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부소경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했다.그가 어떤 심정으로 자기를 살려준 건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김미정의 다정함과 우아함을 느껴서일까, 그녀의 단순함과 선량함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귀티와 아름다움 때문일까?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겠지?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금 그에게 따져 물을 수는 없었다.그녀는 먼저 숨어야 했다.최대한 그에게서 멀리 숨어야 했다. 그가 마음속에 담겨있는 화를 다 뿜어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김미정은 마치 죽다 살아난 죄수처럼 기고 구르며 부 씨 저택을 빠져나갔다. 막 저택을 벗어난 그때, 차 한 대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아가씨, 타세요.” 기사는 문 앞에 서서 공손하게 말했다.“당신은…” 김미정이 대답했다.“엄 비서님이 부탁하셨어요. 공항까지 데려다주시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기사가 말했다.엄 비서?그 말에 김미정은 바로 엄선우를 떠올렸다.엄선우는 부소경의 비서였다. 엄선우가 기사한테 그녀를 공항까지 데려다주라고 했다니. 그건 엄선우의 명령이 부소경의 허락을 거쳤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부소경이 자기를 공항까지 데려다주라고 사람까지 동원했다는 말에 김미정의 마음속에는 이상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하지만 김미정이 모르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그녀가 부 씨 저택을 벗어나고 있을 때, 부소경은 서울 김은국의 전화를 또 한 번 받게 되었다.김은국의 말투는 여전히 비굴했다. “도련님, 아시다시피... 제가 지금 체력이 안 좋아서… 딸 데리고 오기 좀 불편한 상황인데…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부소경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요?”“우리 김 씨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 몇 가지 있어요. 그중, 조천후를 드릴게요. 제 딸을 공항까지 데려다주는 걸 조건으로 걸고요. 안 될까요? 도련님?”“…”조천후는 김 씨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진 보물이었다.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김은국의 마음속에서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부소경의 말을 듣자, 부성웅의 마음에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너, 네 동생이…”“죽었죠.” 부소경의 말은 무척이나 깔끔했다.그는 아직도 반호영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동생은 죽었다. 그는 반호영과 함께 제대로 된 밥 한 끼도 먹지 못했고, 얘기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고, 그에게 어머니의 생전 사진도 보여주지 못했다.이렇게 반호영은 죽었다.지영명의 총에 맞아 죽어버렸다.그는 무척이나 처참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반호영의 가슴에는 구멍이 났다.그의 시체는 보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세희가 출산한 다음 날, 부소경은 반호영의 시체를 화장해 버렸고 그날 바로 그를 어머니의 무덤 옆에 묻었다.이것이 반호영의 유언이었다.그는 한편으로 엄마를 무척이나 미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엄마의 품을 무척이나 갈망하고 있었다.그는 자기가 엄마의 품속에서 오랫동안 잠들 수 있기만을 바랐다.이런 아픔은 부소경처럼 살면서 눈물을 흘려본 적 없는 사람까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전 먼저 진문옥을 처리해야만 했어요. 그래야만 어머니와 동생을 찾아가서 그들을 위로할 수 있거든요.” 말을 끝낸 후, 부소경은 발걸음을 돌렸다.그는 부성웅과 함께 어머니의 무덤에 찾아갈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부성웅의 늙은 몸이 자꾸 그의 뒤를 쫓았고, 늙고 느린 발걸음 때문에 부소경을 따라잡지 못하자, 부성웅은 뜀박질까지 했다.열심히 뛰는 부성웅의 모습은 먼 곳에 서 있는 엄선우의 마음마저 아프게 했다.부소경은 차 안에 앉아 엄선우를 불렀다. “왜 아직까지 차도 안 몰고 그러고 있어?”엄선우는 그의 말에 대답했다. “도련님, 아버님이…”그의 말에 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쳐다보았다.부성웅은 이미 차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소경아, 나도 네 엄마랑 호영이… 보러 가고 싶은데…”부소경은 아버지의 처지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는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타세요.”차는 도로를 질주했다.한 시간 반 뒤. 그
갑자기 신세희 생각이 났나 보지?부소경은 처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낳았어요. 아들로요.”“지… 진짜야?”“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이 아이는 부 씨 성을 따라야 해요!” 부소경은 차갑게 냉소했다. 무척이나 풍자적이었다.그는 웃으며 자신의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저, 그 아이 성 부 씨라고 안 지으면 안 될까요? 네?”부소경도 부 씨 성으로 평생을 살았다.그가 지금 맡고 있는 회사도 F 그룹이었다.그가 지금 아버지라고 부르는 남자, 그가 평생 증오하던 남자도 성이 부 씨였다.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아니, 아니, 아니, 소경아, 안된다! 네 아이고, 우리 부 씨 집안의 아이야. 부 씨 성을 따르지 않으면 누구의 성을 따른다는 말이냐? 꼭 부 씨 성을 따라야 한다.”지금 이 순간, 부성웅은 당장이라도 일면식도 없는 자신의 손주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하지만 부소경은 눈을 부라리며 아버지를 쳐다보더니 냉소를 뿜어냈다. “신 씨, 하 씨, 정 안되면 서 씨도 상관은 없죠. 꼭 부 씨 성을 따라야 하나요?”부성웅은 이제야 알았다. 자신을 향한 아들의 증오가 얼마나 깊고 진한지.그는 메인 목을 가다듬더니 조금은 급박한 표정을 지었다. “나 데리고, 나 좀… 우리 손주한테 데려다주면 안 될까? 성이 뭐든 간에 부성웅의 친손자는 맞을 거잖아.”부성웅은 눈을 깜빡거리며 아들을 쳐다보았다.그는 방금 아내를 잃었고, 며칠 전에는 막내아들까지 잃었다.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그의 아버지는 장례를 치르는 중이었고 아직도 발인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요즘 부성웅의 가정의 조금씩 쓰러져 가고 있었다.보름 사이에, 커다란 저택에는 부성웅과 연로한 그의 어머니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처량함과 씁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그리고 지금, 부 씨 집안에 드디어 어린 손주가 생겼다. 부성웅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부성웅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는 무척이나 기대감이 섞인 표정으로 부소경을 쳐다보았다. “나 좀
부성웅은 깜빡 잊고 있었다. 이 재난의 시작이 신유리를 향한 자신의 거짓말 때문이라는 것을.그는 깜빡 잊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도 이 사실을 잊고 있을 줄 알았다.지금 이 순간, 부성웅은 무척이나 껄끄러웠다.그는 단번에 유리를 잡아당기더니, 잘 보이려는 듯한 모습으로 유리를 쳐다보았다. “유리야, 할아버지야. 할아버지잖아. 유리 친할아버지야. 할아버지가 잘못했어. 할아버지가 이렇게 보러 왔잖아. 이렇게 유리랑 유리 동생 보러 왔잖아. 유리랑 유리 동생, 둘 다 부 씨 집안에 둘도 없는 손자들이야. 할아버지는 이제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 너랑 네 동생밖에 없어.”부성웅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의 말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그는 무척이나 진지했다.그는 자신의 모든 진심을 담아 말을 뱉어냈다.하지만 유리는 그의 마음을 전혀 알아주지 않았다.유리는 발버둥을 치며 뒷걸음을 쳤다. “아니요, 이런 식으로 유리 속일 생각하지 마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냥 알려주면 안 될까요? 우리 엄마 지금 몸이 많이 약해졌어요. 우리 동생은 태어난 지 3일밖에 안 됐고, 아빠도 요 며칠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 아빠 항상 호영 삼촌 사진 보며 울고 있어요. 무슨 일 있으면 그냥 나한테 말해요. 날 해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우리 엄마랑 내 동생을 절대로 건드리지 마요. 그리고 아빠도. 다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지금 이 집의 가장은 저예요.”6살짜리 아이가, 아직 초등학교도 안 간 아이가 벌써부터 엄마와 아빠와 갓 태어난 동생을 지킬 줄 알다니.부성웅은 유리가 훌쩍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지금 이 상황에서는 유리가 이 집의 가장이었다.그 말들은 부성웅의 귓가에 맴돌았고, 마치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내가 네 할아버지인데…” 부성웅의 얼굴에는 눈물이 흥건했다.“세상 그 어떤 할아버지도 손자들을 엄청 아껴요. 하지만 당신은 아니에요. 저번에도 나한테 당신이 유리 친할아버지라고 말했잖아요. 우리 아빠의 아빠라면서. 난 당신
“할아버지도 이제 잘못을 알았을 거야. 할아버지는 그냥 동생이 보고 싶을 뿐이야. 이 일은 유리가 결정하는 게 어때? 만약 유리가 할아버지가 동생을 보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아빠가 당장 할아버지 보고 여길 떠나라고 할게.”부소경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이것이 아이를 대하는 성의고 태도라고 생각했다.비록 아이가 어리긴 하지만, 그들에게도 존중과 평등이 필요했다.그 말에 유리는 부소경을 쳐다보았다. “아빠, 이 못된 할아버지가 아빠의 아빠야?”부소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이나 유감스러운 말투였다. “아빠 맞아.”유리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아빠, 아빠는 왜 이렇게 불쌍해?”말을 이어가던 유리는 그만 눈시울이 빨개지고 말았다. “아빠, 난 아빠가 너무 불쌍해. 아빠는 나랑 달라. 나는 좋은 엄마 아빠가 있는데, 아빠는 좋은 아빠가 없어.”“…”유리의 등 뒤, 서진희는 이미 거실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사실 그들은 거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문을 열러 간 유리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서진희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는지 상황을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유리가 문을 막으며 부성웅의 침입을 막는 모습에 서진희는 단번에 사건의 발단을 알아챘다.그녀의 말투는 무척이나 무례했다. “선생님! 손녀가 못 들어오게 막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선생님 손녀랑 며느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런 일은, 설사 손녀가 아니라 다른 어른들에게 닥친다고 해도 달라진 건 없을 거예요! 이렇게 자기 가족을 해치는데, 어른이라고 해도 당신을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 하물며 아이는요! 유리는 어리고 여려요. 하지만 자기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죠. 유리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어요. 자기 동생이 당신한테 다시 한번 속게 될까 봐. 당신이 자기 동생을 훔쳐 갈까 봐!”그 말에 부성웅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진희 씨. 진희 씨 말이 다 맞아요. 다 제 잘못이에요.”지금 이 순간
부성웅 눈앞에 놓인 묘비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묘비에 새겨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서는 온기가 느껴지지가 않았다.그 얼굴을 지켜보던 부성웅의 머릿속에 갑자기 그와 그녀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하숙민은 부성웅을 무척이나 의지했고, 온 마음을 그에게 걸었었다.그녀는 그를 남편처럼 여기고 있었다.이 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하지만 그 남자가 자신의 가족을 해친 범인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그는 하숙민의 온 가족을 해쳤을 뿐만 아니라, 하숙민을 평생 시집도 못 가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첩이라는 이름을 머리에 이며 이불을 벗 삼아 힘들게 살았다.죽을 때까지 그녀의 명예는 돌아오지 않았다.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잔인한 일이었다. 여자한테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숙민아, 네가 지금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10년만 더 살지 않았어? 당신 아들, 내 아들이기도 해. 걔 지금 F 그룹을 도맡고 있어. 그리고 당신 손자들도. 한 명은 딸이고, 한 명은 아들이야. 그리고 당신 며느리. 이 모든 게 다 당신 것이야. 모든 게 다 당신 것이라고. 당신 아들, 이제 부 씨 성조차도 아이들에게 붙이려 하지 않아. 숙민아, 만약 우리 둘 사이를 전쟁이라고 비유하면, 네가 이긴 거야. 그리고 난 지금, 철저히 혼자가 됐어. 숙민아, 하늘이 날 어떻게 벌하고 있는지 잘 보고 있지? 봐, 하늘이 얼마나 공평해? 결국 모든 응보는 돌아가게 되어있어. 그리고 난 그걸 천 배로 되돌려 받고 있고. 아니야? 당신 자식들, 하나는 날 죽일 듯이 미워하고, 하나는 평생 당신 품에 잠들게 되었어. 당신 얼마나 행복해?”멀리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엄선우의 마음에 처량함이 감돌았다.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자업자득이다.부성웅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그때, 엄선우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부소경의 전화였다. 엄선우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도련님. 네, 도련님. 지
서울에는 이제 지영주의 집이 없었다. 게다가 서울의 변화는 지영주를 분주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오빠의 유골함을 안은 채로 도로에 멍하니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하던 때, 누군가 지영주에게 계란을 던졌다.계란을 던진 사람은 할머니였다.지영주는 그대로 멍해졌다.“너 맞지! 지영명 동생 맞지!” 할머니는 노발대발하며 소리를 질렀다.“…”그녀는 지영명의 동생이 맞긴 했다.하지만 그녀는 감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네가 대답 안 한다고 해도 난 알아! 네가 지영명 동생인 거! 내가 지영명 만난 적이 있는데, 너 지영명이랑 엄청 닮았어. 나 네 죽은 엄마도 만난 적 있어! 너 그 엄마랑 생긴 게 아주 똑같아! 십 년이 지났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돌아와! 감히 여길 와! 네 오빠는 살인범이야! 너도 네 오빠랑 별반 다를 게 없지! 우리 아들 목숨 돌려내! 우리 며느리 목숨 돌려내! 아 맞다, 네 오빠가 우리 며느리 강간까지 했어! 당장 손해배상해! 배상하지 않으면 내가 가만 안 둘 거야!”“…”그녀는 할머니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하지만 이것만은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는 분명 오빠가 죽인 것일 것이다.몇 년간, 지영명은 서울에서 나쁜 짓을 꽤 많이 했었다. 그 몇 년간, 지영명은 서울에서 겁도 없이 날뛰었었다.지영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그녀는 할머니가 원하는 데로 자신을 처리하게 둘 생각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어차피 오빠의 장례를 치르고, 깊은 산속으로 돌아가 엄마의 유골을 다시 묻어주고, 그녀도 엄마와 오빠 곁에 잠들 수만 있다면 이번 생은 꽤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지영명이 전에 했던 악행을 알게 되었다.많은 사람들이 지영주에게 화를 풀고 있었다.그러다 결국 지영주는 사람들에게 밀쳐져 바닥에 넘어지게 되었다.누군가 지영주를 발로 밟아버리려던 그때, 구경민의 부하 주광수가 나타났다.부소경이 특별히 지영주를 감시하라고 구경민에게 부
부소경은 그제야 신세희 손에 어린아이의 누르스름한 똥이 묻었다는 걸 보았다. 그 뒤에 있던 신유리가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엄마, 엄마 손 봐 봐.”신세희는 딸을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웃기는! 너도 어릴 때 얘랑 똑같았어. 많이 먹고, 많이 싸고. 하루에도 똥을 몇 번이나 싸던지. 이 똥이랑 똑같이 누릇누릇했지.”신유리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엄마, 동생이 싼 똥, 냄새 지독하지?”“아니, 맡아봐, 시큼해. 아기는 아직 젖을 먹어서 냄새가 나지는 않아.” 신세희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특히 부소경은 코를 막고 이마를 찌푸리면서 신세희에게 말했다. “네 모습이 그게 뭐니. 큰 도시에서 일하는 커리어 우먼, 그것도 고급 건축가가 손에 아이 똥이나 묻히고, 게다가 냄새까지 맡아.”신세희가 부소경을 흘겨보며 말했다. “쳇, 당신이 어떻게 싫은 소리를 해요. 한가롭게 아이 똥 한 번도 받아보지도 못했으니 모르는 거죠. 유리 낳았을 때는 냄새도 맡고 똥 색깔도 살펴봤거든요. 소화 못한 알맹이 같은 게 있는지도 찾아보고 그랬어요, 당신이 뭘 알아요? 태어난 지 3일 되는 갓난애한테서 똥 냄새가 난다면 그건 소화가 안 되거나 너무 많이 먹였다는 거예요. 그럼 더 조심해야 하거든요. 냄새가 안 나고 시큼하면 별 이상 없다는 뜻이고요! 아빠라는 사람이 이래서야 되겠어요! 완전 불합격이네요!”신세희의 말을 듣자 부소경은 미안해졌다.첫아이를 낳을 때 부소경은 신세희 곁에 없었다. 혼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상상하지도 못한다.다행하게도 지금 이 아이를 낳을 때는 같이 있어 줬다. 그런데 지금 손에 똥이 묻었다고 싫어하다니!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부소경은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을 받아왔다. 그는 소독한 타월을 들고 신세희 앞으로 다가가 다짜고짜 손을 닦아주었다.손을 깨끗이 닦아준 후에야 부소경은 웃음을 짓고 있는 신세희를 보게 되었다.“당신... 왜 웃어?” 부소경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신유리도 웃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