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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작가: 십일
식탁 쪽.

“왜 죽이 없죠?”

“보양식 죽 말이죠?”

“보양식 죽?”

“네, 정은 아가씨가 자주 끓여준, 찹쌀과 표고버섯, 황태, 대추를 함께 끓인 그 죽 말씀하시는 거죠?”

“아이고, 그거 준비하려면 표고버섯, 황태랑 대추만이라 해도 전날에 준비를 해놔야 해요.”

“그리고 불 조절이 특히 중요해요. 저는 정은 아가씨처럼 인내심이 없어서 계속 불을 볼 수 없어요. 제대로 끓여내지 못해요.”

“그럼 고기 소스 좀 가져다줘요.”

“그래요. 도련님.”

“맛이 이상한데요?”

도겸은 병을 훑어보았다.

“포장도 다르네요.”

“도련님이 자주 먹던 그건 이미 다 먹어서 이제는 이거밖에 없어요.”

“나중에 마트 가서 두 병 사다 놔요.”

“못 구해요.”

왕순자는 약간 난처하게 웃었다.

“그것도 정은 아가씨가 직접 만든 거라서, 저는 못 해요.”

쿵!

도겸은 깜짝 놀랐다.

“음? 도련님, 식사 안 하세요?”

“네.”

왕순자는 도겸이 계단을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며 당황했다.

‘갑자기 왜 화를 내시는 거지?’

...

“게으름뱅이! 일어나!”

정은은 몸을 뒤척이며 눈을 뜨지 않았다.

“시끄러워, 조금만 더 잘래.”

조수민은 화장을 마치고 가방을 고르고 있었다.

“곧 8시야, 너 강도겸한테 아침 안 해줘도 돼?”

예전에도 정은은 가끔 외박하곤 했지만, 새벽에는 돌아갔다. 도겸의 속을 위해 보양식 죽을 끓이기 위해서였다.

수민은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겸이 다친 것도 아니고, 휴대폰으로 배달을 시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정말 사람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쓸데없는 습관이었다.

수민이 계속해서 부르자 정은은 잠결에 손을 흔들었다.

“안 해줘도 돼, 헤어졌어.”

“오, 이번에는 며칠 동안 헤어지려고?”

수민의 말에 정은은 할 말을 잃었다.

“그래, 그럼 더 자. 아침 식사는 탁자 위에 있어. 나는 일하러 간다. 그리고 나 저녁 약속이 있어서 저녁은 준비하지 마.”

“됐다. 너 어차피 다시 돌아갈 거지? 그럼 나갈 때 베란다 창문 좀 닫아줘.”

정은은 배가 고파서 일어났다. 친구가 만든 샌드위치를 먹으며 창밖의 밝은 햇살을 바라보았다. 언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편하게 일어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옷을 갈아입은 후 정은은 은행으로 향했다.

먼저 100억짜리 수표를 현금으로 바꿨다. 역시 돈은 손에 쥐고 있어야 안심할 수 있으니까. 그 후 다른 은행으로 갔다.

“프라이빗 뱅커를 만나고 싶어요. 20억을 예금하고 싶습니다.”

은행장이 나와 꽤 괜찮은 연이율을 제안했으나, 정은은 2퍼센트를 더 추가해 주는 조건을 제시하고 수락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같은 방법으로 다른 두 은행에 가서 각각 20억 원씩 예금했다. 연이율은 점점 높아졌다.

마지막 은행을 나서면서, 정은은 세 개의 은행에서 블랙 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고, 총 60억의 예금과 40억의 유동 자금을 가진 부자가 되었다.

“꽤 잘 나눴네.”

하룻밤 사이에 부자가 된 셈이었다. 한 미용실을 지나가다가, 그곳이 붐비는 것을 보고 정은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장에서 회원권을 끊어서 우선 예약권을 얻었다. 정은은 거울 앞에 앉아 갈색의 웨이브 머리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 머릿결이 정말 좋네요. 마치 바비 인형 같아요.”

웨이브 머리는 도겸이 좋아하는 긴 머리와 분위기 때문에 유지하고 있었다. 침대에서 뒹굴 때마다 도겸의 손은 항상 정은의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갔다. 그러나 아름다운 웨이브 머리를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에 정은은 미소를 지으며 헤어 디자이너에게 말했다.

“짧게 잘라 주시고요. 매직 펌도 해주시고, 그리고 블랙으로 염색해 주세요.”

인형이 아무리 예뻐도, 결국 장난감일 뿐이다. 이제 정은은 누가 좋아하든 상관없었다. 그만두겠다고 마음 먹었다.

미용실을 나서자마자 정은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고, 마침 옆에 유니클로가 할인 중이었다. 정은은 들어가서 흰 티셔츠와 청바지를 골라 바로 입고 나왔다. 오늘 신은 운동화와 딱 어울렸다.

걷다 보니 서비대학교 정문 앞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타고 드나드는 학생들을 정은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성준 선배! 여기요!”

한 젊은 남자가 소정은을 지나쳤다.

“왜 다들 여기 모여 있죠?”

“오미선 교수님 병문안하려고요.”

“이 정도 인원은 병실에 다 못 들어가요. 생물정보학 전공 학생 두 명만 대표로 저와 함께 가죠.”

‘생물정보학 전공, 오미선 교수.’

정은의 눈이 번쩍이며 빠르게 앞으로 나갔다.

“방금 누구라고 했죠? 누가 아프다고요?”

하성준은 앞에 서 있는 청초하고 예쁜 여자를 보며 약간 말을 더듬었다.

“오미선 교수님이요.”

“오미선 교수님이라고요?”

“네.”

“어느 병원에 계시죠?”

“서광병원이에요.”

“감사합니다.”

“저기... 혹시 어느 과세요? 오미선 교수님의 학생인가요?”

남자의 질문을 무시한 채 정은은 빠르게 떠났다. 아파트로 돌아온 정은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 성질 급한 늙은이가 아프다니? 심각한 건가?’

정은은 연락처에서 방소연이라고 저장된 번호를 찾아 망설였다. 결국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은은 도겸과 함께 있기 위해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석박사 통합 과정 기회를 버렸다. 심지어 학부 졸업 후 하루도 일하지 않고, 남자에게만 의지하며 살았기에 분명 실망했을 것이다.

“어? 정은아, 안 갔네?”

수민이 신발을 갈아 신으며 말했다.

“왜? 나 빨리 갔으면 좋겠어?”

“신기하네. 이번에는 꽤 오래 버티는걸? 지난번에는 강도겸이랑 헤어지고 반나절도 안 돼서 전화 오니까 바로 돌아갔잖아.”

“냄비에 죽 있어, 알아서 먹어.”

수민은 기뻐하며 주방으로 달려가 한 그릇을 퍼먹으며 감탄했다.

“강도겸 그 남자는 정말 행복하겠다. 매일 이렇게 맛있는 죽을 먹을 수 있다니.”

“다 먹고 나면 설거지하고, 청소도 해. 난 잘 거야.”

“야, 진짜 안 돌아갈 거야?”

굳게 닫힌 문에 수민은 혀를 찼다.

“이번에는 정말 마음먹었네.”

같은 밤, 벨라 비스타 별장.

[대표님, 은행에서 확인했습니다. 오늘 정오 12시 5분 본인이 직접 100억 수표를 현금화했다고 합니다.]

도겸은 전화를 끊고, 차갑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정은,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지?’

정은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고 해서, 자신이 마음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었다. 도겸은 자신이 내린 결정은 번복하지 않았다.

“전선우, 나와서 한잔할래?”

30분 후, 도겸이 방의 문을 열자, 선우가 가장 먼저 웃으며 다가왔다.

“형, 모두 모였고 형만 기다렸어요. 오늘 뭐 마실까요?”

도겸은 방 안으로 걸어갔고 선우는 움직이지 않고 그저 도겸의 뒤를 바라보았다.

“왜 멍하니 있어?”

“정은 누나는요? 주차 중이에요?”

그러자 도겸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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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화

    “자리 찾기 힘든가? 내가 나가서 도와줄까요? 음?”도겸의 어두운 표정을 눈치챈 선우는 뒤늦게 깨달았다. “어... 형, 누나... 아직 안 돌아왔어요?” 이미 3시간이 넘었고 도겸은 두 손을 펼치며 어깨를 으쓱했다. “뭘 돌아와? 이별이 장난이야?” 그 말을 마치고 도겸은 선우를 지나 소파에 앉았고, 선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진짜 헤어진 거야?’하지만 곧 선우는 머리를 흔들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도겸이라면 이별을 말한 뒤 다시는 붙잡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지만, 정은은 그렇지 않았다. 세상 모든 여자가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어도, 정은은 그렇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도겸아, 왜 혼자야?” 고동건이 재미있는 듯이 팔짱을 끼고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내기한 3시간은 이미 지났고, 하루가 다 갔어.”그러자 도겸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내기에서 졌으니 벌칙을 받아야지. 벌칙은 뭐야?”진심으로 하는 말에 동건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오늘은 다른 거 해보자. 술 마시는 거 말고.”“뭔데?”“정은이한테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과를 하는 거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사랑해.’ 라고.”동건의 말에 주변 사람들은 곧바로 웃음을 터뜨렸고 선우는 도겸의 전화로 정은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차단된 건가?’ 도겸은 잠시 멍해졌다. 사람들은 웃음을 멈추고 서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선우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그... 아마도 진짜 전화를 받을 수 없는 걸 거예요. 정은 누나가 형을 차단할 리가 없잖아요.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선우는 말하며 자신도 민망해졌고 동건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어쩌면 정은이 이번에는 진짜일지도 몰라.”그러자 도겸은 코웃음을 쳤다. “이별이 진짜지 그럼 가짜야? 이별이 무슨 애들 장난이야? 이런 내기 다시는 하지 말자. 앞으로 누가 소정은에 대한 말을 꺼내면, 친구로 지낼 수 없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화

    어젯밤엔 술을 꽤 많이 마셨다. 새벽이 되자 선우가 또 한잔하자고 했고, 강도겸은 운전기사가 이끌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침대에 쓰러져 바로 잠에 빠질 것 같았지만, 억지로 정신을 차려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하며 그는 문득 중얼거렸다.‘이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구나.’몽롱한 상태에서 도겸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눈을 뜨자, 위에서 끊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으으...” 도겸은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며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났다.“속 쓰려! 소정은!”그 이름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도겸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정은은 참 대단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끈질기게 버텼던 그녀였다.‘좋아.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보자. 근데… 약은 어디에 뒀지?’도겸은 거실로 나가 약을 찾기 시작했다. 모든 서랍을 뒤져보았지만, 약상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그는 왕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위장약을 찾으시는 건가요? 약상자에 넣어둔 걸로 알고 있어요.]도겸은 이마에 핏줄이 뛰는 것을 느끼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약상자가 어디에 있죠?”[옷장 서랍 안에 있어요. 정은 아가씨가 도련님이 술을 마신 후 아침이면 위가 아플 걸 알고 쉽게 찾을 수 있게 두었다고 하더라고요. 여보세요? 도련님? 아직 듣고 계시죠? 전화 끊으신 건 아니죠?]도겸은 옷장으로 가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는 자주 먹던 위장약이 다섯 통이나 들어 있었다. 약을 삼키고 나니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서랍을 닫으려는 순간, 도겸은 갑자기 멈춰 섰다. 서랍 속에 보석과 명품 가방은 여전히 있었지만, 정은의 모든 신분증, 여권, 학위증, 졸업증 등은 온데간데없었다. 게다가 구석에 쌓여 있던 캐리어 중 하나도 사라져 있었다. 그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좋아, 좋네, 좋아...”도겸은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너무 자유롭게 둬도 안 돼. 자유를 줄수록 더 고집을 부리니까.’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화

    “형, 무슨 일이에요?”선우는 술을 홀짝이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도겸을 보곤 슬그머니 동건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도겸의 어두운 얼굴에 분위기는 한층 무거워졌다. 원래 활기찼던 이곳의 공기도 잠잠해졌다.“누구한테 차단당해서 그런 거겠지.”동건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말을 던졌다. 도겸의 얼굴은 그 말에 더욱 어두워졌다.쾅! 도겸은 술잔을 유리 테이블에 세게 내려놓으며 짜증스럽게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의 눈에 폭력적인 기운이 어른거렸다.“다시는 걔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잖아. 말을 못 알아들어?”동건은 어깨를 으쓱하며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노래하던 사람도 입을 다물었고, 주변 사람들도 어색한 침묵에 휩싸였다.선우는 목구멍에 걸린 술을 삼키며, 정은 누나가 정말로 결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빈은 술에 약간 취해 정신을 차리며 선우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은이 돌아왔어?”선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할 용기가 없어 두루뭉술하게 말했다.“모르겠어요.”현빈은 선우의 말을 듣고 정은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짐작했다.바텐더가 다섯 병의 술을 가져오자, 누군가가 용감하게 제안했다.“진실 게임 할래요?”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했다.“좋아, 나 그거 제일 좋아해.”이때 한 여자가 막 들어왔다. “안나 이쪽으로 와, 마침 형 옆에 자리가 비었어.”안나는 자연스럽게 도겸 옆에 앉았다. 그녀는 이 클럽의 에이스였고, 도겸과도 익숙한 사이였다.“강 대표님.”도겸은 갑자기 흥미를 잃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너희끼리 놀아, 난 먼저 간다.”남겨진 사람들은 당황했고, 오늘 밤의 분위기를 깨뜨린 듯한 안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술집을 나온 도겸에게 운전기사가 어디로 갈지 물었다. 브랜디 두 잔을 마신 후, 도겸은 어지러움을 느꼈고 텅 빈 집을 떠올렸다.“회사로 가죠.”“강 대표님?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화

    “당시의 충동적이고 불합리했던 행동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해야 해. 그건 내가 교수님에게 빚진 거야.”수민은 술잔을 들고 있던 손이 떨렸다. 정은의 말이 목에 걸려 숨이 막힐 듯 두 번이나 기침을 했다. 도망치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제발 나 좀 살려줘, 정은아.”정은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너도 알잖아. 나 대학 때 유일하게 재수강한 과목이 오미선 교수님의 수업이었어. 교수님 앞에서는 난 늘 작아지기만 했고, 그분이 무서워서 도망치고만 싶었어.”수민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게다가, 나는 교수님 눈에도 띄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어. 교수님은 나를 기억도 못 하실 거야. 미안하지만,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 같지 않아.”정은은 수민의 마음을 이해한 듯,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수민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아주 적절한 사람이 있어.”정은은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응? 누구?”“너 내 사촌 오빠인 조재석, 기억나지?”정은은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기억하지.”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셨다.“물론 기억하지. 국내 최연소 물리학과 교수, 그리고 ‘네이쳐’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젊은 과학자 10인 중 1위였잖아. 오미선 교수님 밑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하며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생물학계에서 천재로 주목받았던 사람이지. 그런 사람이 전과해 물리학을 공부하게 된 것도 큰 화제였고. 결국, 사람은 무엇을 하든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 법이야.”현재 재석은 국제 물리학계에서 권위자가 되었다. 정은은 재석과 같은 학교 출신이지만, 다른 시기에 입학한 후배였다. 입학하자마자 재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나중에 수민을 통해 재석이 수민의 사촌 오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석은 몇 년 동안 해외 물리학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3개월 전에 귀국했다.수민은 자랑스럽다는 듯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화

    가까이 다가가니, 도겸은 정은의 예쁜 웨이브 머리가 곧게 펴지고, 그토록 좋아했던 그녀의 머리색이 검은색으로 염색된 것을 발견했다. 화장도 하지 않았고, 하이힐 대신 단순한 하얀 티셔츠 하나만 걸친 채 아주 캐주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눈은 예전보다 더 빛나 보였다. 이별의 어두운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만약 이게 연기라면, 도겸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은이 연기를 정말 잘한다고. 너무 잘해서, 자신을 화나게 한다고. 정은은 도겸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표정은 도겸이 화를 내기 직전의 전조였다.“히하!” 도겸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런데, 네 안목은 별로인 것 같아. 내 옆에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보는 눈이 좀 더 높아야 하지 않겠어? 아무나 데리고 다니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체면?” 정은은 슬픔이 살짝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지만, 도겸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정은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더욱 화가 났다. 이 감정이 점점 그의 영역 의식으로 다가왔다. 정은은 이미 그의 영역 안에 속한 사람이었고, 지금은 필요 없다 해도, 다른 사람의 침범은 용납할 수 없었다.“난 할 일이 있어서 가야 해.” 정은은 도겸이 계속 말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았다.“가? 어디로 갈 건데? 조수민의 아파트? 그게 네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야. 이번에는 각종 증서들이랑 신분증도 챙겨갔던데. 좋아, 한번 해보자는 거지?”정은은 마음이 아팠다. 도겸의 성격이 나쁘다는 것, 심지어 폭력적이라는 것을 이미 익숙하게 받아들였지만, 이런 말을 직접 들으면 여전히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다. 도겸은 그녀의 행동을 단순한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은은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추스르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먼저, 저분은 내가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만난 것뿐이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더러운 관계가 아니야.”“그리고, 우리는 이미 헤어졌어.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네 문제야.”이때, 정은이 불러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화

    정은은 오랜만에 손수 무언가를 해보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도겸과 함께했던 지난 몇 년 동안, 옷이나 식사는 스스로 해결했지만, 이런 육체적인 노동은 거의 하지 않았었다. 몇 년 전 도겸이 창업을 시작할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집안 청소만큼은 언제나 청소 아주머니에게 맡겼었다. 페인트 한 통을 다 칠하고 나서 정은은 아픈 허리를 부여잡았다. 몇 년 동안 편안하게 지내왔던 그녀에게는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 페인트를 더 가져오기 위해 복도로 나가려던 순간, 정은은 너무 서두른 나머지 발로 페인트 통을 차버렸다. 서둘러 페인트를 닦아내기 시작했지만, 이웃집 문 앞에 조금 쏟아져 버렸다. 걸레를 가져와 닦으려던 찰나, 문이 갑자기 열리며 정은은 깜짝 놀라 사과를 하려고 했다. 뜻밖에도 문 앞에는 아는 사람이 서 있었다.“너도 여기 사는구나?”“어떻게 여기에 계세요?”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말했다. 조재석은 바닥을 한번 훑어보고, 정은의 뒤편을 살폈다.“그래서 오늘 이사 온 사람이 너였구나?”정은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네, 오늘부터 우리 이웃이에요.”정은의 말에 재석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가 이곳에 사는 이유는 실험실과 학교와 가까워서 편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은이 여기서 산다고? 이곳은 여자 혼자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이곳은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곳이었다. 재석이 움직이지 않자, 정은은 그가 페인트로 복도를 더럽힌 것을 신경 쓰는 줄로만 알았다.“죄송해요. 조금 흘렸어요. 곧 다 치워요.”정은은 서둘러 페인트를 닦아냈다. 내려갈 때, 재석이 들고 있는 쓰레기를 보고 정은이 말했다.“마침 내려가는 길인데, 제가 대신 버려드릴까요?”재석은 거절하지 않았고, 대신 집에서 접이식 사다리를 가져왔다.“벽을 칠할 거면, 이걸 쓰는 게 편할 거야.”“고마워요.”사다리가 있으니 벽 칠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정은은 오전 내내 집안의 낡은 벽을 모두 칠했다. 집은 금세 깔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화

    재석은 한 걸음 뒤에서 정은을 따르고 있었다. 어젯밤의 불안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제는 차분함을 되찾은 것 같았다. 차를 몰고 온 재석이 문을 열어주자, 정은은 아무 말 없이 조수석에 앉았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과일 가게를 지나칠 때, 정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잠깐만 멈춰 줄 수 있을까요? 2분만요. 과일 좀 사려구요.”“과일?”“네, 교수님 드리려고요.”재석은 핸들을 잡고 다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정은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선배님은 손님을 방문할 때 항상 빈손으로 가시나요?”재석은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고 정은은 조용히 엄지를 세우며 감탄했다. ‘역시 대단한 사람들은 이런 사소한 것을 신경 쓰지 않는 건가 봐?’하지만 이내 재석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오미선 교수의 집은 서비대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환산로에 위치한 작은 양옥집이었다. 서양식과 동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집은 단풍나무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어, 고요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6년 만에 찾아온 이곳에서, 정은은 안절부절 못하며 발밑의 과일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용기가 사라진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정은의 마음을 읽은 듯, 재석이 물었다.“내리지 않을 거야?”정은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요.”재석은 긴장해 하는 정은을 몇 초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먼저 들어갈게.”정은은 재석이 아무 말 없이 떠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두 번 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이맘때쯤이면 백화가 만발해 있었다. 작은 정원에 들어서자 부드러운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정은의 코끝에 스며들었다. 난간 옆에는 주인이 돌보지 못한 듯 시들어 버린 채소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집에 들어가기 전, 정은은 오미선 교수의 목소리를 들었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재석을 따라 걸었다.“교수님.”오미선 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화

    재석은 여전히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음식은 그저 배를 채우는 수단일 뿐, 맛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없었다.“다 씻었어.”정은이 손질한 홍고추와 청경채를 바라보며, 그것들이 마치 강박증 환자의 손길을 거친 것처럼 가지런히 정리된 모습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왜 웃어?” 재석이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묻자, 정은은 가볍게 기침을 하며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먼저 나가 계세요.”“알았어.” 재석은 물기를 닦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정은은 상을 가득 채울 만큼의 음식을 만들었다. 맛은 담백한 것을 중심으로, 대부분 오미선 교수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아직도 기억하고 있구나.” 오미선 교수는 감탄하며 식사를 마쳤다. 정은은 자발적으로 설거지를 시작했고, 재석도 주방으로 들어와 도왔다. 따뜻한 불빛 아래 서 있는 재석의 모습이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보였다.정은의 시선에서 보면, 재석의 옆모습은 마치 고대 그리스의 인물 조각상처럼 날카로운 윤곽을 띠고 있었다. 그때 오미선 교수가 문틀 옆에 서서 물었다.“정은아, 너랑 재석이는 어떻게 알게 됐니?”재석은 오미선 교수의 가장 자랑스러운 제자였고, 정은은 오미선 교수가 가장 아끼는 학생이었다. 오미선 교수는 오래전부터 두 사람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두 사람이 먼저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그때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교수님, 손님이 오셨어요!”그 소리에 오미선 교수는 거실로 돌아가자 한 여자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미소 지었다.“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강서정입니다. 전에 병원에서 뵙고, 올해 대학원 티오에 대해 여쭤봤던 사람입니다.”오미선 교수는 알아봤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요. 일단 앉아요.”서정은 더욱 환하게 웃었다. “교수님께서 요양 중이시라고 들어서, 특별히 보약을 좀 가져왔습니다.”오미선 교수는 티테이블 위에 놓인 선물 상자들을 무심코 쳐다보았다. 인삼, 녹용, 홍삼 등등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오미선 교수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서정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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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61화

    ‘날 기다리고 있었어? 왜?’“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 정은은 즉시 정색했다.“음. 너한텐 아마도 좋은 소식이겠지?”“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정은은 눈을 깜박였다.재석이 뜸을 들일수록 정은은 더욱 궁금해졌다.“그게...”재석은 어제 이웃 대학에 가서 오랜 친구를 만났고, 겸사겸사 작은 부탁을 했다.“마 교수는 이미 그들의 실험실 한 칸을 내주기로 했어. 내가 가서 한 번 봤는데, 너희들의 실험에 필요한 모든 설비는 다 갖추어져 있어. CPRT까지.”“진짜요?! 너무 잘됐네요!”정은은 기뻐서 펄쩍펄쩍 뛸 뻔했다.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 마침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니.그녀는 실험실을 찾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재석이 이미 마땅한 곳을 찾아주었다.마치 다정한 집주인이 집에서 쫓겨난 불쌍한 아이들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정은은 참지 못하고 달려가서 재석의 소매를 덥석 쥐었다.“선배님, 어쩜 이렇게도 다정한 거예요!”여자의 검은 눈동자는 마치 빛을 반짝이고 있는 것 같았다.손은 자신의 팔꿈치에 떨어졌고, 옷을 사이에 두고도 재석은 정은의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눈이 마주 친 순간, 재석은 미소를 지었다.정은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흥분한 것 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선배님, 미안해요. 너무 흥분해서 그만.”급하게 사과하느라 정은은 남자의 눈빛에 실망이 스친 것을 보지 못했다.“괜찮아.”“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이따가 와서 밥 먹어요. 절대로 거절하면 안 돼요!”정은은 말을 마친 후, 재빨리 집으로 달려갔다.어두워졌던 남자의 눈빛은 순식간에 밝아졌다....정은의 집에 들어서자, 재석은 외투를 벗고 소매를 걷어올리면서 주방으로 걸어갔다.그리고 채소를 씻고, 썰고,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정은이 입을 열지 않아도 재석은 알아서 척척이었다.너무 익숙해서 마치 이곳이 재석 자신의 집인 것 같았다.두 사람은 한두 번 호흡을 맞춘 게 아니었기에 이젠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뭘 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60화

    “이게 다 뭐야?!”...집에 돌아온 서정은 들어오자마자 소리를 쳤다.“이모님, 아이스팩 하나 좀 줘요!”서영숙이 물었다. “아이스팩은 왜? 이 추운 날에...”“엄마, 나 남한테 맞은 거 알아요?”“뭐?!” 서영숙은 이 말을 듣자 즉시 달려왔다. “누가 때렸어?! 누가 감히 내 딸을 때려?!”서정은 입을 삐죽거렸다.“소정은이요.”“그 아이는 이제 겁도 없는 거야?! 감히 사람을 때리다니?!”“나도 그냥 말 몇 마디 좀 했을 뿐인데, 직접 내 따귀를 때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흑흑...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봐요, 얼굴이 부었잖아요!”서영숙은 바로 마음이 아파서 서정의 얼굴을 살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가갔다.“앗! 아파요!”“이 소정은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핸드폰, 내 핸드폰은?!”서영숙은 몸을 돌려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기다려... 내가 그 아이 제대로 욕할 거야...”이때 가정부가 앞으로 다가왔다. “사모님, 핸드폰은 여기에 있습니다.”서영숙은 얼른 가져오더니 정은의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이 천한 것이 감히...”[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영숙은 그제야 정은이 이미 자신을 차단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서영숙은 가정부를 불렀다. “핸드폰 좀 줘요.”“네.”서영숙은 가정부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이번에 마침내 연결되었다.[여보세요, 누구세요?]확실히 정은의 목소리였다.서영숙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정은, 이 뻔뻔한 계집애야! 왜 내 딸을 때리... 여보세요? 여보세요?! 소정은, 네가 감히 내 전화를 끊어?!”서영숙은 화가 나서 숨이 넘어갈 뻔했다.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차가운 안내음이 또다시 울렸다.‘또 날 차단했다니!’“어떻게 이럴 수가?! 내 번호를 차단하다니?!”서정은 눈을 부라렸다.“지금 우리 오빠 여자친구도 아니고, 우리 집에 시집오고 싶지도 않으니 이게 뭐라고요.”서영숙은 멈칫했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59화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실험실을 만들기 시작했다.물론 정은은 진일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아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모든 문제에 다 해결할 방법이 있겠죠. 언젠가는 방법이 있을 거예요.”“그럼 성공하길 바랄게.”말이 끝나자 진일은 몸을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선배님!” 정은이 갑자기 그를 불렀다.“사람은 때로 좀 이기적이고 자신을 위해 많이 계획해야 해요. 필경 평생 다른 사람의 밑에서 일할 수가 없지 않나요? 고개도 들 수 없고, 허리를 펼 수도 없고. 안 그래요?”진일은 웃었다.“일깨워 줘서 고마워. 나한테도 다 생각이 있어.”...“뭐? 열쇠를 못 받았다니?” 송지혜는 심하게 눈살을 찌푸리고 앞에 있는 서정을 바라보았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너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한 거야?!”“소정은은 열쇠를 이미 바쳤다고 했고, 또 학교의 규정까지 내세웠단 말이에요. 뭐 규정은 이러하니 저에게 줄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럼 전 또 뭘 할 수 있겠어요? 달려들어서 빼앗아올까요?!”서정은 이미 좀 짜증이 났다.송지혜의 질문하는 말투가 그녀를 매우 불쾌하게 했다.‘이게 내 탓이야? 원래 소정은을 찾아 열쇠를 달라고 하는 일 자체가 매우 불합리하잖아. 소정은이 그랬듯이, 우리가 뭔데? 왜 우리한테 줘야 하는 건데?’송지혜는 지금 서정이 엄청난 잘못을 한 것처럼 굴었는데, 서정은 비록 총명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었다.“교수님,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굳이 소정은의 열쇠를 가져가고 싶은 거죠? 그 낡은 실험실에 뭐가 있는데요?”“아, 아니다, 뭔가 있긴 하네요. 안에 CPRT가 한 대 더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희에게 이미 두 대가 있잖아요? 왜 이렇게 많은 기계를 원하시는 건데요?”서정의 말에, 송지혜는 마치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버럭했다.“넌 질문이 너무 많아! 만약 일을 처리할 때도 말주변이 이렇게 좋다면, 이렇게 사소한 일도 해내지 못할 정도는 아닐 거야!”서정은 누구인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집 아가씨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58화

    정은은 재석이 반드시 자신의 편에 설 것이라고 확신했다.“너희들의 열쇠는 이미 넘겨주었잖아. 그러니 내 손에 있는 이 열쇠는 절대 그들에게 줄 수 없어.”“왜요?”“아이고, 열쇠를 다 주면, 나중에 우리 CPRT를 옮길 때 문을 어떻게 열 거야? 문을 부수고 들어올 거야?”민지는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이 CPRT를 옮겨도 되는 거예요?!”“물론이지. 우리 돈으로 샀으니 왜 안 되겠어?”“그럼요! 저희가 산 것이니 당연히 저희가 옮겨 가야죠.”“그래서 우리의 손에 열쇠가 하나 있어야 돼.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옮길 때 불편해.”서준은 미소를 지었다.“송지혜 교수가 갖은 방법을 다하여 저희를 쫓아낸 이유가 바로 이 기기 때문일 거예요. 이번에 그야말로 헛수고를 한 셈이죠.”세 사람은 물건을 옮기고 문을 닫고 떠났다.그리 많지도 않았는데, 한 사람마다 종이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민지의 박스가 제일 컸고, 안에 간식이 가득 차 있었다.감자칩, 견과, 사탕, 과자, 우유, 음료수...운동장 옆을 지날 때, 축구공 하나가 민지를 향해 날아왔고, 피하기 위해 그녀는 직접 상자를 던졌다.다행히 공은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팔을 스치며 날아갔다.하지만 상자 안의 물건은 이미 쏟아져 나왔다.정은과 서준은 즉시 상자를 내려놓고 민지와 함께 주우려고 했다.그러나 누군가의 동작이 더 빨랐다.진일은 바닥에 있는 간식을 주워서 다시 상자에 넣은 다음, 상자를 안고 민지에게 건네주었다.“감사합니다.”민지는 좀 어리둥절해졌다.‘우린 친한 사이도 아닌데, 왜 갑자기 날 도와 물건을 주운 거지?’진일을 보며, 정은과 서준은 약속이나 한 듯이 시선을 마주쳤다.그녀는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고마워요, 선배님.”그는 웃으며 말했다.“날 그렇게 방비할 필요가 없어. 내가 이렇게 쫓아온 이유는 그들 때문이 아니니까.”정은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이유가 뭐죠?”진일은 잠시 침묵했다.“너희들이 믿든 안 믿든, 난 여전히 이렇게 말하고 싶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57화

    정은이 말했다.“싸움과 시비를 거는 것은 두 가지 개념이야. 우리는 확실히 널 때렸지만, 그 전제는 너희들이 먼저 도발했기 때문이야. 대학원 측은 송지혜 교수의 편을 들지도 모르지만, 학교 측은 아닐 거야.”“정상적인 조사 절차에 따라 원인을 조사해야 결과가 밝혀질 거야. 네가 교무처에 가서 네가 맞았다고 말하면, 교무처는 자연히 상대방이 왜 너를 때렸는지 물어볼 텐데.”“그때 넌 어떻게 대답할 거야? 너희들이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고, 우리를 협박하고 욕설과 모함을 해서 맞았다고 말할 거야?”“아니면, 너희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우리를 비웃으러 왔다가, 너무 꼴보기 싫게 행동했기 때문에 얻어맞았다고 말할 거야?”“위의 이유로 너희들은 고의로 시비를 걸어 소동을 일으킨 것으로 처분을 받을 수 있어! 이왕 쫓겨날 바에 우리 다 같이 쫓겨나자. 모두들 물건을 정리하고 떠나면 더 재밌고 떠들썩하지 않겠어?”정은은 웃으며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아,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더 미친 것은, 정은이 무척 기뻐 보인다는 것이었다.민지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쫓겨나도 엄청 좋지. 난 집에 돌아가서 가업을 물려받아야지. 우리 아빠 대신 월세를 받으면 돼.”서준도 말했다.“쫓겨나면 난 공무원 시험을 보러 갈 거야.”그 두 사람은 정말 미쳤으니 서준도 어쩔 수 없이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진호 그들은 말문이 막혔다.재민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진일을 보았다.그러나 그의 입가에 웃음이 나타날 줄이야.그는 자신이 잘못 본 줄 알고, 눈을 깜박거리며 자세히 보았다. ‘헐! 형 지금 더 환하게 웃고 있어!’정은은 계속 부채질을 했다.“교무처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 가자, 같이. 그렇지 않으면 교무처에서 또 통지를 하나하나 내려야 하잖아.”말하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했다.민지와 서준은 정은의 뒤를 따라갔다.“어? 너희들 왜 안 와? 빨리 와, 이제 곧 점심 휴식 시간이란 말이야.”진호와 서정은 얻어맞은 채 서로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56화

    찰싹!정은의 눈빛이 차가웠다.따귀가 떨어지자, 현장은 매우 조용해졌다.서정마저 멍해졌다.“너, 방금 날 때렸어? 감히 날 때리다니?!”“왜 못 때리는 건데? 네가 먼저 도발했으니, 나도 단지 나 자신의 명예를 지켰을 뿐이야. 여기는 학교이지 네 집이 아니니까. 넌 재벌 집 아가씨라고 성질 좀 부려도 되지만, 난 그런 널 방임할 의무가 없어.”‘전에 내가 좀 잘해 주었다고 그것을 아부라 생각하는 거야? 정말 아이러니하네...’지예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설사 서정이 말을 듣기 싫게 했다 하더라도, 넌 사람을 때리면 안 되지! 학교 규정에 똑똑히 적혀 있잖아. 싸우거나 시비를 걸면 처분을 받을 거야.”진호는 바로 말을 받았다.“가자, 교무처에 가서 이 사람 고소하자! 우리 모두 증인이잖아!”탁재민은 이 말을 듣고 즉시 가운데로 돌진하여 그들을 말리려 했다.“모두 동창인데, 이렇게 나오면 섭섭하지. 이 일은 그냥 넘어가는 게 더 나아. 적보다 친구를 하나 더 사귀는 게 더...”“꺼져! 이 촌놈아!” 진호는 재민을 힘껏 잡아당겼다. “너는 도대체 누구 편이야? 방금 말참견을 해야 할 때는 옆에 서서 죽은 척하다가, 교무실에 가서 소정은을 고소하겠다고 하니 바로 뛰쳐나오면서 지껄이다니. 탁재민, 너 참 대단해. 전에 왜 네 말주변이 이렇게 좋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까?”“아니야... 그냥 다들 다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래... 일이 커지면 누구한테도 안 좋잖아...”그는 설명하고 싶었지만, 입만 열면 말을 더듬기 시작해서 제대로 말 할 수가 없었다.그는 시종 입을 열지 않은 진일을 바라보며 도움을 청했다.진일은 여러 사람들을 바라보더니, 마지막에 시선을 서정의 얼굴에 떨어뜨렸다.“소정은은 틀린 말을 하지 않았어. 여기는 학교이지 네 집이 아니야. 아무도 널 봐주지 않을 것이고, 네가 남을 욕 할 때, 이미 남에게 맞을 준비를 해야 했어.”“너...” 서정은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진호는 진일에게 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55화

    서지예도 맞을까 봐 두려워, 민지를 바라보는 눈빛에 공포가 들어있었다.‘이렇게 뚱뚱하면 힘도 세겠지? 맞으면 얼마나 아플까?’그녀는 재빨리 진호를 밀어냈다.“여자 뒤에 숨다니, 너도 참 뻔뻔해!”강서정은 한쪽에 서서 두 손으로 가슴을 껴안았다.“됐어, 우리가 오늘 무엇을 하러 왔는지 잊은 거야? 다들 가만히 좀 있어.”말을 마치고, 그녀는 정은을 보더니 손을 내밀었다.“깜끔하게 실험실 열쇠 내놔요. 어차피 열쇠를 갖고 있어도 소용없으니까.”정은은 미소를 지었다.“미안하지만, 열쇠는 정말 너에게 줄 수 없는데.”서정은 눈살을 세게 찌푸렸다.“지금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은데, 지금은 주고 싶지 않아도 반드시 우리에게 주어야 한다고요!”“실험실 정돈 개혁 규정에 따르면, 시정 중의 실험실은 사용을 허용하지 않으니, 학생들은 열쇠를 소지할 수 없어요. 반드시 교수님에게 맡겨 보관하거나 교무처에 넘겨야 한단 말이에요.”“학교 규정을 잘 배웠네.”서정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턱을 살짝 들었다.“규정이라는 것을 안 이상, 눈치 있게 열쇠부터 줘요.”정은은 웃으며 말했다.“난 확실히 열쇠를 바쳐야 하지만, 왜 너에게 줘야 하는 거지? 네가 뭔데? 내 교수님이야, 아니면 교무처의 선생님이야?”“아니...” 서정은 할 말을 잃었다.어제, 송지혜는 그녀를 사무실로 부른 다음, 반드시 정은의 열쇠를 가져와야 한다고 당부했다.처음에 서정은 그 이유를 잘 몰랐다.‘허름한 실험실일 뿐, 왜 빼앗으려는 거지?’그러나 그녀는 이 평범한 실험실에 수억 원짜리 CPRT가 놓여 있다는 것을 잊었다.기계는 무겁고, 설치와 해체할 때 모두 전문 기술 인원의 도움이 필요했으니, 정은 그들은 가져갈 수가 없었다.좋은 물건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민지는 참지 못하고 입을 삐죽거렸다.“어떤 사람들은 정말 욕심이 많네요! 거머리처럼 하루 종일 어떻게 다른 사람의 피를 마실지를 생각하다니.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건지,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갖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54화

    정은은 잠시 멈추었다.“예산을 초과한 부분은 내가 가능한 한 빨리 보충할 테니까, 오빠는 최선의 방안에 따라 진행하기만 하면 돼!”이쪽에서 인훈과 이야기를 마치고 겸사겸사 저녁을 해결한 정은은 즉시 민지와 서준에게 최신 소식을 알렸다.“정은 언니, 돈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아빠한테 달라고 하면 되니까요...”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차를 마시고 있던 하정남은 계속 재채기를 했다.“에취! 에취!”“당신 감기 걸렸어요?'“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딸이 지금 내가 보고 싶은 모양이야!”정은은 민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자신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승낙한 것을 알면 네 아빠는 화를 내시지 않을까?”민지는 헤헤 웃으며 말했다.“안심하세요, 우리 아빠는 그런 분 아니세요! 돈은 단지 숫자일 뿐이니, 그 정도 달라고 했다고, 공이 몇 개 빠지는 것도 아니거든요.”‘참 돈이 많은 집안이군.’그러나 정은은 여전히 민지를 거절했다.“예산을 초과한 부분은 내가 내면 돼.”“그런데...”“그런 건 없어, 그냥 내가 말한 대로 하자.”이렇게 단번에 결정을 내렸다.서준이 가볍게 기침하자, 민지는 깜짝 놀랐다.“네가 소리를 내지 않으면, 나는 네가 아직 여기에 있다는 것을 잊을 뻔했어.”서준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미안해요. 자금 방면에 도움이 되지 못해서.”집안 상황 때문에 서준은 그렇게 많은 현금을 꺼낼 수가 없었다.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집안 어르신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다.정은은 웃으며 말했다.“돈은 나와 민지가 해결하면 돼. 넌 다른 방면에서 도와줘...”“뭔데요?”“두 달 안으로 실험실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격증을 준비해. 모든 행정 절차를 마치는 동시에 트집을 잡으려는 사람이 조금의 잘못도 골라내지 못하게 해야 돼. 할 수 있겠어?”그녀가 괜한 걱정을 하는게 아니라 이것은 유비무환이었다.송지혜 팀이 그동안 한 일들은 그야말로 그들의 감탄을 자아냈으며, 정은도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가만히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53화

    남자는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겼고, 수염이 덥수룩해서 마치 하룻밤 사이에 나이를 먹은 것 같았다.그는 심지어 먼저 밥을 먹기도 전에 서류 한 부를 내밀었다.“정은아, 이건 초보적인 스마트 실험실 건설 계획이야! 어젯밤 나에게 보낸 수요와 결합하여 이미 보충했어. 이 몇 군데는 더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어 이 밀폐된 문 말이야.”“그곳은 생물실험실이기 때문에 일부 유해미생물이나 위험한 세균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어. 대문 재질은 아래의 이 몇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해...”“나는 이미 다른 차원에 따라 그들을 비교하고 분석했는데, 종합적으로 볼 때 이 GFRT 신형 재질이 가장 좋은 것 같아. 밀봉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가소성도 매우 강하거든...”짧디짧은 하룻밤사이에 인훈은 실험실의 초기형태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디테일까지도 아주 완벽하게 보완했다.그리고 이렇게 하려면, 필연적으로 실험실 관련 건설 규범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 했다.정은은 눈을 깜박였다.“오빠, 어젯밤에 보충 수업이라도 한 거야?”“크험...”인훈은 가볍게 기침했다.“임시로 공부 좀 했고, 또 이 방면의 전문가에게 가르침을 청했어.”그러나 이것은 가장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정말 정은을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내가 조사해 봤는데, 생물 실험실은 실험실에서 처리하는 미생물 및 그 독소의 위해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야 해.”“기존 국가 표준에 따르면 총 P1, P2, P3, P4 네 개의 등급이 있어. 정은아, 나에게 대담한 생각이 하나 있는데.”“뭔데?”“이 네 가지 등급은 각각 네 가지 방호 규범에 대응해. 스마트 실험실인 이상... 우리는 이 네 가지 다른 규범 표준에 대해 네 가지 심지어 더 많은 실험실 모델을 설정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이렇게 되면 하나의 실험실은 N개의 실험실과 같았다.지능형 통제로 전환하면, 심지어 인건비도 필요하지 않았다.정은의 두 눈에서 빛을 발했다.“이뤄질 수 있을까?”“가능성이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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