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언이 고개를 돌려 보니 백발의 노인이었다.그가 물었다.“어르신, 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 제가 서시언입니다.”노인은 비틀거리며 그의 앞까지 다가가서 말했다.“서 대표님, 제가… 흰머리가 많기는 하지만 올해 고작 57세밖에 안 됐어요.”서시언은 당황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57세면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이 노인을 보고 있자니 깊게 패인 주름에 허름한 옷가지 고생한 흔적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다.“저 힘 좋아요. 건강하고요. 예전에 여기서 청소부를 모집했다고 들었어요. 저에게도 비슷한 일자리 좀 구해주시면 안 될까요? 저 정말 나이가 많지 않아요. 주민등록증 확인해 봐요.”말을 마친 노인은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서시언에게 내밀었다.서시언은 진지한 표정으로 주민등록증을 확인했다.본인이 확실했고 실제 나이는 57세가 맞았다.“어르신,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천천히 말씀해 보세요. 어떤 어려움이 있어서 그러시나요?”그는 노인이 메고 있는 작은 자루를 확인했다.신세희가 6년전에 자주 메고 다니던 자루와 흡사했다.서시언은 저도 모르게 울컥했다.“일자리는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시고 어려움을 말씀해 보세요. 남성 분 같은데 왜 이렇게 무거운 걸 들고 계시나요? 혹시….”그는 어르신이 혹시 가출한 게 아닐까 의심했다.자식들 아니면 남편이랑 다퉜나?일단 이런 문제들을 정확히 확인해야 도움을 줄 수 있었다.“별일 없어요. 그냥 숙식을 해결해 주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힘든 일도 괜찮아요. 숙식만 해결해 주시고 적당한 월급만 챙겨주시면 돼요. 제발 부탁드릴게요.”서시언은 묵묵히 노인을 바라보았다.이 나이에 숙식을 해결하려고 일자리를 구한다니! 설마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건 아닐까?그는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그가 계속해서 질문하려는데 마당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나서 소리 질렀다.“이모, 여긴 왜 왔어요? 제가 보살펴 드릴 수 있다고 했잖아요. 일단 돌아가서 다시 얘기해요.”“성유미 씨!”서시언이 먼저 상대를 알아보았다.성유미는
잠시 숨을 고른 성유미는 냉랭한 눈빛으로 서시언을 쏘아보며 말했다.“당신이 정말 좋은 사람일 수도 있어. 갈곳 없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거 보고 착한 사람이라고 믿을게. 하지만 우리 이모는 여기서 일하면 안 돼. 평생 고생만 하다가 늙으신 분이야. 그러니까 일자리 소개해 주지 마. 이모는 내가 모시고 갈 테니까.”말을 마친 성유미는 짐자루를 들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가버렸다.“유미야, 기다려! 나 더 이상 너한테 피해주기 싫다고!”이모님은 뒤에서 울며 소리쳤다.그렇게 두 사람은 센터를 떠났다.서시언과 신유리는 무거운 짐을 들고 힘겹게 앞으로 가고 있는 두 사람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삼촌, 저분들 너무 불쌍해.”신유리가 말했다.“그러니까 말이야. 자루도 많이 무거워 보이는데… 저 어르신도 여기까지 그걸 메고 오셨다는 거 아니야. 얼마나 힘들었을까?”“삼촌, 우리가 저분들을 집까지 모셔다드릴까?”신유리의 질문에 서시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렇게 하자! 우리 유리는 정말 착해! 삼촌은 우리 조카가 너무 자랑스러워.”말을 마친 그는 신유리의 손을 잡고 성유미와 노인에게 다가갔다.서시언은 뒤에서 성유미가 메고 있는 짐을 가로챘다. 성유미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더니 버럭 화를 냈다.“지금… 뭐 하자는 거야!”“제가 그래도 가희 남자친구인데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짐 무겁잖아요.”성유미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는 자루를 차 트렁크에 싣고 문을 열었다.“타세요. 어르신과 유리가 뒤에 타고 저….”그는 어머님이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성유미가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게다가 성유미는 두 사람 사이를 인정하지도 않았기에 딱히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뒤에 타세요.”서시언이 말했다.성유미는 약간 쑥스러운 얼굴로 고맙다고 인사했다.“고마워하실 필요 없어요. 편견을 버리고 저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차에 오른 성유미는 줄곧 말이 없다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어렵게 입을 열었다.“미안해! 자네는 아이가 없어서 잘 몰
서시언이 고개를 돌려 보니 문밖에 장정 네 명이 서 있었다.맨 앞에 선 남자가 어르신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놀란 신유리는 얼른 서시언의 품을 파고들었다.서시언은 아이를 안은 채, 한 손으로 성유미와 어르신을 등 뒤로 숨기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자들을 노려보았다.이상했던 점은 어르신에게 욕설을 퍼붓던 남자는 비록 거칠고 흉악해 보여도 차림새는 꽤 점잖았다. 안경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입만 다물면 지적인 이미지도 풍겼다.그를 따라온 다른 남자들도 동네 양아치처럼 보이지는 않았다.“당신들 누구야? 왜 남의 집에 멋대로 침입해? 이거 주거침입이야!”서시언은 침착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고는 신유리의 귓가에 대고 작게 말했다.“유리야, 이따가 삼촌이 저 사람들이랑 싸우게 되면 넌 그냥 도망쳐서 차로 가서 숨어. 그리고 핸드폰으로 아빠한테 바로 연락해. 알았지?”신유리는 비장한 얼굴로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삼촌!”선두에 선 남자가 서시언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말했다.“넌 또 누구야? 저 할망구는 감옥에 간 아들 제외하고 조카딸밖에 없는데 넌 저 인간들이랑 도대체 무슨 관계야?”잠시 생각하던 남자가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아, 알겠다. 너 저 할매 조카딸 애인이지?”남자는 성유미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차갑게 말했다.“성유미, 네 이모 빚 네가 책임진다고 했으면 돈을 갚아야지! 돈 없으면 애인한테 좀 달라고 해!”성유미는 화가 나서 눈까지 시뻘겋게 변했다.“너희들이 사람이야? 이모가 무슨 수로 돈을 갚아? 우리 이모는 40대 때 너희들 아버지랑 결혼하고 11년을 같이 살았어! 병든 너희들 아버지를 돌본 사람은 우리 이모라고!”“11년 집안일 해준 것만 해도 돈은 너희가 우리한테 줘야지. 그거 돈 좀 가져갔다고 갚으라고 해? 너희가 사람이야?”“동은석! 자꾸 와서 우리 협박하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지금 당장 신고할 거야! 내가 무서워서 신고 못한 줄 알아?”“이모, 겁내지 마세요! 여차하면 신고해서 감방 보내면 돼요!”말을
동은석은 당황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다 물어뜯어 버릴 거야! 이 개 같은 놈들아!”신유리는 화가 나서 주먹까지 불끈 쥐고 소리쳤다.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성유미가 모욕을 당하는데 참을 수 없었다.그래서 삼촌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버럭 화를 냈다.삼촌의 품에서 내린 아이는 팔짱을 끼고는 남자를 향해 눈을 부릅떴는데 새끼 강아지가 으르렁거리는 모습처럼 보였다.사실 동은석은 동네 양아치도 아니었고 아버지 대신 돈을 받으러 왔기에 어린 아이를 상대로 폭력을 휘두를 수는 없었다.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서시언에게 말했다.“빨리 애부터 좀 데려가. 애한테 폭언하는 망나니는 아니니까!”이때, 서시언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저기 선생님, 딱 봐도 동네 양아치 같지는 않은데 무슨 상황인지 자세히 말씀 좀 해주시겠어요? 이유를 알려주셔야 돈을 갚든지 뭘 하든지 하죠!”말을 마친 그는 얼른 유리를 품에 안았다.“유리 착하지. 이건 삼촌이 해결할게.”신유리는 그제야 삼촌의 품을 파고들었다. 아이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눈을 부릅뜨고 동은석 일행을 노려보았다.동은석이 말했다.“성유미 이모라는 여자는 우리 아버지랑 예전에 잠시 같이 살았던 동거녀야. 얼마전에 아버지가 아파서 몸져누우셨는데 저 여자가 아버지 돈 천만 원을 들고 튀었어!”“당신이 대신 돈을 갚아주면 신고는 참아주지! 아무도 돈을 안 갚으면 당연히 절도죄로 신고할 거고!”“천만 원 적은 돈 아니야! 실형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말을 마친 동은석은 비아냥거리는 시선으로 서시언을 바라보았다.화가 치민 서시언은 무섭게 돌변하며 차갑게 말했다.“동은석 씨, 잘 들어. 난 저 사람 애인 아니야! 이상한 호칭 붙이지 마! 어르신이 빌린 돈은 내가 대신 갚아주지! 그런데 어르신께 자초지종을 먼저 물어야겠어! 어르신이 훔친 게 확실하면 돈을 갚겠지만 아니라고 하면 당신들을 주거침입으로 신고할 거야.”“이런 일은 쌍방 얘기를 들어봐야지. 당신들이 훔쳤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닐 수도 있잖아? 증
동은석과 일행도 놀라서 움찔했다.어르신이 전혀 칼을 내려놓을 의사가 없자 남자들은 겁에 질려 도망갔다.그들은 비틀거리며 성유미의 집을 벗어났다.어르신은 바깥까지 그들을 따라가지는 않았다. 노인은 칼을 든 채,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도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날 힘들게 하는 거지?”노인은 비참한 표정으로 한참을 울었다.성유미는 조심스럽게 노인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이모, 속상해하지 말고 칼 줘요.”노인은 칼을 성유미에게 건네고 아직도 충격에 빠진 서시언 앞에 무릎을 꿇었다.“서 대표님, 동네에 정말 좋은 분이라고 소문을 많이 들었어요. 동네사람들한테 들으니까 대표님이 노숙자들에게 있을 곳도 마련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서 대표님, 저 좀 도와주세요. 돈은 필요 없어요! 아무리 가난해도 공짜 돈은 안 받아요. 저는 그냥 숙식이 제공되는 일자리가 필요해요. 다른 사람이 안 하는 일도 할 수 있어요. 설거지나 청소 이런 거 잘해요.”서시언이 말이 없자 노인은 계속해서 비굴하게 애원했다.“제발 부탁 좀 드릴게요. 이제 조카집에 얹혀 사는 것도 너무 미안해서 못 하겠어요. 저놈들 나중에도 또 온다고요. 유미는 안 그래도 힘들게 살았어요. 매일 쓰리잡을 뛰면서 집 대출을 해결하고 매달 가희한테 생활비도 보내줬어요. 애가 그렇게 힘들게 사는데 저까지 피해를 끼칠 수는 없어요. 그러니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서시언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이모님, 일단 일어나시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보다 많이 어르신인데 무릎을 꿇고 있으니 저도 마음이 불편해요. 일어나서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얘기를 해주시면 제가 해결해 드릴게요. 일자리는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아까 칼까지 들었으니 놈들은 독기가 바짝 올랐을 거예요. 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고 방법을 생각해 봐요.”어르신은 그제야 눈물을 훔치고 서시언과 성유미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노인은 마루에 앉아 천천히 자신의 과
그때 노인이 상대를 물색하고 있을 때 마을에 금방 퇴직한 중학교 교사가 있었다.아내와 사별하고 자식들은 다 각자 가정을 이루었기에 그 교사는 같이 살 동반자를 고민하고 있었다.그렇게 목적이 비슷한 두 사람이 결합했다.노인은 어린 손자를 데리고 동영신의 집으로 들어갔다.하지만 그 집으로 들어간 뒤에야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동거 첫날밤, 동영신이 말했다.“매달 손자 분유값은 줄 수 있어. 하지만 딱 거기까지야. 당신이 불쌍해서 주는 돈이니까 더 이상 욕심부리지 마. 아들이 출소하면 손자는 내보내야 해.”그때 당시 갈곳이 아예 없었던 노인은 있을 곳을 마련한 것만으로 기뻐해야 했기에 흔쾌히 동의했다.“고마워요. 우리가 살 곳을 내줘서 정말 고마워요.”“당신도 잘 들어. 난 원래 무식한 여자 안 좋아해. 학력도 없는 시골 여편네가 나 같은 교육가를 만난 걸 영광으로 생각해. 앞으로 여기가 당신 집이야. 집안일은 당신이 다 알아서 해!”동영신은 명령하듯 말했고 노인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저 집안일 잘해요. 분명 만족하실 거예요.”그렇게 간단한 소통을 마치고 두 사람은 결혼식도 없이 혼인신고만 했다.결혼한 뒤로 그녀는 매일 집안 청소를 하고 늙은 교사를 돌보는 일을 했다. 그때 노인의 나이는 고작 40대밖에 되지 않았기에 동영신이 원할 때면 가끔 성관계도 해줘야 했다.처음에 동영신은 아내가 한 밥이 맛없다며 매일 구박했다.그렇게 2년 정도가 흐르고 노인은 그럭저럭 동영신의 입맛을 맞출 수 있었다.동영신이 매달 노인에게 주는 손자 분유값은 고작 30만원이 전부였다.그 돈으로 분유를 제외하면 옷도, 기저귀도 사줄 수 없었다.평소에 노인은 장을 보면서 생활비를 관리했지만 그 돈은 동영신이 장부를 철저하게 확인했기에 한푼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가끔 동영신의 자식들이 본가에 방문하고는 했는데 그들도 장부를 수시로 확인했다.노인은 자녀들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속상했지만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어린
그 말을 들은 노인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함께 산 세월 10년!가정부처럼 집안일을 한 세월이 10년이었고 그 시간동안 동영신을 정성스럽게 보살폈다.손자의 학비를 달라고 한 것도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동영신은 한푼도 주지 않겠다고 하면서 폭행까지 서슴지 않았다.그렇게 때리고 욕하던 동영신은 노인을 바깥에 끌고 나가더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창피를 주었다.“여러분들이 좀 말해봐요! 이 여자 정말 흡혈귀 같지 않아요? 난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이 여자의 어린 손자를 여태 먹여주고 키워줬어요! 그리고 오갈데 없는 이 여자에게 살 집을 마련해 줬죠! 변변한 직장도 없고 퇴직금도 없어요! 손자를 키운 비용은 다 내가 책임졌다고요! 그렇게 10년을 보살폈어요! 도대체 난 언제까지 지갑 취급을 당해야 합니까!”동영신은 씩씩거리며 사람들에게 소리쳤다.이웃들은 모두가 노인을 비난했다.“정말 너무하네.”“당신 같은 사람들을 남편 등쳐먹는 흡혈귀라고 하는 거야!”“그래서 시골 여자는 집에 들이는 게 아니라니까요. 아무런 수입도 없잖아요.”“동 선생님, 같은 교사나 만나지 왜 저런 여자를 집에 들였어요?”그렇게 소란스러운 가운데, 동영신의 자식들이 본가에 왔다.그들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미친듯이 노인을 비난했다.“아줌마, 도대체 뭘 했기에 아빠가 이렇게 화를 내요?”“있을 곳을 내어주고 배불리 먹고 편하게 잠잘 수 있게 해줬더니 이제 아무 연고도 없는 아줌마 손자까지 우리가 책임져야 해요? 어떻게 우리 아버지한테 이럴 수 있어요!”“됐어! 저런 여자한테 무슨 예의를 갖춰? 여기서 살기 싫으면 당장 꺼져!”남편의 자식들에게까지 이렇게 모욕적인 욕을 먹으니 노인은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흘렀다.“난… 너희들 아버지와 10년을 같이 산 부부야! 우린 같은 침대에서 10년을 같이 잠을 잤다고. 너희들 출산할 때도 가서 산후조리를 도왔고 너희들 아이에게는 매년 세배돈도 줬어. 난 너희를
“당연하지! 자꾸 딴 생각을 하니까 손에 뭘 쥐여줄 수가 없어!”“욕심이 과한 거지!”“아니, 내가 뭘 잘못했어? 내 퇴직금으로 생활하고 내 집에서 생활하면서 내 자식들을 챙기는 건 당연한 거지. 내가 그 여자 손자까지 챙겨야 해?”“누가 아니래? 못 배운 여자라서 욕심만 많고 이기적이야!”“혼내야지 뭐!”“남편 무서운 거 보여주려면 매를 들어야 해! 그래야 앞으로 다시 안 기어올라!”“저거 봐, 한 대 맞으니까 얌전히 주방으로 들어갔잖아. 저 여자 자네 못 떠나. 어딜 가겠어? 손자 데리고 길거리 생활할 거야?”“주제도 모르고!”그들은 노인이 듣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노인도 묵묵히 할 일만 했다.그날 밤, 노인은 평소처럼 동영신을 위해 족욕물을 준비했고 직접 마사지까지 해주었다.모든 게 평소와 다름없었다.다음 날, 자식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동영신도 운동하러 공원으로 나간 사이에 노인은 집에 있는 현금을 전부 뒤져서 천만 원을 찾아냈다.노인은 천만 원을 가방에 넣고 손자가 입학할 학교에 찾아갔다.학교에서 먹고 잘 수 있는 기숙학교였다.학교에서 나온 노인은 서글픈 얼굴로 건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우리 아가, 할머니가 미안해. 학교에서 사고 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4년만 버텨. 그러면 네 아빠가 출소하니까.”“아빠가 널 보살펴 줄 거야. 아가, 꼭 사고 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야 해. 네 아빠가 출소하면 일해서 너 대학까지 보내줄 수도 있어. 아빠처럼 백정으로 살지 말고 꼭 출세해!”“이제 다시는 못 보겠네. 우리 아가. 네가 알아서 잘 살아야 해.”노인은 손자의 학교 대문 앞에서 서글픈 눈물을 흘렸다.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노인은 강가에 가서 세수를 하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갔다.동영신은 집에 돌아온 노인을 보고 혐오스럽다는 듯이 시비를 걸었다.“또 어딜 나갔다 온 거야? 점심도 안 준비하고! 내가 배달 음식까지 시켜 먹어야겠어?”“배달 음식 기름기만 많고 몸에 안 좋은 거 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