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겁이 없었다. 예전에 그 작은 도시에서 유치원에 다녔던 2년 동안에도 남자아이와 셀 수 없이 싸웠었다.물론 아이가 싸웠던 이유는 아빠가 없다고 놀리거나 자기 엄마를 헐뜯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신유리는 야무지게 그런 적수들을 물리쳐왔다.유치원 아이들을 때리던 애가 이젠 어른들에게까지 손을 뻗은 건가?신세희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다섯 살 된 아이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어른들의 세계는 훨씬 복잡했다. 아무리 사납고 용맹해도 아이는 절대 어른들과 힘이나 지혜를 겨룰 수 없었다. 신세희는 딸아이의 안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그녀가 무서운 목소리가 경고했다."신유리! 한 번만 더 어른들한테 장난치면 엉덩이를 맞을 줄 알아! 그리고 엄만 다신 너 안 볼거야!""......"입을 삐죽거리던 신유리가 울먹이며 말했다."나는 그냥 엄마 도와주려고...""엄마는 네 도움 필요 없어. 그냥 네가 말썽만 피우지 않으면 돼."그녀가 엄숙하게 말했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신세희는 아이를 엄격하게 대했다."하지만 그 여자들이 아빠를 뺏고 싶어 했단 말이야...""엄마가 다시 말하는 데 네 도움 필요 없어. 신유리, 엄마 말 잘 알아들었어? 다음부터는 절대 어른들 건들지 마. 만약 다시 한번 그러면 너 진짜 엄마한테 단단히 혼날...""내 딸이야, 그딴 위협은 그만둬!"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소경이 윽박질렀다."......"부소경의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어른들을 건들지 말라고? 오늘은 그 두 사람이 먼저 잘못한 거야. 당신은 유리가 억울해도 내버려 둘 거야? 엄마가 돼서 왜 내 딸을 그렇게 교육하는 거야."부소경이 더 화가 난 건 신세희의 매몰찬 말투였다. 분명 제 아빠의 주변 여자를 쫓아내기 위해서라는 걸 알면서도 네 도움 따윈 필요 없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신세희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부소경은 전화를 끊어버렸다.불안으로 심장이 쿵쿵 뛰었
서준명은 6년 전에 비해 훨씬 성숙해졌고 기품있었다. 서준명은 그때 그녀가 남성에서 도망치려 했을 때 많이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부소경의 결혼식을 막으러 갔을 때도 기꺼이 도와줬었다.신세희는 서준명을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서준명이 안부를 물었다."세희 씨, 괜찮아요? 당신이 부소경에게 잡혀 왔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하지만 우리 집안에서도 감시가 심해서 쉽게 접근할 수 없었어요. 게다가 내가 섣불리 행동하면 부소경이 더 화를 낼 것 같아서 연락도 못 했네요. 지금은... 괜찮은 거예요? 그 사람은...""잘 해줘요."그녀가 짧게 대꾸했다.신세희는 그저 살포시 웃기만 했다.신세희는 항상 감사함을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잘 티를 내지 않았다. 당시 조의찬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많이 도움을 받아 감사함을 품고 있었지만 결코 입에 담지는 않았다. 나중에 조의찬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지만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를 지켜줬었다.그녀의 담담한 모습에 서준명도 안심했다."일자리 구하는 거예요?"신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건축설계사로 일하려고요. 회사에서 제법 저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요.이곳이 제 미래 직장이에요."서준명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정말요? 잘됐네요""네."신세희가 웃으면서 물었다."그런데 여긴...""여긴 내 친구들끼리 동업해서 만든 회사예요. 친구들한테 세희 씨 좀 잘 부탁한다고 말해 놓을게요."신세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러지 마세요. 제 실력으로 당당히 월급 받고 싶어요."서준명이 웃으며 대답했다."네, 멋지네요. 세희 씨는 꼭 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그는 신세희를 처음 본 순간부터 고모와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임서아를 당신 외손녀로 알고 있었고 그녀를 불면 날아갈까 소중히 아꼈다.서준명은 임서아가 꺼림칙했다.하지만 그의 손에는 그녀가 고모의 딸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었다.부모님이 조사한 데 의하면 고모는 확실히 임지강과 결혼한 적 있었고, 임서
신세희와 임씨 가문 사이의 일은 그녀에게 상처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들추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부끄러워 내보이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신세희는 카페에 가지 않고 지원했던 회사 바로 앞 대로에서 자신과 임씨 가족 사이의 관계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했다.더는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어서 집에 돌아가 대체 유리가 부씨 저택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싶었다."열두 살 때까진 고향에서 살았어요. 작은 교외였죠.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어요. 농한기 때는 아빠가 화물 상하차 작업을 하셨고요. 그런데 열 살 때, 일하시던 도중 화물 상자가 무너지는 바람에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그 해부터 엄마도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죠. 엄마의 건강은 계속 악화됐고 그 와중에 난 성적이 좋았던 터라 엄마는 내가 공부를 그만두는 걸 원하지 않으셨어요.2년 뒤에 엄마는 나를 데리고 남성으로 왔어요. 그때 난생처음 도시에 발을 들였어요. 엄마는 우리 집안과 임씨 집안이 무슨 관계인지 한 번도 말씀해주시지 않았어요. 그저 임지강네 집으로 찾아가 그들 부부한테 나를 받아달라고 사정했어요. 내가 공부를 마칠 수 있게 말이죠. 임지강은 내키지 않아 했고 허영은 더 불만이었죠.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중에는 억지로라도 날 받아줬어요. 그래서 임씨 집안에서 자라게 된 거예요. 엄마는 반년마다 나를 보러 오셨어요. 그렇지만 한 번도 그 집에 간 적은 없고, 학교에서 내 얼굴을 본 뒤 용돈 좀 챙겨주고는 바로 떠나셨어요.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이면 난 고향에 내려가 엄마를 도와 채소를 팔았어요. 형편이 여유롭진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했어요. 몇 번이나 임씨 집안과 무슨 사이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으셨어요. 방학이 끝나면 나는 다시 남성으로 가서 그 집에 얹혀살며 공부를 해야 했어요.이런 생활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대학 2학년까지 계속되었어요. 그동안 엄마의 병세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고 날 보러 오는 횟수도 점점 줄었죠. 대학에 가니까 지출이 더 늘게 됐어
"......"그는 무슨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몰랐다. 그저 마음속으로 그녀의 비참함에 공감하려 했을 뿐이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거세게 퍼부었다.신세희는 무심코 손을 들어 머리를 감쌌다. 서준명은 그녀를 회사의 1층 로비 안으로 이끌었다.서준명이 휴대전화를 꺼냈다."노 비서님, 잠깐 내려와서 서류 좀 받아주시겠어요?"신세희는 의아했다. 조금 전까지 그는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사람을 시켜 서류를 가져가라고 하는 걸까?얼마 후 오피스룩의 예쁘장한 여자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다가왔다. 서준명은 여자에게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소 사장님께 전해줘요. 난 일이 있어서 올라가진 않을게요."여자가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하고 자리를 떠났다.서준명이 신세희에게 시선을 돌렸다."어디로 가요? 데려다줄게요."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잠깐 뜸을 들인 그녀가 입을 열었다."아뇨, 혼자 갈 수 있어요"서준명이 웃으며 물었다."부소경에게 가는 거예요? 그 사람이 무서워요?""...그 사람은 사실, 잘해주는 편이에요.""그럼 뭐가 걱정이에요?"그가 다시 미소 지으며 물었다.신세희도 그저 가볍게 웃고 말았다.조금 전 신유리의 말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진 탓이었다. 당장 돌아가 대체 무슨 일인지 따지고 싶었다. 이 도시는 두 모녀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신세희는 유리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길 바랐다.만약 아이가 사고를 친 것이라면 신세희는 바로 아이를 보호해야 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것이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신세희는 그의 호의를 사양하지 않았다."고마워요, 준명 씨."서준명이 안심하며 씨익 웃었다. 그녀가 거절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6년 전 그도 그녀를 오해한 적 있었다. 나중에 그녀가 자기의 목숨을 걸고 조의찬을 구했다는 사실에 감명받은 건 서시언 뿐만 아니었다. 서준명도 마찬가지였다."시언이는..." 운전하면서 서준명은 신세희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돈이 필요하면 얼마가 됐든, 언제든지 날 찾아요. 절대 혼자 끙끙 앓지 말고요.""고마워요, 준명 씨." 신세희가 명함을 받으며 말했다.그녀는 사실 명함을 받기 싫었다. 굳이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녀와 유리는 부소경 곁에 머물 테니 앞으로 돈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도 이미 직장을 구했으니 열심히 한다면 정당한 보수도 받을 수 있었다.그녀는 누구에게도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다만 예전에 서준명이 그녀를 많이 도왔기에 그의 체면을 지켜주고 싶어서 명함을 받은 것이었다.이때 두 사람의 뒤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두 사람은 시선을 돌려 그 차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안색이 당황으로 물들었다.왜 하필이면 이때 부소경을 마주친단 말인가.신세희는 부소경이 행여 질투라도 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소경이 질투할 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은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 많았다.차에서 먼저 내린 사람은 엄선우였다. 서준명을 발견한 엄선우가 인삿말을 건넸다. "귀한 손님이 오셨군요."인사를 하면서 그는 뒷문을 열었다. 부소경과 그에게 안긴 아이가 모습을 비췄다. 아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아이와 아빠가 동시에 서준명에게 눈길을 주었다.신세희와 서준명은 어쩐지 조금 민망해졌다.부소경은 매우 복잡한 눈치였다. 그런 아빠의 어깨에 기댄 소녀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아이는 서준명이 싫지 않았다. 꼬물꼬물 부소경의 품에서 빠져나온 아이가 예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가 해맑은 목소리로 물었다.“아저씨, 우리 엄마 친구야?”의미심장하게 부소경을 바라본 서준명이 다시 그의 무릎정도에 이른 자그마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귀여운 아가씨는 제 엄마를 조금 닮은 듯 했다.곧바로 몸을 숙여 아이와 시선을 맞춘 서준명이 부드럽게 대답했다.“그래, 네 엄마 친구야.”그러자 아이는 기뻐서 폴짝폴짝 뛰었다.“와, 아저씨 너무 잘생겼어. 나 너무 좋아.”서준명이 아이를 흥미롭게
엄선우와 맞은편의 두 사람은 동시에 흠칫했다. 무의식적으로 신세희를 자신의 뒤로 보낸 서준명이 두렵지만 각오한 표정으로 부소경을 바라보았다. "형, 세희 씨는 내버려 두고 나한테만 뭐라고 해요. 형의 아이를 낳은 여자잖아요. 화풀이는 나로 족해요.”부소경은 아무 말 없이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그리고 이내 옷깃의 단추도 하나 풀었다. 서준명은 멍하니 구릿빛의 근육질 몸을 바라보았다.부소경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차 안이 좀 답답했을 뿐이야." "아... 형, 목은 왜 다친 거예요?""고양이가 할퀴었어."부소경이 여상하게 말했다.엄선우와 신세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얼굴이 빨개진 신세희는 고개를 돌린 채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애꿎은 손으로 신유리의 머리칼을 매만졌다.엄선우가 속으로 생각했다.‘도련님, 거짓말이 너무 티 나는 거 아닌가요? 어느 길고양이의 손톱자국이 두 줄의 가는 이빨 자국처럼 생겼답니까?’백 보 양보해서 설령 길고양이에게 물렸다고 해도 고양이의 이빨과 사람의 이빨은 다른 법이었다.도련님은 서준명에게 질투도 하고 선전포고도 하는 거였다. 서준명도 바보가 아닌지라 이내 고양이에게 할퀸 게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부소경을 잘 안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형 주변엔 미녀들이 넘쳐나잖아요. 그러니 굳이 형이 미워하는 여자를 곁에 둘 필요 있을까요? 오히려 형이 더 불쾌할 테니 차라리..."가볍게 코웃음 친 부소경이 신세희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서준명, 네가 잘못 알고 있어."”......”“내가 말한 겁 없는 고양이가 이 여자거든. 감히 내 여자를 네 차에 태우고 집까지 바래다주다가 나랑 딱 마주친 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신세희는 민망해서 더는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부소경의 품에 깊이 파묻힌 그녀는 서준명이 어떻게 떠났는지, 부소경이 어떻게 그녀를 안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집에 들어간 신유리는
서준명이 그녀를 보는 눈빛?어떻게 그게 가능하지?그녀는 부소경에게 붙잡혀 온 여자였고, 6년전 남성에 있을 때도 평판이 매우 안 좋았지만, 서준명은 집안 배경도 부소경 못지 않은 사람인데, 어떻게 자신을 좋아할 수 있지?기껏해야 그때의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불쌍해하는 거겠지.잠시 후 신세희는 비웃듯 부소경에게 물었다. “그래서 서준명씨 때문에 질투하는 거예요?”“그래!” 부소경은 솔직하게 말했다.신세희:“......”그가 이렇게 대답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가 질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나?부소경의 말투엔 원망이 섞여 있었다. “너 딸 잘 키웠더라! 부가네 저택에서 오전내내 여자 둘이랑 싸우고 걔 지금 엄청 막무가내로 널 지켜주고 있어!”신유리는 그가 밖에서 어떠한 여자와도 접촉하지 못 하게 했고, 누군가 자신의 엄마의 자리를 넘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5살짜리 꼬마는 호시탐탐 지켜봤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 왔을 때 꼬마는 그녀의 곁에 잘생긴 남자가 지켜줘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이게 공평한가?그가 질투를 안 할 수 있나?속으로 정말 열불이 났다.신세희:“......”신유리의 행실을 언급하지 않아도, 신유리 얘기가 나오니 신세희는 낮에 있던 일이 생각났다. 마침 신유리는 손에 간식을 들고 총총총 드레스룸으로 뛰어와 고개를 갸우뚱하며 엄마를 보다가 또 아빠를 보았다.그리고 신난 모습으로 엄마 앞으로 와서 말했다. “엄마, 쭈그려 앉아봐요.”신세희는 얼른 쭈그렸고, 신세희의 쫑알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엄선우 아저씨 핸드폰에 재밌는 사진이 있었어요. 그 여자 할아버지한테 얼굴을 맞아서, 호박처럼 또 얼굴에 손자국까지 남으니 호박 주름 같았어요.”신세희:“유리야, 누가… 누가 얼굴을 맞았다는 거야?”여자 둘이서 서로 싸운 거 아니였나?왜 갑자기 할아버지가 때렸다는 거지?신세희는 그저 이 일이 신유리와 상관없다는 것만 알고 싶었다.“그 임서아라는 여자요. 그 여자가 자꾸 자기가 아빠 약혼녀라고 하잖아요, 흥! 그리고 진상희라는 여자
아마 부씨 집안 저택에서 진상희한테 맞고 또 서씨 어르신한테 맞고 나니, 임서아는 말을 할 때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고, 입에 무언가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부소경은 속으로 비웃었다. 여자가 이렇게까지 맞았는데 사과까지 한다니.그녀의 사과를 전화로 들으면서, 부소경은 옆에서 교활하고 신나게 웃으며 신세희의 손을 잡은 신유리를 보았고, 그녀들은 드레스룸에서 나갔다.부소경은 밖을 보았고, 모녀는 주방으로 갔다.이쪽에서 부소경은 귀찮은 말투로 말했다. “할 말 있으면 바로 해.”“도련님, 저희 외할아버지가 저택에서 저를 세게 때리셨어요. 집에 와서도 할아버지한테 엄청 혼나고 저한테 무릎 꿇고 반성하라고 하셨어요. 도련님, 저도 이제 잘못한 거 알아요.앞으로 다시는 사람들 많은 곳에서 다른 사람이랑 싸우지 않을 게요. 큰 가문의 아가씨로써 이런 창피한 일을 했으면 안됐었던 것 같아요.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그러니까… 한번만 저를 용서해 주세요.”부소경은 차갑고 증오하는 말투로 물었다. “너가 잘못했다고?”이 여자는 평소에 거만하기 시작하면 그 누구보다도 거만했지만, 비참할 때는 그 누구보다 더 비참했다.이런 여자가 매일 그에게 시집을 오겠다고 노래를 부르다니.정말 바보 같기 짝이 없었다.만약 중간에 서씨 어르신이 없었더라면, 임서아는 이미 몇 백 번이나 더 죽었을지도 모른다.이렇게 바보 같고, 예의도 없고, 비참한데다 적당히가 없는 여자의 목소리를 부소경은 듣기 싫었다.사실, 오늘 부씨 가문 저택에서 일어난 일을 만약 다른 여자가 당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 앞에서 놀림을 당하고 누명을 쓴 여자들은 다 화나서 미치는 게 정상이었다. 그녀에게 누명을 씌운 여자에게 달려드는 게 당연한데, 그녀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정말 우스웠다.“나한테 사과할 필요 없어.” 그리고 부소경이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에 임서아가 황급히 소리쳤다. ”잠깐만요, 우선 전화 끊지 마세요. 아직 할 얘기가 남았어요.”부소경:“......말해!”“도련님, 그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