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성웅 눈앞에 놓인 묘비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묘비에 새겨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서는 온기가 느껴지지가 않았다.그 얼굴을 지켜보던 부성웅의 머릿속에 갑자기 그와 그녀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하숙민은 부성웅을 무척이나 의지했고, 온 마음을 그에게 걸었었다.그녀는 그를 남편처럼 여기고 있었다.이 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하지만 그 남자가 자신의 가족을 해친 범인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그는 하숙민의 온 가족을 해쳤을 뿐만 아니라, 하숙민을 평생 시집도 못 가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첩이라는 이름을 머리에 이며 이불을 벗 삼아 힘들게 살았다.죽을 때까지 그녀의 명예는 돌아오지 않았다.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잔인한 일이었다. 여자한테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숙민아, 네가 지금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10년만 더 살지 않았어? 당신 아들, 내 아들이기도 해. 걔 지금 F 그룹을 도맡고 있어. 그리고 당신 손자들도. 한 명은 딸이고, 한 명은 아들이야. 그리고 당신 며느리. 이 모든 게 다 당신 것이야. 모든 게 다 당신 것이라고. 당신 아들, 이제 부 씨 성조차도 아이들에게 붙이려 하지 않아. 숙민아, 만약 우리 둘 사이를 전쟁이라고 비유하면, 네가 이긴 거야. 그리고 난 지금, 철저히 혼자가 됐어. 숙민아, 하늘이 날 어떻게 벌하고 있는지 잘 보고 있지? 봐, 하늘이 얼마나 공평해? 결국 모든 응보는 돌아가게 되어있어. 그리고 난 그걸 천 배로 되돌려 받고 있고. 아니야? 당신 자식들, 하나는 날 죽일 듯이 미워하고, 하나는 평생 당신 품에 잠들게 되었어. 당신 얼마나 행복해?”멀리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엄선우의 마음에 처량함이 감돌았다.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자업자득이다.부성웅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그때, 엄선우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부소경의 전화였다. 엄선우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도련님. 네, 도련님. 지
서울에는 이제 지영주의 집이 없었다. 게다가 서울의 변화는 지영주를 분주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오빠의 유골함을 안은 채로 도로에 멍하니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하던 때, 누군가 지영주에게 계란을 던졌다.계란을 던진 사람은 할머니였다.지영주는 그대로 멍해졌다.“너 맞지! 지영명 동생 맞지!” 할머니는 노발대발하며 소리를 질렀다.“…”그녀는 지영명의 동생이 맞긴 했다.하지만 그녀는 감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네가 대답 안 한다고 해도 난 알아! 네가 지영명 동생인 거! 내가 지영명 만난 적이 있는데, 너 지영명이랑 엄청 닮았어. 나 네 죽은 엄마도 만난 적 있어! 너 그 엄마랑 생긴 게 아주 똑같아! 십 년이 지났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돌아와! 감히 여길 와! 네 오빠는 살인범이야! 너도 네 오빠랑 별반 다를 게 없지! 우리 아들 목숨 돌려내! 우리 며느리 목숨 돌려내! 아 맞다, 네 오빠가 우리 며느리 강간까지 했어! 당장 손해배상해! 배상하지 않으면 내가 가만 안 둘 거야!”“…”그녀는 할머니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하지만 이것만은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는 분명 오빠가 죽인 것일 것이다.몇 년간, 지영명은 서울에서 나쁜 짓을 꽤 많이 했었다. 그 몇 년간, 지영명은 서울에서 겁도 없이 날뛰었었다.지영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그녀는 할머니가 원하는 데로 자신을 처리하게 둘 생각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어차피 오빠의 장례를 치르고, 깊은 산속으로 돌아가 엄마의 유골을 다시 묻어주고, 그녀도 엄마와 오빠 곁에 잠들 수만 있다면 이번 생은 꽤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지영명이 전에 했던 악행을 알게 되었다.많은 사람들이 지영주에게 화를 풀고 있었다.그러다 결국 지영주는 사람들에게 밀쳐져 바닥에 넘어지게 되었다.누군가 지영주를 발로 밟아버리려던 그때, 구경민의 부하 주광수가 나타났다.부소경이 특별히 지영주를 감시하라고 구경민에게 부
부소경은 그제야 신세희 손에 어린아이의 누르스름한 똥이 묻었다는 걸 보았다. 그 뒤에 있던 신유리가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엄마, 엄마 손 봐 봐.”신세희는 딸을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웃기는! 너도 어릴 때 얘랑 똑같았어. 많이 먹고, 많이 싸고. 하루에도 똥을 몇 번이나 싸던지. 이 똥이랑 똑같이 누릇누릇했지.”신유리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엄마, 동생이 싼 똥, 냄새 지독하지?”“아니, 맡아봐, 시큼해. 아기는 아직 젖을 먹어서 냄새가 나지는 않아.” 신세희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특히 부소경은 코를 막고 이마를 찌푸리면서 신세희에게 말했다. “네 모습이 그게 뭐니. 큰 도시에서 일하는 커리어 우먼, 그것도 고급 건축가가 손에 아이 똥이나 묻히고, 게다가 냄새까지 맡아.”신세희가 부소경을 흘겨보며 말했다. “쳇, 당신이 어떻게 싫은 소리를 해요. 한가롭게 아이 똥 한 번도 받아보지도 못했으니 모르는 거죠. 유리 낳았을 때는 냄새도 맡고 똥 색깔도 살펴봤거든요. 소화 못한 알맹이 같은 게 있는지도 찾아보고 그랬어요, 당신이 뭘 알아요? 태어난 지 3일 되는 갓난애한테서 똥 냄새가 난다면 그건 소화가 안 되거나 너무 많이 먹였다는 거예요. 그럼 더 조심해야 하거든요. 냄새가 안 나고 시큼하면 별 이상 없다는 뜻이고요! 아빠라는 사람이 이래서야 되겠어요! 완전 불합격이네요!”신세희의 말을 듣자 부소경은 미안해졌다.첫아이를 낳을 때 부소경은 신세희 곁에 없었다. 혼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상상하지도 못한다.다행하게도 지금 이 아이를 낳을 때는 같이 있어 줬다. 그런데 지금 손에 똥이 묻었다고 싫어하다니!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부소경은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을 받아왔다. 그는 소독한 타월을 들고 신세희 앞으로 다가가 다짜고짜 손을 닦아주었다.손을 깨끗이 닦아준 후에야 부소경은 웃음을 짓고 있는 신세희를 보게 되었다.“당신... 왜 웃어?” 부소경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신유리도 웃고 있
신유리는 불가사의한 표정으로 부소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뭐, 뭐해?”부소경이 웃으며 말했다. “응, 시큼하네. 젖 냄새도 나고, 꽤 좋은 냄새야. 그래서 네 엄마가 이 냄새를 맡기 좋아하는 거였어...”신유리는 아빠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그런데 신유리도 그 냄새가 궁금해졌다.하지만 부소경이 기저귀를 버리는 바람에 신유리는 냄새를 맡지 못했다.부소경은 기저귀를 버린 후 곁에 있는 신유리의 말대로 아이의 엉덩이를 미리 펼쳐놓은 패드에 살살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미지근한 물을 받아왔다. 아이에게 딱 맞는 온도의 물이었다.따뜻한 물에 엉덩이를 씻으니 아이의 기분도 좋아졌다.아이는 손을 입에 넣고 맛있게 빨기 시작했다. 가끔 흥얼대기도 했다.부소경은 아들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사람들이 아이를 가지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아이, 특히 갓 태어난 아이의 귀여운 모습은 사람 마음을 녹였다.그렇게 한참을 바라보고 나서야 부소경은 새로운 기저귀를 갈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났다. 부소경은 다시 분주하게 아이의 두 다리를 들었다. 하지만 손에는 새 기저귀가 없었다.에이!처음으로 아빠 노릇을 해보는 거였다.부소경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서 있을 때 신세희가 뒤에서 한숨을 내쉬었다.뒤돌아보니 방금 아이를 낳은 아내가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마치 신세희가 “뭐든 다 할 줄 안다면서요? 그 큰 그룹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이 기저귀 하나 제대로 갈지 못하고, 허둥지둥 분주하게 뭐 하는 짓이에요? 당신 뭘 잘할 수 있겠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곁에서 지켜보던 신유리도 소리 내 웃으며 물었다. “아빠, 괜찮겠어?”부소경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응... 유리야, 호랑이 잡이에는 친형제, 전쟁터에는 부자가 같이, 이런 말이 있는데 무슨 뜻인지 알겠어?”신유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르겠어.”아빠는 동생에게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갑자기 호랑이 잡이라는 게 무슨 말인가?“그 뜻인즉 아빠랑 딸이 같이 해야
“하하, 풉...”아빠의 모습을 본 신유리는 너무 웃겨서 침대 위에 쓰러졌다. “아빠, 아빠 지금... 너무 웃겨...” 신세희도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아이를 낳을 때 상처가 조금 났었는데 크게 웃으니 상처가 너무 아팠다. 신세희는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 질렀다. “아오...”“왜 그래? 세희야, 왜 그래?” 부소경은 얼굴에 묻은 오줌을 닦지도 못하고 바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신세희를 바라봤다.“씁...” 신세희가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아파요...”명확하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부소경은 신세희가 어디가 아픈지 잘 알았다.부소경은 바로 말했다. “움직이지 마. 가만있어! 내가 안아줄게.”그러고는 침대 위에서 기저귀를 갈다 만 아들을 내버려 두고 얼굴에 묻은 오줌도 그대로 둔 채 허리를 굽혀 조심스레 신세희를 안았다. 그리고 신세희를 침대 위로 옮겼다.“이 자세도 많이 아파?” 부소경이 물었다.”신세희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하나도 안 아파요.”“다행이야.” 부소경이 말했다.부소경은 신세희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다시 아들 앞으로 와 다 갈기도 전에 젖어버린 기저귀를 빼고 새것으로 바꿨다.기저귀를 뜯고, 아이 엉덩이를 올리고, 기저귀를 펼쳐 다 갈기까지, 조금은 서툴러 보이지만 부소경 혼자 완성했다.신유리는 곁에서 아빠를 지켜보더니 아주 자랑스럽게 부소경을 칭찬했다. “아빠, 아빠도 엄마처럼 세심해.”신세희가 부르럽게 말했다. “당신 많이 변했어요.”부소경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응, 어디가 변했는데?”“점점 대표님 같지 않아지네요. 차갑지도 엄숙하지도 않고, 그냥...아이 키우는 아빠 같아요.”“하하!” 부소경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신세희와 신유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신유리가 말했다. “아빠?”부소경이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나는 와이프도 있고, 딸에 방금 태어난 아들까지, 내가 당연히 아빠지. 아니면 뭐겠어?”말을 다 한 부소경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이 가득했다.신세희는 부소경
그러고 회사로 갔다.그동안 밀린 일이 많아 오전 내내 회사일을 처리하고 본가로 가봐야 했다.집안 어르신 부태성의 장례를 마저 치러야 했다.그럴 생각이었는데 침실에서 나오자마자 부소경에게 전화가 걸려왔다.조의찬의 전화였다. 부소경은 바로 전화를 받고 담담하게 물었다. “의찬아, 무슨 일이야?”조의찬은 거의 본가 일로 부소경을 찾아왔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조의찬은 물었다.“형, 반 대표...반 대표 숙모랑 같이 묻었어?”부소경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네가 그걸 왜 물어?”부소경의 말이 끝나자 다른 사람이 전화를 건네받았다. 전화 반대편에서 열일곱, 열여덟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울먹이며 말했다. “부... 부대표님, 제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혹시 저희 넷째 삼촌... 대표님 어머님이랑 같이 묻었어요?” “너... 누구니?”“반명선이라고 합니다. 삼촌 보고 싶습니다.” 반명선이 흐느껴 울었다.사실 어제 반명선도 부소경의 집에 갔었다.조의찬이랑 같이 왔었다.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였는데 울지도 떠들지도 않고 묵묵히 아이만 봤다. 반명선은 꽤 예의 바른 아이였다.어제 사람들도 거의 떠났고 날도 늦어진 데다 부소경은 손님 대접도 제대로 못하고 아이 방으로만 여러 번 들어갔다.그래서 반명선도 더이상 부소경에게 뭐라 물어보지 못했다.하지만 반명선은 반호영이 이미 죽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집으로 돌아간 반명선은 저녁 내내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날이 밝아오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조의찬에게 부탁해 부소경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전화를 받은 부소경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반호영은 집에서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고립당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17살 난 조카는 이렇게 슬피 울고 있었다.그 생각에 부소경이 말했다. “10시 반까지 의찬이랑 F 그룹 앞에서 기다려. 데려다줄게.”반명선은 바로 고마움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부대표님, 너무 감사합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부소경은 잠시 멍해 있었다. 이
친구들은 부러워하며 신유리 주위를 맴돌았다.친구들은 재잘재잘 한마디씩 했다.“신유리, 아빠가 완전 멋지게 생겼네.”“신유리, 너희 아빠 완전 스타 같아.”“신유리, 멋진 아빠가 있어서 좋겠다.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배도 조금도 안 나왔어.”신유리는 자랑스럽게 웃었다. “헤헤헤...”신유리는 아빠를 보며 물었다. “아빠, 저녁에도 나 데리러 오면 안 돼?”“아빠가 데리러 올까? 아니면 선우 삼촌더러 너 데리러 오라 그럴까?” 부소경이 일부러 물었다.“당연히 아빠가 오면 좋지!” 신유리가 욕심 많은 말투로 말했다.“그럼 아빠가 데리러 올게!” 그 순간 부소경은 아빠 엄마가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새삼 깨달았다.어린 시절에는 아이랑 같이 있어 주는 게 중요하다.특히 부모님이 곁에 있어 줘야 한다.회사도 중요하지만, 지금 부소경에게 신유리보다 더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좋아!” 부소경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아빠가 저녁에 데리러 올게.”“하하! 너무 신나!” 신유리는 깡충깡충 유치원으로 뛰어 들어갔다.부소경도 바로 차를 타고 F 그룹으로 향했다.며칠이나 회사를 비웠다. 신세희가 납치당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고, 그리고 지영명을 처리하고, 반호영이 죽기까지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부소경은 일주일의 시간이 10년처럼 느껴졌다.부소경을 본 회사 임원들이 숨을 죽였다.각자 담당하는 부분을 잘 맡고 있어 줘서 회사는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부소경을 본 임원들은 서로 얘기했다.“대표님, 집안일부터 처리하세요. 회사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어디라고 이상한 게 있으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임원들은 거의 같은 생각이었다.부소경은 위안을 느꼈다.부소경은 7년 전에 이 회사를 물려받았다.7년이란 시간 동안 부소경이 회사를 누구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 키워놓았다.남성, 심지어 전국에서도 F 그룹과 겨룰 회사는 없었다.부소경은 형제, 부모, 조부모보다 회사를 잘 키웠다.F 그룹을 물려받게 된
부소경은 속마음을 감추고 말했다. “어, 말씀하세요. 계속하세요.”“대표님, 무슨 생각 하셨어요? 무슨 결단이라도 내리시려는 겁니까?” 지역 대표 한 분이 말했다.부소경은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게, 할아버지 일로 하루 이틀은 더 바빠야 할 것 같아요. 회사일은 잘 부탁드릴게요.”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몸을 돌려 회의실을 떠났다.사무실로 들어간 부소경은 사인할 서류들을 처리하고 시간이 거의 10시 반이 되자 가방을 들고 회사를 나섰다.F 그룹 빌딩 아래 차가 한 대 서있었다.부소경을 보자 조의찬과 반명선이 연이어 차에서 나왔다.“형.” 조의찬이 부소경을 불렀다. “명선이가 자기 삼촌 한번 보고 싶대.”부소경은 눈이 퉁퉁 부은 반명선을 봤다. 반명선이 공경하게 부소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표님, 제 삼촌한테 데려가 주실 수 있어요?”“가자.” 부소경이 말했다.한 시간 반이 지난 후 그들은 하숙민과 반호영의 묘지에 도착했다.뒤에 서 있던 두 남자도 반명선이 가엽게 느껴졌다.특히 조의찬은 반명선이 너무 가여웠다.어린애가 이토록 정이 깊은지 몰랐다.1년이 넘도록 반명선은 조의찬과 같이 있었다. 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조의찬이 생활비를 주고 집을 찾아줬다. 조의찬이 따로 돈을 주려 해도 반명선은 받지 않았다.반명선에게는 반호영이 남겨준 돈이 2억 있었다.반명선은 돈을 아껴 썼다. 절대 좋은 것도 먹지 않고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반명선은 예쁘지는 않지만 조의찬 눈에는 보면 볼수록 예쁜 여자였다.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고, 노력하고 배우기를 즐기는 아름다움이 있었다.특히 지금, 반명선은 반호영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울부짖고 있었다. “삼촌, 왜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했어요? 삼촌, 왜 말을 안 들어요? 왜 이렇게 비관적이에요? 다들 삼촌을 버린다고 해도 제가 있잖아요. 10년만 기다려주면, 10년이면 대학 졸업해서 제가 일도 하고 삼촌 먹여 살릴 건데요. 삼촌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내가 지켜줄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