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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형, 무슨 일이에요?”

선우는 술을 홀짝이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도겸을 보곤 슬그머니 동건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도겸의 어두운 얼굴에 분위기는 한층 무거워졌다. 원래 활기찼던 이곳의 공기도 잠잠해졌다.

“누구한테 차단당해서 그런 거겠지.”

동건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말을 던졌다. 도겸의 얼굴은 그 말에 더욱 어두워졌다.

쾅!

도겸은 술잔을 유리 테이블에 세게 내려놓으며 짜증스럽게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의 눈에 폭력적인 기운이 어른거렸다.

“다시는 걔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잖아. 말을 못 알아들어?”

동건은 어깨를 으쓱하며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노래하던 사람도 입을 다물었고, 주변 사람들도 어색한 침묵에 휩싸였다.

선우는 목구멍에 걸린 술을 삼키며, 정은 누나가 정말로 결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빈은 술에 약간 취해 정신을 차리며 선우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은이 돌아왔어?”

선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할 용기가 없어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모르겠어요.”

현빈은 선우의 말을 듣고 정은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짐작했다.

바텐더가 다섯 병의 술을 가져오자, 누군가가 용감하게 제안했다.

“진실 게임 할래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했다.

“좋아, 나 그거 제일 좋아해.”

이때 한 여자가 막 들어왔다.

“안나 이쪽으로 와, 마침 형 옆에 자리가 비었어.”

안나는 자연스럽게 도겸 옆에 앉았다. 그녀는 이 클럽의 에이스였고, 도겸과도 익숙한 사이였다.

“강 대표님.”

도겸은 갑자기 흥미를 잃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끼리 놀아, 난 먼저 간다.”

남겨진 사람들은 당황했고, 오늘 밤의 분위기를 깨뜨린 듯한 안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

술집을 나온 도겸에게 운전기사가 어디로 갈지 물었다. 브랜디 두 잔을 마신 후, 도겸은 어지러움을 느꼈고 텅 빈 집을 떠올렸다.

“회사로 가죠.”

“강 대표님?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어요?”

밤 10시, 비서가 퇴근 준비를 하던 중, 엘리베이터에서 도겸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비서의 놀란 표정이 도겸의 기분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

평소 이 시간에 정은은 도겸의 건강을 걱정하며 일찍 자라고 권유하곤 했다. 도겸은 귀찮아하면서도 결국 그녀의 말을 따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퇴근하려던 건가요?”

“네, 지시하실 게 있으신가요?”

도겸은 필요 없다고 말하려 했지만, 오후에 식사를 거르고 술을 마신 탓에 위가 아파져 왔다. 얼굴이 창백해진 도겸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죽 좀 사 와줘요.”

또한 생각 끝에 말을 덧붙였다.

“제일 좋은 식당에서.”

비서는 신속하게 20분 만에 고급스럽게 포장된 죽을 가져왔으나, 뚜껑을 열자마자 도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해물 죽이죠?”

비서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죽사랑의 가장 유명한 메뉴가 해산물 죽이라서요. 대표님이...”

“그만, 나가 봐요.”

도겸은 몇 입 먹고 나서 더 이상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해물 죽은 색도, 향도, 맛도 훌륭했지만, 정은이 해주던 죽이 떠올라 도겸의 마음은 텅 빈 듯했다.

“젠장!”

도겸은 자신이 미친 것 같다고 느꼈다.

...

병원에서 나온 정은은 아파트로 돌아왔다. 벽의 스위치를 누르자마자 애매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불을 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섹시한 슬립 드레스를 입은 조수민이 젊은 남자와 뜨거운 순간을 나누는 장면이었다.

둘은 소파 위에 있었고, 수민의 부드럽고 하얀 손이 남자의 옷 아래로 미끄러지며 복근을 드러냈다. 둘의 입술은 서로를 탐닉했고, 수민의 목에는 빨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현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뜨거웠다. 수민은 불빛에 눈이 잠시 멀어, 남자가 키스하려는 걸 멈추게 했다.

“어? 정은이 왔구나.”

“음, 너희 옷부터 입어.”

정은은 입꼬리를 올리며 돌아서서 둘에게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정은은 한숨을 쉬며, 수민의 집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각자의 사생활이 있는 법, 오래 함께 지내는 것은 서로에게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수민은 개의치 않고 미소를 지었다. 실크 드레스의 끈을 당겨 입고 외투를 걸치며, 남자의 옷을 던져주었다.

남자의 잘생긴 얼굴에는 립스틱 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의 눈은 약간 붉어져 있었다. 수민은 남자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자기야, 방에서 기다려.”

골든 리트리버와 같이 생긴 남자는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어깨에 키스 자국을 드러내고, 당당하게 정은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누나, 좋은 밤이에요.”

정은은 무심코 대답했다.

“안녕, 케빈.”

남자는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수민은 와인 한 잔을 따라 한 모금 마셨다. 혀끝에 달콤함과 약간의 쓴맛이 퍼지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얘는 스티븐이야, 케빈 아니야.”

수민의 말에 정은은 할 말을 잃었다.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수민은 정은의 붉어진 눈을 보고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울었어?”

수민이 묻자 정은은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 마시며 말했다.

“오늘 병원에 오미선 교수님을 뵈러 갔어.”

둘은 대학 동기이자 오미선 교수의 제자였다. 수민은 아직도 대학 동창회 톡방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수민은 정은을 힐끗 보며 말했다.

“너...”

막 말을 꺼내려다 주저했다. 아무래도 정은은 오미선 교수의 가장 기대를 받던 학생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랐지만,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한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수민은 오미선 교수가 정은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특별 프로젝트를 주고, 논문까지 함께 쓴 것도 목격했었다. 정은이 학부생이었을 때, 오미선 교수는 그녀를 정식 지도학생으로 삼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오미선 교수는 정은에게 많은 학문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대로만 했다면 정은은 5년 이내에 국내 최연소 생명과학 박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민은 정은이 왜 학업을 포기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민은 오미선 교수의 편애를 떠올리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쉽게 얻은 것은 소중히 여기기 힘든 법이고, 천재는 제멋대로 굴 권리가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듣기로는 이번에 교수님이 꽤 심하게 편찮으셨다던데, 수술 후 회복은 어때?”

수민이 묻자, 정은은 고개를 저었다. 이에 수민은 웃으며 말했다.

“너 대체 병문안을 어떻게 간 거야? 교수님 상태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거야?”

“들어가지 못했어.”

“너 그렇게 겁쟁이였어?”

정은의 표정을 보고는 수민은 참지 못 하고 말했다.

“넌 정말 왜 그러니!”

정은의 속눈썹이 떨렸지만, 말이 없었다. 수민은 정은의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고, 아침에 가져간 음식이 교수님께 드리려던 것임을 깨달았다.

“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피할 생각이야?”

수민은 원래 용기 있고 결단력 있는 친구가 이렇게 주저하는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정은은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교수님과는 언젠가는 만나게 될 거야. 어떤 일은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으니까.”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수민아 나랑 같이 교수님 뵈러 가지 않을래?”

“뭘 어떻게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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