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그만 하세요!”선우의 호통에 정윤은 깜짝 놀라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서있었다.어느새 눈가가 붉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모습으로 그녀는 바들바들 떨었다.옆에서 보고 있던 지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지금은 일단 그럴 일 없습니다. 지금으로선 다른 의사분을 찾아 음식물 섭취가 아닌 다른 경로로 영양분을 채울 방법을 알아보는 게 최선입니다. 방법은 늘 있지만 그래도 정상적으로 식사를 하시는 게 가장 좋겠죠. 그 방법도 오래는 못 버틸 겁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음식을 먹지 않으면 몸이 망가져요. 죽진 않겠지만 죽어가겠죠. 그러다 결국엔...”그는 말을 잇지 않았지만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선우는 검은 눈으로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은 칼로 난도질당한 듯 아려왔다.“대표님...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그때, 선우가 방에 들어가려는 정윤을 불러세웠다.“따라와요.”“네?”무슨 일로 보자는 건진 모르지만, 집주인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으니 정윤은 그를 순순히 따라갔다.가기 전에 선우는 우진을 힐끗 쳐다보고 말했다.“윤아 잘 지키세요. 무슨 일 있으면 부르고.”우진은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선우와 정윤이 간 후에도 우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고개를 들어 윤아의 방문을 보자 그때 그의 선택이 떠올랐다.선우가 일부러 그에게 기회를 준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왜 그날 정윤과 함께 밖에 나가게 했겠는가.정말 그런 거든 아니든 우진은 그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방 안은 커튼이 쳐져 있어 한 줌의 빛도 없었다. 창문도 허약한 윤아의 몸 상태를 고려해 아주 작은 틈만 벌어지게 열려있었다.방 안의 공기는 후덥지근했고 오래 있으면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우진은 이런 환경에 있으면 병이 더 악화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생각이 들었다.윤아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는데 아마도 잠에 든 모양이다. 우진은 다가가 자는 윤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윤아 님.”그러나 그의
‘아이. 아이가 있었어?’‘어쩐지 뭔가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기분이라 했더니.’윤아는 다시 생기를 되찾은 듯 보이자 우진은 문 쪽을 한번 보고는 서둘러 말했다.“윤아 님. 이 일은 다른 사람한테는 일단 말하지 마세요. 제가 대표님과 상의해 볼 수도 있을지 몰라요. 대표님도... 윤아 님이 설득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그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윤아뿐일 거다.“설득이요?”윤아는 조금 전의 시체 같은 모습 대신 든든한 기둥을 부여잡고 있는 듯 강인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허약한 몸을 일으키려고까지 했다.“날 내보내달라고 설득하라고요? 지금 제가 이 꼴이 되도록 절대 안 풀어주던 사람이 그걸로 설득한다고 받아줄까요?”“어쨌든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몸을 망쳐가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요.”예전이었으면 몸이 망가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우진이 아이에 대해 말해준 뒤로는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그래요. 해볼게요. 그런데 제가 기억이 전혀 없어서 혹시 전의 일들을 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제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그럼요.”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대표님이 곧 돌아올 거예요. 지금 말씀드리긴 힘들고 듣고 싶으시면 오늘 밤 저를 찾아오세요.”“네.”“그럼... 식사는 하실 건가요?”윤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미소를 띠어 보였다.“아이를 위해서라도 먹어야죠.”얼마 만에 보는 그녀의 웃는 얼굴인가. 우진은 그 모습에 잠시 멈춰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전 이만 나가볼게요. 대표님도 아마 금방 돌아오실 거예요. 먹을 걸 준비해 오실 테니 좀 드세요. 내일은 의사분께도 좀 협조하시고 치료받는 척이라도 하세요.”“그럴게요.”윤아는 말을 멈추었다가 우진이 나가려 하자 다시 입을 뗐다.“참,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방을 나서려던 우진의 발걸음이 멈추었다.“네.”“내 아이... 어떻게 생겼어요? 사진 같은 건 없어요? 좀 보고 싶은데.”우진은 잠시 멈칫하더니
정윤은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어딘가 달라진 분위기에 조심스레 물건을 들고 다가가 말했다.“윤아 님. 대표님이 주방에서 드실 것 좀 준비해 주셨어요. 새로 온 셰프가 만든 건데 드셔보실래요?”그러자 정윤은 윤아가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새로 온 요리사가 대단하다고 해요. 전에 거식증 환자들한테 음식도 만들어 줬던 분이래요. 음식도 독특하게 한다는데 드셔보시지 않으시겠어요?”그 사람이 대단하든 아니든 윤아가 신경 쓸 리가 있나.윤아는 우진과 이야기를 나눈 후 음식을 먹고 싶어졌다. 식욕이 생긴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언젠가 여기서 떠나서 자신의 두 아이를 만나기 위해 그녀는 반드시 음식을 먹어야 했다. 많이든 적게든 먹어서 스스로를 지탱해야 하니까.때문에 정윤이 몇 마디만 했는데 윤아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원래 이맘때쯤 윤아는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정윤은 윤아가 먹기 싫어할까 봐 걱정했지만 뜻밖의 말에 쟁반을 든 채 깜짝 놀랐다.“윤아 님. 보세요, 과육이 얼마나 예쁘게 만들어졌는지. 제가 방금 몰래 맡아봤는데 향도 정말 좋아요.”정윤은 요즘 윤아에게 대령 되는 음식을 볼 때마다 먹고 싶어지는 걸 꾹 참느라 힘들었던 참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윤아에게 음식을 먹이기 위해 부엌 쪽 사람들도 애를 썼다고 할 수 있다.매번 그녀가 음식을 나르러 갈 때마다 한 입만 먹어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지만 윤아가 못 먹을 것을 생각하니 그녀를 대신해서 괴로워했다.윤아는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느낄 생각도 없이 마구 떠먹었다.정윤은 옆에서 기대 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음식을 먹는 윤아의 얼굴에 표정이 전혀 없어 이번에도 맛없다고 느끼고 몇 입 먹고 치울 것이라 예상했다.때문에 이번에도 음식을 치우려고 옆에서 기다렸다.그러나 그녀의 예상과 달리 윤아는 평소 먹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먹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였고 음식을 원했지만 기쁜 내색 하나 없었다.그러다 결국...“우웩.”윤아는 갑자기 헛구역질하
갑자기 기운을 너무 많이 썼더니 힘들어진 윤아는 곧 잠에 들었다.-한편, 우진도 선우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화가 아주 많이 나 있는 상태였는지 전화가 걸리자마자 우진에게 왜 선우의 핸드폰이 꺼져있냐며 당장 키라고 꾸짖었다.그 말에 우진은 전방의 복도를 힐끗 보았다.선우는 조금 전 나간 뒤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갑자기 선우를 찾으시는 건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생각 끝에 우진이 말했다.“회장님, 대표님 지금 자리에 안 계십니다. 전하실 말씀 있으시면 제가 전달하겠습니다.”“어디서 모르는 척이야. 네가 걔 비서인데 무슨 일인지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심씨 집안의 그 아가씨 당장 보내줘!”그 말에 우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다른 일로 선우를 찾는 줄 알았는데 윤아 일로 연락이 온 거였다니.‘그러니까 지금 회장님도 이 일을 알게 됐고 윤아 님을 풀어주라고 하고 계시다는거지? 두 사람은 이미 통화를 한 상황이고 대표님은 당연히 싫다고 했을 테니 그 뒤로 핸드폰을 꺼버린 모양이군.’선우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지금 우진에게 윤아를 보내주라고 연락이 온 것이다.우진이 한창 상황 파악 중인데 수화기 너머로 말이 들려왔다.“됐다. 선우한텐 이런 말 하지 말고 지금 바로 그 아가씨 빼돌려서 귀국시켜.”무슨 말인지 우진은 단번에 알아챘다. 선우 몰래 이 일을 끝내란 말이다.우진은 입술을 꾹 깨물더니 말했다.“회장님.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그 말에 또다시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뭐라고? 안되긴 뭐가 안돼? 너도 이선우 그놈처럼 나한테 반항하는 거냐? 잊지 마. 난 그 애 할아버지다. 지금 이 가문은 내 손안에 있다고. 너 하나쯤 내쫓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거야.”이런 협박을 듣는 게 처음은 아니라 우진은 침착하게 받아들였다.“회장님. 그런 게 아니라 대표님이 이미 제 권력은 모조리 압수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그 말에 선우의 할아버지도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있었다.“그게 무슨 말이야? 그 자식이 여자 하나
이 생각이 떠오르자 우진은 자신이 어느새 선우에 대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음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선우는 정말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그럼 지금 그놈 주변에 이 일을 할만한 사람이 있냐?”수철이 분통을 터뜨린 뒤 다시 물었다.“그건 잘 모르겠습니다.”지금 그는 우진에게 많은 일을 시키고 있지만 오직 그것뿐이고 일단 그 범위를 넘어서면 다른 사람의 간섭을 일절 받지 않는다.“몰라? 네가 선우 옆에 있은 세월이 얼만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늙은이라고 내가 우스워 보이냐?”하지만 수철이 아무리 화를 내도 우진은 시종일관 덤덤한 모습이었다.“회장님도 한때 이씨 가문을 손에 넣고 쥐락펴락하시던 분인데 제가 어찌 감히 속일 수 있겠습니까? 못 믿으시겠으면 가서 조사해 보세요.”그가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것을 보자 수철은 의심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비서와 눈을 마주쳤다.비서가 상황을 보고 그에게 고개를 가로저었다.수철은 입술을 오므리고서야 그만두었다.“좋아. 이제 권한이 없다니 내가 직접 알아보지. 만에 하나 날 속인 거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들켰다간...”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우진도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하지만 전화를 끊기 전 그는 참지 못하고 말을 보탰다.“회장님. 정말 윤아 님을 구하고 싶으시다면 가능한 한 빨리 구해주셨으면 합니다.”그 말에 수철이 다시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냐?”“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말을 마친 우진은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핸드폰에서 다시 들려오는 바쁜 소리에 통화 종료음에 수철의 미간이 매섭게 찌푸려졌다.“이것들이 하나같이 간땡이가 부었구나. 손자놈이 내 전화를 끊은 건 그렇다 쳐도 이젠 하다 하다 비서 나부랭이까지 내 전화를 먼저 끊어?”옆에 있던 비서 보좌관이 서둘러 말렸다.“회장님. 진정하세요.”수철은 방금 들은 말을 곱씹으며 미심쩍어했다.“그 아가씨를 구하려면 될수록 빨리 구해야 한다는 말이 무
그의 아들은 이미 글렀으나 남은 손자까지 그렇게 되는 꼴은 볼 수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우진은 윤아의 방문을 한 번 보았다. 말은 내뱉었는데 소용이 있을지는 모르겠다.우진이 한창 생각에 잠겨있는데 앞에 사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그는 선우가 돌아온 것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대표님.”선우는 방문 앞에 가서 서서 눈을 고정한 채 입술을 약간 오므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는 말을 하지 않았고 우진도 옆에서 끈기 있게 기다렸다.한참 후에 선우가 입을 뗐다.“좀 어때요?”우진은 잠시 멈칫했다.‘아까 금방 보지 않았나? 왜 또 묻는 거지?’“그대로일 겁니다.”“그래요?”선우의 목소리는 아주 낮아 그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묻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진 비서.”그가 갑자기 부르자 우진이 고개를 들었다.“대표님?”검푸른 눈빛은 마치 벽을 관통해 윤아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를 미워했겠죠?”우진이 입술을 오므렸다.“지난 5년간 윤아 님에게 잘해주고 배려도 많이 해줬으니 기억을 잃든 아니든 미워하지 않을 겁니다.”“나를... 미워하지 않는다?”선우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난 어쩐지 나를 죽도록 미워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자신을 망가뜨리면서까지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아요.”한참을 쳐다보던 우진이 말했다.“윤아 님이 괴롭히는 건 자기 자신이죠.”선우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뭐라고요?”“윤아 님은 기억을 잃었고 지난 5년 동안 당신이 잘해줬던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해요. 그런데도 여기에 남아있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대표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까?”“네?”“지난번 윤아 님이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여대생 때문에 경찰 두 명이 조사를 받은 것 말고는 왜 지금까지 경찰이 오지 않는 걸까요?”우진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마치 주의를 주려는 듯 말했다.“왜 그런 건지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선우가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
“대표님. 윤아 님 몸 상태가 안 좋아지기도 했으니 이만 보내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윤아 님을 위해서도, 대표님을 위해서도...”“윤아 님 기억이 돌아온다 해도 분명 대표님이 잘해줬던 것만 기억할 겁니다. 원수지간이 될 일은 없을 거고요. 그리고 중요한 건 대표님도 윤아 님이 잘 살길 바라지 않습니까?”우진은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윤아 님이 정말 잘못될 때까지 기다릴 생각입니까? 그때가 되면 되돌리려 해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아시잖습니까.”“그만해!”감정이 북받치던 선우는 무슨 충격 때문인지 갑자기 소리를 내 끊고 음산하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누가 그런 소리를 지껄이랍니까? 진 비서가 나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 비서가 모시는 사람은 진수현이 아니라니라 나예요!”우진은 그의 감정이 통제 불능인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때부터... 그는 감정 조절이 안 되는 횟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우진은 예전에 그의 신변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 탓인지 분노도 느끼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진수현 대표님을 따라간 건 맞지만 그분도 대표님께 자비를 베풀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애초에 그분이 어쩌다 그렇게 다치게 된 건지, 대표님이 어떻게 여기서 서있을 수 있었던 건지 누구보다 잘 알지 않습니까. 그분과 윤아 님은 늘 대표님을 친구라고 생각했어요.”“친구? 내 여자를 뺏는 놈이 무슨 친구라는 겁니까?”“여자를 뺏어요?”우진이 가차 없이 반박했다.“윤아 님은 원래 진수현 대표님과 함께였어요.”“그래서요? 그 어린 계집애 앞에서 자기 옆자린 영원히 강소영이라는 말을 했어요. 그때 윤아가 무슨 심정이었을지 생각해 봤어요?”우진은 침묵했다.한참 후에야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세 분의 과거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두 사람이 여전히 대표님이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무리해서는 안 되고 그랬다간 이 일에 연루된 모든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라는 것도요.”선우는 자리를 박차고
정윤의 윤아의 행동의 보며 살짝 뿌듯했다. 하지만 선우가 윤아의 상황을 묻자 사실대로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전에 정신과 의사를 부르는 것도 너무 어려웠는데 만약 윤아가 뭘 좀 먹기 시작한다는 걸 선우가 알기라도 하면 더는 정신과 의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돌려보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생각이 길어질수록 정윤은 이 일을 선우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비록 정윤을 데려온 건 선우지만 이 모든 건 윤아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우는 지금 이상한 딜레마에 빠진 것 같았다. 정윤은 윤아가 좋아지는 게 선우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렇게 자아 설득을 마친 정윤은 윤아가 먹고 난 음식을 치우고 방을 나섰다.서재를 지나가는데 선우가 예전처럼 정윤을 불러세웠다.“오늘은 어때요?”정윤은 오늘 조금 빨리 걸어 선우를 피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했다. 고용주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건 용기가 필요했으니 말이다.하지만 선우가 거기서 지키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냥 지나가긴 그른 것 같았다.정윤은 하는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 잠깐 망설이다가 선우를 보며 하려던 말을 다시 멈췄다.하지만 정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선우가 먼저 이렇게 물었다.“예전과 똑같나요?”어떻게 말해야 들키지 않을까 고민하던 정윤이었는데 입을 열기도 전에 선우가 알아서 판단한 것이었다.그러면...아무 얘기도 안 해도 되는 건가?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거짓말을 하는 건 정윤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선우가 알아서 원하는 방향으로 판단했으니 정윤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선우는 정윤이 주저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또 전과 같은 결과라고 생각하고는 그저 손을 흔들어 정윤에게 물러가라고 했다.이에 정윤은 정말 크게 한시름 놓았다.정윤은 윤아의 병이 완전히 낫기 전까지 이렇게 쭉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랐다.선우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표정이 어두워졌다.윤아는 거의 살고 싶은 욕구가 없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소식은 아직 없었다.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