.”“괜찮아, 전에 병원 가봤어.”“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했어요?”“의사가 나한테 위를 잘 보호해야 한다고 했지.”그는 그녀를 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강서연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을 봤을 때 위를 잘 다스릴 필요가 있어 보였다.“하지만 치료할 방법이 있대.”“뭔데요?”그녀는 희망이 보인 듯했다.최연준은 그제야 악마의 발톱을 드러냈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위가 안 좋으니, 여자를 등쳐먹고 살 수밖에 없지. 여자가 사준 밥이 더 맛있다고...”“...”“최연준!”그녀는 자신이 또 그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발을 동동 굴렀다. 자신의 월급 카드를 낚아채려
최연준은 정신을 차리고 나서 먼저 강서연을 회사로 돌려보내라고 방한서에게 말했다.여주 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영국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영국은 지금쯤 새벽 시간이다. 전화 속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는데 틀림없이 김자옥은 이미 하루를 바쁘게 시작했을 것이다.“어머니.”최연준은 예의 갖춰 말했다.“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나 지금 공항이야. 10시간 후 오성에 도착하니 공항에 마중 나오는 사람 보내줘.”“네?”그는 깜짝 놀랐다.“왜, 내가 가면 안 돼?”“당연히 아니죠.”최연준은 바로 마음을 진정시켰다.부모님이 이혼한 뒤로는 어머니가 오성에 오는 일은 드물었다. 어릴 적부터 살던 곳이 아니고 전남편 집에 대한 안 좋은 기억도 갖고 있다. 자식이 여기 있더라도 김자옥의 성격으로는 아들 때문에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어릴 때부터 최연준이 영국에 가는 횟수가 더 많았다.지금 김자옥이 갑자기 오성에 온 것은 아마도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최연준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어머니께서 이번에 저 때문에 오려고 하는 거예요?”“너도 알고 있네.”김자옥이 웃었다.“최진혁이 내가 지금 안 오면 바로 손주 보게 된다고 얘기하더라.” 최연준이 냉소했다.“삼촌이 어머니 앞에서 헛소리 지껄이는 거예요.”“어머니도 삼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잖아요! 삼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돼요.”“여자 있는 건 사실이지?”김자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최연준의 손가락은 전화기를 너무 꽉 쥐고 있어 핏줄이 튀어나왔다. “이 일을 숨길 생각은 없었어요. 저는 그 사람을 많이 사랑해요. 얼마 전에 우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서... 이제 오해가 풀렸으니 날 잡아서 영국에 데려가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삼촌의 입이 가벼워서 뒤에서 먼저 알려드릴 줄은 몰랐어요.”“연준아.”김자옥은 잠시 말이 없었다.“비록 나는 최씨 집안 사람들과 엮이기 싫고 더 이상 최씨 집안의 며느리도 아니지만,
경찰서 밖에서 최지용은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젊은 경찰관이 안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최지용은 급히 다가가며 말했다.“정호야!”정호라는 젊은 경찰관은 최지용을 보자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 녀석!”최지용은 정호에게 다가가 가볍게 주먹을 툭 날리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거야?”정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방금 최씨 집안에서 백인서를 데려간 사람 중에 정호도 있었다. 최지용도 놀라웠지만, 영미 역시 경찰이 직접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떠나기 전, 정호가 살짝 눈짓을 보냈고 최지용은 그의 의도를 알아채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지용이 형.”정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형수님께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분하고 계시니 문제없을 겁니다!”“도대체 누구 지시로 백인서를 여기로 데려온 거지?”“소아 아가씨예요!”정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소아 아가씨가 갑자기 지시한 거라 사전에 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최지용은 살짝 놀랐다. 강소아의 지시라니.“형수님께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 아이가 실종되기 전에 형수님께서 만난 적이 있거든요. 경찰이 형수님을 데려가서 조사하는 건 당연한 절차입니다.”최지용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피식 웃음을 지었다.강소아가 이런 ‘당연한 절차’를 이용해 백인서를 경찰서로 보낸 이유는 경찰서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또 누군가가 음모를 꾸며 백인서에게 덮어씌우려 한다 해도 경찰서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경찰서 안에는 일을 봐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백인서가 여기서 며칠 지내는 동안 힘든 일 없이 외부의 소란도 피할 수 있는 셈이었다.최지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강소아는 정말 자매를 위한 배려가 남달랐다. 이렇게까지 배려심 깊은 방안을 생각해 내다니!“지용이 형.”정호가 계속해서 말했다.“도련님께서
영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소아 언니, 저를 믿지 않으세요?”“난 오직 사실만을 믿어.”“권씨 가문의 딸이 실종된 사건에 백인서 씨의 양아버지와 남동생이 관련되었어요, 그게 바로 사실이에요!”강소아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려 했다.세상에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호텔 뒷뜰에 있는 그 CCTV가 정말 완전히 고장 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육씨 가문과 최씨 가문이 힘을 합쳐 그 고장 난 CCTV 하나도 못 고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최군형은 강소아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안심시키며 슬며시 휴대전화를 건넸다.강소아는 화면을 확인했다. 최군형의 부하가 보낸 메시지였다.“도련님, CCTV 데이터를 복구 중입니다. 곧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강소아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영미가 이렇게까지 백인서를 몰아세우는 걸 보니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꺼림칙한 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어차피 꼬리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었기에 그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바로 그때, 집사가 다소 당황한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 집사의 뒤에는 몇 명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방 안을 둘러보며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기 백인서 씨가 계십니까?”표아정은 등을 꼿꼿이 펴고 대답했다.“경찰관님께서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당신이 백인서 씨인가요?”“저는...”“백인서 씨가 납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신고를 접수했습니다!”“뭐라고요?”백인서는 얼굴이 창백해졌다.“백인서 씨, 조사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권온유가 납치된 지 하루가 지났다.그동안 정대명은 단 한 번 음식을 가져왔는데, 그것도 차갑게 식은 죽 한 그릇과 딱딱한 빵 한 조각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귀하게 자란 권온유에게 이런 음식은 처음이었다. 울고 싶었지만, 감히 울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참으며 빵을 조금씩 뜯어 먹고 있었다.정승우는 그런 온유의 모습을 보고
“아줌마,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그럼, 제가 알아낸 사실을 전부 말씀드릴게요!”영미는 입가에 교만한 미소를 띠며 백인서를 차갑게 한 번 쳐다보았다.“백인서 씨의 친어머니인 백홍은 인신매매범이었다는 사실, 모두 아셨나요? 백인서 씨의 어머니는 백인서를 정대명의 집에 맡겼고... 흥! 정대명의 아내도 백홍이 납치해 왔다는 소문이 있어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잖아요. 제 생각엔... 인신매매범의 딸이라면 그런 일쯤은 익숙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권온유의 실종이 정말로 백인서 씨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나요?”“영미!”강소아가 나서며 분노를 가득 담아 소리쳤다.“허위 사실을 퍼뜨리지 마!”“소유 아가씨, 억울하네요!”영미는 강소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이렇게까지 조사한 건 다 아가씨를 위한 거예요! 딸도 있는 사람이 백인서를 곁에 두고도 마음이 놓이세요?”“그만해!”최지용이 크게 소리쳤다.백인서는 몸을 떨며 믿기지 않는 눈으로 최지용을 쳐다보았다.그러나 최지용의 얼굴에는 의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최지용은 굳건한 눈빛으로 뒤에 있는 백인서를 지키고 있었다.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백인서를 아끼고 있었다.백인서는 코끝이 찡해지며 본능적으로 최지용의 손을 꼭 붙잡았다. 최지용의 따스한 손은 백인서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그 온기가 어둠의 두려움을 잊게 해주었다.최지용은 백인서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였고 다시 영미를 바라볼 때는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영미야.”최지용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두 집안의 관계를 생각해서 그저 넘어가는 거야. 더 이상 선을 넘지 마.”최군형도 나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백인서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모르겠어요? 영미 아가씨, 우리 최씨 가문 사람들을 바보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영미는 순간 긴장했다. 최군형의 말 속엔 어딘가 숨은 뜻이 있는 듯했다.최군형의 깊고 복잡한 눈빛을 파악하기 어려웠다.표아정은 천천히 일어나 어깨에 걸친 숄을
백인서는 복잡한 눈빛으로 최지용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그때 최지용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표아정이었고 다급한 목소리로 서둘러 돌아오라고 재촉했다.최지용은 결국 어머니의 말에 따라 백인서를 데리고 최씨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넓은 거실에는 최군형과 강소아도 나와 있었고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백인서가 들어서자, 표아정이 백인서를 올려다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다.강소아는 백인서와 눈을 마주치며 단호하게 미소 지었다.백인서가 의아해하던 찰나, 영미가 천천히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아줌마, 지용 오빠. 제가 권온유의 행방을 알아냈어요.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뭐라고?”최지용이 놀라서 물었다.“네가 어떻게 아는데?”영미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지용 오빠,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정보가 우리보다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최씨 가문은 만능이 아니에요, 최씨 가문도 모르는 정보가 있다고요.”표아정은 가볍게 기침하며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았다.최군형과 강소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주목하고 있었다.최지용의 이마에는 점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미의 눈에는 한 줄기 교만한 빛이 번졌다.영미는 오는 길에 이미 모든 계획을 짰다. 정대명의 말이 맞았다. 누구를 훔치든 상관없었다. 인신매매범의 딸인 백인서가 아이들을 해치러 다닌다는 누명을 씌우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하면 백인서는 모두의 신뢰를 잃게 될 터였다.영미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강소아가 인신매매범을 곁에 둘 리 없다고 믿었고, 최지용 역시 이 사실을 알면 더는 백인서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영미는 정대명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었다.영미는 권온유를 넘기고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한패가 되어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주장할 계획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백인서는 변명의 여지도 없이 궁지에 몰릴 것이었다!“지용 오빠.”영미는 고개를 돌려 최지용을 바라보며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권온유는 정승
“그... 괜찮아!”정승우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권온유에게 말했다. 정승우는 이곳에서 권온유를 반드시 데리고 나가겠다고 결심했다.그런데 이때, 공장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곧바로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정승우는 재빨리 권온유에게 눈짓했고 권온유도 알아채고는 즉시 땅바닥에 쓰러져 의식이 없는 척했다.정승우는 벽에 기대어 눈을 반쯤 감았다.“이 아이인가요?”영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맞아.”정대명은 영미를 흘깃 노려보며 묵묵히 대답했다.영미는 두 걸음 앞으로 다가서서 희미한 빛 속에 있는 아이를 살펴보더니, 곧 얼굴빛이 확 변했다.“이 아이... 혹시 권씨 집안의 막내딸 아니에요?”정대명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애초에 아이를 훔쳐 올 때 이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리가 없었다.“정대명 씨.”영미가 차갑게 웃으며 돌아보았다.“제가 최씨 가문 집안 아이를 훔쳐 오라고 했지, 권씨 집안 아이를 훔치라고 했나요? 이러고도 저를 속이지 않았다고요?”“그게...”정대명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영미 아가씨, 어차피 목적은 백인서를 곤경에 빠뜨리는 거잖아? 그러니 누구를 훔쳐 오든 상관없지 않아? 아이를 훔치기만 하면 유괴범이 되는 거니까.”이 말은 영미에게만 충격을 준 게 아니었다. 정승우의 귀에도 또렷이 들어왔다.“좋아요.”영미는 깊은숨을 들이마신 뒤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이 아이는 잘 지키고 있어요, 제가 다시 연락할 테니까.”...한편, 권씨 집안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권욱은 조순영을 탓하며 아이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했고, 조순영은 오열하며 남편을 원망했다. 조순영은 권욱이 바깥에서 여자와 부적절하게 얽히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했다.“헛소리하지 마! 사람들이 나한테 어떤 소문을 퍼뜨렸는지 잘 알잖아. 결혼 생활 내내 너한테 부끄러운 일 한 적 없어.”“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정말 떳떳하게 행동했다면 왜 사람들이 당신만 가만두지 않는 건데?”며칠 전까지만
권온유의 질문에 정승우는 당황했다.권온유는 커다란 눈망울로 정승우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던 슈퍼맨 같은 오빠가, 이제는 먹을 것 하나 구하지 못하는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정승우는 어색하게 입가를 씰룩이며 권온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갔다.“너, 정말 배고파?”“네!”권온유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듯 작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원래는 엄마랑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했어요. 엄마가 특별히 고등어조림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하셨거든요... 엉엉... 엉엉...”“울지 마, 울지 마! 그냥 생선 하나 가지고...”“나 배고파!”정승우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아이와 대화하는 건 그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겨우 권온유를 달래고 나서 정승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팔을 걷어붙이며 권온유에게 내밀었다.“너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고프면, 여기 한번 물어볼래?”권온유는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정승우를 바라보았다.“우리 집은 가난해서 늘 먹을 게 부족했거든. 그래서 어릴 때 너무 배가 고프면 이렇게 배고픔을 달랠 만한 걸 물곤 했어.”권온유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배고픔을 달랠 만한 것'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정승우는 웃으며 계속 설명했다.“예를 들어 쌀통 같은 거야. 한때 쌀이 들어 있던 쌀통은 비어 있어도 쌀 냄새가 남아 있거든. 그래서 쌀통 가장자리를 살짝 물면서 하얀 쌀밥을 먹는 상상하는 거야. 그러면 배가 덜 고파져.”“그리고 이웃집에서 밥하는 냄새를 맡으며 그 밥을 먹는 상상을 하는 거야. 그러면 그렇게 배고프지 않더라고.”권온유는 정승우의 이야기에 넋을 잃고 입을 벌린 채 있었다. 정승우는 웃음을 터뜨렸다.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한때 정대명이 도박과 술에 빠져 정승우를 굶겼던 시절은 그야말로 비참한 순간들이었다.잠시 후, 권온유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고 정승우는 속으로 ‘큰일이다'라고 생
영미는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최지용을 지켜보았다.최지용은 다소 초조한 기색으로 구석에 앉아 휴대전화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 전화를 걸기도 했다.영미는 바로 뒤를 따라갔고 최지용의 낮고 다급한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찾았습니까?”“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세요... 만약 납치범의 목적이 돈이었다면 분명 전화를 걸어올 겁니다!”영미의 가슴이 철렁하며 내려앉았다.납치범이라니? 대체 뭘 찾는다는 거지?백인서와 통화한 걸까?그때, 최군성이 큰 소리로 외쳤다.“지용이 형, 여기서 뭐 해요?”영미는 얼른 몸을 숨겼고 최군성은 최지용에게 다가가 최지용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우리 형이 찾고 있었는데 여기서 뭐 하고 있었던 거예요? 어서 와서 먹고 즐기자고요!”최지용은 최군성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며 영미와 눈이 마주쳤다. 둘은 동시에 잠시 멈칫했다.영미는 급히 시선을 피하며 억지 미소로 인사했다.“지용 오빠...”“어, 영미?”최군성도 배윤아처럼 물었다.“여기 웬일이야? 형님이 널 초대한 것 같지 않은데?”“그게...”영미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최군성은 영미의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최지용을 끌고 가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최지용은 점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영미가 도대체 여기 왜 있는 거지?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사람이, 왜 하필 오늘 온유가 사라진 날에 나타난 걸까?그때, 최군형과 강소아가 가원이를 품에 안고 나타났다.강소아는 아이를 보행기에 앉혔고 아이는 보행기 가장자리를 잡고 작은 발을 내디뎠다. 이 모습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다.영미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자리를 떠 교외의 버려진 공장으로 향했다.그 시각, 정대명은 영미의 지시에 따라 승합차를 몰고 공장에 도착해 있었고 영미가 도착했을 때 그는 공장 문 앞에서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영미는 핸드백을 휘둘러 정대명에게 던졌다.“정대명 씨, 감히 날 속여
“너 따위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정대명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결국엔 자기 아들이었기에 정승우에게 감출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때리고 꾸짖어도 떠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정대명은 서랍에서 가위를 꺼내 들고는 권온유의 양 갈래머리를 단칼에 잘라냈다. 머리카락이 천천히 바닥에 떨어졌다.정승우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다가 막아서려는 순간, 자신과 정대명 사이에 힘의 격차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작정 나섰다가는 역부족일 터였다.정승우는 이를 악물고 정대명에게 다가가 물었다.“아빠, 정말 이 아이를 팔 생각이에요?”“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영미라는 그 여자가 원하는 거야!”정대명은 불만스레 대꾸하며 정승우에게 옷장에 있는 헌 옷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정승우가 옷을 가져오자, 정대명은 손을 뻗어 권온유의 예쁜 드레스를 찢으려 했다. 정승우는 급히 소리쳤다.“뭐 하는 거예요!”“이 자식이!”정대명은 정승우를 노려보며 소리쳤다.“조용히 해! 죽고 싶어?”“아빠, 이건...”“이 애한테 옷을 갈아입히려는 거야! 이렇게 좋은 옷을 입고 있으면 바로 눈에 띄잖아.”정승우는 다가가 정대명을 옆으로 밀치며 말했다.“제가 갈아입힐게요!”“이놈이...”정대명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 피식 웃었다. 그는 정승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아하, 아빠를 도와주고 싶구나? 역시 아들은 아들밖에 없지! 그래, 네가 손이 빠르니까 빨리 옷을 갈아입혀. 둘이 함께 가자고!”정승우는 속으로 혐오감이 치밀었지만, 지금은 그저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하는 수밖에 없었다.정승우는 권온유의 드레스를 벗기지 않고, 정대명의 헌 옷을 위에 입혀 단단히 감쌌다. 그런 다음 모자를 씌워 얼핏 보면 남자아이처럼 보이게 했다.“좋아, 이 정도면 되겠어!”정대명은 정승우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뒷문에 승합차가 준비돼 있대. 어서 출발하자!”“아빠, 이 소녀는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예요?”“교외지!”정대명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빨리 움직
권온유는 깜짝 놀라며 정대명을 멍하니 쳐다보았다.“아저씨가 맛있는 걸 가지고 왔단다. 배고프지 않니?”권온유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달아나려 했다. 정대명은 급히 권온유 앞을 가로막았다.“아니, 가지 마!”정대명은 두 손으로 권온유를 꼭 붙들며 말했다.“그게... 네 엄마가 나한테 너를 데려오라고 부탁했어!”엄마라는 말을 듣고 권온유는 잠시 멈칫했다.“정말이야, 네 엄마가 부탁한 거라니까!”정대명은 거짓말을 이어갔다.“방금 네 엄마가 갑자기 어디론가 가버렸지? 너 보고 기다리라고 했잖아?”“네... 맞아요.”“그래!”정대명은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네가 여기저기 막 돌아다녀서 엄마가 널 못 찾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엄마는 내가 여기 있는 걸 알 거예요. 저는 여기서 조금 놀다가 다시 휴게실로 돌아갈 거예요!”“오... 그렇구나.”정대명은 잠시 생각을 굴렸다.“아저씨가 휴게실이 어딘지 아니까, 내가 데려다줄게!”권온유는 경계하며 정대명에게서 몸을 빼내고 두 걸음 물러났다.“얘가! 난 정말로 네 엄마 친구라니까. 네가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엄마가 널 못 찾게 되면 걱정하지 않겠어? 맞지?”“자, 자! 아저씨가 데려다줄게. 착하지!”정대명은 권온유를 갑자기 붙들어 어깨에 둘러맸다. 권온유는 본능적으로 소리치려 했지만, 정대명의 손이 입을 단단히 막고 있어 소리를 낼 수 없었다.어린 소녀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른 남자를 이길 수는 없었다. 정대명은 권온유의 머리 뒤쪽을 세게 내리쳐 기절시켰고, 온유가 들고 있던 인형은 땅에 떨어졌다....정승우는 익숙하게 호텔로 와서 지난번 일을 핑계로 다시 정대명에게 돈을 뜯어낼 생각이었는데, 방 안에 기절한 어린 소녀가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어른 일에 참견하지 말고 신경 꺼!”정대명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방금 정대명은 온유를 데려오며 보안과 호텔 직원의 눈을 피하고자 아이를 어깨에 메고 가지 않고, 자신의 아이인 것처럼 속여서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