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경은 상대가 누군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넌 나보다 운이 좋았어!”상대가 말했다.“반호영?”“넌 그 사람 옆에서 계속 살았잖아. 하지만 나는? 난 그 여자와 만난 적도 없고 내가 그 여자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 이미 땅 속에 묻혀 있었어.”“너 어디야?”“날 죽이려고?”반호영이 물었다.“넌 내 유일한 동생이야.”“웃기네!”반호영은 욕설을 퍼붓더니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넌 나를 못 찾을 거야! 나중에 또 만날지도 모르지!”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부소경은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어젯밤부터 서울로 사라진 부모님이 뭘 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하지만 그 역시 여길 떠날 수가 없었다.골치 아픈 일보다는 구경민의 목숨이 더 중요했다.물론 부소경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반호영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 반호영은 살아 있지 않은가.부소경은 자고 있는 구경민을 힐끗 바라보았다.병상 위의 남자는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었다.“윤희… 고윤희….”부소경은 어떻게 이 친구를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다. 옆에 있던 사람의 소중함을 몰랐다고 그를 탓해야 할까?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신세희를 찾아 6년을 돌아다닐 때, 그도 같은 절망을 느꼈고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을 때 그 역시 무너진 적 있었다.그래서 이런 말로 구경민을 자극하고 싶지는 않았다.그리고 구경민과 고윤희가 과연 재결합에 성공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그가 할 수 있는 건 이 소중한 친구가 빨리 정신을 차릴 때까지 옆에서 지켜주는 것뿐이었다.구경민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오후 네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긴 잠에서 깬 구경민은 여전히 창백하고 피곤해 보였지만 전보다는 멀쩡해 보였다.“어떻게 왔어?”구경민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자신의 별장에서 가정부들에게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고 술을 마셨던 기억뿐이었다.그는 구씨 가문의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배려심이 많았고 내숭을 떨거나 기괴하게 애교를 부리지 않았다. 그저 부드러운 표정으로 여느 때처럼 그를 보살펴 주었다.고윤희가 가장 자주 했던 말이 그거였다.“난 당신의 충실한 가정부가 될 거야. 당신이 아무 걱정 없이 밖에서 일만 할 수 있도록 내조를 잘할게. 당신에게 내가 필요 없어지면 한 마디만 해줘. 그러면 알아서 떠날게.”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사라졌다.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다.“정말 지독한 여자야! 나한테 잡히기만 해! 절대 쉽게 용서하지 않을 거야!”갑자기 구경민이 중얼거리듯 한마디 했다.마침 안으로 들어선 신세희는 그 말을 듣고 냉소를 지었다.“어쩜 지금도 윤희 언니한테 그런 말투로 말해요? 그럴 줄 알았으면 꽃은 안 사오는 건데.”“엄마, 꽃은 내가 고른 거잖아.”옆에 있던 신유리가 끼어들었다.신세희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신유리를 흘겨보았고 신유리는 귀엽게 혀를 홀랑 내밀었다.아이는 구경민이 싫지 않았다. 고윤희가 집을 나간 뒤로 신유리도 구경민을 탓하기는 했지만 아빠랑 가장 친한 친구인걸 알기에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병원에 오는 길에 꽃을 사서 위로해 주려고 했던 것이다.마침 병원 입구에 꽃집이 있었고 아이는 엄마한테 꽃 좀 사가자고 제안했다.“그 사람은 이런 걸 받을 자격 없어!”신세희가 말했다.신유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엄마에게 말했다.“엄마, 자격이 없다는 건 무슨 말이야?”“그러니까 구경민 씨는 나쁜 사람이라서 꽃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이야.”신유리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런데 왜 아빠는 그 아저씨한테 그렇게 잘해줘?”“그건….”신세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엄마, 왜 말이 없어?”아이는 궁금한 건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계속 캐물었다.신세희는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아빠가 혼자 해외에 살던 적이 있었는데 생활이 많이 힘들었어. 나중에 네 아빠가 구경민 아저씨를 만났어. 처음에는 아빠가 경
그 말을 들은 구경민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세희 씨는 윤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거죠?”신세희가 말이 없자 구경민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또 말했다.“어디 있는지 알려줘요. 세희 씨, 제발요.”신세희는 미안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미안해요, 경민 씨. 저도 정말 언니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저번에 연락이 왔을 때도 경민 씨한테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말해서 경민 씨가 그쪽으로 찾아갔잖아요. 물론 발신지역은 엄한 곳이었지만요.”신세희는 한숨을 쉬며 계속해서 말했다.“경민 씨가 언니를 찾고 싶은 마음 저도 이해해요. 저도 언니가 보고 싶어요. 임신한 경험이 있기에 그 상태로 도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정말 지옥일 거예요! 그래서 언니를 찾고 싶은 마음은 저도 경민 씨 못지 않아요!”말을 마친 신세희는 구경민의 손에서 꽃다발을 가져다가 꽃병에 꽂았다.구경민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윤희는 평생 나를 만나고 싶지 않나 봐요. 정말… 그 정도로 나를 증오하는 걸까요?”신세희는 담담하게 구경민을 위로했다.“솔직히 말하면 저번에 언니랑 통화했을 때, 그렇게까지 미워하는 말투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여태 보살펴 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경민 씨의 미움을 사서 경민 씨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닌다고 했어요.”구경민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그냥 그 여자를 찾고 싶을 뿐인데 그게 그 여자한테는 추격이 되나요?”신세희는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당연하죠!”“그건 생각해 봤어요? 윤희 언니가 집에서 내쫓길 때, 최여진은 언니에게 폭력을 행사했어요. 그 뒤로 한 번 집에 더 돌아간 적 있었는데 그때도 최여진은 폭력을 휘둘렀다고 해요. 언니는 하마터면 맞아서 죽을 뻔했죠. 그리고 자칫 잘못했으면 여러 남자들에게 수모를 당할 뻔도 했고요.”“윤희 언니는 경민 씨가 묵인 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경민 씨가 두렵대요. 자신은
신유리는 아빠의 품에 꼭 안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침묵을 깼다.“둘째 삼촌, 여긴 어쩐 일이세요? 산속 별장에 하인들도 저를 막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어요! 제가 얼마나 조바심이 났는지 몰라요!”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구서준이다. 그는 퇴근하고 곧장 이곳으로 달려온 것 같은 모습이다.그 뒤로 서준명도 따라 들어왔다.구경민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기에 구서준만큼 다급한 표정은 아니었다.서준명은 꽃다발을 내려놓고 신세희를 보며 물었다.“세희야, 하루 종일 회의를 하느라 너한테 전화하지도 못했어. 지금은 어때?”“서시언한테 인수인계 마쳤어?”신세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네. 어제부터 서씨 기업의 대표직을 맡기로 했어요. 주말이라 출근하지 않은 임원들도 한 명씩 불러 인사도 했어요.”“그래.”서준명은 그제야 시름을 놓고 문언가 고민하는 것 같더니 물었다.“부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좀 어때? 괜찮으셔?”그의 말에 신세희는 부소경을 힐끗 쳐다보았다.“괜찮으셔.”부소경이 대답했다.“다행이네요.”“세희야, 그동안 네가 힘들었단 거 알아. 그래도 고씨 두 모녀가 잡혀가고, 아이도 내가 외국으로 보냈어. 앞으로 조금씩 괜찮을 거야.”신세희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네, 오빠. 사람 일이라는 게 마음처럼 되나요? 저도 힘낼게요.”잠시 후, 신세희가 서준명을 보며 물었다.“오빠, 주말에 있은 일 선희 씨랑 정아 씨한테 말하지 않았죠?”서준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늘 하루 종일 회의 때문에 통화할 시간도 없었어.”“두 사람 걱정하지 않게 말하지 말아 주세요.”신세희는 두 사람한테 말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부소경을 믿지 못해 주말에 이혼소동을 벌인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였기 때문이다.“걱정하지 마. 절대로 말하지 않을게.”“고마워요.”신세희는 싱긋 웃어 보였다.많은 사람들이 구경민의 병문안을 다녀간 후, 병실에는 부소경과 신세희 가족만 남았다.“경민 삼촌, 고마워하지 않
고윤희의 목소리를 들은 신세희의 멍한 표정이었고, 진짜 전화를 건 사람이 고윤희가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여 말을 더듬었다.“언니? 정말 윤희 언니 맞아요?”그러자 고윤희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세희 씨, 왜 이렇게 흥분했어요? 내가 너무 오랜만에 전화를 했나요?”해외에서 갑자기 나타난 고씨 모녀가 잘 살고 있는 그녀의 인생을 망쳐놓고, 이혼까지 할 뻔했다.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른다.너무 반가운 고윤희의 목소리에 평소와 달리 너무 흥분하며 전화를 받아 그녀를 놀라게 했다.고작 두 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언니…”신세희가 말을 하려던 그때, 누워있던 구경민이 그녀에게 손짓했다.신세희가 그를 힐끔 쳐다보자 구경민은 다급하게 책과 필을 찾았지만 찾지 못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고 이불에 글씨를 썼다.‘내가 병원에 있다고 하지 말고, 통화를 오래 해줘요.”신세희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고윤희는 매번 먼저 전화를 걸었고, 자신이 있는 위치도 알려주지 않았다.신세희가 먼저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언니. 아, 저 최근에 남편이랑 다투다 이혼까지 할 뻔했어요. 진짜 웃기죠?”하지만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고윤희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저도 요즘 세희 씨에 관한 똑같은 꿈만 꾸어서 연락했어요. 꿈이 너무 이상해서요.”“언니, 무슨 꿈인데요?”“연속 이틀 동안 세희 씨가 미친개한테 쫓기는 꿈을 꾸었어요. 그것도 두 마리나요.”“그 미친개들도 일반 개들이 아니에요. 돈 많은 집에서 키우는 개같은데, 주인들도 개들을 따라 세희 씨를 쫓아다녔어요.”“세희 씨, 진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같은 꿈을 두 번이나 꾸어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요.”“세희 씨, 내가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는지 몰라요. 진짜 괜찮은 거 맞죠? 구경민 때문에 세희 씨를 만나러 가지도 못하고… 진짜 괜찮아요?”신세희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고윤희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
“세희 씨는 내가 제일 바쁠 때 돈도 빌려준 사람이잖아요. 내가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알아요? 하지만 나는 남성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남성에 돌아가면 구경민이 니를 때려죽일지도 몰라요.”“세희 씨가 걱정되어도 보러 갈 수 없어요. 그러니까 혼자서도 몸 잘 챙겨야 해요.”신세희는 구경민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녀의 통화를 엿들은 구경민은 깜짝 놀랐다.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신세희를 바라보았다.전화기 너머 고윤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세희 씨, 내가 재벌 가문에서 7년을 하인으로 살았어요. 구씨 가문의 사람들이 내 편을 들어 줄 거라 생각했지만, 그 집에서 쫓겨날 때 갈아 입을 옷 한 벌도 챙기지 못했어요.”“뿐만 아니라 일한 수당도 모두 뺏기고, 빈털터리로 쫓겨났어요.”“재벌 가문의 사람들이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몰라요. 그러니까 세희 씨, 언니이자 경험자로서 충고하는데 꼭 몸 잘 챙겨요. 그 사람들은 우리가 절대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신세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네, 언니. 알겠어요. 고마워요 언니…”고윤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세희 씨… 소경 씨는 그런 사람 아닌 것 같아요.”“소경 씨는 세희 씨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도와주고, 두 사람의 사진도 공개할 만큼 따뜻한 사람이에요. 소경 씨랑 구경민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에요. 소경 씨는 진심으로 세희 씨를 사랑하고 있어요.”신세희는 부소경을 힐끗 보고 말했다.“소경 씨 저한테 충분히 잘해주고 있어요.”“그러니까 세희 씨, 좋은 남자를 만나면 너무 고집부리지 말아요. 남자들도 자신들한테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여자를 좋아해요. 알았죠? 그래야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요.”“네 언니, 고마워요.”신세희의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얼굴을 가득 적셨다.“그래요. 세희 씨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괜찮은 것 같으니 이만 끊을게요.”“언니, 저 아직 할 말 남았어요.”“저 지금 거지에요. 이 산골에서 일자리 하나 찾기가 하늘에 별 따는 것
신세희는 바로 대답했다.“언니,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나한테 말해요. 제가 꼭 언니를 도울게요!”방금까지 즐거웠던 고윤희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구경민이 대체 왜 나를 죽이려고 하는지 궁금해요.”“언니…”구경민이 고윤희를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구경민이 후회하고 미친 듯이 고윤희를 찾고 있다고…하지만 신세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침대에 피로 글씨를 쓰고 있는 구경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안돼… 먼저 말하라고 해요.”신세희는 구경민의 이야기를 고윤희한테 말할 수 없었다.“언니, 대체 구경민 씨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나는 정말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요. 구경민의 재산도, 집에 있는 금은보석도 훔치지 않았어요. 구경민이 나한테 많은 선물을 했지만 한 번도 사용한 적 없어요.”“그 집에서 몸에 장신구 하나 걸치지 않고 쫓겨났어요. 팔찌도 하지 않았어요.”“하늘에 맹세할 수 있어요. 나는 정말 구경민의 재산을 한 푼도 가지지 않았어요.”고윤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세희 씨… 저 지금 36살이에요. 어린 나이가 아니죠. 구경민이 피임을 하지 않아 아이를 3번이나 임신했어요. 피임약을 먹었지만 그래도 아이는 계속 저를 찾아왔던 거죠.”“아이를 3번 낙태하고, 의사가 이제는 임신이 어렵다고 했어요. 지금 뱃속에 있는 아이를 잘 지키면 기회가 있을 거라고 했죠.”“만약 지금 이 아이도 지우면, 저는 다시는 아이를 품을 수 없는 여자가 돼요.”“평생 아이와 구경민을 만나지 않게 할 거예요. 절대 구경민의 인생을 방해하지 않겠어요. 내가 구경민이랑 그의 아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한이 있어도 아이만은 지키고 싶어요.”“그러니까 세희 씨, 소경 씨한테 말해서 나 좀 도와주면 안 돼요? 구경민이 나를 그만 놓아줬으면 좋겠어요.”전화기 너머 흐느끼는 고윤희의 목소리에 신세희도 함께 울었다.신세희가 구경민을 쳐다보니 구경민은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신세희는 찢어지는 마음을 움켜쥐고
“언니 사실대로 말해줘요. 그래야 제가 언니를 도울 수 있어요.”고윤희는 쓴웃음을 지었다.“아직도 사랑하고 있어요.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요? 구경민을 처음 만난 날, 내 목숨을 구해주는 그 순간부터 구경민을 사랑하게 되었어요.”“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짝사랑은 힘든 거예요. 나는 고통스럽고, 구경민은 힘들었어요.”“구경민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를 이 정도로 증오할 줄은 몰랐죠. 집에서 쫓아냈으면 그만이지, 왜 죽이겠다고 하는지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세희 씨, 나는 지금 구경민을 사랑한 그 시간을 후회해요.”“구경민한테 나는 그저 웃음거리이자 욕망을 풀어내는 인형일 뿐이에요.”“다시는 구경민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지금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그러니까 세희 씨, 구경민한테 저를 꼭 놓아달라고 해주세요. 평생 그의 눈앞에 나타날 일 없고, 그의 결혼생활을 방해할 생각 추호도 없어요.”“맹세할게요!”고윤희는 진심을 다해 애원하다시피 말했다.신세희는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나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어머니는 서씨 어르신과 할머니가 낳은 자식이다. 할머니는 서씨 어르신을 평생 사랑했지만 서씨 어르신은 어떻게든 할머니를 죽일 생각만 하고 할머니가 낳은 자식이 친 자식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왜 이 세상은 이토록 잔인할까?이토록 슬픈 일이 이곳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신세희는 눈물을 닦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언니, 지금… 행복해요?”“행복해요!”고윤희는 지금의 생활을 충분히 만족한다.“가난한 삶이지만 나를 사랑해 주는 아주머니가 있고, 나를 구해 준 사람도 너무 착한 사람이라 이곳이 좋아요. 내 마음이 안정된 느낌이에요.”신세희는 아직도 멍한 표정으로 있는 구경민을 쳐다보았다. 그는 조금 전부터 자리에 가만히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다.“언니, 언니가 행복하면 저도 행보해요. 구경민 씨랑 잘 얘기해 볼게요. 언니가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제가 도