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닥에 넘어진 최여진은 극심한 고통에 그대로 주저앉았다.그녀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반호영의 발길이 또 날아왔다.“잘 들어! 난 여자라고 봐주지 않아!”“너만 보면 구역질이 올라오거든! 출국하기 전에 너부터 죽여줄까?”말을 마친 반호영은 다시 다리를 들어올렸다.“잠깐!”구성훈이 다급히 그를 말렸다.반호영은 고개를 돌려 구성훈을 바라보며 말했다.“구 대표님? 저런 더러운 여자를 왜 감싸요?”구성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세상에!최여진을 더러운 여자라고 비난하다니!남성과 서울을 통틀어서 감히 이런 발언을 할 사람은 반호영뿐이었다.아!부소경이 있었지!역시 쌍둥이라서 그런지 이런 면도 무척 닮았다.성격이나 잔인한 정도로만 따지면 반호영은 부소경 판박이였다.두 사람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부소경은 그래도 화를 다스릴 줄 알고 항상 침착하게 대한다는 점이었다.반면 반호영은 모든 감정을 얼굴에 표현했고 거침이 없었다.두 사람만 놓고 비교해 보면 부소경 쪽이 더 제왕에 가까웠다.반호영은 오히려 사랑만 받고 자라서 위 아래가 없는 어린애 같았다.구성훈은 조용히 반호영을 한쪽으로 불러서 입을 열었다.“호영 씨, 쟤는….”“설마 구 대표님 애인은 아니죠?”반호영이 물었다.구성훈은 다급히 고개를 흔들었다.“그럴 리가. 쟤는 나랑 꽤 친한 지인의 딸이야. 줄곧 해외에 있다가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좀 예의도 모르고 거침이 없어. 그러니 혹시라도 기분 나쁘게 했다면 내가 대신 사과하지. 좀 봐줘.”“쟤 몸 파는 여자 아니었어요?”반호영은 여전히 거침이 없었다.바닥에서 억지로 몸을 일으킨 최여진은 고통을 억지로 참으며 반호영을 손가락질했다.“이 나쁜 자식이! 너 죽고 싶어? 아, 이제 알겠다. 너 부소경 대표랑 원수 사이지?”반호영은 냉소를 지으며 최여진을 노려보았다.“경고하는데 반호영! 내 약혼자가 부소경 대표랑 아주 친하거든? 당장 부소경 씨한테 연락해서 이쪽으로 오라고 할까?”“그래?”최여진
그녀는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그날 사실 먼저 그에게 다가간 것은 그녀였다.하지만 남자가 그렇게 잔인하고 성질이 더러운 줄을 몰랐고 자신의 미모에 빠지지 않을 줄도 몰랐다.볼일을 다 보고 폭력을 휘두르다니.최여진이 말이 없자 구성훈은 계속해서 말했다.“여진아, 명심해! 지금은 우리가 손을 잡는 수밖에 없어. 그래야 너도 네가 원하는 대로 구씨 가문에 시집올 수 있어. 너의 가문과 우리 집, 그리고 부소경 부모와 반호영까지 손을 잡아야 부소경과 구경민을 압박할 수 있다고.”최여진은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알겠니?”최여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아저씨.”“알면 좀 얌전히 있어!”“하지만 저 자식은 저를 모욕하고 때렸잖아요.”최여진이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구성훈은 냉소를 지었다.“반호영 쟤도 그렇고 형인 부소경도 그렇고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뼛속 깊이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족속들이라고. 반호영은 그래도 좀 단순한 면이 있지 부소경은 얼마나 끔찍한지 알아?”최여진은 겁에 질려 대답도 하지 못했다.“넌 여자가 맨날 남자 머리 위에 기어오르려고 하는 게 문제야. 그러니까 자꾸 시비가 걸리지. 다른 사람을 탓할 게 아니라고.”구성훈은 전혀 거리낌없이 최여진을 꾸중했다.어차피 구경민이 버린 여자인데 두려울 것 없었다.최여진은 그 말에 수긍했다.“알겠어요, 아저씨.”“얌전히 있어! 욕을 하면 그대로 들어. 어차피 곧 출국하니까.”“네.”두 사람이 다시 서재에서 나왔을 때, 최여진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먼저 반호영에게 다가가서 사과했다.“죄송해요, 반호영 씨. 제가 다 잘못했어요. 사과할게요. 욕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욕해요.”“꺼져! 너만 보면 역겨우니까!”최여진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꺼지라고! 못 생긴데다가 말귀도 못 알아들어? 꺼져!”최여진은 눈물을 꾹 참고 뒤돌아섰다.가다가 뒤를 돌아 보니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우울한 꽃미남은 온데간데 없고 죽음을 각오한 것
부소경은 상대가 누군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넌 나보다 운이 좋았어!”상대가 말했다.“반호영?”“넌 그 사람 옆에서 계속 살았잖아. 하지만 나는? 난 그 여자와 만난 적도 없고 내가 그 여자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 이미 땅 속에 묻혀 있었어.”“너 어디야?”“날 죽이려고?”반호영이 물었다.“넌 내 유일한 동생이야.”“웃기네!”반호영은 욕설을 퍼붓더니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넌 나를 못 찾을 거야! 나중에 또 만날지도 모르지!”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부소경은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어젯밤부터 서울로 사라진 부모님이 뭘 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하지만 그 역시 여길 떠날 수가 없었다.골치 아픈 일보다는 구경민의 목숨이 더 중요했다.물론 부소경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반호영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 반호영은 살아 있지 않은가.부소경은 자고 있는 구경민을 힐끗 바라보았다.병상 위의 남자는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었다.“윤희… 고윤희….”부소경은 어떻게 이 친구를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다. 옆에 있던 사람의 소중함을 몰랐다고 그를 탓해야 할까?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신세희를 찾아 6년을 돌아다닐 때, 그도 같은 절망을 느꼈고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을 때 그 역시 무너진 적 있었다.그래서 이런 말로 구경민을 자극하고 싶지는 않았다.그리고 구경민과 고윤희가 과연 재결합에 성공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그가 할 수 있는 건 이 소중한 친구가 빨리 정신을 차릴 때까지 옆에서 지켜주는 것뿐이었다.구경민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오후 네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긴 잠에서 깬 구경민은 여전히 창백하고 피곤해 보였지만 전보다는 멀쩡해 보였다.“어떻게 왔어?”구경민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자신의 별장에서 가정부들에게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고 술을 마셨던 기억뿐이었다.그는 구씨 가문의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배려심이 많았고 내숭을 떨거나 기괴하게 애교를 부리지 않았다. 그저 부드러운 표정으로 여느 때처럼 그를 보살펴 주었다.고윤희가 가장 자주 했던 말이 그거였다.“난 당신의 충실한 가정부가 될 거야. 당신이 아무 걱정 없이 밖에서 일만 할 수 있도록 내조를 잘할게. 당신에게 내가 필요 없어지면 한 마디만 해줘. 그러면 알아서 떠날게.”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사라졌다.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다.“정말 지독한 여자야! 나한테 잡히기만 해! 절대 쉽게 용서하지 않을 거야!”갑자기 구경민이 중얼거리듯 한마디 했다.마침 안으로 들어선 신세희는 그 말을 듣고 냉소를 지었다.“어쩜 지금도 윤희 언니한테 그런 말투로 말해요? 그럴 줄 알았으면 꽃은 안 사오는 건데.”“엄마, 꽃은 내가 고른 거잖아.”옆에 있던 신유리가 끼어들었다.신세희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신유리를 흘겨보았고 신유리는 귀엽게 혀를 홀랑 내밀었다.아이는 구경민이 싫지 않았다. 고윤희가 집을 나간 뒤로 신유리도 구경민을 탓하기는 했지만 아빠랑 가장 친한 친구인걸 알기에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병원에 오는 길에 꽃을 사서 위로해 주려고 했던 것이다.마침 병원 입구에 꽃집이 있었고 아이는 엄마한테 꽃 좀 사가자고 제안했다.“그 사람은 이런 걸 받을 자격 없어!”신세희가 말했다.신유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엄마에게 말했다.“엄마, 자격이 없다는 건 무슨 말이야?”“그러니까 구경민 씨는 나쁜 사람이라서 꽃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이야.”신유리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런데 왜 아빠는 그 아저씨한테 그렇게 잘해줘?”“그건….”신세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엄마, 왜 말이 없어?”아이는 궁금한 건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계속 캐물었다.신세희는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아빠가 혼자 해외에 살던 적이 있었는데 생활이 많이 힘들었어. 나중에 네 아빠가 구경민 아저씨를 만났어. 처음에는 아빠가 경
그 말을 들은 구경민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세희 씨는 윤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거죠?”신세희가 말이 없자 구경민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또 말했다.“어디 있는지 알려줘요. 세희 씨, 제발요.”신세희는 미안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미안해요, 경민 씨. 저도 정말 언니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저번에 연락이 왔을 때도 경민 씨한테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말해서 경민 씨가 그쪽으로 찾아갔잖아요. 물론 발신지역은 엄한 곳이었지만요.”신세희는 한숨을 쉬며 계속해서 말했다.“경민 씨가 언니를 찾고 싶은 마음 저도 이해해요. 저도 언니가 보고 싶어요. 임신한 경험이 있기에 그 상태로 도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정말 지옥일 거예요! 그래서 언니를 찾고 싶은 마음은 저도 경민 씨 못지 않아요!”말을 마친 신세희는 구경민의 손에서 꽃다발을 가져다가 꽃병에 꽂았다.구경민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윤희는 평생 나를 만나고 싶지 않나 봐요. 정말… 그 정도로 나를 증오하는 걸까요?”신세희는 담담하게 구경민을 위로했다.“솔직히 말하면 저번에 언니랑 통화했을 때, 그렇게까지 미워하는 말투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여태 보살펴 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경민 씨의 미움을 사서 경민 씨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닌다고 했어요.”구경민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그냥 그 여자를 찾고 싶을 뿐인데 그게 그 여자한테는 추격이 되나요?”신세희는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당연하죠!”“그건 생각해 봤어요? 윤희 언니가 집에서 내쫓길 때, 최여진은 언니에게 폭력을 행사했어요. 그 뒤로 한 번 집에 더 돌아간 적 있었는데 그때도 최여진은 폭력을 휘둘렀다고 해요. 언니는 하마터면 맞아서 죽을 뻔했죠. 그리고 자칫 잘못했으면 여러 남자들에게 수모를 당할 뻔도 했고요.”“윤희 언니는 경민 씨가 묵인 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경민 씨가 두렵대요. 자신은
신유리는 아빠의 품에 꼭 안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침묵을 깼다.“둘째 삼촌, 여긴 어쩐 일이세요? 산속 별장에 하인들도 저를 막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어요! 제가 얼마나 조바심이 났는지 몰라요!”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구서준이다. 그는 퇴근하고 곧장 이곳으로 달려온 것 같은 모습이다.그 뒤로 서준명도 따라 들어왔다.구경민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기에 구서준만큼 다급한 표정은 아니었다.서준명은 꽃다발을 내려놓고 신세희를 보며 물었다.“세희야, 하루 종일 회의를 하느라 너한테 전화하지도 못했어. 지금은 어때?”“서시언한테 인수인계 마쳤어?”신세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네. 어제부터 서씨 기업의 대표직을 맡기로 했어요. 주말이라 출근하지 않은 임원들도 한 명씩 불러 인사도 했어요.”“그래.”서준명은 그제야 시름을 놓고 문언가 고민하는 것 같더니 물었다.“부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좀 어때? 괜찮으셔?”그의 말에 신세희는 부소경을 힐끗 쳐다보았다.“괜찮으셔.”부소경이 대답했다.“다행이네요.”“세희야, 그동안 네가 힘들었단 거 알아. 그래도 고씨 두 모녀가 잡혀가고, 아이도 내가 외국으로 보냈어. 앞으로 조금씩 괜찮을 거야.”신세희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네, 오빠. 사람 일이라는 게 마음처럼 되나요? 저도 힘낼게요.”잠시 후, 신세희가 서준명을 보며 물었다.“오빠, 주말에 있은 일 선희 씨랑 정아 씨한테 말하지 않았죠?”서준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늘 하루 종일 회의 때문에 통화할 시간도 없었어.”“두 사람 걱정하지 않게 말하지 말아 주세요.”신세희는 두 사람한테 말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부소경을 믿지 못해 주말에 이혼소동을 벌인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였기 때문이다.“걱정하지 마. 절대로 말하지 않을게.”“고마워요.”신세희는 싱긋 웃어 보였다.많은 사람들이 구경민의 병문안을 다녀간 후, 병실에는 부소경과 신세희 가족만 남았다.“경민 삼촌, 고마워하지 않
고윤희의 목소리를 들은 신세희의 멍한 표정이었고, 진짜 전화를 건 사람이 고윤희가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여 말을 더듬었다.“언니? 정말 윤희 언니 맞아요?”그러자 고윤희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세희 씨, 왜 이렇게 흥분했어요? 내가 너무 오랜만에 전화를 했나요?”해외에서 갑자기 나타난 고씨 모녀가 잘 살고 있는 그녀의 인생을 망쳐놓고, 이혼까지 할 뻔했다.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른다.너무 반가운 고윤희의 목소리에 평소와 달리 너무 흥분하며 전화를 받아 그녀를 놀라게 했다.고작 두 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언니…”신세희가 말을 하려던 그때, 누워있던 구경민이 그녀에게 손짓했다.신세희가 그를 힐끔 쳐다보자 구경민은 다급하게 책과 필을 찾았지만 찾지 못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고 이불에 글씨를 썼다.‘내가 병원에 있다고 하지 말고, 통화를 오래 해줘요.”신세희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고윤희는 매번 먼저 전화를 걸었고, 자신이 있는 위치도 알려주지 않았다.신세희가 먼저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언니. 아, 저 최근에 남편이랑 다투다 이혼까지 할 뻔했어요. 진짜 웃기죠?”하지만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고윤희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저도 요즘 세희 씨에 관한 똑같은 꿈만 꾸어서 연락했어요. 꿈이 너무 이상해서요.”“언니, 무슨 꿈인데요?”“연속 이틀 동안 세희 씨가 미친개한테 쫓기는 꿈을 꾸었어요. 그것도 두 마리나요.”“그 미친개들도 일반 개들이 아니에요. 돈 많은 집에서 키우는 개같은데, 주인들도 개들을 따라 세희 씨를 쫓아다녔어요.”“세희 씨, 진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같은 꿈을 두 번이나 꾸어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요.”“세희 씨, 내가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는지 몰라요. 진짜 괜찮은 거 맞죠? 구경민 때문에 세희 씨를 만나러 가지도 못하고… 진짜 괜찮아요?”신세희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고윤희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
“세희 씨는 내가 제일 바쁠 때 돈도 빌려준 사람이잖아요. 내가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알아요? 하지만 나는 남성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남성에 돌아가면 구경민이 니를 때려죽일지도 몰라요.”“세희 씨가 걱정되어도 보러 갈 수 없어요. 그러니까 혼자서도 몸 잘 챙겨야 해요.”신세희는 구경민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녀의 통화를 엿들은 구경민은 깜짝 놀랐다.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신세희를 바라보았다.전화기 너머 고윤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세희 씨, 내가 재벌 가문에서 7년을 하인으로 살았어요. 구씨 가문의 사람들이 내 편을 들어 줄 거라 생각했지만, 그 집에서 쫓겨날 때 갈아 입을 옷 한 벌도 챙기지 못했어요.”“뿐만 아니라 일한 수당도 모두 뺏기고, 빈털터리로 쫓겨났어요.”“재벌 가문의 사람들이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몰라요. 그러니까 세희 씨, 언니이자 경험자로서 충고하는데 꼭 몸 잘 챙겨요. 그 사람들은 우리가 절대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신세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네, 언니. 알겠어요. 고마워요 언니…”고윤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세희 씨… 소경 씨는 그런 사람 아닌 것 같아요.”“소경 씨는 세희 씨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도와주고, 두 사람의 사진도 공개할 만큼 따뜻한 사람이에요. 소경 씨랑 구경민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에요. 소경 씨는 진심으로 세희 씨를 사랑하고 있어요.”신세희는 부소경을 힐끗 보고 말했다.“소경 씨 저한테 충분히 잘해주고 있어요.”“그러니까 세희 씨, 좋은 남자를 만나면 너무 고집부리지 말아요. 남자들도 자신들한테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여자를 좋아해요. 알았죠? 그래야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요.”“네 언니, 고마워요.”신세희의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얼굴을 가득 적셨다.“그래요. 세희 씨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괜찮은 것 같으니 이만 끊을게요.”“언니, 저 아직 할 말 남았어요.”“저 지금 거지에요. 이 산골에서 일자리 하나 찾기가 하늘에 별 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