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씨 아줌마는 무슨 일이 있는지 몰랐지만 육연우의 질문을 듣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전화를 끊고 나자 육연우는 최군성이 분명 배윤아의 조언을 들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최군성이 갑자기 립스틱을 사 왔을 리가 없었다.불안한 육연우의 마음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여자들과 거리를 두겠다는 말도 평소의 최군성이라면 절대 꺼낼 리 없는 말이었다. “분명히 배윤아야...” 휴대전화를 꼭 쥔 육연우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다. 육연우의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배윤아가 최군성을 만나 무언가를 말했음이 분명했다. 배윤아의 말은 잘 기억하고 잘 따른다고 육연우는 생각했다. 육연우의 가슴이 답답해졌고 눈물이 갑자기 쏟아져 나왔다. 육연우는 최군성이 선물한 화장품을 바라보았다. 상자 안에 가지런히 놓인 립스틱들이 마치 붉은 눈동자처럼 자신을 비웃고 있는 듯했다. 마치 육연우의 열등감을 조롱하고 떳떳하지 못한 출신을 깔보는 듯했다.그나마 남아 있던 마음속의 안정감마저 산산이 부서졌다. “아!” 육연우는 갑자기 두통을 느끼며 손을 들어 화장품 상자를 뒤엎었다. 바닥으로 쏟아진 립스틱들은 육연우의 격한 발길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최지용은 육씨 부동산의 판매 홀을 방문했다.백인서에게 립스틱을 전해주려고 온 것이다. 하지만 멀리서 백인서가 셔츠에 정장을 입고 이름표를 달고 판매원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백인서가 어떻게 판매하는지 궁금해진 최지용은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한참을 관찰한 후, 최지용은 백인서가 왜 한 달 넘도록 성과가 없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그 이유를 깨달은 최지용은 웃음을 참으며 문 앞에서 백인서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하루 종일 서 있던 백인서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고 한 건도 팔지 못한 상태로 뻣뻣해진 목을 주무르며 건물을 나서고 있었다. 갑자기 큰 손이 백인서를 잡아당겼다. 본능적으로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고개를 들자 달빛처럼 부드러운 눈동자와
“제가 고객인 척할 테니 저한테 연습해 보는 건 어때요?”최지용은 말하는 도중 서서히 귀 끝이 붉어졌다.최지용은 육자 그룹 판매부의 동혜림이 고객을 어떻게 대하는지 본 적이 있었다. 최지용은 그런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만약 백인서가 동혜림처럼 자신에게 다가온다면...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설렐 것 같았다.백인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조용히 물었다.“그런 것도 연습이 될 수 있어요?”“그럼요, 물론이죠!”최지용은 머릿속으로 고민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판매는 기술과 연습이 결합한 거예요. 지금 기술이 부족하고 연습도 부족하니까 성과가 없는 거죠!”“인서 씨.”최지용은 감정에 호소하며 말했다.“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아 씨를 생각해서라도 연습해야죠. 물론 소아 씨는 육자 그룹의 작은 대표님이지만 이사회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소아 씨가 소개한 사람이 성과를 못 내면 이사회에 있는 늙은이들이 그걸 빌미로 문제 삼지 않겠어요?”그 말은 백인서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그렇다, 백인서는 처음에 육자 그룹에 들어올 때 언니의 명예를 높이고 육경섭이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게 하고 싶었다.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남들 못지않게 열심히 일하고 매일 야근했는데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이러면서 어떻게 언니에게 자랑이 되겠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백인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연한 눈빛으로 최지용을 바라보았다.“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최지용은 헛기침하고는 마치 계획이 있는 듯 거실을 천천히 걸었다.“동료분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봤어요?”백인서는 생각에 잠겼다. 동혜림은 고객을 보면 마치 굶주린 늑대가 먹이를 향해 달려들 듯이 행동했다. 특히 돈 많은 남자 고객을 보면 몸을 온통 그들에게 맡기는 것처럼 보였다.이게 성공적인 판매원의 모습인가?최지용은 이 설명을 들으며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최지용은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백인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제 생각엔, 그것 또
“최지용 씨...”백인서가 몸을 돌려 말을 꺼내려는 순간, 갑자기 뜨거운 입맞춤이 백인서의 입술을 덮었다.백인서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머릿속이 하얘지며 전신을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최지용은 말없이 백인서를 끌어안으며 백인서의 입술에서 퍼지는 향기에 취해 부드러움에 몰두했다.이 아파트는 최지용이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곳이었다.이 키스 또한 오랜 시간 준비된 것이었다.사실 최지용의 원래 계획은 백인서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을 때 이 방에서 키스하는 것이었다.하지만 방금 백인서가 최지용을 카펫 위에 쓰러뜨리던 순간, 최지용의 내면에 잠재된 불꽃이 타올랐다.더는 참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이 이제는 폭발할 것만 같았다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최지용은 바로 오늘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최지용은 매우 열정적으로 키스를 했지만 기술적으로 서툴렀다. 백인서는 심지어 약간 아프다고 느낄 정도였다.처음에는 저항하던 백인서도 이내 최지용의 리듬에 맞춰 조심스레 응답하기 시작했다. 백인서의 작은 손이 최지용의 넓은 어깨를 타고 올라가며 무의식적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최지용의 심장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인서 씨...”최지용은 백인서의 입술에서 아쉬운 듯 떨어져 나와 진지하게 백인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인서 씨를 많이 좋아해요.”백인서는 고개를 숙인 채 긴장해서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인서 씨는요?”최지용은 백인서에게 물었다.“인서 씨도 제가 좋은 거죠, 그렇죠?”“이미 알고 있잖아요.”백인서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최지용은 큰 승리를 맛본 듯 환하게 미소 지었다.백인서는 처음으로 최지용에게 적극적으로 기댔다.그리고 처음으로 진정한 안식처가 있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깨달았다.*다음 날, 백인서는 정시에 판매 홀로 출근했다.사람들 모두 백인서를 보며 약간 놀란 듯한 눈빛을 보냈다.백인서가 미인이란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늘 검은
백인서와 주우남은 동시에 멍해졌다.멀리서 동혜림이 경쾌하게 허리를 흔들며 다가왔다.아직 동혜림이 가까이 오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강한 향수가 진하게 퍼졌고 백인서는 그 자극적인 냄새에 코를 찡그렸다.“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건 아니잖아!”동혜림은 비웃듯 백인서를 한번 훑어보며 말했다.“백인서, 안 그래?”백인서는 차가운 눈빛으로 동혜림을 바라봤지만 침묵을 지켰다. 이때 주우남이 웃으며 말했다.“재클린, 아파트 판매는 잘 되고 있어? 이번 달 목표는 아직 못 채운 것 같은데?”“주 언니, 그건...”“솔직히 말해봐. 내가 매달 너에게 주는 목표가 많아?”주우남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런데도 넌 어떤 방식으로 목표를 달성했는지 너도 잘 알잖아. 오직 관계에 의존하면서 영업한다면 오래 못 갈 거야.”동혜림은 눈을 치켜떴다.육자 그룹의 이사는 주우남보다 훨씬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지만 주우남은 동혜림의 직속 상사였다.게다가 그 이사와의 관계는 절대로 드러내선 안 되는 비밀이었다.동혜림은 불쾌하게 콧방귀를 뀌며 발을 굴렀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러나 주우남이 계속해서 백인서에게 말했다.“아까 다 못 한 말이 있어. 여자가 자신을 잘 꾸미는 것은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서지 남자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부도덕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더욱 아니야!”“주 언니, 지금 누구 얘기하는 거예요?!”동혜림이 되돌아와 눈을 부릅뜨며 크게 소리쳤다.“왜 그래?”주우남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너라고 말한 적 없는데 왜 그렇게 흥분하는 거야?”“주 언니는 분명히...”동혜림은 말하다 중간에 멈췄고 화난 얼굴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주우남의 통제만으로도 짜증이 났는데 이제는 백인서까지 화를 돋우고 있었다.주우남은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만하고 각자 할 일 하자! 오늘은 모두 좋은 실적을 내길 바랄게.”동혜림은 분노에 찬 눈길로 백인서를 노려보았다.그러나 백인서는 동혜림을 아예 쳐다보지도
“육 아가씨.”주우남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육자 그룹이 결코 한 사람의 말로 운영되는 회사가 아니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육 아가씨의 권한으로는 임의로 직원을 해고할 수 없습니다!”육연우는 주우남을 올려다보며 주먹을 꽉 쥐었고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육연우도 오늘 여기 온 것이 조금 무리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동혜림이 계속해서 육연우를 육자 그룹의 주주이고 회장님의 친조카이니 못 할 일이 없다고 부추겼고 육연우도 백인서를 쫓아내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게다가 오늘 강소아가 회사에 없었기 때문에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평소 조용하던 주우남이 이렇게까지 육연우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주 팀장님.”동혜림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주 팀장님도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사람이면서 왜 이러세요? 육 아가씨는 대표님의 친조카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거역할 생각인가요?”“육자 그룹은 현대적인 기업이지 가족 경영을 하는 작은 가게가 아닙니다. 어떤 일도 한 사람의 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주우남은 동혜림을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그리고 이 일에 네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동혜림은 눈을 굴리며 육연우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한 사람의 말로 결정되지 않는다?”육연우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주 팀장님, 백인서가 처음 회사에 들어올 때 채용 절차를 거쳤습니까? 이사회가 동의했나요?”“그런 절차도 없었고 실적도 내지 못한다면 육자 그룹이 왜 계속 고용해야 하나요?”주우남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그러니 내보내는 게 맞습니다.”육연우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남은 절차는 인사부에서 처리할 거고 모든 것은 규칙대로 진행하세요.”“육 아가씨께서 모든 것을 규칙대로 처리하라고 하신다면.”주우남이 말했다.“그렇다면 규칙에 따라 육 아가씨는 회사의 주주로서 배당에만 참여할 수 있고 경영 문제에는 개입할 권한이 없습니다.”“뭐라고요?”“육 아가씨가 대표님의 친조카이
“저예요.”동혜림은 서둘러 명함을 내밀었다.“배 아가씨, 저는 여기서 골드 판매원입니다. 이 집들의 모든 타입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저에게 할인도 있으니 만족하실 겁니다.”주우남은 동혜림을 한 번 흘겨보더니 무시하고 다른 일을 하러 돌아섰다.육연우는 옆에 서서 두 손으로 가방끈을 꽉 잡고 힘주어 문지르며, 눈을 크게 뜨고 배윤아와 백인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육연우는 배윤아가 동혜림에게 미소를 짓고 있지만 백인서의 손을 계속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리고 배윤아가 동혜림을 쉴 새 없이 부려 먹는 것을 봤다. 배윤아는 어떤 브랜드의 생수를 마시고 싶다고 하거나 다른 브랜드의 티슈를 써야 한다고 했는데 판매센터에는 그런 물건들이 없었다.동혜림은 이 재벌가 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허둥지둥 밖으로 뛰어나가서 물건을 사 왔다.육연우 옆을 지나칠 때는 마치 보지 못한 듯했다.육연우는 입술을 꽉 물고 마음속의 매듭이 더욱 꼬여가더니 결국 가슴 속에 한 덩어리가 되어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배, 배윤아씨...”백인서는 배윤아를 보며 말할 듯 말 듯했다.“그렇게 부르면 너무 서먹서먹해. 그냥 윤아라고 불러줘.”백인서는 잠시 멍해졌다. 배윤아의 순수하고 깨끗한 미소를 보며 갑자기 강소아가 떠올랐다.둘 다 같은 사람이었다. 웃을 때면, 그 눈에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반사되는 것 같았다.“동혜림이 없을 때 여기 집에 대해 좀 설명해 줘.”“제가요?”“맞아.”배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람은 너무 시끄러워서 내가 싫어하니까 멀리 보냈어.”백인서는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말했다.“작업실로 사용할 거라면, 너무 큰 집은 추천하지 않아요. 이런 작은 유형의 로프트가 아주 가성비가 좋아요. 인테리어도 완비되어 있고 방향도 좋고 바다 전망도 있어서 바다를 보며 작업하면 영감이 더 잘 떠오를 거예요.”배윤아는 미소를 지었다.“다들 큰 집을 팔려고 애쓰는데 당신은 내 돈을 아껴주네.”“저는 적합한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백인서는 진지
이름이 금수만화란 배윤아의 작업실은 이미 자리를 잡았고 곧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작가, 편집자, 운영, 심지어 행정과 재무까지 모두 배윤아 혼자가 담당하고 있었다. 배윤아는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바빴고 멀리 해외에 있는 배현진은 도와주고 싶었지만 여력이 없어 최씨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어 돌봐달라고 부탁했다.최군형은 최상그룹을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이 중책은 별일 없는 최군성에게 떨어졌다. 작은 새끼 고양이들은 점점 자랐고 배윤아는 작업실에 그들을 위한 새로운 집을 마련해 주었다. 배윤아는 고양이들과 함께, 컴퓨터와 그림판을 지키고 막 끓인 커피의 향기가 퍼져 나오는 가운데,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최군성이 처음 작업실에 왔을 때, 그는 이 장면에 매료되었다. 마치 그의 마음속에서 빠진 한 조각이 채워진 것 같았고 그 빈틈을 채운 것이 바로 이 그리던 삶이었다.“배윤아, 네 작업실 정말 좋다.”그는 부러워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내가 이렇게 조용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배윤아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웃었다.“왜 그렇게 불쌍하게 말해? 최상 별장에 화실 하나 없을 리가 있나?”“에이, 그거랑은 달라.”최군성은 한숨을 쉬었다.그들 최씨 가문에서는 그림을 취미로 여길 수는 있지만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인생의 장식품으로는 인정받지만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그의 할아버지 최문혁도 평생 그림을 그리며 전각과 조각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예술가였다.그러나 그런데도 평생 인정받지 못했다. 최씨 가문에서는 아무도 그를 성공한 사업가로 여기지 않았다. 최상그룹의 기둥을 말할 때면, 사람들은 최연준과 최군형을 인정할 뿐이었다.최군성은 할아버지의 화실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 자신도 화실이 있었고 최군성이 그림을 그릴 때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게다가 물감과 종이도 최고급이었다.하지
최군성은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그의 웃음소리에 열심히 일하던 최연준이 놀라 돌아봤다.얼마 지나지 않아 최군성은 아버지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았다.반면에, 늘 영리한 최군형은 허리를 굽히고 꽃을 부지런히 심으며 아빠를 올려다보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소아도 도와주러 왔다.어느덧 밤이 찾아왔고 마지막 보라색 아이리스가 드디어 심어졌다. 형제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이 순간까지도 최군성의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고 특히 아버지가 엄마에게 어떤 생일 선물을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최연준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두 아들을 바라보고 다시 강소아를 보며 말했다. “좋아. 너희들에게 미리 보여주마.” 최군성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손을 흔들며 기뻐했다.“정말요?”반면에 최군형은 더 차분하게 최군성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미 아빠가 뭘 줄지 짐작했어.” “어?” “분명 그거일 거야... 미리 연습이 필요한 거.”최군형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면 미리 보여줬을 리가 없지. 이건 분명 우리를 관객으로 삼고 점수를 매겨보려고 하는 거야. 선물이 더 개선될 여지가 있는지 보려고 말이지.” 최군성은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이때 최연준은 이미 멀리 가서 지휘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밤하늘에 갑자기 거대한 투영 화면이 나타났고 무수한 조명이 비치며 무지개 같은 길이 펼쳐졌다. 이어지는 화면에는 최연준과 강서연의 젊은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함께할 때의 풋풋함, 서로 사랑할 때의 달콤함, 그리고 그들 사이에 한 마리의 하얗고 통통한 찹쌀떡 같은 아이가 추가된 모습까지... 그 후, 찹쌀떡 같은 아이들이 둘이 되었다.지금은 찹쌀떡들이 모두 멋진 청년으로 자라났고 그중 한 명은 이미 가정을 꾸렸다. 이 투영은 엄청난 비용이 들었고 지금까지의 가장 첨단 기술을 사용해 모든 장면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보였다. 배경
배현진은 마치 자신의 영혼이 몸을 떠나 허공을 떠도는 듯한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다.그는 허공에 떠 있는 듯 응급실의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사들이 급히 자신을 응급처치하는 모습과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로 누워 있는 자기 육체를 바라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에서 해방된 듯한 감각이 그를 감쌌다.의식은 또렷했지만, 살아남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없었다.그날, 배현진은 오강호와 싸웠다.송윤희와 이혼 후 더 나락으로 떨어진 오강호는 그날 술집에서 술에 취해 있던 배현진과 우연히 마주쳤다.말다툼은 곧 몸싸움으로 번졌고 오강호는 배현진이 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자, 송윤지를 언급하며 조롱을 쏟아냈다.배현진은 격분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먼저 손을 댄 쪽이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건장한 오강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배현진은 오강호에게 몇 대 얻어맞고는 응급실로 실려 가고 말았다.지금도 배현진의 귀에는 오강호의 말이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더니 별수 없군. 여자를 제대로 붙잡지도 못하고 결국 임지강에게 뺏겼다지? 하하하...”“배 도련님, 혹시 속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임지강이 송윤지에게 접근한 건 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을 거야!”“너 같은 쓰레기가 무슨 남자야. 약혼녀도 남에게 빼앗기고 말이야.”배현진의 가슴 한구석이 세게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강한 힘이 그의 영혼을 다시 육체로 끌어당겼다.옆에서 심전도가 삐 울리더니 직선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의사들은 제세동기를 정리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환자가 심장박동을 회복했습니다. 약물을 투여하세요.”배현진의 꼭 감겼던 두 눈이 살짝 떨렸다.그를 때린 사람이 임지강과 송윤지의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걸까?혹시, 그 둘 사이에 정말로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그는 알아내야 했다.죽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자신이 겪은 모든 수모를 반드시 임지강에게 똑같이 되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임지강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제가 누나랑 형부께 누를 끼쳤네요.”“그렇게 생각하지 마.”임우정은 부드럽게 말했다.“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은 결국 운명 같은 거야. 따지고 보면 이 일의 원인은 나야. 내가 처음에 송윤지를 현진이에게 소개하지 말아야 했어.”“저 때문에 누나가 곤란해진 거예요.”임지강은 진지하게 말했다.“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제가 조금 비겁한 방법을 썼어요.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배씨 가문을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배현진이 은행에 진 빚은...”임지강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임우정이 임지강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경원이와 수정이는 모두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빚진 돈은 은행에 분할해서 납부할 거야.”“그럼 이자는 받지 않을게요.”임우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안도와 약간의 무력감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배현진에 대해서는.”임지강은 계속해서 말했다.“저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윤지를 괴롭힐 때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예상했어야죠. 지금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거나, 심지어 정말로 정신이 나갔다 해도 그건 자업자득이에요.”“됐어, 봐줄 줄도 알아야지. 너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잖아...”임지강은 고개를 들어 임우정을 바라봤고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친 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이게 무슨 냄새예요?”갑자기 집 안에서 송윤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지강은 놀라며 황급히 돌아섰다.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송윤지가 급히 주방으로 달려 들어왔다.임지강도 곧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아이고, 이거 다 태웠네요!”송윤지는 놀라 외치며 불을 껐다. 그런 다음 행주로 냄비 뚜껑을 열었다.“이건 뭐예요?”“제가 만든 당근 소고기 스튜예요...”임지강은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송윤지에서 한번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이 모양이었다.“물 안 넣었어요?”송윤지는 코를 찡그리며 물었다.“당근
임지강은 송윤지의 세계에 다시 한번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임지강은 이제 송윤지의 아파트에서 종종 머물렀다. 겉으로는 송윤지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라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송윤지는 몇 번 거절하려 했지만, 임지강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그냥 놔두기로 했다.임지강은 비록 소파에서 자야 했지만, 그것조차도 행복했다.임지강은 언젠가는 송윤지의 곁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임지강은 대부분의 시간을 송윤지와 함께 보내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는 세 끼를 직접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송윤지가 과거에 자신을 위해 했던 일들이 얼마나 힘들고 정성이 담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과거 송윤지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가끔 송윤지는 집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임지강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꿈이 자꾸 송윤지를 괴롭혔지만, 송윤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조강이 곁에 있으면 훨씬 마음이 놓인다는 것을.임지강은 배현진과는 완전히 달랐다.배현진은 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앞으로’ 같은 말로 막연한 미래를 약속하곤 했다.반면, 임지강은 ‘내가 있잖아’, ‘나한테 맡겨’, ‘두려워하지 마’ 같은 말로 송윤지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임지강의 말 속에는 사랑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송윤지를 얼마나 아끼는지 충분히 느껴졌다.그날은 송윤지가 쉬는 날이었다. 임지강은 주방에서 당근과 소고기를 넣은 스튜를 끓이고 있었다.이 요리는 임지강이 새로 배운 것이었다. 임지강은 요리의 모든 과정을 조심스럽게 진행했고 조미료를 넣는 것도 마치 화학 실험을 하듯 정밀하게 측정했다.잠시 후, 요리의 향기가 퍼져 나갔고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냄비 뚜껑을 덮고 불을 약하게 조절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그가 문을 열자, 임우정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임우정은 복잡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누나?”
배현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임지강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소중히 여겨야 할 때 외면했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임지강은 손가락으로 배현진의 코앞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다시 내 여자를 건드리면, 소피아와 함께 감옥에서 만나게 될 거야.”임지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고 방을 나갔다.방 안에는 이제 배현진과 배윤아 두 남매만 남아 있었다.배현진은 멍하니 바닥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후회와 절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배현진의 모습을 보며 배윤아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오빠...”배윤아는 조심스럽게 배현진을 부축하며 말했다.“사실, 오빠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진작에 알아봐야 했어. 소피아가 없었다면,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배현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벽에 기대어 머리를 부딪치며 자신을책망했다.“오빠.”배윤아는 애써 배현진의 마음을 다독이며 말했다.“내 생각엔 임지강 씨는 오빠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진심으로 오빠를 망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닐 거야. 이미 송윤지의 복수를 한 거나 다름없으니, 더는 오빠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게다가 다행히도 오빠가 진 빚은 임지강 씨의 은행에서 대출받은 거니까, 그에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부탁하면 좀 봐주지 않을까?”“봐준다고?”백약곡의 쓴웃음은 공허하고 힘이 없었다.“지금 나는 아무것도 없어. 완전히 끝났어...”“오빠에겐 아직 나랑 부모님이 있잖아!”배윤아는 울먹이며 말했다.“우리는 여전히 가족이야! 오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해. 오빠가 진 빚은 부모님이 분명 해결하려고 하실 거야.”“내가 은행에 진 빚은 수천억이라고.”배현진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게다가 이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한 사람은 임지강이야. 그 사람은 절대 날 그냥 놔두지 않을 거야.”“오빠...”배윤아가 더 말을 이어가려 했
“현진 씨,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소피아는 두려움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렇게 한 건... 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은 모든 걸 여동생에게 넘겼잖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랑 제임스는? 당신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여기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제임스를 어떻게 키우겠어?”“그만해!”배현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소피아는 오직 자신과 제임스의 미래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소피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배현진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대하려 했던 건 소피아를 사랑해서지, 빚진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현진 씨...”소피아는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정말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 주길 바랐고 우리가 순조롭게 결혼하길 원했을 뿐이야. 그래서 내가...”“네가 원하는 건, 배씨 가문을 차지하는 거잖아?”“당신...”“윤아는 내 친동생이야!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내 등 뒤에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배현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소피아는 배현진의 외침에 놀라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소리쳤다.“배현진! 앞으로 네 여동생이랑 살 거야? 아니면 나랑 살 거야?”그 말에 배현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소피아의 뺨을 세게 때리며 속에 쌓여 있던 모든 후회와 분노를 폭발시켰다.소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배현진의 얼굴을 긁으려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이며 뒤엉켰고 배현진의 얼굴에는 소피아에게 긁힌 상처가 선명하게 남았다.그때, 경찰이 방으로 들이닥쳐 두 사람을 강제로 떼어놓았다. 차가운 수갑이 소피아의 손목에 채워졌다.배현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소피아가 경찰에게 끌려 나가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그의 존재는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온몸이 퍼즐 조각처럼 부서져 다시는 하나로
임지강은 대출 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서류에 선명한 배현진의 서명과 붉게 찍힌 도장은 마치 피로 얼룩진 조롱처럼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했다.“제 생각엔,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조 회장이 말했다.“지강아, 빨리 돈을 배 도련님 계좌로 송금하고 그 두 광산을 사들여라. 그리고 배 도련님,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임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너그럽게 대해주고 있는데, 도련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말도 안 되죠. 흥! 약속을 어기는 일은 배씨 가문의 품격에도 맞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배현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후회와 절망이 그의 마음을 홍수처럼 휩쓸고 있었다.“배씨 가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제가 데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배 도련님도 보고 싶었을 겁니다.”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룸의 문이 열리며 배윤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배현진은 배윤아를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놀라움은 곧 걱정과 초조함으로 변했다. 배현진은 재빨리 배윤아에게 다가가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윤아야, 괜찮아?”“나 괜찮아.”배윤아는 눈가가 붉어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고작 사흘뿐이었지만, 그 시간은 마치 몇 세기가 흐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그러나 배윤아의 시선이 소피아를 향하는 순간, 증오가 담긴 눈빛이 소피아를 사로잡았다. 배윤아는 이를 악물며 소피아를 가리켰다.“오빠, 바로 저 여자가 사람을 시켜 날 해친 거야!”“뭐라고?”배현진은 몸을 떨며 경악했다.소피아는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발악하듯 배현진 곁으로 뛰어들며 변명했다.“아니야! 내가 아니야! 윤아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네가 사라진 동안, 난 네 소식을 찾으려고 정말 애를 썼어. 난 정말로...”“거짓말하지 마세요!”배윤아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소피아 씨가 사람을 시켜 날 폭행하고 내 물건을 훔쳐 간 건 분명해요! 그리고 소피아 씨가 가장 원했던 게 배씨
“조 회장님,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요!”소피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우리가 그 광산을 사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아시잖아요. 대박을 기대했는데, 지금 헐값에 팔면 원금도 못 건질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고요. 게다가 그 돈은 전부 은행 대출입니다.”“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조 회장은 다 피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건 아가씨가 주도한 일 아닌가요? 제 기억으로는 배 도련님이 처음엔 그 두 광산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걸로 압니다만.”“조 회장님...”“배 도련님.”조 회장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오히려 추악한 수단으로 올라선 여자의 말을 믿었으니, 그 손해는 당연히 본인이 책임져야죠.”“지금 말 다했어요?”소피아는 벌떡 일어나며 격분해 외쳤다.조 회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짓누르듯 바라보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고 소피아의 기세는 단숨에 꺾였다.“배 도련님, 매입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배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 회장은 부하에게 매입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본 배현진은 그만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임지강과 송윤지였다.배현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다 테이블을 건드렸고 접시와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임지강은 송윤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를 위해 의자를 빼주고 임지강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배 도련님, 아는 분이시죠?”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제가 따로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배 도련님.”임지강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듣기론 도련님이 투자하신 두 광산이 이제 3200억밖에 안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3400억에 사들이겠습니다. 도련님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
화면에 띄워진 데이터는 충격 그 자체였다.두 사람은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친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배현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피아 역시 어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피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우리가 1조를 들여 산 두 광산이라고! 무려 1조라고!”배현진이 소리쳤다.“가격이 분명 오를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3200억으로 폭락한 거냐고!”“나도... 나도 모르겠어...”소피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 광산의 시장 가격을 철저히 조사했었단 말이야. 그 두 광산은 운산시에 있는데, 지금 운산시 광산 가격이 상승세잖아. 분명 손해 볼 투자가 아니었어.”“하지만 지금 상황 좀 봐.”배현진은 입술을 떨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소피아, 그 1조는 전부 은행 대출금이야. 지금 난 은행에 수천억 빚을 졌고 이자도 엄청나다고.”“현진 씨, 진정해.”소피아는 급히 배현진을 달래며 말했다.“이 일은 조 회장이 중간에서 소개한 거래잖아. 조 회장에게 물어보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 내가 직접 물어볼게.”...배현진과 소피아는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호텔 룸에서 조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진은 오늘의 만남을 위해 호텔 매니저에게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도록 특별히 부탁했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의 대표 메뉴들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조 회장이 방에 들어서자, 배현진은 그가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조 회장의 눈빛은 마치 코너에 몰린 쥐를 노리는 고양이 같았고 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쥐가 된 듯한 압박감에 사로잡혔다.“두 분이 너무 과하게 준비하셨네요.”조 회장은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의 술잔을 힐끗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렇게까지 준비하실 필요는 없었어요. 나이
이른 아침, 소피아는 천천히 눈을 뜨며 옆에 누운 남자의 맨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배현진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춤했다.배현진은 그녀의 키스에 미소로 답하며 부드럽게 눈을 떴다.하룻밤의 열정에 지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희미한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제임스는 아직 안 깨어났어?”“이 시간엔 절대 안 일어나요.”소피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 위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그럼... 우리 한 번 더?”“아니.”배현진은 소피아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댄 뒤 가볍게 입맞춤하며 말했다.그는 정말로 피곤했다. 소피아는 도대체 어떻게 매일 밤 이렇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걸까?소피아는 송윤지와 완전히 달랐다. 송윤지는 늘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가 바라볼 때만 순수한 미소를 띠곤 했다.배현진은 문득 송윤지를 떠올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했다.“자기야, 무슨 일이야?”“아, 별거 아니야.”배현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맞다, 나 현진 씨랑 상의할 게 있어.”소피아는 배현진의 얼굴을 자신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제임스도 점점 크고 있어. 가정교사를 불러서 집에서만 공부시키는 건 이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또래 아이들과 학교에서 어울리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 어쨌든 앞으로는 제임스가 배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렇지?”“음...”배현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장래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부모님이 이미 가업을 전부 윤아에게 넘겼잖아.”소피아는 미소를 띠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흡족해했다.배윤아 같은 풋내기는 소피아와 겨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배윤아를 기절시켜 조 회장의 카지노 앞에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조 회장이 배윤아를 데려갔으니, 모두가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범인이 조 회장과 임지강이라고 믿을 것이다.혹시 조 회장이 색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더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