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희는 부소경의 팔을 베고 누우며 말했다.“그래요. 우리 유리가 엄마 걱정을 많이 해주기는 해요. 곡현에 있을 때도 애들이랑 싸우고 이유를 들어보면 내 흉보는 애들을 혼내주느라고 많이 싸웠더라고요. 나 바쁘고 그럴 때는 유치원에서 알아서 집으로 오기도 했어요.”“어린애가 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부소경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당신 출산하고 우리 네 가족이 해외로 여행이나 다녀오자. 그리고 둘째가 좀 크고 당신 몸도 잘 회복되고 결혼식도 올리고.”신세희는 입을 삐죽이며 반박했다.“꼭 몸매가 회복되어야 결혼식 올린다는 말이에요? 산후조리하고 바로 결혼식부터 올리는 게 아니라?”부소경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사실 그는 그녀가 살이 얼마나 쪘든 손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하지만….“그렇지만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하잖아. 평소에 입던 드레스도 다 몸에 안 맞을 텐데 확실해?”신세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왜 이걸 잊고 있었을까!당연히 웨딩드레스는 필수였다.게다가 일반 웨딩드레스도 아니고 가장 예쁜 드레스를 입고 싶었다.그러려면 출산하고 몸매부터 회복하는 게 중요했다.“알았어요.”신세희는 어쩔 수 없이 기죽은 얼굴로 대답했다.“그럼 1년 가까이 더 기다려야겠네요. 애 모유수유도 해야 하니까요.”“당신 생각대로 하자! 자, 이제 자야지?”남자는 아내의 이불을 여며주며 말했다.낮에는 시간이 없어서 밤에는 그녀를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사실 그녀는 전혀 살이 찐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배를 제외하고 더 마른 것 같았다.임신한 탓인지 얼굴에 작은 주근깨가 몇 개 보였지만 그것마저 사랑스러웠다.남자는 부드럽게 아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당신은 정말 예뻐. 어떤 모습이든 예뻐. 임신해서 주근깨도 나고 잠 잘 때 침을 흘려도 여전히 예뻐. 그러니까 그 자식이 자꾸 나한테 이상한 얘기를 하지.”그 자식은 반호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한달 내내 연락이 없던 반호영에게서 오늘 연락이 왔다.그는 사람을 시켜 전화번호를 역추적했으나
부소경은 반호영을 정말 많이 참아주고 있었다.하지만 이건 참을 수 없었다. 부소경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반호영, 네가 있는 곳… 가성섬의 절반 정도 되는 그 섬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한 시간 안에 점령할 수 있어. 아니다 30분이면 되려나?”반호영도 지지 않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30분이면 충분할 거야. 날 죽이는데는 15분도 걸리지 않을 거고.”“아니면 날 죽이려고 왔는데 섬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내가 이미 숨졌을 수도 있지. 다른 형제들에게도 이렇게 했잖아? 너 같은 사람은 정이라는 걸 몰라. 넌 그냥 살인마야! 너한테 인간성이란 건 존재하지도 않아! 네가 사람이야?”부소경은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히려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알면 됐어.”말을 마친 그는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그는 회사 내선 전화를 통해 부하들을 소집했다.5분 뒤에 그의 부하들이 사무실에 도착했다.“지금 당장 그 섬을 밀어버려!”부소경은 담담하면서도 냉정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한 부하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했다.“대표님, 한 달 전에는 거기에 물자를 보내려고 하셨지 않았나요?”“생각이 바뀌었어! 오늘 당장 움직여! 시간이 지나면 변수가 생길지도 몰라.”“네? 변수요?”부하들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변수를 말하는 걸까?“내가 마음이 바뀔까 봐 그래.”부소경이 말했다.부하들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부소경은 음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어차피 태어나서부터 버려질 운명이었다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게 맞지. 섬 점령할 때 그래도 시체는 챙겨서 돌아와. 어머니 옆에 묻어줄 테니까.”말을 마친 부소경은 또 중얼거렸다.“엄마가 나만 사랑했다고? 그런 질문은 나중에 엄마 옆에나 가서 해. 이게 옳은 선택일지도 몰라.”말을 마친 부소경은 부하들을 재촉했다.“지금 당장 출발해!”부하들은 그의 결정을 존중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그리고 부하들이 사무실을 나서려던 순간, 부소경은 책상 위에 놓인
구경민 혼자 병실 밖을 지키고 있었다.부소경은 그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거의 되어가는 시점이었다.안방으로 들어가 보니 딸과 아내가 한 침대에서 잠자고 있었다.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부소경은 갑자기 반호영이 오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안 돼! 절대 빼앗길 수 없어!아무리 친형제라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어차피 친족을 죽이는 일을 한두 번 한 것도 아니었다.남자는 딸을 방으로 데려간 뒤, 돌아와서 여자의 옆에 조심스럽게 누웠다. 그는 한쪽 팔을 여자의 부풀어오른 배에 두르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잠에 들었다.다음 날.부소경은 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신세희는 오늘 안색이 확연히 좋아졌다. 잠을 잘 자서 그런지 피곤함이 싹 가셨다. 그녀는 고윤희와 성유미를 보러 병원에 가기로 했다.그런데 출발도 하기 전에 의사가 집으로 방문했다.“사모님, 건강상 별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멀리 나가는 건 위험해요. 집에서 며칠 더 쉬면서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의사의 말에 신세희는 금세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엄마, 엄마는 집에서 쉬고 있어. 내가 엄마를 대신해서 윤희 이모랑 숙모 보러 갈게.”밥을 먹던 신유리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넌 먼저 유치원에 가야지.”신세희가 말했다.“알아.”아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유치원 끝나면 갈 거야. 어제 유리가 숙모 저녁 식사까지 챙겨줬어. 유리가 나가서 직접 도시락을 샀어. 잘했지?”“엄마, 오후에 나 병원 가면 윤희 이모 아들 사진 찍어서 엄마한테 보내줄게.”신유리는 엄마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신세희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기다리고 있을게.”이날 오후 여섯 시, 신세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고윤희에게서 걸려온 영상통화였다.신세희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언니, 좀 괜찮아요? 상황이 어떤지 몰라서 전화도 못 했네요. 지금은 좀 어때요? 아기는 잘 있죠? 유리가 사진 보내준다고 했
그 남자와의 만남은 벌써 이번이 세 번째였다.다행히 이번에는 아이와 부딪히지 않고 손에 도시락을 든 채, 어딘가로 급히 향하고 있었다.남자는 복도 모퉁이에 도착했을 때, 살짝 고개를 돌려 신유리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뒤, 급히 자리를 떴다.신유리도 남자를 향해 방긋 웃었다.“유리야, 왜 그래?”옆에 있던 엄선우가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남동생이 너무 귀여워. 손도 작은데 솜털이 보송보송해. 팔다리도 짧고.”신유리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엄선우도 따라서 웃었다.그 역시 신생아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나는 건 처음인데 정말이지 너무 귀여워서 빨리 결혼이라도 하고 싶었다.그는 먼저 솔로 탈출한 서시언이 부러워질 정도였다.안 돼!대표님이 조금 덜 바쁠 때 여자 소개나 부탁해 볼까?10년이나 같이 일했는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엄선우는 21세에 부소경의 옆에서 경호와 운전, 그리고 잡무까지 처리하며 비서로 승진했다.그렇게 바쁜 세월을 보내다 보니 여차친구 한번 사귀어 본 적 없는 모태솔로였다.엄선우는 이런 생각을 하며 신유리와 함께 성유미의 병실로 갔다.최근 그들은 매일 병원을 방문했기에 여기 장기로 입원해 있는 환자들과 벌써 친해졌다.그들이 지나갈 때면 복도를 지나가던 환자들이 웃으며 인사해 주었다.생기발랄한 여자애가 복도를 제집처럼 뛰어다니니 산부인과에 색다른 활력소가 되었다.그리고 구석진 곳에서 한 남자가 고배율 망원경을 내려놓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신유리와 연관된 내용이었다.“벌써 3일째야. 유리는 지금도 그 비서랑만 같이 있어?”“네, 대표님.”“괜찮은 기회인데 뭘 망설이는 거야?”명령 섞인 어조였다.“그게… 그 엄 비서라는 사람이 계속 신유리 옆을 지키고 있어요. 접근할 기회가 마땅치 않아요. 실력을 조금 가늠해 봤는데 아주 날쌔고 근력도 상당해 보였어요. 아마 정면으로 붙으면 제가 질 거예요.”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눈앞에 환각이 보이기 시작했다.“유리야, 이리 와. 내가 안아줄게. 나도 너한테 장난감 많이 사줄 수 있어.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장난감 다 사줄 수 있어. 그러니까 아빠라고 불러주면 안 되겠니?”물론 한창 성유미의 병실에서 놀고 있는 신유리의 귓가에 그런 절규가 들릴 리 만무했다.아이는 뭔가 섬뜩한 기운이 느껴져서 어깨를 움찔했다.“유리 왜 그래?”성유미가 물었다.“괜찮아. 날씨가 조금 쌀쌀한가 봐. 유리 추워.”신유리가 웃으며 말했다.“옷 많이 껴입고 다녀. 감기 걸리지 말고. 아픈 주사는 너도 싫잖아.”성유미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어, 숙모. 유리는 말 잘 듣는 아이니까 다음에는 꼭 옷 많이 입고 올게.”신유리는 이상하게도 성유미를 처음 봤을 때부터 잘 따랐다.아이는 성유미를 처음 봤을 때 숙모로서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억지를 부렸다.그때의 신유리는 성유미를 제외하고 어떤 누구를 데려와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성유미도 아이가 무척 귀여웠다.요즘 신유리와 가깝게 지내면서 죽은 딸에 대한 그리움도 서서히 잊혀지고 있었다.최가희랑은 오래 시간을 보낸 적도 없고 최가희가 워낙 그녀를 밀어내고 증오했으니 정이 쌓일 기회가 별로 없었다.어차피 최가희는 살았어도 최홍민 편에 섰을 것이다.그녀는 처음부터 성유미를 엄마라고 인정한 적 없었다.성유미는 힘들지만 이제 내려놓기로 했다. 죽은 사람을 붙잡고 계속 슬퍼하는 것보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재롱 부리는 모습을 보는 게 더 즐거웠다.사람은 즐거워야 건강도 챙길 수 있는 법이다.건강해야 아이를 지킬 수 있다.오늘 오전 다녀가신 이모도 그렇게 말했다.이모는 성유미에게 이렇게 말했다.“유미야, 나중에 애 낳으면 나도 할 일이 생길 것 같아. 네 애는 이모가 봐줄게. 넌 나가서 하고 싶은 일 찾아서 해. 어쨌든 여자도 직장이 있어야 해.”성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이모. 그렇게 할게요.”40살 이전의 성유미의 인
남자는 음울한 미소를 지으며 술을 입안에 털어넣었다.“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같이 놀아도 주고 목마도 태워주고… 그 망할 자식보다 내가 널 더 예뻐했는데….”“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 돈? 명예?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나한테는 가족이 필요했다고! 내가 뭘 잘못했지?”“유리야, 넌 날 좋아하지? 내가 잘해줄게! 네 엄마한테도 잘할 거야! 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고 강하고 착한 여자니까!”“그런 망할 놈은 네 엄마를 가질 자격이 없어! 없다고!”“네 엄마는 어디 있는 거야? 절친이 출산했는데 왜 병원에 나타나지 않는 거지? 유리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놈이 네 엄마를 괴롭혔어? 아니지, 대놓고 괴롭힐 놈은 아니야. 그냥 냉대하고 무시했겠지.”“그 놈은 요즘 자기 제국, 자기 친구들 사업을 지킨다고 바빠서 너랑 네 엄마도 안 챙기잖아!”“네 엄마는 정말 괜찮니?”구석진 곳에서 이 남자가 하는 넋두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는 마치 알코올중독자처럼 미친듯이 술을 퍼마시고 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다음 날 그가 깼을 때도 신세희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남자는 조바심이 났다.그렇게 또 3일이 지났다.그는 드디어 영상으로 신세희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신세희는 고윤희가 출산한지 5일만에 병원에 방문했다.그녀는 집에서 5일간 휴식을 취하고 의사가 괜찮다고 이제는 외출해도 된다고 했을 때 드디어 밖으로 나온 것이다.부소경은 요즘 바쁘게 지내고 있었지만 어차피 엄선우가 따라다니면서 힘들 때면 부축해 줄 수도 있으니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신세희는 생각했다.그녀는 아침 일찍 미리 골라 놓은 임산부복을 입었다. 배를 살짝 가리면서도 세련됨을 잃지 않은 원피스에 연한 화장을 했다. 컨실러를 안 써서 얼굴에 난 주근깨까지 가려지지는 않았지만 안색은 많이 좋아졌다.신세희는 C브랜드 한정판 단화를 신고 만족스럽게 밖으로 나가 엄선우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옆에는 잔뜩 신이 난 신유리도 타고 있었다.오늘은 유치원 수업이 없
아이도 엄마처럼 빨리 동생이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러면 멀지 않은 미래에 신유리에게는 또 동생이 생기게 된다.사실 신유리는 여동생을 좀 더 바라고 있었다.여동생은 엄마나 자신처럼 예쁠 테니까.하지만 아빠를 닮은 남동생도 괜찮을 것 같았다.물론 쌍둥이면 더 좋았다.“엄마, 다음에 아기 가질 때 한 번에 두 명을 가질 수는 없어? 유리는 쌍둥이 동생들을 가지고 싶어.”신유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말했다.앞에 있던 엄선우가 말했다.“유리 넌 발상이 참 독특해.”신세희가 아이에게 물었다.“왜 쌍둥이었으면 좋겠어?”신유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남동생도 가지고 싶고 여동생도 가지고 싶으니까. 선택할 수 없는 걸 어떡해?”“어차피 엄마도 낳는 김에 남동생이랑 여동생 동시에 낳으면 편하잖아?”신세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래도 아이가 동생을 사랑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다른 아이들처럼 부모님 사랑을 빼앗길까 봐 걱정하지도 않았다.신유리는 동생이 많을수록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신세희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차는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신세희는 아이를 안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풍경들이 재빨리 스치고 지나가면서 과거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7년 전, 임신 사실을 금방 알게 된 신세희에게는 낙태할 돈도 없었다.게다가 가족도 없었기에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그래서 그녀는 아이를 낳기로 했다.신유리라는 존재가 태어나면서 그녀에게는 점차 가족이 생기고 믿을만한 친구도 주변에 생겼다.신유리는 신세희에게 있어서 그만큼 특별한 존재였다.아무리 나중에 또 아이를 낳게 되더라도 신유리만큼 특별할 수는 없었다.그녀는 아이를 품에 더 꼭 껴안았다.아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엄마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병원에 도착해서 엄선우가 주차하는 사이, 신유리가 토끼처럼 차에서 먼저 뛰어내렸다.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잔뜩 신이 나서 이곳저곳을 소개했다.“엄마는 윤희 이모 병실이 오늘 처음이지? 숙모 병실에만 그때 왔다갔잖아.”
이게 얼마만이지?정말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임신한 여자는 안색이 많이 초췌하고 움직임이 느릴 줄 알았는데 오늘 확인한 신세희의 모습은 그의 상상과 완전히 달랐다.옅은 핑크색 캐주얼 원피스에 하얀색 가디건을 입은 그녀는 그냥 보기에도 아주 생기 있어 보였다.그리고 질감이 아주 좋아 보이는 단화도 신었다.이렇게 입으니 전혀 배가 부각되지도 않고 오히려 우아함과 여성스러움이 돋보였다.그녀는 걸음걸이도 아주 침착하고 평온했다.화면에 그녀의 얼굴도 잡혔다.안색이 약간 창백했는데 그래도 화장으로 잘 커버했고 조금씩 보이는 주근깨는 오히려 더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임신해서 배까지 나왔는데도 미치게 예뻤다.신유리도 오늘따라 더 사랑스럽게 보였다. 엄마와 같은 계열의 핑크색 공주 원피스에 그레이톤의 가디건으로 마무리하고 같은 색상의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 핑크색 꽃무늬 머리띠로 포인트를 주었다.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신나게 뛰고 있었다.조금 삭막해 보일 수 있는 병원 복도에 모녀가 나타나자 주변환경이 환해지는 느낌도 들었다.남자는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시선이 두 모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너무 그리웠던 두 사람이었다.두 사람은 늘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생기 있고 발랄해 보였다.반호영은 평생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남자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신세희, 안 힘들어? 배가 불러서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또 혼자네? 너도 힘든데 넌 아이까지 케어해야 하는구나!”“왜지? 왜 매번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그 인간은 자리를 비우는 거야? 네가 유리를 임신했을 때도 그랬고 유리 낳을 때도 그랬고 너랑 유리가 가성섬에 잡혔을 때도 그랬어. 그런데 임신 7개월이나 된 너를 그냥 밖에 내보낸다고?”“그런데도 그 사람을 사랑해? 그럴 가치가 있는 인간이야?”남자는 이 순간 깊은 분노를 느꼈다.그리고 이때, 신세희의 핸드폰이 울렸다.남자는 영상을 통해 그
눈 깜빡할 사이에 신유리는 어느덧 18살이 되었다.벌써 대학교에 다닐 나이었다.그녀의 남편 부소경은 곧 쉰 살을 앞둔 사람이라 구레나룻이 하얗게 변해버렸다.그녀와 부소경 두 사람이 함께 파란만장을 겪은 시간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갔다.너무 빨랐다."영감."신세희가 그를 불렀다.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신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신세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영감 아니에요? 당신은 곧 50대이고 나는 이제 겨우 40대인데, 난 할멈이 아니지만 당신은 그냥 토종 영감이잖아요! 봐봐요, 당신 지금 구레나룻도 하얗게 변해버렸잖아요. 결혼식 날에 염색 좀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싫어! 난 남들이 나를 와이프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얘기하길 바란단 말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나를 가꿔줄 생각은 절대 하지 마!"부소경은 자신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와이프에게 말했다.하늘도 무심하지!신세희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늙지 않았다!40대에 들어선 사람이 어찌 늙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부소경은 자신의 젊은 와이프를 보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와이프와 결혼식을 올릴 날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그날은 경치가 예쁘고 날씨가 맑게 갰으며 딱 좋은 기온에 바람도 없었다.그날 두 신인은 남성 최고급 호텔에서 더블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남성 및 글로벌 인사들이었다.신세희와 부소경, 엄선희와 서준명은 모두 친척이 적었지만 네 명의 친척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은 덕이 남성 호텔 마당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두 신인 커플이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비록 젊은이는 아니었지만 새로웠다.엄선희의 부모는 기쁜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의 엄선희가 또다시 돌아왔다.2년 동안 여러 번 수정을 마친 덕에 엄선희는 원래 모습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돌아왔다.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이번 결혼식의 모든 주최와 비용은 신세희와 부소경이 부담했다.엄
엄선희는 자신의 아이를 껴안은 채 고개를 들어 친 엄마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감격과 억울함 때문에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그녀는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이윽고 엄씨 어르신도 두 모녀를 꼭 끌어안았다. 한 가족이 성공적으로 상봉했다.아니, 이제는 다섯 명이고, 서준명까지 더하면 총 여섯 명이었다.여섯 가족은 함께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참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마구 흘렸다.간호사도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한참 지나서야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엄선희를 놓아주었다."됐어, 얘야,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 우리 집으로!"나금희는 고개를 들어 엄선희를 바라보았다. 비록 원래 얼굴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녀의 아이가 맞았다. 사오 년 전에 실종됐던 아이를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그동안 엄선희는 희귀병을 앓게 되었지만 우연히 받은 치료 때문에 성공적으로 완치되었고 이로 인해 피와 혈액형이 바뀌게 되었다.엄선희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가짜 엄선희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아무튼 그녀의 딸 엄선희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행운아였다.4,5년 동안 겪은 고난,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파란만장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그 고난이 아이의 재산으로 될 이고 앞으로 아이는 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아낄 줄 알며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아주 좋았다.엄선희의 복귀에 엄씨 가문은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온 남성 사람들이 서준명의 아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윽고 전해진 소식은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명과 엄선희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이 일은 이미 남성 전체에 퍼졌어요. 결혼식은 대체 언제 할 것 같아요?"여유시간에 신세희가 장난식으로 엄선희에게 물었다.엄선희는 옆에 앉아있는 반명선을 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명선 씨가 내 얼굴을 다시 원상 복구시켜 주겠대요. 하지만 천천히 되돌리려면 2년은 걸린대요. 난
모든 일을 마치고 난 뒤 서준명은 갑자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왜 그래, 아들?"서씨 부인은 이미 세 아들을 잃었고 남은 아들이라곤 서준명 한 명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어머니, 그냥 운명이 장난치는 것 같아서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군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어요!"서준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서씨 부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러니, 얘야?"서준명은 울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이제야 알겠어요. 하늘이 왜 엄선희 씨한테 사오 년 동안 이런 수고를 겪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요. 하늘은 비록 그녀에게 잔인한 고문을 내렸지만 마지막엔 결국 해피엔딩을 선물했잖아요. 그러지 않았다면 진짜 죽은 사람은 우리 엄선희 씨 아니겠어요? 나의 엄선희를 살렸잖아요."아들의 말에 서씨 부인은 감격 어린 말투로 말했다."그래, 결국 마지막에 행운을 맞이한 사람은 바로 우리 엄선희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하느님도 아껴주시는 엄선희. 준명아, 빨리 선희를 데려와, 그동안 그 애가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니."서준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몸을 돌리자마자 그는 두 아이를 발견했다."아빠, 우리 엄마를 데려오려는 거예요?"단이가 서준명에게 물었다.서준명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미미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엄마 안 데려오면 내가... 진짜 아빠 때릴 거예요!"미미는 점점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컸다.게다가 오빠도 그녀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서씨 가문 마당에서 고양이랑 다투든 강아지랑 다투든 그녀는 줄곧 이기는 쪽이었기 때문에 미미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다.서준명은 웃으며 미미를 품에 껴안았다."아빠는 맞는 거 무서워해. 그러니까 미미가 아빠 때리면 아빠는 아파서 울 거야. 그래서 아빠가 미미 말에 따를거야. 오늘 당장 엄마 데려올게, 어때?"두 아이는 엄마를 데려온다는 말에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엄마를 데려오기 전에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
죽기 직전까지도 가짜 엄선희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그녀는 두 눈을 똑똑히 뜬 상태로 자신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이대로 틀어질 줄 미처 몰랐다. 결혼식만 마치면 진짜 엄선희를 대신해 남성에서 상류사회를 누리는 서씨 가문 사모님으로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총살당하고 말았다.과연 누구일까?그녀는 이유를 알기도 전에, 울 틈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아쉬움은 결국 그녀의 몸에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얼마나 억울했으면 심장이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감지 못한 걸까?서준명도 깜짝 놀랐다.그는 원래 미란다 무리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계획이었기에 오늘 경찰들도 이들을 죄다 잡아갈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명은 이 타이밍에 미란다가 암살당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범인은 대체 누구일까?서준명은 당황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찰들은 오늘 이곳에서 범인들을 완벽히 체포하려던 계획이었기에 츄리닝으로 무장한 경찰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든 경찰도 많았다. 모두 미란다를 잡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하지만 미란다 대신 미란다에게 총을 쏜 범인을 잡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차 안에 있던 구릿빛 피부 뚱보는 엄선희를 사살하려던 자신의 치밀했던 계획을 뚫고 이토록 많은 경찰들이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그는 작전도구를 숨기기도 전에 경찰에게 그만 체포당하고 말았다.정말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미란다가 엄선희 얼굴로 성형하여 그녀의 신분을 도용한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인해 초라하게 마무리되었다.경찰은 구릿빛 피부 뚱보를 잡고 취조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해외에 있는 서준명의 세 형님이 엄선희를 죽이라고 보낸 사격수였다.이 남자는 남성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서씨 가문을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내내 엄선희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다가 어렵게 엄선희가 나타나 기회를 잡고 죽이게 되었으나 손쉽게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서준
두 여직원은 봉쇄형 유리차를 끌고 나왔다. 유리차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 다이아몬드는 유리를 뚫고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가짜 엄선희는 홀린 듯이 반지를 바라보았다.주얼리샵 맞은편에 주차하여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구릿빛 피부 뚱보도 덩달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구릿빛 피부 뚱보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세상에! 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저토록 비싼 반지를 선물하는 거야! 저 여자는 죽어 마땅해! 죽어 마땅하다고!"한편 주얼리 샵안, 서준명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바라보았다."내가 선물한 반지는 어때, 마음에 들어?"가짜 엄선희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좋아, 여보 너무 좋아! 너무 마음에 들어!""이 반지는 원래 4년 전에 선물하려던 건데, 아쉽게 됐네, 그때는...""괜찮아, 여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비록 4년정도 늦게 선물 받았지만 결국 내 손에 끼워줬잖아. 이게 정말 최고 아니겠어?"가짜 엄선희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빨리 껴봐, 보여줘!"서준명이 제촉하며 말했다."하하. 알겠어!"말을 마친 서준명은 반지를 꺼내 정중하게 가짜 엄선희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그순간 가짜 엄선희의 마음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렸다.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나른한 기분이었다.서준명!남성 두 번째 재벌이자 남성 귀공자인 서준명이 드디어 그녀에게 값비싼 반지를 선물한다고?와! 그녀는 너무 행복했다!…그 순간 가짜 엄선희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그녀는 행복에 젖어 서준명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듣지 못한 게 아니었다.그녀 자신을 엄선희라 생각하고 다닌 탓에 서준명이 그녀의 본명을 외칠 때에도 눈치채지 못했다.서준명이 또다시 물었다."미란다 씨, 행복해?""응? 당신..은..?"가짜 엄선희는 그제서야 서준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녀는 겁에 질린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홀 안 세 테이블에 빽빽이 앉아있던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들은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눈치였다.왜 엄선희가 가자마자 경찰들이 몰려든 걸까?사람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닐까?"아니에요, 형사님, 저희는... 남성 서씨 가문 도련님 서준명 씨의 친구들입니다. 서준명 씨 아내를 구해준 보답으로 집 두 채를 선물한다고 했는데,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닌가요?"바로 그때 진미리가 용감하게 나서서 경찰들에게 물었다.아무도 진미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몇몇 경찰들이 나서서 그들의 휴대폰을 몽땅 수거했다.한 명도 빠짐없이.진미리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희는 서준명 씨의 친구예요.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서준명 씨가 알면..."한 경찰이 차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희가 잡으러 온 것은 바로 서준명 씨 친구들인 당신들입니다!""네? 왜요?"진미리는 의아했다.사실 그녀는 법을 잘 알지 못했기에 자신의 여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자신의 동생은 서준명의 아내와 똑같은 얼굴로 성형했고 서준명도 동생을 아내로 받아들였는데 이를 사기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돈도 한 푼 뺏지 않았는데?게다가 살인 방화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신분만 도용했을 뿐인데, 아니, 서준명이 가짜 엄선희를 아내로 인정했으니 신분 도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신분 도용도 아니었다.때문에 지금 진미리와 그녀의 공범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경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진미리를 바라보았다."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어찌 당신도 모르나요?"진미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리는 서준명 씨의 친구들이에요. 게다가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고요. 서준명 씨도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아나요?""알죠, 서준명 씨가 신고했으니까!"진미리와 그녀의 동료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하나같이 동상처럼 굳
"2천억이라니! 서씨 가문 형제들과 완전히 등 돌리려는 셈 아닌가! 서준명이 엄선희를 저토록 사랑하다니! 저 여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 반드시 죽일 거란 말이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공손한 태도로 서준명의 큰형에게 물었다."사장님, 명령만 내리세요! 저 여자를 어떻게 죽일까요! 지금 당장 없애버릴까요!""안돼!"서준명의 큰형이 다급히 말렸다."지금은 죽일 타이밍이 아니야. 보는 눈이 많아서 자리를 피하기 어려울 거야. 나한테 충성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데 너까지 잃을 수는 없어. 밖에서 처리하고 발 빼기 쉬운 곳으로 골라. 지금은 아니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곧바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말씀에 따를게요. 그럼 시끌벅적한 장소를 골라 저 여자를 죽여버릴게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통화를 마친 뒤 구릿빛 피부 뚱보는 은밀히 홀 안의 상황을 관찰했다.한편 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함께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한 명 한 명 빠뜨리지 않고 모두에게 물었다.모두 전에 가짜 엄선희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었다.서준명은 전에 이 사람들에 대해 전부 조사를 마쳤었다. 사기조작단과 마찬가지였다!총 서른 명 정도였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가짜 엄선희의 가족들이었다.오빠와 언니, 형수와 형부, 그리고 고모 일곱 명과 이모 여덟 명.남은 건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 온 부하들이었다.서준명은 마음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정말 비겁하기도 하지!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까지 동원하다니. 하지만 그들이 억울한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 가짜 엄선희가 계획한 사기단에 가담한 공범들이다.그들이 엄선희에게 입힌 피해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그들은 그의 두 아이까지 해치려고 했다!서준명이 어찌 그들을 또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술을 한 바퀴 권하자마자 서준명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떠내 연락을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
서준명의 말에 진미리는 쑥스러운 말투로 말했다."휴, 어떻게 매번마다 서준명 씨한테 신세를 지겠어요, 아무... 아무것도 아니에요.""어머, 언니, 어려운 일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 하세요. 제 남편은 남성에서 두 번째로 능력 있는 남편이에요. 못 하는 게 없다니까요."가짜 엄선희는 고개를 들어 애교 섞인 말투로 서준명에게 말했다."내 말이 맞지, 여보?"서준명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보며 말했다."자기 생각은 어때? 당신이 선택한 남편인데 틀릴 리가 있을까?""당연히 없지!"가짜 엄선희는 행복한 표정으로 서준명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를 품에 안자 순간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이 가짜 엄선희는 확실히 진짜 엄선희와 아주 닮았다. 만약 이 엄선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한 상태로 있었다면 서준명은 당연히 그녀를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진짜 엄선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짜 엄선희라면 그에게 이런 요구를 건네진 않았을 것이다.엄선희는 태어날 때부터 공주님처럼 자라 고생한 적이 없지만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엄선희는 돈에 아무런 개념도 없는 여자였다.게다가 사치품도 사지 않는 사람이었다.심지어 그녀는 아주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범위를 벗어나는 가격의 사치품에 손대지 않았다.서씨 가문에 시집와서도 그에게 이것저것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자신의 남편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 짓도 절대 하지 않았다. 남편의 자금을 외부에 흘러 나가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난감한 일까지 시키다니!엄선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가짜 엄선희는 탐욕스럽기 그지 없었다!그럴수록 너무 괘씸했다!하지만 이럴수록 서준명은 더더욱 표정을 가다듬고 가짜 엄선희를 보듬어 주었다."여보, 이 사람들을 사심 없이 도와주는 걸로 봐서 전에 당신한테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맞지? 그럼 나도 고마움을 전해야지. 이분들이 없었다면 평생 내 아내를 보지 못하고 살 뻔했으니까
가짜 엄선희는 자연스럽게 동의했다.3일 후, 그들은 남성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호텔에서 엄선희의 은인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들 중 일부는 외지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남성 현지인도 있었다. 서준명이 사람들을 대충 살펴보자, 익숙한 중년 여성이 있음을 발견했다.그 중년 여성은 미루나와 같은 집에 살며 미루니에게 DNA 검사를 제안한 여자였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손을 잡고 그 중년 여성에게 다가갔다. "저를 아직 기억하십니까?”가짜 엄선희는 즉시 그 중년 여성을 소개했다."여보, 여긴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준 언니 중 한 명이야. 이름은 진미리. 이 언니는 내가 유산했을 때를 포함해 항상 날 보살펴 줬어. 내 생각에는 이 언니에게 집 두 채는 드려야 할 것 같아!” 그러자 진미리라는 중년 여성이 즉시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선희 씨를 돌봐주었던 것도 제 공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절대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진미리는 말을 하며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서준명 씨, 사실 저는 오랫동안 미루나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나는 그 여자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 엄선희 씨는 일이 있어 남성에 오지 않았기에 준명 씨와 미루나가 마주치는 걸 정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DNA 검사를 하라고 권한 거고요. 요즘은 DNA가 가장 정확하잖아요? 그러니 DNA 검사를 하고 나니 미루나가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잖습니까.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겉모습도 전혀 다르고,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억지로 남의 아내인 척하는 건 무슨 심보란 말입니까?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준명 씨와 선희 씨의 부모님 모두 현명하셔서 다행이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미루나에게 정말로 당할 뻔했습니다. 그럼 선희 씨도 힘들어서 울다 지쳐 쓰려졌겠지요…” 진미리의 말을 들은 서준명은 침착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집을 두 채 드리면 될까요?” 서준명은 이미 사람을 보내 확인을 마친 상태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