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음식을 식힌 부소경이 조심조심 신유리의 입가에 가져다주었다. 신유리는 몹시 들떠 있었다."나 주스 마실래."신유리가 말했다.신세희가 근처에 놓여있던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내밀었다."옥수수전!"신유리가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부소경을 바라보았다.부소경이 얼른 옥수수전 한 조각을 입에 넣어주었다.해외로 쫓겨나 모든 권력을 박탈당했을 적에도 다른 사람의 시중을 든 적이 없던 그가 난생처음 고분고분하게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었다.맛있게 먹는 신유리를 바라보니 어쩐지 그의 마음도 뿌듯해졌다.미간을 조금 찌푸린 신세희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신유리에게 장난스레 말했다."유리야, 너 진짜 이럴 거야? 우리가 비록 작은 도시에서 살았다지만, 엄마가 언제 너 먹고 싶은 거 못 먹게 했어? 너 진짜 이런 식으로 게걸스럽게 먹을 거야? 우리 매너 좀 지키자.""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그렇지, 아빠?"유리는 옥수수전을 오물거리며 의기양양하게 부소경을 쳐다봤다.하루 종일 부소경에게 삐져있던 아이는 맛있는 옥수수전을 입에 넣더니 모든 걸 잊어버렸다. 심지어 그를 악당이라 부르던 것까지.신세희가 부소경을 흘겨보았다."당신도 좀 뭐라고 해봐요. 여자애가 이렇게 게걸스럽게 먹으면 어떡해. 한 번도 맛있는 걸 못 먹어본 사람처럼.""내 딸이야. 어떻게 먹든 내 딸 마음이지."오만하게 말한 부소경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신유리를 바라보았다. 말을 마친 그가 다시 아이에게 옥수수전을 건넸다.오물거리던 아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자기 딸이라고?'갑자기 정신을 차린 신세희가 뚫어질 듯 부소경을 바라보았다.동시에 부소경도 신세희와 시선을 마주했다."미, 미안해요."이곳이 부소경의 집이라는 사실을 그만 망각하고 말았다.부소경은 서시언이 아니었다.작은 도시에서 그와 함께 생활했을 적, 서시언도 이런 식으로 신유리를 오냐오냐했었다. 매번 유리를 감싸주는 그에게 신세희는 밉지 않게 타박했다."삼촌이 아이를 다 망치게
신세희도 부소경이 쉽게 허락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조적으로 말했다."나도 그냥 해본 소리예요."건축 디자인은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절대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었다.하지만 그가 허락하지 않으면 자신이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는 법이었다.부소경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몸을 돌려 놀이방으로 다가갔다. 신세희도 밖에 서서 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신유리는 블록으로 지은 집 안에서 놀고 있었다."비밀번호가 뭐게?"아이가 부소경에게 물었다.부소경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모르겠어, 내게 알려줄래?"그의 진중한 모습에 신이 난 아이가 조잘거렸다."비밀번호는 3512788이야."부소경이 그대로 따라했다.신유리가 뿌듯하게 말했다."정답! 들어와!"그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세희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 사람이 정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했던 부소경이란 말인가?부소경은 허리를 잔뜩 굽혀 비좁은 블록을 파고들려 했지만 덩치가 워낙 큰 탓에 몸을 반쯤 욱여넣자 이내 블록들이 와르르 무너졌다."아빠 나빠!"무너진 집에서 기어 나온 신유리가 부소경의 코를 콱 꼬집었다."아빠 나빠! 아빠가 내 집을 무너뜨렸어!""미안."바닥에 털썩 앉은 부소경이 아이를 달랬다."아빠가 다시 지어줄게, 응? 아빠가 원래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예쁘게 지어줄게."그렇게 말한 부소경이 정말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꼬맹이, 빨간 거.""여기!"신유리가 재빨리 블록을 건네주었다."이번엔 핑크색으로 줘.""자, 아빠!""좋아. 이젠 창문을 달 차례야.""아빠 틀렸어. 그 전에 먼저 저쪽 벽을 쌓아야 안 무너진다고."신유리가 퉁명스럽게 부소경에게 주의를 주었다."오, 맞아 맞아. 유리가 아빠보다 더 똑똑하네. 그럼 창문은 일단 보류. 저쪽 벽부터 짓자."부소경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바라보았다.신유리도 천진하게 웃었다."히히, 너무
정말 신유리의 덕분일지도 몰랐다.입술을 질끈 깨문 신세희가 쓴웃음을 지었다.나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유리는 부소경 같은 아버지를 두고 있었으니 평생 먹고살 걱정도 없었고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을 터였다. 그녀가 당장 죽더라도 말이다.유리가 무사한 건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안이었다.어느새 놀이방에서 나온 부소경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신세희를 뒤로하고 전화를 받으며 응접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신세희는 혼자 덩그러니 밖에 남게 되었다.놀이방에서 나온 신유리는 엄마가 밖에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걸 발견하고 비밀스럽게 손짓했다."엄마, 가까이 와줘."신세희가 쪼그리고 앉으니 아이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엄마, 유리가 미워? "신세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유리가 왜 미워. 유리를 예뻐하는 사람이 더 생긴다면 엄마는 너무 기쁠 거야. 엄마 말 잘 들어, 아가. 부소경은 네 아빠야, 친아빠. 너랑 엄청나게 닮았지?"그러나 신유리가 더욱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엄마, 난 아직 못된 아빠를 이길 수 없어. 그래서 지금 못된 아빠랑 친한 척하고 있는 거야. 사실 이건 가짜야."신세희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신유리를 바라보았다.까만 눈동자가 도르르 굴러갔다. 앳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엄마, 내가 꼭 지켜줄게.""......"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뭉클했다.아이를 품에 꼭 끌어안은 신세희가 다정하게 속삭였다."유리가 이 세상에서 최고야. 고마워, 우리 아가."고개를 드니 어느새 부소경이 다시 응접실에서 나오고 있었다.부소경은 담담한 얼굴로 두 모녀를 바라보았다.입을 삐죽 내민 신유리가 부소경에게 말했다."또 그 영감이랑 통화했지? 내가 다시 코를 파줄까? 그 할아버진 나한테 패배했다고."신유리가 가리킨 사람은 부태성이었다.부태성의 병세는 하루 만에 많이 호전되었다. 유리의 말대로 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기운이 넘쳐났던 그는 아직 잠자리에 들고 싶지 않아 한가롭게 부소경에게 전화를 걸었
신세희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뭐, 뭐라고요?""재결합하자고.""......"몇 초간의 정적 끝에 무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당신과 난 원수지간이에요. 당신은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고 시언 오빠를 해외로 쫓아냈죠. 난 당신에게 20억을 빚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 나랑 재결합하겠다고요? 부소경 씨, 난 당신과 같은 상류층 사람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거기에 장단을 맞춰줄 마음도 없고요. 대체 내게 뭘 원하는지 속 시원하게 말해 줄 순 없는 거예요?"전혀 화가 난 말투가 아니었다. 그건 마치 속삭임 같았다.그러나 그녀는 몹시 단호했다.말을 마친 그녀는 부소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유리에게 말했다."유리야, 이젠 씻고 자야지."될 대로 돼라지.이 집안에서 그들 두 모녀는 아무런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딸아이를 예뻐하며 같이 밥을 먹여주고 놀이방에서 블록을 쌓는 모습까지... 불과 30분 전만 해도 세 사람은 단란한 가족 같았다.그러나 그건 단지 환상일 뿐이었다.유리는 신세희의 말을 따라 고분고분 씻었다. 아이를 방에서 재우고 다시 나와보니 거실에서는 부소경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부소경의 방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벌써 잠든 건가?'그의 마음 따윈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감히 추측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따로 손님방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그날 밤, 한참 뒤척이다 겨우 잠든 그녀는 황당한 꿈을 꾸게 되었다.꿈속에서 그녀는 감옥을 나오자마자 부소경에게 끌려가 혼인신고를 했던 날로 돌아갔다. 이런 어이없는 일을 어떻게 두 번이나 반복한단 말인가?만약 두 사람이 재결합한다면, 임서아는 어떡하고?임서아는 또다시 갖은 수를 써서 자신을 없애버리려 할 테지.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채 감옥에 갔고, 감옥에서 나온 지 석 달 만에 살인청부업자들에게 쫓겼다.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는 생활에 신물이 난 그녀는 더는 누군가의 악의를 받아내고 싶지 않았다.재결합이라고?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그게 싫으면 얼른 옷 갈아입고 나랑 구청으로 가."부소경이 그녀의 손목을 털썩 놓아주었다."......"6년 만에 다시 부소경과 재결합하라니.신은 그녀를 갖고 노는 게 틀림없었다.순순히 침실로 돌아온 신세희는 옷을 갈아입은 후 간단히 씻고 머리도 다듬었다. 거실에 나와보니 유리도 깨어있었다."엄마, 오늘은 엄마랑 아빠가 같이 나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거지?"고용인들이 아이에게 빨간 공주님 원피스를 입히고 그에 어울리는 빨간 머리핀도 꽂아주었다. 아이는 꼭 마치 인형 같았다.신세희가 아이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맞아, 오늘 엄마 아빠가 함께 유리를 유치원에 데려다줄 거야. 유리, 기분 좋아?"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완전 신나!"아이는 진심으로 기뻤다.수트 차림의 부소경과 단아하게 꾸민 선세희가 아이의 손을 잡고 내려왔다. 유리는 공손하게 서서 그들을 맞이한 엄선우에게도 신나서 재잘거렸다."아저씨, 오늘은 우리 엄마 아빠가 날 유치원에 데려다준다?""좋아?"엄선우가 물었다."당연하지!""그러면 이따가 엄마 아빠가 뭐 하러 가는지 알게 되면 더 기분이 좋겠네?"엄선우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신유리가 그를 놀렸다."아저씨, 내가 방금 우리 엄마 아빠가 날 유치원에 데려다준다고 말했잖아. 기억 안 나?"엄선우가 바로 호들갑을 떨었다."아이고, 아저씨가 너무 멍청했다."그들을 차에 태운 엄선우는 신유리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다음 바로 구청으로 향했다.운전하던 그가 참지 못하고 신세희에게 말을 걸었다."사모님, 오늘은 두 분이 재결합하는 특별한 날이니 제게 복권이라도 사주시겠습니까? 행운을 제게도 좀 나눠주시죠."복권이라니? 그녀의 수중에는 마땅한 돈이 없었다."알겠어요. 나중에 돈이 생기면 제가 많이 사드릴게요."신세희가 담담하게 말했다.분위기가 대번에 싸늘해졌다.혼비백산한 엄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속으로 자기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정말이지 입만 열면 사고를 쳤다.신세희는 개의치 않는 눈치였
신세희는 손에 들고 있는 혼인 관계 증명서가 무겁게 느껴졌다.자신과 부소경 사이에는 애정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소경이 그녀에게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부씨 집안의 사모님이라는 타이틀을 갖는다고 해도 사랑 없는 결혼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그녀는 분수를 알았다. 부소경이 차에 오르기 전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난 알아서 갈게요. 20억의 빚을 따지지도 않고, 다시 나와 재결합해줘서 고마워요. 당신은 회사에 가요, 더는 방해하지 않을게요."곁에서 지켜보던 엄선우가 통탄했다.'사모님, 대표님은 한 번도 20억을 갚게 할 생각이 없었다고요. 그것뿐이게요? 앞으로 대표님의 돈은 곧 사모님의 돈입니다. 사모님은 지금 남성에서 돈이 제일 많은 사람이라고요!'마음속으로 외친 말을 감히 입밖으로는 낼 수 없었다. 그는 멀뚱히 서서 부소경을 바라보았다. 부소경이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착각하지 마. 20억 갚지 말란 소리는 안 했어.""......"차에 오른 부소경이 엄선우에게 명령했다."회사로."마지못한 엄선우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홀로 남겨진 신세희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부소경이 그녀와 혼인신고 한 이상 그녀더러 돈을 갚으란 소리는 안 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온전한 가족을 만들어 주고 싶어 했다. 자기처럼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지 않도록.방금 그가 한 말은 그저 화풀이에 불과했으나 그녀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그녀는 안전했고 유리에겐 가족이 생겼지만, 서시언은 어쩐단 말인가? 그녀를 위해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희생한 사람이었다. 이대로 외국에 쫓겨난 채로 아무런 소식도 전해 듣지 못하는 법이 대체 어디 있느냔 말이다.그리고 엄마도 마찬가지였다.매일매일 불안정한 삶을 가까스로 유지하느라 그녀는 엄마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어언 6년이 흘렀으나 여태 한 번도 고향에 돌아가 그녀의 무덤을 돌보지 못했다.심지어 임씨 집안에서 정말로 그녀의 무덤을 파버렸는지조차 알지 못했다.부소경
“얼른 가세요!”엄선우:“사모님인가요?”부소경은 힘없이 말했다. “저 사람 방해하진 말고요. 어떤 사람들은 감사히 여길 줄을 몰라요!”엄선우는 얼른 대답했다. “넵! 도련님!”부소경의 본부를 엄선우는 무시할 수 없었고, 적당한 거리에서 신세희의 뒤를 쫓았다. 신세희가 택시에 타는 걸 보고 그녀가 하숙민의 묘비 앞에 온 걸 보았다. 당연히 신세희는 무슨 말을 했지만 엄선우는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그는 다시 좀 멀리 떨어진 뒤 부소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련님, 사모님이 큰 사모님의 묘비로 오셨어요. 많이 우시는 거 같은데 며칠 후에 작은 공주님을 데리고 이곳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셨어요.”엄선우는 말을 하면서 자신이 가슴 아파했다.전화 너머 부소경이 말했다. “알겠어요.”엄선우: “도련님… 그럼 저는…”“계속 따라가세요!” 부소경이 말했다.“알겠습니다, 도련님.” 돈을 받았으니 엄선우는 다시 은밀한 곳을 찾아 계속 신세희를 지켜봤다.신세희는 아직도 하숙민의 무덤 앞에서 중얼거였고,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본인만 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어머니, 어머니랑 부씨 어르신 사이엔 그래도 사랑이 있었지만, 저랑 부소경은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 사람은 저를 싫어해요. 만약 제가 그 사람의 딸을 낳지 않았더라면, 저를 죽였을 지도 몰라요.어머니 저는 앞으로 어떡해야 하죠?어떻게 살아가야 하죠?저한테 힘 좀 주시면 안될까죠? 제가 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혼자 독립을 하고, 돈도 모아서 고향으로 돌아가 저희 엄마를 만나고 싶어요. 저희 엄마도 너무 불쌍해요.저는 저희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라요.어머니, 지금 저를 보고계신다면, 저에게 힘을 좀 주실 수 있나요?”신세희는 하숙민의 무덤 앞에 오전내내 꿇어 앉았고, 점심 시간이 되자 떠났다.패스트푸드점에서 대충 끼니를 떼우고 신세희는 공원에 앉아서 데이터를 킨 다음 구인공고를 보았다.그녀는 건축 디자인 빼고는 다른 특기가 없었다.게다가 그녀는 학력도 없었고, 심지어 대도시에서
신세희는 앞에 있는 여자를 보고 차갑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쪽을 모르는데요!”“너!” 민정연은 하마터면 숨을 못 쉴 뻔했다. “너 눈 안 보여? 왜 날 못 알아봐?”신세희는 이런 여자를 아는체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남성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됐고, 부소경이 불러서 온 거였다. 그때 그녀가 남성에서 죄 지은 사람이 많아서 그 사람들은 다 그녀가 죽길 바랐고, 며칠 전 그녀는 부소경이 예약한 룸에서 유명한 연예인에게 죄를 지었다.신세희가 미움을 산 사람들은 자신도 셀 수 없었다.그럴바엔 신경쓰지 않았다.빚이 쌓일수록 부담이 적어지고, 머리에 이가 많으면 간지러움에 익숙해지는 원리와 같았다.어차피 부소경과 부씨 집안은 신유리를 인정했고, 신유리를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신유리는 위험하지 않고 안전했다. 그럼 신세희는 자신을 미워하는 그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신세희는 민정연을 보지도 않고 무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왜 이러세요? 제가 못 알아보면 못 알아보는 거지, 연예인이라도 되세요? 죄송해요, 안 그래도 며칠전에 제가 유명한 연예인을 만나긴 했는데 똑같이 못 알아봤거든요.왜냐면 저는 연예인에 관심이 없어서요.그러니가 비키세요. 저 엘리베이터 타야해요!”민정연은 화가 났다. “신세희, 너 연기하지 마!”그리고 그녀는 뒤를 돌아 옆에 가만히 잇는 조의찬을 보았다. “조의찬씨, 죽은 거예요? 전 애인한테 내가 누구라고 말해야죠! 왜 쫄고 있어요!”이제서야 신세희는 여자 뒤에 난감한 얼굴로 숨어있는 조의찬을 보았다.조의찬은 피하지 못 하고 한 발짝 다가가 신세희를 보며 웃었다. “세희씨, 요 며칠 잘 있었어요? 부소경이 어떻게 한 건 아니죠?나한테 부탁한 일은 아직 못 하긴 했는데 걱정 말아요. 소식이 들리면 바로 알려줄게요.”“뭐예요? 조의찬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내 앞에서 감히 그런 말투로 신세희랑 대화를 나눠요? 나를 약혼녀로 생각하긴 하는 거예요? 나 당신 약혼녀예요! 신세희랑 무슨 비밀을 나누는 거예요? 요즘 얘랑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