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너랑 질질 끌고 싶은 줄 알아? 됐거든!’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졌던 사진들.다시 한번 떠올리면서 이진희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지금 자신이 내린 선택이 맞다면서.인간쓰레기 때문에 눈물 흘릴 필요조차 없다며 아쉬워할 것도 없다며 속으로 수십 번을 되새겼다.하지만 바보처럼 눈물은 멈춰지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는지 이진희는 마침내 기운을 차리고 눈물을 닦을 수가 있었다.그러고는 다시 도도한 모습을 장착한 채 모든 자료를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것처럼.“갑시다! 회사는 나중에 가고 일단 이혼부터 하죠.”한겨울의 칼바람이 예고도 없이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그런 이진희를 지그시 바라보며 윤도훈은 그녀가 울었다는 흔적을 발견했다. 두 눈은 퉁퉁 부은 채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으니.그 모습에 윤도훈은 순간 가슴이 확 막히면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하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만 끄떡인다.잠시 후.두 사람은 차에 올랐고 윤도훈이 운전대를 잡았다.이제 막 별장 대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맞은편에서 벤츠 한 대가 달려오고 있다.벤츠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별장 입구를 막아버렸다.이윽고 차에서 세 사람이 내려왔다.그들의 정체는 바로 허씨 가문의 가주인 허홍현 그리고 허시연이다.그와 더불어 엄숙하고 차가운 표정을 지닌 중년 남성이 두 사람의 뒤를 함께 하고 있다.두 사람을 보자마자 이진희는 눈에 가시라도 박힌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놓고 싫은 티를 냈다.윤도훈은 안색이 살짝 변하면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게 되었다.두 사람의 뒤에 있는 중년 남성에게 시선이 쏠렸는데 윤도훈은 곧 날카로운 눈매를 드러내고 만다.“무슨 상황인지 보고 올게.”윤도훈은 바로 시동을 꺼버리고 차에서 내렸다.그러고는 한사코 노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시죠?”“설마 심심해서 왔겠어요?”허시연은 두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았다.여기서 꼭 짚어줘야 할 부분이 있다면 허시연이 갈고
바로 이때 아우디 한 대가 별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그들과 살짝 거리를 둔 채 차는 천천히 멈추기 시작했다.차 안에는 이천강, 이은정 그리고 이천강의 심복인 이수혁이 함께하고 있다.“뭐야? 우리보다 먼저 온 거야? 우리도 서둘러 온다고 온 건데.”이천강은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지켜보며 비아냥거렸다.“허씨 가문의 가주랑 딸 같은데. 저 집에서도 소식을 받았나 봐요. 윤도훈이 다쳤다는 소식.”잇따라 이은정도 비아냥거리며 덧붙였다.이때 이수혁이 물었다.“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지시만 내려주십시오.”“일단은 상황부터 지켜보자. 서두를 것 없을 것 같구나. 저 집안에서 먼저 간 봐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두 눈을 부릅뜬 채 이천강은 몹시나 교활하게 말했다.“참, 꼴 좋다. 그렇게 나대더니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 윤도훈, 네가 어떻게 죽는지 내가 똑똑히 지켜볼 거야.”이은정은 고소한 마음으로 좋은 구경을 기다리고 있다.한편, 거만하기 짝이 없는 윤도훈의 말에 허씨 가문 부녀는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허시연은 한사코 두 눈을 부릅뜬 채 윤도훈을 바라보고 있다가 무엇인가 발견한 듯했다.“윤도훈, 너 실은 지금 엄청 쫄았지? 네가 지금 어떤 꼴인지 다 알고 왔어. 너 지금 폐인이나 다름없지? 우리 수로 아저씨한테 자격이 없다고? 과연 그럴까? 자격 없는 사람은 네가 아닐까?”허홍현 또한 콧방귀를 뀌며 비할 데 없이 날카로운 눈매를 드러내며 윤도훈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했다.이진희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순간 두려움이 밀려와 고개를 돌려 윤도훈을 바라보았다.조금 전까지 칼을 세웠던 두 사람이지만 그가 걱정되는 사실이다.“어떻게 된 거예요? 폐인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이진희는 본래 인간쓰레기만 못하는 그에게 오만 정이 떨어진 줄 알았다.하지만 그 모든 걸 듣고 난 뒤 가슴이 바짝 말라들었다.‘설마 오늘 이혼하자고 한 것도 이것 때문이야?’“그런 거 아니야. 저 사람들이 헛튼 소리 하고 있는 거야.”그러
‘도대체 어찌 된 일이야?’‘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내가 폐인이 됐다고 누구한테 들었어요? 네?”바로 이때 윤도훈이 허홍현과 허시연을 차가운 눈빛으로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물었다. 얼굴에 사악한 웃음을 머금 채.“가까이 오지 마.”놀라움을 금치 못한 허시연은 두려움에 연신 뒤로 물러섰다.허홍현 역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억지로 웃음을 머금고 윤도훈에게 말했다.“뭔가 오해하신 것 같네. 내 친구 놈이 고대 무술에 미쳐있던 놈이라 그저 한 수 배우고자 찾아온 것뿐일세. 그게 전부고 다른 이유는 없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린 그만 물러가겠네.”말을 마치고 허홍현은 허시연을 확 끌어당겼다.걸음을 재촉하여 황급하고 처량하게 자기 차로 돌아갔다.행여나 윤도훈이 자기들 목숨까지 앗아갈까 봐 지체할 여유조차 없었다.이때 저승의 목소리에 비견되는 윤도훈의 말이 또다시 들려왔다.“저 시체까지 데리고 가시죠.”이에 허홍현은 온몸이 굳어지면서 허시연과 눈을 마주친 뒤 억지로 박수로의 시체를 차에 실었다.그러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줄행랑을 쳤다.이윽고 윤도훈은 여전히 차갑고 삼엄한 눈매를 한 채 한쪽에 세워져 있는 아우디 차로 향했다.텅텅텅-그는 바로 차창을 두드리며 차갑게 말했다.“내려오시죠.”몇 초 지나자 차창이 아주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차 안에 있는 이천강은 윤도훈을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삼촌이 조카 보러 와도 안 되는 거야? 왜 이렇게 잔뜩 화가 나 있어? 어디 무서워서 놀러 오겠나.”이은정 역시 억지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형부, 왜 그렇게 날이 서 있어요? 언니랑 화해하려고 온 거예요.”모든 과정을 지켜본 이수혁 또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박수로의 시체를 직접 보게 되었을 때 그는 심지어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역시 윤 선생님 실력은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부로 진심으로 탄복하는 바입니다.”그들의 말에 윤도훈의 입가에 실소가 터졌다.“나한테 한 수 배우려고 온 것 아닙니까? 저
모두가 떠나고 난 뒤 윤도훈은 아무 말도 없이 다시 차에 올랐다.이진희도 뒤따라 차에 올랐는데 걱정이 가득한 두 눈으로 윤도훈을 바라보고 있다.“어떻게 된 거예요? 왜 도훈 씨가 폐인이 되었다고 저러는 거예요?”윤도훈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가로저으며 그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이진희는 달갑지 않은 얼굴과 함께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나하고 말도 하기 싫다는 거예요? 이제 당장 이혼할 사이니 상대할 필요도 없다는 거예요?”백지장처럼 하얗던 윤도훈의 얼굴은 갑자기 터질 듯이 빨갛게 달아올랐다.푸-그렇게 얼마 참지 못한 채 피를 왈칵 뿜어내고 말았다.초급 중기 강자의 실력을 지니고 있던 그는 웅장한 진기를 소유하고 있는 외에 육신의 힘도 만만치 않다.설령 몸속의 진기를 잃었다고 하더라도 육신의 힘만으로도 암력 고수 정도는 거뜬히 죽일 수 있다.다만 조금 전 공격을 더 할 때 다친 부분을 건드려 아물지도 않은 상처가 더욱 짙어진 것이다.본래 어떻게든 꾹꾹 참아보려고 했으나 그 누구한테도 보이고 싶지 않았으나 피는 뿜어져 나오고 말았다.노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던 이진희는 순간 사색이 되면서 두려움과 걱정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도훈 씨!”“괜찮아요? 갑자기 왜?”“일단 병원으로 가요. 내가 운전할 게요.” 허둥지둥거리며 이진희는 멘탈이 거의 나가버렸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윤도훈은 순간 마음이 더없이 복잡해졌다.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피를 닦고 난 뒤 고개를 흔들며 안심시켰다.“괜찮아. 피 토해냈으니 인제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병원에는 왜 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진희는 윤도훈을 바라본 채 다급하게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정말로 다친 거예요?”윤도훈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나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난 고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번엔 안전하게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그러더니 그는 스스로 조롱하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너랑은 상관없는 일이니 걱정하지 마.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 윤도훈은 용의 기운으로 한 30% 정도 회복되었다.비록 가장 좋은 상태까지 회복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용혼소울링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하여 그는 율이와 이진희를 바래다주고 픽업하는 외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에만 몰두했다.귀대성이 다시 찾아왔을 때 실력이 조금이나마 올랐으면 하는 마음에서.그동안 윤도훈은 고씨 가문에서 선물로 준 백년 된 약재와 이찬혁이 양원단을 팔면서 얻은 여러 약재까지 모조리 흡수했다.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 효과는 미미했다.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윤도훈은 점점 심장이 바짝 조여오기 시작했다.충족한 수련 자원이 없는 이상 일주일 안으로 귀대성에 맞설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된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와 다름없다.윤도훈은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어느날 오후, 윤도훈은 이진희를 회사로 바래다주고 홀로 버스를 타고 마을로 내려갔다.약속한 7일까지 어느새 딱 3일밖에 남지 않았다.열심히 미친 듯이 수련했음에도 윤도훈의 실력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심지어 지난번에 입은 상처도 너무 심한 바람에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이제 곧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는데 나 정말 이대로 죽는 거야?”마을로 내려온 윤도훈은 낡은 자기 집을 바라보며 길 잃은 아이처럼 중얼거리고 있다.윤도훈은 자기 상황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강대한 배경은 고사하고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사람조차 없는 인생이다.그래도 마음속으로 내내 속삭이고 있었던 자그마한 미련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어쩌면 이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아 마을 고향집으로 내려온 것이다.부모님이 남긴 기운을 다시 한번 느끼고 부모님의 유품들을 다시 한번 꺼내 보았다.그리고 윤도훈은 이미 마음속으로 생각을 마친 상황이다.만약 약속한 날짜가 되기까지 그 어떠한 방법도 찾아내지 못했다면 마지막 날에 이찬혁을 다시 불러올 생각이다.손에 들고 있는 모든 재산을 이찬혁에게 넘김과 동시에 율이도 그에게 맡길 생각인 것이다. 율이 데리고 도운시에
돌로 된 덮개인데 이마저도 보통 돌이 아닌 것 같았다. 일반인 혼자서 전혀 움직일 수 없을 만큼.윤도훈이 서서히 기억이 생겨날 때부터 이 우물은 덮개로 덮여 있었던 것 같았다.무거운 것도 있지만 집에 물이 콸콸 잘 나오므로 그 누구도 이 덮개를 들추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그러나 묵직하고 거대한 돌 밑에 다른 세상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후-거대한 돌을 들추는 순간 윤도훈은 시원하고 상큼한 공기를 느끼게 되었다.느끼는 것만으로 모자라 깊이 들이마시기까지 하니 정신이 번쩍 드는 것만 같았다.‘영기! 이렇게 짙을 수가!’윤도훈은 우물 곁에 납작 엎드려 아래로 내려다보았다.이윽고 두 눈이 점점 휘둥그레지면서 놀라움과 격동한 모습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20미터 남짓한 우물 밑에 ‘정수’한 그릇이 있었으니 말이다.윤도훈은 이 ‘정수’가 보통 물이 아니라 영기가 모여 만들어진 ‘영천’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윤도훈은 다시금 깊이 들이마시고는 손을 뻗어 한쪽에 있는 덮개를 잡더니 바로 우물 아래로 내려갔다.그러고는 손에 잡고 있던 덮개를 바로 다시 덮어버렸다.풍덩-우물 밑으로 내려와 영천 속에 그대로 빠져 가벼운 소리를 냈다.영천은 그리 깊지도 않았다. 윤도훈의 무릎까지도 오지 않을 정도로.그러나 이는 천지의 모든 영기가 이 곳으로 모여 액체로 변한 것이다.한 방울이라도 그 속에 함유되어 있는 영기는 손바닥만 천영옥에 비견된 다는 말이다.“역시 죽으라는 법은 법구나! 죽으라는 법은 없어! 하하.”윤도훈은 무릎을 접고 앉아 영천 속에 몸을 절반 담갔다. 기뻐해 마지 못한 얼굴로 천천히 즐기는 중이다.그러다가 그는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어머니, 아버지, 두 분께서 저를 지켜주고 계신 겁니까?’정이 많은 윤도훈이 아니었다면.죽기 전에 자기가 살았던 고향집으로 내려오고 싶지 않았더라면.부모님이 그리워하는 그가 아니었다면.아마 이 우물 속에 영천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세상 모든
이진희는 웃으며 불안해하는 율이를 다독여 주었다.“율아, 걱정하지 마. 아빠 이제 곧 오실 거야.”하지만 이진희 역시 밤새 소식이 없는 윤도훈이 걱정되기만 했다.율이를 목숨만큼 소중히 여기는 윤도훈인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율이를 홀로 유치원에 둘 리가 없다.게다가 다들 기다릴 걸 뻔히 알면서도 전화 한 통 없을 리도 없다.심지어 지금까지 깜깜무소식이다. 전화도 영상통화도 메시지도.불안감은 점점 부풀어가고 이진희는 서서히 나쁜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설마 무슨 일 난 건 아니겠지?’‘설마 도훈 씨가 말했던 그 사람이 도훈 씨를...’‘아니야! 아니라고!’‘절대 그럴 리 없어!’이진희는 속으로 자신을 다독이며 가능한 한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도록 애썼다. 율이가 보고 있으니.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이진희는 불안해하는 율이를 계속 다독였다.그 위로에 율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아빠 꼭 돌아올 거예요. 율이 버리고 갈 아빠가 아니에요.그러더니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며 덧붙였다.“진희 이모도 여기 있는 데 이모 버리고 갈 아빠도 아니에요.”그 말에 이진희는 아리따운 얼굴과 어울리지 않은 억지웃음을 띄었다.‘율이야, 사실 이모랑 네 아빠는...’이진희는 속으로 자신을 비아냥거렸다.그렇게 또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러 지나갔다.약속한 날짜가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하지만 윤도훈은 지금껏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고 그 누구도 그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우물 위를 덮고 있는 묵직한 덮개는 그 속에 갇혀 있는 천지 영기가 흘러 나가지 못하게 단단히 막고 있다.본래 이상한 물건이라 외부의 기장과 완전히 단절할 수 있다.신호 따위는 더더욱 덮개를 뚫고 들어갈 리가 없다.같은 날 오전.허승재는 지금 윤병우와 통화 중이다.요 며칠 동안 그는 날마다 윤병우와 전화를 주고받는 있는데 그 이유는 윤도훈에 관한 모든 걸 듣기 위해서이다.“윤도훈은 아직도 소식 없어?”“네. 그 뒤로 단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딸 등하원도 시켜주지
“그딴 놈 때문에 노여워하실 필요 없어요. 도련님, 이만 노여움 푸시기 바랍니다.”윤병우는 조심스러운 말투와 신중한 말로 허승재를 위로했다.그러다가 갑자기 말투가 바뀌면서 험악하면서도 사악한 목소리로 운을 떼기 시작했다.“도련님, 혹시 이미 죽은 건 아닐까요? 3일이 다 돼 가도록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데, 그 귀패문 고수한테 죽은 건 아닌지.”“제발 그랬으면 좋겠어. 꼭 죽었으면 좋겠어.”허승재는 삼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마 지금쯤 어느 한구석에 숨어 있을 거예요. 딸까지 버리고 간 걸 보면 절대 나타나지 못할 겁니다. 게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나타난다고 한들 두려워할 것도 없고요. 그리고 이진희 씨는 언젠간 그놈한테 오만 정이 뚝 떨어질 겁니다.”“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 내가 어떻게 해서든 이진희 손에 넣고 말 거야. 딸까지 버리고 간 독한 놈. 잠깐, 아빠도 도망갔는데, 그 딸은 살아서 뭐 한데? 살 의미가 있을까? 잘 들어, 지금 너한테 절호의 기회를 줄테니 어떻게든 그 계집애 죽여. 그래야 내가 한이 풀릴 것 같아.”인간이길 포기한 것일까? 허승재는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같았다.율이를 죽이라는 말에 윤병우는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머뭇거림 끝에 윤병우는 용기 내어 자기 생각을 밝혔다.“도련님, 제 생각에는 그럴 필요까지 없을 것 같습니다. 윤도훈 그놈만 죽으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어린아이 일뿐인데...”“죽이라고! 못 알아들었어? 죽이라고!”허승재는 윤병우의 말을 바로 끊어 버리고 단호하게 말했다.“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두려움에 심장이 헐떡인 윤병우는 바로 하겠다고 대답했다.그러고는 또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근데 제 쪽에 고수가... 제가 알기로는 이원 밑에 있는 심복 수하들이 암암리에 이진희 씨와 그 계집애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제 곂에 있는 부하들로는 이원 쪽에 있는 고수들을 치울 수 없을 것 같은데. 수도권에서 고수 몇 분만 좀 보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가능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