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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0화

작가: 박윤미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

선우는 아무 말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우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매정하게 말했다.

“당장 나가세요.”

하지만 우진은 덤덤한 표정으로 안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대표님, 잊으셨나 보네요. 아까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회장님이 제게 대표님 곁을 24시간 지키라고 분부하셨다고요.”

두려울 게 없다는 듯한 우진의 모습에 선우는 그를 차갑게 쏘아보더니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선우가 사라지고 나서야 우진은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

선우네 집에서 나온 윤아는 차에 오르고 나서 쭉 창밖만 내다봤다. 수현은 윤아의 옆모습만 볼 수 있었고 그녀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차 안은 매우 조용했다. 가끔 옆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내 다시 고요해졌다.

그런 윤아를 보고 수현이 말했다.

“내일 다시 오자.”

창밖을 보며 멍을 때리던 윤아가 이 말을 듣고는 멈칫하더니 이내 반응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일?”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보고 싶지 않을 이유는 없어. 너를 만나주려 하지 않는다면 아마 너를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럴 거야.”

“…”

윤아는 조용히 수현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아마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거야. 오늘 만나주지 않으면 내일 만나고 내일도 만나주지 않으면…”

윤아가 대뜸 수현의 손을 잡았다.

“됐어.”

윤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수현의 손을 잡고 있는 힘도 매우 약했다. 수현은 그 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를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데 일단은 오지 말자.”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넌 계속 마음이 불편할 거잖아.”

윤아는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

“내가 불편할 게 뭐가 있어. 선우랑 만나는 것도 아닌데. 비록 지금 회장님이 가둬두시긴 했지만 무사하니 나도 좋아.”

적어도 소송에 걸리거나 구치소에 들어갈 필요 없이 사적으로 화해하기로 했으니 앞으로의 인생에도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전에 선우를 보러 올 때 혹시나 그런 곳에 갈까 봐 걱정했는데 참 다행이었다.

윤아에게 있어서 이런 결과를 본 것으로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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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하지만 이 일에 관해서 윤아는 바로 묻지 않았다. 윤아가 묻는다 해도 수현이 알려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일단은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다짐했다.두 사람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호텔을 잡았다. 수현은 윤아가 심심할까 봐 근처에 있는 쇼핑몰로 데리고 가서 윤아가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사주려고 했다.하지만 윤아는 바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상처가 나은지 얼마나 된다고 그래? 벌써 잊은 거야?”윤아의 말은 어딘가 좀 사나웠다.“안정을 취하라고 했잖아. 안정이 뭔지 몰라?”윤아는 화가 난 나머지 두 볼이 볼록하게 튀어 올랐다. 원래는 얌전하게 들으려고 했는데 화난 윤아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장난기가 발동한 수현이 윤아의 볼을 꼬집었다.“…”윤아는 이렇게 쏘아붙이다가 수현이 볼을 꼬집자 멍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였다.이게 뭐 하자는 거지?“뭐 하는 거야?”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수현의 팔을 밀어내며 이렇게 말했다.“이거 놔. 지금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잖아. 이렇게 나올 거야?”수현이 손으로 윤아의 볼을 두어 번 꼬집더니 눈썹을 추켜세웠다.“지금 엄청 진지하게 듣고 있는데?”“…”윤아는 말문이 막혔다.이게 어디 사람 말을 열심히 듣는 모습인가?열심히 듣는다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볼을 꼬집을까?“네가 너무 엄숙해 보이길래 기분 좀 풀어주려고.”말이 끝나기 바쁘게 수현은 다시 한번 꼬집더니 그제야 손을 내렸다.“됐어. 내가 안정을 취하길 바란다니 나가지 말아야지. 호텔에서 푹 쉬자.”“그래, 이렇게 나와야지…”윤아는 자기 볼을 어루만지더니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호텔에 있자니 너무 심심했던 윤아가 베란다로 나가 바깥 풍경을 감상했다.베란다가 꽤 컸고 아래는 노천 수영장도 있었다. 큰 수영장은 지금 햇살이 비쳐 들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지금 겨울이라 아예 수영하는 사람이 없었다. 커다란 수영장은 풍경을 감상하는 곳이 되었다.윤아는 그렇게 난간에 기대 아래로 보이는 수영장을 내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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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겨줄 수는 있는데 먼저 한가지 설명해야 할 게 있어.”“무슨 일인데?”현아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수현이 윤아를 힐끔 보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너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어.”“…”수화기 너머로 한참 침묵이 흐르더니 현아가 이렇게 쏘아붙였다.“무슨 말이야?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설마 기억 상실이 왔다고 말할 건 아니지?”“응.”현아는 너무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펄쩍 뛸 뻔했다. 돌아간 후로 윤아와 연락을 하지 않았기에 윤아가 안전하다는 것만 확인하고 그 뒤로는 무슨 상황인지 잘 몰랐다. 일이 너무 바빠 분주하게 돌아치다가 짬이 생기자 바로 윤아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전화를 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는데 전화를 하니 아예 통하지 않았다.현아는 전에 외국에 있을 때 수현의 연락처를 남겼던 게 생각났다. 수현이 무섭긴 했지만 윤아를 걱정하는 마음에 용기 내어 전화를 걸었다.그러다 결국 윤아가 기억을 잃었다는 소식을 얻게 된 것이다.현아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왜 갑자기 상황이 이렇게 된 거지?현아는 원래 수현에게 캐물으려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됐어. 일단 핸드폰 윤아한테 넘겨줘. 내가 말 좀 해보게.”수현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기에 두 사람이 대화할 때 윤아도 수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엔 업무 전화인 줄 알고 자세히 듣지 않았는데 뒤로 갈수록 자기와 관련된 내용이 나왔다.그러다 수현이 핸드폰을 넘기며 윤아에게 말했다.“네 친구.”수현이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대화해보면 생각이 좀 날 거야? 받아볼래?”윤아는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받아 갔다.“여보세요?”“윤아야!!”윤아의 목소리를 들은 현아가 흥분하며 말했다.“드디어 네 목소리를 다시 듣네? 지금 어때? 괜찮아?”윤아는 예전에 있었던 일과 사람이 기억나지 않아지만 현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뭔지 모를 익숙함과 친근함이 느껴졌다.거기다 현아의 걱정이 담긴 급박한 말투를 들으니 윤아는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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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074화

    저번에 주한이 현아와 윤아의 일을 도와주면서 현아는 주한에 대한 인상이 많이 좋아졌다. 하여 존중을 표하기 위해 연락처도 까칠남에서 대표님으로 바꿨다.현아는 잠깐 기다리다가 전화를 받으며 환하게 웃었다.“대표님?”가벼운 현아의 말투에 수화기 너머로 듣고 있던 주한이 침묵하더니 한참 지나서야 이렇게 물었다.“기분이 좋아 보이네요?”이 질문에 현아가 멈칫하더니 되물었다.“네?”“퇴사가 임박해서 기쁜 건가?”“…”현아는 할 말을 잃었다.평소 같았으면 바로 쏘아붙였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당연하죠. 퇴사하자마자 바로 고향 돌아갈 생각인데 당연히 기쁘죠.”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주한이 저번에 자기를 도왔던 게 생각나 현아는 마음을 모질게 먹지 못했다. 도와준 은혜도 모르고 이렇게 디스하면 배은망덕한 사람만 될 것이다.하여 이 말은 넣어두고 생각을 고쳤다.“아니에요. 그냥 아까 친구랑 통화해서 그래요.”“심윤아 씨요?”배주한이 물었다.“네.”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이 대화가 끝나고 둘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러다 현아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대표님,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퇴사 리포트가 올라와서요.”“아, 맞아요. 저 퇴사하고 싶어서요. 근데 퇴사하려면 리포트를 써서 올려야 하잖아요. 근데 대표님, 올린 지 몇 시간도 안 됐는데 어떻게 아셨어요?”이 질문에 주한이 잠깐 멈칫하더니 이렇게 말했다.“인사팀에서 알려준 거예요.”하지만 주한이 말하지 않은 게 있었다. 현아가 퇴사 리포트를 올리자마자 바로 주한에게 올라왔다는 것을 말이다.“아, 보셨으면 바로 결제해 주세요. 며칠 더 기다릴 필요 없겠네요.”리포트를 바칠 때 적어도 며칠은 더 기다려야 결제가 끝나겠다고 생각했는데 몇 시간 만에 주한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이 좋은 기회를 현아는 놓칠 리가 없었다. 하여 얼른 주한에게 결제해달라고 졸랐다.“…”주한은 아무 말도 없었다.대답이 없자 현아가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다.“대표님?”그래도 대답이 없자 현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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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무슨 원인이죠? 처우가 마음에 안 드나요? 월급 조정으로 안 되면 진급시켜 줄까요?”“…”현아는 말이 없었다.“다른 요구 있으면 말해도 좋아요.”현아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주한의 목소리가 듣기엔 차분하고 정상이었지만 빨라진 말에서 그가 조급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조급해? 뭐가?설마 퇴사한다고 해서?이런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현아는 이를 부정했다.하지만 배인그룹에 인재는 많았다.현재 현아가 맡고 있는 업무도 꼭 그녀여야 할 이유가 없었다.현아는 자기가 원망이 적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 외에 다른 장점은 생각나는 게 없었다. 주한만 원한다면 좋은 인재는 많을 것이다. 현아가 떠난 후 바로 자리를 대체할 사람도 수두룩하다.이렇게 생각하자 현아는 방금 자기가 한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깨달았다. 주한이 그녀의 퇴사를 안타까워할 리가 있나?안타까워한다면 아마 앞으로 쥐어짤 수 있는 사람이 없을까 봐 그럴 것이다.현아는 정신을 차리고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그런 게 아닙니다.”주한이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회사 처우에는 불만 없습니다. 제가 그간 일해왔던 회사 중 제일 좋은 회사예요.”까칠남이라고 주한을 욕한 적도 많았다. 업무가 너무 바쁘기도 했고 쩍하면 출장에 밥 먹듯이 야근했다.하지만 월급에서는 절대 섭섭지 않게 받았던 현아였다. 업무로 발생한 비용을 처리해달라고 올리면 보지도 않고 결제해 줬고 분기마다 받는 상여금과 연말 상여금도 두둑이 챙겨줬다. 평소 받는 복리후생도 좋은 편이라 티타임도 자주 했었다.아무튼 휴가 외 기타 처우는 그 어떤 회사보다도 좋았다.하지만…“처우가 제일 좋은 회사라면 왜 퇴사하려는 거죠?”주한이 하지 않은 질문이 있었다. 우리 회사보다 처우가 더 좋은 회사가 있어서 떠나고 싶은 게 아닌지 말이다.그렇다면 당연히 월급을 올려줄 생각이었다.현아는 퇴사로 인해 이렇게 많은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냥 상대가 그녀를 신경 써준다고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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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연휴 후. 윤아는 우진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우가 드디어 생각을 바꿔 더 이상 방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고 이곳을 떠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윤아는 가슴 한편을 꽉 막고 있던 응어리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요? 정말 잘됐네요. 진 비서님은요? 제가 뭘...”윤아는 우진을 자기 곁에 두려 했다. 하지만 우진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이미 선우 곁에서 오랫동안 보좌했던 터라 그의 곁에 있는 것이 편하다며 계속 선우 옆에 남겠다고 했다. 모두 자기만의 귀속이 있는 법이었기에 윤아는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우진에게 만약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그날 밤, 윤아는 이별을 고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예전에 엄청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어. 하지만 난 그 애에게 많은 폐를 끼쳤지. 심지어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애를 다치게 하기도 했어. 미안한 마음뿐이야. 그럼에도 난 여전히 걔를 사랑해. 그리고 앞으로 행복하기를 바라.][안녕.]내용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 문자를 작성하기까지 이선우는 그가 갖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메시지를 전송한 후 선우는 윤아의 답장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에겐 그녀의 답장을 볼 용기도 없었다. 선우는 U-SIM을 뽑아 그대로 휴지통에 버렸다. 더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젠 뒤돌아볼 기회조차도 없었지만. 윤아는 지금 그녀가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해 주는 사람 곁에서 앞으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이었으니까. -4월 1일쯤, 현아와 주한은 연인으로 발전했다. 같은 시기, 현아가 투자한 과일 가게가 아파트 단지에 오픈했다. 오픈 날 윤아는 현아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주한 씨 회사로 안 돌아가려고?”현아가 입술을 짓이겼다. “내가 없으면 주한 씨 회사가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네가 만약 집에서 과일 가게를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04화

    안 그래도 현아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남자를 만났으니 선희도 당연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주한은 인품이 좋아 보였기에 선희는 가운데서 두 사람을 팍팍 밀어줄 의향이 있었다. 선희가 씩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주한아, 이 절에서 인연을 빌면 신통하게 들어주신대. 도착하면 성심을 들여 절을 올리렴.”말을 마친 선희는 일부러 현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현아 너도. 왔던 김에 같이 가서 기도드려.”잘 걱도 있다 갑자기 이름을 불린 현아는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차마 말을 내뱉지 못했다. 주한은 시선을 내린 채 빨개진 현아의 볼과 귓불을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이번엔 전혀 헛된 걸음은 아닌 듯했다. 수현의 가족은 정말 따뜻한 분들이었다. 만약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어 이런 가정을 꾸릴 수만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네. 제가 간절히 기도를 드려 볼게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선희가 손을 내저으며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 일행은 10여 분 후 산꼬대기에 도착했다. 날씨가 퍽 좋았던 지라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니 구름도 더 가까이 느껴졌다. 발아래엔 산봉우리가 첩첩이 이어져 있었고 멀리 보이는 마을 풍경까지 더해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수많은 여행객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풍경 사진을 찍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풍경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도 했다. 윤아를 포함한 그들도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나서야 기도를 드리러 절로 향했다.워낙 영험하다고 소문이 난 절이라 사람으로 붐비었고 기도를 드리는 것도 줄을 서야만 했다. 주한이 자리한 곳은 마침 현아의 맞은 편이었다. 주한이 그저 예의상 하는 얘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현아는 그가 진지하게 기도를 드리러 눈까지 꼭 감고 절을 올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현아는 조금 놀라기도, 또 조금 감동적이기도 했다. 뒤에서 누군가 현아에게 말했다. “넌 안 가?”윤아의 목소리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03화

    윤아는 사실 지금 현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사귀게 된다면 그건 신분 상승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주한 씨가 너에게 그런 얘기까지 했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라는 말일 거야. 주한 씨는 네가 그런 것들에 얽매여 두 사람 사이에 걸림돌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사실 주한 같은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자수성가한 것은 물론 부모도, 친척도 없어 가족관계가 이보다 간단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은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걸어갈 미래는 전부 스스로 계획한 것이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주한이 지금 현아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그는 이미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도 알아.”현아가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사실 전엔 난 믿지 않았어. 난 그저 주한 씨가 내가 갑자기 퇴사한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윤이네 선물을 사러 갔을 때, 주한 씨가 내가 할인받아 사준 만년필을 몇 년 동안이나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별일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조 단위의 자산을 갖고 있는 주한에겐 소중한 물건이라는 얘기였다. 최소한 현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현아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윤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실 그렇게 많이 고민할 필요 없어. 만약 너도 주한 씨가 좋다면 용기 내서 한 번 만나봐. 어차피 사귄다고 해도 당장 결혼할 것도 아니잖아. 혹시 알아? 사귀고 나서 네 생각이 바뀔지?”“네 말도 맞아. 그럼 나 더 이상 고민 안 할래. 일단 연애만 해보면 되잖아. 어차피 그저 연애만 하는 것뿐이야.”깊은 고민에 빠졌던 현아는 윤아의 도움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그래. 인생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지. 실수해도 괜찮아. 처음부터 선택한 모든 길이 정확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공주야, 넌 좋은 친구야. 넌 내 인생의 구원자라고.”고민이 해결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02화

    그 말은 어느 정도 강압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의상 건넨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한을 집으로 초대한 것임이 느껴졌다. 선희가 이렇게까지 얘기를 꺼냈으니 주한도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몸을 숙였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신세는 무슨. 가요.”주한과 현아는 선희를 따라 차로 돌아갔다. 그들은 앞에 있는 차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운전하며 현아가 참지 못하고 주한에게 말했다.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주한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나중에도 오랫동안 봐야 할 사이 같아서요. 가면 얘기도 나눌 수 있고요.”현아는 순간 주한의 말 속에 담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진씨 그룹과 얘기 중인 프로젝트가 있어요?”“지금은 없어요.”“그럼 왜...”순간 현아는 뭔가를 인지한 듯 얼굴빛이 변하더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또 저 희롱하는 거죠.”“제가 언제요? 그리고 그게 어떻게 제가 현아 씨를 희롱하는 거예요? 전 지금까지 현아 씨에게 아무 짓도 한 적 없잖아요.”“네, 저에게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언어적인 희롱도 희롱이잖아요?”“그건 실제로 그런 게 아니니까 희롱이라고 할 수 없어요.”“쳇, 왜 아니에요.”현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 와중에 주한은 이미 화제를 전환했다. “두 분 모두 현아 씨를 친절하게 대해주시네요.”“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윤아와 같이 두 분 댁에 자주 갔었거든요. 그래도 절 잘 아세요.”현아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주한 씨는 어렸을 때 어떻게 지냈어요?”질문을 던진 후 현아는 살며시 주한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서 작은 표정이라도 캐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한은 여전히 평온함을 유지했다. 자신의 불행했던 유년 시절의 얘기를 꺼내도 큰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았다. “저 어렸을 때요? 거의 혼자 지냈죠.”비록 주한은 평온하게 얘기했지만 현아는 그가 사실은 비참했었던 과거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01화

    윤아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남자를 보는 눈은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정확한 법이었으니까. 서로 생각하는 것이 같을 테니 많은 행동들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래. 난 알 만날게. 수현 씨가 나 대신 봐줘. 하지만 진지하게 봐줘야 해. 대충하지 말고.”사랑하는 여자의 부탁을 수현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수현은 자기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한 남자를 관찰해야 하는 이유가 윤아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간 윤아와 현아는 서로를 꽉 껴안았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계신 관계로 짧은 포옹을 한 후 곧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전에 만난 적이 있던 지라 현아는 또 수현의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는 가지고 온 선물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현아 이모.”아무래도 몇 년간 함께 지냈던 터라 하윤과 서훈은 현아와 사이가 좋았다. 두 아이에게 현아는 곁에 있는 제일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고 제일 친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두 아이는 전혀 거리낌 없이 현아가 건네는 선물을 받고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현아의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 그러더니 하윤은 고개를 들어 주현아 뒤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더니 맑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먼저 입을 열었다. “현아 이모, 저 삼촌은 누구예요?”하윤이 주한을 가리키자 하얗던 현아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저분은... 이모 친구야. 주한 삼촌이라고 부르면 돼.”하윤은 무슨 생각인 건지 현아가 분명 설명해 줬음에 불구하고 또 갑자기 질문했다. “이모, 저 삼촌 이모 남자친구예요?”남자친구라는 말에 현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막 부인하려는데 주한의 웃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마 아가씨, 아직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삼촌이 여전히 노력하고 있어.”집안 어른들은 주한의 말을 듣고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수현의 부모님도 주한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동족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니 설사 함께 협업한 적이 없다고 해도 일면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00화

    “그건 아닌데...”현아가 고개를 저었다.“아니면 뭐가 그렇게 걱정돼요?”현아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뭐 걱정할 게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만나지도 않는데 다른 사람이 보는 건...이렇게 생각한 현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됐어요. 아직 정식으로 만나기 전인데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요.”현아가 이렇게 말하더니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현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늦었어요. 이미 봤어요.”“네?”이 말에 현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참 동안 지나서야 현아는 주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현아는 주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윤아가 수현을 데리고 도는 게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도 뒤따라 걸어오고 있었다.윤아는 현아를 발견하고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더니 얼른 주한의 품에서 벗어났다.“왜 미리 알려주지 않고 지금 와서 말해주는 거예요?”주한이 덧붙였다.“나도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현아 씨와 얘기하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더라고요.”“거짓말, 일부러 그런 거잖아요.”주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나도 일부러 그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아까 현아 씨 안으면서 신경이 온통 현아 씨 몸에 쏠려 있다 보니 두 사람이 다가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뭐 별반 다를 거 없네요.”현아가 무슨 말을 더 하려는데 윤아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가 주한이 무슨 놀라운 말을 내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주한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근 주한이 친 돌직구가 너무 많았기에 현아는 걱정되기 마련이었다....윤아는 멀리서 친구인 현아가 남자 코트로 숨어드는 걸 볼 수 있었다.원래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기억을 잃은 뒤로 주한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고 이미지도 현아가 말해준 게 전부였다.그러다 옆에 있던 수현이 주한을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199화

    현아는 주한의 돌직구를 당해낼 자신이 없어 시선을 다른데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지금 몇 시예요? 올 때 되지 않았어요?”현아의 화제 전환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주한은 이를 캐묻지 않았다. 그저 팔에 찬 시계를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10분 남았어요.”“10분이요?”현아는 착잡한 표정으로 손으로 턱을 받쳤다. 이렇게 오래 잤을 줄은 몰랐다.이미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현아는 외투를 벗어 주한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외투 돌려줄게요. 고마워요...”“괜찮아요.”주한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걸치고 있어요.”“그럼 이따 내릴 때 추울 텐데.”“몸이 좋다고 했잖아요.”“나도 나쁘진 않아요. 그리고 나도 외투 챙겨 와서 더 입으면 안 예뻐요.”현아는 이렇게 말하며 외투를 주한에게 욱여넣었다.주한은 현아가 잠도 깨고 진심으로 외투를 돌려주는 걸 보자 외투를 받아 입었다.비행기가 착륙하기까지 10분이 필요했지만 내려서 짐도 찾아야 하니 주한과 현아는 차에서 15분을 더 기다리다가 내렸다.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현아는 너무 추워 계속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에 주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몸 좋다면서 이렇게 떨어요?”현아가 말했다.“내가 언제 떨었다 그래요?”현아가 고집을 부리며 반박하는데 주한이 다시 외투를 벗었고 현아가 얼른 이를 막았다.“벗지 마요. 더 벗으면 화낼 거예요.”이를 들은 주한의 동작이 멈칫하더니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현아가 얼굴을 굳히고 엄숙하게 말했다.“벗지 말라고요!”“춥다면서요?”“그래도 벗지 마요! 벗으면 정말 화낼 거예요.”주한은 그런 현아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갑자기 작은 소리로 웃으며 지퍼를 열었다.“그래요. 안 벗을게요. 대신 들어와서 몸 좀 녹일래요?”현아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마 주한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것 같았다.“대표님...”주한이 덤덤하게 말했다.“들어와서 숨든지 아니면 내가 벗어서 주든지, 하나만 선택해요.”한참 생각하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198화

    현아의 말에 주한이 그녀를 힐끔 쳐다봤다.“나 먼저 들어가고 현아 씨 여기 혼자 남겨두라고요?”그러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현아 씨, 나는 지금 현아 씨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에요. 잊은 거 아니죠?”현아가 입술을 앙다문 채 대꾸하지 않았다.“이럴 때일수록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잘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한밤중에 여기까지 데려다줬는데 지금은 이렇게 기다리게 하고, 너무 대표님 시간 잡아먹는 것 같아서요.”“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주한은 이렇게 말하더니 외투를 벗어 현아에게 건네주었다. 현아가 손에 들린 외투를 들고 멍한 표정으로 주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왜, 왜요?”“걸쳐요.”주한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직 한 시간이나 더 있으니까 일단 눈 좀 붙여요.”“졸리지는 않는데...”“그럼 눈 감고 명상하든지.”주한은 마치 반장처럼 그녀를 챙겨줬다.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한은 혼자 자랐으니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애들과는 다르다고 말이다. 하지만 주한이 사람을 챙기는 방법은 어딘가 강압적이었다.현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붉힌 채 주한이 건네준 외투를 주섬주섬 몸에 걸치고는 자리에 기대 눈을 감았다.눈을 감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는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눈을 떴다.“옷을 이렇게 다 주면 대표님은 어떡해요? 안 추워요?”“나는 몸이 워낙 좋아서.”주한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아, 네.”현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몸이 안 좋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에 잠겼던 현아는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창밖의 어둠은 더 짙어졌고 현아는 아직도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깨어나 보니 아직도 조금 추웠고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주한의 외투 속으로 점점 숨어들었다. 외투를 받았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정말 자다가 추워서 깼을 것이다.하지만 현아는 이내 뭔가 생각났다. 자기는 외투를 입고 있어서 따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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