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경은 발을 동동 구르는 유리의 모습을 모르는 척하며 유리를 데리고 병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나쁜… 악당, 날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야? 날 고아원에 팔아버릴 건 아니지?” 유리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비록 눈앞에 있는 이 악당이 자신을 팔아버리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늙은이 한 명이 너 보고 싶데.” 부소경이 솔직하게 말했다.늙은이?유리는 그 늙은이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부소경이랑 함께 병실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병실은 무척이나 호화로웠고 전문 간병인들과 부성웅, 진문옥 부부가 안에 있었다.“아버지.” 부소경이 병실 안으로 들어서며 입을 열었다.부성웅은 유리를 본 순간 그대로 얼어버렸다.하지만 옆에 있던 진문옥은 얼굴색이 안 좋았다.진문옥에게는 아들이 셋이나 있었다. 하지만 아들 셋 모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버렸고, 그녀에게 손자 한 명도 남겨주지 않았다. 되려 사생아인 부소경이 부씨 집안에 남은 유일은 후손이 되어버렸다.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부소경은 사생아다. 그리고 그의 딸도 사생아였다.진문옥의 눈동자에 이상한 경멸심이 스쳐 지나갔다. 한순간에 스쳐 지나간 감정도 부소경은 알아채버리고 말았다.반대로, 유리를 보던 부성웅의 눈빛에는 흥분과 감동이 가득했다.5살 정도 된 것 같은데… 오늘 처음으로 집에 데려왔다고?“아가야, 이리 와. 할아버지한테로 와. 할아버지가 얼굴 좀 보자.” 부성웅은 유리를 안으려 허리를 숙였다.깜짝 놀란 유리는 부소경의 옆에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유리의 두 손은 부소경의 다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유리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의 친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같은 시각, 누워있던 부태성도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부성웅이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는! 아이는 어딨어! 빨리 보여줘!”이제 유리는 숨을 곳이 없게 되었다.유리는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유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엄마에게 전화 칠 방법도 모르고 있었다. 생각해
부소경의 담담한 말투는 여전했다. “신 씨요.”“그 아이는 자식으로 인정 안 하려고?” 진문옥이 그에게 또 한 번 물었다.그녀의 말에 부소경은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이게 당신들이 바라는 거 아니었나?”“너!” 그의 말에 부성웅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너 왜 이렇게 사람이 모질어! 내가 비록 널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네 성은 부씨라고 인정해 줬잖아! 그리고 너도 결국 부씨 집안 가업을 이어받았고! 근데 넌 네 아이 성을 부씨라고 인정해 주지도 않아? 너 진짜 사람이 모질다!”그의 말에 부소경은 가볍게 냉소했다.내 자식은 누구의 성을 따르든 내 자식이다. 유리가 엄마의 성을 따른다 해도 결국 유리는 F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가 될 것이다!이 일은 다른 사람들이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부소경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일을 설명하는 게 무척이나 귀찮았다.나도 ‘부’씨라는 성에 아무 관심이 없는데 내 딸은 어떨까?내가 보기엔 엄마 성을 따르는 게 더 나은 것 같은데!그때 진문옥이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소문이 사실인가 보네. 네가 그 여자를 엄청 싫어해서 일부러 괴롭히고 벌주려고 데리고 온 거라는 그 소문 말이야. 이것도 나쁘지는 않지. 그렇게 되면 서씨 집안 어르신한테 뭐라 할 말도 있고, 운성 상류층 집안에도 할 말이 있으니까. 그 여자한테 벌주려거든 제대로 줘. 확실하게 말이야. 그리고 이런 쓸데없는 일에 그만 신경 써. 너 회사 일하는데 방해하지 되잖아. 그리고 너, 임씨 집안 아가씨랑 언제 결혼할 거야? 벌써 6년이야. 너도 이제 서른 살 넘어가잖아. 이제 더 미루면 안 돼!”진문옥은 친아들을 나무라는 듯한 말투로 부소경에게 말했다.사실 그녀는 마음속으로 그를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있었다.진문옥은 부씨 집안의 본처였다. 규칙대로라면 부소경이 진문옥을 엄마라고 불러야 한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들이 일찍 세상을 떠났고 이제 부씨 집안에는 부소경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부씨 집안의 사모님으로서 그녀는 당당하게 행
병실에 있는 세 사람 모두 멍한 표정을 지었다.때마침 부태성의 전담의가 한 무리의 젊은 의사들과 수간호사, 일반 간호사들을 대동한 채 회진하러 왔다. 입구에서 이 광경을 본 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색한 침묵은 30초 동안이나 지속되었다.겨우 정신을 차린 건 부태성의 전담의였다."세상에, 아직 다 회복되지 않은 어르신께 이런 식으로 굴면 안 됩니다. 대체 이 아이는 뭡니까? 병실에서 이렇게 말썽을 부리다니, 정말 교양 없군요. 당장 쫓아내십시오."그는 부씨 집안에 이런 아이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부씨 집안의 아이도, 조씨 집안의 아이도 아니니 부태성과는 아무 관련 없을 게 뻔했다.그가 직접 아이를 쫓아내려 벼르고 있던 찰나, 부태성이 허허 웃었다."아이고, 증조할아버지의 콧구멍이 찢어지게 생겼구나. 간지러우니 이만 손을 떼지 않으련? 그럼 맛있는 것도 사주고 저 사람들이 네게 잘못했다고 빌 때까지 아주 호되게 혼내주마. 응?""영감, 정말이야?""증조할아버지라고 불러 보거라."부태성이 살살 달랬다."저 사람들 사과가 먼저야."신유리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조건을 내걸었다.병색이 완연하던 부태성은 갑자기 기운이 솟아나는 것만 같았다. 그가 자기 아들과 며느리, 손자를 보며 명령했다."셋 다 당장 내 소중한 증손녀에게 사과하거라.""......"병실의 모든 사람이 할 말을 잃은 채 귀여운 아이를 바라봤다.감히 건드릴 수 없는 꼬마 권력자였다."얼른."부태성이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미, 미안하구나."부성웅이 먼저 입을 뗐다.이어 진문옥도 사과했다."미안하구나, 꼬마야"신유리가 부소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악당도 사과해!"부소경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래, 아빠가 미안하다."그제야 만족한 신유리가 부태성의 콧구멍에서 손가락을 뺐다. 겨우 풀려난 부태성은 얼굴이 벌겋게 될 때까지 연속 기침을 해댔다.깜짝 놀란 의사와 간호사가 우르르 몰려가 그를 살폈다.부소경은 그 기회를 틈타 얼른 부태성의 품에서 신유
부소경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유리의 성씨는 아버지인 제가 정합니다. 그저 얼굴을 한번 보겠다고 하셨잖아요. 유치원에 갈 시간입니다."말을 마친 부소경이 신유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리야, 유치원에 갈 시간이야."신유리가 눈동자를 도르르 굴렸다. 그와 함께 가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엄마의 안 좋은 얘기를 하지 않았던가.부소경이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과했잖아. 넌 태어나서 한 번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니?”“......”아이는 영악하고 똑똑했지만 아직 부소경을 당해낼 수 없었다. 자신에게 사과까지 했으니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그를 따라가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유치원에 도착할 때까지 신유리는 부소경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부소경이 신유리의 손을 잡고 선생님 곁에 데려다주려 했으나 아이는 먼저 유치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그런데 멀리 뛰어가던 신유리가 다시 돌아왔다."왜 그러니?" 부소경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끝나고 집에 갈 때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신유리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부소경이 덤덤하게 말했다."그래, 문 앞에 나타나지 않으마."말을 마친 부소경이 떠났다.오후가 되자 신유리는 신나서 첫 번째로 유치원 정문 앞으로 달려갔다. 악당이 오지 않겠다고 했으니 분명 엄마가 데리러 왔을 터였다.그러나 유치원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엄선우였다."흥. 아저씨 싫어."엄선우의 손에 작은 손을 얹은 신유리가 발을 콩콩 구르며 가지 않으려 했다.엄선우가 웃으며 말했다."공주님, 내가 싫으면 지금 당장 눈앞에서 사라질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러면 누가 운전해서 공주님을 엄마한테 데려다주지?"”그 사람도 운전할 수 있어.""누구?" 엄선우가 물었다.”악당!”"악당이 누군데?"엄선우가 웃음을 참으며 되물었다."...못된 아빠 말이야."엄선우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아빠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면서? 사실은 아빠가 보고 싶었던 거야?”"아니야, 아니라고!”엄선
엄선우는 묵묵히 차를 몰았고 부소경도 입을 열지 않았다.신유리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다. 아침에 만난 노부부와 병상에 누워있던 그보다 더 늙은 영감은 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다.그러나 부소경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에 신유리도 할 수 없이 말을 삼켰다.부소경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11시쯤, 회의를 마친 부소경은 아버지 부성웅이 걸어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무슨 일입니까."부소경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소경아, 설마 그 아이를 원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부성웅이 입을 열었다.부소경이 비웃었다."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건 제 마음입니다. 당신이 상관할 일은 아니지요.""소경아. 내가 너한테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먼저 겪은 사람으로서 충고하마. 그땐 내가 미안했다. 너와 네 어미를 해외에서 너무 고생시켰어. 하지만 나도 힘들었단다. 이렇게 거대한 기업을 짊어지면서 어떻게 규칙을 하나도 세우지 않을 수 있었겠니. 너도나도 권력을 가지려고 한다면 우리 가문은 진즉에 망했을 거다. 하지만 너와 네 어미가 그렇게 쫓겨났어도 넌 여전히 보란 듯이 돌아와 F그룹을 장악했지. 그래서 난 똑똑히 깨달았어. 사생아가 별거냐? 모두 우리 부씨 집안의 아이들이고, 능력만 있으면 그만인 것을. 오늘 아침 네 할아버지 병문안을 왔을 때 나도 그 아이를 직접 보지 않았더냐. 비록 여자아이였지만 너랑 눈빛이 똑 닮았더구나. 쉽게 길들이지 못할 아이다. 만약 그 아이를 인정하지도, 제대로 된 성씨도 주지 않는다면 나중에 그 아이가 커서 네가 날 미워하듯이 똑같이 널 미워하는 게 두렵지도 않아? 내게 아들이라곤 너밖에 남지 않았어. 다 너 좋으라고 하는 소리야. 아이의 엄마는 상관없어. 그러나 아이는 네 혈육이니 그렇게 버리면 안 돼! 이미 집안 어르신들과 네 큰엄마와도 상의를 마쳤다. 아이의 성은 반드시 부씨로 해야 해. 또 우리 부씨 저택에서 키우는 게 좋겠구나. 여기에는 고용인들도 많고 유모도 있으니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게다.""...
신발을 갈아신으며 부소경이 물었다."무슨 일이야?"부소경의 손을 잡고 집안에 들어선 신유리가 신세희의 품에 답삭 안기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나 오늘 할아버지 두 분이랑 할머니 한 분을 만났어. 할머니와 작은할아버지는 조금 사나웠고 침대에 누워계시는 할아버지는 나름 괜찮았어. 내가 그 할아버지를 물리쳤어!"신세희는 바로 그들이 누군지 알아챘다.그녀가 부소경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유리를 데리고 당신 할아버지를 뵈러 간 거예요?"부소경은 그녀의 물음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할 말 있다 그러지 않았어?"신세희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당신, 실은 우리 유리를 당신 딸로 인정하고 있는 거예요?"'다행히 완전히 바보가 된 건 아니군.'부소경이 힐끔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래서, 용건은?"말하면서 그는 신유리를 데리고 세면실로 가 손을 씻긴 후 식탁에 앉혔다.이씨 아주머니가 식탁에 음식을 하나하나 나르고 있었다.그녀의 요리 솜씨는 아주 뛰어났다. 게다가 세심하기까지 한 그녀는 아이가 저녁 식사를 함께할 것을 알고 특별히 옥수수전을 만들어 주었다.기름에 바삭하게 구워진 옥수수전에 샐러드와 케첩을 곁들인 요리가 식탁에 놓였다."우와!"황금빛 색감, 하트 모양으로 꾸며진 샐러드, 처음 마주한 강렬한 후각과 시각의 향연에 신유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신이 난 신유리를 바라보며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유리는 한창 클 나이죠. 사모님, 먼저 가족끼리 식사를 마치시고 제가 과일도 내어올 테니 그때 다시 이야기를 나누시는 게 어떨까요?"그녀는 유능한 가사도우미였다. 신세희가 고마움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았다.다만 과연 그들을 가족이라 할 수 있는지 조금 의문스러웠다.막연히 그런 환상을 품은 적은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스스로가 가소로웠다.신세희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아주머니가 공손히 물러가자 식탁에는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엄마, 얼른 줘요."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신유리가 말했다.이른 아침부터 증조할아버지와
얼른 음식을 식힌 부소경이 조심조심 신유리의 입가에 가져다주었다. 신유리는 몹시 들떠 있었다."나 주스 마실래."신유리가 말했다.신세희가 근처에 놓여있던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내밀었다."옥수수전!"신유리가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부소경을 바라보았다.부소경이 얼른 옥수수전 한 조각을 입에 넣어주었다.해외로 쫓겨나 모든 권력을 박탈당했을 적에도 다른 사람의 시중을 든 적이 없던 그가 난생처음 고분고분하게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었다.맛있게 먹는 신유리를 바라보니 어쩐지 그의 마음도 뿌듯해졌다.미간을 조금 찌푸린 신세희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신유리에게 장난스레 말했다."유리야, 너 진짜 이럴 거야? 우리가 비록 작은 도시에서 살았다지만, 엄마가 언제 너 먹고 싶은 거 못 먹게 했어? 너 진짜 이런 식으로 게걸스럽게 먹을 거야? 우리 매너 좀 지키자.""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그렇지, 아빠?"유리는 옥수수전을 오물거리며 의기양양하게 부소경을 쳐다봤다.하루 종일 부소경에게 삐져있던 아이는 맛있는 옥수수전을 입에 넣더니 모든 걸 잊어버렸다. 심지어 그를 악당이라 부르던 것까지.신세희가 부소경을 흘겨보았다."당신도 좀 뭐라고 해봐요. 여자애가 이렇게 게걸스럽게 먹으면 어떡해. 한 번도 맛있는 걸 못 먹어본 사람처럼.""내 딸이야. 어떻게 먹든 내 딸 마음이지."오만하게 말한 부소경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신유리를 바라보았다. 말을 마친 그가 다시 아이에게 옥수수전을 건넸다.오물거리던 아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자기 딸이라고?'갑자기 정신을 차린 신세희가 뚫어질 듯 부소경을 바라보았다.동시에 부소경도 신세희와 시선을 마주했다."미, 미안해요."이곳이 부소경의 집이라는 사실을 그만 망각하고 말았다.부소경은 서시언이 아니었다.작은 도시에서 그와 함께 생활했을 적, 서시언도 이런 식으로 신유리를 오냐오냐했었다. 매번 유리를 감싸주는 그에게 신세희는 밉지 않게 타박했다."삼촌이 아이를 다 망치게
신세희도 부소경이 쉽게 허락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조적으로 말했다."나도 그냥 해본 소리예요."건축 디자인은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절대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었다.하지만 그가 허락하지 않으면 자신이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는 법이었다.부소경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몸을 돌려 놀이방으로 다가갔다. 신세희도 밖에 서서 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신유리는 블록으로 지은 집 안에서 놀고 있었다."비밀번호가 뭐게?"아이가 부소경에게 물었다.부소경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모르겠어, 내게 알려줄래?"그의 진중한 모습에 신이 난 아이가 조잘거렸다."비밀번호는 3512788이야."부소경이 그대로 따라했다.신유리가 뿌듯하게 말했다."정답! 들어와!"그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세희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 사람이 정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했던 부소경이란 말인가?부소경은 허리를 잔뜩 굽혀 비좁은 블록을 파고들려 했지만 덩치가 워낙 큰 탓에 몸을 반쯤 욱여넣자 이내 블록들이 와르르 무너졌다."아빠 나빠!"무너진 집에서 기어 나온 신유리가 부소경의 코를 콱 꼬집었다."아빠 나빠! 아빠가 내 집을 무너뜨렸어!""미안."바닥에 털썩 앉은 부소경이 아이를 달랬다."아빠가 다시 지어줄게, 응? 아빠가 원래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예쁘게 지어줄게."그렇게 말한 부소경이 정말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꼬맹이, 빨간 거.""여기!"신유리가 재빨리 블록을 건네주었다."이번엔 핑크색으로 줘.""자, 아빠!""좋아. 이젠 창문을 달 차례야.""아빠 틀렸어. 그 전에 먼저 저쪽 벽을 쌓아야 안 무너진다고."신유리가 퉁명스럽게 부소경에게 주의를 주었다."오, 맞아 맞아. 유리가 아빠보다 더 똑똑하네. 그럼 창문은 일단 보류. 저쪽 벽부터 짓자."부소경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바라보았다.신유리도 천진하게 웃었다."히히,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