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사고뭉치 아이가 윤아의 말을 듣고 손뼉 치며 기뻐할 줄이야.“좋아, 좋아요. 게으른 돼지엄마랑 게으른 돼지아빠.”“...”윤아는 침묵을 지켰다.수현은 딸이 지어준 별명에 아무 이상함도 느끼지 못한 듯 기뻐하며 아이를 품에 안았다.“윤이 대단하네. 이렇게 어린데 벌써 별명 지어줄 줄도 알고.”“...”윤아는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현이 딸아이 때문에 콩깍지가 지나치게 씌워져서 이런 듣기 싫은 호칭도 칭찬하는 것이 아닐까.“아빠 이거 좋아해요?”윤이의 관심이 순식간에 수현에게로 옮겨졌고 아이는 아빠에게 별명을 지어주는 온갖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는 윤아는 황당했지만 부녀가 노는 모습이 예쁘긴 했다. 윤이는 특히 아버지의 어깨에 엎드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기를 좋아했으며 수현도 딸바보처럼 헤벌쭉해서 즐기고 있었다.그들을 보고 있자니 입가에 저도 모르게 잔잔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에이, 고작 몇 개 듣기 싫은 별명을 지어준 것뿐인데. 다른 말썽꾸러기 아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긴 했다.금방 이해심이 넓어진 윤아는 한참 서 있다가 그제야 수현의 재촉에 정신을 차렸다.“먼저 내려가서 밥 먹어. 바보처럼 서 있지 말고.”“이미 먹었어?”“응.”“오케이. 그럼 먼저 갈게.”계단을 내려가기 전 윤아는 자신의 휴대폰도 잊지 않고 챙겼다.그녀가 계단을 내려오자 도우미가 주방으로 데리고 간 후 미리 준비한 음식을 올렸다.“감사합니다.”자리에 앉아 식사를 마친 뒤 휴대전화를 꺼내든 윤아는 마침 주현아가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았다.“윤아야, 너 너무 잘 자더라. 더 이상 있을 수 없어서 먼저 갈게. 일어나면 연락해. 쪽.”메시지를 확인한 윤아는 이 메시지를 보낼 때 주현아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도 짐작이 가는 것 같았다. 윤아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답장을 보냈다.“나 깼어.”답장을 보낸 윤아는 얼른 전화를 걸었다.주현아는 빠르게 연락을 받았다.“빨리 깼네?
연말은 늘 그랬듯 바빴기에 윤아는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가 업무를 마감했다.저녁까지 분주히 돌아쳐서야 남은 업무를 전부 완성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 회사에 나올 필요는 없었다. 그저 집에서 약간의 일 처리만 하면 된다.회사가 바쁠 때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윤아였지만 회사 일을 다 처리하고 집으로 와보니 집에서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진태범과 이선희가 처리했고 나머지는 도우미가 도와줬다. 윤아와 수현은 그저 연하장을 쓸 때만 참여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도우미도 하나둘씩 설 연휴를 보내러 고향으로 내려갔고 고향이 멀리 있거나 가족이 남아 있지 않은 도우미만 집에 남아 같이 새해를 맞이했다.…윤아도 설 계획을 묻는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수현의 집에 남아서 보낼 건지 아니면 외국으로 나와 그들과 함께 보낼 건지 말이다.심인철은 윤아가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다시 수현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수현이 그런 심인철을 혼자 찾아가 여러 번 대화를 나누었고 윤아를 속인 채 외국으로 나가 만나기까지 했다. 그러다 결국 심인철도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윤아가 기억을 잃었는데도 너를 그렇게 믿고 따른다면 네가 잘 챙겨. 만약에 윤아가 상처받는 일이 생긴다면 다시는 내 딸 너한테 맡기는 일은 없을 거야.”전에 윤아가 혼자 아이를 키우던 것만 생각하면 심인철은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상처받았으니 사위인 수현이 고울 리가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수현이라면 날을 곤두세우기도 했다.하지만 아파야 청춘이라고 어떤 감정 문제는 어른이 나서서 될 게 아니었다. 깊이 관여할수록, 내몰수록 수습하기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그리고 심인철은 딸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심인철도 결국엔 딸의 결정에 따라주었다. 그게 무슨 결정이든 말이다.하지만 그렇게 결정했다 해도 윤아를 아끼는 건 변함이 없었다.이번에 전화한 것도 연휴 계획을 확인하는 것 외
수현은 그런 윤아를 보고 뭔가 떠오른 듯 윤아의 팔을 당겨 맞은편에 앉혔다.“그럼 일단 말해볼게. 들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바꾸는 걸로 하자.”아이디어가 있다는 수현의 말에 윤아는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다.“그래, 일단 한번 말해봐.”하지만 이때 수현이 눈썹을 추켜세웠다.“말하는 건 문제 없는데, 뽀뽀해 주면 말해줄게.”“?”윤아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래서 멍한 표정으로 수현을 쳐다봤다.“뭐라고?”수현의 깊은 눈동자가 윤아의 입술로 향하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설마 못 알아들은 척하는 거야?”멈칫하던 윤아의 얼굴이 순간 빨개졌다.“진지한 얘기하고 있는데 뭐 하는 거야?”수현이 갑자기 다가오더니 뜨거운 숨결을 윤아의 얼굴에 내뿜었다.“이것도 진지한 얘긴데, 그리고 엄청 중요한 얘기지.”뜨거운 숨결을 느끼기 전에 윤아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수현이 손을 내밀어 윤아의 턱을 잡았다.“한 번만 먼저 뽀뽀해 줘 봐.”윤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싫어.”수현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내가 싫어?”싫냐는 말에 윤아는 자기도 몰래 반박했다.“아니, 어떻게 그렇게 생각해?”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녀가 수현을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그래?”수현이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리더니 큰 상처라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요즘 나랑 스킨십하는 거 계속 피했잖아. 며칠 전에는 친구 왔다고 나랑 따로 자더니 지금은 뽀뽀해달라고 해도 거절하고.”수현의 입꼬리가 묘한 각도로 올라갔다. 마치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우습다는 듯한 표정이었다.“그게 나를 싫어하는 거지 뭐야?”수현의 말에 윤아는 순간 요즘 자기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변명하기 시작했다.“아니야, 전에 스킨십을 거절한 건 회사니까 그런 거지. 사람들 몰려올까 봐 그런 거야…”윤아는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이건 너도 잘 알 거 아니야. 그리고 뒤에 너랑 따로 잔 건 현아가 와서 현아랑
윤아가 손을 내밀어 밀치려는데 이미 늦었다. 수현은 입술은 이미 저돌적으로 그녀의 입술로 향해 있었다. 익숙한 향기와 입술에서 전해지는 감촉에 윤아는 뭔가 몸이 편안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아는 눈을 감았다.윤아가 반항할 거라고 생각했던 수현은 그녀가 오히려 협조하자 멈칫하더니 이내 다시 반응하고는 더 거세게 키스했다.…한 시간 후.수현은 매우 흡족한 듯한 표정으로 윤아를 안은 채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로 희열을 감췄다. 깊이를 알 수 없던 눈동자는 다른 정서로 가득 찼다.그는 감탄하며 윤아를 더 꼭 끌어안았다.조금 전 일어난 일만 생각하면 윤아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머리를 수현의 품에 틀어박았다.그러자 수현이 웃을 때마다 가슴에서 울리는 약간의 진동도 느낄 수 있었다.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수현에게 왜 웃냐고 묻고 싶었지만 조금 전 있었던 일에 용기가 사라져 입술을 깨물고 주먹으로 응징하는 수밖에 없었다.기분이 째질 것 같은 수현은 윤아가 뭘 하든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느꼈던 냉대와 질투에 대한 보답은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두어 번 응징해도 분이 풀리지 않는 윤아는 응징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세 번 더 응징하는데 수현이 윤아의 하얀 손목을 단단히 틀어잡았다. 그러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됐어, 그만 때려.”윤아가 물었다.“한번 때리는 것도 안 돼?”“때리는 건 괜찮은데 전에 손목 아프다고 하지 않았어?”수현의 말투는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아픈 손목으로 때렸다가 통증 심해지면 어떡하려고?”“…”윤아는 할 말을 잃었다. 수현이 아무렇지 않게 낯 뜨거운 그 일을 꺼낼 줄은 몰랐다.조금 전 있었던 일만 떠올리면 윤아는 귀가 터질 것처럼 빨개져 얼른 팔을 뺐다.“진짜 부끄러운게 뭔지 모르는구나!”윤아는 씩씩거리며 이렇게 쏘아붙였다.“응, 몰라. 앞으로 매일 아까처럼만 해준다면 매일 그런 소리 들어도 좋아.”“너랑 뭔 말을 더 하겠어.”윤아는 그런
“기분 나쁠 게 뭐 있어?”수현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두 분 지금 손주 돌보는 재미에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어. 네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말하면 바로 그렇게 할걸?”“…”윤아는 말문이 막혔다. 다소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 그랬다.진태범과 이선희는 거의 하윤과 서훈에게서 눈을 못 떼고 있었다. 매일 아이를 다독이지 않으면 아이를 보고 싶어 했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데려오는 것도 윤아에서 두 사람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윤아도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윤아도 두 아이를 끔찍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태범과 이선희도 너무 한가했다. 두 사람은 이미 전적으로 회사를 수현에게 맡겼고 가끔 일이 있을 때만 참여할 뿐이었다.하윤과 서훈이 생기고 두 사람은 회사 일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수현에게 전부 맡기고는 매일 아이와 함께했고 인스타에도 손주들로 도배했다.윤아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자 수현은 아예 쐐기를 박았다.“다른 각도로 생각해 봐. 만약에 네가 윤이와 훈이를 외국으로 데리고 나갔어. 그럼 두 분은 손주 못 보는 게 아쉬워서라도 티켓 끊어서 같이 넘어갈걸?”잠깐 고민하던 윤아는 두 분이 진짜 그럴 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여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네가 얘기할래?”“아니면? 너 할 수 있겠어?”윤아는 옷깃을 꽉 부여잡더니 말했다.“못할 건 없지.”“됐어.”수현은 이 일에서는 윤아를 계속 놀리지 않았다. 그저 손으로 윤아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말했다.“넌 가만히 있어. 내가 얘기할게.”윤아는 입술을 앙다물더니 그제야 고개를 돌려 수현을 바라봤다.수현의 웃으며 윤아를 바라보고 있었다.만족감을 느낀 수현은 음침한 분위기를 뿜어내던 예전과는 달리 배불리 사냥하고 온 늑대처럼 즐거워 보였다. 그렇다고 늑대의 본성이 변하는 건 아니다. 그저 잠시 꼬리를 숨겼을 뿐이다.“근데…”윤아의 뒤통수로 향했던 손이 목덜미로 향하더니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내가 잘 처리하면 꼭 보상해 줘야 한다?”이 말을 뒤로 수현은 밖으로 나갔다.
“어머님, 죄송해요. 연하장도 보내고 새해 준비도 다 했는데 제가…”윤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선희가 윤아를 와락 끌어안았다.“바보 같긴. 사과할 필요 없어. 만약 누군가 사과를 해야 한다면 우리가 해야지.”이선희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온화했다.이선희는 이 말을 하고 나서야 윤아가 기억을 잃었다는 걸 떠올렸다. 예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윤아를 보며 이선희는 말을 돌렸다.“아무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우리한테 말해. 다 들어줄 테니까. 마음에 담아둘 필요 없어. 나한테 넌 딸 같은 존재니까.”외국으로 건너가 새해를 맞이하기로 하고 바로 그날 저녁에 티켓팅을 마쳤다.새해까지 남은 시간도 별로 없었다. 준비가 끝나고 그들은 공항으로 향했다.공항에 도착해 윤아는 현아에게 전화를 걸어 새해에는 만나지 못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윤아가 수현 일가와 같이 외국으로 건너가 새해를 보낸다는 말에 현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다 건너간다고?”“응.”“대박,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진수현 부모님이 너를 정말 많이 아끼는구나.”현아는 원래 진씨 일가에 불만을 조금 가지고 있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더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응.”“근데 외국에서 새해 보는 게 뭐 대수냐. 어디가 좋으면 어디로 가는 거지. 근데 아쉽다. 나 귀국하자마자 바로 건너가서.”현아의 말투에서 실망을 느낀 윤아가 웃으며 말했다.“너 퇴사했잖아. 나 돌아오면 또 볼 텐데 뭐, 그 뒤로도 볼 기회가 많잖아.”새해를 같이 보내지 못한다는 말에 아쉬워하던 현아는 이 말에 위로를 받고 다시 기대하기 시작했다.“맞아. 새해만 날인가, 다른 날도 많은데,”현아는 만족스러운 듯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그럼 외국에서 선물 사오는 거 잊지 마. 난 비싼 거면 돼.”“그래, 제일 비싼 걸로 내가 가져다줄게.”전화를 끊고도 윤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자 이선희가 물었다.“전에 우리 집에 놀러 온 그 아이니?”이에 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외국으로 나간다고 말했거든요.
하긴 윤아도 현아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몇 년간 업무에만 매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최근에 현아와 얘기를 나누면서 그녀는 윤아에게 숨김없이 모든 걸 다 털어놓았다.지금까지 일하면서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털어놓으면서 가게를 하나 꾸리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이 그 가게를 맡아 도와주면 된다고 덧붙였다.윤아는 원래 현아가 귀국하면 자기 회사로 데려오는 게 어떨지 고민하고 있었다. 친구이기도 하니 높은 급여로 데려올 생각이었다.하지만 윤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현아는 가게를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털어놓았고 윤아와 일부 토론도 마쳤다.윤아는 현아의 말투에서 그녀가 가게를 꾸리고 싶은 열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느낄 수 있었다. 하여 윤아는 우리 회사로 오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꺼내기 민망했다.만약 현아가 원하는 게 높은 급여였다면 귀국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주한이 현아에게 준 급여는 절대 윤아보다 낮지 않을 테니 말이다.그리고 주한의 회사는 윤아가 비길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비록 0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꽤 성숙한 기업이었다. 그러나 아직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윤아의 회사는 주한의 회사를 따라가려면 멀었다.이때 이선희는 뭔가 생각난 듯 이렇게 말했다.“너무 오래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아예 연애할 생각을 못 한 거 아니니?”윤아가 웃으며 답했다.“일이 너무 바쁜 건 맞아요.”기억을 잃은 윤아는 현아의 과거를 알지 못했기에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 현아와 대화를 나누면서 윤아도 수상함을 눈치챘다.특히 수현이 윤아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했다고 말할 때면 현아는 몹시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윤아가 자꾸만 자랑한다고 나무라며 자기도 얼른 달콤한 연애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이런 말이 반복되자 윤아도 현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연애하기 싫은 게 아니라면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이 말에 윤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어머님, 설마 지금 중매 서시려고요?”이선희가 입술을 오므린
하여 윤아는 이렇게 물 곬을 트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현아가 이 화제에 반감하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현아의 답장은 빨랐다.[말도 마. 문지방이 닳을 정도야. 다들 인심도 좋아. 사람 소개하고 이런 거 귀찮고 성가시지도 않나?]현아는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나는 나이 들어서 누구 소개하고 이런 거 절대 안 해. 이렇게 좋은 날에 재밌게 놀 생각을 해야지. 아니면 선보러 오는 거지, 쉬러 온 거야? 차라리 단체 맞선을 하는 게 낫겠어.]현아의 불평에 윤아는 웃음을 터트렸다.[그러게, 항상 명절 때면 화제가 맞선 아니면 2세 계획이라니까.][맞아. 결혼했다고 다 잘사는 건 아니더구만. 애 낳으라는 잔소리만 늘어나고.]사실 다 똑같은 처지였다.[나도 너처럼 빨리 결혼하고 애 가질걸. 그럼 오늘 같은 일도 없었겠지?]윤아는 원래 맞선 얘기를 넣어두려고 했는데 현아가 먼저 결혼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고민 또 고민하던 윤아가 이렇게 물었다.[너도 결혼 생각 있으면 뭘 더 고민해? 맞선이 미덥지 않은 거야?][당연하지. 맞선에 믿을만한 남자가 몇이나 된다고. 우리 집 친척들이 소개해 준 남자들만 놓고 봐도 사진은 멀쩡한데 카톡 추가하자마자 생얼 사진 보내달라, 안 보내면 성의가 없다, 생얼이 못나서 안 보내주는 거다, 그러더라?]윤아는 뭐라 보내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자체가 너무 이상했다.[맞선 본 사람들 다 그랬던 거야?][그건 아니야. 뭐 저마다 다른 또라이라고나 할까? 생얼샷 원하는 사람도 있고 대뜸 아이는 몇 명이나 나을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윤아는 선을 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현아가 맞닥트린 사람만 봐도 정말 신기한 사람이었다.전에도 기괴한 이야기를 종종 듣긴 했지만 직접 겪은 적이 없어 듣고 그냥 넘겼다.하지만 친구인 현아가 겪었다고 하니 그제야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윤아야, 나는 선보는 게 싫은 게 아니라 맞선으로 만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