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의 말을 듣고 석훈은 즉시 머리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표했다.“그래. 이렇게 취했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안 되지. 그럼 우리...”“아니, 그냥 내 집에 데려갈게.”석훈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양훈이 갑자기 말을 가로챘다. 그의 목소리는 묵직했고 듣는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것 같았다.“아까 들었잖아. 내 이름 부르는 거. 현이 뜻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날 귀찮게 할 거야.”양훈은 수현의 오래된 친구였다. 그가 수현을 알고 지낸 세월은 석훈과 소영보다 훨씬 오래되었다.게다가 성격이 차분했고 또 평소에 쓸데없는 말 대신 늘 침묵을 유지해서 그런지 입을 열기만 해도 뭔가 중요하게 다가와 거절하기 힘들었다.지금도 그랬다.소영은 눈앞의 김양훈을 바라보았다. 비록 지금 그에겐 별 정서 기복이 보이지 않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자신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양훈은 수현의 친구였다.‘내 착각일지도 몰라.’소영은 이렇게 생각했다.석훈은 양훈의 말을 듣고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는 소영의 편을 들어 말했다.“수현이 지금 취했잖아. 내일 깨어나면 자기가 어제 뭘 말했는지 기억도 못할 텐데. 김양훈, 넌 또 그걸 믿냐?”석훈은 소영을 바라보며 빙긋 웃고는 말을 이었다.“하물며 사내자식이 수현이 잘 돌볼 수 있겠냐. 역시 소영 집으로 보내는 게 훨 나아.”양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석훈을 뚫어질세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내 말은 우선 우리 집으로 데려가고, 만약 너희들이 정 마음 놓이지 않는다면 남아서 돌보면 된다는 뜻이야.”석훈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반박했다.“김양훈 너...”“됐어, 석훈 씨. 우리 양훈 씨 말 따르자.”웃으며 석훈의 말을 끊는 소영.“양훈 씨는 늘 차분하고 세심했잖아. 나보다 더 잘 돌봐줄 거야. 내가 아까 잘못 생각했나 봐.”말을 마치고 소영은 또 양훈에게 선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속은 이미 부글부글 끓어오른 지 오래됐지만 말이다.양훈은 수현의 보기 드문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소영
석훈이 이 말을 꺼내자, 양훈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양훈이 애초에 윤아에게 이 제안을 했을 때, 그녀의 태도는 결코 나오기 싫다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런데 사실, 석훈이 소영을 집으로 데려가고 있을 때, 양훈은 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세 번 건 후에야 윤아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에요?”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고, 전에 전화할 때의 상태와는 전혀 달랐다.윤아의 앞뒤 태도의 바뀜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 양훈은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그는 물었다.“왔었죠? 설마 본 겁니까?”핸드폰 저편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나갔어요. 그 사람과 같이 있다니 잘 돌봐줘요.”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쪽에서 전화를 끊었다.처음엔 양훈은 윤아가 참 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 짚이는 데가 있었다.만약 정말 오지 않았다면 봤냐고 물었을 때 그게 뭐냐고 되물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잠시 침묵했고 조금 지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안 나갔다 답했다.양훈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석훈이 아직도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저렇게 독한 여자가 어딜 봐서 소영이보다 낫냐? 소영은 수현이의 생명의 은인이야. 그때 수현이를 구하려 자기 목숨도 마다하지 않았잖아. 손까지 다치는 바람에 지금까지 흉터 남았고. 내가 진수현이라면 반드시 강소영과 결혼한다.”석훈의 말에 양훈은 반박했다.“은혜와 사랑이 같냐?”“안돼? 소영이 또 얼마나 예쁜데. 남자라면 다 좋아할 스타일이야. 그리고 네 목숨까지 구해줬다고 생각해 봐. 그때면 같다고 여겨도 되지 않냐?”양훈은 소영에게 눈이 먼 석훈과 상대하기 싫어 방으로 들어갔다.-기나긴 밤이 지나갔다.이튿날 아침, 잠에서 깬 수현은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래서인지 머리도 느리게 돌아갔다. 그는 주위 낯선 환경을 둘러보며 몸을 일으켰다.“깼어?”양훈이 따뜻한 물을 수현의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글쎄?”양훈이 되물었다.두 사람의 시선은 공중에서 맞물렸고 잠시 눈을 맞추다 양훈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왜? 네가 바라던 사람이 아니라서 실망했냐?”누굴 말하는지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뻔히 알고 있었다.잠시 침묵하다 수현이 갑자기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실망하긴. 오든 말든 실망할 게 뭐가 있다고. 너도 참, 헛다리 짚기는.”“그래?” 양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네가 신경 쓰지 않는다니 그만 말할게.”그리고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수현의 미간은 점점 좁아지며 불쾌하다는 듯 양훈을 째려보았다.“알고 있는 거 다 말해봐. 뜸 들이지 말고.”“내가 언제 뜸을 들였다고.”의아해하는 양훈.“난 또 네가 알고 싶지 않은 줄 알았지. 듣기도 싫은 걸 말했다가 짜증이라도 내면 어떡할까 해서. 왜, 알고 싶냐?”진수현: “......”‘아 제길, 난 어쩌다가 김양훈 이 자식을 친구로 둬서는... 어우 진짜 못 살아.’수현은 더는 상대하기 싫어 이불을 걷어차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었다. 동작이 영 난폭했지만 말이다. 표정도 여간 굳어있는 게 아니었다.수현이 옷매무시를 정리한 뒤, 방문이 열리면서 석훈이 걸어들어왔다. 석훈은 수현이 깬 것을 보자 금방 달려가 인사했다. 그리고 어젯밤, 소영이 술집까지 달려와 수현이를 걱정했다는 사실도 전했다.소영이 이름을 듣자, 수현의 얼굴색은 그나마 나아졌다.“현아, 아까 소영이가 전화해서 물어봤어, 너 어떠냐고. 깼으면 알려달라고 그랬어. 어찌나 네 걱정을 하던지.”“알겠어.”수현은 핸드폰을 꺼내 주소록을 뒤지면서 소영의 연락처를 찾았다. 바로 이때, 그는 윤아와의 통화 기록을 발견했다.수현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마저 살짝 잠긴 채 급히 물었다.“어젯밤, 소영이 빼고 또 누구에게 전화했어? 아니면 전화 왔었냐?”“누군데?”석훈은 수현의 핸드폰을 화면을 힐끗 보더니 금세 알아챘다.“아, 심윤아 말해? 양훈이가 전화 걸어서 말했거든, 너
양훈은 어젯밤 일을 수현에게 알려줬다.자초지종을 전부 전해 들은 수현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양훈은 그런 수현을 잠시 지켜보다가 말을 이었다.“그런데 말이야. 윤아 씨가 술집 밖에 서 있는 우리를 보고, 특히 강소영을 보고 나타나지 않았던 건 아닐까.”양훈의 이 한마디는 수현의 정곡을 찔렀다.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생각하다가 양훈의 가설을 금세 부정했다.“아닐 거야.”양훈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그래?”“심윤아 걔 소영이와 원수 진 적도 없는데 왜 소영이를 본다고 나타나지 않았겠어.”수현은 여기까지 말하고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그냥 단순히 날 만나고 싶지 않아서겠지.”양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은 사색에 잠겼다.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두 사람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수현의 핸드폰이 울리면서 이 침묵을 깼다. 발신인은 강소영이었다.곁에 서 있던 양훈도 이걸 보고는 수현이 전화를 받으러 나가기 전 한숨 쉬며 물었다.“넌 아직도 자기가 뭘 원하는 지 모르는구나.”이 말을 들은 수현은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돌렸을 땐, 양훈은 이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수현 혼자 덩그러니 그 자리에 남아 아직도 울리고 있는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정말 제대로 결정한 거 맞아?”어제까지 윤아를 걱정하던 주현아는 오늘 새로운 소식을 들을 줄 꿈에도 몰랐었다.“응.” 윤아는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시커먼 밤하늘의 구름이 걷히고 환한 달을 맞이한 듯, 자금의 그녀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어 보였다.역시, 목표가 있어야 방황하지 않는다.예전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을 땐 앞날이 막막했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결정했더니 예전엔 캄캄했던 앞날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앞으로 해야 하는 것들을 제대로 정할 수 있었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에.“와, 진짜 너무 잘됐다.”현아는 환하게 웃으며 소영의 두 손을
“데리고 놀아?”데리고 논다는 말에 윤아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반면 현아는 잔뜩 들떠 턱까지 괴고 말했다.“그래그래. 아기와 노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모르지? 예를 들어줄게. 만약 여자아이라면 넌 매일 아이를 예쁘게 단장시킬 수 있어. 살아 있는 인형이 따로 없다니까? 너 어릴 때 슈 옷 입히기 게임 놀아봤지? 그 게임 속 캐릭터를 단장시키는 것처럼 말이야.”윤아는 침묵했다. 게임에는 손도 안 대본 그녀는 잔뜩 심각해져서는 현아를 바라보았다. 현아가 이런 생각까지 했다니.“아 참, 그때가 되면 내가 아이를 돌봐줄게.”현아는 두 손을 비비며 눈을 반짝였다.“네가 일이 바쁘면 내가 네 집으로 들어가 같이 사는 건 어때? 흐흐. 확실히 해두는데 나 절대 아이와 놀고 싶어서 너랑 같이 살겠다는 거 아니다?” 윤아는 말문이 막혔다. 현아가 왜 나더러 아이를 낳자 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아 참.”그때 현아가 갑자기 심각해지며 물었다.“잊을 뻔했네, 강소영 말이야. 어제 널 찾아왔어?”“응.”“뭐? 너한테 뭐라 했는데?”윤아는 어제 있었던 일을 현아에게 모두 말해줬다. 어제의 자초지종을 들은 현아는 이번에도 감정을 표정으로 다 드러내며 천불을 냈다.“내가 정말 못살아. 그 여자는 대체 무슨 낯짝으로 너한테 돈을 주는 건데? 자기가 뭐라고 되는 줄 아나 봐? 널 첩으로 여긴다 이거야? 아니면 뭐 진수현과 사귀는 사이라도 돼? 어디서 안주인 행세를 하고 있어.”현아가 강소영 욕을 신명 나게 하고 있을 때 윤아는 이제 현아를 말리기도 귀찮은 듯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현아는 태생이 이런 성격이라 분노를 쏟아낼 때 말린다면 속에서 천불이 나 화병으로 앓아누울지도 모른다.윤아는 현아가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껏 쏟아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에게 휴지를 건네주며 말했다.“이번 한 번만이야. 다음부턴 소영 씨 뭐라 하지 마.”“뭐?”현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그 여자는 지금 너를 그렇게 막 대했는데 넌 지금 그 여자 편들어주는 거
윤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핸드폰을 꼭 움켜쥐고 물었다.“왜 절 도와주는 거예요?”윤아와 강소영의 사이는 좋다고 하기도 모호한 정도였다. 둘은 진수현의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사이다. 그렇다고 평소에 그다지 친하게 지내진 않았다. 후에 진수현이 강소영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더더욱. 윤아는 그때부터 되도록 소영과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자신을 한 번도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라 생각한 적이 없기에 강소영을 증오하진 않을 수 있지만 절대로 그녀와 친구는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을 도울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소영은 윤아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윤아 씨는 수현 씨 친구잖아요. 그러면 나한테도 친구예요. 당연히 도와줘야죠. 윤아 씨도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제가 도운 것도 말하지 말고요. 그냥 수현 씨가 도운 거로 생각해요.”윤아는 소영의 말을 듣고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녀는 진수현 때문에 날 도운 거다. 윤아의 핏기 없는 입술은 뭔갈 얘기하려는 듯 한참을 달싹이다 멈췄다. 그때, 아버지의 심한 기침 소리와 함께 주변 사용인들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심인철 회장님, 괜찮으세요? 아가씨, 어서 병원으로 가야 해요!”소영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아버님 괜찮으세요? 윤아 씨, 그럼 얘기는 이만하고 어서 아버지 모시고 병원으로 가요. 기사님도 곧 도착할 거예요.”윤아의 시선은 아버지를 향했다. 그는 낯빛이 창백하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주먹을 쥔 그의 손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듯 힘이 잔뜩 들어가 더욱 애처로워 보였다. 그러다 결국, 그의 주먹이 스르륵 풀리더니 그대로 맥없이 손을 툭 떨궜다. 마치 꼭 잡고 있던 희망을 버리고 차디찬 현실에 몸을 맡기듯.윤아는 수화기 너머의 소영에게 말했다.“소영 씨에게 신세 진 거로 할게요. 고마워요.”“네? 아니에요. 그냥 수현 씨가 도운 거로 생각하고 어서 아버지 보살피
신세는 바로 그때 졌었다.그 후에도 윤아는 이리저리 도움을 요청하고 다니며 알게 됐다. 그때 강소영의 그 전화 한 통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말이다. 심씨 가문이 망하면서 모든 자산을 잃었지만 오직 그 집 한 채만 지킬 수 있었다. 이후에 다시 사업을 시작할 때도 윤아는 그 집을 아버지의 명의로 돌려 아버지가 다시 시작할 발판으로 삼으려 했었지만 그가 거절했다. 심인철은 그늘진 얼굴로 말했다.“이 집은 네가 알아서 처리하렴. 네 아버지 예전에도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이 집을 일궈냈었다. 이번에도 꼭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다. 이 집은 그 사람들에게 담보로 맡기고 강소영 씨에게 밥 한 끼 사주면서 뭐라도 도울 일이 없는지 알아봐. 신세 진 건 빨리 갚아야지.”“아빠...”그 신세가 어떻게 그리 쉽게 갚아질 수 있겠는가.심인철은 윤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아빠가 가진게 아무것도 없다 해도 절대 우리 공주님 연적한테는 머리 숙이지 않아. 걱정하지 마, 아빠 꼭 다시 일어날게. 아빠가 친구한테 이미 말해놨어. 그 친구가 우릴 도와줄 거야.”아니, 거짓말이다.윤아는 아버지가 통화할 때 그 사람에게 거절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가 말한 그 친구는 오래전 우리 집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분이다. 하지만 우리 집안이 도움이 필요한 지금, 그 사람은 발을 빼고 우리를 배신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다 윤아의 걱정을 덜기 위함이었다. 더우기는 윤아가 강소영의 도움을 더는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였다.윤아는 머리를 떨구고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녀의 모습은 초라했고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아빠.우리 진천명 아저씨를 찾아가는 건 어때요...”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심인철은 낯빛이 어두워져서는 말했다.“안돼!”“그가 지금은 이 일들을 모르고 있다지만 만약 알게 된다면 우리가 도움을 구하지 않아도 주동적으로 우릴 도우려 할 거다. 하지만 윤아야, 그의 도움을 받는다면 넌 이제 어떡하니? 우리 공주님... 내가 널 정말 공주님처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흘렀다니. 그동안 일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선월은 주말에만 수현과 함께 자신을 보러 오는 것을 허락했다. 어쩌다가 다른 시간에 가기라도 하면 화를 내시곤 했다.지난 2년 동안 윤아는 매주 주말마다 수현과 함께 할머님을 뵈러 갔었다. 하지만 수현은 어젯밤에 그렇게 잔뜩 취해 강소영과 함께 갔으니 아마 지금쯤...마침 그때 운전 기사님이 물었다.“대표님께 전화 드릴까요?”윤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아뇨. 수현 씨는 이번 주에 시간 없으니 연락할 필요 없어요.”그의 말에 기사분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오늘은 저 혼자서 갈게요.”운전기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운전을 계속했다. 진씨 집안에 오래 있었다 보니 그저 사용인 중 한 명인 그도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런저런 소문들도 떠다니니 요 며칠 윤아의 모습이 몹시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일개 사용인이 그들의 일에 지나치게 신경 쓸 것도 아니었다._남성의 가장 좋은 요양원.윤아가 도착하자 직원분들이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사모님 오셨어요? 어르신이 방금까지도 사모님 얘기하셨는데. 저희 직원이 어르신 모시고 정원 한 바퀴 돌다 오려 했는데 방에서 사모님 기다려야 한다고 싫다 하시더라고요. 사모님 오셨는데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고.”윤아는 피식 웃음을 띠였다.“제가 좀 기다려도 괜찮은데.”“아무래도 일주일에 딱 한 번만 오시니까 그 시간이 소중하신 거죠. 10분이라도 더 볼 수 있으면 더 보고 싶은 마음이세요.”직원분의 말을 듣던 윤아는 순간 멈칫했다. 이윽고 그녀는 쎄한 감이 들어 물었다.“요즘 할머님 기분은 어떠세요? 괜찮나요?”“기분은 괜찮으세요. 별다른 기복도 없고요.”“드시는 건 어떠세요? 잠은요?”“별다를 건 없으세요.”“네, 감사해요.”윤아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도 부탁 좀 드릴게요. 할머님 최근 수면시간 좀 체크 해 주세요. 그리고 식사량도요.”윤아의 부탁에 간병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