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언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사람은 성유미였다.최가희의 어머니라고 주장했던 사람.“계속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성유미는 여전히 말투가 곱지 않았다. 그는 서시언 앞에서는 전혀 기죽지 않고 부탁하는 태도도 아니었다.비록 옷차림은 남루해도 정신은 멀쩡해 보였고 서시언을 향해 거침없는 비난을 쏟아냈다.“서시언 씨, 엄마의 힘을 무시하지 마. 내가 살아 있는 한, 절대 당신 같은 사람이 내 딸을 망치게 가만두지 않아. 못 믿겠으면 두고 봐!”“감히 내 딸을 망치는 놈은 똑같이 망가뜨려 줄 거야!”이곳은 부소경의 집이었다.그렇다는 건 신세희와 신유리도 여기 있다는 얘기였다.서시언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니!“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서시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남의 딸 인생 망치지 말라고 했어!”서시언은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말을 마친 그는 씩씩거리며 집 안에 대고 소리쳤다.“유리야! 세희야! 정말 이럴 거야? 소경이 형! 보고만 있을 거예요?”이때 신유리가 아장아장 달려오더니 서시언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삼촌, 이분은 유리 친구야. 내 친구한테 예의 있게 대해줘.”서시언은 너무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부모님과 여자가 있는 앞에서 친구라고 들먹이다니!서시언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신유리를 흘기고는 성유미에게 말했다.“여사님, 이것 하나만 확실하게 하고 넘어갈게요. 당신 딸은 이제 성인이고 스스로 선택권이 있어요. 아무리 엄마라도 딸의 선택을 강요하거나 간섭할 수는 없다고요!”“저와 가희는 서로 사랑해서 만나는 중입니다. 순수한 사랑이고 절대 가희한테 상처줄 마음 없어요!”성유미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 난 내 딸도 나처럼 늙은 남자한테 속아 애를 낳고 사기까지 당하고 나중에 그 딸한테 엄마라고 인정도 못 받는 그런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 그때가 돼서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고!”“방금… 뭐라고 하셨
아무리 그래도 엄마인데 여자가 그렇게 엄마를 때리고 욕하는 건 어딘가 이상했다.게다가 성유미랑 대화를 나눠본 결과 그렇게 게으르고 앞날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같지도 않았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서시언은 신세희의 말을 믿었다.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 내가 잘 해결할게. 너무 걱정하지 마. 곧 출산인데 네 몸에만 집중해.”신세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배고프지? 밥 먹자.”말을 마친 그녀는 성유미를 부르러 거실로 나갔다.그런데 성유미는 이미 돌아가고 없었다.“저기… 최가희 씨 어머님은요?”신세희는 소파에 있는 부소경에게 물었다.부소경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가신다고 고집을 부리셔서 어쩔 수 없었어.”신유리도 눈시울을 붉히며 아쉬움을 표현했다.“유미 이모 가셔서 너무 속상해….”부소경은 신유리에게 물었다.“그 아줌마가 그렇게 좋아?”“예쁘잖아! 엄마만큼 예뻐!”부소경은 순간 황당한 표정으로 딸을 노려보았다.팔이 바깥 쪽으로 굽는 경우가 어디 있어?네 엄마가 훨씬 예쁘거든?부소경은 고개를 들고 서시언과 신세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랑은 친분도 없어서 여기 남아서 식사는 불편하다고 했어. 여기서 기다렸던 이유가 시언이한테 경고하려고 남았던 거야.”서시언과 신세희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었다.식탁에 마주 앉았을 때 신세희가 입을 열었다.“오빠, 가희 씨 아버님이 그 여자가 딸도 제대로 보살피지 않고 무책임했다고 하셨다면서?”서시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확실히 그런 말씀을 하셨지.”“그런데 성유미 씨는 정반대의 얘기를 하셨어.”서시언이 당황하며 물었다.“뭐라고 하셨는데?”자신의 딸을 그만 만나라고 경고하려고 여기서 기다렸을 줄 알았는데 신세희한테 자세한 내막까지 털어놓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신세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많이 힘드셨대.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재혼을 하셨는데 그 뒤로 많이 변하셨나 봐. 재혼하신 분과 아이가 태어나면서 성유미
서시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거야.”그는 신유리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유리야! 네가 삼촌한테 소개하고 싶다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야! 나이가 많은 건 그렇다고 쳐도… 인성이 안 좋은 사람이라고.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업소에 나갔다고 쳐. 그런데 나중에는 어떻게 했지? 가정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 그렇게 소중한 가족들과 열심히 살 생각을 안 하고 바람을 피웠잖아.”“그 아줌마 딸은 어릴 때부터 사랑도 못 받고 자랐는데 안 밉겠어? 너 이거 삼촌을 위하는 게 아니야. 사람 보는 안목을 좀 키워.”신유리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당당하게 삼촌을 쏘아보며 말했다.“두고 봐!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아이의 확신은 아마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서시언도 굳이 어린 유리한테 사과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아이가 상처받기를 바라지 않았다.“그래, 알았어. 어쨌든 네가 그 아줌마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내면 다시 고민해 볼게. 어때?”서시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를 달랬다.“진작 이렇게 나왔어야지.”신유리가 웃으며 말했다.“삼촌한테 와. 반찬 챙겨줄게.”서시언이 말했다.신유리는 자기 수저를 들고 삼촌한테 쪼르르 달려갔다.부모님을 제외하면 아이가 가장 따르고 좋아하는 사람은 서시언이었다.서시언은 밥만 먹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부소경과 신세희는 딸을 따로 불러 좋은 말로 아이를 훈육했다.“유리야, 엄마 말 들어. 넌 아직 어려서 억지로 삼촌한테 여자친구를 소개시켜 주는 일은 하면 안돼.”신유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물었다.“왜 그러면 안 돼?”신세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고작 여섯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남녀간의 사랑을 설명해 주기에는 난감했다.그녀는 말을 바꿔 이렇게 질문했다.“유리야, 너도 삼촌이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라지?”신유리는 주저없이 대답했다.“당연하지! 아빠랑 엄마를 제외하면 유
아이는 그날 초라한 여인이 유기견을 안고 우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여인은 그 강아지를 안고 구슬피 중얼거리고 있었다.“아가, 엄마는 어디 있어? 엄마를 잃어버렸어? 야윈 것 좀 봐. 걷지도 못하네. 자, 이건 내가 먹으려고 산 빵인데 이거 먹고 꼭 엄마를 찾아가렴.”“불쌍하게 엄마랑 떨어졌구나. 네 엄마도 널 잃어버려서 애타게 찾고 있을 거야. 이거 먹고 힘 내서 엄마를 찾아가.”말을 마친 성유미는 조금씩 빵을 뜯어 강아지의 입에 넣어주었다.차에서 내린 신유리는 그 장면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엄마, 그 이모… 유기견한테도 그렇게 애틋하게 잘해주는데 자기 딸을 버렸을 리가 없어. 유리는 처음 본 순간에 그 이모에게 반해 버렸어. 엄마의 예전 모습을 너무 많이 닮았으니까. 그때 엄마도 헌 옷을 입고 몸에 먼지를 잔뜩 묻히고 다녔지만… 그래도 난 삼촌이랑 엄마를 기다리는 게 좋았어. 삼촌도 엄마 돌아올 때면 기분이 엄청 좋아보였어.”“그래서 유리는… 삼촌이 그런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유리는 항상 삼촌에게 미안했거든. 유리랑 엄마는 아빠의 곁으로 돌아왔지만 삼촌은 혼자가 되었잖아. 그래서 삼촌에게 가족을 찾아주고 싶었어.”아이의 생각은 너무나도 단순했다.삼촌을 향한 애틋함이 있었기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신세희는 순간 눈물을 흘리며 딸을 끌어안았다.“유리야, 네 말이 맞아. 넌 틀리지 않았어.”신유리는 시무룩한 얼굴로 물었다.“그런데 삼촌은 그 이모를 싫어하는 것 같아.”신세희는 부드럽게 딸을 위로했다.“그런 생각하지 마. 유리도 삼촌을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신유리가 고개를 힘껏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하지!”신세희가 말했다.“삼촌도 네가 그런 마음으로 그랬다는 걸 알면 분명 행복해하실 거야.”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세희는 부드러운 어투로 계속해서 말했다.“삼촌은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어야 행복한 거야. 이건 알아야 해. 알겠지?”신유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엄마. 다시는 삼촌한
하지만 성유미는 주저없이 제안을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저는 따로 직업이 있어서요.”“아, 그래요?”성유미가 이렇게 단호히 거절할 줄 몰랐기에 신세희는 살짝 당황했다.신세희가 괜찮다고 말하기도 전에 성유미가 먼저 선수를 쳤다.“사모님, 서시언 대표가 사모님의 오빠라고 말했죠? 번거로우시겠지만 오빠 좀 말려주세요. 내 딸이랑 빨리 헤어지라고 좀 전해주세요!”신세희는 당연하게 서시언의 편이었다. 하지만 최대한 온화하게 성유미를 타일렀다.“두 사람은 진짜 사랑해서 만났어요. 따님도 이미 성인이 되었고 두 분은 워낙 지금 사이가 안 좋은데 자꾸 이렇게 간섭하시면….”“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신세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유미는 잔뜩 흥분한 말투로 말을 가로챘다.“사모님, 사모님도 딸 가진 엄마잖아요.”신세희가 물었다.“그래서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거죠?”사실 어제까지 신세희는 성유미에 대한 인상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성유미가 분명하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자 조금 반감이 생겼다. 그녀는 울컥하며 짜증이 치밀었다.자기도 모르게 한마디 반박해 주고 싶었다.왜 당신의 딸과 남편이 당신을 거부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이다.성유미의 서글픈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사모님, 사모님 오빠는 어릴 때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겠죠. 그 나이답게 노련하고 잔머리도 잘 굴리고요. 이 점은 인정하시죠?”신세희가 말했다.“오빠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잔머리 잘 굴리는 사람은 아닙니다.”“하!”성유미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잔머리를 굴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큰 회사를 운영하죠?”성유미는 한결 차분해진 말투로 말했다.“30대의 어린 나이에 대기업을 이끌고 나간다는 건 웬만한 독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사모님도 딸 가진 엄마니까 제 기분 이해하실 거예요.”“사모님, 사모님은 먼 나중에 딸이 자라서 스무 살이 되었는데 갑자기 30대 초반의 여자경험도 많은 남자를 만난다
“아픈 곳을 찔렀다면 죄송하지만 사모님을 비하하는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에요. 같은 여자로서 저도 사모님을 동정했어요. 여태 한 번도 사모님이 쉬운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오히려 제가 나이가 더 많지만 본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믿지 못하겠지만 제가 최홍민 그 인간과 모든 관계를 정리한 건 사모님 덕분이었어요.”신세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었다.대화가 왜 또 산으로 가지?성유미는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이런 얘기까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모님도 임신 중이시잖아요. 워낙 예민한 기간이니 이런 말로 충격을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는 원래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잖아요.”“그런데 그렇게 궁금해 하시니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저는 최홍민을 떠난 게 아니라 그 집에서 쫓겨났어요.”“그 뒤로도 우리는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았죠. 가희 양육비를 보내줘야 했거든요. 그리고 수시로 아이를 보러 가야 했죠. 나중에 사모님 얘기를 인터넷에서 보고 아프지만 결단을 내렸어요.”“7년 전에 남성에서 소문이 무성하게 났을 때는 정말 존경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사모님의 그런 끈기와 당당함, 그리고 자존심을 지키려는 당당함이 존경스러웠어요.”“깨끗한 사람은 아무리 오물을 뒤집어써도 본질이 변하지 않아요. 누구한테 변명할 필요도 없고요. 사모님은 그런 사람이었어요.”“억울한 상황에 처해도 끈기 있게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어요. 나는 왜 계속 최홍민에게 끌려 다녀야만 하는 걸까? 왜 놈이 내 약점을 잡고 흔들게 했을까? 그냥 버리면 될 것을!”“그 뒤로 저는 더 이상 생활비를 보내지 않았어요. 딸을 위해 따로 저축해 두기로 했죠.”“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사모님을 존중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모님의 오빠분이 7년 전에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고 있어요. 많은 여자를 만났고 바람둥이라고 악명이 높았죠. 이건 제가 일일이 증거를 제시하지 않아도 사모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신세희는 말문이 막혔다.7년 전, 신세희가 아직 서시언
신세희가 물었다.“왜 그러세요?”성유미는 죄책감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따님께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저는 사모님이 참 부러워요. 저렇게 심성 곱고 엄마를 위하는 딸이 있잖아요. 저에게 따뜻함을 많이 줬어요. 그 아이는 자기 엄마를 정말 끔찍하게 생각하더라고요.”“따님이 저에게 호감이 있다는 거 알아요. 사실 그 이유도 과거의 사모님 모습 때문이었겠죠. 이렇게 사랑스러운 딸을 둔 사모님이 정말 부럽네요. 제 딸은….”성유미는 자조적인 미소를 짓더니 작별인사를 고했다.“통화가 길어졌네요. 이만 끊을게요.”전화를 끊은 신세희는 등 뒤에 다가온 신유리를 발견했다.아까까지 잘 자고 있던 신유리가 잠옷을 입은 채로 신세희를 빤히 보며 물었다.“엄마, 유미 이모는 우리 집에 오기 싫대?”신세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그런데 신유리가 어른스럽게 말했다.“괜찮아, 엄마. 이모가 싫다면 강요할 수는 없는 거지 뭐.”신세희는 딸의 이마에 가볍게 뽀뽀한 뒤, 말했다.“유리 철 들었네. 엄마 너무 흐뭇해!”신세희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천신만고를 겪고 낳은 딸이 잘 자라주어서 정말 고마웠다.유리는 겉보기에 고집스럽고 말괄량이처럼 보이고 어디 가서 싸움에서 밀리지도 않지만 그래도 심성은 곧고 여린 아이였다.어린 나이에 성유미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그것을 증명했다.신세희는 딸이 너무 자랑스러웠다.성유미가 말했던 것처럼 이런 딸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성유미처럼 딸을 낳자마자 강제로 떨어져 지내다가 성인이 된 딸이 엄마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라면 정말 너무 잔인할 것 같았다.신세희는 성유미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만약 다시 그 여인을 만나게 된다면 꼭 제대로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그녀는 다짐했다.신세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신유리는 작전을 개시했다.신유리는 겉으로는 엄마한테 괜찮다고 말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삼촌에게 있다고 생각했다.성유미는 분명 서시언이 싫어서 그렇게 좋은 제안도 거절했을
“꼬마, 넌 왜 왔어? 날 감시하려고”서시언은 약간 짜증이 났다.줄곧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하던 이 아이가 빌런이 될 줄이야!그는 자신의 처지가 애처롭게 느껴졌다.서른살이 넘어서 겨우 결혼상대를 만났고 모두의 응원과 지지를 받는 상황에 이 어린 녀석이 걸림돌이 될 줄은 몰랐다.서시언은 지금이라도 아이의 엉덩이를 찰싹 때려주고 싶었다.하지만 매를 들기엔 서시언 자신도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말해. 뭐 맛있는 거 먹고 싶어서 왔어? 아니면 어디 놀러가고 싶은 곳 있어? 삼촌 오늘 데이트 있었는데 취소하고 특별히 너랑 놀아줄게.”서시언이 말했다.“삼촌, 나 좋은 소식 있어.”신유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그래! 어서 말해.”“이제 유미 이모랑 사귀라고 강요하지 않을게.”“그래! 유리 착하지. 좋은 소식 맞네. 그러면 오늘 같이 밥 먹으러 갈 때 가희 언니도….”“그런데 나쁜 소식도 있어.”신유리는 매몰차게 서시언의 말을 끊었다.“난 더 이상 삼촌한테 유미 이모랑 사귀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삼촌은 최가희랑 헤어진다고 약속해 줘. 그러니까 거래를 하는 거지. 어때?”서시언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엄선우도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그는 서시언에게 깊은 동정심을 느꼈다.‘서 대표님, 힘들어도 버텨야 해요. 이 나이에 결혼도 못해봤는데 조카딸 때문에 뒷목 잡고 쓰러지면 안 돼요.’서시언은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삼촌, 유미 이모랑 엄마 많이 닮지 않았어?”서시언은 아이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네 마음은 알겠어. 유리야, 나랑 어디 좀 같이 갈까?”신유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엄 비서님은 일단 돌아가세요.”서시언이 엄선우에게 말했다.“네, 서 대표님.”엄선우가 떠난 뒤, 서시언은 신속히 업무를 처리하고는 신유리를 데리고 회사를 나섰다.나가는 길에 그는 최가희에게 전화를 해서 말했다.“미안해, 가희야. 오늘 데이트 못 할 것 같아.”최가희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괜찮아요,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