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민이 해외로 가게 된 것이 전부 지영명을 추적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다만 아직 외국에 남아있는 세력들이 존재했기에 소탕하러 가는 것이었다.그래서 간 김에 지영명까지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구경민이 꿈에도 생각 못 했던 것은 지영명이 해외에서 곧 잘 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영명은 후에 점점 이성을 잃고 날뛰며 불을 지르고 사람을 죽이며 약탈을 멈추지 않았다.어리든, 억울하든 그는 똑같이 놔주지 않았다.그의 신조는 이랬다.“너는 약자이고 내가 너를 죽이지 않아도 내가 아닌 다른 강자가 너를 죽이게 될 거야. 그들이 너로 인해 세력이 커지는 것보다 내가 너를 죽이고 강해지는 게 나아!”“내가 매정하다고?”“나도 관대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화목한 가족들도 있었어.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타인 때문에 미치광이가 되어버렸고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며 내 10살이었던 여동생은 70세의 노인과 동침해야 했어. 이 세상에서 내 여동생보다 더 불쌍한 사람 있어?”“난 이미 참을 만큼 참았어!”“살인마가 될지언정 더 이상 내 여동생이 그런 고통을 또 당하게 할 수 없어.”“몽땅 죽여버릴 거야.”이것이 그의 신조라고 했다.절대 다시 교정으로 돌아오지 않을 16살 소녀인 지영주는 이미 오빠와 함께 유랑 생활을 하며 서서히 세뇌당하여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그렇게 단단해졌다.몇 년이 지난 지금, 지영주는 어느덧 30살인 노처녀가 되어 있었다.그녀도 다른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킬러들과 다를 바 없었다.그들이 해외에서 한창 잘나가던 그때, 서울에서 지영명에게 도와달라며 연락해 온 적 있었다. 그러면 한자리 크게 내어준다고 했다.심지어 지영명도 흔들렸다.그러다가 주변을 맴돌던 구경민에게 또 붙잡히고 말았다. 구경민은 지영명을 끈질기게 물고 놓지 않았다.해외에서 구경민은 지영명이 감당되지 않았다.하마터면 지영명의 손에 꼼짝없이 당할 뻔했다. 다행히 위기의 순간에 부소경이 나타났다.부소경!지영명보다 조금 어린 고아 출신의 그는 고작 18, 19세
구경민과 부소경에 대한 그의 원한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특히 부소경이 F그룹의 최연소 권력자가 되어 남성의 킹이 되었다는 소문에 지영명은 질투로 눈까지 뻘개졌다.왜!왜 그들은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거고 나 지영명만 도망 다니는 신세여야 하는가! 그때 구경민과 부소경이 그를 죽이려고 쫓아다니지 않았다면 지영명도 지금쯤 서울에 돌아갈 수 있었고 어머니의 유골함도 깊은 나무숲에서 서울로 옮겨 제대로 안치했을 것이다.그러나 부소경때문에 지영명은 여동생을 데리고 여기저기를 이렇게 오랫동안 떠돌았다.한편, 신세희가 설치해 놓은 폭탄에 다리를 상한 지영주는 마치 어린아이 처럼 엉엉 소리내 울었다. 신세희는 그녀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30살 남짓한 지영주의 행동 하나, 표정 하나는 영락없는 소녀의 모습이었다.아마도 미혼이고 거기에 아이도 없는 이유일 수 있다.그래도 그녀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특히 그녀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동안 겪었던 고됨을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울며 신세희에게 하소연했다.“네가 입만 열면 우리 오빠를 강도, 살인범이라고 하던데. 오빠는 공부도 곧 잘했고 나름 노력하는 사람이었어.”“부잣집 사모님 출신인 여자가 어떻게 나와 오빠, 그리고 엄마까지, 우리 세 식구가 대도시 서울에서 타인들에게 막무가내로 짓밟히던 과거를 이해할 수 있겠어!”“고작 10살 밖에 안되는 여자아이가 동생에게 개보다도 못한 취급을 당하고 목줄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녔어. 당하는 내 기분이 어땠을 거 같아? 넌 몰라. 짐작조차 못 할걸! 너는 이쁜 옷에 배부르게 실컷 먹으며 상위층 생활을 했으면서 그런 환경에서 지낸 나와 내 오빠, 엄마가 하마터면 굶어 죽었을 수도 있었던 걸 이해 한다고? 넌 영원히 모를 거야!”“임신 7, 8개월인데도 넌 흐트러짐 없이 기품이 넘쳐. 이 아름다운 것들은 아마도 너의 남편이 너를 위해 주문 제작한 거겠지. 임산부들이 피할 수 없는 붓기까지도 완벽히 커버했잖아. 나는 10살
지영주는 멈칫했다.“무슨 말?”신세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우리 둘은 처지가 비슷해.”지영주가 되물었다.“응?”“나도 너랑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냈어. 나도 너랑 똑같이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못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힘들었어. 내 딸아이를 임신했을 적도 도망다니기 바빴고. 내가 편한 생활을 누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지영주는 말이 없었다.솔직히 그녀는 신세희에 대한 인상이 꽤 나쁘지 않았다.비록 임신한 상태라 거동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잃지 않는 침착함과 강경함은 지영주가 신세희를 인정하는 부분이었다.지영주는 오빠에게서 그녀도 힘들었다고 들었었다.그래서 지영주는 내심 그녀가 부러웠다. 똑같이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신세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나 지영주는?한평생을 오빠와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던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느껴 볼 기회가 없었다.지영주가 대답이 없자 신세희는 자신의 배를 부축하며 가볍게 웃었다.“나는 신 씨가 아니야. 친아버지 성은 임 씨야. 적어도 너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았지만 난 몰랐어.”지영주가 물었다.“너... 진짜야?”어느 정도 고생을 했다는 건 알았지만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는 건 예상 밖이었다.신세희가 지영주를 바라봤다.동정 어린 지영주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있었다.그녀는 처음 태어날 때부터 못돼먹은 것이 아니었다.지영주도 동정할 줄 아는 보통 사람이다.신세희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지영주의 손에 죽고 싶지 않았던 신세희는 여기를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조금만 생겨도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녀의 남편도 오매불망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6살인 신유리는 아직 엄마 필요한 나이다. 그래야만 인격에 결함이 생기지 않는다.그리고 아직 성별조차 모르는 곧 태어날 뱃속의 아이는 빛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할 순 없다.신세희는 절대 이대로 죽으면 안 된다.죽음은 도무지 방법
슬픔도 없었다.필경 그 부부와 그들의 딸은 그에 맞는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이제 그녀도 그 암흑을 씩씩하게 딛고 일어섰다.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은 지영주는 여전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지영주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여 새 옷을 입지 못하고 배고픔을 참아야 했지만, 그녀에겐 엄마의 사랑과 오빠의 보살핌, 매달 아버지가 보내주는 20만 원이 있었다.신세희가 그녀보다 더 고된 삶을 살았다고는 생각지 못했다.신세희는 힐끔 그녀를 보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 그들 부부의 딸이 학교에서 애들을 선동해서 함께 나를 괴롭힌 거야. 그들은 내 몸에 오물을 붓기 일쑤였어. 그 악취로 난 구토를 수십번 반복할 수 밖에 없었지.”“......”침묵을 지키던 지영주는 급히 신세희를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신세희......”“아빠와 엄마가 알게 될까 봐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강가에서 모두 씻어버리려고 모진 애를 썼었어.”“그들의 무자비한 발길질에 갈비뼈가 끊어진 그날도 고통을 참으며 수십 리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어.”“하지만 이런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제일 절망스러웠던 건 생부가......”그녀는 자신의 생부를 언급하였다. 그거야말로 신세희의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11살이었을 때 새 아빠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몸이 편찮았어. 우리 시골 사람들은 내가 새 아빠의 친딸이 아니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보다 좋은 학습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엄만 나를 아버지에게 보냈어.”“아버지는 줄곧 나를 친딸로 인정하지 않았어.”여기까지 말한 신세희는 지영주를 다시 바라보며 덧붙였다.“난 너와 달라. 너는 어머니와 아버지, 계모까지 함께였고 아버지의 딸임을 확신할 수 있었잖아. 그들은 그저 너의 존재를 어린 동생에게 숨겼을 뿐이고 고작 그녀가 상처를 입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잖아.”“하지만 난?”그녀의 웃음에 씁쓸함이 더 짙어졌고 눈은 어느새 촉촉하게 젖었다.“가족들이 모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신세희......”방안의 반호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나와 지영주가 너의 어려움을 조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참혹할 줄은 몰랐어. 여태까지 내가 세상에서 제일 가엽다고 생각했었어.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에게 버림받았고 아버지가 누구인지조차 몰랐어. 양부모들도 줄곧 날 탐탁지 않아 했었으니까. 내 삶이 제일 엉망이라고 여겼어. 양부모는 날 관심해 주지도 학대하지도 않았어. 기본 생활은 할 수 있게 해주고 형들도 날 아껴줬지만 난 도리어......그리고 양부모가 내 친부모가 아니라는 것도 나중이 되어서야 알았지.”반호영은 그의 이야기를 더 이상 이어 나가지 않았다.그저 소리 내 웃을 뿐이었다. 그 소리에는 석연함이 묻어있었다.아마도 갑자기 모든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누구한테 복수를 해?이 세상에서 어느 누가 살면서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을까?진정 평탄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반호영, 지영명, 지영주, 부소경, 신세희 모두 그랬다.모친 하숙민의 일생을 보더라도 파란만장 그 자체, 달기보단 쓸 때가 많은 인생이었다.그러니 반호영은 누구도 탓하고 싶지 않았다.그의 웃음소리는 작고 미세했다. 그는 남성 특유의 두꺼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젠 아무 미련 없으니 날 죽이고 싶다면 죽여.”지영주는 말이 없었다.그녀가 예전에 들었던 그의 목소리라곤 위협적인 고함, 혹은 거친 욕설이 다였다.그러나 이건 반호영의 정상적인 목소리였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가 이렇게 듣기 좋고 매력적일 수 없었다.그의 말투에는 쓰라림과 우울함도 섞여 있었다.이는 지영주가 동병상련의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도리어 다리를 절며 문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반호영, 괜찮아?”말을 마친 지영주는 얼굴까지 붉혔다.그녀도 자신이 왜 얼굴을 붉혔는지 알 수 없었다.갑자기 심장도 두근거렸다.반호영이 냉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 언제 날 죽을 거야? 시원하게 한 방으로 보내줘. 그러나 한가지 요구가
하지만 신세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은 반호영과 내전을 할 때가 아니다. 그녀는 반드시 침착해야 했다.이대로 상황을 유지하기만 해도 살 길이 생길 수도 있다.그리고 반호영은 어머니인 하숙민의 아들이고 부소경의 쌍둥이 형제이기도 했다.신세희는 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반호영은 유독 신유리를 극진히도 아꼈다.여기까지 생각하니 신세희의 마음이 그제야 조금 석연해졌다.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신세희......”반호영이 입을 열려는데 신세희가 그의 말을 끊었다.“흥분하지 말고 상처 치료를 잘해. 지영명의 분노의 화살은 부소경을 향한 것이지 너를 향한 게 아니야. 지영명은 너를 죽이지 않을 거야. 그러니 이제부터는 잘 살면 돼.”신세희는 반호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지영주에게 말했다.“난 이만 갈게.”여기는 지영주가 반호영을 감시하는 공간이었고 신세희가 있는 곳은 지영명이 따로 안배했다.“그래.”지영주가 대답했다.적나라한 그녀의 과거를 듣고 또 그녀에게서 다리까지 치료받고 나니 신세희가 친근해졌다. 지영주는 혹시라도 불편할까봐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부축하기까지 했다. 밖으로 향하던 그들은 마침 거기에 있던 지영명과 마주쳤다.다시 지영명을 보게 된 신세희는 험악해 보였던 그의 얼굴이 전에처럼 무섭지 않았다.그녀는 지영명을 향해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놀란 지영명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그가 마음대로 주무른 여자는 부지기수였고 재미를 보고는 모두 죽여버렸다.꼭 죽여야 했던 이유는 그녀들이 지영명을 바라보는 모욕적인 눈빛과 반대로 살려달라고 하는 가식적인 모습이 가증스러웠기 때문이었다.그 여자들의 모습은 심지산의 와이프 홍원을 떠오르게 했다.홍원은 얼마나 고귀한 여자인가?심지산을 유혹해 어머니에게서 남편을 빼앗은, 어머니가 충격을 받고 미치게 만든 장본인이다.그녀는 서울의 잘 나가는 패션 디자이너이다.백옥같은 피부에 기품이 흘러넘쳤다.지영명이 심지산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앞에서 대놓고
지영명의 고백을 들은 신세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러나 신세희는 마음속의 악감정을 참으며 개의치 않는다는 듯 냉소를 지었다. 그리고 대꾸했다.“그래? 임신한 날 사랑한다는 걸 보니 내가 그만큼 매력이 넘치나 보지 뭐.”“......”할말을 잃은 지영명은 오만하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그녀의 이런 성격이 마음에 쏙 들었다.“그래.”지영명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운 톤을 유지하고 있었다.“......”신세희는 대꾸하지 않았다.“나 지영명은 여자를 구워삶는 데에 능숙해. 있는 것이 방법이지. 단, 그 상대가 너라면 인내하면서 기다릴 수 있어. 반드시 네가 날 좋아하게 만들 거야.”지영명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너......”그의 태도에 도리어 신세희가 말문이 막혔다.이때 지영주가 갑자기 끼어들었다.“오빠! 신세희는 좋은 사람이야!”지영명은 냉소를 지었다.“지영주! 잊지 마! 우리는 전에도 좋은 사람들을 상대했었어!”“진짜 좋은 사람이야. 내 상처도 치료해 줬고 나의 아픔도 공감해 줬어. 그녀는 나와 같은 비통한 운명에 우리보다 더 험한 고통을 겪었어. 오빠.”지영주는 차근차근 자신의 오빠를 설득했다.하지만 그 순간, 지영명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게 아니면 내가 왜 신세희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지영주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지영명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다시 입을 열었다.“잘 감시해! 오빠는 곧 마흔이고 많이 지쳤어. 이제는 가정도 이루고 싶어. 이 여자를 너의 형수로 꼭 만들고 싶어.”지영주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오빠.”오빠가 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게 무리한 요구는 아니잖아?하나도 과하지 않다.오빠는 한평생을 방화에, 살인에 안 해본 악행이 없어 와이프가 없었다.이 모든 것이 그의 여동생 때문이었다.그날 밤, 지영주와 신세희는 함께 잠들었다.비록 지영주보다 어린 신세희이지만 밤중에 일어나 무거운 몸을 움직여 지영주에게 이불을 덮어줬다.“뭐야!”지영주는 총을 품에 안은 채
지영주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마치, 내가 줄곧 그 사람한테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아. 그 사람이 나한테 빚을 진 게 아니라. 나는 한 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이란 걸 느껴본 적이 없었어. 난 항상 아버지의 사랑 갈망했어. 심지산이 조금이라도 날 사랑해 줬다면 난 지금 무척 행복했 을거야.”“사실 난 아직도 가끔씩 이 모든 게 다 꿈이길 바라고 있어.”“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예전으로, 소설 속 주인공들이 과거로 환생하는 것처럼!”“난 우리 아버지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아. 난 우리 아버지를 원망하고 싶지도 않아.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냥 아버지 하나면 돼. 난 그냥 아버지가 갖고 싶을 뿐이야… 누가 내 아버지 좀 돌려주면 안 되나?”서른이 넘은 여자는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그녀의 말에는 두서가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미워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아버지가 자기에게 얼마나 매정하게 굴었는지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그녀는 단지 한번 또 한 번 질문을 내 던지고 있을 뿐이었다. “누가 내 아버지 좀 돌려주면 안 될까?”누가 그녀의 아버지를 돌려줄 수 있을까?사람들이 자주 하던 말이 생각난다. 행복한 어린 시절이 평생을 치유하고, 불행한 어린 시절은 평생을 쏟아가며 치유해야 한다는 말 말이다.사람은, 그런 존재다.지영주가 자신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우는 모습을 보자 남성에 있는 유리의 모습이 신세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이 세상은, 마치 모든 사람들이 고난을 겪고 있는 것 같다.신세희도 그랬다.신세희의 양아버지와 생모도 그랬다.유리도 똑같았다. 유리의 영유아 시절에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없었다. 5살이 되어서야 부소경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다행인 건, 서시언이 유리의 곁에 있어 주었다는 사실이었다.그래서, 유리는 비록 가난하고 힘든 영유아 시절을 겪었지만 대신 사랑은 모자라지 않았다.유리는 줄곧 건강하고 바르고 활발하게 자랐다.하지만, 앞으로는?아이는 어렵게 아빠와 2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