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희는 조의찬에게 방긋 웃어 보인 뒤 더는 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조의찬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단지 친구 사이의 우정이었고 게다가 이 우정도 그녀와 서시언의 관계처럼 그리 깊은 건 아니었다. 그저 전보다 조금 더 정이 들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지금 이 순간 그녀의 신경은 온통 남편에게 쏠려 있었다. 부소경은 임서아네 가족을 데리고 남성으로 돌아왔다. 결국 돌고 돌아 신세희의 원수는 여전히 잘만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무사히 이 땅을 다시 밟았다.이 모든 건 다 임서아의 전지전능한 외할아버지 덕분이었다. 그는 6년 전부터 갖은 수단을 써서 신세희를 죽이려 했었다.서씨 집안 어르신만 생각하면 신세희는 역겹고 헛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씨 집안 어르신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대체 무슨 엄청난 비밀이지?’신세희는 한시라도 빨리 그 비밀을 알고 싶었고 부소경도 마찬가지였다.그들 세 식구는 엄선우와 용병 네 명의 보호를 받으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이 공항 로비의 대문을 본 순간 서씨 집안 어르신이 대문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고작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서씨 집안 어르신은 눈에 띄게 늙어 보였다.늘 강건하던 어르신이 고작 보름 사이에 등이 굽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때 뒤에 잡혀있던 임서아가 손을 들고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할아버지, 할아버지! 저희 여기 있어요. 비행기에서 내렸어요! 할아버지, 얼른 대표님한테 저희를 풀어달라고 해주세요.”신세희와 부소경은 아무 말이 없었다.서씨 집안 어르신의 뒤에 가성섬에 무기를 보낸 구씨 집안의 구성훈이 서 있었다. 구성훈의 낯빛이 서씨 집안 어르신보다 훨씬 더 어두웠다.신세희와 부소경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후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바로 그때 신세희의 카톡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엄선희와 민정아가 동시에 문자를 보내왔다.“세희 씨, 원래는 정아 씨랑 마중 나가고 싶었는데 서씨 집안과 구씨 집안이 공항 문 앞을 물샐틈없이 꽉 막아놓았더라고요
“뭐라고요?”부소경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신세희도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서씨 집안 어르신이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하여 오는 길 내내 신세희와 부소경은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부소경에게 친남동생이 있을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남동생이라...’늘 침착하던 부소경마저도 이 순간만큼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서씨 집안 어르신을 빤히 쳐다보았다.‘남동생이 있다고? 그렇다면 걔 성도 부씨란 말이잖아? 걔도 부씨 집안 사람인가?’이 세상에 부소경에게 또 다른 가까운 가족이 있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 부소경은 자신의 심정을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고 안절부절못했다.신세희가 부소경의 손을 잡아주고 나서야 부소경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가 뭔가 알아차린 듯 신세희를 쳐다보자 신세희도 뭔가 눈치챈 듯 서로 눈빛만 주고받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들은 계속하여 서씨 집안 어르신의 얘기를 들었다.그건 30여 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서씨 집안 어르신이 얘기한 앞부분은 부소경이 알고 있던 것과 거의 비슷했다. 그때 하씨 집안 사람 중에서 가성섬에 산 사람은 하숙민밖에 없었고 하숙민은 부성웅을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한다. 나중에 두 사람은 가성섬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하숙민이 임신했는데 쌍둥이라고 했다.그때 당시 기세가 드높던 부성웅과 임신한 하숙민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지만 좋은 나날도 잠시, 부성웅의 본처가 가성섬에 나타났다.진문옥의 기고만장한 모습에 고작 26살밖에 안 된 하숙민은 무서워서 기도 펴지 못했다.“네가 내 남편이랑 가성섬에서 결혼한 게 합법인 줄 알아?”진문옥의 싸늘한 한마디에 하숙민은 눈물을 글썽였다.“난... 당신의 존재를 정말 몰랐어요. 난 성웅 씨가... 결혼했었다는 걸 모르고...”진문옥이 매섭게 쏘아붙였다.“아이 당장 지워. 그리고 평생 가성섬에서 쥐 죽은 듯이 살아. 안 그러면 절대 가만 안 둬.”“그건 안 돼요, 언니! 아이가 쌍둥이
“아 참!”진문옥이 계속하여 말했다.“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 이젠 배도 많이 불러서 먼 해외로 도망가지도 못할 거야. 네가 이 섬에 있는 한 쥐구멍에 숨어도 난 널 찾아낼 수 있어. 네가 내 남편이랑 남성으로 온다고 해도 무조건 찾아내. 이렇게 얘기할게, 하숙민. 가성섬에 남아있으면 살길이 그나마 있겠지만 성웅 씨랑 남성으로 따라온다면 죽지 못해 사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줄 거야!”진문옥은 그녀를 협박한 후 부성웅이 하숙민에게 사준 집을 나섰다.“안 돼... 나한테 이러지 마, 제발. 내 아이, 그것도 쌍둥이란 말이야...”하숙민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힘없이 울기만 했다.그녀에게는 아무런 가족이 없었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가 바로 부성웅이었다. 이젠 그녀에게도 가족이 두 명 생겼는데 바로 배 속의 아이들이었다.하숙민은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부성웅을 찾아가 아이를 낳을 기회를 쟁취해야 했다. 명예를 잃게 되더라도, 다른 사람이 불륜녀라고 온갖 욕설을 퍼부어도 아이의 권리를 쟁취해야 했다.그녀는 육칠 개월 된 몸을 이끌고 부성웅과 진문옥이 머무르는 집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가정부가 그녀를 집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그때 당시 가성섬은 매우 가난했고 다들 목숨만큼 돈을 좋아했다. 그녀가 몸에 지닌 비싼 팔찌를 가정부에게 건네자 가정부는 평소 하숙민을 자주 봐왔고 어차피 다 부성웅의 여자이니 들여보내도 괜찮겠다 생각하여 그냥 들여보냈다.하숙민은 임신한 몸으로 문 앞까지 다가왔다. 그런데 집 안에서 두 사람이 다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부성웅! 너 그냥 가서 확 죽어버리지 그래! 여자를 데리고 놀고 싶으면 그냥 놀기나 할 것이지, 임신은 왜 시켜!”진문옥은 마치 부성웅을 집어삼킬 듯이 마구 쏘아붙였다. 그러자 부성웅이 싸늘하게 비웃었다.“진문옥! 그때 하숙민을 찾았을 때 네가 먼저 소개해줬어! 하숙민이 하씨 집안의 유일하게 남은 핏줄이라면서 아직 이 섬에 하숙민을 떠받드는 사람이 많다고 했잖아. 그리고 내가 하숙민을
모든 의욕을 잃고 절망에 빠진 하숙민은 누군가의 부름에 북받쳤던 감정이 터져 나오면서 눈물이 끊임없이 방울방울 떨어졌다.“이봐, 울지 마. 무슨 일인데 그래? 억울한 일을 당했으면 이 아저씨한테 얘기해.”중년 남자의 말투가 온화해졌다. 하숙민은 그제야 목청을 가다듬고 물었다.“아저씨는 누구시죠?”하숙민은 가성섬에서 이 중년 남자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그가 내뿜는 카리스마가 보통이 아니었고 어찌나 위압감이 넘치는지 마치 전쟁터에서 승리하여 돌아온 남자 같았다.하숙민의 예측이 맞았다. 그 중년 남자가 바로 엄청난 권력을 지닌 서씨 집안 어르신이었다. 그때 당시 서씨 집안 어르신은 50대 초반 정도 되었다.서씨 집안과 부씨 집안의 친분이 대대로 전해졌는데 부씨 집안은 사업에 종사했고 서씨 집안은 군에 복무했다. 비록 두 집안이 서로 이익을 주고받은 건 없지만 그 관계가 무려 백 년 가까이나 지속되었다.그러다가 서씨 집안 어르신의 세대에서 부씨 집안 사람들이 먼저 가성섬을 개척하는 동시에 가성섬에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 후 부씨 집안은 직접 도와서 일궈 세운 반씨 집안과 갈라서게 되었는데 부씨 집안의 재산을 무사히 남성으로 옮겨가기 위해 부씨 집안에서는 서씨 집안 어르신에게 도움을 청했다.그렇게 서씨 집안 어르신까지 오게 되면서 가성섬 전체는 부씨 집안과 서씨 집안의 천하가 되었다. 그때의 반씨 가문은 찍소리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서씨 집안 어르신은 진문옥과 함께 가성섬으로 왔다. 아직 이곳의 사람과 일에 대해 익숙지 않아 가성섬에 부성웅의 불륜녀가 있는 건 물론이고 불륜녀가 임신 칠팔 개월이라는 것도 당연히 알지 못했다. 게다가 이 불륜녀가 바로 하씨 집안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핏줄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그때 서씨 집안 어르신이 길거리에서 젊은 임산부를 가엽게 여긴 건 자신의 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해 그의 딸이 집을 나갔다. 그는 여기저기 딸을 찾아다니다가 마음이 다 타버릴 지경이었다.그러던 때에 마침 길거
“뭐? 너... 하씨 집안 자손이었어?”서씨 집안 어르신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숙민을 보았다.“얘야... 너희 아버지가 혹시 가성섬의 우두머리였던 하경원이야?”하숙민이 그를 보며 대답했다.“저희 아버지 아시죠? 저희 아버지는 이 섬의 전 우두머리였어요.”서씨 집안 어르신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가 하경원을 아는 건 하경원이 가성섬의 우두머리여서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가성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으니 말이다.그가 하경원을 알고 있었던 건 그가 열몇 살 때 해외에서 가장 좋은 사관학교를 다녔었는데 그곳에서 하경원의 금전적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남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언젠가는 갚아줘야 했다.서씨 집안 어르신은 마음이 저렸다.“걱정하지 마, 이 일은 아저씨한테 맡겨! 아저씨가 두 사람 이혼하게 하고 네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해줄게. 아까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부성웅?”하숙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마 아저씨도 아실 거예요. 그 사람은... 이 섬의 갑부이자 남성의 갑부예요.”하숙민이 잠깐 멈칫하다가 그를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제가 아저씨를 곤란하게 했죠? 다들 성웅 씨 이름만 들어도 곤란해한다는 걸 저도 알고 있어요. 괜찮아요... 이해해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서씨 집안 어르신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도 난처한 건 사실이었다.부성웅이 가성섬의 갑부이자 남성의 갑부라서 난처한 게 아니라 그와 부씨 집안의 대대로 내려온 친분 때문이었다. 그는 부성웅과 진문옥의 결혼식 증인이자 주례까지 섰다. 그리고 부씨 집안뿐만 아니라 진씨 집안과도 대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런 그가 어찌 그 혼인을 깰 수 있단 말인가.서씨 집안 어르신은 아주 곤란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말았다.“저기...”서씨 집안 어르신이 하숙민을 불렀다. 그녀의 처지가 딱한 건 사실이었다. 부모님도 여의고 임신한 몸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하숙민은 서씨 집안 어르신에게 이해한다는 듯
부성웅네 부부를 만난 서씨 집안 어르신은 아주 어렵게 얘기를 꺼냈다. 그가 얘기를 마치자 진문옥이 눈물범벅인 채로 서씨 집안 어르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아저씨, 아저씨는... 어릴 때부터 저랑 성웅 씨를 봐왔잖아요. 우린 함께 대학교와 유학도 다녔고 F그룹을 일궈 세웠어요. 이젠 아들도 셋이나 있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는데 이대로 망칠 순 없어요.”진문옥이 울면서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며 서씨 집안 어르신은 사실 무척이나 화가 났다. 그가 성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가족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 왜 성웅이한테 불륜녀를 찾아줬어?”서씨 집안 어르신도 켕기는 게 있어 말을 마치고는 저도 모르게 마른기침을 했다. 사실 그도 아내가 있었지만 밖에 불륜녀를 두고 있었다. 하여 그 말을 내뱉자마자 바로 후회했다.아니나 다를까 진문옥이 바로 물었다.“아저씨, 무례한 건 알지만 하나 물을게요. 아저씨도 밖에 여자가 있잖아요. 아저씨는 본처랑 이혼하고 그 여자랑 결혼할 수 있어요?”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서씨 집안 어르신은 불륜녀와 결혼할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불륜녀가 낳은 아이마저도 별로 거들떠보지 않았다.그는 줄곧 밖에서 만난 여자는 그저 장난감에 불과하기에 절대 진심을 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런 여자들 중에 제대로 된 여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그가 만났던 불륜녀도 거의 죽을 때가 돼서야 두 사람의 딸이 사실은 본처가 낳은 딸이고 그녀가 아이를 훔쳐 와서 키웠다는 것이라고 얘기했다.이런 독한 여자랑 어찌 결혼할 수 있단 말인가!서씨 집안 어르신의 불륜녀에 대한 인식은 그저 이러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숙민의 편을 들었다.“문옥아, 애초에 성웅이한테 가성섬에서 여자를 찾으라고 한 건 너의 생각이잖아. 넌 성웅이가 가성섬에서 자리를 잡게 하려고 특별히 옛 우두머리의 딸을 선택했어. 그 애가 지금 임신했는데 그냥 나 몰라라 할 거야? 이건 그 애한테 너무 불공평하잖아.”서씨 집안 어르신의
“이 일을 해결하려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는데 그게 하숙민인 게 뭐가 어때서요? 저희 손해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요. 그래요, 하숙민한테는 불공평하겠죠. 하지만 이 세상에 불공평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F그룹의 회장 사모님으로서 전 반드시 마음을 모질게 먹어야 해요!”언변에 능한 진문옥은 막힘없이 줄줄 얘기했다. 그녀는 자신을 가여우면서도 정의감 넘치는 사람으로 포장했다. 그녀의 말에 서씨 집안 어르신은 그 어떤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결국 서씨 집안 어르신은 아무런 소득 없이 진문옥과 부성웅의 거처에서 나왔다. 돌아가서 하숙민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한단 말인가...그날 밤, 서씨 집안 어르신은 가성섬의 거리를 밤새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그렇게 이튿날 아침이 돼서야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로 들어와 보니 하숙민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딱 봐도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얼굴이었다.서씨 집안 어르신이 축 늘어진 모습으로 돌아온 걸 본 하숙민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아저씨, 결과가... 안 좋은 거죠?”서씨 집안 어르신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숙민아... 일단... 우리 집에 있어. 나중에... 천천히 다른 방법 생각해보자, 천천히.”하숙민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서씨 집안 어르신이 하숙민을 지키고 있어 진문옥도 당분간은 하숙민을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그때 다른 일이 더 있었는데 부성웅과 가성섬 우두머리의 관계가 완전히 깨진 것이었다. 가성섬을 관리하면서 두 사람의 의견 충돌이 심한 탓에 부성웅은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가성섬의 모든 자산을 남성으로 빼돌렸다.하지만 두 사람이 갈라선 것도 사실 부성웅이 먼저 배신했기 때문이다. 부성웅은 가성섬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을 다 벌어들였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가성섬의 기초 건설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을 차례가 됐다. 하지만 부성웅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쨌거나 그는 가성섬의 사람도 아니고 우두머리도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
서씨 집안 어르신은 하숙민이 홀로 병원에 갔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 병원으로 달려왔다.바닥에 쓰러진 하숙민은 피와 양수를 줄줄 흘리며 서씨 집안 어르신의 다리를 꽉 붙잡았다.“아저씨, 제발 살려주세요. 전 죽고 싶지 않아요. 아이도 제발 살려주세요...”서씨 집안 어르신이 잠깐 멈칫하다가 큰소리로 외쳤다.“산부인과 선생님! 아이와 산모를 살려주세요!”그러고는 데리고 온 경호원에게 말했다.“만약 부씨 집안 사모님이 와서 행패를 부리면 아이와 산모가 무사할 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든 막아. 어쨌거나 아이는 무고하니까.”“네!”경호원이 서씨 집안 어르신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하숙민이 분만실로 들어간 그때 반영훈의 아내도 출산이 임박해졌다. 아내가 고통스러움에 연신 울부짖자 반영훈도 조급한 나머지 땀을 뻘뻘 흘리며 산부인과 의사에게 명령하듯 말했다.“내 와이프와 아이의 목숨을 반드시 살려내요. 안 그러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가성섬의 우두머리 앞이라 의사도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하지만 아무리 의술이 좋아도 배 속에서 죽은 태아를 살려내는 건 불가능했다.반영훈의 아내는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지만 결국 아이의 얼굴은 보지도 못했다. 그녀가 슬피 울부짖던 그때 하숙민이 쌍둥이 형제를 낳았다.첫째는 2.5kg 정도 되었지만 둘째는 고작 1kg 조금 넘었다.출산을 마친 하숙민은 진이 다 빠진 몸으로 두 아이를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시각, 진문옥과 부성웅도 병원에 도착했다.“어디 있어? 그 임산부 어디 있냐고!”진문옥이 병원에서 어찌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지 반영훈 아내의 울음소리보다도 더 높았다. 그녀는 반영훈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가성섬에서 F그룹은 한 입으로 두말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게다가 서씨 집안 어르신의 무력까지 더해져 진문옥은 그야말로 눈에 뵈는 게 없었다.병실에 누워있는 하숙민은 겁에 질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혹시라도 진문옥이 방금 태어난 두 아이에게 해코지할까 두려웠다.그러던 중 병원 복도에서 서씨 집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