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은 윤아가 돈을 받지 않겠다는 말을 한 후, 눈에 띄게 당황했다.귀국한 뒤, 그녀는 수현이 윤아를 대하는 태도가 미묘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수현은 아직 윤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만약 그가 알게 된다면...소영도 수현이 어떤 선택을 할지 몰랐다.하지만, 그녀의 촉이 알려주기를, 수현이 이 사실을 안다면 절대 그리 쉽게 윤아를 놓지 않을 것이다.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소영은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윤아 씨, 혹시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할까 봐 두려워서 그래요?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이 돈은 내 사비라 다른 이들이 아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나도 윤아 씨 걱정돼서 그래요. 어쨌든 윤아 씨 형편...”“강소영 씨.”윤아는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어갔다.“우선, 걱정해 준 거 고마워요. 우리 집 망한 건 맞지만 이 몇 년간 계속 노력하고 있다 보니 예전 같진 않아도 나와...”잠시 멈칫한 윤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날 먹여 살리는 건 문제 없어요. 그리고 소영 씨 예전에 나 많이 도와줬잖아요. 그러니 어떻게 이 돈을 더 받겠어요.”“괜찮아요. 이건 내가 윤아 씨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아뇨. 정말 못 받아요.”윤아는 봉투를 다시 소영의 손에 쥐여주고는 뒤로 물러서서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이 모습을 본 소영은 순간 뭔가를 알아챘다.윤아가 그녀의 돈을 거절한 것과 아까 말하다 멈칫한 것, 명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으나 소영은 그 뜻을 제대로 알아들었다.‘자신과 아이를 먹여 살릴 수 있다 했어... 설마 아이를 낳겠다고?’이렇게 생각하자, 소영의 얼굴엔 핏기가 가시면서 창백하게 변했다.선한 이미지를 깨기 싫었지만 더는 입가의 웃음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소영은 서늘하게 물었다.“진심이에요?”윤아는 큰 반응을 보이는 소영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소영은 그녀의 결정을 바꿀 수 없었으니까.“네. 미안하게 됐어요. 소영 씨가 오기 전에 이미 마음 먹은 일이었거든요.”이
이런 마음가짐은 그녀가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윤아는 손을 들어 조심스레 아랫배를 만졌다. 그녀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이젠 그녀의 세상엔 또 한 명의 가족이 생기는 거였다.‘아가, 아빠 몫까지 엄마가 다 해줄게.’-어느덧 밖이 어둑어둑해졌다.물건을 정리하면서 오늘 밤 수현이 돌아올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별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차의 전조등이 대문을 비추는 것을 보자, 윤아는 난간에 걸친 손을 움츠렸다.진수현의 차였다.마침 잘 됐다. 윤아는 오늘 저녁에 그와 모든 얘기를 끝낼 예정이었다.결정을 내리고 그녀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짐 정리를 했다.평소에 쇼핑을 즐기지 않아서인지 물건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정리가 빠르게 진행되리라 여겼지만 정작 정리하다 보니 참 힘들었다.여기에서 보낸 이년이란 시간 동안, 그녀의 생활과 습관은 이미 이 방 곳곳에 스며들었다. 옷장, 침대, 화장대, 세면대, 소파 심지어 티 테이블에 놓인 여러 가지 물건 그리고 선반 위의 장식품들... 이 모든 것들에 그녀의 자취가 남겨졌다.결국 윤아는 옷 몇 벌과 일용품만 간단히 챙겼다.찰칵-밖에서 문고리를 비틀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윤아는 멈칫 동작을 멈추었다. 곧이어 차분하고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윤아는 끝까지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수현은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마 그녀가 평생을 다 해도 갚지 못할 정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수현에게 불쾌한 기색을 나타낼 수 없었다. 하지만 수현과 소영의 여러 번의 암시는 그녀를 난감하게 했다.발걸음 소리가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가 갑자기 우뚝 멈췄다.윤아는 길게 숨을 들이쉬며 감정을 억눌렀다.세상엔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도망가서는 안 될 그런 것들.수현은 미간을 좁힌 채 눈앞의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는 잘못 들어온 줄 알았다. 두 개 옅은 색의 캐리어가 가지런히 침대 옆에 놓여 있었는데
수현은 그녀의 말에 머리를 맞은 듯 어안이 벙벙해졌다.정신을 차리고 윤아를 바라보니 그녀의 눈동자엔 자조와 고통이 일렁이고 있었다.너는 왜 그런 눈빛을 하고 있는 거야...그가 자세히 보기도 전에 윤아는 머리를 숙이고 계속 짐 정리를 했다. 하지만 속도는 아까보다 훨씬 빨랐고 옷도 대수 겹쳐 캐리어에 몰아넣었다.윤아가 몸을 돌리려던 순간, 수현은 윤아의 가녀린 손목을 붙잡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왜 하필 오늘에 옮기는 건데? 그렇게 급해?”그는 비아냥 섞인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왜? 오늘 강찬영과 함께 한 그 점심 때문에 그러나?”이 말을 듣자, 윤아는 고개를 번쩍 들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비꼬지 마! 나랑 찬영 오빠가 어떤 사이인지 수현 씨가 제일 잘 알잖아!”윤아는 수현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더욱 세게 부여잡으면서 그녀가 조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수현의 미간이 일그러지면서 눈썹 주변으로 사나운 기운이 일었다.“내가 틀린 말 했나? 강찬영 때문이 아니라면 왜 이러는 건데?” 자기 손을 뿌리치지 못해 안달인 저 여자를 보니 알 수 없는 불쾌함이 일었다. 그의 얼굴엔 싸늘한 냉소가 퍼져나갔다.“역시, 이 년간 답답했나 봐?”윤아는 몸부림치는 것을 잠시 멈추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 수현을 바라보았다.“수현 씨, 말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수현 씨가 이혼하자고 했잖아.”“그래.” 무표정하게 대답하는 수현.“너도 원하지 않았어? 내가 이혼 얘기 꺼내기 바쁘게 다른 남자와 점심을 함께 하지 않겠는가, 짐 정리를 하지 않겠는가. 심윤아 마음에 쏙 드는 제안 했네, 내가.”“...”진수현이 소영에 대한 감정을 알고 있지만 않았어도 수현이 질투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상, 어떻게 밥 한 끼 먹은 걸 가지고 저렇게 상상한단 말인가.수현이 이렇게 화내는 이유는 아마 남자 특유의 자존심이 도발되었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어쨌든 두 사람은 정식으로 이혼하지 않았고, 그의 아내란 여자
그녀는 조금의 미련도 없어 보였다. 지금 방을 따로 쓰겠다고 할 때처럼, 담담했다.윤아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힘이 점점 풀리고 있다. 손이 자유를 회복하자, 윤아는 곧 몸을 돌려 물건을 마저 정리했다.그런 윤아를 보는 수현은 가슴이 답답해 났고 화가 치밀었다. 그는 손을 뻗어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성가시다는 듯 입을 열었다.“지금 각방 쓰면 도우미들이 금방 눈치챌 거야.”이 점에 대해, 윤아도 고려해 보았다.“상관없어. 어차피 우리 곧 이혼할 거잖아.”“그러면 할머니는?”“할머님께서는 눈치채지 못할 거야.”“그걸 어떻게 장담하는데. 집안의 도우미 중 할머니 사람이 없을 것 같아?”이 말을 듣자, 윤아는 동작을 멈추었다.이건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윤아는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할머님께서 수술 마치신 다음에 다시 얘기해.”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어땠든 할머님 건강이 우선이었으니까.이 말을 들은 수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너 되게 억울해 보이네.”“괜찮아. 이렇게 사는 거 벌써 이년이나 됐잖아.”“그래? 이 년 동안 억울했다는 소린가?”“......”처음이었다. 수현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온 것은.윤아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수현과 더는 말 섞기 싫다는 태도를 보였다.아마 이성적인 대화는 불가능했을 거다.두 사람 다 그런 대화를 유지할 수 없었으니까. 어차피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을 텐데 더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수현은 잠시 윤아를 조용히 바라보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조롱하듯 말했다.“왜 그런 표정 짓고 있는 건데. 네가 날 만나고 싶지 않다면 앞으론 돌아오지 않을 게.”이 말을 마치고 수현은 성큼성큼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윤아는 한참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수현이 떠나자마자 온몸의 힘을 뺏긴 듯, 침대에 기대 스르륵 앉았다.아래층 대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그녀의 얼굴은 사색으로 뒤덮였다.이분이 지나서 집사가 헐레벌떡 윤아를 찾아왔다.“사모님, 도련님께서 왜 금방
수현은 집에서 나온 뒤, 친구 두 명을 불러 술집에 갔다.그는 한잔 또 한잔 빠르게 마셨다. 술이 아니라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신다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그런 수현을 옆에서 지켜보는 김양훈과 고석훈도 무척 놀랐다.“말려봐.”양훈은 석훈에게 눈치 주며 말했다.그러자 석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내가 말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양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이미 너무 마셨어. 이러다간 몸에 안 좋을 수도 있어.”이 말을 듣자, 석훈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서로 눈을 마주치자마자, 두 사람은 동시에 일어나 수현을 말리기 시작했다.“현아, 됐어. 그만 마셔.”“취하겠다 작정하고 마시는 건 알겠는데 이 정도까지만 해. 너 그러다가 뻗어.”그들은 말리고 있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말뿐이었고, 감히 수현의 몸에 손대진 못했다.이런 말을 듣자, 수현은 피식 웃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지라 그의 눈가는 붉어졌고 얼굴엔 불쾌하다는 기색으로 가득했다.“얘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석훈이 눈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강소영도 돌아왔잖아. 빨리 가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지는 못할망정, 왜 술이나 퍼마시고 있는 건데.”양훈은 오히려 알 것 같다는 어투로 말했다.“내가 보기엔, 소영이 돌아온 게 문제야. 그래서 이렇게 된 것 같아.”석훈은 처음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고 나니 금방 양훈의 뜻을 알아챘다. 그는 놀라서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물었다.“설마...”양훈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 양훈을 보며 석훈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그러겠네. 소영이가 돌아왔으니, 수현이 저 자식 심윤아와 이혼하겠지? 꽤 오랫동안 함께 살았을 텐데 이렇게 이혼하자니 조금 아쉬웠을 거야.”두 사람이 이렇게 한마디씩 주고받고 있을 때, 수현이 갑자기 머리를 홱 돌리더니 석훈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석훈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는 말을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헐!”석훈이 놀라 탄식을 내뱉었다.“뭐야! 취한 거야? 진짜?”탁자에 뻗어있는 수현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잠든 것처럼 말이다.“그런 것 같아.”양훈이 말했다.“와 진짜, 아까 나보고 명령하냐고 물을 때 취하지 않은 줄 알았거든? 그래서 언제 주량이 이렇게 늘었지 하고 얼마나 속 졸였는데. 역시 취한 거였어.”이 말을 마친 뒤, 석훈은 수현이 취했답시고 아까 위협당한 복수를 원 없이 했다. 양훈은 이런 석훈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한마디 했다.“너 그러다 현이 정신 차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죽고 싶냐?”그러자 석현이 급히 멈추었다.“이제 어떡해? 집에 데려다줘? 아니면...”말을 마치고 석훈은 뭔가 좋은 수가 떠올랐다는 듯 두 눈이 밝아졌다. 그는 수현의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찾아냈다.“야아.”석훈이 작게 탄식했다.“진수현 정신 말짱할 때 언제 저 자식 핸드폰을 가져가겠어. 핸드폰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그리고 내 여신님과 톡 했는지, 한번 봐 볼까.”소영은 석훈의 여신님이었다. 물론 외모나 성격에만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들 소영과 수현 사이의 이상야릇한 감정의 기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석훈은 더 이상 넘보지 않았었다.석훈은 원래 두 사람 채팅 기록을 훔쳐보려 했지만, 버튼을 누르자마자 화면이 큰 손에 가려지는 바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석훈은 고개를 들어 양훈과 눈을 마주쳤다. “친구라고 해도 프라이버시는 지켜야지.”그랬다. 양훈은 늘 듬직했고 성실했다.“알고 있어, 프라이버시.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참.”“핸드폰 줘 봐.”양훈은 석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석훈은 비록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건넸다.“뭐 하려고?”“현이 가족에게 전화할 거야.”양훈은 카카오톡에서 나가고 주소록에 들어갔다.“가족? 누구?”“심윤아.”석훈의 어리둥절한 물음에 양훈이 답했다.이 말을 듣자, 석훈은 불만 있다는 듯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왜 심윤아에게 전화 걸어
윤아는 지금 잠옷을 갈아입고는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아무리 기분이 안 좋다지만 정상적인 휴식에 영향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아일 낳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아마 끈질긴 싸움에 맞서야 할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수시로 몸을 잘 챙기면서 기운찬 정신으로 이 싸움에 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잠이 오지 않아도 침대에 누워 마음을 편히 하며 잠을 청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윤아는 화면을 보았다.수현이었다.핸드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며 윤아의 심정은 매우 복잡했다.저녁 무렵, 심하게 다툰 뒤 문을 박차고 나가는 수현을 보며 윤아는 그가 소영을 찾아갔을 거라 여겼다.그런 수현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전화를 받으려고 하는 순간, 예전에 수현이 소영더러 치게 한 전화가 떠올랐다. 어쩌면 오늘도 자신에게 뭔가 통지하려고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니 윤아는 이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계속 울리는 벨 소리가 거슬려서 결국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뜻밖에도 들려오는 건 별로 익숙하지 않은 남자 목소리였다.대략 십몇 초간 머뭇거리다 윤아는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갈아입고는 밖을 향해 걸어갔다.밤이 되니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바깥 공기를 마시자마자 윤아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이 시간이면 도우미는 물론 기사들도 자고 있었다. 그래서 윤아는 직접 운전하기로 결심하고는 차 키를 가지고 차고에 들어갔다.운전하며 술집에 가는 길, 그녀의 귓가엔 아까 양훈이 한 말이 맴돌았다.“수현이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요. 가능하다면 최대한 빨리 오는 게 좋겠어요.”‘왜 상태가 안 좋은 걸까...’‘남자의 독점욕이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건가...’윤아는 상상이 되질 않았다. 진수현 같은 남자가 취하지 못해서 안달이라니...‘또 쓸데없는 생각하고 있네. 엉망이야.’‘왜 이토록 이상하게 반응하는 건데. 설마 질투라도 하나...’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운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소영과 석훈이 수현을 부축하며 술집에서 나갔고, 그들 뒤엔 담담한 얼굴을 한 김양훈이 따르고 있었다.”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왜 갑자기 이렇게 많이 마신 건데? 석훈 씨, 수현 씨 마실 때 좀 말리지 그랬어.”여신님에게 꾸지람을 들은 석훈은 조금 슬펐다.“말렸지. 근데 너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수현이가 우리 말 들을 리가 없잖아. 말리는 사람이 너라면 모를까.”소영은 이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참, 다 성인이 된 지가 언젠데 자기 몸 아낄 줄 몰라.”그들은 힘을 모아 수현을 차에 옮겼다.윤아는 어둠 속에 서서 그들의 모습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순간,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던 수현이 갑자기 뭘 느꼈다는 듯 소영의 가녀린 손목을 덥석 잡고는 잠꼬대했다.“가, 가지마...”소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금세 정신을 차리고 수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알겠어. 나 안 갈게, 수현 씨.”여기까지 본 윤아는 더는 이 자리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그녀는 이 늦은 시각에 이곳에 온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그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이곳까지 달려와서 수모를 겪는 것이 아니라 그냥 침대에 누워 잠이나 잘 걸 그랬다.윤아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다. 왜 가슴 안쪽 깊숙한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 그들이 함부로 짓밟고 다니게 하는 건지, 왜 이걸 허용했는지 잘 모르겠다. 꼭 짓밟히고 나서 피가 나고 망가져야 단념할 텐가!윤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몸을 돌려 자리를 뜨면서 더는 그들을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그 후의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 소영이 말을 끝내자마자 수현은 갑자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비틀거리며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소영을 곁에 서 있던 석훈이 잽싸게 부축해 줬다.“소영아, 괜찮아?”소영은 머리가 멍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양이다.‘아까... 수현 씨가 날 밀친 거야?’‘아냐... 그냥 힘껏 뿌리쳤을 뿐이야.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을까? 아니면...’석훈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