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씨 아줌마는 무슨 일이 있는지 몰랐지만 육연우의 질문을 듣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전화를 끊고 나자 육연우는 최군성이 분명 배윤아의 조언을 들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최군성이 갑자기 립스틱을 사 왔을 리가 없었다.불안한 육연우의 마음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여자들과 거리를 두겠다는 말도 평소의 최군성이라면 절대 꺼낼 리 없는 말이었다. “분명히 배윤아야...” 휴대전화를 꼭 쥔 육연우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다. 육연우의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배윤아가 최군성을 만나 무언가를 말했음이 분명했다. 배윤아의 말은 잘 기억하고 잘 따른다고 육연우는 생각했다. 육연우의 가슴이 답답해졌고 눈물이 갑자기 쏟아져 나왔다. 육연우는 최군성이 선물한 화장품을 바라보았다. 상자 안에 가지런히 놓인 립스틱들이 마치 붉은 눈동자처럼 자신을 비웃고 있는 듯했다. 마치 육연우의 열등감을 조롱하고 떳떳하지 못한 출신을 깔보는 듯했다.그나마 남아 있던 마음속의 안정감마저 산산이 부서졌다. “아!” 육연우는 갑자기 두통을 느끼며 손을 들어 화장품 상자를 뒤엎었다. 바닥으로 쏟아진 립스틱들은 육연우의 격한 발길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최지용은 육씨 부동산의 판매 홀을 방문했다.백인서에게 립스틱을 전해주려고 온 것이다. 하지만 멀리서 백인서가 셔츠에 정장을 입고 이름표를 달고 판매원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백인서가 어떻게 판매하는지 궁금해진 최지용은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한참을 관찰한 후, 최지용은 백인서가 왜 한 달 넘도록 성과가 없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그 이유를 깨달은 최지용은 웃음을 참으며 문 앞에서 백인서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하루 종일 서 있던 백인서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고 한 건도 팔지 못한 상태로 뻣뻣해진 목을 주무르며 건물을 나서고 있었다. 갑자기 큰 손이 백인서를 잡아당겼다. 본능적으로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고개를 들자 달빛처럼 부드러운 눈동자와
“제가 고객인 척할 테니 저한테 연습해 보는 건 어때요?”최지용은 말하는 도중 서서히 귀 끝이 붉어졌다.최지용은 육자 그룹 판매부의 동혜림이 고객을 어떻게 대하는지 본 적이 있었다. 최지용은 그런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만약 백인서가 동혜림처럼 자신에게 다가온다면...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설렐 것 같았다.백인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조용히 물었다.“그런 것도 연습이 될 수 있어요?”“그럼요, 물론이죠!”최지용은 머릿속으로 고민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판매는 기술과 연습이 결합한 거예요. 지금 기술이 부족하고 연습도 부족하니까 성과가 없는 거죠!”“인서 씨.”최지용은 감정에 호소하며 말했다.“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아 씨를 생각해서라도 연습해야죠. 물론 소아 씨는 육자 그룹의 작은 대표님이지만 이사회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소아 씨가 소개한 사람이 성과를 못 내면 이사회에 있는 늙은이들이 그걸 빌미로 문제 삼지 않겠어요?”그 말은 백인서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그렇다, 백인서는 처음에 육자 그룹에 들어올 때 언니의 명예를 높이고 육경섭이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게 하고 싶었다.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남들 못지않게 열심히 일하고 매일 야근했는데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이러면서 어떻게 언니에게 자랑이 되겠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백인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연한 눈빛으로 최지용을 바라보았다.“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최지용은 헛기침하고는 마치 계획이 있는 듯 거실을 천천히 걸었다.“동료분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봤어요?”백인서는 생각에 잠겼다. 동혜림은 고객을 보면 마치 굶주린 늑대가 먹이를 향해 달려들 듯이 행동했다. 특히 돈 많은 남자 고객을 보면 몸을 온통 그들에게 맡기는 것처럼 보였다.이게 성공적인 판매원의 모습인가?최지용은 이 설명을 들으며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최지용은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백인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제 생각엔, 그것 또
“최지용 씨...”백인서가 몸을 돌려 말을 꺼내려는 순간, 갑자기 뜨거운 입맞춤이 백인서의 입술을 덮었다.백인서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머릿속이 하얘지며 전신을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최지용은 말없이 백인서를 끌어안으며 백인서의 입술에서 퍼지는 향기에 취해 부드러움에 몰두했다.이 아파트는 최지용이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곳이었다.이 키스 또한 오랜 시간 준비된 것이었다.사실 최지용의 원래 계획은 백인서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을 때 이 방에서 키스하는 것이었다.하지만 방금 백인서가 최지용을 카펫 위에 쓰러뜨리던 순간, 최지용의 내면에 잠재된 불꽃이 타올랐다.더는 참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이 이제는 폭발할 것만 같았다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최지용은 바로 오늘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최지용은 매우 열정적으로 키스를 했지만 기술적으로 서툴렀다. 백인서는 심지어 약간 아프다고 느낄 정도였다.처음에는 저항하던 백인서도 이내 최지용의 리듬에 맞춰 조심스레 응답하기 시작했다. 백인서의 작은 손이 최지용의 넓은 어깨를 타고 올라가며 무의식적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최지용의 심장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인서 씨...”최지용은 백인서의 입술에서 아쉬운 듯 떨어져 나와 진지하게 백인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인서 씨를 많이 좋아해요.”백인서는 고개를 숙인 채 긴장해서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인서 씨는요?”최지용은 백인서에게 물었다.“인서 씨도 제가 좋은 거죠, 그렇죠?”“이미 알고 있잖아요.”백인서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최지용은 큰 승리를 맛본 듯 환하게 미소 지었다.백인서는 처음으로 최지용에게 적극적으로 기댔다.그리고 처음으로 진정한 안식처가 있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깨달았다.*다음 날, 백인서는 정시에 판매 홀로 출근했다.사람들 모두 백인서를 보며 약간 놀란 듯한 눈빛을 보냈다.백인서가 미인이란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늘 검은
백인서와 주우남은 동시에 멍해졌다.멀리서 동혜림이 경쾌하게 허리를 흔들며 다가왔다.아직 동혜림이 가까이 오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강한 향수가 진하게 퍼졌고 백인서는 그 자극적인 냄새에 코를 찡그렸다.“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건 아니잖아!”동혜림은 비웃듯 백인서를 한번 훑어보며 말했다.“백인서, 안 그래?”백인서는 차가운 눈빛으로 동혜림을 바라봤지만 침묵을 지켰다. 이때 주우남이 웃으며 말했다.“재클린, 아파트 판매는 잘 되고 있어? 이번 달 목표는 아직 못 채운 것 같은데?”“주 언니, 그건...”“솔직히 말해봐. 내가 매달 너에게 주는 목표가 많아?”주우남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런데도 넌 어떤 방식으로 목표를 달성했는지 너도 잘 알잖아. 오직 관계에 의존하면서 영업한다면 오래 못 갈 거야.”동혜림은 눈을 치켜떴다.육자 그룹의 이사는 주우남보다 훨씬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지만 주우남은 동혜림의 직속 상사였다.게다가 그 이사와의 관계는 절대로 드러내선 안 되는 비밀이었다.동혜림은 불쾌하게 콧방귀를 뀌며 발을 굴렀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러나 주우남이 계속해서 백인서에게 말했다.“아까 다 못 한 말이 있어. 여자가 자신을 잘 꾸미는 것은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서지 남자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부도덕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더욱 아니야!”“주 언니, 지금 누구 얘기하는 거예요?!”동혜림이 되돌아와 눈을 부릅뜨며 크게 소리쳤다.“왜 그래?”주우남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너라고 말한 적 없는데 왜 그렇게 흥분하는 거야?”“주 언니는 분명히...”동혜림은 말하다 중간에 멈췄고 화난 얼굴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주우남의 통제만으로도 짜증이 났는데 이제는 백인서까지 화를 돋우고 있었다.주우남은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만하고 각자 할 일 하자! 오늘은 모두 좋은 실적을 내길 바랄게.”동혜림은 분노에 찬 눈길로 백인서를 노려보았다.그러나 백인서는 동혜림을 아예 쳐다보지도
“육 아가씨.”주우남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육자 그룹이 결코 한 사람의 말로 운영되는 회사가 아니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육 아가씨의 권한으로는 임의로 직원을 해고할 수 없습니다!”육연우는 주우남을 올려다보며 주먹을 꽉 쥐었고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육연우도 오늘 여기 온 것이 조금 무리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동혜림이 계속해서 육연우를 육자 그룹의 주주이고 회장님의 친조카이니 못 할 일이 없다고 부추겼고 육연우도 백인서를 쫓아내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게다가 오늘 강소아가 회사에 없었기 때문에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평소 조용하던 주우남이 이렇게까지 육연우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주 팀장님.”동혜림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주 팀장님도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사람이면서 왜 이러세요? 육 아가씨는 대표님의 친조카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거역할 생각인가요?”“육자 그룹은 현대적인 기업이지 가족 경영을 하는 작은 가게가 아닙니다. 어떤 일도 한 사람의 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주우남은 동혜림을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그리고 이 일에 네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동혜림은 눈을 굴리며 육연우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한 사람의 말로 결정되지 않는다?”육연우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주 팀장님, 백인서가 처음 회사에 들어올 때 채용 절차를 거쳤습니까? 이사회가 동의했나요?”“그런 절차도 없었고 실적도 내지 못한다면 육자 그룹이 왜 계속 고용해야 하나요?”주우남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그러니 내보내는 게 맞습니다.”육연우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남은 절차는 인사부에서 처리할 거고 모든 것은 규칙대로 진행하세요.”“육 아가씨께서 모든 것을 규칙대로 처리하라고 하신다면.”주우남이 말했다.“그렇다면 규칙에 따라 육 아가씨는 회사의 주주로서 배당에만 참여할 수 있고 경영 문제에는 개입할 권한이 없습니다.”“뭐라고요?”“육 아가씨가 대표님의 친조카이
“저예요.”동혜림은 서둘러 명함을 내밀었다.“배 아가씨, 저는 여기서 골드 판매원입니다. 이 집들의 모든 타입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저에게 할인도 있으니 만족하실 겁니다.”주우남은 동혜림을 한 번 흘겨보더니 무시하고 다른 일을 하러 돌아섰다.육연우는 옆에 서서 두 손으로 가방끈을 꽉 잡고 힘주어 문지르며, 눈을 크게 뜨고 배윤아와 백인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육연우는 배윤아가 동혜림에게 미소를 짓고 있지만 백인서의 손을 계속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리고 배윤아가 동혜림을 쉴 새 없이 부려 먹는 것을 봤다. 배윤아는 어떤 브랜드의 생수를 마시고 싶다고 하거나 다른 브랜드의 티슈를 써야 한다고 했는데 판매센터에는 그런 물건들이 없었다.동혜림은 이 재벌가 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허둥지둥 밖으로 뛰어나가서 물건을 사 왔다.육연우 옆을 지나칠 때는 마치 보지 못한 듯했다.육연우는 입술을 꽉 물고 마음속의 매듭이 더욱 꼬여가더니 결국 가슴 속에 한 덩어리가 되어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배, 배윤아씨...”백인서는 배윤아를 보며 말할 듯 말 듯했다.“그렇게 부르면 너무 서먹서먹해. 그냥 윤아라고 불러줘.”백인서는 잠시 멍해졌다. 배윤아의 순수하고 깨끗한 미소를 보며 갑자기 강소아가 떠올랐다.둘 다 같은 사람이었다. 웃을 때면, 그 눈에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반사되는 것 같았다.“동혜림이 없을 때 여기 집에 대해 좀 설명해 줘.”“제가요?”“맞아.”배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람은 너무 시끄러워서 내가 싫어하니까 멀리 보냈어.”백인서는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말했다.“작업실로 사용할 거라면, 너무 큰 집은 추천하지 않아요. 이런 작은 유형의 로프트가 아주 가성비가 좋아요. 인테리어도 완비되어 있고 방향도 좋고 바다 전망도 있어서 바다를 보며 작업하면 영감이 더 잘 떠오를 거예요.”배윤아는 미소를 지었다.“다들 큰 집을 팔려고 애쓰는데 당신은 내 돈을 아껴주네.”“저는 적합한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백인서는 진지
이름이 금수만화란 배윤아의 작업실은 이미 자리를 잡았고 곧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작가, 편집자, 운영, 심지어 행정과 재무까지 모두 배윤아 혼자가 담당하고 있었다. 배윤아는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바빴고 멀리 해외에 있는 배현진은 도와주고 싶었지만 여력이 없어 최씨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어 돌봐달라고 부탁했다.최군형은 최상그룹을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이 중책은 별일 없는 최군성에게 떨어졌다. 작은 새끼 고양이들은 점점 자랐고 배윤아는 작업실에 그들을 위한 새로운 집을 마련해 주었다. 배윤아는 고양이들과 함께, 컴퓨터와 그림판을 지키고 막 끓인 커피의 향기가 퍼져 나오는 가운데,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최군성이 처음 작업실에 왔을 때, 그는 이 장면에 매료되었다. 마치 그의 마음속에서 빠진 한 조각이 채워진 것 같았고 그 빈틈을 채운 것이 바로 이 그리던 삶이었다.“배윤아, 네 작업실 정말 좋다.”그는 부러워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내가 이렇게 조용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배윤아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웃었다.“왜 그렇게 불쌍하게 말해? 최상 별장에 화실 하나 없을 리가 있나?”“에이, 그거랑은 달라.”최군성은 한숨을 쉬었다.그들 최씨 가문에서는 그림을 취미로 여길 수는 있지만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인생의 장식품으로는 인정받지만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그의 할아버지 최문혁도 평생 그림을 그리며 전각과 조각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예술가였다.그러나 그런데도 평생 인정받지 못했다. 최씨 가문에서는 아무도 그를 성공한 사업가로 여기지 않았다. 최상그룹의 기둥을 말할 때면, 사람들은 최연준과 최군형을 인정할 뿐이었다.최군성은 할아버지의 화실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 자신도 화실이 있었고 최군성이 그림을 그릴 때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게다가 물감과 종이도 최고급이었다.하지
최군성은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그의 웃음소리에 열심히 일하던 최연준이 놀라 돌아봤다.얼마 지나지 않아 최군성은 아버지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았다.반면에, 늘 영리한 최군형은 허리를 굽히고 꽃을 부지런히 심으며 아빠를 올려다보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소아도 도와주러 왔다.어느덧 밤이 찾아왔고 마지막 보라색 아이리스가 드디어 심어졌다. 형제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이 순간까지도 최군성의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고 특히 아버지가 엄마에게 어떤 생일 선물을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최연준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두 아들을 바라보고 다시 강소아를 보며 말했다. “좋아. 너희들에게 미리 보여주마.” 최군성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손을 흔들며 기뻐했다.“정말요?”반면에 최군형은 더 차분하게 최군성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미 아빠가 뭘 줄지 짐작했어.” “어?” “분명 그거일 거야... 미리 연습이 필요한 거.”최군형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면 미리 보여줬을 리가 없지. 이건 분명 우리를 관객으로 삼고 점수를 매겨보려고 하는 거야. 선물이 더 개선될 여지가 있는지 보려고 말이지.” 최군성은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이때 최연준은 이미 멀리 가서 지휘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밤하늘에 갑자기 거대한 투영 화면이 나타났고 무수한 조명이 비치며 무지개 같은 길이 펼쳐졌다. 이어지는 화면에는 최연준과 강서연의 젊은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함께할 때의 풋풋함, 서로 사랑할 때의 달콤함, 그리고 그들 사이에 한 마리의 하얗고 통통한 찹쌀떡 같은 아이가 추가된 모습까지... 그 후, 찹쌀떡 같은 아이들이 둘이 되었다.지금은 찹쌀떡들이 모두 멋진 청년으로 자라났고 그중 한 명은 이미 가정을 꾸렸다. 이 투영은 엄청난 비용이 들었고 지금까지의 가장 첨단 기술을 사용해 모든 장면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보였다. 배경
손님들이 웅성거리며 비명이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백인서?”배윤아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큰 소리를 질러?”“아니야... 난 백인서가 아니야!”백시연은 목이 쉬도록 외치며 갑자기 강소아를 돌아보았다.“말해봐! 아까 다 알고 있었던 거잖아? 내가 백인서가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 수 있게 똑똑히 말하라고!”“인서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강소아는 담담하면서도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차분히 백시연의 손을 밀어냈다.“혹시 술이라도 마신 거야? 취한 것 같아.”“강소아 씨!”백시연은 분노에 치를 떨며 외쳤다.강소아는 백시연의 손을 잡고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인서야, 우린 자매잖아. 여기서 소란스러운 모습 보이지 말자. 오늘은 어쨌든 육씨 가문의 중요한 날이기도 하고 내 딸도 여기 있어... 그러니까, 제발 진정해 줘.”“아니야...”“인서야!”“아니라고! 아니라고!”백시연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섰다.“난 백인서가 아니야! 몇 번을 말해야 믿을 거야?”배윤아는 피식 웃으며 백시연의 팔짱을 끼고 태연히 말했다.“어머, 백인서. 왜 그래? 백인서가 아니면, 왜 백인서 얼굴을 하고 있는 건데? 그런데... 굳이 너와 백인서의 다른 점을 꼽으라면... 손목에 그림이 있다는 거?”“비켜!”백시연은 배윤아를 거칠게 밀어내고 다급히 무대를 향해 뛰어갔다.백인서는 고요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마침내 기다리던 이 순간이 왔다.백인서는 천천히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눈앞의 백시연을 바라보았지만,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눈앞의 이 사람은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지옥에서 온 악마처럼 보였다.백인서는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백시연은 진짜 악마일지도 모른다고.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다. 한쪽은 천사, 다른 한쪽은 악마. 그리고 자신과 백시연 같은 쌍둥이의 운명은 그런 인간의 본성을 극대화해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가면은 순금으로 빚어졌고 가장자리에는 보석이 촘촘히 박혀 조명이 닿을 때마다 눈 부신 빛을 흩뿌렸다.백시연은 그 자리에 선 채 몸이 굳어버렸다.“이... 이럴 수가!”그 사이, 백인서는 이미 무대 위로 올라가 권욱 옆에 서 있었다.권욱은 이어서 말했다.“이분이 바로 제 이복동생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늘 제 동생을 걱정하며 꼭 찾아달라고 당부하셨죠. 이제야 동생을 찾게 되었습니다!”권욱은 백인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의 눈빛 속에는 진심 어린 애정과 따스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엔 동생의 출생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죠. 우리는 결국 한 가족입니다. 동생을 찾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동생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요... 우리 권씨 가문이 제 동생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하늘의 뜻일지도 모릅니다. 동생의 존재는 제 딸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이분은 제 동생일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의 은인이기도 합니다!”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고 몇몇은 감동에 겨워 눈가를 붉혔다.하지만 백시연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동생이란 말인가? 그리고 왜 저 여자도 가면을 쓰고 있는 걸까?분명 백인서는 종수가 지하실에 가둬뒀고 곧 처리될 운명이 아니었던가.“그리고 이어서 발표하겠습니다!”권욱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권씨 가문의 재산 중 절반을, 이 세상 유일한 동생에게 넘기겠습니다!”“뭐... 뭐라고?”백시연의 온몸은 떨림으로 굳어졌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갔다.“아니야... 이건 아니야!”“뭐가 아니야?”강소아가 일부러 물었다.“인서야, 어디 아파?”“그게....”“권 대표는 네 직장 상사잖아? 상사가 가족을 찾은 거니 축하해줘야지!”백시연은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강소아는 낮게 웃음을 흘리며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게 백시연의 귀에 속삭였다.“그렇게 백인서의 자리가
“그게... 무슨 뜻이에요?”백시연은 침착함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지만, 권욱의 눈빛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이 카드가 제 거 아니면 누구 건데요?”“난 그런 말 한 적은 없는데?”권욱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번졌다.“그냥 문득 우리 아내도 이런 비슷한 카드를 몇 장 가지고 있던 게 떠올랐을 뿐이야. 카드 색깔도 이런 파란색이었고 뒷면에는 대나무 무늬의 홀로그램이 새겨져 있었어. 조씨 가문은 학문을 중시하는 전통을 지닌 집안이라 대나무처럼 강인하고 꿋꿋한 식물을 특별히 아낀다고 하더군. 한번 뒤집어 확인해 볼래?”백시연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가 이내 창백해졌고 손은 카드 위에서 더욱 굳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백시연은 강소아를 찾아갔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약속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묘안석이 그렇게 비싼 줄 몰라서 서둘러 나오느라 준비가 부족해 지금은 이 카드밖에 없다고 둘러댔다.그러고는 억지로 친근한 미소를 띠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소아 언니, 우리 자매처럼 친한 사이잖아요. 언니 딸은 곧 제 딸이나 다름없죠! 가원이에게 쓰는 돈이라면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강소아는 미소를 머금고 백시연의 손에서 카드를 슬쩍 가져가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고마워! 나중에 가원이가 크면 널 두 번째 어머니로 생각할 거야.”백시연의 얼굴 근육이 떨렸지만 억지로 미소를 유지하며 애써 태연한 척했다.“인서야.”강소아는 다정한 눈빛으로 백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요즘 권욱의 공익 프로젝트를 도맡아 관리하고 있다면서? 잘한다는 칭찬이 자자하더라. 몇 번이나 넌 정말 유능한 관리형 인재라고 말했어.”“아... 그래요?”백시연은 속으로 긴장하며 애써 태연한 척했다.“그럼!”강소아가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앞으로도 너한테 정말 잘해줄 생각이야.”그 말을 듣자 백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10억 원을 써서 강소아의 호의를 얻은 거라면 나쁘지 않은 거래라는 생각이 들었다.“소아 아가씨
연회장 한편에서 백시연은 마침내 잠시 자리를 빠져나갈 기회를 잡았다. 화장실에 간다고 둘러대고는 한적한 구석에 숨어 종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무언가 해답을 찾고 싶었다.긴 신호음 끝에야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백시연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왜 이렇게 늦게 받아요?”백시연은 알지 못했다. 종수가 이미 경찰차에 타고 있었고 간신히 경찰의 허락을 받아 전화를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아저씨! 정말 급해서 전화했어요. 지금 뭐 하고 계셨어요?”종수는 억지로 미소를 짓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시연아...”뭔가 말을 더하려던 종수는 경찰이 허리춤에 총구를 겨누는 바람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됐어요, 됐다고요!”백시연은 짜증을 내며 말을 끊었다.“딱 한 가지만 물을게요... 아까 소아 아가씨가 저한테 10억 원짜리 선물을 요구했는데, 그거 줘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10억?”“네!”상황을 모르는 백시연은 초조한 듯 말을 더 이어갔다.“그 재수 없는 여자가 과거에 강소아와 무슨 약속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강소아가 저를 보자마자 자기 딸이 말하기 시작했다면서 선물을 요구하더라고요. 뭐였더라... 묘안석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그게 10억 원짜리래요!”종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다. 그건 강소아가 원하는 게 아니라 조순영을 대신해 요구한 것이라는 사실을.세상은 언제나 공평했다. 무엇을 얻었다면 그 대가는 반드시 같은 무게로 돌아오게 마련이었다.종수는 지친 듯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아저씨? 종수 아저씨!”백시연은 초조한 목소리로 외쳤다.“뭐라도 말 좀 해주세요! 줘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시연아, 이제 너도 어른이야. 이런 일은 네가 직접 판단해야 해.”“제가 알아서 할 수 있었으면, 아저씨께 묻겠어요?”백시연은 이마를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오늘의 종수는 어딘가 낯설고 이상했다.“솔직히... 전 주고 싶지 않아요. 그런 비싼 걸 고작 어린애한테 준다
“뭐라고요? 10억 원이요?”백시연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강소아는 슬쩍 백시연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왜 그래? 고작 10억 가지고. 게다가 가원이에게 큰 선물을 주겠다고 네가 먼저 약속한 거잖아. 혹시 후회라도 하는 거야?”“그럴 리가!”배윤아가 옆으로 걸어오며 백시연의 어깨를 힘차게 두드렸다.“우리 인서는 분명히 선물을 줄 거야, 그렇지? 너희 둘 사이에 보석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니잖아.”백시연의 얼굴이 단단히 굳어졌고 입술이 굳게 닫혔다.10억? 조순영에게서 받은 카드에는 고작 10억 원뿐이었다.백인서가 이때까지 이렇게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이 정도 돈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걸까?그래서 강소아가 그렇게 말한 것일까?“어머, 저 사람은 육 아가씨와 친하다던 백인서 아니야?”그때, 근처에 있던 여배우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방금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었어?”“예전에... 둘이 약속했나 봐, 백인서가 육 아가씨의 딸에게 선물을 주기로.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바뀐 것 같아!”“정말? 풉! 상류층 자매라는 것도 결국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봐! 백인서는 육 아가씨와 둘도 없는 사이처럼 보였는데. 육 아가씨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잖아... 이제는 최씨 가문의 아들과 친해지니까, 가식적인 행동도 하기 싫어졌나 봐.”“그 선물이 10억 원짜리라고 하던데... 역시 두 사람 우정은 10억 원도 안 되는 거였어!”백시연의 얼굴은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갔다. 뒤돌아 그들에게 따지려던 찰나, 강소아가 재빠르게 백시연의 손목을 붙잡았다.“됐어, 인서야.”강소아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저 사람들은 평소에도 입만 살았어. 나중에 제대로 혼내 줄 거야.”“그래야죠, 저 사람들은 정섭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이잖아요. 제대로 가르쳐야 해요!”백시연은 화를 내며 말했다.“소아 언니, 저 사람들이 이런 자리에 나온 건 정섭 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해서이기도 하지만 결국 언니를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저렇게 뒤에서
권욱과 조순영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벅찬 기쁨에 눈물이 터져 나왔고 이내 서로를 끌어안은 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권 대표님, 사모님, 정말 큰 경사입니다!”의사는 골수 검사 결과를 들고 환히 웃으며 말했다.“드디어 아가씨를 살릴 수 있게 됐습니다!”“맞아요, 정말 기쁜 일이네요.”최지용이 권욱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한심하긴, 그만 울어요!”권욱은 흐느끼면서도 반박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네 딸이 아픈 게 아니니, 넌 당연히... 당연히 이 고통을 알 리가 없지!”최지용은 기가 차 웃으며 권욱의 등을 두 번 세게 두드렸다.백인서는 마음 한편의 큰 짐을 덜어낸 듯 병실 안에 있는 권온유를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그나저나.”조순영이 문득 입을 열었다.“백시연의 골수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나왔습니다.”의사가 고개를 저었다.“대부분의 지표는 일치했지만 몇 가지 중요한 항목이 맞지 않아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정말 신기한 인연이네요.”최지용이 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쌍둥이라고 해도 신체의 세포가 다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네요.”한 명은 강인하고 선량했고 다른 한 명은 어리석고 악랄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라도 서로 다른 개성과 운명을 가질 수밖에 없다. 누구도 타인의 성격과 운명을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는 법이다.“그러게 말이야.”권욱은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다른 쌍둥이였다는 걸 알게 됐으니 이제 모든 진실을 밝힐 때가 된 것 같네.”...축하 연회 날, 손님들로 붐비는 연회장은 떠들썩하고 활기가 넘쳤다. 오성에서 유명한 대가문은 물론, 연예계의 반 이상이 모인 듯했다.정섭 엔터테인먼트는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했기에 대상 수상 경력이 있는 배우들조차 강소아의 초대를 거절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연회장에 들어선 백시연은 평소 TV에서만 보던 유명 여배우들이 서로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광경에 기가 죽고 말았다.백시연은
차 안에서 백인서는 멍하니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앉아 있던 두 남자는 서로를 힐끔거리기만 할 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조금 전 나눈 대화로 머릿속이 복잡해진 백인서는 갑작스레 쏟아진 진실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이 권씨 가문의 사생아라니.“네 어머니와 우리 아버지가 꽤 가까운 사이였던 모양이야.”“두 사람 사이에 주고받은 물건이 있었어. 바로 회중시계인데, 그걸 백시연이 가지고 온 거지.”“인서야, 너와 백시연이 쌍둥이 자매란 거 알고 있었어?”백인서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머리가 깨질 듯 욱신거렸다.어머니가 이렇게 많은 진실을 감추고 있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인서야?”최지용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백인서의 손을 잡았다.그러자 앞좌석에 있던 권욱이 뒤를 돌아보며 싸늘한 눈빛으로 최지용을 쏘아보았다.“놔라!”“뭐요?”권욱은 입을 삐죽이며 최지용이 꼭 잡은 백인서의 손을 가리켰다.참 이상했다. 평소에는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매형이 된 순간부터 그가 갑자기 거슬리기 시작했다.“인서는 좀 쉬어야 해!”권욱은 찡그리며 말했다.“손은 왜 자꾸 붙잡고 있는 거야?”최지용은 순간 멍해서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권욱을 쳐다보았다.“무슨 상관이에요?”“난 인서 오빠야! 당연히 내가 상관해야 할 일이지.”“웃기지 좀 마세요!”“너...”“그만 좀 싸울래요?”백인서가 뒤돌아 두 사람을 힐끔 쳐다봤다.머릿속이 이미 복잡할 대로 복잡한데 이 두 사람은 백인서를 편히 둘 생각이 없는 듯했다.최지용과 권욱은 서로를 노려보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눈싸움을 벌였다.“온유는 아직 병원에 있어요?”백인서가 갑자기 물었다.“응...”“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요!”“뭐라고?”권욱은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백인서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진짜 동생이라면 온유 고모가 되는 거잖아요. 아직 적합한 골수를 찾지 못했다면서요? 제가 한번 해볼게요!”권욱은 잠시
종수는 잠시 망설이더니 천천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백인서에게 내밀었다.“통화해.”종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최 도련님의 번호는 분명 잘 기억하고 있겠지만, 굳이 조언을 하나 하자면... 먼저 육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연락하는 게 좋을 거야.”백인서는 종수를 노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왜냐하면 백인서도 강소아에게 먼저 연락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강소아는 위치 추적 장비를 가지고 있었기에 전화를 걸면 곧바로 이곳이 추적될 터였다.그렇게 되면 종수와 백시연은 피해 갈 수 없을 터였다.“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 않아?”종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어젯밤, 소아 아가씨가 시연이와 통화했는데 평소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던 아가씨가 시연이와 한참 동안 통화를 하더군. 내가 생각하기론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가장 컸어.”백인서의 표정이 점점 풀렸다.백인서는 천천히 손을 옮기고 종수가 움직이기 전에 재빨리 몸을 돌려 문 쪽으로 달려갔다. 종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듯했다.종수는 그저 가만히 백인서를 바라볼 뿐, 뒤쫓으려는 기색은 없었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백시연을 용서할 거란 기대는 하지 마세요.”백인서는 차갑게 말했다.“아저씨를 용서할 생각도 없어요! 저는 누구를 먼저 해치지 않아요. 그런데 당신들이 먼저 나타나 저를 해치려 들고선 이제 와서 자매애를 말하다니, 우습지도 않나요?”백인서는 말을 마치고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종수는 백인서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종수의 마음은 더욱 복잡했다.백인서는 저택을 벗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좁은 길을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걸은 끝에 조용한 길 한가운데에 다다랐다. 지친 몸을 이끌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화려한 시내는 여전히 멀어 보였다.오성은 너무 넓었고 모든 곳을 다 가본 게 아니었기에 대략적인 방향만 추정할 수 있을 뿐, 휴대전화도 없어서 난감하기만 했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내던 순간, 고요한 길
종수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눈빛에는 깊은 씁쓸함이 서려 있었다.종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백인서는 문밖 풍경을 바라보았다.때마침 오전의 화창한 햇살이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살랑거리고 작은 새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모습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백인서는 무의식적으로 깊은숨을 들이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종수를 바라보았다.“어서 가.”종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인서야, 내가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뭔데요?”“네 남자 친구에게 시연에 대한 얘기는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백인서는 미간을 찌푸렸다.종수는 한 걸음 다가서며 간절한 눈빛으로 백인서를 바라보았다.“시연이는 내가 키운 아이야. 내겐 딸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약속할게, 시연이를 데리고 이곳 오성을 떠나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결국, 저보고 용서하라는 말이군요?”“인서야, 그 아이는 네 쌍둥이 동생이야. 네가...”종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인서는 빠르게 식탁 위의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부분을 종수의 목에 단숨에 들이댔다.종수는 깜짝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급히 손을 뻗어 백인서의 손목을 잡으려 했지만 이미 목 깊숙이 차가운 위협이 스며든 후였다.백인서가 누르고 있는 곳은 동맥이 위치한 곳이었다.“백인서, 너...”“아저씨.”백인서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제가 조금만 힘을 주면, 아저씨는 여기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어요. 방금 확인했는데, 이 저택은 넓지만, 따로 감시카메라는 없더군요. 제가 아저씨를 죽이고 떠나도 아무도 알지 못할 거란 얘기예요.”종수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경찰이 너를 추적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흥!”백인서는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전 역추적 능력에는 꽤 자신 있거든요.”“백인서!”“아저씨, 전 사람을 해치고 싶진 않았어. 그런데 당신들은 왜 저를 놓아주지 않는 걸까요?”“전부 시연이 잘못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