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선우는 상대가 조의찬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물었다.“대표님, 내려서 물어볼까요?”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이에 답하지 않고 기사에게 말했다.“계속 가세요!”기사가 말했다.“네! 대표님.” 차는 계속 달렸다. 부소경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다들 입을 다물었다.기사는 부소경에게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고 계속 달렸다. 어느새 차는 군주 저택에 들어섰고 군주 저택의 대문이 자연스럽게 닫혔다.밤은 아주 조용하였다 오늘 밤은 의외로 평화로웠다. 이 밤은 사람들을 조용히 잠들게 할 수도 있고 혹은 하룻밤 사이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할 수도 있었다.오늘 밤, 임서아 머리의 혹은 약의 작용으로 많이 회복될 수도 있고 신세희와 신유리도 꿀잠을 잘 수 있다.군주 저택의 사람들이 부소경의 행방을 찾지 못하게 하려고 신세희는 휴대폰의 전원을 켜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날씨는 더없이 맑았다.세수하고 위층에서 내려온 신세희와 신유리는 거실에 앉아있는 반호영을 보았다.“좋은 아침!” 반호영이 먼저 인사를 전했다. “나쁜 사람!” 신유리는 또다시 태세 전환을 했다.반호영은 퉁명스럽게 신유리를 노려보며 말했다.“어제 오후까지만 해도 나를 말처럼 타고 놀더니 하루 사이에 태도가 확 바뀌었네.” "우리 아빠는?”신유리가 반호영에게 물었다.“....”사실 반호영은 이 질문에 답하기 머쓱했다.‘나와 네 아빠는 원수야. 둘 중 한 사람은 무조건 죽어야 해.’만약 반호영이 자기의 마음을 신유리에게 말했다면 어땠을까?반호영은 신유리의 전투력을 이미 알고 있다.만약 반격하지 않는다 하면 반호영은 신유리에게 임서아처럼 얻어터질 수도 있다.그래서 반호영은 진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신세희를 힐끗 쳐다보았다.신세희는 미소를 지으며 신유리한테 말했다.“유리 착하지. 아빠는 가성섬에 출장 왔어. 아빠는 우리에게 잠시 반호영... 나쁜 사람의 집에 머물라 하셨어. 아빠가 일을 마치면 유리와 엄마 데리러 올 거야.” 반호영은 이내 맞장구를 쳤다.
신유리가 자신을 아빠라고 불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공짜로 딸이 생기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아니, 너무 좋았다!반호영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아침 식사가 진행되는 내내 신세희는 수저를 들지 않았고 반호영은 신유리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기 바빴다.신세희는 당황스러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식사가 끝나자 신유리는 외출하자고 졸랐다.신세희는 가성섬의 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외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성섬은 작은 섬이라 하루면 다 돌아볼 수 있었다.두 모녀는 손을 잡고 동원을 나왔다. 서원을 지나치는데 상처를 처치하러 온 의사가 문을 열고 있었다.임서아는 정원의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머리에 붕대를 두른 임서아를 보자 신유리가 웃음을 터뜨렸다.“엄마, 저거 봐! 저 못난이가 어제까지 얼굴에 퍼렇게 멍이 들었더니 멍은 좀 가라앉은 것 같은데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앉았네? 정말 멍청해 보여. 엄마, 빨리 봐! 핸드폰은 가져왔어? 빨리 사진 찍어! 우울할 때마다 꺼내서 볼래….”한가하게 휴식하고 있던 임서아가 그 말을 듣고 분노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녀는 씩씩거리며 신유리에게 달려왔다.하지만 예전의 날카로운 기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얼굴은 귀신처럼 창백하게 질려서 보기 흉했다.조금 전까지 임서아를 비웃던 신유리는 놀라서 엄마의 등 뒤로 숨었다.임서아가 신세희와 신유리 앞에 다가왔지만 반호영이 다리를 들어 그녀를 걷어찼다.안 그래도 허약한데 제대로 맞았으면 위험했을 뻔했다. 임서아는 재빨리 집으로 도망쳤다.분노한 그녀는 울며 물건들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의사는 상처에 약을 발라주려고 했지만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정원 밖, 반호영은 차갑고 담담한 목소리로 대문을 향해 소리쳤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신세희와 이 아이는 내가 초대한 손님입니다. 그것도 아주 존귀한 손님이죠. 앞으로 이들 모녀에게 해를 가하는 인간은 그게 누구든 바다에 던져버릴 테니까 조심해 주세요!”말을 마친 반호영은 신유리의 손을
그 소리를 들은 반호영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전화를 걸었지?”부소경은 대답 대신 화제를 돌렸다.“반호영, 확인해야 할 일이 있어. 50년 전, 반 씨 가문과 하 씨 가문 사이에 숨긴 비밀이 뭔지 알아?”반호영은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처자식이 그의 손에 납치되었는데 전혀 당황하지 않는 태도가 의심스러웠다.신세희와 신유리를 포기하기로 한 걸까?정말 그렇다면 반호영에게는 오히려 이득이었다.잠시 말이 없던 반호영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부소경, 너 남자 맞아? 이러고도 남성의 왕이라고? 처자식이 내 손에 있는 거 몰라?”부소경은 여전히 냉랭한 목소리로 되물었다.“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내가 저 둘을 어떻게 할 것 같아?”“두 사람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죽을 줄 알아.”부소경이 담담히 말했다.“그러니까… 지금 내 일거수일투족을….”“그래. 네 일거수일투족은 전부 감시하고 있어. 내 아내와 딸이 거기 있어서 오히려 시름이 놓여. 만약 그들에게 허튼수작을 부렸으면 넌 진작에 목숨을 잃었다고!”담담하지만 위협이 느껴지는 말투였다.반호영은 그의 말에서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그는 남성에 자주 가는 편이 아니었다.살면서 한 번 가본 것이 전부였다.하지만 부소경이 어떤 인물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가문의 대권을 틀어쥐었는지, 어떻게 자신의 형제를 몰아세우고 장애물들을 제거했는지, 그리고 그가 해외에서 축적한 세력들까지 모르는 게 없었다.부소경은 반호영에게도 약간 두려운 존재였다. 그의 형인 반호경과 힘을 합쳐도 버거운 상대였다.그들 형제가 이렇게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남성 서 씨 어르신과 서울 구 씨 가문에서 뒤를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 그를 상대로 부소경은 전혀 긴장하는 기색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한 태도로 통화를 했다.그러니 그가 한 말도 그냥 해본 말은 아닐 것이다.부소경은 실속이 없는 말을 하는 인간이 아니었다.속으로 아무리 잔인한 생각을
부소경은 대답이 없었다.“난 한 번도 이 가성섬에 애착을 가진 적 없어. 촌구석 같아서 말이야. 해마다 정부 지원금으로 겨우겨우 버티잖아. 나도 너처럼 해외에서 사업하는 사람이라고! 가성섬을 떠나도 해외로 가면 여전히 잘 살 수 있어! 부소경, 네 협박은 나한테 안 통해! 서 씨 어르신과 구 씨 가문이 우리 형을 지지하고 있어. 누가 이길지는 아직 모른다고! 걱정하지 마. 나 비겁한 사람은 아니야. 너에게 붙잡혀도 절대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을 거란 말이야!”말을 마친 반호영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부소경은 생각에 잠겼다.“대표님,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뒤에 있던 엄선우가 물었다.부소경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반호영에게 어디 있는지 물어볼 생각이었어. 유리랑 세희 데리고 어디 나갔다고 했거든. 저택에 있는 게 안전할 텐데. 걱정해서 전화했더니 반호영 그 자식이….”반호영이 이렇게까지 까칠한 성격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까지 들었다.한편, 전화를 끊은 반호영은 드디어 부소경에게 한방 먹였다는 생각에 속이 후련했다.사람은 자아도취에 빠지면 주변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게다가 그의 주변에는 많은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반호영은 누군가 접근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엄마, 이거 봐. 이렇게 모래 속에 파묻히면 아주 따뜻할 것 같아. 내가 누울 테니까 엄마가 나를 파묻어 줘.”신유리가 잔뜩 신난 목소리로 신세희를 재촉했다.신세희는 아이의 철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짐짓 화난 척, 아이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파묻는다는 소리 한 번만 더 해봐. 혼날 줄 알아!”그러자 신유리가 엄마를 향해 혀를 홀랑 내밀었다.“헤헤!”그러더니 모래를 집어 신세희에게 던졌다.“엄마, 몸에 모래를 덮으면 피부가 햇빛에 타지 않을 거야.”주변에는 모래로 온몸을 덮고 머리만 밖에 내놓은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아이는 그들이 피부가 그을릴까 봐 모래로 피부를 가린다고 생각했다.신세희는
칼을 맞은 조의찬의 등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고통스럽게 신음하면서도 손을 들어 아이의 눈을 가려주었다.아직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신유리에게 이런 잔혹한 장면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세희 씨, 도망가요! 빨리요!”조의찬이 다급히 소리쳤다.이때, 백골처럼 야윈 암살자가 다시 조의찬의 등 뒤로 칼을 휘둘렀다. 신세희는 온몸의 힘을 쥐어짜서 암살자를 걷어찼다.남자가 바닥에 쓰러지며 칼도 바닥으로 떨어졌다.신세희는 그제야 암살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딱 한번 만난 적 있었지만 절대 잊을 수 없었던 얼굴이었다.그는 허영의 불륜상대였다.허영이 가성섬으로 오면서 저 남자까지 데리고 올 줄이야.‘참 대단한 여자야!’이때, 뒤늦게 반응한 반호영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경호원들에게 손짓했다. 주변을 지키던 그의 경호원들이 남자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들이 가까이 오기 전에 건장한 두 남성이 나타나서 놈의 팔을 비틀어 바닥에 무릎을 꿇렸다.그리고 남자들 뒤로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엄선우가 다가왔다.아무도 그가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엄선우가 남자의 얼굴을 발로 걷어차자 남자는 바로 기절해 버렸다.“묶어!”엄선우가 명령했다.현장을 지키던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주변에서 여가를 즐기던 사람들은 놀라서 대부분 도망갔다.신세희도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엄선우 씨….”부소경이 자신들을 모른척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엄선우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선우 아저씨….”신유리가 울음을 터뜨렸다.등 뒤에 있던 반호영이 화를 내며 따지고 들었다.“엄선우, 감히 내 주변에 잠복하고 있었어? 지금 나에게 위협을 가하려는 거야?”말을 마친 그는 자신의 경호원들에게 차갑게 명령했다.“부소경 부하놈을 당장 제압해서 끌고 가!”하지만 명령을 따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반호영이 고개를 돌려 보니 부소경이 등 뒤에 버티고 서 있었다.그가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조의찬은 고통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는데 등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부소경을 바라보며 말했다.“형, 나… 신세희 씨한테 다른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거 절대 아니야. 그냥… 유리랑 세희 씨를 지켜주고 싶었어. 유리까지 다치면 세희 씨가 너무 힘들어지잖아.”부소경은 조의찬을 부둥켜안고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차 이쪽으로 가지고 와! 당장 병원에 가야겠어! 가장 믿을만한 의사가 수술을 집도할 거야! 너는 내가 무조건 살려!”조의찬을 태운 차가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부소경은 신세희와 딸을 품에 끌어안았다.“너… 어떻게 온 거야? 줄곧 우리 주변에 잠복해 있었던 거야? 나랑 우리 형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던 거냐고?”반호영은 두려운 시선으로 부소경을 바라보며 물었다.부소경이 잔인한 성격인 것은 잘 알고 있었다.그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그는 가성섬을 치겠다고 선포한 뒤로 6년의 준비 끝에 실행에 옮겼다.군사를 이끌지 않고 아내와 딸만 데리고 가성섬에 착륙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반호영은 잔뜩 겁먹은 기색으로 뒷걸음질쳤다.절망이 한순간에 몰려왔다.부소경은 여전히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넌 내 동생 조의찬에게 감사해야 할 거야. 걔가 내 딸과 아내의 목숨을 살렸기에 네가 살아 있는 거라고. 만약 무슨 일이 생겼더라면 너부터 죽였어.”말을 마친 부소경은 신세희를 데리고 현장을 떠났다.자리에 남은 반호영은 한참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가성섬에서 반호영은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있는 존재였다. 심지어 가성섬 주민들은 형인 반호경보다 그를 더 존경하고 따랐다. 그런데 부소경의 눈에 그는 그저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도련님.”옆에 있던 부하가 그를 불렀다.반호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차갑게 말했다.“집으로 가자! 형이랑 의논해 봐야겠어! 부소경이 뭘 믿고 이렇게 거만을 떠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보내 병원을 포위하도록 해!”“네, 도련님!”지시를 받은 부하가 다급히 현장을 떠났다
수화기 너머로 어딘가 지쳐 보이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내 목소리도 못 알아들었어?”부소경은 그제야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서씨 어르신이었다.그는 바로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어르신,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가성섬의 비밀을 내가 알려줄 수 있다고 했다.”어르신이 다시 말했다.부소경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겁니까?”“그래!”어르신은 솔직하게 인정했다.“그런데 왜 제가 남성에 있을 때는 알려주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가성섬을 침공하려 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지켜보시기만 하셨잖습니까?”부소경이 다시 물었다.서씨 어르신의 목소리가 점점 더 힘없이 들렸다.“말을 안 한 이유는 네 엄마, 그리고 네 외가 쪽 사람들과 이 비밀을 영원히 간직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내가 너한테 이 사실을 알렸을 때 네가 가성섬을 바로 쳐들어갈 것 같았어. 그래서 여태 숨겼던 거야. 영원히 혼자 간직할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상황이….”90세가 다 되어가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구슬프게 이어졌다.“이제 그런 것들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구나.”부소경의 반응은 생각보다 침착했다.뭔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이 비밀로 저랑 거래를 하시려는 거지요?”“소경이 넌 여전히 똑똑하구나.”말을 마친 어르신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어젯밤, 어르신은 임서아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좋은 소식을 기대했건 만, 전화를 받자마자 외손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외할아버지…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저…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몰라요. 제가 정말 죄송해요, 외할아버지….”놀란 어르신이 물었다.“서아야, 무슨 일이야? 말을 해야 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임서아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흐느끼며 말했다.“외할아버지, 저 부소경이라는 사람이 너무 무서워요. 그 인간이 우리 모두를 속였어요….”충격을 받은 어르신은 하마터면 전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임서아는 울며 가성섬의 상황을 어르신께 보고했다
어제 협박 전화를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누군지 감도 안 잡혔는데 조의찬이 신유리 대신 칼을 맞았다고 보고를 받은 순간, 누군지 알 것 같았다.‘조의찬도 신세희를 보호하려고 가성섬에 온 거야.’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부소경은 어느새 가성섬 전체를 통제하고 있었다.반호영이 사건 현장에서 저택으로 돌아온 뒤였다. 저택 외부는 이미 부소경의 사람들이 포위하고 있었다.그제야 저택의 모든 사람, 반호경, 반호영, 임지강, 임서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모든 것이 허상이었다.그들이 평화롭다고 느꼈던 순간에 부소경은 어느새 가성섬에 병력을 침투시켰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강하다고 느꼈지만 그건 빛깔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부소경은 시시각각 그들의 숨통을 노리고 있었다.반호영은 침묵했고 반호경은 놀라서 의자에 주저앉았다. 반씨 가문 전체가 충격에 빠졌으니 임서아 일가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임서아는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꼈다.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외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가 아는 외할아버지는 못하는 게 없는 슈퍼맨이었다.모든 문제는 서씨 어르신이 나서면 해결할 수 있었다.그래서 외할아버지와 통화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그리고 그녀의 울음은 서씨 어르신을 움직였다.자초지종을 들은 어르신은 많이 충격을 받으신 듯했지만 그래도 외손녀를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서아야. 외할아버지가 어떻게든 너 지켜줄게.”전화를 끊은 어르신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부소경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부소경이 뭘 원하냐고 질문을 던지려던 순간, 서씨 어르신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소경아, 의찬이는….”부소경은 침착하게 입을 다물었다. 서씨 어르신이 먼저 거래 내용을 꺼내지 않았으니 먼저 질문하지 않기로 했다.그럴 이유도 없었다.그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찬이는 곧 깨어날 거예요. 조금 상태가 좋아지면 남성으로 옮겨서 치료받게 할 겁니다. 남성 병원이 여기보다는 더 믿음직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