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연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혹시 육연우 씨 맞으신가요? 여기는 오성 교외 구치소입니다.”육연우의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다리는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확인 먼저 하겠습니다.” 상대방은 말을 이었다. “아버지의 성함이 육명진 씨 맞으시죠?”“맞아요...”“육명진의 사형 집행일은 이번 달 14일입니다.”연우는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비틀거리다 가까운 나무에 몸을 기대었다.“육연우 씨, 듣고 계신가요?”육연우는 크게 숨을 내쉬며 겨우 차분함을 유지하려 애썼다.“네, 듣고 있어요...”“관례에 따라 사형수는 형이 집행되기 전에 가족과 면회할 수 있습니다. 육명진 씨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면회 시간은...”육연우의 귀에는 마치 수천 마리의 벌레가 울부짖는 소리가 가득 찼다. 육연우는 전화를 끊자마자 길을 따라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육연우는 이렇게 달리면 운명이 자신을 비웃는 듯한 이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하지만...육연우는 바다까지 달려가서 멈췄다. 육명진이 엄마를 이용해 자신을 협박하고 육소유로 가장시켜 육씨 집안의 재산을 빼앗으려 했던 장면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육연우가 그런 악한 일을 거부하자 육명진은 육연우를 때리고 욕하고 모욕하고 위협했다.그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저 악마일 뿐이었다.육연우는 두 귀를 감싸고 절규했지만, 그 비명은 파도 소리에 묻혀 하늘로 흩어진 구름처럼 사라져갔다.*약속된 시간은 금세 찾아왔다.여러차례 망설이던 육연우는 마침내 교외의 구치소로 향했다. 육연우는 하얀 옷을 입고 얼굴에는 옅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마치 창백하고 연약한 아름다움을 지닌 듯 보였다. 하지만 육연우의 눈빛에 담긴 결심은 마치 칼처럼 날카로웠다. 그 눈빛은 육명진을 보자마자 그의 심장을 찌르고 싶어 할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오, 내 딸, 왔구나.”육명진은 부어오른 눈을 힘겹게 뜨고 썩어가는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육명진의 입에는 이
“싫어요! 싫어요!”육연우는 끝없는 악몽 속에서 헤매는 듯 두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다.육연우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를 더러운 진창 속으로 던져 벗어날 수 없게 꽉 붙잡고 있었다.“이 천한 년! 너도 네 엄마와 똑같아. 머리도 없는 쓸모없는 폐물!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걸 다 남에게 내주다니! 쓸모없는 폐물이야!”“그만하세요!” 육연우는 유리 벽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절규했다. “당신은 짐승이에요! 이 모든 게 다 당신 때문이에요! 엄마가 그렇게 된 것도 당신 때문이에요! 엄마를 농락하고 괴롭히지 않았다면, 엄마는 절대 다중인격 장애에 걸리지 않았을 거예요... 결국 엄마는 죽었어요. 이제야 만족하신가요?”“뭐라고?” 육명진은 잠시 멍하더니 곧이어 더욱 크게 웃어댔다.교도관들이 몇 차례 경고했지만, 육명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교도관들은 육명진을 강제로 끌어넣기 시작했다. 밖에 있던 여자 교도관은 육연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자리에 앉게 했다.육명진이 철문 안으로 끌려가던 순간,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눈빛을 번뜩였다. 마치 지옥의 깊은 구렁에서 나온 눈빛 같았다.“흥, 연우야, 넌 내 딸이잖아!”“육경섭 부부가 정말 너를 진심으로 아껴줄 것 같아? 언젠가 너도 그 사람들에게 버림받게 될 거야!”“차라리 우리 셋이 지옥에서 다시 만나자! 하하하하하...”“꺼져버려요!” 육연우는 다시 감정이 폭발해 통제 불능이 되었고 두 명의 교도관이 육연우를 억누르며 간신히 진정시켰다.차가운 방은 고요해졌지만, 육연우의 절망 어린 울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 채 육연우는 구치소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바깥 하늘은 맑고 푸르렀으며 햇살이 밝게 내리쬐었지만, 육연우는 여전히 추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듯한 차가움이 육연우를 감쌌다. 그때, 최군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직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그쪽에서는 밝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연우야, 내
최군성은 이제 더 이상 목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됐다. 의사는 최군성이 타고난 체력과 함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마음가짐 덕분에 빠르게 회복했다고 말했다. 최군성은 드디어 자랑할 것이 생겼다며 부모님과 형, 형수 앞에서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예전에 나보고 맨날 웃기만 한다고 뭐라 하셨잖아요! 그런데 보세요, 웃으면 젊어진다니까요! 좋은 기분이야말로 모든 병을 고치는 만병통치약이에요!!”하지만 성소월이 죽고 난 후, 육연우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고 최군성의 웃음도 함께 줄어들었다.육연우가 최씨 집안 별장에 도착했다. 최군성에게는 따로 집이 있었지만, 부상 이후 강서연은 그가 혼자 지내지 못하도록 이곳에서 돌보겠다고 고집했다.최군성은 소파 옆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은빛 작은 아기 고양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고양이들은 약한 울음소리를 내며 사람의 마음을 녹일 듯했다.최군성은 고양이들이 아직 어리다 보니 젖을 잘 먹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몇 개의 젖병을 준비했다. 젖병에 우유를 채워 조심스럽게 고양이들에게 먹이던 최군성은, 세심한 이 일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금세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최군성이 고개를 들어 보니 육연우가 서 있었다. 최군성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연우야, 빨리 와봐!”“이것 봐, 얼마나 귀여워!” 최군성은 웃으며 부드러운 면 천으로 고양이 입가의 우유를 닦아냈다.육연우는 그 모습을 보며 참지 못하고 칭찬했다.“말 세심하게 돌봐주고 있네요.”“별거 아닌걸.” 최군성은 웃으며 말했다. “아직 애들이 너무 작잖아, 당연히 부드럽게 돌봐야지! 그런데 너는 어떤 애가 제일 마음에 들어? 다 마음에 들면 우리 다 데리고 있자. 내 친구는 아주 후한 사람이야.”“어떤 친구요?”“너도 한 번 본 적 있을걸. 백 아저씨네 막내딸이야!”육연우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한 번 연회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배경원은 최연준과 육경섭과도 깊은 친분이 있는 사람이다.소문에 따르면 배경원의 부인은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백
최군성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환하게 웃으며 육연우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나도 빨리 너랑 결혼하고 싶어.” 최군성은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성 아줌마가 방금 돌아가셨잖아. 우리가 지금 결혼식을 올리는 건 좀 안 맞을 것 같아.”“군성 씨도 그런 걸 신경 쓰는 거예요?”“그런 건 아니야.” 최군성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래. 집안에 상을 치른 지 얼마 안 됐는데 바로 결혼식을 올리면 남들이 이상하게 볼 거야.”“군성 씨, 남들 눈치를 보는 거예요?”최군성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문이 막혔다.최군성은 요즘 육연우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아니, 사실 오늘뿐만이 아니었다. 성소월이 세상을 떠난 후로 육연우의 모든 행복은 마치 육연우의 엄마와 함께 사라져 버린 듯했다. 육연우는 민감하고 의심이 많아졌으며 웃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원래 내성적이던 성격은 이제 더욱 음침하고 우울해졌다.최군성은 계속해서 육연우를 기쁘게 해주려 애썼지만, 엄마가 눈앞에서 죽는 걸 본 사람이 그 상처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최군성은 육연우의 손을 꼭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연우야, 너도 알잖아, 난 남들 시선에 연연해하는 사람이 아니야. 난... 난 그저 네가 사람들이 하는 얘기로 상처받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육연우는 깊은숨을 내쉬며 차분해지려고 애썼다.육연우는 방금 자신이 조금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최군성과의 결혼은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최씨 집안에서도 결혼 예물까지 다 보냈으니, 결혼을 취소할 리는 없었다.하지만... 이 결혼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육연우의 마음은 계속 불안할 것이었다. 최군성은 세상에서 육연우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마저도 잃을까 봐 너무나 두려웠다.육연우는 최군성의 손을 더 꽉 쥐며 깊은 눈동자 속에서 잠시 침묵한 후 조용히 물었다.“우리 결혼할 거죠, 맞죠?”“그럼, 당연하지.” 최군성은 확신에 찬 목소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맹세를 하겠다고 한 거니?”강서연은 물으면서 무심결에 육연우를 한 번 쳐다보았다. 육연우는 옷자락을 꼭 쥐고 마치 무척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강서연은 자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 혹시 육연우를 겁주지는 않았는지 고민했다.방금 일은 아마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 흔히 있을 법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도 젊었을 때는 최연준이 온갖 맹세를 다 했던 것이 기억난다.하지만... 맹세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억지로 맹세하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강서연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괜히 예민하게 구는 걸지도 모르지만 어떤 경우에도 아들이 상처받는 일은 원치 않았다.“군성아, 맹세는 아주 신성한 거란다. 하늘 위에 신이 계신다고 하잖니. 함부로 맹세하면 신이 벌을 내리실지도 몰라.”“엄마!” 최군형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누가 맹세를 함부로 한다고 그래요? 나도 진지하게 맹세하려던 거예요!”“너는...” 강서연은 눈을 크게 뜨며 최군성을 노려보았다. 둘째 아들은 참 무슨 일이든 가볍게 넘기는 법이 있었다. 최군형이였다면 강서연이 나서기도 전에 모든 스스로 해결했을 텐데.게다가 소유는 결코 군형에게 맹세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을 것이다.강서연은 다시 육연우를 바라보았다.그리고 임우정이 한 말들이 떠오르면서 강소연의 마음속에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정말이지, 너는 참.” 강서연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중요한 맹세는 결혼식 때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거야.”“네, 맞아요!” 최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말이 맞아요!”모자가 서로 눈을 맞추며 웃었다.그 장면은 육연우의 가슴에 가시처럼 깊숙이 박혔다. 크게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있을 깊은 상처가 될 것이었다.그날 이후로 강서연은 최군성과 육연우가 단둘이 있는 시간을 피하도록 신경 썼다. 아들이 누군가에게 맞추기 위해 억지로 맹세하는 모습은 어느 어머니라도 받아들일 수 없
강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최연준의 품에 기대어 부드럽게 웃었다.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걸어온 지금도, 최연준은 여전히 강서연의 안식처이고 보호해 주는 낙하산이자, 슈퍼맨이었다. ...백인서는 육자 그룹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넘었다. 받은 첫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이 숫자는 꽤 만족시켰다. 유일한 아쉬움은 이 월급이 기본급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반면 동료들은 모두 활짝 웃으며 분명히 꽤 높은 성과급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어떤 사람의 인센티브는 심지어 작은 스포츠카를 현금으로 살 수 있을 정도였다. 백인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백인서는 동료들이 많은 돈을 받는 것을 솔직히 부러워하지 않았다.돈은 이미 백인서에게 있어 외적인 것이었다. 백인서는 그저 이 한 달 동안 한 채의 집도 팔지 못한 자신의 실적을 원망할 뿐이었다. 실적이 없다는 것은 언니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는 뜻이었다.자리에 앉아 있던 중, 갑자기 누군가 백인서의 어깨를 툭툭 쳤다. 놀라서 돌아보니 주우남이 상냥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첫 월급 받으니 기분이 좋지?” 백인서는 급히 일어나며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하지 마. 계속 열심히 하면 돼.” 주우남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회의실로 와. 팀에서 짧게 회의할 거야.” 백인서는 주우남을 따라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회의실에 모여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백인서는 신입이었기에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고 동혜림은 백인서를 한 번 쳐다보고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이, 오양.”동혜림이 일부러 크게 말했다.“이번 달에 판매왕은 너지?” “에이, 동 언니, 너무 과찬이에요. 저 겨우 다섯 채 팔았어요.” “다섯 채나 팔았으면 잘한 거지. 어떤 사람은... 흥, 한 채도 못 팔았잖아.” 구석에 있던 백인서는 그 소리를 듣고 손에 쥔 펜을 꽉 쥐었다. 주먹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동 언니.”오양은 목소리를 낮춰 동혜림에게 눈짓을 주었지만 동혜림
게다가 주우남은 경험이 풍부한 선배 영업사원을 백인서에게 붙여주며, 두 번째 달에는 반드시 성과를 내라고 했다. 회의 내내, 동혜림은 마음이 딴데 가 있었다. 첫째는 주우남에게 놀란 것이고, 둘째는 백인서에게 복수할 방법을 궁리하느라 그랬다. 하지만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자, 가장 원초적인 방법을 쓰기로 했다. 회의가 끝나자 동혜림은 주우남의 사무실로 찾아가 직접 따지기 시작했다. “주 언니!”동혜림은 목소리를 길게 빼고 불평했다.“회의에서 무슨 뜻이에요? 이게 공개적으로 제 체면을 구기는 것 아닌가요?” “어?”주우남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내가 어떻게 네 체면을 구겼다는 거야?” “제가 반년 동안 개업도 못 했다고 하셨잖아요.” 주우남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동혜림을 올려다보며 말했다.“내가 틀린 말 했니?” “그건...” “네가 먼저 백인서가 한 달 동안 실적이 없다고 떠들었잖아.”주우남이 냉소를 지었다.“재클린, 우리 영업팀은 한두 달 실적이 없는 건 흔한 일이야. 특히 백인서는 신입이잖아. 그렇게 비아냥거릴 필요는 없지 않니? 백인서는 우리 팀의 일원이고, 망신을 당한다고 해서 네게 득이 되는 것도 아니야.” 동혜림은 화가 나 얼굴이 창백해졌고 눈을 크게 떴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재클린.”주우남은 재클린을 쳐다보며 말했다.“평소에 네가 어떤 대표와 관계가 있어서 내가 너에게 뭐라 하지 않았지만, 기억해 둬. 너는 내 직원이야. 그 대표가 이 자리에 서 있다고 해도 내가 한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할 거야.” “백인서가 이 회사에 온 지 한 달 되었지만 너는 계속 백인서를 괴롭혔지. 하지만 백인서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니? 동혜림, 사람을 괴롭히더라도 정도껏 해야지.” “게다가, 나라면 그 대표의 부인을 상대하는 데 더 신경을 썼을 거야.”주우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듣자 하니 요즘 그 부인이 매일 사랑의 도시락을 챙겨준다면서.” 동혜림은 속이 꽉 막힌 듯한 기분이 들어
“너...”동혜림은 말문이 막히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백인서를 한 번 노려보고는 확 돌아섰지만 하이힐이 너무 높아서 몇 발짝 휘청거리다 발목을 심하게 접질렸다. “아악.”동혜림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휘청거려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주변을 지나가던 동료들은 웃음을 참으며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백인서는 조용히 이 장면을 지켜보며 고개를 저었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그녀에게 경멸의 눈빛을 던졌다. “백인서!”동혜림은 균형을 잡은 후 백인서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두고 봐!”백인서는 등을 돌린 채 손을 흔들며 유유히 걸어 나갔다. 사실 이 여자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싶었다. 과거 사회의 밑바닥에서 고군분투하던 시절, 종종 불쾌한 사람들을 마주쳤고 가운뎃손가락을 들며 욕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 기술이 되었다. 이론적으로는 백 명의 동혜림도 백인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방금 그 순간, 백인서는 동혜림을 혼내주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았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지금 백인서는 육자 그룹에 소속되어 있었고 강소아에게 민망한 일을 만들 수 없었다. 그리고 방금 그 순간, 백인서는 어떤 사람이 떠올랐다. 만약 자신이 욕하며 가운뎃손가락을 드는 모습을 본다면, 자신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을까? 그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본다면 아마 밥그릇 안에 더 이상 하트 모양의 달걀 프라이는 없을 것이다. 백인서는 복도를 돌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빠르게 자리에 앉아 모든 불쾌한 감정을 잊고 일에 전념했다. 퇴근 후, 백인서는 회사 건물 아래에서 또다시 최지용을 보게 되었다. 백인서는 최지용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최지용은 마치 황제의 명을 받은 듯 백인서의 뒤를 따랐다. 회사에서 한참 떨어진 거리까지 걸어간 후에야 최지용은 백인서와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용기를 냈다. 백인서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밝은 햇살이 내리비쳤다. “저기...”최지용은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